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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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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1. 미학의 체제
2. 서양 미학사
2.1. 고대
2.1.1. 플라톤2.1.2. 아리스토텔레스2.1.3. 신플라톤주의
2.2. 중세2.3. 근대
2.3.1. 대륙 합리론2.3.2. 영국 경험론2.3.3. 칸트의 판단력 비판2.3.4. 헤겔과 독일 관념론2.3.5. 낭만주의
2.4. 현대
2.4.1. 현상학적, 실존주의적 미학2.4.2. 해석학적 미학2.4.3. 마르크스주의 및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미학2.4.4. 프래그머티즘 미학2.4.5. 분석 미학
3. 동양 미학
3.1. 중국3.2. 일본3.3. 불교 및 인도의 미학
4. 관련 문서
4.1. 미학 관련 인물4.2. 서적4.3. 연구소
5. 관련 자료

1. 개요

/ Aesthetics

미(美)와 예술, 미적인 것에 대한 사상(思想)을 탐구 대상으로 다루는 철학의 분과 학문.[1][2]

모든 학문이 그렇듯이 '이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학문이 시작되는데, 미학은 마찬가지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가지를 뻗어나간 학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무엇을 보고 '아름답다' 고 느끼는데, 사람마다 느낌의 기준이 다르고, 그 다름을 분석하는 학문이라고 보면 되겠다. '사람의 생각을 생각하는' 학문이라는 점에서 철학과 유사하다. 학문의 지향점이 아름다움일 뿐. 이 학문은 마케팅, 디자인, 음악, 미술 등 예술 분야 전반에 실용적으로 쓸 수 있다. 물론 실용적인 의미에서. 미학은 기본적으로 사람이 '아름답다' 고 느끼는 것을 끊임 없이 탐구하는 학문이다.

미와 예술 및 미적인 것에 대한 '전반'이나 '역사'는 문예사학, 미술사학, 음악사학 등에서 다루는 것이다. 미학이 서양문학사, 서양회화사나 서양음악사에 대한 교육연구를 담당할 수는 없는 것이다. 미학은 이들에 대한 '철학적 사상'을 다루기 때문에 그 존재 가치가 두드러지는 것이다. 오히려 이런 점 때문에 오늘날에는 문화현상 전반을 연구 대상으로 아우르려 하는 경향도 보인다.

엄밀히 말했을 때 미학에서 미/아름다움과 미적인 것은 구분되며, '추' 역시 현대 미학의 주된 탐구 대상이 되고 있는 만큼, 미학을 '미'에 한정해 설명하기는 힘들다.

1.1. 미학의 체제

서양 철학의 분과학문으로서 전통적으로 미학은 크게 미론(美論: 美(아름다움)란 무엇인가?)과 예술론(藝術論: 예술이란 무엇인가?)의 두 갈래로 나누어 볼 수 있으며, 그 외에도 현대 철학에서의 다양한 논의들과 맞물려 주로 형이상학, 인식론, 윤리학과 관련된 다양한 문제들이 미학에서 논의되고 있다.

우선 플라톤으로부터 비롯되는 보편적인 미에 대한 관념일반화되어 있었던 고대로부터 근대까지의 시기에는 주로 미학에서의 논의들이 미론에 집중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근대 이후 경험주의 철학의 등장과 미라는 관념의 객관성이 주관화됨에 따라 영국 경험론의 취미(趣味, taste)론이 등장하게 되면서, 미론 역시 인간의 주관적인 미의 경험에 대한 논의로 점차 전환되게 된다. 따라서 이 시기부터 미론은 인식론과 밀접한 관련을 갖게 되었는데, 칸트판단력비판은 특히 이러한 객관주의 미론과 주관주의 미론이 최초로 융합된 형태의 저작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판단력비판이 고대 이래 서양 철학에서 널리 받아들여졌던 미의 보편성과 경험주의 철학자들이 논증한 미의 주관성을 통합함으로써 '미의 주관적 보편성'을 확립하기 위한 최초의 시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미에 대한 논의들은 예술미보다는 주로 자연미에 치중한 논의였다고 볼 수 있다.

칸트에 이어 등장한 독일 관념론의 대표주자 헤겔 철학에 이르러, 자연미가 아닌 인공미에 해당하는 예술 작품과 관련된 논의인 예술론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그 이유는 그가 예술을 절대정신의 실현 과정에서 중요한 활동으로 설정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논의들은 낭만주의 시대 실러나 카시러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다뤄지게 되며, 현대에 이르러서는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 1909~1994)의 미술론이나 아도르노의 음악론 등 예술의 각 분야에 대한 논의들이 더욱 다양하게 다뤄지고 있다.

2. 서양 미학사

2.1. 고대

2.1.1. 플라톤

플라톤이 주장한 이데아론을 대충 요약하면 진정한 실재(idea/eidos)만이 있는 이데아계가 있고, 이 세계(현상계)의 만물은 그것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신체정신이나 다 이 이데아 존재의 마이너 카피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맥락에서 예술 작품은 이데아의 모사에 해당하는 현실을 이중으로 모방한 것에 지나지 않으므로, 플라톤에게 예술은 "결코 대상 자체에 어떤 변화를 초래하거나 대상의 참된 지식으로 기능할 수 없는 것"으로 치부된다. 유명한 침대비유를 찾아보길 바란다. 즉 '이데아의 침대>현실의 침대>침대 그림'이라는 상하관계가 성립한다는 것. 이 주장은 테크네(기술·공예)로서의 예술에 대한 공격에 해당한다.

한편 그는 테크네로서의 예술과 별개로 뮤즈(무사이)의 영향을 받는 예술인 (당시의 시란 문학연극, 음악이 합쳐진 형태의 종합예술을 지칭한다)의 강력한 영향력에 대해서는 긍정한다. 하지만 그는 검토 끝에 시인 추방론을 제시하는데, 그 이유는 당시 폴리스 내의 시인이나 연극배우도시 국가 구성원들을 혹세무민에 빠트리고 잘못된 길로 이끌 경우 얻게 될 피해가 그 영향력보다 더 크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2.1.2. 아리스토텔레스

반면 플라톤의 제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스승과 다른 입장을 세웠다. 플라톤이 근원이나 기원을 찾으려 하고 거기에 집착한 데 반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정반대로 만물은 목적인(causa finalis, 目的因)을 가지고 그에 따라 무언가가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으로는 왜 씨앗이 전혀 다른 모양인 나무가 되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식의 사고방식에서는 씨앗이 발아해 나무가 되는 건 나무라는 목적인이 그 안에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이후의 과학은 목적론을 버리고 객관론적인 입장만 취하지만,[3][4] 어쨌든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처럼 애초에 만들어진게 하위호환으로 나타나는 것이라 본게 아니라, 다른 형태로 발현된다고 본 점에서 사물의 변화 가능성을 좀 더 중시한 셈. 애초에 항구도시이오니아에서 태어나 자란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곳저곳에서 들어오는 물산을 많이 접했고, 그러다 보니 자연과학적이고 실증적인 사고방식에 익숙했던 것이었다. 이 때문에 플라톤은 후에 초기 가톨릭 교부들의 시대에 신플라톤주의기독교 신학과 퓨전하는데 반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한동안 이슬람에서 버로우 탔다가 중세 수도원의 학문연구 때 다시 역수입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런 사고방식은 미학에서 스승 플라톤보다 융통성을 발휘하는 이유가 된다. 그 대표적인 이론이 카타르시스. 대강 요약하면, 비극을 보면서 우리는 애통함에 젖어 눈물을 펑펑 쏟고 후련해져서 '정화'되기 때문에 예술이 가치 있다고 본 것. 카타르시스의 그리스어 어원 자체가 정화라는 뜻이다. 이러다보니 미나 예술에 있어서 플라톤과는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게 된 것이다. 다만 아리스토텔레스가 모든 예술을 다 허용하자 한 것은 아니다. 그의 저서 시학(Poetica, 詩學)에는 비극 부분밖에 남아있지 않아[5] 정확한 내용을 알긴 어렵지만, 적당한 한계 안에서 자율규제를 하자는 주장에 가깝다.

공통점을 보면, 두 철학자 다 폴리스 공동체의 이득을 위해 예술이 봉사해야 한다 봤다. 또한 연극이나 시를 주로 언급하고 회화는 그다지 언급하지 않는데, 이는 당시 그리스의 예술이 연극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2.1.3. 신플라톤주의

플로티노스라는 학자는 이 세계는 일자(=?)에서 나온 의 유출로 보고 일자-정신-영혼-자연(질료)에서의 유출 운동과 상승 운동으로 설명했다. 그리고 예술은 이 일자로 가는 중간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언뜻 볼면 '이데아'='일자'로, 플라톤의 이데아론 짝퉁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플라톤예술을 이데아를 모방한 세계를 모방한 가장 마지막, 하급의 무언가로 파악한데 반해, 플로티노스는 오히려 일자와 자연 그 중간에 있는, 실제 세계보다 오히려 더 일자에 가까운 무언가로 파악했다. 그러니까 예술의 지위를 더 높게 평가한 것이다.

2.2. 중세

아름다움은 반사된 진리의 빛이다.
- 토마스 아퀴나스

흔히 중세는 문화와 예술이 신에게 종속된 흑역사라고 하지만 이런 관점은 현대에는 부정되고 있다.[6] 또한 이때의 스콜라 철학과 그 철학자들이 후대에 끼친 영향은 절대로 무시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간단히 신플라톤주의기독교 신학에 수용한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7] 여기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추의 개념에 대해 검토하고, 추라 해도 부분과 전체 사이에서 조화를 이루어 미에 보탬이 되므로 또한 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사실 이건 완전무결한 신이 이 세상을 만들었는데 악이 있는 이유에 대한 변명이 진짜 이유었지만, 어찌 되었건 간에, 다들 , 또는 숭고에 대해서만 생각할 때 에 대해 고찰한 것만으로도 상당히 시대를 앞서 나간 것이다. 에 대한 생각을 봐도 어느 정도 눈치챌 수 있지만, 아우구스티누스는 부분들간의 조화, 즉 비례와 균형을 중시 여겼고, 단순한 감각적 지각은 이성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거의 천 년이 지나서 태어난 토마스 아퀴나스에서는 그동안 신앙에 묻혀서 별 관심을 받지 못한 이성에 주목을 하는 경향이 생겼다. 일단 신플라톤주의에서 벗어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더 관심을 기울였고, 이성신앙을 구분했다. 그래서 형이상학에서 벗어난(완벽히 벗어나진 못했지만. 예컨대,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전 신학자와 마찬가지로 이 세계의 미를 '감각세계의 미'와 '신적인'미로 나누었다.) 경험적 측면을 띠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중시한 만큼, 토마스 아퀴나스는 다시 모방론을 돌아간다. 일단 중세라는 시대적 배경이 있었기에 토마스 아퀴나스가 주장한 내용은 '신의 창조'로 만들어진 자연을 '모방'하기 때문에 예술은 의의를 가진다. 라는 현대인에 입장에서 볼때에는 어디가 신에 대한 추종에서 벗어난 건지 전혀 이해가 안가는 주장이지만, 이전의 신플라톤주의와 비교해 볼땐 아주 큰 변화이다. 왜냐하면 플라톤철학에서는 이데아(중세 철학에서는 신)는 볼 수 없는 세계이므로 이 감각적 자연을 모방해봤자 뻘짓일 뿐이고, 이데아(=일자=신)을 쫓아야 하는데 바로 그 생각에서 탈피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상(들)은 르네상스를 낳고 자연주의의 근간이 되었다.

2.3. 근대

데카르트 로크 흄.

2.3.1. 대륙 합리론

18세기 당시 유럽 철학은 크게 경험론합리론으로 나눠진다. 영국에서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영향으로 경험론이 대세를 타 존 로크, 조지 버클리, 데이비드 흄에 의해 계승되었고, 대륙에서는 르네 데카르트바뤼흐 스피노자,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등이 합리론을 계승, 발전시켰다. 이 시기 철학은 인간 중심적으로 돌아서 인간의 이성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는 후의 계몽주의로 이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라이프니츠 볼프 학파(Leibniz Wolffische Schule)[8]바움가르텐(Alexander Gottlieb Baumgarten)은 미학이라는 말을 오늘날과 같은 의미로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다. 바움가르텐은 이성적 인식의 학문인 논리학과 대비되는 감성적 인식의 학문이 필요하다고 보고 에스테티카(Aesthetica)라는 명칭을 부여하였다.

지금은 '에스테틱'이라는 말을 피부 미용 같은 데서 쓰지만, 본래 에스테틱이라는 말은 지각, 감각, 감정, 감성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아이스테티코스(aisthetikos)에서 유래한 말이다.[9] 즉, 육체적인 감각과 그에서 발생하는 마음 감정, 감성 같은 것에서 유래한 단어를 썼다는 얘기. 이 단어가 독일어 에스테티쉬(Ästhetisch), 프랑스어 에스테티크(esthétique)로 이어졌고, 이것이 영어 단어로 이어진 것.

어원 그대로 바움가르텐이 사용한 의미는 지각(知覺), 감각(感覺), 감성(感性), 감정(感情)과 관련된 학문이란 의미가 크다. 그때까지 감성적 인식은 이성적 인식에 비해 낮게 평가되고 있었다. 그리고 바움가르텐은 감성적 인식의 완전한 것이 미(美)라 정의하고, 따라서 감성적 인식의 학문은 동시에 미의 학문이라고 생각하였다.

고전 미학은 미의 본질을 묻는 일종의 형이상학이었고, 때문에 영원히 변하지 않는 초감각적 존재로서의 미의 이념을 추구한데 반해, 근대 미학에서는 감성적 인식에 의하여 포착된 현상으로서의 미를 대상으로 한다. 즉 어떤 이념으로서 추구되는 미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우리들의 의식에 비쳐지는 미라는 것. 근대미학이 미의식론을 중심으로 전개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2.3.2. 영국 경험론

2.3.3. 칸트의 판단력 비판


미의 보편성을 중시하는 대륙 합리론과 개개인의 미적 취미판단을 중시하는 영국 경험론의 전통은 임마누엘 칸트에 이르러 종합된다. 칸트는 영국 경험론과 대륙 합리론을 동시에 다룬 인물이라 철학에서 한 산봉우리 정도로 취급될 정도. 흔히 칸트의 3대 비판서로 꼽히는게 순수이성 비판, 실천이성 비판, 판단력 비판인데, 이중 마지막 판단력 비판에서는 미학과 관련된 논의를 주로 다루고 있고, 이 논의들은 오늘날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진','선','미'에 칸트의 철학 체계를 대입시켜 본다면, 순수이성비판은 '진', 실천이성비판은 '선', 판단력비판은 '미'에 대응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칸트의 철학 체계를 건축학적 체계(architektonische Ordnung)이라고 부르는데, 칸트는 자신의 초월론적 철학 체계를 세 가지 인간의 심적 능력, 즉 인식능력, 욕구능력, 그리고 쾌와 불쾌의 감정에 따라 이론철학, 실천철학, 목적론의 세 부문으로 나누고 집필하려 했다고 본다.

2.3.4. 헤겔과 독일 관념론

헤겔의 미학에 관련된 대표적인 저서로 『미학 강의 Vorlesungen über die Ästhetik, 1835-38』 등이 있다.

2.3.5. 낭만주의

2.4. 현대

19세기 후반부터는 독일 관념론의 사변적(思辨的) 미학을 대신하여 경험적으로 관찰되는 사례를 근거로 하여 미이론(美理論)을 구축해 나가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페흐너는 ‘아래로부터의 미학’을 제창하면서 심리학의 입장에서 미적 경험의 법칙을 탐구하려는 ‘실험미학’을 주장하였다. 오늘날에는 또 미적 현상의 해명에 사회학적 방법을 적용시키려는 ‘사회학적 미학(예술사회학)’이나, 비트겐슈타인 이후의 분석철학적 방법론을 미학에 적용하려고 하는 ‘분석미학’ 등 다채로운 연구분야가 개척되고 있다.

2.4.1. 현상학적, 실존주의적 미학

2.4.2. 해석학적 미학

2.4.3. 마르크스주의 및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미학

게오르크 루카치의 미학 이론. 출처

I. 자본주의와 예술의 관계

I-I. 자본주의의 예술 적대성

기본 테제 “자본주의는 예술 적대성을 가진다”

● 자본주의의 분업성: 분업은 인간성을 파괴하고 억압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분업의 긍정적인 면모 - 분업은 인간의 전체성 Ganzheit을 확장시키고 풍부하게 만드는 특성, 능력을 인간 속에서 일깨움. 또한, 인간이 발전하는 단계에 있어 자연스러운 과정임 (E. 뒤르켐의 분업론과 일부 동일)

진보의 모순성: 그러한 긍정적인 면모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분업은 인간의 예술을 파괴하였음.

- 전체로서 인간을 풍부하게 만들지언정, 개개로서의 인간을 하찮게 만듬. (인간소외론)

- 거시성을 갖춰야할 예술을, 일면적이고 편협하게 만듬. 총체적, 포괄적으로 보아야할 예술의 대상을 “직접적인 현시 기법의 아틀리에적 문제”로 보게 함. [문학에 울타리를 치는 것 - 즉 예술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들을 한정짓는다는 것임]

- 소설, 문예비평 등 여러 형식을 통해 자신의 지배적 실존 방식을 재구성하는 역할을 맡는 작가는 일개 글쓰기 전문가로 전락함. 아틀리에적 문제에 초점을 둔 이러한 전문가들은 자본주의적 분업을 재생산하는 활동을 하는 것.

{인용 / 익숙함을 센세이션으로 치장하고, 무뎌짐을 도취를 통해 흥밋거리로 만들기 - 부르주아지의 계급적 이해는 이 과정을 촉진하고 강화하며, 흥분과 위안으로서의 작가는 이러한 분업의 산물을 재생산한다 }

- 문화와 예술의 “보편적 상품화”: 문화적인 풍요로움마저 상품으로 전락함 (Th. 아도르노의 “문화 산업론”과 일부 동일) / 인간의 주관성을 상품화한다고 보았음 - “체험의 매춘”으로, 예술 작품에서 개인의 기법, 기예적 독특성, 표현 수단, 소재 선택 등 미시적인 차원에서 개인적인 새로움 따위를 강조하는 경향에 몰두하게 되는 것임 (상품성을 위하여) 궤변에 가득 찬 문학마저 “새로운” 상품으로서 판매됨.

● 자본주의의 물화 Verdinglichung

기본 테제: 다른 체제에 비하여, 자본주의에서는 상품 구조가 지배적 구조가 됨.

현실 wirklich의 삶을 지우고, 실제의 세계와 다르게 현상함. 상품, 화물, 가격 등 “상품화” “사물화”된 범주들이 현실의 자리를 채우게 됨 -> 추상적인 사회의 힘들로 현상, 작동함.

-> 인간의 현실적 존재를 탐구하는 문학 및 예술에 있어 불리하게 작용함: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예술에는 더 불리한 조건이 성립됨.

I-II. 자본주의 시대에서 예술의 전망 인식

카를 마르크스에게서 일부 계승하였으며, 동시에 헤겔과 독일의 낭만주의 사조가 근대 사회에서 쇠락한 예술의 지위를 한탄한 것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음

-> 헤겔과의 차이: 헤겔은 “정신”이 고대 그리스 이후 예술을 떠나 철학으로 옮겨갔으며, 따라서 정신이 예술을 초월한 것이므로 그리스 시대 이후 예술의 전성기는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임을 주장함 (비관론)

vs 루카치: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신이라는 대상이 예술에서 벗어났음을 인정하나, 그러한 자본주의를 타파함으로 인하여 순수미술을 다시 불러올 수 있다고 보았음 (낙관론)

--> 루카치의 미학 작업: 순수 미술을 회복시키기 위해 마르크스주의를 기반으로 하여, 자본주의를 타파하고 공산주의를 추구하는데에 있음.

: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을 추구하는 방법

● 지적 도덕적 도야: 사회는 고정된 동질적 구조가 아닌 역동적 모순의 통일체이자 재생산 과정임: 아무리 지배 이데올로기라고 할지라도 개인의 삶에 생기는 파열구, 즉 “사이 세계들”Intermundien의 발생을 막을 수 없음. 개개인은 그러한 사이 세계를 통하여, 이데올로기적 장막을 뚫고 나갈 여지가 존재한다는 것임.

: 예술에 적대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진정한 예술 작품이 창작될 수 있는 근거임

II. 휴머니즘과 예술의 관계

루카치에 있어 중요한 것은 “구조” “계급”에 비하여 “인본주의성”: 전기에서 후기로 갈수록, 구조와 계급적인 마르크시즘의 담론에 비하여 주체적인 인간을 더 강조한다는 점에 있어, 휴머니즘적 마르크스주의를 추구했다 볼 수 있음.

▶ 요나스 (H. Jonas) 등의 비판: 루카치의 인본주의는 인간을 “자연을 넘어서는 궁극적 이상체이자 이데아”로 둠으로 인하여 인간 우월주의적이며, 자연 윤리에 한계를 보임.

▶ 알튀세르 (L. Althusser)의 비판: 인간은 체제, 계급, 경제 구조 등 “구조”에 의하여 영향을 받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루카치는 계급 사회를 “구조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설정하고, 개개인들의 한정된 주체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걸 넘어 근본으로 착각하고 있음.

- 루카치에 대한 변호 / 마르크스의 “유적 존재로서의 인간” 개념에 대한 해석: 루카치는 유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실존주의적 의미의) 보편적 인간성, 따뜻함, 애정 등이 아니라 사회 속의 구체적인 형태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보았음

역사적 주체자로서의 인간에 대한 경배: 1930년대 이후 루카치의 이론에 속함.

{인용 / 휴머니즘의 궁극적 승리를 경제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보장하는저 민중적 힘과 생생한 연결점을 찾아내는 것이 예술이 이데올로기 전반의 쇠락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길이다}

예술 - 휴머니즘의 연결: 루카치에 있어, 이러한 이상적 존재로서의 휴머니즘은 예술과 연결되어야 하는 존재이자 예술의 존재 의미.

- 휴머니즘은 문학과 예술의 본질적, 내재적 성질. 진정한 문학, 예술은 예술가의 주관적 의도와 상관 없이, 비인간성과 비인간적 경향에 맞서 인간의 온전성을 옹호하고, 인간의 인간화에 기여함. (그때 그때 미시적으로 해결책을 제시하는게 아니라, 거시적, 거대담론적으로 휴머니즘을 추구해야한다는 뜻임)

● 휴머니즘적 예술이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방법

1. 내적 동력성. 변화와 변화의 지속을 재생산하는 과정 속에서 예술이 자본주의에 저항할 수 있는 잠재력이 생산됨. (예술이 직접적으로 정치적이지 않으며, 인간의 본성을 끊임 없이 조명함으로 인하여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에 저항할 수 있다는 뜻)

{인용 / 문학은 궁극적 차원에서만 시대의 사회적 연관 관계를 건드리며,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대립이라는 직접적 연관성을 반드시 보여줄 필요는 없는 “개별적 인간과 개별적 운명들의 헌시”이다.}

2. 휴머니즘성: 예술과 문학은 그 존재 근거로서 인간의 순수한 감정을 추구하는 바, 자본주의의 반인간성과 반예술성과 충돌함. ->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예술은 그 자체로서 자본주의에 대립하며, 이는 자본주의에 대립하는 근본적 동력으로 작용함.

공산주의와 휴머니즘의 관계: 루카치에 의하면 공산주의는 “현재로서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전망이자 궁극의 지평”이고 “인간화의 완성”임.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예술의 목표이고 그것을 공산주의(맑씨즘)이 가능하게 할 것이라 본 것임.

III. 반영론과 미메시스

반영론적 관점은 196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유지했으나, 그것의 본질적 한계점 (소련 공식 철학에서의 협소함과 왜곡)을 인식, 수정하려 했음 -> 미메시스라는 개념이 등장하였음.

● 미메시스: 기존 소비에트 맑스-레닌주의 철학에서 반영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193~40년대 이후 등장한 개념임.

: <루카치적 반영론>과 대등어로 쓰이지만, 일반적으로 반영을 내포하는 모방 nachahmung을 뜻하는 말임. “현실의 어떠한 현상의 반영을 고유한 실천으로 옮기기”라는 의미. (현실 의식을 직접 대상화한다는 것은 아님 — 그 자체로 현실에 능동적, 주체적으로 다가가려고 하는 것이나, 객관적 현실을 인식하는 것.)

- 미메시스는 모든 고등 유기체의 기본 사실임

- 인간에 있어서는, 생활 뿐만 아니라 “예술”의 기본 사실이기도 함 - 즉 예술은 객관적 현실을 주관적으로 인식하여 반영하는 행동이라는 것. 여기서 인간은 대상적 활동 및 실천의 주체로 작용함.

- 과학적 반영 vs 미적 반영: 과학적 반영은 모든 인간적 감각, 감정, 정신적 한계애서 벗어나고, 주체적 의식과 무관히 객체를 묘사하려고 하므로 탈인간연관적 반영(desanthropomorphisierend)인 반면, 미적 묘사는 인간의 세계에서 출발하고 인간의 세계를 주체적으로 묘사하는 점을 지향하므로 인간연관적 반영(anthropomorphisierend)임 : 미학은 그러한 고로 kein Objekt ohne Subjeck, 즉 “주체 없이는 객체가 없는” 학문이라고 말함.

-> 루카치의 후기 미학) 예술은 대상(객관)을 의식하는 것 뿐만 아니라, 대상 의식으로 환원되지 않으면서 인간의 자의식이 이루어지는 단계임. 그러므로 예술 작품을 하는 것은, 곧 자신의 주체성을 고양하는 데에 있음.

- 예술적 형식은 체험을 유발하고, 감정을 환기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음. 그러한 체험 및 감정의 환기 과정에서, 예술을 관찰하는 사람은 예술이 담고 있는 사회적, 역사적인 맥락을 주체적으로 인식하면서, 그 속에 위치한 자기 자신이 어떠한 대상인지 재발견하고 이를 통하여 자의식을 일깨우게 됨.

: 즉, 인간의 주체성을 확보하는 휴머니즘은 미메시스로만 가능한 것임.

IV. 리얼리즘

루카치가 인식한 193~50년대 유럽 사회: 기본적으로는 Th. 아도르노와 동일함 (경제와 사회가 야기하는 소외가 정신적, 제도적으로 극복 불가능한 상태에 이름)

-> 아도르노와의 차이점: 아도르노는 비관론을 제기, 루카치는 낙관론의 입장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인한 인간 개개인이 그러한 소외에 맞서 싸울 여지가 언제나 존재함을 주장

: 이러한 체제 개인이 맞서기 위해서 리얼리즘적인 예술이 필요하다고 보았음.

루카치의 리얼리즘 - 1930년대 중반 이후, 리얼리즘을 “참다운 문학 자세, 문학 이념, 창작 방법, 특정한 양식” 등으로 규정.

● 후기 미학에서의 리얼리즘 위상 변화: 루카치의 후기 미학에서는 리얼리즘이 “대상을 형상화하는 예술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속성”(=본래적 속성, 예술의 본질)으로 변함

- 그럼에도 루카치가 리얼리즘을 포기하지 않은 것은, “리얼리즘적인 미술을 더욱 리얼리즘적으로 만드는 것”, “리얼리즘의 리얼리즘화” 등으로 해석할 수 있음.

- 후기 철학에서 위대한 예술은 심화된 리얼리즘적이지만, 심화된 리얼리즘이 예술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게됨 (이미 기본적인 리얼리즘이 예술 속에 내포되어있으므로).

: 루카치가 규정한 “리얼리즘적 미학 추구로서의 저항”: 그때 그때 존재하는 사회적 상태 및 경향과의 예술을 구체적으로 연관시키고, 그 시대에 있어 중요한 화두를 거시적인 인간 역사 발전과 연관시 생생하게 제시하는 문학 존재의 필요성을 의미 -> 궁극적으로는 예술의 휴머니즘성을 통한 당대 세태의 극복을 추구한 것임.

부록 - 파스테르나크 (G. Pasternack)가 정리 및 분류한, 루카치가 여러 저작에서 일관되게 말하는 예술의 본질성

1) 원리로서의 탈 실용화: 통일적이고 직접적인 생활 연관의 구조적 중단

2) 총체성: 전체성으로의 지향을 지닌 작품세계의 구조적 완결성

3) 원리로서의 리얼리즘: 미메시스적 형성물의 구성과 현실 인상의 환기에서 이루어지는 미메시스적 재생산과 현실 경험의 연관화

4) 원리로서의 특수성: 감각적으로 명백한 것의 개별 보편화 가능성

5) 자의식화: 인간유의 자기의식으로서의 주체성의 탈개별화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인간에 대한 기본 이해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과 정치화된 것과 관련해 비판받는다.

또 이에 대한 비판 이론 문서로 이동하면 좋다.

2.4.4. 프래그머티즘 미학

존 듀이 [경험으로서 예술]

2.4.5. 분석 미학

분석철학적 방법론은 점차 미학과 예술의 문제에도 적용되어 다음과 같은 문제들에 대한 답변을 시도하고자 하고 있다.

3. 동양 미학

3.1. 중국

3.2. 일본

일본 특유의 미의식인 와비사비(侘寂)는 미숙함, 단순함, 낡음, 쓸쓸함, 고요함 등으로부터 비롯되는 미의식을 말한다. 이 개념은 일본 도예와 건축 등에서 오래 전부터 추구해 온 개념이다.

이 '와비사비'라는 단어는 본래 '자연에서 홀로 사는 듯한 외로움, 추레함, 스산함, 질박함'이라는 뜻의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가, 무로마치 시대부터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미의식은 동시대에 널리 퍼진 선불교로부터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다. 일본의 전통 건축이나 가람 배치로부터 어딘가 고즈넉하면서도 한국과는 달리 스산하거나 쓸쓸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면, 이러한 '와비사비'의 영향 때문이다.

3.3. 불교 및 인도의 미학

불교를 비롯한 인도 철학의 사유에서는 미감을 라사(rasa, 味)로 정의한다. 즉, 객체와 감각기관이 만나서 일어나는 연기적 현상으로 보는 것이다.

불교 미학에서는 일반적인 라사는 욕망에 오염되어 있어, 세계의 추함이라는 실상에 대해 무관심하게 되며 진정한 아름다움을 경시하게 된다고 여긴다. 따라서 진정한 아름다움과 추함을 바로 보아 아는 미감이자 해탈을 통해 감각적 대상에 대한 집착을 여읜 미감, 즉 구경미(일미, eka-rasa)를 느끼는 것을 유익하다고 본다. 즉, 불교에서는 진(眞), 선(善), 미(美)를 모두 긍정하나, 미를 지각하기에 앞서 진과 선이 전제되어 있지 않으면 유익한 미감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4. 관련 문서

4.1. 미학 관련 인물

4.2. 서적

4.3. 연구소

5. 관련 자료

"미학 에스프레소" - 네이버 프리미엄컨텐츠(무료)
판단력비판 -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철학문헌정보센터
위키피디아 판단력비판
두산백과
칸트: 판단력 비판

[1]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에 미학과, 그리고 홍익대를 비롯한 소수의 대학원 과정에 미학 과정이 개설되어 있다.[2] 전 세계적으로 철학의 분과 학문에 불과한 미학을 단독으로 다루는 정식 학과가 학부 과정에 설치된 대학의 예는 그 전신이 과거 일본 제국대학이었던 곳 외에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그나마도 일제의 또 다른 식민지였던 대만대북제국대학에는 미학미술사 강좌조차 개설되지 않았음)에서 볼 때 일제시대 일본의 영향으로 보인다. 그나마도 현재 도쿄대학 등 일본 본토 대학미술사학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미학미술사학과'인 것을 감안하면 더욱이 그러하다.[3] 당장 진화론을 봐도 기린이 길어지는 건 목이 길어지려는 게 기린의 목적이라서가 아니라 어쩌다 자연도태가 이루어지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목이 짧게 태어난 개체가 도태되면서 그 유전자가 후대에 이어지지 못한 것일 뿐 애초부터 정해진 각본대로 심어진 목적에 따라 그런 형상이 되는건 아니라는 것이다.[4] 다만 현대 진화론 이론 중에서는 후성유전의 사례가 있다고 보고되기도 하므로 주의[5] 희극에 대해 다룬 부분은 유실되었다고 한다.[6] 중세에 관한 많은 재평가가 그러하듯이, 중세의 예술과 문화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더이상 부정되지 않는다. 심지어 르네상스 역시도 중세 예술의 연장선 혹은 전성기로 보는 견해마저 설득을 얻고 있다.[7] 단 아우구스티누스 개인의 사상을 전체 기독교 미학의 정수로 보는 것은 현대 신학계의 눈에 맞지 않는 관점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이 서로마의 멸망으로 버로우 탈 뻔했던 중세 라틴 신학을 이끌었기 때문에 서양 사상에서 빼놓지 않을 뿐이다. 아우구스티누스보다는 초대 교부였던 오리게네스와 니사의 그레고리우스 등등의 동방교부들이 요즘 기독교 미학의 대세로 뜨고 있다.[8] 라이프니츠볼프의 이름을 딴 학파이다.[9] 비슷한 영어 단어를 찾는다면 sensitive 와 perceptive 정도다.[10] 에밀 우티츠는 독일의 미학자, 철학자, 교수고, 1932년에 발표된 미학사(Geschichte der Aesthetik von Emil Utitz)라는 책의 저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