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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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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진중권 (陳重權, Jungkwon Chin, Jin Junggwon)
출생 1963년 4월 27일([age(1963-04-27)]세)
경기도 김포시
본관 여양 진씨 어사공파
신체 164cm, 67kg, O형
학력 양정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미학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미학 석사
베를린 자유대학교 철학 박사과정 중퇴#[1]
직업 교수
소속 동양대학교 동두천캠퍼스 교양학부[2] 교수
종교 개신교
정당 정의당
가족 2남 2녀 중 장남[3]
링크 페이스북

1. 개요2. 상세한 경력
2.1. 교육자로서의 경력2.2. 출판 경력2.3. 공개 토론회 참가2.4. 논객 경력
3. 비판 및 논란4. 여담5. 저서

1. 개요

대한민국의 미학자, 평론가, 동양대학교 교양학부 부교수

서울대학교에서 미학을 전공하여 〈소비에트 연방의 유리 로뜨만의 구조기호론적 미학연구〉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4] 이후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유학 중 일본인을 아내로 맞이했고, 슬하에 아들 1명을 두고 있다.[5] 1997년 외환 위기독일에서의 박사 과정을 그만두고[6] 귀국하여 평론가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논객으로도 이름을 알렸다.

평론가로서 이름을 떨친 것은 1998년 4월부터 월간문화지인 《인물과 사상》에 〈극우 멘탈리티 연구〉라는 글을 게시하면서부터다.[7] 이후 자잘한 활동을 해 오다 2005년, SBS 러브FM에서 진행한 《진중권의 SBS 전망대》라는 방송을 타고 평론가로서 이름을 알렸다.

2000년 민주노동당이 창당하자 입당하였으나, 2001년 이후 NL주사파 계열이 집단적으로 입당해서 당을 조금씩 장악해나가자 이들을 계속 공격하면서 마찰을 빚었다. 이후 "이대로 가면 당은 주사파들의 위장막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경고를 하면서 탈당하였다. 탈당시점은 범NL계(통칭 자주파)[8]가 당권을 장악한 2004년 6월 전당대회 이후로 추정된다.
일반 대중은 진중권을 진보 성향의 논객으로 인식하곤 하는데, 이는 2008년 즈음부터 왕성히 활동을 시작한 트위터 활동과 각종 시사토론프로그램 참가로 유명세를 얻었기 때문이며 평론가로서 활동을 그만둔 것은 아니다.

2007년의 디워 비평, 2008년의 인터넷 실명제 비판, 2011년의 임재범 나치 코스프레 비판, 2014년의 명량 비평 등 시사와 문화 전반에 비평을 꾸준히 해 오고 있다.

원래 정치인이 아니고 교수 및 논객이었으나, 노회찬심상정진보신당을 창당했을 당시부터 진보신당에 입당했으며, 현재도 (故)노회찬, 심상정이 소속되어 있는 정의당의 평당원이다.

2014~2016년까지 2년 동안 유시민, 노회찬과 함께 정의당 팟캐스트 노유진의 정치카페를 진행했다. 1주일에 2시간 정도 분량으로 정치이슈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때 SNS를 활발하게 했지만 회의감을 느끼고 탈퇴했다 #

2010년도 이전까지만 해도 할 말은 다 하는 촌철살인의 대가로 알려져있었지만, 2010년도 들어서서 점점 각종 망언, 독불장군식 태도, 내로남불을 제대로 보여준 결과 깨시민이라는 비아냥 속에서 예전만큼의 인기는 얻지 못하고 있다. 아예 비난측으로부터 '진보계의 변희재'[9]라는 멸칭으로 불리기도 하는 상황. 게다가 메갈리안 논란에 휩쓸리면서 지지층을 많이 깎아먹고 반대가 크게 늘었다.[10]

2. 상세한 경력

2.1. 교육자로서의 경력

1997년 귀국 후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초빙교수로 활동하였으며 중앙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겸임교수[11],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겸직 교수 등을 했다. 2012년 동양대학교에서 정식으로 교양학부 부교수[12]로 고용되었다.

왜 임용이 남들보다 오래 걸렸냐면 박사 학위가 없기 때문.[13] 인문대 박사 학위 취득에는 보통 10년 정도가 걸린다. 그리고 논문이 거의 없이 임용되었다는 것도 특이한 점이다. 학계에서는 대중을 대상으로 강연하거나 기고한 것은 교수 임용의 요건으로 삼지 않는 편이다.

2.2. 출판 경력

첫 저서 《미학 오디세이》는 미학사를 다룬 책 중 일반인을 대상으로는 사실상 처음 나온 것으로, 1990년대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미학'이라는 분야를 대중에 널리 알리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인문학계의 명저 중 하나로 인정받는다. 첫 출간된 1994년부터 현재까지 적어도 50만 부 이상 팔렸다는 것이 정설. 록밴드 국카스텐의 밴드명이 이 책에서 나왔다고 하현우가 밝힌 바가 있다.

이후에 그가 쓴 책들 역시 전반적으로 구어체를 사용하며, 접근 수준이 높지 않아 현재도 대학에서 미학 강의시 입문용 교재로도 많이 사용된다.

또한 대한민국에서는 처음 예술과 기술의 통합을 추구하는 UAT(Ubiquitous Art & Technology) 분야에 관심을 갖고 관련 해외 서적들을 번역하여 국내에 소개하였으며, 그 역시 미학을 통해 현실 문제나 대상을 해석하는 데 응용하는 등 해당 분야에 대해 꾸준히 연구해 온 정말 몇 안되는 국내의 학자이기도 하다.

2.3. 공개 토론회 참가

2005년부터 각종 토론프로그램에 참가하여 왔다. 때문에 미학 분야의 명사로 그쪽에서 왕성한 저술활동을 벌였음에도 평론가보단 논객의 이미지가 강하다.

지만원과도 친일파를 주제로 토론을 벌인 적 있다.

2012년 정식으로 부교수 임용 후에도 논객으로 활동을 접지 않은데다, 각종 공개토론회의 메인으로 참가하는 일이 늘어나면서 직업을 논객/전문 토론회참가자로 오인하는 사람들도 있다.

2.4. 논객 경력

주목도가 높은 이슈에는 꼭 논평을 하거나 트위터로 짧게라도 한두 마디씩 던진다. 관심사가 넓기 때문이기도 하고 본인의 기준에서 틀린 것을 눈 뜨고 못 봐주는 성향 때문인 것 같다. '모두까기 인형'이라는 그의 별명에서 나타나듯,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는 진영 논리 없이 비평을 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는 우스갯소리로 '내 편일 땐 든든하고 적일 땐 짜증나는' 사람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의 이름이 알려진 사건 중 하나는 '밤의 주필' 사건. 그가 무려 조선일보 독자 마당, 소위 '조독마'에서 명성을 떨치던 중 조선일보 주필 김대중이 조선일보 차명계좌 혐의 조사차 검찰소환에 도망간 사건이 발생하자 그 공백을 메꾸기 위해 다른 조독마 독자에 의해 주필의 빈자리를 메꿔달라는 천거를 받게 된다. 조독마에서의 열화와 같은 성원 끝에 하루 고민하고 조독마에 그의 순수비인 밤의 주필 취임사를 남기며 밤의 주필[14] 자리에 오르게 된다.

종종 격앙된 발언을 하거나 비아냥이나 조롱이 심한 경향이 있다. 대체로 진중권에 대해 논리적인 부분이나 독설을 하는 능력은 좋게 평가되지만, 일반적인 진보 진영에서 활동한 사람일 뿐 공정한 태도는 부족하다는 평이 있다. 사회 이슈나 (대체로) 보수 쪽에 직격탄과 같은 멘트를 날리지만 북한이나 북한 인권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경향을 보였다. 그렇다고 이 사람이 NL은 아니다. 1980년대 NL이 주류였을 때에도 이진경, 조국과 함께 주체사상 비판을 썼으며 도올 김용옥이 주체사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언급을 하자 김용옥을 파시스트라고 혹독히 깠다. 남한 정부를 까는 데도 적극적이지만 그만큼 김정은 정권을 까는 데도 적극적이라 모두까기 이미지가 강한 편이다. 북한 정권을 신랄히 비판하는 목소리도 자주 내며 이정희, 이상규 등으로 대변되는 통진당 당권파와도 관계가 좋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보아 진보 반북(반파시즘) 성향이라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진중권이 북한 정권과 일베를 싫어하는 이유는 파시즘이라서 그렇다는 것이 정설. 그런데 최근 메갈리아에 대한 태도를 보면, 꼭 반파시즘이라고 보기도 어려워졌다. 시도 때도 없이 발동하는 그의 이중잣대를 고려해보면 내로남불의 대명사인 래디컬 페미니즘과 그의 성향이 일치하는게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평론가라는 직업과 방송 인지도 때문인지 특히나 악플러, 꼴페미, 꼴마초들의 공격을 자주 받는다. 주로 보수 성향의 커뮤니티에서 나쁜 시선을 받는다.[15]

전반적으로 보면 아는 것도 많고 하는 말도 그렇게까지 틀리지는 않지만, 어투가 직설적이고 거칠다는 점에서 비판받곤 한다. 이에 대해 상대에 대한 공감 능력[16]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있다. 특히 자신이 틀렸을 때 혹은 자신의 발언이 부적절했을 때도 거칠게 나서거나 과거의 잘못을 별로 반성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의 자신이 비판하는 꼰대 기질을 보여주는 경우가 있는 점은 문제라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자신이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도 힙스터처럼 허세를 부리고 아는 척 하다가 문제가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17][18]이런 모습이 크게 나타난 것은 변희재와의 사망유희 토론배틀. 자료 조작론을 내세웠지만 그 자료 자체가 당시에 상당히 신빙성 있는 자료였고 그 분야에 있어 이름을 내걸고 토론할 정도라면 충분히 그 점을 고려할 수 있었어야 했다. 설령 자료가 조작이었어도 이에 토론 중 속아넘어갔다는 자체가 그 분야에 있어 능통한 전문가는 아니라는 말. 밑의 논란 문단에 언급된 2012년 선관위 홈페이지 디도스 공격에 대한 트위터 맨션이 윤복원 조지아텍 연구원에게 지적당하자 블락해버린 일화 역시 진중권이 자신이 잘 모르는 기술분야를 건드렸다 발생한 사건이다. 어떤 문제에 즉각적이고 단도직입적으로 접근하는 것도 좋지만 이런 단점은 다듬을 필요가 있다.

주요 논객 경력 및 사건에 대한 내용은 진중권/논객 경력 문서 참고.

3. 비판 및 논란

대부분 자신의 입장을 자주 바꾸는, 이중적인 태도에 비판이 몰려있으며, 위선적, 내로남불적인 태도 또한 비판이 되고 있다. 사실 변희재에 대한 비판에도 나오는 내용이지만, 진중권이 유명세를 얻어가는 과정은 사회적 유명세가 모이고, 자기가 잘 싸울 수 있겠다 싶으면 일단 뛰어들어서 싸우는 형태였다. 이 때문에 월장사태나 디워 비판 등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이 연결된 부분에서는 명성을 많이 얻었지만, 그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각론 단위에서 말을 한 것이 비판을 받자 가장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발을 빼기도 했고,[19] 그냥 말을 뭉개기도 했다.[20] 이 경우라면 전문성과 경험이 닿는 부분에만 크게 관여하게 되겠구나 싶지만, 진중권이 키워소리 들은 것은 이슈가 몰리는 분야에 발을 걸치는 것을 계속 유지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거 안하면 진중권은 한 때 유명했던 키워 정도로 잊혀진다. 키워 진중권이라면 몰라도 미학자 진중권은 대중에게 있어서 큰 관심 대상도 아니다
근데 예전에는 성재기의 죽음에 대해 어느정도 의미있다고 평하고 남성학이 필요하다는 발언을 한 적 있다. 그때와 생각이 달라진 듯 그냥 세태에 영합하고 있는거지 생각이 달라지긴 무슨......

4. 여담

5. 저서


[1] 수료가 아닌 중퇴라고 본인이 인증했다.# 그리고 애초에 독일엔 "논문 같은 학위 취득을 위한 최종 과제를 제외한 모든 과정을 완료했음"을 의미하는 한국, 일본식 수료 개념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 대학의 서류 발행처에 한국식 수료 증명서를 요구하면 우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그쪽 사람들이 아예 이해를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독일 대학에서 발급해 주는 최종학력증명서는 학위를 땄음을 증명하는 문서 외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 이렇듯 독일에선 재적이나 수료 여부는 가치를 인정 받지 못하기에, 학벌 부심을 부리기 위해선 무조건 학위를 따야 한다.[2] 교양학부 같은 경우 다른 단과대학과 달리 대학생들의 교양증진을 위해 설립된 것으로, 종합대학에서 직접관리한다.[3] 셋째이며, 아버지는 교회 목사다. 작은누나는 대한민국의 클래식 작곡가인 진은숙. 큰누나 진회숙도 모 유명 클래식 월간지의 편집장으로 이름을 날리는 등의 활약을 했다.[4]서울대 석사논문에 대해서 표절 논란이 있었다. 아래 3번 챕터 '논란' 참조.[5] 아들은 독일에서 학교를 다니는데,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을 고민할 정도로 공부를 못한다고 한다. 다만 독일은 교육 체계에서는 실업계 인문계 차별이 없으며 실업학교에서 마이스터가 되면 박사학위 받는 거 못지 않다고 함. 적성과 소질 맞는 길 찾아갔을 수도 있음..[6] 훗날 밝히기로는 외환 위기로 환율이 폭등하면서 학비가...[7] 책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은 책을 만든다 1권, 박성천, 2015년 11월[8] 당시 경기동부 + 인천연합 + 울산연합이 손을 잡고 경선에서 온갖 협잡질을 부린 끝에 모든 지도부를 싹쓸이하였다. 이들이 내세운 김혜경 당대표는 아무런 존재감이 없는 얼굴마담에 불과했다.[9] 아래 언급되지만 변희재가 전형적인 진중권 워너비였다. 이후에 정치적 입지만 바꾸고, 후발주자라도 더 무리수를 많이 던졌기에 다운그레이드 취급 받았을 뿐.[10] 아이러니하게도 한때 진중권도 과거 페미니스트라는 사람들에게 아주 크게 공격을 받았었던 인물이다. 여혐종자로 뒤짚어 씌운 사례가 대표적 사례[11] 이 자리는 독일 유학 시절 동료였던 김누리 중앙대 독문과 교수가 꽂아 준 것이란게 정설이다. 당시 직함은 교수였지만, 실제는 전임강사에 가까워서 강의도 대부분 "독일 문화와 예술" 같은 교양과목이었다.[12] 진중권 본인도 이 부분에 대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취직한다"는 트윗을 남겼다. 부교수는 전임 교원에 포함된다. 즉 정년이 보장되어 있다는 소리.[13] 인문대 박사의 경우 5~10년 정도 시간강사 생활을 한다.[14] 공식 주필이 아니라 그 보수적인 조독마에서 인정한 주필이라는 얘기. 이것을 민선 주필이라고도 이야기한다.[15] 그렇다고 진보 커뮤니티에서 딱히 좋은 인상도 아니다. 대표적으로 메갈문제와 일베조각상 발언 등등에서는 오유와 루리웹등 진보성향의 커뮤니티에서는 입진보, 양비론자 등의 나쁜 시선을 받는건 매 한가지[16] 공감능력이라고 하여 감성의 영역인 줄 알아, '이성이 중요시되는 논객에겐 상관없는 것 아닌가'하는 착각을 하기 쉬우나, 공감 능력은 기본적으로 상대의 입장을 상정하여 헤아리는 '상황판단능력'에 기반한다. 즉, 공감능력은 근본적으로 이성의 영역이다.[17] 이는 대부분의 논객, 자신의 얕은 지식을 이용해 예체능, 시사 프로그램에 나가는 지식 셀럽들에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항상 이슈에 대해 신속하게 이야기해야 하다 보니 종종 틀리는 경우가 있지만, 그에 대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기정당화에 주력하다가 모양이 망가지는 경우가 보통이다.[18] 그래도 진중권은 서울대 출신에 미대 석사를 거쳐 박사과정까지 들어갔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초창기 평론가에 진입했다는 이득 하나만으로 먼저 쌓은 경력과 유명세를 가지고 있고 이를 활용해 방송에는 나오고 잇지만 진중권만큼의 경력과 스펙조차도 가지지 못한 소위 유명 지식 셀럽들의 경우는 고작해야 본인의 감상평이나 정리해서 말하거나 표현의 자유 이상의 논평으로는 나아가지 못하는 등 매우 처참한 수준을 보여준다.[19] 진중권이 큰 판에 뛰어든 경우에는 최소한 가장 최상위 원론은 믿을만한 받침 있을 때이다. 나꼼수를 비판할 때에는 언론의 공정성을 끌어들이고 정파적인 부분을 비판한다는 위치를 베이스로 두었고, 워마드와 메갈리아 비판 때에는 그야말로 원론적인 형태의 페미니즘에 베이스를 두었다. 이 때문에 나꼼수 비판하는 것은 입만 산 것 아니냐, 메갈리아나 워마드의 본질을 아느냐는 비판에 대해서도 소위 말하는 안전한 후퇴로 크게 상처입지 않을 수 있었다. 공식적인 발언, 언론사 인터뷰급이 되면 대부분 이 사례로, 변희재가 진중권 다운그레이드 취급당하는 것은 아류로 시작한지라 이 부분도 유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20] 이 경우는 크게 작심하지 않고 그냥 막던진 사례가 대부분이다. 특히 'SNS는 인생의 낭비'라는 말에 해당하는 사례가 많다.[21] 이중에서 이라크전은 도널드 트럼프마저 비판하는 전쟁이다.[22] 이는 진중권의 위선적인 공감 능력이 결여된 소시오패스 같은 모습을 보고 실망한, 남녀 상관없이 극단적이지 않은 정상적인 네티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평가이기도 하다. 즉, 인간성을 버린 대신 다른 사람(특히 언더도그마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비판적인 어조로 교묘히 비난하겠다는 교수 및 논객으로 이미 오래 전부터 대중들에게 인식된 것이다.[23] 이슬람권은 성범죄율이 단지 0.5%라고 주장하는데, 공식적인 수치로는 맞다. 다만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순결을 워낙 중요시해서 강간을 당해도 피해자에게 비난이 집중해서 신고를 꺼리거나 순결을 결혼 전에 잃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아예 강간범과 결혼을 하거나 집안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살, 혹은 정식으로 신고하기 전에 주변가족들이 살해해버리는 경우가 잦기 때문에 신고율이 낮은 거지, 절대 성범죄자가 적어서 그런 게 아니다. 이슬람권에 대해 약간의 관심만 기울여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이 비슷한 사례는 일본에도 있었고, 멀리 갈 것 없이 한국만 해도 신고건수가 시간이 갈 수록 증가하는데 그것이 성범죄 자체가 더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이슬람교차별과 혐오가 정당화되지는 않는다.[24] 마르크스-레닌주의, 혹은 그 계파의 사회주의는 무신론이 기본이다시피 한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말만 봐도 알 수 있다. 마르크스는 종교가 기본적으로 브루주아들이 프롤레타리아를 억압하는 도구로 쓰인다고 생각했다. 자세한 내용은 마르크스주의, 레닌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문서 참고[25] 진중권의 기본 논조는 실제로 기독교 사회주의와 상당부분 일치한다. 또한, 현대에도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비판 없이 그대로 수용하는 사회주의자들은 아주 극단적인 소수를 제외하곤 거의 없다. '종교' 라는 주제가 딱 그 예시다. 현대의 좌파들은 마르크스가 무신론을 주장한 그 사회, 역사적 배경에는 상당 부분 동의할지언정 종교를 무조건 배제해야한다는 생각에는 대부분 동의하지 않는다.[26] 당장 우리나라만 해도 군사정권 시절 기독교 사회주의 계열 목사나 신도들이 노동 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한 사례들이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전태일. 전태일 평전에 실린 전태일의 일기를 보면, 그가 기독교적 양심에 따라 노동운동에 투신했음이 잘 드러난다.('하나님이 안식일을 정하셨으니 노동자들은 휴식할 권리가 있다' 라든가) 또한 전태일 사후 좌파계열 목사들이 금식 기도회나 추모 예배등을 열기도 했다. 물론 당시 박정희 정권과 함께 노동운동 탄압에 제일 앞장섰던 것 역시 기독교계다. 즉, 양측 모두에서 각기 다른 성향의 목사들이 활발하게 활동했다.[27] 마지막 부분은 합성사진으로 두 사람의 얼굴 위치를 바꿔 놓은 사진이다.[28] 진중권이 예외적으로 보수정당계 인물 중에서 본받을 만하다고 인정한 정치인은 남경필 정도이다. 실제로 외부자들에서 남경필이 언급되자 진중권이 남경필은 본받을 만한 인물이라는 언급을 하였다. 여담으로 남경필은 유시민, 박형준과도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29] 독일의 정치인. 독일 사회민주당 소속으로 당대표와 재무장관을 지낸 거물이었으나, 1998년 게르하르트 슈뢰더가 당대표 겸 총리에 올라 '신중도라는 구호 아래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면서 우경화하자 2000년 강경좌파들을 이끌고 탈당하였다. <심장은 왼쪽에서 뛴다>는 이 시기에 출판한 저서로, 슈뢰더의 신중도 노선이 노동자 계급을 피폐하게 만들고 부유층과 대기업의 배만 불리고 있다면서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오스카 라퐁텐은 2007년 제도권 바깥의 급진 좌파 그룹과 손잡고 좌파당(독일)을 창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