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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1 02:13:47

유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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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원선 · 성시경 · 이적 · 이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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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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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품집 여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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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집 Da Capo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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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잡 <colcolor=#f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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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열유시민김영하김진애김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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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595959><colcolor=#fff> 유희열
柳喜烈|Yu Hee Yeol
[1]
파일:HeeYeolNewProfile.jpg
본명 류희열[2]
출생 1971년 4월 19일 ([age(1971-04-19)]세)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동
거주지 서울특별시 강남구 청담동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본관 문화 류씨 (文化 柳氏)[3]
신체 174cm[4][5][6], 58~62kg, A형
가족 어머니 오이순[7], 류관열(1963년생)
6촌 동생 신보라[8]
배우자 이상은(1973년생, 2005년 결혼)[9]
류리아(2006년 9월생)[10]
학력 서울청운국민학교 (졸업)
청운중학교 (졸업)
경복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작곡과[11] / 학사)
병역 대한민국 해군[12] 해군홍보단 병장 만기전역
소속사 안테나 (Antenna) ,(대표 프로듀서),
소속 그룹 토이 토이뮤직
데뷔 1994년 10월 24일 토이 정규 1집 'TOY'
(데뷔일로부터 [dday(1994-10-24)]일, [age(1994-10-24)]주년)
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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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희열[13], 혈님(옹), 감성변태[14], 나부랭이, 과장의 달인, 병든 차인표[15], 반건조 차인표, 좌식MC[16], 엑스터시유[17], 안테나 것들, 해피유희열[18], 유도리코, 유린기[19]

1. 개요2. 생애
2.1. 학창 시절2.2. 음악 활동
3. 특징
3.1. 음악 스타일3.2. 가창력3.3. 섹드립의 레전드
4. 방송 활동5. 토이6. 다른 뮤지션과의 관계7. 수상 내역8. 논란 및 사건 사고
8.1. 성적 발언 논란8.2. 표절 논란
9. 여담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음악 프로듀서, 방송인, 기업인. 안테나 대표. 원맨 밴드 토이의 프로듀서이자 싱어송라이터로 오랫동안 활동했다. FM 음악도시, 유희열의 올댓뮤직, 유희열의 라디오천국에서 DJ를 맡았으며 KBS2의 심야 음악프로그램인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MC를 맡았었다.[20]

서울대학교 작곡과 출신으로 14년 만에 졸업했다. 90학번인데 2004년이 되어서야 졸업한 것이며, 중간에 군 복무 기간[21]이 포함된다.[22]

2. 생애

2.1. 학창 시절

1971년 4월 19일, 2남 중 둘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부모가 이혼해 마음고생으로 거친 친구들과 어울리는 학창 시절을 겪었다. 라디오천국에서 작곡가 롤러코스터의 지누가 증언한 바에 따르면, 고교 시절 공연 순서 때문에 유희열의 스쿨밴드와 시비가 붙은 적이 있었는데 유희열의 친구들이 다 덩치로나 주먹으로나 한가닥 하는 친구들이었다고 한다. 재미있는 건 지누의 밴드는 여리디 여린 친구들이 헤비메탈을 했고[23], 유희열의 밴드는 조폭같은 친구들이 어떤날의 음악을 연주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희열 본인 말로 폭주족 뛰고 정학을 먹기도 했고, 어머니는 오토바이 타는 건 말리지 않을 테니 앞바퀴만 들지말라고 했을 정도였다고 하며 예능을 많이 하게 된 이후 마른 몸 때문에 '반건조 차인표' 같은 별명이 생기며 연약한 이미지가 생겼지만, 사실 젊었을 적 유희열의 인상과 표정, 눈빛 등은 상당히 사나운 느낌이 든다.

이 때 흔들리던 그를 잡아준 건 어머니와 형, 그리고 어떤날의 음악이었고, 방황 끝에 음악으로 진로를 정한다. 피아노는 고3때부터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하였다. 집안이 상당히 가난해서 피아노를 놓을 장소가 없어 혼자 자취를 했다고 한다. 그것도 처음엔 피아노가 없어 종이 위에 그려진 피아노로 상상 연주를 하고, 멜로디언을 훅훅 불다가 본격적으로 피아노로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하며 이 때의 경험으로 인해 자기가 세상에서 멜로디언은 제일 잘 부를 수 있다고 한다. 주변의 예상을 깨고 당당히 서울대 진학에 성공한다. 스케일이 음계라는 뜻인지도 모르던 백지 상태에서 1년 만에 거둔 성과였다고. 합격이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꺼이꺼이 우는 모습이 다음날 조간신문에 실렸다고 한다. 물론 유희열의 작곡 기본기가 출중한 덕이었겠지만, 2000년 이전까지 서울대 작곡과에는 남학생 할당제 50%가 적용되어 남학생에게 매우 유리한 입시 제도가 적용되었다. 2001학번부터 성별 할당 폐지했다.

유희열 본인 말로는 이 때 블라인드 테스트로 피아노 실기 연주곡을 2곡 연주해야 했는데, 한 곡은 바흐의 푸가로 기본기 테스트, 나머지 한 곡은 어려운 곡으로 고전파 이후의 연주 실력을 테스트하는데, 만일 쇼팽이나 베토벤 곡이었으면 못 쳤을 거라고 한다. 당시 유희열은 버르토크 벨러의 곡을 치게 되었는데, 이게 한 음을 한 손으로 손가락을 돌려가며 빠르게 쳐야 해서 엄청 어려운 곡임에도 불구하고, 자기는 그런 거 못하기 때문에 오락실 독수리 타법으로 두들긴 덕분에 기막히게 연주한다는 평을 받으면서 합격했다고 한다.

물론 이는 유희열의 방송용 자기비하 개그 내지 겸손함이라고 보는 편이 맞다. 바흐의 푸가[24]부터가 피아노 연주와 음악 기본기가 확실히 잡혀 있어야 무리없이 잘 칠 수 있는 작품이며, 일반적으로 볼 때 바흐 푸가는 서울대 작곡과 실기 합격 수준으로 연주할 수 있으면서 베토벤이나 쇼팽 곡은 못 치는 사람은 없다고 보면 된다. 게다가 바르톡의 피아노곡은 테크닉 측면으로나 표현 측면으로나 대단히 어려운 편에 속해서, 쇼팽이나 리스트 곡은 웬만큼 치는 예고생이나 음대생들도 난감해하는 작품들이 많다. 물론 바르톡의 피아노 작품 중에는 미크로코스모스 피아노곡집의 초중반 작품처럼 쉬운 곡도 있지만, 그런 곡을 서울대 작곡과에서 피아노 실기 과제곡으로 출제한다는 건 넌센스다.

2.2. 음악 활동

진학을 앞두고 동아기획으로 찾아가 김영 사장에게 데모 테잎을 내고 음악을 하고 싶다는 말을 하던 중, 뒤에서 킥킥대면 비웃는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니 거기에 봄여름가을겨울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 김종진, 전태관에게 처음 들은 이야기가 '학생, 거 듣자 하니 대학교 좋은 데로 갈 거라면서? 그냥 공부나 열심히 해~' 였다고..[25] 후에 스튜디오에서 다시 만났을 때에도 그들은 '야, 너 그 좋은 대학 나와서 왜 이런 걸 하려고 해?'라는 말부터 했다고 한다. 김종진, 전태관이 밝히길 '얘는 나중에 분명히 우리 밥그릇을 엄청나게 뺏어먹겠구나 싶어서 싹부터 잘라놓으려고 했다'고 한다.

가수 윤상의 말에 따르면 유희열은 이미 중학교 시절 작곡을 시작하였고, 당시 작곡한 곡을 가수에게 주기도 하였다고 한다. 흑역사인 건지 윤상도 유희열 본인도 어떤 가수의 어떤 곡인지는 밝히지 않았다.[26] 다만 굳이 따져보자면, 현재까지 앨범으로 발매된 유희열의 가장 오래된 노래는 1988년에 나온 김형용의 마지막 앨범에 수록된 <꿈에 잠기어>이다. 이 곡은 유희열이 고2 때 발매되었고 만든 것은 중학교 때였다.[27] 김형용은 1980년대 초 '짝궁들'의 멤버로 활동했으며 이후 <사랑의 벼리>, <다시 사랑할 수 있다면> 등의 히트곡을 남긴 가수로 유희열의 사촌 형이다.

전업 음악가로서의 시작은 대학 재학 중 김장훈이 이끄는 인디밴드 <김장훈과 한국사람>의 키보디스트로 가입이었다. 첫 대면에 유희열은 김장훈을 미친 사람으로 생각했으나, 나중에 묘한 매력에 이끌려 밴드에 합류하게 되었다고 MBC 명랑히어로 '김장훈 편'에서 밝혔다. 당시 소개팅 해준다는 선배의 말을 듣고 신나게 카페로 갔는데 여대생은 없고 대신 머리 긴 김장훈이 있었다고.. 라디오천국에서 밝힌 김장훈의 증언에 따르면, 학교 친구들과 밴드를 만들어 'The Final Countdown'을 삐딱한 자세로 무심하게 연주하는 유희열을 보며 '쟤 어쩜 좋냐' 싶어 자신이 거두었다고 한다. 근데 정작 김장훈은 유희열을 가둬 놓고 하루 종일 반주만 시켰다고. 이후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달빛의 노래'란 곡으로 대상을 수상했다.

물론 이로 인해 학업은 등한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클래식 전공으로 입학했는데 클래식에 대해선 일반인 이하 수준이라서 학교에 적응 자체가 불가능했다고 한다. 심지어 어떤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고 그 곡에 대한 작곡가와 이름을 맞히는 시험을 볼 때 딸랑 한 문제를 맞혔는데, 그 곡을 맞힌 이유도 예능 프로그램에서 황기순이 이 곡에 맞춰 춤을 춘 것이 기억나서 맞췄다고 한다. 지금은 서울대 작곡과에서도 대중음악에 관심갖는 경우가 많지만, 1990년대 초반만 해도 클래식 서양음악만 공부하는 작곡과에서 이런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은 굉장히 이단아였다. 유재하는 1집 앨범을 학교 때려친다는 각오로 만들었고, 1집 앨범 녹음에 스트링 세션으로 참여한 후배들도 만일 자신들이 대중음악 녹음에 참여했다는 것을 학교측에서 알게 되면 대학에서 짤릴까봐 몰래 녹음했을 정도였다.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입상 이후 유희열은 엔지니어 윤정오와 함께 토이를 결성하였다. 본격적인 가수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로는 김현철의 조언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본인이 밝혔다. 윤종신[28], 이승환 등과 함께 작업을 하던 뮤지션으로서의 초창기 시절 유희열은 작곡과 프로듀싱만을 전문적으로 하기를 꿈꾸었으나, 김현철이 '네가 진정으로 훌륭한 프로듀서가 되고 싶다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음반을 내보아야 한다'고 말을 했다고. 이후 이승환 4, 5, 6, 7집, 이문세 10집, 이소라 2집, 윤종신 5집 등에 참여하여 작사, 작곡, 프로듀싱 등의 음악 활동을 펼쳤으며 이후 1996년 발매된 토이 2집부터 토이를 원맨밴드로 전환하게 되었고, 라디오 DJ로 활약하며 특유의 변태성을 만천하에 드러내게 되었다. 그 외에 1999년 삽화집 "익숙한 그 집 앞"을 내기도 했다.

2001년 토이의 5집 정규앨범을 발표해 타이틀 곡 좋은 사람으로 다시 한번 큰 히트를 쳤고, 이듬 해 자신의 2번째 솔로 프로젝트 앨범 A Walk Around The Corner을 발매해 전자음악의 접목을 시도했다. 이 후 유희열은 라디오 진행과 결혼 등 개인적인 사정으로 5년간 앨범을 발매하지 않게 된다.

토이 2집 발매 직후의 에피소드가 있다. 이적별밤지기를 맡은 시절 첫 잼 콘서트에 출연했는데, 유희열은 이적의 소개를 받고 등장해서는 자기가 헤어진 첫사랑을 위해 만든 곡이라며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을 부르다 그야말로 폭풍 오열을 터뜨리는 바람에 라디오를 듣던 사람들이 모두 숙연해졌다. 이적도 상당히 진땀 뺐다는 후문. 이 때 '별밤 잼 콘서트에서 막 운 사람'으로 처음 유희열을 접한 이들도 꽤 된다고 한다.

3. 특징

'자뻑+변태 중년' 캐릭터가 대중에게 기묘하게 호감으로 먹힌 케이스. 유려한 말빨과 겸손하고 개념 있는 행동 등으로 까는 사람은 거의 없으나 가끔 인터넷에 얼굴 가지고 까는 사람이 있다고 라디오에서 밝힌 바 있다. 팬들 사이에 통하는 통칭이 "감성변태".

주위에 SNS를 하는 지인들이 많은 반면 본인은 SNS를 하지 않는다. 본인 스스로는 기계에 약해서 스마트폰이나 트위터를 쓰지 못한다고 밝혔지만, 라디오에서는 음표를 찍느라 바빠서 트윗을 할 시간이 없다고 농담했다. 실제론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하나 눈팅 용도로만 쓰고 개인적인 글을 쓰거나 게시물을 올리진 않는다. 제로보드 기반의 본인 팬페이지에 근황을 올리는 수준이다.

인터넷 서핑을 자주하는 듯하며 인터넷상의 유행어를 스케치북이나 라디오천국에서 자주 선보인다. 하지만 게임에는 관심이 없는지 라디오 사연에서 SCV라는 단어가 나왔는데 무슨 의미인지 파악을 전혀 하지 못했다. 단적인 예로 1박 2일에 출연했을 때 게임 문제 때문에 김종민에게 패배했다.[29]

코미디언 신보라와 외가쪽으로 6촌 사이란 게 알려져 화제가 되었다. 신보라가 데뷔하기 직전, 어머니와 함께 유희열의 집에 놀러 간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오빠 방송국에서 봐~'라고 하길래 유희열은 방청 온다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리고 TV에 나온 신보라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하며 후에 둘이서 싼타페 광고를 찍었다.



족보로 얽힌 관계는 아니지만 송해와도 인연이 있다. 유희열의 고모가 송해의 부인 석옥이와 언니 동생하며 친하게 지내는 관계였고 그 덕에 송해도 유희열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2018년 11월에 방영된 대화의 희열에서도 이 내용이 나온다. 당시 유희열은 송해의 이야기를 들은 후 송해의 손을 붙잡고 오열했다. #

3.1. 음악 스타일

루시드폴은 유희열에 대해 "음악적으로 굉장히 여러 가지의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 분. 아무리 음악을 오래한 사람이라도 본인이 할 수 있는 음악과 취향이 편향될 수 밖에 없는데, 그런 면에서 많이 열려있고 자기 음악으로 체화시켜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다만, 2022년에는 본인이 작곡한 여러 곡에 대해 표절 의혹을 받고 있어 평가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

3.2. 가창력

가창력은 평범한 수준이다. 노래를 아예 못 부르는 음치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보컬로서는 부족한 편. 실제 노래를 들어보면 음정이 굉장히 심하게 떨리고 음을 잘 못 맞추는 편으로, 절대음감이 꼭 노래 실력과 연관되지는 않는다는 걸 잘 보여주는 예시라고 볼 수 있다. 이소라는 이를 두고 유희열은 발성 자체가 선천적으로 안 된다고 디스했다. 참고로 본인은 노래를 부를 때 본인이 음정이 떨리고, 정확한 음정을 내지 못한다는 걸 인지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도 10여년 전에 비하면 노래 실력이 꽤 많이 발전했다. 콘서트에서 가끔 본인이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또한 토이 앨범들의 수록곡 중 한두 곡 정도는 유희열이 부른 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이러한 가창력과는 별개로 음색 자체는 부드럽고 편안한 음색으로, 이때까지 토이에 수많은 객원 보컬들이 참여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토이와 가장 어울리는 음색은 유희열이라는 말도 있다.[30]

유희열이 본인이 작곡하지 않은 곡을 실제 녹음한 사례도 있긴 하다. 2002년에 개봉한 애니메이션 마리이야기의 사실상 오프닝이나 다름없는 우리가 사는 곳이라는 노래인데, 이병우 작곡에 유희열 노래이다. 금영노래방에 60065번으로 수록되었다.

3.3. 섹드립의 레전드

신동엽의 후계자. 초/중/고등학교 1년 선배이자 경복고등학교 방송부 선배 신동엽이 인정한 변태라고 한다. 신동엽의 말에 따르면 유희열이 중학생 때 진명여자중학교[31] 퀸카랑 사귀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걔한테 무슨 매력이 있는 거지?"라는 호기심에 방송반으로 데려왔다고 한다. # 참고로 그 당시에 공형진이 3학년 졸업반, 신동엽이 2학년, 유희열이 1학년 신입생이었다.

이런 인맥 관계로 신동엽은 1990년대 중반에 진행하던 MBC 표준FM <내일로 가는 밤>이라는 야간 라디오 프로그램에[32] 당시 무명이던 유희열을 고정 패널로 채용하기도 했다.

아이유와 함께 한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눈을 감고 발을 뻗은 모습이 캡처되었는데.. 아이유와 하도 얽혀서 '매의 눈'이란 기믹이 새로 추가되었다.
파일:attachment/b0149741_4d83c1ab6c03c.jpg

TV전문 매거진 텐아시아에서 새로운 유행어로 "희르가즘"을 만들어냈다. 희르가즘의 정의는 직접 가서 보길 바란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베스티즈의 한 네티즌이 만든 용어에 정의를 붙인거다.

아끼는 후배들을 누구보다 더 잘 챙겨준다. 에픽하이유희열의 스케치북으로 오랜만에 출연한 때에, 타블로 손을 잡고 눈빛으로 "이렇게 무대 위에서 보니깐 좋아요."라고 약간 울컥하는 어투로 말했다. 음악적으로 훌륭한 후배가 무너질 뻔했다는 게 안타까웠던 듯. 대기실에서는 타블로의 엉덩이를 야하게 만졌다고 한다. 유희열의 말로는 "아끼는 후배를 오랜만에 만나면 그렇게 만진다"고 말했다.

호는 \'관음(觀淫)'이라고 한다.[33]

방송의 적 마지막회에 출연해 감성변태의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보아가 하차한 K팝 스타의 심사위원으로 합류했다.

2013년 10월, 아이유 3집 <Modern Times>의 수록곡 "분홍신"의 뮤직비디오에서도 페퍼톤스 맴버들과 함께 출연했는데, 장난 아니다. 음도에 아이유가 출연한 나중에 손이 닿았느냐 안 닿았느냐는 아이유 팬들의 질문에 닿았다고 하자 성시경의 반응은 "그 형은 왜 그런 거야..."

2014년 카스 라이트 광고로 출연했는데, 그윽한 표정이 압권이다. 수상한 만남편 풀파티편

2014년 말에 유희열의 스케치북 크리스마스 특집에서는 게스트로 신민아를 초청하여 또 레전설을 만들었다. 돌림판에 게임을 적어 걸리는 걸 하기로 했는데 게임들이 발 씻겨주기, 허벅지 씨름, 보리보리쌀, 어부바, 가슴으로 풍선 터트리기, 왕게임 등이 있으며 결국 신민아에게 변태라는 소리를 들었다.

결국 2015년 공연 중에 도를 넘은 성적인 발언 때문에 물의를 일으켰다. '그 당시 콘서트 청중들의 분위기는 좋았다'고 하는 의견도 있다.

2019년 놀면 뭐하니?에 나와서 밝히길 딸이 "아빠는 왜 변태야?"라고 물어봤다고 한다.

섹드립을 자주 치긴 하지만 이미지는 좋은 연예인이다. 이를 두고 윤종신, 이적, 정재형 등의 주변인들이 질투를 하기도 한다. 2011년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정재형이 밝히길 유희열이 써먹은 섹드립 멘트가 빵빵 터지기에 본인도 콘서트에서 따라했다고 한다. 그러나 관객들이 이를 듣고 질색을 하자 바로 사과했다고 하며 이를 두고 동료들은 유희열은 사람들이 뇌가 혀에 달린 사람이라고 평했으며 윤종신을 비롯한 출연진들은 유희열은 그런 드립을 칠 타이밍을 안다고 분석하기도 했고 특유의 병약하고 마른 이미지 때문에 섹드립을 쳐도 사람들이 안 싫어한다고 부러워했다.

4. 방송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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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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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다른 뮤지션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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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수상 내역

8. 논란 및 사건 사고

8.1. 성적 발언 논란

내가 공연을 할 때 힘을 받을 수 있게 앞자리에 앉아 계신 여자분들은 다리를 벌려달라. 다른 뜻이 아니라 마음을 활짝 열고 음악을 들으란 뜻이다. 아시겠냐.
2015년 4월, 콘서트 도중 여성 관객에게 "여자분들 다리를 벌려 달라"는 농담을 했다가 논란이 일자 사과했다. #

8.2. 표절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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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여담


[1] 다만 안테나 공식 SNS에서는 'You Hee Yul' 로 표기한다.[2] 두음법칙 적용되어 유희열로 활동하는 중. 참고로 어릴 때 아명이 류명한이었다고 한다. 주민등록증에도 이름이 류희열로 기재 되어 있다고 하며, 배우 류준열과 같은 항렬이다.[3] 문화 류씨 32세손 ○열(烈) 항렬이다. 현재 이 나이대의 문화 류씨 사이에서 항렬이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한다. 나인뮤지스 前 멤버 류세라의 아버지뻘. 본인은 류희열이라고 쓰지 않지만, 같은 항렬의 류준열은 성을 '류'라고 쓴다.[4] 알쓸신잡 시즌 3에서 과학관련 이야기 중 "(과학자들 덕분에) 제 키가 174cm라는 걸 알고 있는 거 너무 고마워요"라고 말한다.[5] 우당탕탕 안테나 FC 안테나 프로필.[6]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키 큰 가수 (ex 성시경)가 나오면 "키가 정말 크시네요. 제 키가 186이니까~ 어우 2미터 넘으시나?"라는 멘션으로 자주 웃음을 주곤 한다.[7] 한복 디자이너. 한국의생활문화원장으로, 조선왕조 친잠례 행사를 재현했다.[8] 외가 쪽으로 6촌 관계이다.[9] 가수 이상은과는 동명이인으로, 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을 졸업한 후 동시통역사로 일했다.[10] 미국 태생이다.[11] 90학번[12] 해상병 362기[13] 매의 눈 문서 참조.[14] 앞의 세 별명은 대부분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통해서 생긴 별명이다. 매희열의 경우는 스케치북이 근원이지만, 혈님은 음악도시 DJ 시절인 1990년대 말부터 쭉 있던 별명이다. 감성변태 또한 스케치북보다 먼저 시작한 라디오천국이 그 근원이다.[15] 차인표와 닮았는데 좀 아파보인다는 게 이유. 미우새에 출연했을 때 유희열 본인이 직접 언급하기도 했는데, 어머니가 엄청 싫어하는 별명이라고 한다.[16] 1박 2일 시즌 2에서 윤종신이 놀린 바 있다.[17] 라디오천국 2010년 10월 21일 오프닝에서 스스로를 이렇게 표현하였다.[18] 연초마다 새 버전들이 인터넷에 떠돈다.[19] 놀면 뭐하니?에서 유재석이 "나 공연 다닐 때 건반이나 좀 쳐달라. (내가)유산슬, (형이)유린기 이렇게 해가지고.."라는 농담을 던지면서 붙은 별명. 고정 출연자가 아님에도 '놀면 뭐하니?' 제작진에 유재석 부캐 아이디어를 여럿 제공하여 김태호와 유착관계가 아닌지 의심을 받는다. 유재석과 하찮게 티격태격하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칠 듯한 포지션.[20] 음악도시와 올댓뮤직, 라디오 천국을 모두 합치면 총 10여년간 라디오에서 활동했으며, 스케치북은 2009년부터 2022년까지 13년간 맡았다.[21] 대한민국 해군 해상병 362기다. 해군홍보단에서 복무했다.[22] 사실 거기에 더해서 연차 초과 제적과 IMF 외환위기 특별복학 등이... 서울대학교는 휴학 기간을 제외한 16학기(8년) 내에 졸업을 못하면 제적되는데, 1997 외환위기 당시 가정 형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학교를 그만둬야 했던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복적이 이루어진 적이 있었다.[23] 이 멤버 중엔 훗날 넥스트의 기타리스트가 되는 김세황도 있었다.[24]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의 푸가 가운데 하나일 확률이 높다.[25] 참고로 김종진은 고려대학교, 전태관은 서강대학교 출신이다.[26] 참고로 윤상도 고2 때 김현식 음반에 실린 <여름밤의 꿈>의 작곡가로 가요계에 데뷔했다.[27] 출처: <한국 팝의 고고학 1990>에 실린 유희열 인터뷰.[28] 윤종신은 유희열을 '처음 본 순간부터 그냥 진짜 천재임을 느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대표적인 예로 달달한 팝발라드 한 곡 좀 써봐라 시켰더니 나온 곡이 환생이질 않나. 그래서 정신 차리기 전에 얼른 채갔다고 한다.[29] 정답은 드랍십이다.[30] 여담으로, 유희열이 노래 잘 불렀으면 김형중 같았을 것 같다는 말이 있다. 둘의 음색이 정말 닮기도 했지만 그만큼 음색이 토이스럽다는 얘기.[31] 1987년에 폐교되고 지금은 진명여자고등학교만 남아 있다.[32] MBC 표준FM <심심타파>의 시간대로 유명하고 현재 <심야다방> 시간대인 밤 12시~2시 슬롯에 진행된 프로그램이다.[33] 2012년 6월 1일에 음도에 출연해 인터넷 서핑하면서 남의 컨텐츠 같은 걸 잘 보는 속성을 설명하면서 정했다고 밝혔다.[34] 2011년까지 라디오에서 이촌동 집에서 운전해서 왔다는 멘션이라던지, 신보라가 데뷔 전 이촌동 집에 갔었다는 얘기를 한 점을 통해 알 수 있다.[35] 당시에도 입담은 정말..[36] 밤 중에 사회를 보는 모습이라고 하니 아마도 스케치북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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