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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스 버틀러 Judith Butler | |
본명 | <colbgcolor=#ffffff,#191919>주디스 파멜라 버틀러 (Judith Pamela Butler)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출생 | 1956년 2월 24일 ([age(1956-02-24)]세) |
미국 오하이오 클리블랜드 | |
학력 | 예일 대학교 (철학 / 학사, 석사, 박사) 베닝턴 칼리지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
학파 | 대륙철학, 포스트모던 페미니즘, 포스트모더니즘/후기 구조주의, 퀴어 이론 |
직업 | 철학자, UC버클리 교수 |
[clearfix]
1. 개요
2. 생애
주디스 버틀러는 1956년 2월 24일,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태어났다. 가족은 헝가리계 유대인과 러시아계 유대인 혈통이며, 외할머니의 가족 대부분은 홀로코스트에서 사망했다. 버틀러의 부모는 실천적인 개혁 유대교인이었다. 이에 영향을 받아 10대 시절의 어렸을 때부터 버틀러는 히브리어 학교와 유대인 윤리에 관한 특별 수업을 들었다. 그곳에서 철학에 대한 첫 번째 훈련을 받았다. 버틀러는 2010년 이스라엘 신문 하아레츠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수업에서 너무 말이 많았기 때문에 랍비에 의한 처벌의 한 형태로, 윤리 수업을 듣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그의 나이 14세에 불과했다. 랍비가 특별 수업에서 무엇을 공부하고 싶은지 물었을 때, 랍비는 그의 질문에 감동했다고 한다. 그는 당시 세 가지를 질문했다. "스피노자가 유대교에서 파문당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독일 관념론이 나치즘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을까요?" 그리고 "마틴 부버의 작품을 포함한 실존신학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버틀러는 예일 대학교로 편입하기 전에 베닝턴 대학에 다녔으며, 그곳에서 철학을 전공하였고 1978년 인문계열 학사(Bachelor of Arts), 1984년에는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하이델베르그 대학에 1년 동안 교환 학생으로 지내기도 했다. 이후 버틀러는 웨슬리언 대학교, 조지 워싱턴 대학교, 존스 홉킨스 대학교에서 가르쳤으며 1993년에는 UC 버클리에 합류한다. 2002년에 암스테르담 대학교의 스피노자 철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2012년 이후로는 컬럼비아 대학교 영문 비교학과에 인문학 객원 교수로 들어와 전임 교수가 되었다. 최근까지 여러 학술지의 편집위원회 또는 자문위원회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3. 사상
"이 책은 성적 주변인으로 살고 있으며 또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살 만한 삶이 있다는 가능성을 확대하는 데 다소 성공을 거두었고, 앞으로도 계속 성공할 어떤 집단투쟁의 문화적 삶의 일부로 쓰였다." [2]
『젠더 트러블』10주년 기념판 서문 中.
『젠더 트러블』10주년 기념판 서문 中.
버틀러의 핵심 개념은 '젠더는 어떤 사람이 행하는 바에 따라 결정된다'는 수행성(Performativity)이다. 초기작인 『젠더 트러블』에서는 수행(Performance)으로 쓰던 것을 『의미를 체현하는 육체』에서부터는 수행성(Performativity)이라는 용어로 바꾸어 사용하고 있다. [3] 버틀러를 유명하게 만든 개념.
『젠더 트러블』에서 버틀러는 이를 드랙(여장 남자)의 예를 들어 설명한다. 드랙퀸[4]의 경우, 남성은 여성의 특징을 따라함으로써 여성을 모방하는데, 이때 행위를 통해 여성성을 따라한다는 점 자체가 젠더를 수행적으로 떠안는 행위가 된다는 것. 더욱이 간성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남녀의 생물학적인 경계란 뚜렷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5][6] 여성과 드랙퀸의 관계는 원본과 모방본의 관계가 아닌 모방본과 모방본의 관계라고 주장한다. 즉, 생물학적 성(섹스)의 실체는 없으며, 사회적 성(젠더)의 실체라는 것도 행위의 모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주장에 대해 "여성적인 행동을 하면 여성이 되는 것이냐?" 혹은 "젠더를 임의대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냐?"와 같은 반론이 일었고 이에 대해 수행성 이론을 보완하며 보다 상세한 설명을 『젠더 트러블』의 속편격인 『의미를 체현하는 육체』에 제시하고 있다. 성(젠더)에 대한 사회적 담론(법)이 항상-이미 존재하고 있고, 우리는 그 규칙 내부에서 살아가며 담론을 반복하고 인용하면서 그 담론에 복종하고 있다는 것. 동시에 반복은 동일한 반복이 아니라 항상 '차이'가 있는 '반복'(들뢰즈)이기 때문에, 동일성의 담론에서 떨어져 나온 '차이'를 반복하고 인용하는 것이 담론을 수행적으로 전복할 수도 있는 것이 된다. 쉽게 말하자면, 우리는 하나의 성역할을 대부분 수행하면서도 가끔은 다른 나머지 성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7] 이 '가끔'을 반복하는 것이 고정된 성역할의 담론을 전복하는 하나의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 성'을 뒤흔들어버리는 버틀러의 전략이, 도리어 “여성이다” 하는 것을 전제로 하여 페미니즘을 논할 수 없게 되는 문제점을 내포하게 되었다. 즉, 다양한 성(젠더)에 대한 페미니즘을 강조하고 고정된 성역할을 반대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여성의 페미니즘'은 사라지게 된다는 페미니즘 내부의 반론이 존재하게 되었다. 또한 '사회적 성'이 변화할 수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생물학적 성'에 내포된 존재 가치를 훼손해서는 안되는데, 버틀러식의 성역할 해체방법은 그 '생물학적 성'의 존재 철학적인 가치마저 손상시키고 있다고 비판받는다. 무엇보다도 기존의 권위를 해체시키는 포스트모던 철학의 특성상, '동일성'의 무의미를 강조하면 '파편화'되어 힘을 가지지 못하고, 그렇다고 사회적 동력을 가지기 위해서 '동일성'을 약간이라도 강조하면 자신의 철학이 위험해지는 모순을 내포하게 되는 방법론적 딜레마도 무시할 수 없다.
3.1. 서술 특징
주로 인용하는 학자는 푸코, 헤겔, 라캉, 데리다 등이며, 이외에도 보부아르와 뤼스 이리가레, 실존주의자 사르트르, 구조주의자 레비스트로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 마르크스주의자 알튀세르, 언어학자 오스틴 등을 인용하기도 한다. 보다시피 인용하는 학자들이 많을 뿐만 아니라 그 분야도 다양해서 안 그래도 읽기 어려운 글을 더 읽기 어렵게 한다.실제로 버틀러는 『철학과 문학』이라는 저널에서 가장 난해한 글을 쓴다는 이유로 최악의 저자상을 수상한 전적도 있다.
참고로 이때 수상의 영예를 안은 문장은 다음과 같다.
자본이 사회적 관계를 상대적으로 일률적인 방식으로 구조한다는 구조주의적 서술에서, 권력 관계라는 것은 반복되고 집중되고 재분절되는 것이라는 헤게모니적 관점으로의 이동은 구조를 사유함에 있어서 일시적인 것에 대한 질문을 가져왔으며, 또한 구조적 총체성을 이론적인 대상으로 취하는 알튀세르적 이론의 형식에서, 권력의 재분절의 우연적 공간과 전략에 연관된 것으로서의 헤게모니라는 새로운 개념을 낳는 구조의 우연적 가능성에 초점을 두는 관점으로의 전환을 나타낸다. [8]
<젠더 트러블> 1999년판 서문에 따르면 버틀러 스스로도 이런 비판을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사상을 표현하기 위해 꼭 정형화된 문법을 따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에, 굳이 쉽게 쓸 생각을 안 하는 듯하다. 쉬운 이해를 허락하지 않는 글쓰기부터가 버틀러의 의도이기도 하고 말이다.
4. 저서
※ 국내발매작만 기입. 괄호 안은 미국에서 출간된 연도
* 젠더 트러블 (1990; 1999[9])
* 의미를 체현하는 육체 (1993)
* 우연성·헤게모니·보편성 (2000) (슬라보예 지젝,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와 공저)
* 안티고네의 주장 (2000)
* 불확실한 삶 (2004)
* 누가 민족국가를 노래하는가 (2006) (스피박과 공저)
* 윤리적 폭력 비판 (2003) (미학자 양효실 옮김)
* 젠더 허물기 (2015)
* 혐오 발언 (2016)
* 주디스 버틀러, 지상에서 함께 산다는 것 (2016)
* 박탈 (2016) (아테나 아타나시오우와 공저)
* 위태로운 삶 (2018)
* 권력의 정신적 삶 (2019)
* 연대하는 신체들과 거리의 정치 (2020)
* 비폭력의 힘 (2021)
* 지금은 대체 어떤 시대인가 (2023)
* 젠더 트러블 (1990; 1999[9])
* 의미를 체현하는 육체 (1993)
* 우연성·헤게모니·보편성 (2000) (슬라보예 지젝,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와 공저)
* 안티고네의 주장 (2000)
* 불확실한 삶 (2004)
* 누가 민족국가를 노래하는가 (2006) (스피박과 공저)
* 윤리적 폭력 비판 (2003) (미학자 양효실 옮김)
* 젠더 허물기 (2015)
* 혐오 발언 (2016)
* 주디스 버틀러, 지상에서 함께 산다는 것 (2016)
* 박탈 (2016) (아테나 아타나시오우와 공저)
* 위태로운 삶 (2018)
* 권력의 정신적 삶 (2019)
* 연대하는 신체들과 거리의 정치 (2020)
* 비폭력의 힘 (2021)
* 지금은 대체 어떤 시대인가 (2023)
5. 관련 영상
5.1. 위대한 수업
6. 사건 사고 및 논란
6.1. 아비탈 론넬 옹호
2018년 상반기 독어 문학자, 철학자이자 NYU 교수였던 아비탈 론넬의 대학원생 성추행 스캔들이 터졌을 때 '자기 진영' 사람이라고 그를 옹호하는 듯한 서명문에 이름 올렸다가 격한 비판을 받았으며, 이후 한 언론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서명문 내 일부 표현에 문제가 있었음을 시인했다.#[10]6.2. 트랜스젠더 숙명여대 입학 반대에 대한 비판
“트랜스 여성이 수술 전이라 음경이 있다고 해서, 그 자체로 위험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성폭력과 강간의 문제는 상대의 의사에 반하는 몸의 폭력적 사용과 관계가 문제이지, 그 폭력이 음경이라는 신체 부위로 인해 생겨난 결과는 아니지 않느냐.”
“트랜스 학생은 협박, 괴롭힘, 검열과 같은 다른 종류의 폭력을 당했다. 최적의 환경에서 교육 받으려던 그녀의 재능은 트랜스를 적으로 오인한 사람들 때문에 좌절 당했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결정이 추측, 무지, 그리고 공포에서 나오지 않도록 트랜스의 삶에 대해 훨씬 더 많이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젠더의 자유와 평등을 위해 계속 투쟁해야 한다. 그것은 페미니즘, 퀴어 행동주의, 트랜스 운동의 강한 연대를 의미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평등을 위해 헌신한다면 반국가주의[11]와 반자본주의 운동에도 동참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덧붙인다.”
“트랜스 학생은 협박, 괴롭힘, 검열과 같은 다른 종류의 폭력을 당했다. 최적의 환경에서 교육 받으려던 그녀의 재능은 트랜스를 적으로 오인한 사람들 때문에 좌절 당했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결정이 추측, 무지, 그리고 공포에서 나오지 않도록 트랜스의 삶에 대해 훨씬 더 많이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젠더의 자유와 평등을 위해 계속 투쟁해야 한다. 그것은 페미니즘, 퀴어 행동주의, 트랜스 운동의 강한 연대를 의미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평등을 위해 헌신한다면 반국가주의[11]와 반자본주의 운동에도 동참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덧붙인다.”
2020년에는 한국의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이 트랜스젠더 학생의 여대 입학을 반대한 사건을 두고, 이에 대해 비판하면서 페미니즘이 가해자가 된 현실을 개탄했다. #
6.3. 위대한 수업 버틀러 강의를 향한 가짜 뉴스 선동
2021년 8월 한국 EBS의 교양프로그램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 마인즈'에 버틀러가 출연한다고 발표되자, 주요셉 목사 등의 기독교 우파를 위시한 성소수자 혐오 세력이 조직적으로 가짜 뉴스를 만들고 선동하였다. 이러한 가짜뉴스에 대해 전문가들은 “버틀러가 옹호한 건 동성애·성소수자”라며 “버틀러를 공격하는 ‘근친상간 옹호’ 프레임은 전형적인 동성애 반대 프레임”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그의 모든 저작들에 근친상간 옹호 내용은 없다.근거없는 루머이기에 EBS는 주디스 버틀러의 강연을 예정대로 방송하였으며, 버틀러에 대한 악의적 가짜뉴스에 정정보도를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일보 - '퀴어 이론' 대가 주디스 버틀러 향한 '공격' 단호히 끊어낸 EBS
6.3.1. 근친상간 가짜뉴스
2015년에 출간된 『젠더 허물기』에는 근친상간 금지가 가지는 부정적 측면을 언급한 내용이 나온다. 결정적으로 말하면 주디스 버틀러는 근친상간만을 비호하려는 목적으로 쓴 것이 아니다"부모와 자녀 간의 근친상간을 부모가 자녀를 일방적으로 침해하는 것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어떠한 침해가 발생하건 간에 환상의 영역에서 또한 고려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근친상간이 불법인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또한 근친상간이 불법인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구별하기 위해서는, 자녀의 신체를 외부로부터 배타적으로 강요를 당하는 껍데기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12]
"자녀의 신체를 수동적인 껍데기로 형상화하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자녀를 더 착취하는 것이다. 즉, 자녀에게서 생리적 생활을 박탈하는 것이다."[13]
쉽게 말하면 부모-자녀간 관계에서 자녀를 '능동적인 선택을 하지 못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인식하는 것 자체가 자녀가 생리적 생활을 가질 권리를 박탈하는 행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근친상간을 불법으로 규정했어도, 나는 근친상간이 불법이 아닌 경우도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근친상간이라 하더라도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주지 않는 경우가 있고 또한 근친상간은 그것이 야기하는 사회적 수치에 대한 인식 때문에 정신적인 충격의 특성을 가지게 된 형태가 있다고 생각한다."[14]
또한 버틀러는 부모와 자녀 간의 근친상간이 불법이 아닌 경우가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 역시 앞선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쉽게 설명하면, 상호 동의 하에 이루어진 근친상간은 행위 당사자들에게는 정신적 충격이지 않으나, 근친상간이 사회적으로 갖는 부정적인 인식이 되려 당사자들에게 정신적인 충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15]
"근친상간에 대한 금지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근친상간 금지는 때로는 폭력으로부터 보호를 해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폭력의 수단 그 자체가 되기 때문이다."[16]
버틀러는 근친상간을 금지하는 것이 상호 동의가 없었던 근친간의 강제적 관계 등 폭력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기도 하지만, 이것을 규제함으로서 발생하는 부정적인 사회 인식이 행위 당사자에게 폭력으로 다가갈 수 있음을 지적했다.
6.4. 하마스와 헤즈볼라에 대한 진영주의적 옹호 논란
버틀러는 2006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당시 하마스와 헤즈볼라에 대해 소위 "국제 좌파운동"의 일원으로서 필수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고 일갈하는 등, 하마스와 헤즈볼라를 진보적 저항운동으로 판단하고 동정적으로 바라보는 학계의 시각을 대변한 바 있었다.이런 관점은 서구 상아탑사회 내의 일반적인 상식에 가깝고, 버틀러와 젠더학 학계가 특출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상아탑과 대중의 벽을 넘나들며 페미니즘 등 정치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버틀러의 이 발언은 즉각적으로 주목을 받아 집중포화를 받게 되었으며, 2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이스라엘에서 테러라도 하나 터졌다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좌파는 하마스, 헤즈볼라 편이다"라는 주장을 전개하는 데에 사용되는 동네북으로 전락하였다.
사실 10.7 테러 직후 버틀러 본인은 일련의 이론적 궤도수정을 하여, 그간의 지론이었던 하마스의 "진보적 사회운동으로서의 정체성"과 그 "국제 좌파운동의 일원으로서의 역할"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으나, 이는 버틀러의 친하마스적 색채를 가리기엔 너무나 늦었고 부족한 것이었다. 특히 팔레스타인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어 결국 서구 대학가 속에서 곪아가고 있었던 반유대주의적 정서가 폭력적 형태로 폭발하는 등 학원갈등이 발화되면서, 10.7 사태 이후 일종의 전향서를 써낸 버틀러에 대한 학생들의 시선은 극도로 싸늘한 상태이다.
7. 관련 문서
8. 여담
- 레즈비언이며 파트너이자 같은 학교인 UC 버클리 내의 동료인 웬디 브라운[17]과 근 20년째 동거 생활을 하고 있으며 슬하에 자식도 있다. 웬디 브라운이 버틀러와 동거하기 전에 낳은 자식이라고 한다.
[1] 정작 버틀러 자신은 자신이 퀴어 이론의 창시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을 밝히기도 했다.[2] This book is written then as part of the cultural life of a collective struggle that has had, and will continue to have, some success in increasing the possibilities for a livable life for those who live, or try to live, on the sexual margins.[3] "젠더는 수행적으로 구성된다"와 같은 식으로 쓰인다.[4] 연극에서의 여장남자를 이르는 말.[5] 버틀러는 외부 성기의 유무 및 염색체적 특성이 남/여를 명확히 구분할 수 없는 기준임을 『젠더 트러블』에서 논증한다.[6] 또한 간성 개체의 필연적인 탄생은 인문학적 해석을 떠나 생물학적인 사실이기도 하다.[7] 매우 여성적인 사람도 가끔은 남성적인 행동을 할 때가 있고, 매우 남성적인 사람도 가끔은 여성적인 행동을 취할 때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8] "The move from a structuralist account in which capital is understood to structure social relations in relatively homologous ways to a view of hegemony in which power relations are subject to repetition, convergence, and rearticulation brought the question of temporality into the thinking of structure, and marked a shift from a form of Althusserian theory that takes structural totalities as theoretical objects to one in which the insights into the contingent possibility of structure inaugurate a renewed conception of hegemony as bound up with the contingent sites and strategies of the rearticulation of power."[9] 10주년 기념판. 버틀러가 1999년에 새로 쓴 서문이 추가되었다.[10] 문제가 된 아비탈 론넬의 경우 1년 무급정직 이후 강단에 복귀했으며, NYU의 대학원생들은 대학의 이런 결정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11] 한국일보 보도에서는 '반국가주의'라고 적혀있으나, 버틀러는 인터뷰에서 anti-statist가 아니라 anti-nationalist라고 표현했다. 한국 언론에서 중립적이거나 저항적 형태의(즉 한국에서 다소 긍정적으로 여겨지는 형태의) nationalism은 '민족주의'로, 종종 부정적이고 권위주의적이고 극보수적인 의미에서 nationalism을 '국가주의'라고 번역하는 경향이 있어서 용어 혼란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12] It is not necessary to figure parent-child incest as a unilateral impingement on the child by the parent, since whatever impingement takes place will also be registered within the sphere of fantasy. In fact, to understand the violation that incest can be—and also to distinguish between those occasions of incest that are violation and those that are not-it is unnecessary to figure the body of the child exclusively as a surface imposed upon from the outside.[13] The reifi-cation of the child's body as passive surface would thus constitute, at a theoretical level, a further deprivation of the child: the deprivation of psychic life.[14] So I keep adding this qualification: when incest is a violation, suggesting that I think that there may be occasions in which it is not. Why would I talk that way? Well, I do think that there are probably forms of incest that are not necessarily traumatic or which gain their traumatic character by virtue of the consciousness of social shame that they produce.[15] 우리나라의 경우 상호 동의가 있었던 근친상간은 처벌 대상이 아니나, 미국의 경우 대다수의 주에서 근친상간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16] It might, then, be necessary to rethink the prohibition on incest as that which sometimes protects against a violation, and sometimes becomes the very instrument of a violation.[17] 시민권, 자주성, 민주주의에 대한 연구로 알려진 정치학자. 급진 민주주의 이론으로 유명한 셸든 월린의 제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