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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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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37대 외교부장관
윤병세
尹炳世 | Yun Byung-se
파일:윤병세 장관.jpg
<colbgcolor=#003764><colcolor=#ffffff> 출생 1953년 8월 3일 ([age(1953-08-03)]세)
서울특별시
본관 파평 윤씨
재임기간 제7대 외교통상부 차관보
2006년 1월 31일 ~ 2006년 11월 30일
제37대 외교부장관
2013년 3월 13일 ~ 2017년 6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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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3764><colcolor=#ffffff> 배우자 정은영
자녀 슬하 1녀
학력 경기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 /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 / 석사)
존스 홉킨스 대학교 (국제관계학 / 석사)
신체 185cm
약력 제10회 외무고시 합격
외교통상부 차관보
제37대 외교부장관
}}}}}}}}}
1. 개요2. 생애3. 비판 및 논란
3.1.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의 외교적 난항3.2. 대일외교 관련 논란
3.2.1. 부산 소녀상 철거 요구3.2.2. 피해당사자 배제 논란3.2.3. 이면 합의 거짓 증언3.2.4. 강제징용 재판거래 의혹
3.3. 사드 배치 발표 당시 백화점 쇼핑 논란3.4. 딸의 가계 곤란 장학금 수령 논란3.5. 다운계약서 작성 의혹3.6. 기타 논란
4. 여담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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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박근혜 정부의 유일한 외교부장관. 1981년 이후 최장 재임 외교장관이 되었으며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유일하게 임명자보다 오래 재임하고 그 다음 정부에서까지 유임했다는 진기록을 가지고 있다.[1]

2. 생애

외무고시에 합격한 후 외무부 북미1과장, 주미 공사 등을 지냈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4년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 정책조정실장으로 발탁되어 2006년 1월 외교통상부 차관보를 거쳐 같은 해 12월 대통령비서실 외교안보수석으로 취임, 노무현 대통령 퇴임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그 후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공관장 한번 나가보지 못한 채 그대로 공직을 떠난다.[2][3]

퇴직 후 김앤장 고문, 서강대학교 초빙교수 등으로 소일하던 중, 박근혜를 만나 몇 가지 조언을 해주며 인연을 쌓아오다가 2010년 12월 국가미래연구원 회원으로 참여하게 되면서 박근혜의 외교안보 브레인으로 떠올랐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 정책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입안하였고, 2013년 3월 13일 박근혜 정부의 첫 외교부장관으로 임명되었다.

박근혜 정부 내내 외교부장관을 역임하였고,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소추에 이어 파면되면서 정권 유일의 외교부장관으로 남게 되었다. 5년 내내 장관을 할 것 같다며 별명이 '오병세'였을 정도. #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에도 한동안 자리를 지키다가, 2017년 6월 18일 강경화 장관의 임명과 동시에 물러났다. 이후 2021년부터 <중앙일보>에 '윤병세의 한반도평화워치' 칼럼을 기고 중이다.

3. 비판 및 논란

박근혜정부/평가/외교에서 외교 정책에 대한 비판은 거의 모두 윤병세 장관과 연관되어 있다. 본인이 박근혜 정부의 유일한 외교부장관이었으니 어떻게 보면 불가피했던 일.

3.1.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의 외교적 난항

미국중국 두 강대국 사이의 경쟁이 본격화되어 그 사이에 낀 한국의 입장이 난처해지는 와중에, 이를 애써 외면하는 모습을 보였다. 2015년의 주요국 대사 회의에서 미중 양측으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상황은 오히려 축복이라고 # 발언한 것이 대표적. 좋게 말하면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라는 식의 약소국 컴플렉스에서 벗어나자는 취지였겠지만, 엄중한 국제정세 속에서 너무 안일한 태도라는 비판도 받았다.

사드배치에 따른 중국의 경제적 보복에 대해서도 별 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부적절한 대응으로 국가적 손실을 키웠다는 비판을 받앗ㅁ다.

퇴임한 뒤인 2017년 6월 19일에는 "정부는 바뀌었지만, 우리의 외교 환경은 나날이 어려워지고 있다"고 발언했다. 불과 한달 전까지 외교부장관이었음을 고려하면, 사실상의 자기부정인 셈.

3.2. 대일외교 관련 논란

"가해자가 일본인데, 파기될 경우 우리 국익에 영향을 미친다는 게 무슨 얘기냐, 나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쓴 문자인가 했는데, 대한민국 윤병세 장관의 보고서다."
더불어민주당 강창일 의원
"(윤 장관에게)합의문에 한마디 했다고 일본이 사죄와 반성을 했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자유한국당 윤영석 의원[4]친박으로 분류되는 인물조차 이런 비판을 할 정도로 외교 능력이 형편없었다.]
"대체 어느 나라 외교부냐?"
일본과의 위안부 합의 결정이 일방적으로 통보되자, 피해자 할머니들께서 남긴 말

박근혜 정부와 일본 정부의 2015년 한일 위안부 문제 협상 타결 주도자로 알려져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윤병세는 한일 위안부 협상은 최선의 결과이며 재협상은 없다는 기존 입장에서 바뀌지 않았다. 다만 일본 내에서도 한국에 너무 저자세로 나간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있었다는 것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서로 협상을 해놓고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인 셈.

2017년 12월 27일 외교부장관 직속 테스크포스의 조사결과 위안부 합의에서 한국 정부가 일본이 요구한 소녀상 이전, 성노예 용어 사용금지, 정대협 설득을 수용했음이 밝혀졌다.

3.2.1. 부산 소녀상 철거 요구

2016년 12월 30일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 소녀상이 설치되자 국제예양 및 관행을 근거로 사실상 소녀상 설치에 부정적인 입장을 제시하였다.#

또, 공관 앞의 위안부 평화비 설치에 대해서 국제관계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얘기하다가 외교통일위원회에서 비판 받았다.#

부산 소녀상 설치로 아베 총리와 아소 다로 재무상이 한국정부를 비난하고 있는 빌미가 된 10억엔의 출연금은 본인이 요구 한 거라고 밝혔다. 이후 주한일본대사관이 부산에 위치한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는 공문을 부산 동구청에 보낸 사실이 드러나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도 2017년 5월 17일 예정되었던 소녀상 조례 상정을 보류하라고 부산시에 압력을 넣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물론 이미 정권이 바뀐지라 부산시의회 역시 귀담아 듣지 않았다. 어차피 곧 떠날 사람이었으니...

3.2.2. 피해당사자 배제 논란

2016년 12월 29일, 위안부 합의 1주년인 날에 "위안부 합의에 고마워하는 할머니들이 많다는 것은 객관적 사실이다" 라는 발언을 했지만 2016년 9월 13일 요양중인 하상숙 할머니를 병문안 한 것을 제외하면 위안부 합의 1년간 위안부 피해자들을 만난 적도 없었다.

그러나 2020년 논란이 된 윤미향 의원의 정의연 시절 행적이 밝혀지던 중, 위안부 합의에 따른 보상금을 받아간 피해자들이 상당수고, 윤 의원이 정의연의 존재 의의가 없어지는 것을 우려해 할머니들을 내세워 여론몰이를 한 것이 드러났다. 위안부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것에 위협을 느낀 정의연이 피해당사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합의였는가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할머니들의 뜻을 왜곡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지점이다.

3.2.3. 이면 합의 거짓 증언

박근혜 정부의 거짓말…위안부 ‘이면합의’ 있었다
(YTN)거짓말 정치..."이면합의 없었다면서요?"
"소녀상 비공개 합의 없었다" 윤병세의 거짓말

3.2.4. 강제징용 재판거래 의혹

윤병세, 끌려 나오다시피 국감 출석…"기억 안 나"만 반복
‘강제징용 재판거래’ 윤병세 전 장관, “기억이 안나”
[단독] 윤병세 前 장관, 취임 전부터 日 전범기업과 징용소송 논의

3.3. 사드 배치 발표 당시 백화점 쇼핑 논란

한심하다.
더불어민주당 설훈 의원
윤병세 장관, 군대면 탈영한겁니다. 얼마나 할 일이 없었으면..
썰전에서 유시민 작가

사드 배치 발표때 백화점에서 쇼핑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욕을 먹었다. 이에 윤병세는 수선을 맡긴 바지를 찾으러 간 것이라고 변명했다. 장관이 업무시간에 쇼핑이건, 옷수선이건 하러가는 것 자체도 근무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만, 사드 배치와 같은 중요한 대외정책 결정에 공식라인인 외교부가 배제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국민들을 경악시켰다. 그리고 훗날 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되었는지 알려지는데... #

3.4. 딸의 가계 곤란 장학금 수령 논란

윤병세 후보 자녀 ‘가계 곤란 장학금’ 5번 받아

2008년부터 2010년까지 5차례에 걸쳐 윤병세의 딸은 대학을 다니면서 ‘가계 곤란 장학금’[5]을 5차례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딸의 가정환경은 가계 곤란과는 거리가 멀었다. 윤병세는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고문으로 일하면서 2009년 8760만원, 2010년 1억 5600만원의 수익을 올리는 억대 연봉자였기 때문이다.

3.5. 다운계약서 작성 의혹

1999년 윤병세는 본인 명의로 보유하고 있던 서울 양천구 목동의 기준시가 1억6600만원짜리 아파트를 1억1200만원에 팔았다고 신고했다. 같은 해 1999년 목동의 기준시가 2억8000만원짜리 아파트를 매입하며 1억3600만원에 구입하였다고 신고했다. 2004년 고위공직자 재산신고 때 아파트의 실매입가가 1억3800만원이라고 신고하였다. #

3.6. 기타 논란

4. 여담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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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확히 말하면 문재인 정부 제1대 외교부장관을 임명할 때까지만 퇴임이 유예된 것이다.[2] 박근혜 정부 이후의 관점에서는 좀 이상하게 들릴 수 있으나,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 윤병세는 참여정부가 키운 사람으로 분류되었기 때문에, 노무현의 색깔을 철저히 지우려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자의반 타의반으로 공직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국방부 장관국가안보실장을 역임한 김관진 역시 호남 출신으로 합참 근무 시절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실무를 담당했고, 참여정부에서 합동참모의장을 지냈다는 이유로 이명박 정부 초기에는 참여정부 사람으로 분류되었던 적이 있다.[3] 대사급 재외공관장은 접수국(파견되어 가는 국가)과의 현지 외교관계를 총괄하고 소속 직원들을 지휘 감독하며, 별도의 전권위임장 없이도 접수국과의 조약을 채택하는 권한을 갖고 있는데다가, 한번 대사를 역임하면 죽을 때까지 대사 직함을 갖고 가기 때문에 실무 측면에서나 명예 측면에서나 외교관의 꽃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외교부 본부 내 차관 이상의 고위직은 직업외교관 출신이라 해도 공관장 경험자가 드문데, 본인 역시 대사 출신이 아닌 조세영 전 외교부 제1차관은 이를 시대의 변화에 따라 외교공관장의 정무적 역할범위가 줄어들고, 본국 외교부 본부 및 최고위층(청와대)의 역할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한 바 있다.[4] 자한당 소속인 데다가 심지어[5] 학비 마련이 어려운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장학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