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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03 10:27:17

앙드레 말로

<colbgcolor=#000><colcolor=#fff> 앙드레 말로
André Malraux
파일:André Malraux.webp
본명 조르주 앙드레 말로
Georges André Malraux
국적
[[프랑스|]][[틀:국기|]][[틀:국기|]]
출생 1901년 11월 3일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프랑스 제3공화국 파리
사망 1976년 11월 23일 (향년 75세)
프랑스 크레테유
직업 소설가, 정치가
묘역 프랑스 파리 팡테옹
수상 공쿠르상 (1933)
서명 파일:앙드레 말로 서명.jpg
1. 개요2. 인생3. 비판4.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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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Celui qui regarde longtemps les songes devient semblable à mon ombre.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 간다.
프랑스소설가정치가. 반파시즘 운동에 앞장섰으며,[1] 샤를 드골 정권하에서 문화부 장관을 지냈다.

2. 인생

1936년부터 스페인 내전에 공화주의자들 편에 서서 싸웠다. 제2차 세계 대전때 프랑스가 정복당하고 비시 괴뢰국이 세워지자 자유프랑스 편에 서서 레지스탕스로 활동했다. 1958년에는 샤를 드골 대통령 치하에 문화부 장관이 되었다. 이때 프랑스는 처음으로 실질적인 문화적 정책을 갖게 된다. 1969년 사임했다.

저서는 르포르타주 형식의 역작인, 《희망》과 《인간의 조건》이 있다. 일본에도 동명의 소설이 있는데, 관계는 없어 보여도, 전쟁과 인간을 다룬 역작이라는 점에서는 똑같다. (참고로 일본의 동명 소설은 영화화되었는데, 무려 9시간 짜리다.) 인간의 조건으로 1933년 공쿠르 상을 수여했다. 나중에 방글라데시방글라데시 독립전쟁이 일어나자 노령에도 불구하고 참전하였으나 당연히 별 도움은 되지 못했으며 전쟁이 끝난 뒤 프랑스로 돌아온 뒤에 지내다가 1976년 폐색전증으로 병사했다. 생전 골초였는데, 이것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3. 비판

위 내용처럼 스페인 내전 당시 의용군으로 참전하긴 했으나 말그대로 참전만 했지, 비전투원, 그것도 작가나 화가 등의 예술가들을 데려와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 그러면서 자유를 위해 전장에 뛰어든 지성인 이미지로 자기 PR을 하는 동시에 공화정부에 각종 비용을 청구해 돈만 받아 챙김으로써 재산깨나 불렸다. [2]

또한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서 문화재를 도굴해 훔쳐온 전력이 있어서 지금까지도 그에 대한 비판거리로 언급된다.[3] 그런데 후일 우습게도 이 도둑질을 하다가 징역을 산 일을 가지고 그 과정에서 직접 겪은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담은 <왕도로 가는 길>(La Voie royale, 1930) 이란 자전적인 소설을 출간했고, 문화부장관까지 올랐다. 그가 늘그막에 캄보디아를 찾아갔다가 캄보디아 교수에게 또 도둑질하러 왔냐는 비난을 듣자 반론도 못하고 거길 나와버렸다는 일화가 있다.

영화광들에게는 자크 타티플레이타임 만들면서 세웠던 세트를 영화학교로 재활용하려는 계획을 무산시킨 것과 프랑스 시네마테크 원장이었던 앙리 랑글루아를 해임한 것으로도 까인다.

4. 문학


[1] 전쟁터까지 나갔다.[2] 당시 공화파가 지원받은 소련 전투기들이 독일 전투기들에 비해 숫적으로나 성능으로나 열세였던데다가, 공화파 파일럿들도 기량면에서 한참 뒤떨어지긴 했다.[3] 1923년에는 데비상을 밀반출하려다 체포되어 1심에서 실형을 받았다. 그러나 아내와 프랑스 지식인들의 구명 운동을 통해 2심에서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풀려났다.[4] <왕도>, <인간의 조건>과 함께 삼부작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