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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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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김장훈 (金章勳金長훈)
출생 1963년[1] 8월 14일 ([age(1963-08-14)]세), 서울특별시 마포구
신체 185~187cm[2], ??kg[3][4], O형
학력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초등학교
서울 광성중학교
마포고등학교 (중퇴)
고등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
경원대학교[5] 영어영문학과 (중퇴)
직업 가수, 방송인, 공연 기획자, 수필가, 사회운동가[6], 배우, 유튜버, 강연가, 사업가(의류 및 화장품)
특기 하모니카 연주, 무대 연출, 김국진 성대모사, 언어유희[7], 소리 내지르기, 깡[8], 언변[9]
장르 발라드, 락, 댄스 팝[10]
데뷔 가수: 1991년 1집 앨범 '늘 우리사이엔'
집필활동: 2016년 《나를 도발한다》
유튜버: 2019년
별명 숲튽훈(김튽훈, 숲장훈)[11], 독도지킴이, 갤주님[12], 신생아[13], 기부천사[14]
가족 어머니 김성애[15], 누나 2명
소속 공연세상
종교 개신교(예장중앙)[16]
본관 김해 김씨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1. 소개2. 심각한 발성 문제3. 숲튽훈으로 기사회생, 그리고 컨텐츠화4. 음반 목록5. 콘서트6. 김현식과의 관계7. 유희열과의 관계8. 싸이와의 관계9. 사건사고10. 히트곡11. 연기 활동12. 숲튽훈으로서의 유튜버 활동13. 저서14. 성향15. 기타

1. 소개

대한민국의 가수, 방송인, 공연 기획자[17], 수필가, 사회 운동가이자 유튜버이자 강연가.[18] 또 공인으로서의 직업 외에도 개인 사업 역시도 하고 있다. 의류와 화장품 쪽이다. 집시[19]이기도 하다. 음악계에 몸담으며 음반PD이자 싱어송라이터로도 활약했으며 그가 고안해낸 연출은 공연계에 큰 족적을 남기기도 하였다. 긴급조치 19호[20][21]라는 영화에도 출연한 경력이 있으며 그 이후 소박하지만 꽤 자주 주조연을 맡으며 연기 커리어를 이어나갔다. 또한 방송 출연을 적게 하며 공연에 대한 홍보 부족을 인식했는지 유튜브 계정을 생성하여 영상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로써 유튜버로 데뷔하였으며 페이스북에 활발히 홍보했다. 구독의 당위성은 "홍보->구독->공연 관객 수 증가->가격 인하"라는 논리로 퍼뜨리고 있고, 그 효과로 유튜브 구독자 급상승을 이루었다.[본인] 인터넷상에서는 숲튽훈[23]이라고도 불린다. 그가 노래를 잘하던 시절에는 가수 김장훈, 못하는 현재에는 농담삼아 "숲튽훈"이라고 한다. 요새는 "차에 타봐" 등의 괴곡으로 재주목 받은 가수 , "비단길", "이 노래 웃기지" 등으로 흥한 시아준수 와 더불어 젊은 층 사이에서 인터넷 밈이자 개그 요소로 쓰이기도 한다. 실제로 유튜브를 이용하는 어린 층이 댓글을 수백 개씩 달며 핫한 컨텐츠화가 되어가는 중. 김장훈 본인도 이런 상황을 인지하고 있지만, 크게 기분 나빠하는 것 같진 않다. [24]

또한 2019년 데뷔하여 진행한 유튜브 생방송(유튜버 데뷔 후 첫 라이브 방송이다)에서 어떤 시청자가 "숲튽훈에 대해서 알고 있냐"라고 물어본 것에 대한 답변으로 "알고 있으며, 처음에는 조롱조로 시작했으나 이 때문에 몰려온 팬들 덕에 이미지가 좋아진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좋게 생각한다"라고 발언했다. 유튜브의 밈인 "김장훈vs숲튽훈"으로 발성을 선보이기도 하였으며[25] 나중에느 "숲서트"라고 이름붙인 숲에서의 콘서트도 예정중이라고 하니 10대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킨 "숲튽훈"밈에 대해 진심으로 고맙게 여기는 듯 하다. 그러나 본인에 관련된 밈을 100% 숙지한 조혜련과 달리 완벽히 아는 것인 아닌지 나중에 채팅창에 올라온 "으락캬!!" 등의 유행어는 몰라보았다. 또한 방송내내 "숲튽훈"을 "숲장훈"이라고 칭했다. 그러나 점점 그 밈에 대해 정보가 늘어가는지 현재는 "숲튽훈" 컨텐츠에 대해 꿰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프로필상으로는 1967년생이지만 이는 실제 생일이 아니라는 것이 기정사실화 되어있으며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그의 출생년도가 밝혀진 적이 없으나 실제로는 그보다 더 위라는 증거들이 많다. 그 중 결정적으로 봄여름가을겨울1962년생인 김종진유희열의 라디오천국에 나와 '장훈이가 나보다 1살 어리걸랑요?'라고 말한 걸로 보아 아마도 1963년생이 정확한 출생년도로 추정된다. 물론 김장훈도 방송에서 봄여름가을겨울에 관련된 얘기를 할 때는 '종진이 형'이란 표현을 쓴 적이 있다. 김장훈 다음으로 기부를 많이하는 박상민이 1964년생인데 김장훈을 언급하며 "내가 기부하는게 알려지나 싶으면 그 형이 한번에 기부를 너무 많이하잖아요"라고 한 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1963년생인게 기정사실화 되었고 1963년 생이라면 2017년 기준으로 53 ~ 54세이므로 1963년생이라는 것이 유력하다[26]. 가수 이승환1965년 생인데, 라디오 방송에서 형이라고 불렀다가 혼났다는 얘기도 있다. 이렇게 수많은 설이 있지만 상술 했듯이 2012년 당시 영상을 보았을 때 49세로 나온걸 보면 1963년생이 맞다. 주민등록상으로 1966년생이나 본인 주장으로 1962년생이라고 하는 임재범의 경우 다른 1962년생을 형님으로 모시거나 몇년마다 주장하는 나이가 수시로 바뀌어서 신뢰성이 다소 떨어지지만, 김장훈의 경우 다른 연예인들이 일괄적으로 1963년생으로 대하는 걸 보면 방송용 나이만 다를 뿐 정확한(주민등록상) 나이가 1963년생일 가능성이 높다. 이승철만 하더라도 슈퍼스타K 심사 중 김장훈 얘기를 하며 자연스럽게 "장훈이 형"이라고 지칭했는데, 한살 많은 이승환에게도 형이라고 잘 안 할 정도로 자존심이 세다.[27] 김장훈이 확실히 몇살 많다는 확신이 없으면 형이라고 할 가능성이 적다.

어린 시절 몸이 매우 약했다고 한다. 조그만한 감기에도 실신할 정도였다고. 약한 몸 탓에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고 어릴 적부터 생각했고, 그로 인해 중학생 때부터 많은 싸움을 벌여왔다고 한다. 이런 그의 생각은 그가 가수로 데뷔한 이후에도 가요계에서 잦은 문제를 일으키게 되는 원인이 된다. 고등학생 때부터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 연습하던 중 김장훈의 어머니의 친한 지인의 아들인 김현식을 만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두 사람은 가까워지기 시작하며 김현식은 김장훈이 언더에서 데뷔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형편이 어려울 때는 서로의 집에서 자기도 했을 정도라고.

1990년 10월 김현식이 작고한 후 김현식의 사촌 동생[28]으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여러 시상식에서 내 사랑 내 곁에를 대신 부를 인물로 선정되었지만, 스스로가 김현식의 이름을 팔아서 자신이 인기를 얻는 것이라고 생각해 방송을 펑크내면서 7년간 방송 출연을 금지당하게 되고, 결국 1991년에 1집 앨범 '늘 우리 사이엔'으로 언더에서 데뷔했다. 그렇게 방송 출연 금지가 풀린 1998년까지 언더에서 계속 활동하며 500여차례가 넘는 공연을 가졌다. 1998년 방송 출연 금지가 풀린 이후에도 계속 언더로 활동 하려다가 어머니가 고생하는 걸 볼 수 없어 대중가수로 데뷔했다고 한다. 3집까지는 인지도가 낮아서 3집을 낼 때 기획사와의 합의로 직접 앨범 표지에 3집이라는 언급은 못했고 그 대신 그림으로 "삼(인삼)"과 "집"으로 표시했다고 한다.[29] 3집의 타이틀 곡이 그 유명한 노래만 불렀지이다.

4집부터 가난한 가족을 돕기 위해, 그 외에 여러가지 이유로 언더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그래서 대중적인 가수들의 발라드를 받아 부르기 시작했고, 방송에 나가면서 웃긴 가수의 이미지를 쌓았으며, PD와 싸우거나 방송펑크내지 않기로 했다. 대중적인 음악을 할 것, 방송출연 할 것, 싸우지 말 것, 세 가지 약속을 한 후에야 하나음악과 전격 계약했고 이때부터 서서히 곡 인기와 인지도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즉, 한때는 대표적인 기부천사였다.

1998년에 발표한 4집에 수록된 '나와 같다면[30]'이 흥행하면서 무명가수에서 벗어났다.[31]

1999년 발표한 5집의 "오페라[32]"가 2000년 즈음에 라이코스병맛나는 광고에삽입되면서 인지도가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5집 타이틀곡은 슬픈 선물이다.

2000년 6집의 '혼잣말'과 유희열에게 의뢰하여 얻은 '난 남자다'[33]또한 인기를 끌었는데, 이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공중파 방송에서 1위를 해서 화제가 되었다. KBS 뮤직뱅크에서 수상했고, 당시 상대는 S.E.S.의 <감싸 안으며> 였다.

2001년 7집 앨범은 대중적인 히트는 치지 못했지만 마니아 층을 상대로 꾸준히 사랑받았고, 2002년 7월에는 긴급조치 19호의 주연으로 출연하며 영화배우로도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렇게 활동하던 중 2002년 12월 크리스마스 연말 공연 '아듀'를 끝으로 UCLA로 유학을 떠난다 전하고 3년간 소식이 없었다. 그 유학이라는 게 공개 강좌[34] 단 한 과목 들은거지만.... 유학 시절 박경림과 자주 교류했다고 한다.

기부나 독도 알리기 등 사회 운동으로 유명하고 호탕한 퍼포먼스와 곁들여져 전성기 시절에는 굉장한 호감 연예인이었으나, 후술할 싸이와의 갈등, 저작권 문제, 추모식 욕설 사건 등의 구설에도 많이 얽혀 대중적인 호감은 현재 극과 극으로 나뉘는 편이다. 그나마 '숲튽훈' 개그 영상으로 10~20대에게 이름을 알리며 다시 왜곡된 팬층이 모이는 형세다.

2. 심각한 발성 문제

김장훈의 가창력을 깔 때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클립

가창력이 아주 형편없는 가수 중 1명이며, 데뷔 시절부터 가창력이 그렇게 좋다는 평가는 듣지 못했다. 특징이 있다면 진성으로만 노래하는 가수이며[35] 가성구가 손상되어 가성을 거의 쓸 수가 없다. 사실 테크닉적으로 봤을 때는 발성이 안정적이지 않아[36] 소위 말하는 생목 목소리가 나기도 한다.

사실 가수로서의 피지컬은 매우 좋은 편이었다. 굵직하면서 듣기 좋은 음색을 가졌고 폐활량도 좋았으며 음역대도 저음에서 고음까지 매우 넓었다.[37] 성량도 큰 편이라[38] 관객들을 다 사로잡을 정도였다. 문제는 발성이 나쁜 발성의 전형인 인골라[39]라서 음이 올라갈 때마다 목을 조이게 되었고[40] 거기에 술담배까지 즐긴 탓에 늙어서는 타고난 피지컬을 잃어버렸다.

데뷔 초기~ 중반기였던 2000년대 초반까지는 타고난 음색과 젊음에서 나오는 피지컬이 받쳐주었고, 또 영향받은 가수가 에어로스미스의 스티븐 타일러 등의 해외의 락커들과 김현식[41], 전인권 등의 국내의 철금성(쇳소리)나는 가수들이어서 가성을 거의 구사하지 않는 스타일을 무기로 꽤 특색있고 괜찮은 가창을 들려주었다. 2000년대 중반까지는 특유의 반가성과 가성도 나름 안정감있게 나왔다.

문제는 이후에 여러 차례 목이 망가지면서 어느 순간부터 가성을 구사하려고 해도 소리를 뽑아내기가 쉽지 않아지면서 가창력이 완전히 망가졌다는 것. 본격적으로 목이 망가진 것은 90년대 말부터로, 그는 이미 1998년 성대결절 판정을 받았었다.[42] 성대에 혹이 나 있어서 그 혹을 때어내야 했는데, 김장훈은 소리를 심하게 지르면 떨어질 것이라 생각하고 수술을 거부하고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결국 이로 인해 2000년대 초~중반에 들어가며 가성을 못 낼 정도로 성대가 상해버렸다.

슬슬 목 관리에 들어가기라도 해야겠지만 본인의 음주, 흡연 습관까지 더해져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 거기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9집 활동과 2009년의 창법 변화이다. Honey가 수록된 9집 활동 때 목에 무리가 가는 창법을 자주 구사한 바람에[43] 목이 심하게 망가졌고, 2009년 후반부터 목에 무리를 덜 주기 위해서인지 혹은 평소에 존경하던 전인권의 영향인지 고음부를 얇게 지르는 창법으로 바꾸었다.[44][45] 이러한 바뀐 창법으로 2011년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은 라이브를 선보였으나 2012년~2013년 즈음에는 실력이 훅 가버렸고 라이브가 많이 불안해졌으며 2015년부터는 아예 고음의 음색이 흔히들 말하는 소리로 변해버렸다. 이은미가 '언더 시절에는 음 하나 더 내보고 노래 좀 더 잘해보려고 선배들한테 묻고 다니던 게 방송에 맛들려서 노래 연습 안 한다'고 깠다가 김장훈이 인터뷰에서 '목이 망가질대로 망가져서 노래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이라고 받아쳤을만큼 목이 심각하게 망가진 것을 자신도 인지하고 있는 모양. 성대가 망가지며 가창력으로 승부하기에는 한계를 본 김장훈은 2000년대 중반부터 노래실력보다 퍼포먼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에 올라온 여러 영상들을 보면 정말 가수인데도 불구하고 심한 겉멋과 프로답지 않은 무대 퍼포먼스[46]로 엄청난 호불호가 생겼고, 게다가 위에서 설명했듯이 목 상태까지 맛이 가버리며 노래실력 자체는 정말 참담한 수준이다. 27년차 가수 김장훈이 가창력 논란이 생기는 이유는 자신이 핫하기 때문이라 하지만 노래를 정말 못 하는 가수라는 표식어가 맞다는 평이 주를 이루고 있다. 예전 라이브를 접한 사람들의 평마저도 과거에는 잘했지만 지금은.... 혹은 같은 사람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심하게 변했다. 라고 할 정도로 현재의 상태는 굉장히 심각하다.

음정을 못 맞춘다는 것에 대해서는 고음병이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음감 자체는 좋은 편인데 허구한 날 지르는 것 때문에 '음을 못 맞춰서 저러는 것이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애초에 음감이 좋지 않았다면 보정이 없었던 90년대에 레코딩 작업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2010년대부터 고음을 낼 때에 목소리가 조금 기괴하게 변하는데[47] 2000년대 라이브에서는 비슷하게 지르는데도 갈라지지 않고 수월하게 나왔던 것을 보면 성대 노화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사실 지금도 고음 없이 노래를 부르면 2000년대 음색이랑 큰 차이는 없고 그렇게 샤우팅을 해대는데도 아직 노래 부르는게 가능하긴 한걸 보니 성대 노화가 주된 원인으로 보인다. 2007년, 고음이 깔끔했던 '사노라면' 라이브를 보면 지금과 엄청 다른 것을 알 수 있다.[48][49] 영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인골라 창법을 쓰던 시절에는 저음에서의 좋은 음색이 2옥타브 이상의 고음에서도 유지되어서 2009년 이전의 라이브에서는 뜬금없는 내지르기가 안나오는 라이브 한정으로 고음에서도 평이 좋았다.[50] 물론 이로 인해서 목이 많이 상해버렸지만.

가장 상태가 심각했던 시절은 2015~ 2016년이다. 특히 2016년에는 신생아 창법과 떼쓰기 창법, 그리고 일렉기타 창법을 보여줬을 만큼 사실상 가수라고 말하기도 힘들 정도로(....) 처참한 라이브를 보여주었다. 거기에 여러 사건사고와 안 좋아진 이미지까지 더해졌기에.....

음정보다도 문제인 것이 엇박을 심하게 타는 건데, 그나마 2000년대~2010년대 초반까진 괜찮았으나 2016년 라이브에서는 엇박을 거슬리는 수준을 넘어서 반주가 김장훈에게 맞춰야하는 상황까지 되었다.[51] 반주고 뭐고 그냥 막 부르는 수준.

또한 목관리를 잘 하지 않는 가수로 매우 유명하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노래를 잘 부르기 위해 매일 같이 산에 올라가 소리를 질렀고, 이는 프로로 전향한 뒤에도 이어졌다. 이런 습관은 김장훈의 성대를 망가뜨렸고 거기에 골초, 주당인 특성까지 더해져 목이 완전히 망가지게 된 것. 현재도 목 관리를 크게 하지 않는 건 여전해서, 목을 상하게 하는 잘못된 발성을 기반으로 한 샤우팅을 계속 지르거나, 공연 중간중간 담배를 피고 술을 마시는, 성대 건강에 최악인 습관들을 더러 가지고 있다. 동년배 가수인 이선희, 조용필 등이 철저한 목관리로 현재도 좋은 사운드를 내는 것과 대비될 정도다.[52] 물론 재즈나 블루스 혹은 실험적인 밴드음악 같은 경우 보컬들이 목관리에 큰 관심을 두지 않고 공연 중간에 담배를 피고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이 장르의 보컬들은 자기가 낼 수 있는 한계를 억지로 넘지 않으며, '표현'에 집중하는 보컬들이다. 그러나 김장훈은 주된 장르를 락발라드로 하는 가수이고 락발라드는 보컬의 한계를 늘 넘나들어야 하는 장르이다. 블루스 보컬들이 담배를 물고 '필'에 취해 노래부르는 것과는 확실히 다르고, 깨끗하고 건강한 성대, 탄탄한 발성과 피지컬로 압도해야 하는 장르인 것이다. 즉 아무리 좋게 봐도 김장훈의 이런 태도는 겉멋이라고밖에 설명하기 힘들다.

따지고보면 젊은시절에 근본적인 음색 자체는 굉장히 좋은 편이었다. 차라리 저음 부분을 집중적으로 노래 했다면 평가가 나아질 수도 있었지만 노화와 관리 실패, 그리고 불안정한 발성 상태에서 높은 음역대의 노래를 계속 고수하니까 이 상황이 되었다.

그래도 정식 가수인 만큼 원래부터 이랬던 것은 당연히 아니고 90년대 후반에서 약 2009년까지의 시절은 고음도 적절하게 내면서 노래를 분위기 있게 꽤 잘 불렀었고, 특유의 음색이 한창 절정인데다 외모까지 훌륭했다. 거기에 뛰어난 퍼포먼스와 무대장악력 그리고 관객과의 호흡을 보여주었다. 사람들은 이때의 김장훈을 '킹장훈'이라고 부른다. 예시1[53], 예시2[54] 예시3[55], 김장훈의 무대 장악력과 퍼포먼스를 가장 잘 보여주는 라이브로 꼽힌다. [56] , 전성기 시절 그의 가창력을 보여주는 영상.

팬들이나 안티들이나 김장훈 가창력의 최전성기는 대체로 2002년으로 보고 있다. 이때 라이브 앨범에서 보여준 슬픈 선물과 노래만 불렀지의 라이브는 그의 인생 라이브로 꼽힌다.[57] 9집의 Honey (Mania Ver)에서는 예외적으로 반가성을 사용 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다만 전성기를 기준으로도 절대 테크닉적으로 잘 불렀던 가수는 아니다. 근본적으로 발성이나 테크닉 면에서 미흡했지만 음색과 표현으로 커버를 쳤던 수준이지, 노래를 수준급으로 안정감 있게 불렀던 적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58] 유희열이 2009년 명랑히어로 프로그램에서 말하기를 '김장훈 씨 노래를 머리나 테크닉으로 들으면 안 와닿죠. 대한민국에서 가슴으로 노래하는 사람들이 몇 명 없잖아요. 다들 선생님들한테 레슨받아서 기계적으로 부르지만 김장훈씨는 노래를 정말 마음으로 하시잖아요. 사람들이 마음으로 받아 들이죠. 그럴 수 있는 가수가 대한민국에 또 있나요?', 이러한 언급이 있었는데 이건 김장훈의 전성기 끝물이었던 2009년 당시로는 틀린 말은 아니다. 현재 김장훈의 상태가 워낙 개판이라 저 발언도 립서비스로 보이나 2009년 유희열이 발언한 시점에서는 틀린 말이라고 할 수는 없다.
물론 지금 시점에서 보면 이런 언급은 실제 대중들의 속마음과는 조금도 상관이 없는 단순한 방송용 립서비스의 정점이라고 볼 수 있다. 이미 기술과 상관없이 마음으로 부르면서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주는 가수들은 전세계적으로 상당히 많아왔는데 김장훈은 그런 대중들과의 공감대가 많이 존재하지 않는다.[59] 무엇보다 지금은 2009년과도 비교할 수 없을만큼 가창력이 처참하게 떨어져 있다.

무엇보다 자신의 음역대에 맞지 않은 노래를 하고는 한다. 예를 들어 전인권의 '그것만이 내 세상'을 부르는데[60] 자신의 음역대보다 높은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고음을 구사하는데 듣기가 매우 거북하다는 평이 많다. 여기에 위에서 언급한대로 고음병까지 걸려서, 자기 음역대에 맞는 노래까지 애드립으로 샤우팅을 넣는데, 이 음역대를 소화를 전혀 못 하기 때문에 노래가 아니라 소음이 되는 것.

이렇게 음역대를 맞춰서 고평가를 받은 노래가 바로 불후의 명곡에서 부른 '아니야'. 이 곡도 고음이 조금 나오긴 하지만, 편곡이 잘 되었고 김장훈의 음색에 맞게 노래했기 때문에 평가가 좋다.

관객들에게 마이크를 항상 넘기는 것도 큰 문제다. 물론 이게 나쁘다고 볼 수는 없지만, 관객들은 가수의 노래를 듣기 위해 콘서트나 공연을 오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김장훈은 거의 모든 공연에서 관객들에게 마이크를 넘기다보니 가수 자체의 역량을 의심받는 경우가 많다. 이 덕분에 김장훈 콘서트를 세상에서 제일 비싼 노래방이라며 까는 사람들도 있다. 유튜브에 돌아다니는 몇몇 라이브에서는 대놓고 흡연음주를 한 것도 있다.[61][62]

이렇게 태도 면에서도 문제인데, 나아가 상태가 더 망가진 현재에는 일명 아기 우는 소리인 신생아 창법, 떼쓰기 창법으로 발전하기까지 했다. 이전의 음색 깡패 이미지는 우주 너머 날아가버린 셈...

사실 김장훈이 이렇게 된 것은 본인의 자만과 관리실패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SNS로 많은 논란을 만들기 전인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음정은 잘 못맞췄어도 음색 하나로 대중들에게 어느 정도 평판을 유지했으나,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자기 관리 실패와 자만으로 목 관리를 심각하게 못하고 자기 음역대에 맞지 않는 노래에 치중하게 되면서 결국 이 지경까지 가버렸다.

결론적으로 대중들과 팬들은 기부 활동들은 할 만큼 했고, 잘 하고 있으니 이제는 제발 좀 본업에도 충실하라고 비판하고 있다.사실 기부도 제대로 하는 게 아니었다

숲튽훈 드립이 어느 정도 인지도를 얻고 나기 시작한 후에는, 숲튽훈과 김장훈은 별개의 존재라는 농담이 나돌고 있다. 이 드립 또한 야갤세이콘 드립의 변형이라 할 수 있다. 숲튽훈의 혼이 김장훈에게 빙의되었다, 김장훈으로 돌아와달라 등등... 실제로 "김장훈" 모드는 좋은 음색과 좀 제대로 된 라이브에 많이 비유되며 흔히 말하는 "숲튽훈" 모드는 친환경 보컬 소리를 듣는 닭소리를 내는 라이브에 비유된다. 이 동영상이 대표적으로 두 모드를 비교하는 좋은 예시.

욕설 사건 이후로 1년 넘게 자숙[63]하다가 다시 복귀하면서 소극장 콘서트를 열었는데[64], 과거처럼 심하게 고음에 집착하는 모습은 버린 듯하다. 다행이다 하지만 성대와 목소리 상태는 더욱 심각해졌다. 목소리가 매우 탁해져서[65] 현재는 2옥타브 미(E4) 이상으로만 올라가도 쉰소리가 나고, 빌어먹을 닭 창법은 거의 그대로여서 가수로서의 장점은 사실상 없다시피 하다. 그나마 사람들에게 인정받았던 음색조차도 예전 느낌과는 다른 탁한 느낌으로 변해서 지지받지 못한다. 또한 음역대 자체가 좁아져서 저음도 예전처럼 낮게 못내고, 고음은 2010년대 중반까지는 지르면서라도 음에 맞게는 냈는데 지금은 아예 못내고 있으며 내더라도 쉰 소리가 나며 심하게 갈라진다. 심지어 '노래만 불렀지'의 1절에서의 '어느덧 나의 그 방황에 익숙해있기 때문이'[66] 부분을 전성기 시절엔 10초 동안 끌었던 것에 비해[67][68] 2018년 현재엔 겨우 3초~5초밖에 끌지 못하고 있으며 심지어 가끔은 끝부분에는 갈라지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장훈의 페이스북에서 올라온 라이브 영상에서 들을 수 있다. 그래도 '나와 같다면'과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소나기' '난 남자다' 등의 거의 모든 노래를 1키 내려서 노래하는 것을 보았을 때[69] 고음에 집착하는 모습은 버린 듯 하지만, 특유의 거북한 내지르기와 샤우팅은 그대로여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성대 건강만 상하게 하고 있다. 여전히 담배를 즐기고 공연 중간에 술을 마시는 등, 목 상태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사실상 마지막 탈출구는 창법을 바꾸는 방법인데 창법을 바꾸지 않는 이상 2000년대와 같은 포스를 내기엔 사실상 불가능해보인다.

2018년 10월 인스타그램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이미 성대결절 상태라고 한다. 의사는 100회 콘서트를 진행하지 말라고 거듭 말렸지만 본인이 이를 무시하고 소리 지르면 해결된다고 생각해서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본인은 공연이 진행될 수록 소리를 더 질러서인지 목이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 물론 이 방법은 목을 더 상하게 만드는 지름길이다. 명백히 27년차 가수가 그걸 모른다는 것은 성대 상태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조차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Love Of My Life + Bohemian Rhapsody + Radio Ga Ga를 부른 영상을 보면 눈물이 다 날 지경. 그래도 요즘에는 무리하게 고음을 내지만 않으면 이전보단 안정적으로 부르는 편이다.

그런데 2019년 현재 놀랍게도 상태가 굉장히 좋아졌다. 자신의 목 상태에 대해 인지하고 과도한 허세성 퍼포먼스와 괴성을 줄인 효과로 보인다. 전성기 시절 만큼은 아니더라도 상태가 매우 좋아졌다. 콘서트 도중 토크 시간에 성대결절에 걸리면서 저음 중음의 소중함을 깨닫고 앞으로는 중저음에 힘을 쓸 것이다라고 밝혔다. 덕에 무리한 샤우팅도 많이 줄었으며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현재는 유튜브에 있는 채널을 찾아서 성악 발성을 배우고자 노력하는 중이라고 한다. 우직하게 "악"하고 소리지르는 방법으로 목에 있는 혹을 떼며 "득음"하는 치료 방법을 사용하던[70] 그로서는 장족의 발전이다. 두 차례의 성대결절 이후 겁이 나서 예전처럼 미친듯이 소리지르는 것은 못하겠다는 듯.

3. 숲튽훈으로 기사회생, 그리고 컨텐츠화

이렇게 가창력 손실과 즉석 내지르기 등으로 김장훈을 처음 접한 대중들은 이런 퍼포먼스를 황당하다고 여겨, 2018년 전후로 몇 가지 공연 영상들이 유튜브에 올라왔다. 그리고 이런 김장훈 영상들은 점차 많아져 김장훈을 비판하는 성격에서 그의 특이한 창법에 대해 평가하고 적절한 드립을 다는 컨텐츠로 자리잡은 추세다.

이와 더불어서 모창하는 사람들도 꽤나 많이 나왔다. 이문세나 임재범처럼 음색을 비슷하게 하여 재주로 선보이는 느낌보다는, 심히 희한하고 심오한 김장훈의 창법을 패러디하는 데에 중점을 둔다. https://youtu.be/1qZM1GBDnac https://youtu.be/-TTwWN541O0 '숲튽훈' 컨셉으로 모창해서 유명해진 것도 있다. 독도킥애국사이드 커터까지 완벽하다. 아리랑 콜라보레이션도 있다 그런데 이 사람 진짜로 김장훈 공연에서 콜라보를 했다! 분위기를 더 띄우려고 샤우팅 하는걸 보면 현재는 김장훈 본인도 자기 고음 창법을 재밌다고 생각하는 듯...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모창자 덕에 김장훈의 이미지가 좋아지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식에서 욕설을 한 뒤 구설수에 올라 1년간 자숙을 했던 김장훈은 그의 전성기 시절 대중이었던 3040 세대에게 비춰지는 이미지를 스스로 깎아먹었을 뿐더러, "숲튽훈"으로 그를 접한 10~20대에게는 그저 괴성만 질러대는 웃긴 사람 정도였다. 그러나 이 모창자를 비롯, 그를 어떻게 보면 "놀리는" 영상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음에도 그에 대한 불편함보다는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인 것이 상당히 신선하게 다가왔다는 반응이 많다. 콘서트장에서 그는 불편한 내색 없이 쿨한 태도를 유지했고 오히려 모창자를 격려해주며 재미있는 상황을 유도했다. 댓글들을 보면 전부 칭찬 일색.

최근엔 김장훈이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을 시작했는데, 이미 숲튽훈(자신은 숲장훈이라고 부른다)의 의미와 현재 반응에 대해서도 인지하고 있다는 걸을 보여준다. 또 자신의 조롱 영상을 자주 보는지 자신의 공연 영상 댓글에 적힌 내용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노래만 불렀지'의 '이렇게'라고 샤우팅 하는 부분을 '으락캬'라고 부른다든지, '익숙해있기 때문이야'에서 때문이야 부분을 '대물이야!!!!~~~~~ 으아앙!'이라고 드립쳤다는 것까지 알고 있다.

정리하자면 유튜브에 떠도는 모창, 컨셉 영상이 그를 웃긴 이미지로 만든 측면도 있지만, 다른 면에서는 친근하고 호탕한 이미지를 구축하는데에 기여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실제로 이게 효과가 있었는지 콘서트에 청소년 관객들이 늘었다고 한다. 김장훈이 숲튽훈 영상에 나오는 창법으로 부를 때 이들의 반응이 정말 좋다고 한다.(...)

김장훈은 안 좋아하지만 그를 광대 이미지로 만든 야갤에서는 숲튽훈에 대해 호의적으로 평을 내리는 유튜브 짤이 개념글에 올라오면서 "갤주의 품격."이라며 찬양일색이었다. 김장훈이 복면가왕에 출연하자 과거 이종범 출연때처럼 미친 화력을 자랑했다. 떨어진건 숲튽훈이니까 김장훈 다시 한번 더 불러와라 같은 드립까지 나올 정도.

4. 음반 목록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장훈/음반 목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콘서트

콘서트에서 발차기와 같은 여러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강심장에서 이러한 퍼포먼스를 시작한 이유를 밝혔는데, 콘서트에서만큼은 자본주의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서라고 한다.자본주의랑 발차기랑 뭔상관이 있는거지?그러다가 한 여학생의 자살시도를 막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계속해서 이러한 일을 계속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일들 중 당시 대한민국에서 제대로 된 콘서트 장비는 없고 상당수를 대여하거나 하면서 사용해야 했던 현실과 이공계 기피 현상으로 인해서 빡친 김장훈은 직접 카이스트로 가서 선물용으로 케이크와 난초를 들고 휴보를 빌리는 일을 진행하였다. 박사가 처음에는 반대하다가 김장훈이 계속 조르니까 "그러면 나 말고 다른 연구원들이랑 교수도 설득시켜봐라."이라고 하자 자기가 가수인지 모르는 연구원들이랑 술을 마시며 30여분 동안 대화를 나누며 그들을 설득시켰다. 그러자 박사는 "우리들만 설득시키면 안 되고 정부의 산업자원부도 설득시켜야 한다."이라고 하자 또 선물을 들고서 산업자원부까지 가서 설득을 하자 담당자가 교수에게 전화 걸어서 김장훈 공연 도와줘야겠다고 말했다고. 결국 휴보와 콘서트를 했다.

이로 인해서 카이스트는 물론 여러 박사들도 김장훈을 좋게 보았는지, 회식자리에서 수십 명의 박사들이 김장훈에게 콘서트에 자기랑 관련된 분야(우주선, 비행기 등등)에서 필요한 게 있으면 연락달라고 했다한다. 또한 카이스트 기계과에는 4학년 필수 교과목 중 "창의적시스템구현" 이라는 교과목이 있는데, 이 과목에서는 잠깐이지만 김장훈의 콘서트 장비를 만드는 내용을 다룬다고 한다.[71] 때문에 카이스트에서 김장훈의 인지도는 특히 높은 편이다.[72]

2015년 12월 21일에는 청주교도소에서 콘서트를 진행했다. 참고로, 청주교도소 108년 역사상 최초의 가수콘서트이자, 교도소 공연 역사에서도 대한민국 최초의 가수 단독콘서트다. 게스트로는 전직 국가대표 선수들로 구성된 대한민국 스포츠합창단도 참가하고, 교도소 수용자들로 구성된 중창단과 밴드까지 준비를 많이 한 듯하다.

와이어 퍼포먼스도 자주 선보이는데, 2002년 7월 100일 공연을 하던 중 와이어가 끊어져 추락하면서 어깨가 부서지는 큰 중상을 입은 적도 있었다.[73] 어깨 부상 이후 장애인이 되었으며 이 후 3년 정도는 와이어를 기피하다가 2005년 8월 스스로 극복했다고 선언하고 와이어를 다시 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식 사건이 발생한 후, 1년 자숙기[74]를 거쳐 현재는 100회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다.

6. 김현식과의 관계

김현식과 김장훈의 어머니들끼리 어릴 적부터 친자매처럼 지낸 사이여서 김장훈과 김현식은 어릴때 부터 형동생하며 지낸 사이라고 한다. 김장훈이 김현식의 친동생인지 아는 사람도 더러 있다. 김장훈은 당시 김현식의 사촌동생으로 소개되어 내사랑 내곁에를 부른적이 있다. 다만, 말도 안되는 삑사리와 박자놓침의 일관으로 방송용 가수의 수준으로 절대 볼 수 없는 방송사고급의 무대를 보여 당시 고인에 대한 추모와 그리움으로 엄숙했던 장내 분위기를 '깨게 만드는' 흑역사급의 데뷔를 기록하고 있다.

이후 내사랑 내곁에 5주연속 1위의 골든디스크 시상무대를 역시 그가 대신 부르기로 예정한 걸 펑크 내버리며 7년동안 방송출연금지, 인터뷰 금지의 조치를 당하게 되었다.[75] 나중에 명랑 히어로에서 밝힌 바로는 "소속사하고 딱 한번만 하기로 했는데, 계속 혈육이라며 거짓말을 하며 김현식을 팔길래 잠적했다."라고 밝혔다. 훗날 자신의 앨범으로 가수활동을 재개하면서도 계속 사촌동생으로 소개 되다가 그러다가 데뷔 10년이 넘어서야 사촌동생이 아니라는 언급을 했다.

속사정이야 본인밖에 모르겠지만... 김현식을 파는 게 싫은게 아니고 데뷔 무대를 망친 PTSD 때문에 도망친 걸, 훗날 그럴싸하게 얼버무린 건 아닌가하는 의심을 받고 있다.

김현식 헌정앨범도 냈다. 돈과 정성을 많이 들인 티가 나는 앨범이다. 그리고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김현식의 아들인 김완제와 같이 출연한 적이 있다.

7. 유희열과의 관계

유희열과는 각별한 사이다.

유희열이 서울대 작곡과 입학하기 전인 1989년에 친구의 누나가 소개팅을 시켜준다고 해서 카페로 나갔는데 그 소개팅 상대가 바로 김장훈이였다. 김장훈이 자신의 밴드인 "김장훈과 한국사람"의 건반주자를 구하고 있어서 소개팅이라고 속이고 유희열을 불러냈다고 한다. 그 이후에 김장훈의 밴드 한국사람에 건반주자를 맡게 되고 클래식 전공인 유희열이 가요를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76] 이후 서로 엄청나게 싸웠다고 하는데 당시 유희열의 증언에 따르면 밴드들간의 불화가 끊이질 않아 결성한 지 채 몇 달도 안 가서 김장훈과 자신 둘만 남게 되었다고... 결성초기 김장훈은 유희열을 추운 반지하에 가두어 연습을 시켰고 유희열은 말도 없이 친구와 설악산 여행을 가버리는 등 팀웍이... 그리고 결국 파국에 치닫게 되며 몇 년 동안 연락을 안 했는데 활동기간이 겹친 시기 방송국에서 재회 후, 다시 끈끈한 사이가 되었다고 한다.

김장훈의 1집에 수록된 "햇빛 비추는 날"이 바로 유희열의 곡이다. 이 노래는 토이 1집에도 수록되어 있다. 후에 유희열은 김장훈에게 히트곡을 주게 되는데 그게 바로 '난 남자다'란 곡이다.

유희열이 스케치북을 제외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온다면 김장훈과 항상 같이 나온다고 봐도 무방하다.[77] 절친노트, 명랑히어로[78], 음악여행 라라라에 동반으로 출연했다. 김장훈이 유희열에게 2천만원을 빌렸는데 돈을 갚으면 유희열을 무시하는 것 같아 갚지 않겠다 말하자진짜 개소리네 유희열은 돈을 돌려받는 것을 포기하겠다 쿨하게 넘겼다.더러워서 안받는다
유희열이 진행하는 KBS 라디오 프로그램인 유희열의 라디오천국에서도 고정과 게스트로 자주 등장하였다. 특히 유희열과 함께 진행했던 "원맨쇼"는 한국 라디오 역사상 길이 남을 명코너다.[79]

8. 싸이와의 관계

싸이와도 상당히 친했다. 콘서트 비법을 많이 전수해줄 정도였고, 합동 콘서트 "완타치"도 함께 진행하며 돈독한 사이로 성장했다. 하지만 김장훈/사건사고 문서에서 참조할 수 있듯, 콘서트 원조 문제로 심하게 다툰 뒤 굉장한 반목과 잡음으로 관계가 파탄나버렸고, "강남스타일"의 대히트로 간극이 상당히 벌어져 더 이상 서로의 입에서 서로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2019년, 김장훈의 라이브에서 오랜만에 "싸이"의 이름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어느 정도 마음의 응어리가 풀린 것인지는 두고 봐야할 것이다.

사족으로, 김장훈의 팬들은 싸이를 반농담조로 " 가수" 라고 부른다.

9. 사건사고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장훈/사건사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0. 히트곡

가창력으로 까이는 것과 별개로 노래는 굉장히 좋다. 히트곡도 많은 편.
* 노래만 불렀지 (1996)[80]
* 나와 같다면 (1998)
* 사노라면 (1998)
*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1998)
* 슬픈 선물 (1999)
* 오페라 (1999)
* 난 남자다 (2000)
* 혼잣말 (2000)
* 고속도로 로망스 (2004)[81]
* 허니 (2006)
* 김장훈의 트롯(2007)
* 소나기(2008)
* 하얀말(2018)

11. 연기 활동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 커리어 덕인지, 다른 분야와 달리 꾸준히 활동하지 못하고 단발성 출연에 그치는 양상이다.

12. 숲튽훈으로서의 유튜버 활동

2019년 들어 유튜버로서도 활약하고 있다. 2018년을 전후로 하여 음지에(주로 우파 계열의 남초 커뮤니티) 묻혀있던 "숲튽훈 놀리기"가 웃긴 포인트와 중독성을 무기로 양지로 올라오기 시작했는데, 그가 이를 포용함으로써 더욱 큰 히트를 쳤다. 그 즈음에 시작했던 유튜브 채널 역시도 덩달아 주목을 받았다. (전에도 운영은 했었지만 "아리랑" 등 한정적으로만 올렸었다)

라이브 방송의 경우 첫 회부터 "숲튽훈"이나 안티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이를 본인 콘서트 홍보에도 적극 활용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이 시험 방송이 꽤나 괜찮은 반응을 얻어서인지 레귤러한 스케줄로 방송을 키게 되었다. 대체적으로 내용은 여타 유튜버들과 다를 바 없이 썰 풀기, 고민 상담, 노래(이 컨텐츠를 할 때 시청자가 조금 빠져나가긴 한다) 등을 진행하는데, 거의 매회 "숲튽훈" 관련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본인의 인기를 다시 올려준 "숲튽훈" 컨텐츠를 상당히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다. 또한 정치 이야기나 본인의 독특한 인생관을 이야기하는 면모가 많이 줄어들어서, 팬이 아닌 사람들이 보기에도 큰 부담이 없다는 평이 다수다. 그에 대해 대개 부정적이거나 빈정조로 여기던 커뮤니티에서도 재미있게 받아들일 정도.

유튜브 채널 운영에 재미를 붙인 모양인지 요새는 거의 매일 유튜브 방송을 틀어 소통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13. 저서


2016년 12월,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출간하며 수필가로 데뷔했다. 책을 쓴 이유는 '왜 몇 십년 째 나눔(기부)을 하는 것일까?'에 대한 대답이라고 한다. 그러나 거짓기부 연속 보도들 직후 책이 나와 민망하게 됐다.

2017년 1월7일 광화문교보,1월14일 강남교보에서 싸인회와; 따로 2월에 북콘서트를 열 예정이라 했으나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
2017년 1월 17일 인세 1억을 기부하겠다 주장했다.기사
가수 이전에 참 넉넉한 남자다. 그것도 ‘얼토당토않은’ 일을 태연히 하는 남자다.[82] 그는 이웃을 사랑하고 어두운 곳에 불을 밝히고 싶어 하는 남자다. 그 일들은 대개 다른 사람이 하고 싶어도 해내지 못하는 일들이다. 그리고 그걸 내세우지도 않는다. 나는 그게 늘 고맙다. 솔직히 ‘아주아주’ 미안하기도 하다.
전원책의 추천사
그의 책은 에세이라기보다 소설에 가깝다. 그만큼 극적이다. 책을 읽는 내내 그의 인생에 서린 눈물과 환희에 공감할 수 있었다. 거칠지만 그의 노래가 감동을 안겨주듯 그의 글에는 진심이 담겨 있다. 그의 삶과 음악이 어우러진, 한 편의 뮤지컬 같은 책이다.
김수로의 추천사

14. 성향

여러 사회활동을 하면서 진보 성향인거 아니냐는 평을 많이 들었다. 덕분에 보수, 극우 성향의 사람들은 김제동과 함께 좌빨이라며 혐오하기도 하는데 김장훈 자신은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다란 얘기를 해왔다.

대표적으로 리즈시절명랑히어로에 출연해서 MC들이 17대 대선에서 누구 뽑았냐고 물었는데 도저히 찍을 인간들이 없어서 투표 안할까 하다 자신이 투표홍보대사라서(...) 어차피 안될거 알지만 그렇다고 1번 찍기는 죽어도 싫어서 소신껏 3번을 찍었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고 또 대통령 취임식에는 참여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진짜 싫어하긴 하지만 대통령 취임식은 국가의 중대한 행사라 참여할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란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20대 총선에서는 김찬영 새누리당 예비후보에 대한 공개 지지를 선언하며, 제20대 총선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하는 행보를 보여서 진보층에게 욕을 얻어먹은 바 있다. 이때는 "야당이 여당보다 잘하고 있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제와서 내가 여당 지지자로 돌변할 이유도 없다"고 주장을 하였다.

2019년 데뷔한 유튜브 방송에서 본인은 좌우파로 나뉘지 않는다고 소신을 밝혔다.

1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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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로필 상으로 1967년생이긴 한데, 실제 나이는 이보다 더 많다는게 예전부터 기정사실화 되었다. 이 영상의 1분 18초를 보면 김장훈의 이름 옆에 49Y가 표시되어 있다. 병원에선 본인의 정확한 인적사항을 적어낸다는 점과 촬영시점인 2012년 8월 기준으로 49세라는 점을 미루어보아 1963년생이 맞다.[2] 젊었을 땐 188이었으나 나이가 들어 줄어든 것으로 보이며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서는 본인 입으로 187이라 말했다.[3] 원래 마른 체형이었으나 2010년대 들어 급격하게 살이 쪘고 근황 인터뷰에서는 12kg이 늘었다고 한다.[4] 2019년 5월 17일 라이브토크에서 본인 입으로 87~8kg를 왔다간다 한다고 했는데 최근 또 다이어트를 한다 하여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5] 현재 가천대학교 글로벌캠퍼스.[6] 자숙 전에는 사회 운동가로서 자주 언론에 올랐던 것이 사실이나, 정치색을 빼고자하는 목적인지 자숙 후 첫 방송인 복면가왕에서 "나는 사회운동가가 아니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스타에 게재된 글들을 보면 실질적인 활동은 여전한듯. 독도 관련 운동도 꾸준히 진행중이다.[7] 소위 말하는 튽훈체[8] 나이가 들며 점차 사라졌지만, 젊을 때에는 무서움을 모르고 본인이 생각하는 정의를 위해서 저지르는 스타일이었다고 한다[9] MC계의 달변가인 김구라와의 설전에서도 지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10] 앞선 두 장르에 비해 그리 부각되진 않지만, "고속도로 로망스", "난 남자다" 등의 준 히트곡급 댄스 활동을 한 전적이 있다. 곡과 별개로는 춤을 꽤나 자주 선보이는 편.[11] 그를 부정적으로 여기는 야갤발 유행어에서 비롯되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이미지를 기사회생 시켜준 고마운 별명이므로, 현재는 그가 나서서 별명을 사용하고 있다. 인스타에도 "내가 숲튽훈이다!", 유튜브에도 "박경림을 울린 숲튽훈의 힘", 다른 유튜브에도 "숲튽훈"으로 출연, 한 술 더떠서 "김장훈과 숲서트"도 기획중이라고 한다[12] 비디시러들도 통용[13] '노래만 불렀지' 라이브에서 내지른 높은 샤우팅 창법에서 비롯[14] 과거에는 그의 수식어와도 같은 대표적인 별명이었지만, 현재는 노무현 욕설 파문으로 인한 이미지 손상으로 많이 사라진 별명이다[15] 개신교 목사이다. 유튜브 방송에서 자주 언급하는 편이다.[16] 예장통합이라고 적혀있는 위키들이 있는데 어머니가 담임목사로 사역하는 교회부터가 예장중앙이다.[17] 인스타에 직접 본인의 직업을 "콘서트 감독"이라고 언급하였다[18] 예전에는 대부분 거절했으나 요새는 강연을 자주 간다고 한다. 아마도 "숲튽훈" 컨텐츠로 하여금 청소년들에게 인지도가 높아져서인듯. 대체적으로 청소년들의 꿈이나 독도 관련 이야기를 많이 하며, 입담도 좋은 편이다[19] 이 역시도 본인의 인스타에 기재되었다[20] 김장훈의 몇 안되는 영화 커리어지만 괴작으로 손 꼽히는 영화다.[21] 사실 영화나 드라마에 이것저것 많이 출연했지만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이다.[본인] 정작 본인은 이런 다양한 활약상이 부담스럽다는 이야기를 sns에 남겼다[23] 김장훈 중에서 김, 장을 각각 金, 長으로 변형시킨 것. 왜 하필 長인가 할 수도 있겠지만 한자 상관없이 모든 장을 튽으로 바꾸는 게 야민정음의 규칙이다.[24] 자숙(본인은 '자성'이라고 주장한다) 이후 오랜만에 출연한 뉴스 방송에서 본인을 소재로 한 유튜브를 본 적이 있다고 밝혔다[25] 나처럼~ vs 나처르아악!! 을 선보였다[26] 실제로, 광성중학교 25회(79년) 졸업생이라 1963년 생이 정설인 것으로 추측된다.[27] 다만 이승환의 경우에는 본인 주장으로 1965년 12월생인 것이고 신분상으로는 1966년 1월생이다. 그래서 신승훈 하고도 친구사이다.[28] 사촌은 아니지만 모친 김성애 목사가 김현식의 모친과 친하다.[29] 이는 KBS 스펀지 16회에서 소개되었으며 이 때 그는 식당에 갔다가 인삼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30] 1995년 가수 박상태가 불렀던 곡을 리메이크했다. 당시 박상태의 원곡은 아쉽게도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김장훈이 불러 뒤늦게 빛을 본 사례.[31] 이 노래의 히트로 처음으로 메이저급 기획사에 들어가게 된다. 이때 받은 계약금 9억 원을 비행청소년 선도 자원봉사활동 하던 어머니한테 모두 줬다고 한다. 김장훈의 기부활동의 시작이라고 볼 수도 있다. 또한 4집의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곡도 사랑을 받았다.[32] 원곡은 문관철의 곡이며 전혀 코믹한 곡이 아닌데, 김장훈이 부르면서 코믹성이 들어갔다. 라이브 무대에서는 목을 앞뒤로 천천히 흔들며 점점 후렴구를 빨리 부르는 방식의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후렴구는 점차 빨라져 후로는 김장훈 본인이 아닌 관객이 부르는 스피드가 된다. 사족으로 밴드 멤버중 베이시스트 박정현 씨가 조용필, 나훈아 등의 가수들을 성대모사를 하는 부분은 매 무대마다 빠지지 않는다. 김장훈보다 잘 부른다는 평은 덤이다.[33] 현재 이 곡을 부를 때는 "쏴!"라는 추임새를 넣고 반주를 빨리 감는 방식으로 재편곡했는데, 곡의 퀄리티를 포기하는 대신 흥을 유도하는 전략을 택한 듯 하다[34] 일종의 k-mooc같은 것이다. 다만 김장훈이 들은건 수강인원에 제한 없이(Massive), 모든 사람이 수강 가능하며(Open), “offline 기반의 (Offline) 강좌(Course)라는 차이점이 있다.[35] 가성 파트도 진성으로 바꿔부를 정도인데, 가끔은 거북하게 들린다는 평도 있다. 예외로 러브레터에서 부른 김범수의 보고싶다에선 가성을 사용한다.[36] 굉장히 심각한 인골라 발성을 구사한다.[37] 2002년 라이브 앨범의 노래만 불렀지를 들으면 그의 최저음(0옥타브 레(D2))부터 최고음(3옥타브 미(E5))까지 다 들을 수 있다.[38] 현재도 성량은 크다.[39] 목을 잡아먹는 소리[40] 여기에는 김장훈이 노래 부를 때 입을 작게 벌리는 것도 한몫했다. 입을 작게 벌리면 목소리를 크게 내기도 어렵고 고음도 내기 힘들다. 그런데 이 상태에서 노래를 크게, 또 높게 부르니까 소리가 인골라에 빠지게 된 것이다. 특유의 울부짖는 듯한 느낌도 이런 발성 때문에 나온 것이라 감정표현에는 장점이 되었지만, 가수 생활에 점점 악영향을 끼쳤다.[41] 원랜 가성도 자주쓰며 3옥타브 도(C5)까지 고음을 깨끗하게 내던 미성 보컬이었지만 블루스 음악을 좋아했던 보컬이라 후기로 갈수록 진성만 사용하게 되었다. 4집부턴 아예 허스키 보이스가 되었을 정도.[42] 안타깝게도 이때부터 김장훈이 유명해지던 시기라서 활동을 멈출 수가 없었다.[43] '허니~ 오 허니~ 많이 보고 싶어' 부분에서 목을 심하게 긁으면서 내지르는 창법을 구사했다.[44] 정확히는 2옥타브 라♯(A♯4) 이상의 음부터 얇아졌다.[45] 바뀐 창법이 확실히 티가 나기 시작한 공연이 싸이와의 완타치 2009 공연이다.[46] 뜬금없이 담배를 피거나, 갑자기 샤우팅을 하는 등의 행동들. 나처르아아아악!!! 으락캬!!!!!!!, 아 발 아파!!!![47] 흔히들 닭소리라고 하는 그것으로, 2009년쯤부터 고음에서 목소리가 억지로 내는 느낌으로 얇아지는데 그 상태에서 확 내질러서 나오는 소리다. 김장훈의 아리랑 영상을 부르면 2초만에 나온다.[48] 이 때 이문세, 성시경과 함께 공연했다.[49] 3년 뒤인 2010년에 싸이와 부른 것도 있는데, 이때부터 고음에서 목소리가 이상하게 바뀐 것을 들을 수 있다. 숲튽훈식 샤우팅은 덤이다.[50] 라이브에서 뜬금없이 내지르는 것은 옛날에도 변함 없었다.# 지금에 비해 음색이 좋아서 거북하게 들리지는 않았지만.[51] EBS 스페이스 공감에 출연해서 노래만 불렀지를 불렀는데 이 때 김장훈이 박자를 아예 무시하는 바람에 피아니스트가 박자를 놓치고 다시 맞추는 불상사가 벌어졌다.[52] 이선희의 경우 제자인 이승기도 밝힌 바 있듯이 평소에는 필담을 하고, 반찬과 물 마시는 것조차도 극도로 조심할 정도로 목 관리를 철저하게 한다.[53] 라이브 앨범에 수록된 '슬픈 선물'의 라이브다. 2002년 공연에서 불렀다.[54] 그 유명한 허니 라이브. 2006년 라이브다.[55] 2006년의 오페라 라이브로 2옥타브 라(A4)의 음을 무려 11초간 끈다.[56] 2009년의 노래만 불렀지 라이브. 사실 무대매너와 별개로 가창력은 이때부터 매우 떨어졌다는 평이 많다.[57] 특히 노래만 불렀지는 마지막에 3옥타브 레를 길고 깔끔하게 뽑아내는 것이 백미. 참고로 같은 라이브에서 앵콜로도 불러서 똑같이 뽑아냈다.[58] 정확히는 테크닉은 프로 수준보단 조금 아래 수준이었고, 기본기가 다른 가수보다 매우 떨어졌다.[59] 멀리 가지 않아도 이미 김광석이라는 사람이 증명해주고있는 사실이다.[60] 링크[61] 2011년 중대축제 나와 같다면 2014년 홍대 트라이브바 그것만이 내 세상[62] 과거 10년대 초~중반까지 라이브 영상을 보면 음주를 하는 걸 흔히 볼 수 있었다. 2019년 현재는 거의 하지 않는다.[63] 참고로 본인은 이를 자성(自省)이라고 주장한다. 인터뷰 중에도 기자들에게 정정을 요구한 적이 있다.[64] 공식적인 복귀는 2018년 8월이지만 사실 작은 행사는 뛰고 있었다.[65] 저음에서도 음색이 예전같지 않다.[66] 2옥타브 라(A4)[67] 2년 전인 2016년 스페이스 공감에서의 라이브에서도 2옥타브 라(A4) 음을 10초간 유지했었다. 그런데 이 라이브에서 신생아 창법이 나왔다. 폐활량이 2년 동안 심각하게 떨어진 셈.[68]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는 20초 이상도 끌었었다.[69] 한 때는 2키 올리고 부른 적도 있었다.[70] 목이 나가고 싶지 않다면 당연히 쓰면 안 되는 괴랄한 방법이다! 김장훈의 목이 어느정도 튼튼했기에 현재도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듯 하다[71] 방송에서는 마치 김장훈의 콘서트 장비만을 만드는 과목인 것처럼 과장해서 말했지만, 사실은 전혀 아니다. 참고로 해당 교과목은 교수와 학생들이 팀을 짜서 한 학기~두 학기 프로젝트를 한다.[72] 카이스트에도 자주 기부한다고 한다.[73] 어깨를 부상당하고 고통스러워 잠도 제대로 못 잤는데, 공연하고 싶어서 3주도 안 돼 공연장에 또 가서 공연하다가 부상이 도진 적도 있다고...[74] 본인은 자성(自成)이라고 부르며, 인터뷰에서 기자들에게 정정을 요구하기도 했다[75] 펑크낸 김장훈을 대신해 장필순이 골든디스크 시상식에서 그 자리를 대신했다.[76] 이 때 김장훈이 유희열에게 한 말이 "내가 들국화보다 음악 더 잘해" 였다고 한다. 물론 김장훈의 성격상 유희열을 꼭 영입하고 싶어서 본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한 것 같긴 하다. 방송에서 말하길 이 때 유희열이 속마음으로 "아 미친X이다"라고 생각했다고. 물론 둘의 사이가 각별하니 방송에서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이다.[77] 이는 이제 옛날 말이 되었고 무한도전 가요제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슈가맨과 비긴어게인 등 김장훈 없이 혼자 활발한 방송활동을 하고 있다.[78] 무려 10년만에 나온 예능이라고 한다.[79] 이걸로 라디오천국 PD가 상까지 받았다.[80] 엄밀히 따지면 히트곡은 아니나 김장훈의 이름을 알린 곡이며 김장훈 자신도 큰 애착을 가진 곡이라 항상 콘서트 엔딩곡으로 불러 유명해졌다. 김장훈의 자작곡 중에서는 가장 유명한 곡이다.[81] 김장훈을 비꼬는 동영상에서는 '조금만 조금만 더 빠르게↗↗↗' 부분과, '미쳐버렸어↗↗↗' 부분이 쓰인다.[82] 노무현 추모제에서 본인이 경찰과 싸운 것을 언급하며 마이크에다 대고 '아 씨발 진짜'라는 미친 발언을 한 뒤 미친듯이 까이며 1년간 자숙(본인 말로는 자성)한 걸 보면 틀린 말은 아닌 듯.[83] 이 링크를 들어가서 3분 25초부터 보면 영향받은 가수 중에 누가 있는지, 왜 그가 그렇게 고음에 집착하는가 등을 알 수 있다. 또한 5분 55초부터 9단 고음도 하이라이트다.[84] 한국으로 귀화했으며 현 세종대 교수.[85] 예를 들어 대중교통을 타다가 불의를 못 참고 싸웠더니 정신을 잃었다는 일화처럼.[86] 과연 김장훈은 한 소속사에 오래 있던 적이 드물다. 자신은 직원들과는 사이가 좋았고, 사장의 횡포에 분연히 들고 일어난 것뿐이라고 한다. 실제로 당시는 지금처럼 가수의 권리가 강화되고 체계화된 시절이 아니긴 하다. 하지만 매니저들은 좀 다르게 본다는 썰도 있다.[87] 사실 2009년 명랑 히어로에서 유희열이 우회적으로 김장훈이 보톡스를 많이 맞았다는 소리를 한 적이 있다. 김장훈이 꽤 늦은 나이에 인기를 얻은 것을 보면 4집 활동 이후부터 보톡스 시술을 받았을 확률이 높다.[88] 똑같이 '갤주'로 불리는 윤서인과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평이 좋다. 애초에 윤서인은 일뽕 주작충에 의한 '억지갤주'에 가까운데다 인간적인 평도 나쁜데, 김장훈은 그냥 유머스러운 이미지라 비교당하는 게 모욕일 정도다. 사실 정확히 따지면 초대 갤주가 김장훈이었고, 그 이후 김제동이나 정준하, 윤서인 등이 갤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즉 다른 갤러리와 다르게 "논란이 된 인물을 까기 위해 갤주로 내세우는 행위"의 정통성으로 승부한다면 김장훈의 손을 들어줘야 하는 것이다. 최근 그의 행보로 정치색과 비호감 이미지가 많이 희석되어 갤주 드립의 발현지인 야갤에서조차도 욕을 줄이고 있는 것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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