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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1 11:33:03

박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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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5·11대 보컬리스트
박완규
朴完奎 | Park Wan K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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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73년 11월 7일[음력] ([age(1973-11-07)]세)
충청북도 청주시[2][3]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본관 밀양 박씨 (密陽 朴氏)[4]
신체 174cm|70kg|A형
학력 태광중학교 (졸업)
태광고등학교 (졸업)
서울호서예술실용전문학교 (음악 2012 / 재학)
MBTI INTPISTJ
가족 아버지 박팽수[5], 어머니 임복녀
2남 1녀 중 막내
아들 박이삭(1997년생), 딸 박이슬(1998년생)
병역 대한민국 육군 병장 만기전역[6]
데뷔 1997년 부활 5집 앨범 '불의 발견'
소속 부활엔터테인먼트
소속 그룹 부활
종교 개신교가톨릭 (세례명 : 사도 요한)
별명 벌처, 흑표범
사이트 파일:다음 카페 아이콘.svg파일:유튜브 아이콘.svg[7]파일:유튜브 아이콘.svg[8]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1. 개요2. 활동
2.1. 부활
2.1.1. 1기(1996~1998)2.1.2. 2기(2019~현재)
2.2. 솔로 활동
2.2.1. 천년의 사랑~4집(1999~2006)2.2.2. 재기(2011~2019)
3. 가창력
3.1. 음역대
4. 디스코그래피5. 방송 활동6. 여담7.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가수이자 밴드 부활의 5대, 11대 보컬.

2. 활동

부활의 멤버로 데뷔하기 전에는 송탄 미군 부대에서 DJ를 하거나 노래를 불렀다. #.

2.1. 부활

2.1.1. 1기(1996~1998)

파일:박완규벌처시절2.png
좌측부터 김태원, 정준교, 박완규, 정동철.

1996년 김재희가 부활을 탈퇴한 후 당시 김태원은 부활 보컬을 뽑으려 오디션을 열었고, 1,500명을 봤는데도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이때 음악계에서 알아주는 조명 감독으로 활약하던 박완규의 누나인 박순규씨가 김태원에게 다리를 놓아주었다고 한다. 김태원"니가 송탄의 박완규냐?"로 시작된 인연이라고. 그리고 부활 오디션을 볼 때 부른 곡이 바로 레드 제플린Black Dog.[9] 이 노래 한 방에 부활 멤버 전원을 뻑 가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때 김태원이 "이제 한글 노래를 불러봐라" 라고 했는데 부활의 히트곡 '사랑할수록' 을 부르자 "넌 한글 발음이 안 좋다"며 디스당하더니 "니가 노래 잘한다는 거 어필하려면 블랙 독 같은 노래 계속 부르면 되는데, 가수로 먹고 살려면 사랑할수록 같은 곡도 부를 줄 알아야 되는데 넌 그게 안 돼서 못 뽑겠다"며 탈락할 뻔 했다고 한다.[10] 이에 당시 오디션 세션으로 있었던 드럼의 김성태와 베이스의 정준교는 박완규의 보컬이 아까워 김태원에게 "형이 가르치면 되잖아"라고 강력하게 설득시켰다고 한다. 이에 김태원도 설득되어 박완규의 맞춤곡을 써내려 가기로 한다.[11]

위의 오디션 관련 일화로, 김태원이 오디션이 다 끝나고 "일주일 후에 통보해 주겠다."고 한 뒤 박완규를 보냈는데 당시 박완규는 부활 오디션에서 떨어질 경우 다시 백화점에서 청바지를 팔아야 하는 열악한 신세였고,[12][13] 사정만큼이나 성질도 급했던 박완규는 김태원에게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어 형님, 저 지금 당장 결정해 주십시오. 떨어지면 다시 청바지 팔러 가야 됩니다 라고 김태원을 재촉[14]했고 김태원이 처음에는 "뭐 이런 놈이 다 있냐?"며 한참 고민하다 "좋아. 하자. 내가 하라는 대로 따라오면 성공할 수 있을 거야" 라고 해서 당일 오디션에 합격했다고 한다.[15][16] 합격 통보를 받은 2주 뒤, 김태원은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열리는 부활 행사에 박완규를 불러 공연을 어떻게 진행하는지 구경하라고 하였다. 그런데 뜬금없이 김태원은 박완규한테 "너 노래 하나 해라." 라고 말했다고 한다.[17] 결국 무대에 오른 박완규는 레드 제플린Rock and Roll을 열창한 후 6천여 명의 관객들에게 기립 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그 뒤 백스테이지로 내려간 박완규에게 김태원이 다가가 "합격."이라고 말해주었다고 한다. 즉, 이 무대가 박완규의 2차(최종) 오디션이였고, 노래를 잘못 불렀을 경우 부활의 보컬이 되지 못할 아찔한 상황이었다.

이후 부활의 4집과 5집 사이 나온 베스트 앨범 "이솝의 붓" 에서 박완규가 부른 소나기 가 공개되며 김태원은 "그동안 가지 않은 길을 가려 한다" 며 부활의 새로운 방향을 천명한다. 그리고 마침내 부활 5집의 보컬로 데뷔하였다. 김태원이 5집에 붙인 '불의 발견'[18]이라는 앨범명 그대로 당대의 충격을 안겨준 화끈한 보컬이었으며, 살인적인 음역대의 곡들을 웃으면서 쉽게 소화함과 동시에 파워와 성량까지 자유자재로 보강하는 것이 가능한 천재적인 록 보컬리스트로 찬사를 받았다. 앨범에서 가장 유명한 곡 "Lonely Night"은 서구의 헤비메탈 보컬 수준에 비춰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숨겨진 명곡으로 "마술사"가 있다. 비록 시작은 메탈 밴드였을지언정 1집에서 4집에 이르기까지 서정적이면서도 장르적으로는 프로그레시브 록적인 성향이 매우 강한 부활 앨범 중에서도 가장 이질적인 앨범으로 박완규의 탁월한 표현력과 가창력, 김태원의 보컬 최적화 작곡 능력이 만들어낸 명반이다.
1997년 Lonely Night 원키 라이브

부활 앨범 녹음 당시 김태원이 얼마나 스파르타식으로 했는지 비틀즈코드에 출연하여 "Lonely Night" 두 소절을 녹음했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눈물을 짓기도 했다.[19]제목 그대로 외로운 밤의 느낌이 나야 하는데 그 느낌이 안 난다고 퇴짜를 놨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박완규는 불타는 신혼이었는데 외로운 밤의 느낌이 날 리 없어 두 소절 녹음하는데 2주일 걸렸다고.[20] 사실 Lonely Night의 가사만 놓고 보면 박완규가 아니라 바로 직전 보컬이던 김재기와 김재희에게 더 잘 어울리는 가사다. 아마도 3~4집 연주곡들 중에 쓰려고 남겨둔 가사를 박완규에 맞추어 편곡을 한 것으로 보인다.

"Lonely Night" 의 성공으로 계속 부활에서 활동할 듯 싶었지만, 사실 유명세 대비 속빈 강정이었는지 금전적인 문제로 박완규는 부활을 탈퇴한다. 훗날인 2023년 백투더뮤직 인터뷰에 따르면, 박완규가 부활 활동 당시 받은 돈은 계약금 500만원과 활동기간 번 200만원이 채 안되는 돈이 전부였다고 한다. 생각보다 행사가 잘 잡히지 않았다고. 그러다보니 기획사에서 떼어가고 남은 돈을 넷이서 나누면 그 돈으로는 연년생 젖먹이들 분유값 대는 것도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박완규는 김태원에게 "형님, 돈인지 음악인지 확실히 해주십시오" 라고 묻자 김태원은 "세상 일이 네 뜻대로 되는 게 아니다. 돈이면 돈, 음악이면 음악 하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대답했다는 거 보면, 금전적인 문제와 음악적인 견해가 동시에 충돌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태원은 박완규에게 "너는 아직 배울 게 많다. 밖에 나가면 양아치, 사기꾼밖에 없다" 며 탈퇴를 만류했지만, 박완규가 나가겠다고 하자 "그럼 앨범 하나만 더 내자. 내고 나면 나가든 말든 하고 싶은 대로 해." 라고 했지만, 그조차 거부하고 부활에서 나온다.[21] 만일 이때 박완규가 나오지 않았다면 이후 부활의 역사도 꽤 바뀌었을 것이다.[22]

아래는 박완규가 부활 시절 라이브로 부른 노래들이다.
레드제플린의 Rock And Roll 커버 [23]
레드제플린의 Black Dog 커버
부활 5집 중 슬픈 바램
부활 5집 중 Lonely night 모음집
부활 5집 중 마술사
Open Arms 커버
부활 2집 중 회상 1 [24]
부활 3집 중 사랑할수록 [25]

2.1.2. 2기(2019~현재)

파일:부활_밴드_201905.jpg
좌측부터 이윤종, 채제민, 박완규, 김태원.

이후 솔로 활동으로 좌절과 재기를 한 이후 긴 시간이 흘러 2019년 4월 29일, 부활의 새로운 리드보컬로 컴백한다는 기사가 떴다. 부활 역사상 최초의 복귀 보컬이 되었다.[26]

복귀 당시 모습을 보면 나가수 출연 시절에 비해 살을 뺀 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김태원이 부활 복귀를 받아주는 조건으로 살을 빼오라고 했는데, 진짜로 살을 빼 와서 복귀가 가능했다고 한다. 나가수 당시 호흡을 맞췄던 조필성의 개인방송에 출연해 언급하기로는 운동을 많이 하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바른 생활을 한다고 한다. 덕분에 박완규는 100kg에 육박했는데 30kg를 감량했다고 한다.

이후 채제민의 개인방송에서 밝히기로는, 다이어트는 계속 하고 있다고 한다. 생활 사이클을 바꾸면서 아침 일찍 일어나는 생활을 하다 보니 아침은 간략하게 챙겨 먹되 연습 전후에 김태원이 시켜주는 치킨이나 탕수육 등 음식은 아예 먹지 않는 등 식사량을 조절하고 있다. 한창 살을 뺄 때는 일주일에 이틀씩 단식하거나 하루 계란 하나로 버틴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먹을 건 먹고 다닌다고 한다. 하루에 2만 보씩은 유산소 운동을 하고 있다 보니 먹어도 도로 빠져나간다고 한다.
2020년 Lonely Night 라이브
부활 복귀 후 부활의 음악 스타일에 맞게 창법을 바꾼 모습을 보여주었다. 솔로 활동 시절의 굵은 소리를 다소 가늘고 날카롭게 바꾸어 허스키하면서도 청량감있는 음색으로 방송과 공연 등에서 부활의 서정적인 곡들을 소화해내고 있다. 또한 추가적으로 목 상태도 이전보다도 훨씬 회복되어 2020년 9월 11일 유스케 론리나이트 라이브에서 원래의 -4key 에서 -3key로 키를 높여부르는 등 조금씩 전성기에 보여주었던 목소리가 뚜렷해지고 있다.

2.2. 솔로 활동

2.2.1. 천년의 사랑~4집(1999~2006)

1999년 1집 천년의 사랑 라이브
부활에서 나온 이후 1998년에 김경호 3집의 양심선언이라는 곡의 코러스로 참여했다. 그리고 미려한 보이스 톤과 중-고음역대를 완벽하게 표현하던 보컬 스타일이 크게 바뀌었으며, 허스키하고 파워풀한 음색을 강조한 솔로 1집(1999. '천년지애')으로 대박을 쳤다. 이 앨범의 타이틀곡이 그 유명한 '천년의 사랑'.[27]

그렇게 1집의 대박으로 소속사였던 캔 엔터테인먼트[28]를 살렸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사장은 박완규에게 제대로 된 돈을 지급하지 않았고, 그 결과 한동안 죽은 듯이 살았다고 고백했다. 심지어 계약서를 새로 쓰자며 서류를 가져와 도장만 찍으라 해서 찍었더니 연대보증 동의서였고, 회사 소유 아파트를 빌려주고 박완규의 가족들을 살게 한 뒤 사장의 마음에 안들면 집에서 내쫓겠다고 협박하는 식으로 입을 틀어막았다고 한다. 보증 집계 시스템이 정착되지 못하고 희박한 저작권 개념, 그리고 노예 계약이 성행했던 시대가 만들어낸 불운이었다. 지금에 와서는 '없던 일로 치자, 그러나 다시는 마주치지 말자'고 합의본 듯. 그래서 팬들은 "천년의 사랑 대박 나지 않았나?"라고 알고 있지만 실제로 박완규가 번 건 별로 없었고 이때 얼마나 상처를 받았는지 MBC 다큐에서 밝히길 '돈 벌려고 부활을 나와서 천년의 사랑을 불렀지만 돈도 못 벌고 마음도 좋지 않았다' 그래서 천년의 사랑을 부르고 싶지 않다고 말했었다.[29]그러나 정작 깡통사장에게 그렇게 당해놓고도 깡통사장의 전 아내인 장혜진과는 콘서트 게스트로 설 정도로 친한 사이다.[30]

박완규는 어릴 적에 산에 올라가서 노래 연습을 하다가 피를 토한 적이 있는데 이때부터 결절이 시작된 상태였다. 말하자면 박완규의 목 상태는 흡사 판소리를 하는 사람들처럼 변해있던 것. 의학적으로 볼 때 판소리를 하는 사람들의 목 상태는 결절로 분류한다. 덕분에 박완규는 예상을 뛰어넘고 훨씬 목 상태가 나아질 수 있었다.

스스로 리즈시절 자신을 '음역대가 좁고 고음만 되는 보컬'이라 평했는데 젊은 시절 이것이 꽤 컴플렉스였던 듯 하다. 비틀즈 코드에 나왔을 때 밝힌 바에 의하면 당시 이를 극복하려 공업용 식초인 빙초산을 물에 섞었던 적도 있다고 한다.[31]당시 이 얘기에 패널이었던 유세윤, 박지선이 경악을 했다.

의외로 박완규는 하드코어를 시도한 적이 있다. 솔로 2집인 <<엽기발랄>>(2000)의 타이틀 곡인 '욕망이란 이름...' 은 당시 인디에서 인기가 있었던 하드코어 밴드 펄럭펄럭[32]이 세션과 래핑을 맡았다.

대표곡은 애니메이션 카우보이 비밥뮤직 비디오로 사용하기도 했던 '천년의 사랑'. 이전 버전에서 고음병 환자가 좋아하는 곡이라 했지만 대중적으로도 히트한 곡 이다. 그리고 카우보이 비밥의 한국판 엔딩곡인 'alone[33]' 이 있다.[34] 2005년에 투니버스데이날 alone을 불렀다. 한국 애니 바다의 전설 장보고의 주제가 '다시 태어난 전설' 을 부르기도 했다. 다만 그 후로는 활동이 뜸한 편이었다.
2000년 2집 욕망이란 이름 라이브
2002년 3집 After You've Gone 라이브
2006년 1집 천년의 사랑 라이브
2006년 대구MBC 텔레콘서트 자유 라이브[35]
앨범은 의외로(?) 꾸준히 냈는데 2006년까지 4집을 냈다. 물론 대중적인 흥행을 한 건 1집 '천년의 사랑' 뿐. 그나마 약간의 대중과 옛날의 팬들이 좋아했었던 곡중에 유명했었던 곡은 1집과 2집의 '약속'과 '눈물없는 이별', 'After You've Gone' 세 곡 정도이고 2집과 3집은 대중성과 하고 싶은 음악 사이에서의 박완규의 갈등이 컸다면 소속사와의 인연을 끊기 위해 마지막으로 낸 4집 앨범은 아예 사비로 앨범을 만들어 박완규가 하고 싶은 음악이 그대로 녹아있으며, 안타깝게도 대중적으로는 흥행은 하지 못했다. 국내 록의 열악한 환경과 본인이 목 관리를 소홀히 한 탓도 있지만 결정적인 것은 제대로 된 돈을 지급하지 않았던 소속사의 대우와 이에 따른 생활고. 생활고 때문에 미사리 라이브 카페를 전전하며 억지로라도 쉴 새 없이 노래를 부르다 성대가 망가졌다고 한다. 이 시기 '비밀' 이전에 부활과 한 번 콜라보를 한 적이 있는데, 곡의 제목은 '사랑해서 사랑해서'[36], 그러나 상업적으로 실패하게 된다. 또한 이 시절 목 상태는 일상 대화를 하다가도 쉬어버릴 정도로 최악.[37] 가수도 아예 그만 둔 상태였다고 한다. 가수를 그만 둔 후에는 보컬 트레이너로 전향하기 위해 보컬 학원에 전화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박완규의 개인사와는 별개로 그 당시 보컬로서의 위상은 엄청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부담을 느낀 학원들이 영입을 거절하였다고 한다. 이 힘든 시기에 유일한 삶의 낙이 스타크래프트 리그를 보는 것이었다고 한다.

아래는 박완규 라이브 중 대표곡들.
1집 천년의 사랑
1집 태양의 꿈
1집 진심
1집 남겨진 날들
1집 약속[38]
2집 욕망이란 이름
2집 왜 그랬어
2집 눈물없는 이별
3집 After You've Gone
3집 My Way
4집 어둠 그 별빛[39]

2.2.2. 재기(2011~2019)

노래가 꼭 아름다운 목소리로만 해야 하는 건 아니죠. 목소리는 아름다워도 마음은 아름답지 못할 사람이 많으니까요. 예상은 했는데 정말 치료가 안 되는 중증에 가까운 병이더군요. 그 상태 그대로 비밀에 담았습니다.
- 김태원
2012년 비밀 라이브
2011년 김태원이 원래 배우 윤상현에게 주려고 했던 "비밀"을 거절당하고 거의 반 폐인처럼 지내던 박완규에게 건넸다고 한다. 김태원은 "내가 시키는 대로만 따라와라" 라고 했다고. 처음엔 목이 너무 상해 노래가 불가능할 지경이었지만 병원에서 약물 치료를 겸하면서 한 소절씩 녹음해서 합치는 식으로 곡을 완성시켰고 이것을 2011년 부활과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 1호로 발매하여 차트 정상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곡 자체는 자가복제적 성향이 강해진 김태원의 네버 엔딩 스토리 2 정도라는 평이지만 박완규의 담백한 보컬과 서정적인 가사가 드라마 OST와 아이돌 댄스계로 양분된 가요계에서 크게 선전했다. 이 당시 의사는 박완규에게 살고 싶으면 노래를 하지 말라고 했을 정도. 수술이 시급했지만 박완규는 그동안 쌓아온 성대 근육이 사라지는 것이 염려돼 결절 치료부터 시작했다. 이후 기적적으로 염증이 가라앉기 시작했고 의사는 마치 새살이 돋는 것 같다고 표현할 정도로 목 상태가 크게 호전되었다.

2011년 5월 28일에 포크가수 손지연, 토종 헤비메탈 밴드 WON과 함께 합동 공연을 했다. 과거에 다투기도 했던 김경호 역시 게스트로 섰다.[40]

비밀의 성공으로 박완규는 떨어져 지내던 아내에게 드디어 인생이 피게 되었다며 다시 만나자고 연락했지만, 이 시기에 이혼을 하게 되었다. 아내 입장에선 당장의 성공이 계속 이어질 지 불확실한 상황이었고, 편모 가정으로 있어야 자식들의 학교 급식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결국 오랜 생활고에 지쳐 이혼을 하게 된 것이었다. 혼자 라디오를 진행하기도 했는데, 화려한 말솜씨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분이 혼자 입담으로 이렇게 웃겨줄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그 예로 김동명의 데뷔곡을 정말 아름다운 곡이라 극찬하고, 가수는 곡따라 간다고 자기는 론리 나잇 그대로 평생 외롭게 산다는 등 가차없는 드립이 터져나오곤 한다.

3. 가창력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데뷔 시절과 현재의 보컬 스타일이 확연히 달라졌다. 2010년대 나가수 출연 이후의 박완규만 알고 있는 사람은 90년대의 박완규를 보고 동일인물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였다.[41] 아예 톤 자체가 달라졌다고 볼 수 있을 정도라 프로 세계에서도 희귀한 케이스인데, 또 각각의 맛이 있으니 흥미롭다.[42]

임재범, 김경호, 김종서, 윤도현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최정상급 록 보컬리스트로, 중후한 톤을 갖게 된 이후 2010년대 들어선 본인은 록커 포기 선언을 했지만[43] 여전히 대중음악사 통틀어 손꼽히는 보컬이라고 할 수 있다.

생후 1년 6개월때 액체 파리약을 잘못 먹어 기도가 타버린 경험이 있다고 밝혔으며#, 현진영 데이 라이브 방송에서 본인이 밝힌 바에 따르면 고2때 산에서 노래 연습을 무리하게 하다가 피를 토한 적도 있다고 한다. 즉, 그의 가녀리면서도 허스키한 독특한 음색은 어릴 적 사건사고를 겪으며 어느 정도 성대가 손상이 되고 회복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44][45]

예전 부활 시절에는 압도적인 하드웨어와 더불어 타고난 성량을 바탕으로 한 폭발적인 고음을 자랑했으며, 당시 최고의 고음을 자랑하던 김경호와 라이벌로 자주 매치되면서 로커로서의 자질을 인정받았다. 특히 허스키하면서도 독특한 하이톤의 음색으로 여성들의 평균적인 음역대를 뛰어넘는 살인적인 키를 아무렇지 않게 소화하는 엽기적인 능력으로 화제가 되었다. 그냥 고음 자체가 기본으로 깔려있는 독특한 특성을 무기로 훌륭한 곡 표현력과 전달력을 보여준 완전체였다는 점도 주목할 점이다.

이 시절에는 그냥 음역대 자체가 엄청나게 높았다. 방송과 라디오에 나올때마다 박완규는 ‘그냥 고음이 원래 났었다. 변성기가 분명 왔는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고음이 잘 나서 고음으로 고민해 본 적 없다’라고 꾸준히 이야기할 정도로 그냥 음역대가 어마어마하게 높았다.[46][47] 고음으로 유명한 Lonely Night의 최고음이 3옥타브 레♯(D♯5)인데 이거보다 한 옥타브 더 올라갔다고. 불후의 명곡 2 부활 편에서 김태원이 "박완규도 이거 부르다 목 망가졌다"고 했는데 이건 사실이 아니다.[48][49] 1990년대 박완규의 라이브 영상을 보면 박완규는 Lonely Night 이나 마술사를 웃으면서 부른다. 심지어 실수 할 때는 원음보다 더 높이 올라가는 통에 김다른 부활 출신 보컬들도 이 이야기를 꺼낼 정도였다. 이때 당시 부활 오디션에서 불러서 뽑힌 레드 제플린Black Dog을 데뷔당시 행사에서 자주 불렀는데 도입부 3옥타브 미(E5) 부분을 아주 쉽게 깔끔하게 올렸었다. 또 1분 58초 부분에서도 3옥타브 파(F5)를 아무렇지 않게 올리거나 이 라이브 4분 14초 부분에서 3옥타브 미(E5) 를 시원하게 지르는데 바이브레이션이 될 때마다 음이 ♯이돼서 3옥타브 파(F5)가 됐었다. 그리고 이런 고음들을 여성들의 고음처럼 진한 질감으로 소화했었다. 남자가 여자 성대를 가지고 태어난 수준이다. [50] 박완규 본인이 방송에서 직접 밝힌 바에 의하면 4옥타브 레~미(D6~E6)정도까지는 소리가 났다고 한다.[51] 거기에 저음은 1옥타브 라(A3)가 안내려갔다고 한다. 부활 역대 보컬 중 한 명인 정단의 증언으로는 라가 안내려간다는 말을 듣고 처음에 가온다를 기준으로 그 밑에 라, 그러니까 0옥타브 라(A2)가 안 된다고 생각을 했는데 알고 보니 그보다 위의 '라'가 안 되는 거였다고 한다. 참고 영상. 그러니까 일반적인 남성의 음역대가 아니었던 셈이었다. 사실 1옥타브 라(A3)는 여성에게도 그렇게 저음은 아니다.[52]

창법이 바뀌는 과정에서 비슷한 예시를 들자면 코요태신지를 들 수 있다. 두 가수 모두 선천적으로 타고난 고음과 음색을 소유했고, 4옥타브 레(D6) 이상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던 보컬들이었고, 또한 평균 음역대 자체가 높은 쪽에 속했다. 그래서 작곡가들이 더 고음의 노래를 써오고, 그리고 소속사의 혹사로 인해 성대가 맛이 가버려 겨우 재활을 해서 허스키한 보이스로 바뀌는 과정에서도 웬만한 사람은 겨우 소화할 음역대가 유지될 정도였으니, 만약에 관리를 해서 전성기 음역대를 유지한 상태였다면, 두 가수 모두 김종서김종국과 같이 미성의 날카로운 고음을 자랑했을 것이다. 그래서 유튜브 댓글에서는 두 가수들의 전성기 영상을 보고 안타까워하는 댓글이 많다. 그나마 박완규는 현재 목소리에 전성기 때는 없던 다른 매력이 생긴 게 다행인 부분이다. 전성기보다 좀 더 묵직하고 허스키해진 현재가 더 취향에 맞다는 사람도 많다. 어찌 보면 윤종신과 비슷한 케이스다.[53] 심지어 박완규를 데뷔시킨 김태원이 전성기 시절 고음은 감정을 싣기가 힘들어 싫어했으며 목이 상한 뒤 나가수에서 보여줬던 노래를 좋아했다고 밝힐 정도니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흔히들 박완규 최고의 락발라드는 그를 대표하는 노래인 천년의 사랑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박완규 노래 중 최고 난이도 발라드로는 같은 1집에 수록된 '남겨진 날들'이라는 곡이 대표적으로 손꼽힌다. 남겨진 날들. 마치 김경호의 대표적인 락발라드가 금지된 사랑이지만 최고난도의 락발라드가 아름답게 사랑하는 날까지인 것과 비슷하다.

곡의 난이도가 어느 정도냐면, 후렴구 한 번 당 3옥타브가 19개, 심지어 이 곡의 최고음인 3옥타브 레♯(D♯5)[54]이 후렴구 1회 당 3번, 곡 전체를 통틀어 무려 6번이나 나오는 등 3옥타브 전체 갯수가 39개에 달할 정도로 난이도가 살인적이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순수 발라드 계통의 곡으로는 그 헬곡이 많다는 M.C The Max1티어 3대장 곡들인 어김없이, 흩어지지 않게보다 더욱 어려운 미친 난이도를 자랑하는 헬곡이자 숨겨진 명곡이다. 이 곡의 원키 라이브가 2021년 유튜브에서 공개되었다. 1999년 12월에 부른 것으로 지금까지 유일하게 남아있는 라이브 영상으로, 가창력이 매우 일품이다.#

엄청난 난이도와 고음으로 도배된 5집 중에서도 최강의 곡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믿음이라는 곡이다. 들어보면 그 유명한 고음곡 Lonely Night과 마술사의 최고음 3옥타브 레♯(D♯5)를 능가하는 3옥타브 파(F5)[55]를 그야말로 따발총처럼 난사하다가 마지막에 진성으로 She's Gone의 최고음과 같은 3옥타브 솔(G5)으로 마무리한다. 이 음을 낼 수 있는 가수는 있지만 이 노래는 힘들 거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이유는 샤우팅을 쓰지 않고 노래 내내 같은 발성으로 3옥타브 솔(G5)까지 그냥 쭉 올리는 말도 안되는 고음 때문이다. 샤우팅을 쓰지 않고 3옥타브 음역대를 난사하다가[56] 3옥타브 솔(G5)까지 올리고 3옥타브 파(F5)로 꺾이는 말도 안되는 마무리까지 보여주기 때문에 웬만큼 어렵다는 노래들도 커버 영상이 있기 마련인데 이 노래는 고음 좀 한다는 사람들조차도 부른 영상을 찾아 보기 드물다. 2019년에 한 팬이 키 하나를 올려서(최고음 3옥타브 솔♯(G♯5)) 커버했다. 커버 영상 그런데 정작 김태원은 믿음이라는 노래가 너무 어려운 노래인데 라이브 영상도 없다는 이야기를 듣자 별로 안어렵다는 말을 했다. 어려워서 라이브를 안 한게 아니라 노래의 인기가 없으니 사람들이 몰라서 안 했다고 한다.#[57][58]

당시에는 인터뷰나 목소리 등을 들어보면 여자 성대와 음높이가 비슷했다. 아니 여자 성대보다도 음역대가 더 높았다. 저음이 1옥타브 라(A3) 이하로 내려가지 않아서 부활의 예전 앨범들 노래를 커버할 때는 3키 이상(!) 높이고 부르곤 했다.[59]본인은 컴플렉스가 있었는지 피나는 노력으로 점점 음색을 허스키하게 바꾸게 되었고 음역도 조금씩 내려가게 되었다. 그렇다고 허스키 보이스를 쓰던 솔로시절 노래들이 음역대가 절대 낮지 않다. 허스키 음색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카랑카랑하고 시원시원하게 고음을 연사하던 박완규의 리즈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꽤 많다. 데뷔 년도인 1997년엔 3옥타브 솔(G5)을 냈는데 1997년도 Rock and roll 라이브 2분 25초 부분에서 진성으로 지르는데 순간적으로 음이 꺾여서 3옥타브 솔을 찍고 음읕 끄는 부분은 3옥타브 파이다.[60] 1999년 솔로 활동 1집시절엔 허스키한 목소리로 바꾸었을 때도 1999년도 Rock and roll 라이브영상 9초 부분에서 3옥타브 파♯(F♯5)를 진성으로 올리기도 했었다.

1집 시절 태양의 꿈을 부르다가 음이탈이 나서 가성으로 3옥타브 라# (A#5)를 올리기도 했다. 목이 손상되서 가성을 못쓴다고 알려진 박완규가 거의 유일하게 가성을 쓰는 영상이기도 하다.

보컬로서의 실질적인 전성기는 2002년 3집 활동 때까지다. 이 시기 전성기를 화려하게 불태웠으며, 특히 이 시기 발표한 <After You've Gone>은 박완규의 노래 중 Lonely Night에 버금가는 난도를 가진 곡이며, 박완규는 이를 라이브로 불렀다. 이때까지만 해도 시원하고 맑은 목소리가 어느 정도 남아있었으나[61] 2003년 이후 스트레스가 쌓이고 본인이 목소리를 바꾸기 위해 무리하다가 점차 맑은 목소리가 사라지기 시작한다.

박완규의 창법은 기본적으로는 흉성에 기반을 둔다. 다만 흉성 기반이면서도 변칙적인 창법으로 밖으로 나오는 소리가 아닌 소리를 먹는 창법으로 이런 형식으로 부른다는 것 자체가 희한한 일이다.[62] 아무래도 성대가 타고난 경우라서 파사지오 구간이 높은 부분에 위치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 이 창법에 어쩔 수 없이 성대를 갈아가며 쓰는 허스키까지 더해져 성대를 혹사하는 창법으로 여지껏 노래를 해왔다.

전성기 시절에는 4옥타브 레(D6) ~ 미(E6)까지 올라는 독특한 고음의 소유자였지만, 공백기부터는 음역대가 낮아져서 현재는 3옥타브 솔(G5)정도까지는 깨끗하게 올릴 수 있다고 한다. 본인 인터뷰로는 4옥타브도 가능하다고 했으나 성대가 엉망이라서 잘 올라가지 않고 있어서 본인도 더 좋고 건강한 목소리로 찾아가고 싶다고 한다. 목이 망가진 후 나는 가수다로 재기를 하고 활동했었던 2011년도 당시에도 고음인 3옥타브 미를 길게 지르는 것도 가능했었다. 그래서 현재 본인의 곡을 힘들어한다는 것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고음역대를 순간적으로 올리는 것과 높은 음역대를 유지하면서 지속적으로 난사하는 것은 당연히 차이가 나기 때문에 자신의 최고음과 상관없이 이전에 자신이 부르던 노래를 부르기 힘들어하는 것은 당연할 수 있다. 당장에 Lonely Night의 최고음인 3옥타브 레♯(D♯5)가 가요계에서는 넘사벽의 고음이 아닌데도 상당히 어려운 노래로 꼽히는 이유도 다 이런 이유이다.[63]

현재 박완규는 론리나잇을 원키로도 부를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다. 다만 한 번 부르면 힘들고 그런 걸 라이브에서 할 순 없으니 키를 낮추고 있다. 또한 목이 급격하게 나빠진 2003년 이후로도 음역대가 떨어졌지만 높은 음을 내는 것엔 큰 문제가 없었다.[64] 다만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플랫도 거의 없고 3옥타브 레까지도 무리 없이 가능했다. 그 이후로 현재까지도 3옥타브 미, 파까지도 낼 수 있는 걸 보면 고음은 아직까지도 가능한 듯 하다.[65]박완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회복이 가능했던 경우고 김경호는 한번이라도 걸리면 완치가 불가능한 성대결절을 2번이나 걸리면서 성대 자체의 접지력과 모양의 변화도 있었다.[66] [67]

하지만 천년의 사랑이나 lonely night 같은 노래를 아직도 -2키 -4키로 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 있는데 이는 성대 자체가 낼 수 있는 음은 높지만 나이로 인한 체력적인 부담과 성대가 지속적인 고음을 내기가 힘들어서 그렇다. 박완규의 최근 라이브들을 보면 tears의 영원히 부분을 같이 부르거나 사랑했어요 나가수 버전을 쉽게 쉽게 부르는 걸 보면 잠깐 나오는 높은 음은 가능하지만 지속적으로 나오는 노래는 힘들어 보인다. 2006년 이후 2018년까지는 목 상태가 안좋아서 못불렀다고 보는게 맞고 지금은 나이로 인한 노쇠로 못부르는게 맞다. 당장 2006년만 봐도 몸도 좋고 목 상태도 2003년 2004년에 비해서는 좋아진 상태라서 천년의 사랑-2키는 쉽게 소화했고 짧게나마 무반주에서 1키 올려서 -1키로 부르기도 하였다. lonely night도 이 당시에는 -2키로 불렀다. 욕망이란 이름은 원키로 가창했다. 이 당시에 더 두꺼운 목소리로 불렀던 것을 생각하면 2003년보다 목도 좋았고 피지컬적으로도 우수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지금은 천년의 사랑도 원키로 한 소절씩 부를 정도로 목은 좋으나 이를 받쳐줄 피지컬이 없다. 최근에는 운동을 하지만 힘 자체는 나이가 들어서 운동도 안하고 살이 쪘던 2010년도보다 약하다.[68]

3.1. 음역대

4. 디스코그래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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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방송 활동

2007년 이적의 음악공간에 출연한 적이 있다.[71] 놀라운 것은 이때 머리를 잘랐었다는 것. 락을 접고 블루스를 하기로 했다는 언급을 하며 이전에 뮤지컬에서도 활약했음을 언급한다.[72] 후에 2010년 김태원과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을 진행하게 되면서 방송으로부터의 복귀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이때 독설가 기믹이 크게 화제가 되면서 라디오 스타에서 섭외가 오게 된다. 이때 박완규가 김태원에게 "형님, 저 이곳에 나가야 합니까?" 하고 묻자 김태원의 대답은 "그럼 안 나갈 거냐? 너 아직 정신 못 차렸구나?"였다고 한다.[73] 이후로 노홍철의 친한 친구와 같은 라디오 프로그램, 놀러와, 오천만의 대질문, 온게임넷 등 방송가에 활발하게 모습을 비추기 시작한다. 2012년 1월 22일 개그콘서트의 감사합니다 코너에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2011년 3월 4일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에 김태원의 멘토스쿨 최종 심사에도 참석했다. 여기서 평소 성격대로 독설을 날렸는데 '원래 좀 아련하고 회상하듯 불러야 하는 노래인데 너무 슬퍼서 몸서리가 처진다', '손짓, 발짓 때문에 산만하고 발음이 안 좋다', '평가가 안 된다. 이건 노래를 잘 하는 게 아니라 소리를 잘 내는 거다', '초등학생이 성인 노래 부르는 거 같이 지나치게 예쁘다' 등등으로 참가자들의 정신을 아득히 날려버렸다. 나는 가수다와 합성한 패러디물까지 나왔다. 힛갤입성 이후에 밝혀진 바로는 대기실에서 넋을 놓고 있던 백청강, 이태권, 손진영에게 다가와 '형도 많이 넘어졌어.'라며 위로했다고 한다.

방영 후 사람들의 반응은 호불호로 나눠졌고 원래부터 박완규를 좋아했던 사람들의 반응은 '아니 형님 다 괜찮은데 왜 그렇게 돼지가 되셨나이까 원래 박완규는 아주 마른 몸이었고 내던 소리도 날카로운 것이 칼을 바싹 간 느낌이라고 김태원이 칭찬하고 다녔는데 그 소리를 극복하기 위한 과정으로 생각된다[74]는 의견이 있는데 이 인터뷰에서 본인은 그냥 찐 거라고. 어쨌든 위대한 탄생 중간에도 나오지만 이젠 박완규 본인도 원키로 못 부르는 "Lonely Night"이 돼버렸다.[75]

물론 지금 목소리가 예전보다 훨씬 두꺼워서 더 좋다는 사람도 적지는 않다. 2011년 8월 7일 열린음악회에서 소향과 '사랑보다 깊은 상처' 를 불렀는데 마침 동시간대 나는 가수다에서 박정현김범수가 부른 '사랑보다 깊은 상처' 와 비교하면서 호평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했다. 2011년에 와서는 아름다운 콘서트에서 한영애의 "누구 없소"를 원키로 불러 아직 죽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독설가 이미지와 락부심 때문에 방송에서는 상당한 꼰대 이미지이긴 하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솔직한 성격이다. 남자의 자격 합창단 에피소드에서는 보컬 트레이너로 나왔는데 출연 당시에는 성대에 힘이 없는 할머니들이 최선을 다해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려 울보 락커라는 말을 듣기도 하였다. 그리고 성대결절로 15년간 노래를 끊으셨다가 합창단에 나오기 위해 다시 노래를 불렀다는 음악 선생님을 보고 동병상련을 느끼고 감정이 북받치는 모습도 보여줬었다.

후에 강연 100도씨라는 프로그램에서 이때의 일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당시 84세의 노부인께서 혼신을 다해 부르는 노래에 자신이 음악에 대해 가지고 있던 고집이 모두 녹아내렸다고. 할머니께서 마치 '완규야, 노래는 이렇게 하는 거야. 인생은 이렇게 사는 거야.'라고 이야기하는 듯 했다고 한다. 자기 인생을 바꾸었다고 하며 반성의 눈물을 흘렸다고 언급할 정도로 인상깊은 사건이었던 듯하다.

2013년 3월 13일에는 코미디 빅리그의 원달라팀의 게스트로 출연, '원달라 플리즈' 까지 했다. 덕분에 원달라팀은 1승을 추가했다. 이후 연기에도 도전해서 SBS 드라마 결혼의 여신에서 간간히 모습을 드러냈다. 1화에서 아내에게 긴머리를 감기게 하면서 하는 작태가 묘하다. 그리고 9월 11일부터 방영 예정인 푸른거탑 제로에도 출연한다. 군부대의 짬밥을 수거해서 사료로 쓰는 짬아저씨 역할을 맡는다고 한다.

개그콘서트 2015년 추석 특집편 횃불 투게더에 등장, 무려 선글라스까지 벗어가며 개그혼을 불태웠다.

2017년 1월 14일 불후의 명곡 2에서 혜은이의 비가를 불러서 439표로 불후의 명곡에서 최초로 우승했다. 그동안 혼자서 나가지 않고 듀엣으로 나갔었는데 2013년에 유미와 사랑보다 깊은 상처, 2014년에 부활의 김동명과 부른 상아의 노래가 있었다. 그리고 3년만에 단독으로 출연하였고, 그 후로 2017년 2월 18일 먼훗날에, 2월 25일 내 마음 갈곳을 잃어 두 곡을 더 불렀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부활(밴드)Never Ending Story를 원키로 부를만큼 목 상태가 양호했으나 2013년부터 음역대가 급격히 내려가는 등 음색이 임재범과 매우 흡사했었다. 실제로 히든싱어의 임재범 편과 이 시기에 박완규의 라이브를 들어보면 임재범의 목소리 및 창법과 상당히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평소 박완규 본인이 임재범을 존경해 그와 같은 창법으로 바꾸려고 한것으로 보이나 2016년 현재 복면가왕을 기점으로 창법 및 음색이 다시 예전의 박완규로 돌아왔고 목 상태도 상당히 회복되었다. 심지어 2011년 비밀 활동때보다 비교가 안 될 정도로! 2017년 판타스틱 듀오에서 부활과 함께 lonely night을 불렀는데 엄청 오랜만에 한 키를 낮춘 반주로 라이브를 했다!

2018년 2월 22일 ~ 3월 1일에 방송된 해피투게더 전설의 조동아리 내 노래를 불러줘에 나와서 예전에 실패한 적이 있는 김경호에게 전화하는 등 입담을 보였다. 다행히 그는 찬스가 먹히면서 성공. 이 날 퇴근에 실패한 출연자는 길구봉구였다.

2019년 9월 14일 침묵예능 아이콘택트에서 김태원과 같이 출연하여 서로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김태원은 음악에 미친 박완규를 높게 평가하여 다시 부활 멤버로 복귀시켰으니, 이젠 그 짐을 내려 놓으라고 조언했다.

5.1. 나는 가수다

2011년 9월 21일 방송된 tvN <러브송>에 출연해 "진짜 록을 보여주기 위해 <나가수>의 합류를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다. 남자의 자격 합창단 편이 끝날 때쯤에 출연할 것으로 보이며 "큰 칼을 들고 나간다. 95% 이상의 목 상태를 만들어 내 속살을 보여주며 다 쓸어버리겠다"고 말하는 것도 그렇고 선배 가수인 김경호의 말대로 하나같이 극단적이다.

관련기사 아마도 목이 상당 부분 회복된 것으로 보인다. 토크쇼 노코멘트에서의 발언으로는 원래 나가수는 폐지되어야한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었는데 당시 나가수에 출연 중이던 장기호 교수와[76] 또 임재범의 무대를 보면서 마음을 바꿨다고 한다. 박완규는 3~4월께 이미 접촉은 있었지만 당시엔 거절했다면서 "당시 목도 아팠고 그 프로그램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순위를 매기는 게 마음에 안 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다가 임재범이 보여주는 무대를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박완규는 "나가수 제의가 오면 하겠다. 임재범 형님이 '록이 좋아요. 록이 살면 좋겠어요. 록으로 돌아갈 거예요'라고 하셨다"면서 "형님이 원하는 록이 한구석에서 관심있는 분들만 보는 게 아니라 대중들 앞에 나올 수 있게끔 나도 돕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생각의 변화를 거쳐 드디어 그의 나가수 출연이 결정된 것. 관련기사

멘토가 초호화 급인데 김태원, 임재범, 신대철, 김도균이다.[77] 이들이 편곡을 담당할 수도, 무대에 같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한다. 김태원이 남격으로 출연이 힘들다 하더라도 그야말로 엄청난 라인업이다.

이미 자우림김경호가 나가수에 출연하고 있는 가운데 박완규까지 더해져 락커 3파전이 벌어지면 그야말로 나가수가 초토화될지도 모른다.

11월 27일 기준으로 새 가수는 적우였다. 김경호가 춤까지 추는 모습을 보고 나가기 싫어진 것은 아니고 김경호가 졸업이든 하차든 빠지는 시점에서 투입되는 걸로 처음부터 결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김경호의 페이스를 보면 적어도 내년 초까진 못 나갈 듯하다. 결국 제작진에서 조기투입을 결정한 거 같다.

12월 18일 인순이가 하차하면서 투입. 1번으로 나와 김현식의 "사랑했어요" 를 부르며 2위를 차지하였다. 숫자를 2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스타크래프트 갤러리에서는 진작부터 환호했다. 더군다나 연달아 나오는 경연의 특성상 1번 자리의 경우 뒤에 나올 무대에 묻힐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걸 감안한다면 최고의 첫 무대를 장식한 것이다.

다음 선곡은 고해. 박완규가 행사나 게스트석에서 몇 번 불렀던 곡인데 이번 기회에 재편곡을 통해 어떻게 고해가 선보여질지 기대되었다. 결국 11라운드 2차 경연에서 고해를 통해 첫 1위에 등극했다. 또한 자문 위원단들은 박완규의 고해에 대해 테크닉에선 임재범에게 없는 무언가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내렸다. 그런데 정작 1위를 했음에도 임재범과 김태원에게는 혼만 났다고 한다. 힘을 빼라고 누차 말했음에도 힘자랑을 해서 그랬다고.#

이후 신성우의 '내일을 향해' 를 선곡하여 퍼포먼스를 보여줬으나 결국 7위를 하고 만다.

2012년 1월 15일 중간점검에서 대장금의 OST인 알렉산드로 사피나의 '하망연'[78]을 불러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3번의 저주, 임재범의 저주, 지상렬의 저주에 사로잡힌 그. 과연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1월 22일 2차 경연, 7번을 뽑은 데다가 "오늘 7위를 하더라도 제 자신에겐 1위입니다" 란 말을 남기고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원곡을 뛰어넘는 편곡으로 원숙미와 카리스마를 보여주며 1위 획득. 자문위원단은 "대가의 반열에 올랐다" 라는 칭찬을 했으며, 방송 후 반응도 매우 호의적이다.

1월 29일 13라운드 1차 경연에서 김목경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불러 4위를 차지했다.

2월 12일, 13라운드 2차 경연에서 김경호가 추천해준 "아버지"를 불렀다. 결과는 5위. 김경호의 마지막 나는 가수다 공연이었던만큼 이 무대를 각별하게 여겼던 것 같다. 그리고 김경호가 4위를 차지하며 다시 순위가 붙어있게 되자 마지막으로 "Rock! Will! Never! Die!"를 김경호와 함께 외쳤는데 김경호는 장난투로 "이거 질린다" 라고 말했다. 2019년 조필성의 개인방송에 출연해서 나가수 출연 당시 썰을 많이 풀었는데, 실질적으로 편곡할 수 있는 시간은 대략 사흘 정도였다고 한다. 이 기한 내로 편곡과 녹음을 마쳐 그 파일을 제작진에게 보내주어야 했는데, 겨우 녹음을 마치고 조필성이 자려고 침대에 누울 때쯤에 박완규가 전화를 해서 편곡을 바꿔야겠다고 한 적이 몇 번 있었다고 한다. 또, 원래 나가수에서 부를 첫 번째 곡은 '사랑했어요'가 아닌 '하망연'이었다고 한다. 인지도 문제로 제작진이 반려해서 바꾼 것인데, 이후 OST 미션이 나오면서 쓸 수 있었다고 한다.

5.1.1. 나는 가수다에서 부른 곡들

<rowcolor=#fff> 경연 가수 매니저 노래 순위
11라운드 1차 경연 박완규 지상렬 사랑했어요 - 김현식 2위
11라운드 2차 경연 박완규 지상렬 고해 - 임재범 1위
12라운드 1차 경연 박완규 지상렬 내일을 향해 - 신성우 7위
12라운드 2차 경연 박완규 지상렬 하망연 - 알렉산드로 사피나 1위
13라운드 1차 경연 박완규 지상렬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 김목경 4위
13라운드 2차 경연 박완규 지상렬 아버지 - 김경호 5위

5.2. 나는 가수다 2

오프닝 쇼에서 과거의 악연 때문에 부르지 않을 것 같았던 천년의 사랑을 불렀다. 상당히 힘을 빼고 부른지라 과거의 음원과는 차이가 좀 있다.

5월 첫 경연에서는 봄비로 1위 등극. 이 때 시종일관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인해 나가수 내에서 흑표범이란 별명을 얻었다.

그리고 5월의 가수전에서 절규하는 박완규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하며 부치지 않은 편지를 불러 1위를 차지하며 나가수 시즌 2 첫 이달의 가수로 올라섰다. 1위로 올라서며 한동안 나가수를 떠나게 된 점은 아쉬운 부분. 참고로 나가수 1,2를 통틀어 8번의 경연 중에 1위가 4번이다.

나가수2가 시작했던 5월에 첫 이달의 가수가 되어 퇴장한 이후에 꽤 오랜시간 동안 자료화면으로만 모습을 보였지만 12월 드디어 슈퍼디셈버 2012 가왕전에 모습을 드러냈다. 첫번째 자신의 대표곡 경연에서 2011년 부활과 함께했던 비밀을 불렀는데 평소 박완규의 무대와 달리 시종일관 미소를 지으며 편안하게 노래를 불렀고 마지막에는 "태원이 형 사랑합니다"이란 말로 재기에 결정적 도움을 준 부활 김태원에게 감사를 전했다. 비록 잔잔한 곡이라 6위를 차지했지만 사전 ARS조사에서 예상 가왕 1위를 차지하는 듯 기대감을 높였다.

7강전에선 과거 동생의 앨범 홍보를 위해 라디오 부스에 들렸던 누나 최진실을 추억하며 동생의 곡 SKY(최진영)의 영원을 불렀다.

6강전에선 부활의 드러머였던 김성태가 말했던 대한민국에서 노래를 부르려고 하면 먼저 조용필 노래부터 알아야 한다라는 말에 처음으로 연습했던 곡인 비련을 불렀다.

5강전에서는 소싯적 친구들과 노래방에서 자주 불렀던 라이오넬 리치의 Hello를 부르고 유종의 미를 거두게 되었다.

파죽지세로 5월의 가수까지 됐으나 가왕전 들어서 모니터 평가단의 선호도 조사에서 계속해서 7등을 차지하는 등 성적이 좋지 못했다. 특히 그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목 문제가 계속해서 발목을 잡은 듯. 실제 공연에서 목소리 힘이 상당히 빠져있다는 게 느껴졌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래도 기나긴 여정을 끝낸 그에게 박수를 보내는 한편 상했던 목을 쉬면서 회복해 앞으로 더 좋은 음악을 내주길 기대하는 팬들이 많다.

5.2.1. 나는 가수다 2에서 부른 곡들

<rowcolor=#fff> 경연 노래 순위
오프닝 쇼 천년의 사랑
5월 B조 봄비 - 이정화 1위
5월의 가수전 부치지 않은 편지 - 김광석 5월의 가수
특별 무대 소금인형 - 안치환
특별 무대 Beauty and the Beast - Celine Dion & Peabo Bryson
가왕전 개막전 비밀 6위
가왕전 1주차 영원 - 최진영
가왕전 2주차 비련 - 조용필
가왕전 3주차 Hello - Lionel Richie 명예 졸업

5.3.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5.3.1. 87, 88회

▲ You Give Love A Bad Name ▲ 겨울바다 ▲ 소녀시대
2016년 11월 27일, 12월 4일에 걸쳐 방영된 복면가왕 44차 경연에서 도전! 무한패션왕이라는 가명으로 참가했다. 의도적으로 김치 담그는 아줌마 컨셉의 의상을 입고 출연했는데 이미 목소리만 듣고 네티즌들은 "완규 형님 나오셨네"라는 반응이었다. 의상에 대해서 본인 말로는 설마 그 건방진 박완규가 저런 의상을 입고 나왔겠냐라고 생각할 줄 알았다고 밝혔으나 효과는 없었으며, 또 다른 이유로는 편찮으신 어머니가 자신이 TV에 나오는 모습을 보고 많이 웃으시길 바라는 마음에 나왔다고 밝혔다.

특이한 점으로, 그는 이 날 2라운드에서는 본인의 주전공인 록발라드 곡 대신에 발라드 곡을 불렀고 3라운드에서는 상대가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를 부르며 전력 투구를 할 때 본인은 이승철소녀시대를 부르고 춤 추면서 놀다 가서 시청자들은 완규 형님 놀러 마실 나오셨다는 반응이었고, 출연 목적이 어머니에게 즐거움을 드리자는 것임을 생각하면 납득이 가는 선곡이었다.[79]

또한 얼마 전에 어머니가 쓰러지셔서 병원에 입원을 하셨는데, 본인은 미국 스케줄 때문에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으며 어머니가 방송에서 노래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하셔서 겸사겸사 나오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 와중에 막내 아들이라는 것을 밝히며 현장을 놀라게 하기도... 그리고 팬들은 그의 목 상태가 이전보다 많이 호전된 것 같다며 다행이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 뒤 46차 경연에서 판정단으로 참여해서 활약했다.

5.3.2. 321, 322회

▲ Endless ▲ 너를 품에 안으면 ▲ 너를 위해
2021년, 9월 5일, 9월 12일에 걸쳐 방영된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161차 경연에서 밤을 지배하는 목소리 굿나잇이라는 가명으로 재도전해서 이전과 같은 성적을 받았다.

정체를 밝힌 뒤 자신이 평소 자주 입는 바지와 신발을 입은 것 때문에 정체를 빨리 들킨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으며, 락커는 늘 고음 위주로 지른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 나왔다고 밝혔다.

참고로 이번 경연에서는 같은 그룹 보컬 출신 가왕이 판정단에 있었는데, 1라운드에서 그의 노래를 한 소절 듣자마자 "숨길 생각이 없어요"라는 말과 함께 반가워 하는 기색을 보였다. 또한 예전에 자신을 응원하고자 굿나잇이 객석에서 음악을 함께 들어줬다며[80] 힘을 보내드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굿나잇의 무대를 보았다고 했다. 이후 그가 정체를 공개했을 때 옆자리에 있었던 또 다른 가왕 출신 판정단과 같이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3라운드 곡인 '너를 위해' 는 칩거 중인 임재범이 다시 세상에 나왔으면 하는 의미로 선곡했다고 개인방송에서 밝혔다.

5.3.3. 경연곡 목록

도전! 무한패션왕
<rowcolor=#fff> EP. 방송 날짜 곡명 원곡자 VS. 득표수
44-1 2016년 11월 27일 You Give Love A Bad Name Bon Jovi 가왕 돼서 만나요 제발~ 복면스타 64
44-2 2016년 12월 4일 겨울바다 푸른하늘 복면매거진 2580 53
44-3 소녀시대 이승철 역도요정 김복면 44
밤을 지배하는 목소리 굿나잇
<rowcolor=#fff> EP. 방송 날짜 곡명 원곡자 VS. 득표수 환산
161-1 2021년 9월 5일 Endless 플라워 아침을 깨우는 목소리 굿모닝 19 90
161-2 2021년 9월 12일 너를 품에 안으면 컬트 왜 이래~ 나 이제~ 가왕 된 걸까~ 아틀란티스 소녀 17 80
161-3 너를 위해 임재범 빈대떡 신사님 하이~ 이젠 가왕석과 바이 하세요~ 하이힐 10 47

6. 여담

6.1. 스덕

그의 스타크래프트에 대한 관심이 처음 알려진 것은 2011년 3월 24일 라디오 스타 당시, MBC GAME의 <아이유의 스타포유>를 챙겨본다며 자연스레 언급됐는데, 스타는 아들과의 소통을 위해서 시작했다고 한다.[90]

2021년 1월 개인 유튜브에서 좀 더 자세하게 썰을 풀었는데, 스타크래프트는 1999년 천년의 사랑 활동 무렵에 알게 되었지만 게임을 하지는 않았고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건 2006년 솔로 4집 발매 이후라고 한다. 이때 스타에 빠지지 않았으면 더욱 폐인이 되었을 거라며 힘든 시기에 위로가 되었던 스타에 대한 애정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그리고 2011년 4월 9일에 열린 신한은행 위너스리그 10-11 KTSKT의 결승전을 직관하기 위해 현장에 나타났다.# 평소에 김택용의 팬이었으며 SKT가 우승하면 김택용을 직접 만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1세트가 PC 문제로 지연되자 "결승전 초대가수 지나에게 독설을 날리러 왔다", "지연되는 시간 동안 무대 위에서 공연이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니냐"는 드립도 터져나왔다.

이후 김택용이 켠김에 꼼까지 레이드를 성공, 팀의 우승을 이뤄내면서 이 둘은 직접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택용 씨는 평가가 안돼 그리고 켠김에 왕까지에서 김택용이 박완규를 응원하러 오면서 조우! 걸그룹을 만난 것처럼 기뻐하는 박완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노래할 때의 과묵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수줍게 김택용을 안아보며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은 좋아하는 연예인을 만난 소녀팬이 따로 없다.

김택용 빠돌이(...).

마이 스타리그 경인지역 예선에 참가했다고 한다. 1차전에서 토스를 상대로 7배럭하다가 광탈했다. 종족은 테란. 스갤에서는 벌처를 잘 탈 얼굴이라며 벌처를 쓰는 행위를 '완규질' 이라고도 부른다.

서울 지역 예선에서는 송병구와 특별 해설로 참여해서 송병구에게 성격이 좋지 않다는 독설을 날렸다.

홍진호가 은퇴하는 날에 참석해서 직접 노래를 불렀다.# 참고로 이때 김택용이 진 경기 중 유일하게 박수친 것은 바로 2009년 6월 20일에 열린 황색혁명이었다!

그리고 온게임넷 랭킹쇼에 나온다고.

2011년 8월 5일 벌어진 임진록에 나와 홍진호의 팬임을 다시 한 번 인증, 여기서 스타크래프트 2 역시 플레이하고 있음을 밝혔다. 현재 골드 리거인데 본인은 다이아 리그 정도의 실력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홍진호에게 드론이 화염차를 둘러싸면 어떻게 하냐는 면박을 줄 정도인 걸 보면 스타 2 역시 기본적인 상성 관계는 파악할 정도로 한 모양.

2011년 9월 17일 열린 진에어 스타리그 결승전의 초대 가수[91][92]로서 결승전 전의 축하 공연을 하였다. 가수로서의 그의 내공을 느낄 수 있는 멋진 무대였다는 평.

여러 e스포츠 관련 언론과의 인터뷰를 보면 그가 얼마나 e스포츠를 사랑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요즘에는 거의 e스포츠의 큰 형님이 되어가는 중이다. 박완규, "위기의 e스포츠, 선수와 팬들에게는 죄가 없다"

2011년 11월 켠김에 왕까지 2주년 특집에 홍진호와 같이 나왔다. 하라는 게임은 안 하고 잠자고 훈수나 두다 결국 홍진호가 깨서 끝.

그리고 라디오 스타에서 김경호가 한 번 더 박완규는 게임을 좋아한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박완규가 택신 화이팅이라고 쓴 영상도 방송에 탔다.

나는 가수다에서 신성우의 '내일을 향해'를 고르고 7위를 한 주에도 이틀 뒤에 용산으로 와 김택용의 경기를 관람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결과가 나오지 않아 아무도 몰랐겠지만 나가수가 방영되자 진정한 택빠라는 평가가 줄을 이었다.

2012년 3월, 평소 응원하던 팀인 SKT의 응원가를 불러 공개했다.

2012년 3월 22일 기사가 떴다. 중단되었다가 이제 열린 스타리그를 후원하신단다. 기부금이 될 지, 아니면 다른 방법일지는 기자회견을 가지겠다고. 스타판이 어느 정도 시한부라는 소리까지 나돌고 있던 마당에 이런 발언은 스덕들에게는 그야말로 가뭄에 내리는 단비. 인터넷에서는 스타를 무시하는 사람들과 스타 팬들의 말이 오가고 있지만 스타를 모르거나 안 좋아하는 사람들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멋지다며 박완규에게 박수를 보내기도 한다. 이제 명실상부한 e스포츠의 큰 형님이자 대인배가 되었다. 스덕들은 찬양하도록 하자. 후원 내용은 재능기부 형태의 오프닝곡 기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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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8일에는 KeSPA의 홍보대사로 위촉되기도 했다. 이 날 브루드 워 마지막 프로리그 결승전이 열렸는데 SKT를 응원하기 위해 직관했다. 7세트까지 가는 동안 치열한 접전이 펼쳐졌으며, 결국 KT를 꺾고 SKT가 우승했으니 만족스러웠을 듯.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김택용이 에이스 결정전에서 이영호와의 혈투 끝에 역전승을 거뒀는데, 김택용이 관객석 앞에 드러눕는 세리머니를 한 후 직관하던 박완규와 포옹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슈퍼주니어규현이나 희철 등을 제외하고는 연예인들이 방송에서 스스로를 게임팬이라 밝히는 경우가 굉장히 드문 편인데 이에 반해 박완규가 보여주는 관심은 이례적인 수준이다. 언론이나 정치권에서도 게임의 폭력성 등을 들먹이며 사회에서 묻어버리려고 하는 판국에 당당히 E스포츠의 팬이라고 밝히는 박완규의 진심덕에 이미 E스포츠의 큰 형님으로서 대접받는다.

[kakaotv(42000473)]

거기다 2012 티빙 스타리그의 오프닝이자 헌정곡인 'Here I Stand' 를 불러서 스덕들은 눈물만 펑펑... 작사, 작곡은 예레미의 조필성이 했다. 티빙 스타리그의 결승전 행사에도 당연히 등장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결승전 날짜가 변경되면서 박완규 본인의 스케줄과 어긋나는 바람에 출연하지 못했다.

거기다 병세가 악화된 우정호를 남몰래 도왔다는 기사까지 뜨면서 e스포츠를 사랑하는 그의 마음에 모든 스덕들이 또 한 번 감동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정호는 병세가 악화되어 2012년 8월 23일 오전 1시 경에 세상을 떠났다. 박완규는 이 소식을 접하면서 뉴스엔 기사를 통해 '오전께 우정호 사망 소식을 접했다. 훌륭한 프로게이머였는데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돼 안타까운 마음 뿐이다. 투병 과정에서 더 큰 도움을 드리지 못해 미안하다'란 말로 그의 마음을 전했다. 더구나 전날 스갤에 우정호 선수의 병세가 악화되었고 그러니 후원을 부탁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사이트로 퍼지기도 전에 우정호 선수가 생을 마감하면서 더욱 안타깝다는 의견이 많았다. #

온게임넷의 신설 코너 박완규의 스2Like에 출연함이 밝혀졌다. 첫 방송은 2012년 9월 11일 저녁 7시. 내레이션은 신인 투니 8기 성우 김정훈.

유튜브 2012년 9월 24일 우정호의 추모 앨범을 발표했다.

박완규로 추정되는 영상 최근 이 영상으로 인해 네이버 연관 검색어에 뜰 만큼 배틀그라운드를 하는 것으로 추정되었으나 디젤매니아란 카페에 박완규와 카톡을 했던 회원이 박완규 본인은 FPS를 싫어한다고 말하여 영상 속 목소리는 박완규가 아니게 되었다.

2018년 12월 30일 신한금융투자 무 프로리그 시즌2 결승전의 초대 가수로 확정되면서 Here I Stand를 불렀다. 현장의 반응은 매우 뜨거웠다.

빨무 비제이인 인피쉰의 팬으로 종종 생방송 중 멘트를 남기거나 후원금을 쏘기도 한다. 스타 실력은 헌터에서 입구막기로 컴퓨터를 이기는 수준이라고 한다. 주 종족은 프로토스.

2020년대 들어서도 김택용의 유튜브에 댓글을 다는 등 식지 않은 팬심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스타크래프트 관련 유튜버인 감염된 제라툴과의 인터뷰도 수락할 정도.

다만 2021년 6월에 밝혀진 아프리카TV 코인 게이트 사건에 김택용, 이영호, 염보성 등 전 프로게이머 BJ 다수가 엮여있다는 걸 알게 되자 착잡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특히 김택용의 현역 시절부터 유명한 팬이었는데 그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김택용이 모든 욕을 감내하고 속죄하고 돌아온다면 팬으로 남겠다면서 끝까지 김택용을 놓지는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해당 글

이후 2022년 1월 23일, 김택용이 복귀하자 1월 29일에 김택용의 방송에 들어가 별풍선 1002개를 쏘면서 '택신 화이팅'이라고 하면서 용서하는 모습을 보였다.

7. 관련 문서



[음력] [2] 청주는 밀양 박씨 집성촌이다.[3] 청주 출생이지만 학창 시절은 평택에서 보냈다.[4] 규정공파 25세손, 혁거세 70세손 ○규(○圭) 항렬이지만 항렬자를 쓰지 않았으며 발음이 같은 다른 한자를 썼다.[5] 2020년 1월, TV는 사랑을 싣고에 출연하여 양친의 성명을 공개했는데, 아버지의 이름이 이름인 지라 전화로 "언제 이렇게 대세가 되셨어요?"라고 했다고. #[6] #[7] 개인 유튜브 채널이다.[8] 김경호와 같이 진행하는 유튜브 쉰호규전 채널이다.[9] 정확히는 7개. 당시 박완규 전문이었던 레드 제플린의 2곡 Rock and Roll과 Black Dog, 부활 2집 노래 회상 I, 슬픈 사슴, 사랑할수록, 자유곡 최재훈의 널 보낸 후에. 출처.[10] 사실 2020년 11기 보컬로 복귀한 지금도 김태원한테 사랑할수록을 못 부른다고 디스당하고 있다.(...) 다만 90년대보단 톤 자체가 많이 중후해져서 훨씬 들을 만하다.[11] 부활 리더 김태원은 프로듀서로서는 일견 독선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작곡은 철저한 보컬 최적화의 원칙을 지킨다. 보컬마다 두드러지는 강점이 하나씩 꼭 있는데, 그 강점을 최대한으로 살리는 느낌. 부활 노래의 리메이크가 생각보다 어려운 이유일지도.[12] 특히 당시 아내는 임신 중이었다.[13] 그가 말하기를 청바지를 많이 팔기는 했지만 돈은 그렇게 벌지는 못했다고.[14] 본인 말로는 협박.[15] 하지만 이 합격의 의미는 1차 합격이었고, 후에 최종 오디션에서 판단한 것으로 추정된다.[16] 동네에서는 "00동의 아들 박완규"라는 식으로 난리가 났다고 한다.[17] 김태원은 레드 제플린Rock and Roll를 부르라고 했고, 당시 박완규의 손에 들고 있던 물컵의 물이 쏟아질 정도로 긴장했다고 한다.[18] 여기서 불이란 박완규를 뜻한다.[19] 그 스파르타식 녹음으로 스트레스를 받아서 살이 45kg까지 빠졌다고 한다. 굳이 BMI로 환산할 필요 없이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빼도박도 못할 저체중. 지금은 꽤 살이 찐 편이지만 그 당시 앨범 자켓 사진이나 라이브 영상을 보면 지금과 동일인물이 맞나 싶을 정도로 빼빼 말랐다.[20] 정확하게 "이런 시간엔 더 그리워" 라는 소절을 부르는데 이런 시간엔~ 다시. 이런~ 다시. 다시. 다시..식으로 녹음이 지체된 것.[21] 그런데 박완규가 부활에서 탈퇴한 뒤 어떻게 살았는가를 생각해보면 김태원의 말이 틀린 게 아니었다. 어찌 보면 선견지명이었던 셈.[22] 부활 5집 불의 발견은 부활의 디스코래피 중 기존 색깔과 가장 이질적이면서도 한편으론 서구적 메탈의 느낌을 잘 살린 높은 완성도를 지닌 명반으로, 박완규가 가진 보컬리스트로서의 역량을 최대한으로 끌어낼 수 있었다. 다만 박완규의 탈퇴로 인해 단발성 실험으로 그치고 말았다.[23] 초창기의 박완규 노래 스타일을 볼 수 있다.[24] 5집에서 리메이크 녹음[25] +1키 버전[26] 네버엔딩 스토리의 이승철은 복귀가 아닌 객원이었다.[27] 단 이때부터 한국에서 박완규만 가능하다고 평가하던 중고음->고음역대를 자유로이 오가며 물 흐르듯 완벽하게 뽑아내던 특색이 사라졌다고 볼 수 있는데, 곡 구성도 진성으로 무난히 전개하다 클라이맥스에 고음역대를 분리해서 내지르는 형태(전형적인 한국형 락 발라드)로 바뀌어 버리는 바람에, 흔해빠진 한국형 락 보컬로 전락했다고 안타까워 하던 헤비메탈 매니아들이 많았다.[28] 가수 장혜진의 남편 강승호가 사장으로 있다.[29] 박완규가 방송에서 밝히길 김종서가 자작곡 '대답없는 너'로 락커로써 최초의 상업적 성공을 이뤄내자, 자신도 동경했던 김종서의 음악과 유사한 곡을 부르면 록을 하며 먹고 살줄 알았다고 한다. 실제로 국내에서 '록' 장르로 가장 큰 인기를 얻은 가수가 바로 김종서. 캔 엔터테인먼트로 간 이유도 김종서가 솔로로 성공했던 소속사여서 그랬다.[30] 참고로 그 소속사의 간판 가수였던 먼데이키즈의 이진성은 똑같이 시달리다 한참 전에 나가서 RBW에 있다가 소속사 차리고 활발히 활동 중이고 장혜진은 깡통 사장과 이혼 후 역시 음악 활동 중이며 깡통 사장은 현재 기획사가 무너지고 있는 등 처참해졌다.[31] 빙초산을 마신다고 목이 좋아지거나 음역대가 바뀌진 않는다. 되려 몸 자체가 손상될 수 있다.[32] 2000년에 '뽀뽀뽀' 를 하드코어 버전으로 부른 그 펄럭펄럭이 맞다.[33] 이 곡은 메이저 데뷔 전에 부른 곡이다.[34] 관련 인터뷰를 보면 투니버스도 자주 보는 편이고 본인이 곡을 담당한 카우보이 비밥도 나름대로 감명 깊게 보았다는 듯.[35] 4집 중 세상을 외치다, promise, 어둠 그 별빛, rock never die를 불렀다![36] 후일 김태원은 남자의 자격 밴드 편을 위해 쓴 곡에도 '사랑해서 사랑해서' 라는 제목을 붙인다.[37] 목 상태가 안 좋음을 본인도 느껴 병원에 가서 정확하게 목상태를 알아보려 했는데, 성대 사진을 찍은 의사가 눈물을 지을 정도로 최악이었다고 한다. 이어서 그 의사가 "당신이 이런 목 상태로 가수를 하고 있다는데 나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라고까지 했을 정도였다.[38] 02년도에 부른 것으로 -1키이다.[39] 김현식 원곡[40] 사실 박완규와 김경호는 김경호 피셜 수십년을 봐 온 형 동생 하는 사이다. 다만 김경호가 무릎팍도사에 나와서 얘기한 바에 따르면 나는 가수다 시절 김경호가 무대에서 잠시 춤을 춘 적이 있었는데, 박완규가 이걸 가지고 락커가 무슨 댄스냐며 잔소리를 하긴 했다는 듯. 이후 박완규가 나는 가수다 콘서트 무대에서 김경호와 똑같이 춤을 추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41] 보컬 스타일도 스타일이지만, 살이 많이 쪄서 외견도 많이 달라졌다.[42] 이와 관련, 나는 가수다 '하망연' 무대 유튜브 베댓 중엔 "젊을 땐 독수리 같은 고음으로 창공을 누비더니, 늙어서는 범 같은 중후함으로 대지를 누비네."같은 류의 글도 있다.[43] 대중가수의 길은 계속 걷겠다고 했다. 즉 이전의, 어찌보면 편협했다고도 볼 수 있는 록부심 넘치던 시절을 버리고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하겠다고 선언한 셈이었다. 물론 이는 팬들에겐 이른바 '벌쳐완규'라고도 불리는 90년대 초고음 특화 시절의 록커 때보단 고음역대가 내려왔기 때문도 있을 것이다. 다만 본인은 저음이 안되던 시절이라서 음역대 자체만 놓고 보면 오히려 지금이 더 넓어졌다고 한다.[44] 박완규와 달리 미성을 가진 아들의 목소리와 비교해보면 좀 더 알기 쉽다.[45] 이 때문인지 락커로 전성기 시절 가성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그 이유가 가성 자체가 성대의 표면이 매끄러워야 잘 나오는 소린데, 박완규는 성대가 손상을 입어서 불규칙했기에 가성 자체가 나오기 힘들었던 것으로 추정하는 의견도 있다. 그래서 남아있는 라이브 자료들을 보면 샤우팅으로 올려야 하는 3옥타브 파 이상의 초고음들은 의외로 찾기 어려운 편이다. 애초에 가성이 잘 안나오는데 가성이 나오는 게 기본 전제인 샤우팅을 하긴 무리가 있었을 것이다라는 의견.[46] 그래서 그의 지론이 '고음은 100% 타고나는 것이다'이다. 그의 입장에선 당연한 것이, 애초에 본인도 그런 케이스고, 가수 지망생인 그의 아들도 상당한 고음형 보컬이기 때문이다.[47] 김태원클라쓰에 출연해서 한 말에 따르면 2살도 안 되던 당시에 액체형 파리약을 마시면서 독한 약성분 때문에 기도가 타버렸다고 한다. 위 세척으로 약 성분을 닦아내고 했으나 의사가 목소리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을 거라 하며 그 후 목소리가 높은 목소리에 고정되어 버렸다.[48] 불후의 명곡에서 이 곡을 선곡한 샤이니 종현에게 대놓고 키 낮추라고 말하기가 뭐해서 완곡하게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공연 중 여러 번 삑사리가 났다.[49] 알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박완규의 성대는 생활고로 인해 분유값이라도 벌기 위해 노래를 부르다가 성대결절을 제대로 치료하지 않아 목이 망가진 것이다. 의사가 살고 싶으면 노래하지 말라고 했을 정도였다.[50] 신해철의 이야기에 따르면 '자기가 어디까지 올라갈 지 자기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51] 무서운 게, 박완규는 가성이 안 나오는 사람이다.[52] 여자 중 가장 높은 성부에 해당하는 소프라노 성종조차 1옥타브 중반까진 내려가는 경우가 대다수다.[53] 윤종신 역시 데뷔 초에 허스키함이 1도 없는 무공해 목소리라는 찬사까지 받을 정도로 한국 대중음악계의 한 획을 긋는 미성에서 흡연과 음주의 영향으로 점차 톤이 낮아지고 목소리가 많이 바뀌었다.[54] 그 어렵다는 천년의 사랑보다 한 키 더 높고, 고음 빈도도 더욱 많다.[55] 비슷한 음역대의 곡으로는 대표적으로 더 크로스의 Don't Cry의 '영원히' 부분. 극적인 부분에서 샤우팅으로 외치는 음으로 이 노래도 어렵다는 평가를 받지만 믿음은 이 극적인 음을 그냥 쉬지 않고 낸다.[56] 3옥타브가 노래 내내 111번이나 나온다. 참고영상[57] 그럴 만한 것이 난이도가 높다고 해도 인기있는 노래였다면 키를 낮춰서라도 라이브를 했을 것이다.[58] 1998년에 딱 한번 라이브로 불렀다고 한다.[59] 보통 성인 남성의 목소리를 가진 이승철, 김재기와는 다르게 그 시절 박완규는 남성보단 여성의 성종으로 분류해야 될 정도의 엄청난 하이톤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는 당연한 것이다. 성대가 망가지고 나이도 많이 먹은 현재에도 3옥타브 도(C5) 정도는 기본으로 찍어주는 정도이니 부활 5집 수록곡 작은 너에게나 마술사 같은 곡들을 들어보면 알겠지만, 그 시절 박완규는 문주란처럼 콘트랄토 성종을 가진 웬만한 여성들보다도 하이톤이었다. 남성 중에서 이 시절 박완규와 가장 비슷한 성대를 가진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김창열이다. 둘 다 육성으로 낼 수 있는 한계음이 매우 높아서 3옥타브 도(C5), 레(D5) 정도는 정석적인 두성 발성없이 육성을 많이 사용하며 거뜬히 소화하는게 가능하며, 고음을 여자들처럼 진한 질감으로 낸다.[60] 음이 꺾인 푸 부분이 3옥솔이고 음을 끄는 아~~~ 부분이 3옥파[61] 천년의 사랑도 2002년까지만 원키로 불렀다. Lonely Night 역시 2003년부터 2키씩 낮춰서 부르기 시작했다.[62] 대표적으로 김장훈이 있다.[63] 이 노래는 당장 하이라이트가 시작하기도 전에 바리톤의 파사지오 구간인 2옥타브 파♯(F♯4)가 난사되고, 버즈겁쟁이의 최고음인 2옥타브 라♯(A♯4)이 곳곳에 박혀있다.[64] 2003년에서 2006년 기준[65] 그와 반대로 동료인 김경호는 샤우팅은 점점 좋아지는 반면 진성 음역대는 떨어지고 있다.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진성 음역대 자체는 박완규가 훨씬 높았지만 김경호도 3옥타브 파까지 낼 수 있었다. 다만 박완규는 성대결절이 아니라 목이 심하게 부어오르고 피가 고여있는 상태였지만 김경호는 성대결절이 온 상황이라 다르며, 김경호는 카랑카랑한 미성이라는 본인만의 강력한 장점이 있다.[66] 당장 목소리만 들어봐도 전성기 시절보다 두꺼워졌다. 이는 박완규도 마찬가지지만 박완규는 부워 오른것과 살이 찐 것이 큰 이유였다. 물론 박완규도 오랜 시간동안 안좋은 목에 무리를 줘서 그 과정에서 성대결절이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앞에서도 서술했듯이 그는 이미 고등학생때 피를 토해낼 정도로 목이 상했고 그 상태에서 노래를 했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는 목이 안좋아도 초고음을 넘나들수 있었던 성대였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성대가 점차 붓고 나으면서 목소리가 두꺼워졌지만 살을 빼고 목 상태가 좋아지면서 어느 정도 얇아진 것을 보면 확실히 부어있던게 컸다.[67] 그럼에도 김경호도 성대결절 이후로 3옥타브 미까지 냈었지만 샤우팅을 다시 시작하면서 박완규와는 다르게 음역대가 점차 떨어졌다. 제2의 전성기 시절에는 두꺼운 목소리로 고음을 할 정도로 피지컬이 좋았지만 이제는 가볍게 내도 3옥타브 부분에서 플랫이 많이 난다.[68] 이는 힘이 약해져서도 있겠지만 김태원이 원하는 감정을 내기 위해 이렇게 부르는 것처럼 보인다.[믿음] [70] 태양의 꿈 원키 라이브 도중 음이탈이 되서 3옥타브 라# 음이 나왔다. 가성구가 손상되서 가성을 못쓴다고 알려진 박완규가 음이탈로 인해 가성이 나오는 거의 유일한 영상이다.[71] http://www.youtube.com/watch?v=NZBOCh_jb8g[72] 예수 역을 맡은 적이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머리가 길어서. 이에 이적은 박완규가 머리를 잘랐으니 자신이 머리를 기르겠다는 개드립을 쳤다.[73] 김태원도 2008년 라디오 스타에 출연한 후 인지도가 높아졌다.[74] 현진영도 폐활량을 늘리고 울림통을 바꾸기 위해서 살을 찌웠었다.[75] Lonely Night의 최고음은 대중가요 수준에서 넘사벽의 고음은 아니지만 문제는 3옥타브 초반대의 고음이 폭포수처럼 내리꽂히는 게 문제다. 이 상태를 유지하면서 노래를 불러야하기에 사실상 원키는 여자 노래나 다름없다. 부활의 노래가 늘 그렇듯, 최고음이 높아서 어려운 게 아니다. 어려운 음역대를 계속 유지하기 때문이지..실제로 웬만한 가창력 좋은 여자보컬들도 이 노래는 원키로 하거나 1키 정도만 올리며 심지어 반대로 1키 낮추기도 한다.[76] 갑자기 웬 교수가 박완규에게 독설을 퍼붓나 싶겠지만 장기호 교수는 일찍이 빛과 소금의 밴드로, 박완규보다 훨씬 이전에 데뷔한 선배이다. 김현식의 밴드에 속해있던 시절부터 치면 거진 10년 선배로 대선배가 된다. 그 본인도 한 가닥한 가수였고 하니 나가수를 비판하는 박완규에게 한 소리 할 수 있었던 것이다.[77] 국내의 전설적인 3대 헤비메탈 밴드 부활, 시나위, 백두산의 기타리스트, 그리고 아시아 최상위의 락 보컬로 평가받았던 임재범이 함께 한다는 것이다.[78] 일반 대중에겐 조금 생소할 수 있다. 이런 곡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박완규가 대장금을 280번 이상 돌려봤을 정도로 대장금의 광팬이기 때문이다.[79] 연예인 판정단 기준으로는 1표 앞섰다.[80] 불후의 명곡에서 처음 경연했던 날을 말하는 듯 하다.[81] 실제로 아들이 하는 유튜브를 보면 살던 집을 옮기는 영상도 있는데, 이때 보여진 집의 크기를 보면 상당히 큰 편이다. 아무래도 박완규가 굉장히 많은 재정지원을 해준 듯 하다.[82] 2022년 4월 23일 방영분.[83] 이 소속사는 박완규를 연대보증으로 세우면서 집을 빌려줬는데, 그걸 빌미로 박완규가 돈을 요구하면 집에서 쫓아내겠다는 식으로 계속 박완규를 착취했고, 결국 이를 버티다 못한 박완규가 아내와 아이들을 원래 살던 낡은 빌라로 다시 돌려보내면서 아내와 별거를 시작했다고 한다.[84] 실제로 과거 박완규는 이혼 후에 나온 방송에서 재결합 한다면 자녀들이 오작교가 되주었으면 한다고 언급했었다.[85] 경기 평택시(이전의 송탄시)의 태광중학교-태광종합고등학교 출신이며, 예전 태광종합고등학교는 종합고등학교였기에 실업계 과정이 있었지만 현재는 인문계 고등학교로 전환이 되었다.[86] 동갑으로는 김서형, 소연, 임창정, 김선아 등이 있다.[87] 실제로 2020 가온차트 뮤직어워드에 강형욱과 함께 시상자로 나온 자리에서 이 드립을 쳤다. 박완규: 장모종 락커 박완규입니다. 강형욱: 단모종 훈련사 강형욱입니다.[88] 방탄 록커 성인단[89] 보통 부모-자녀가 출연하는 방송에선 긍정적인 방향으로 플롯을 짜서 대충 봉합을 하는 게 일반적임에도 불구하고, 박완규는 박이삭이 음악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은 시점부터 방송이 끝날 때까지 시종일관 반대를 해왔다.[90] 다른 설에 대해서는모 커뮤니티 게시판 증언을 첨부한다.[91] 하지만 본인이 온게임넷 관계자에게 직접 축하 공연을 하겠다고 통보&로비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행적을 보면 진짜 그럴 수도 있다.[92] 단독 초대 가수는 아니고 그 앞에 신인 걸그룹 에이프릴 키스가 나오고 두 번째 무대가 박완규였다. 커뮤니티 평은 '에이프릴 껒'. 무대 자체가 비교가 안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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