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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08 22:49:36

여성주의 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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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性主義 治療, (영어)Feminist therapy
1. 개요2. 비판과 반론
2.1. 여성주의 치료는 세뇌 효과를 노리는 것이 아닌가?2.2. 상담가가 내담자에게 자신이 갖고 있는 '특정' 이념을 주입시키려는 시도가 아닌가?2.3. 여성주의 치료를 보면 심리상담 업계가 왜 사이비인지 알 수 있지 않은가?2.4. 여성주의 치료를 치료(therapy)라는 용어로 불러 주어야 하는가?2.5. 의료분야가 아니라 불교, 힌두교, 뉴에이지, 포스트모더니즘, 사이비 종교단체 등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2.6. 내담자에게 남성들에 대한 적개심이나 피해망상을 불러일으키기 쉬운 이념을 주입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3. 특징
3.1. 상담가 - 내담자 관계3.2. 정체성 정치와 유사과학적 특성3.3. 목표
4. 쓰임새
4.1. 성범죄 피해자4.2. 성 차별4.3. 남성 대상4.4. 성소수자 담론4.5. 비서구권

1. 개요

페미니즘 담론에서 무르익은 논의들을 심리치료 및 상담의 분야로 옮겨 오려는 시도로 대략 1980년대부터 제안되기 시작했다. 주요 논자로는 진 밀러(Jean Baker Miller), 캐롤린 엔스(Carolyn Z. Enns), 올리바 에스핀(Oliva M. Espín), 로라 브라운(Laura S. Brown) 등이 있다. 이들이 소속된 웰즐리 칼리지, 코넬 대학교, 샌디에이고 주립대학교 등에서는 여성심리학 관련 연구가 늘고 있다. 페미니즘이 굉장히 분파가 많기에 이를 전부 고려하여 여성주의 치료를 설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1]

2. 비판과 반론

여성주의 치료에 대해서 어떤 평가를 내리기 전에 미리 언급해 둘 것이 있다면, 현실적으로 대다수의 상담심리사들은 어떤 특정 상담 테크닉을 전문적으로 익히기 위해 충분히 오랜 기간의 수퍼비전을 받으며, 자신이 익힌 주제의 테크닉 이외에도 내담자와 환경, 주호소 내용에 따라서 자신이 사용할 테크닉을 신중하게 선택한다는 점이다. 실상 많은 상담 테크닉들은 상호간에 어느 정도씩 겹쳐지는 부분들이 존재하며, 완전히 뜬금없는 논리에 입각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더불어, 미국상담학회(ACA)는 이미 2005년에 윤리 강령을 제정하였다.

2.1. 여성주의 치료는 세뇌 효과를 노리는 것이 아닌가?

상담은 세뇌가 아니다. 세뇌라는 아이디어 자체가 20세기 초중반 지식인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관념이고, 현대에 이르러 정립된 사회적 영향력(social influence)에 대한 과학적 논의에 비추어 보면 세뇌 이론(?)은 "커뮤니케이션 연구의 효시" 정도 이상의 의의는 갖지 못한다. 아직도 세뇌를 진지하게 우려한다면 이는 반 세기 넘게 지적인 업데이트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라고 보면 된다.[2] 하물며 "영구적인 성격의 변화" 같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사람 성격을 열몇 번의 상담 세션으로 바꿀 수 있다면 전세계의 심리학개론 교과서를 싹 갈아엎어야 한다. 여성주의 치료에서 종속 변인, 즉 치료의 목표가 되는 구성은, Enns(2004)나 Gilbert & Rader(2007)에 따르면, 다름아닌 개인이 주체적 삶을 살아갈 역량의 강화이다.

이에 대해 소위 세뇌와 상담이 끼치는 뇌의 처리과정의 차이가 거의 없다고 주장하는 서술이 전우택(1996)의 문헌과 함께 제시된 바 있었다. 이게 20년도 넘게 이전에 나온 KCI 등재지라는 점, 등재 시점에서 다시 20년도 넘게 이전의 문헌들 위주로 인용한다는 점은 절대 사소해 보이지 않지만 일단 억지로 넘어가자. 문제는 세뇌(정확히 말하면 사회적 영향력 내지는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분야인 사회심리학소비자심리학 등에서 소위 "위험한 세뇌 가설" 에 대해서 회의적임에도 불구하고 해당 학계의 외부에서 어떠한 학술적 교류도 지속하지 않는 상태로 꾸준히 이런 주장들이 나온다는 점이다.[3] 무조건 화학적, 생리학적 변인만을 고려하는 "일부" 의 주장과는 달리, 이런 분야들에서는 생물심리사회적 모델(biopsycho-social model)을 전반적으로 활용하여 한 개인이 다른 개인에게 끼치는 영향력을 다수준적, 다측면적으로 분석한다.[4] 이들 분야에서 설득의 효과성에 대한 조절변인을 다루지 않는 것도 아니다. ELM이나 HSM 등의 사회적 영향력 이론가들이 심리적 취약성에 대해 고려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타 학문분야에 대한 지적 모욕이다. "세뇌는 단순하고 원시적이며 과격한 설명" 이라는 주장이 과학적 근거로 뒷받침되고 있을 때, 지식 앞에 겸손한 과학자라면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가?

2.2. 상담가가 내담자에게 자신이 갖고 있는 '특정' 이념을 주입시키려는 시도가 아닌가?

위에서 언급했지만 상담가는 여성주의 치료를 적용할지를 결정하기 이전에 먼저 내담자에게 자신의 성향을 드러내고, 내담자에게 이 상담을 계속 지속할 의향이 있는지를 확인한 후에 조심스럽게 진행해야 한다. Brown(2010)에 따르면 여성주의 치료는 시작 전에 반드시 서면 동의를 통해 치료목표에 대한 합의가 문서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특정' 이념이라는 것이 여성주의 치료가 대두되기 이전에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컨대 게슈탈트 치료에서도 권력관계에 대한 고찰로 내담자를 이끌어갈 수 있다. 하지만 여성주의 치료가 나타나기 전까지 게슈탈트 치료나 의미치료 등이 내담자의 회복에 있어서 일정 부분 불완전했던 것도 사실이다. 실존주의 치료 배경의 상담심리학자 제럴드 코리(G.Corey)는 자신의 교과서에서, 여성주의 치료에 대해 "아동학대, 근친상간, 강간, 성적 학대, 가정폭력 등을 치료하는 상담가에게 치료 과정에서의 윤리적 결정을 하는 것에 공헌했다" 고 평가한다.

만약에 어떤 상담가가 내담자에게 자신의 개인적인 이념을 내담자 의사에 반하여 억지로 주입시키려 하는 피해사례를 목격했다면, 주저하지 말고 즉시 한국상담심리학회 또는 ACA에 신고하라. 특히 ACA 윤리 강령 A.4.b 항에 의거하여[5] 이런 상담가는 즉각 제재를 받고 퇴출당한다. 비단 여성주의 치료뿐만 아니라 어떤 종류의 심리서비스에서도 상담가의 가치관이 내담자에게 강요되는 경우는 허용되지 않는다. 이런 규정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그것이 "실제로 가능한 위험한 상황임을 인정하기 때문" 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전형적인 과잉해석이다. 오히려 이 규정의 존재 이유는, 보편적 윤리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그것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훨씬 간명하다. 참고로 정말 위험한 치료는 이미 Lilienfeld(2007)에 의해 목록화되어 있으며 여기에는 유년기 억압설해병대 캠프(...) 등이 포함돼 있지만, 여성주의 치료 얘기는 일언반구도 없다.

2.3. 여성주의 치료를 보면 심리상담 업계가 왜 사이비인지 알 수 있지 않은가?

우선 언급할 것은 신경과학정신과 사이에, 그리고 정신의학과 임상심리학 사이에, 그리고 임상심리학과 소위 "테라피스트" 들 사이에 엄청난 갈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 학문적 갈등은 어딜 가나 찾아볼 수 있으며,[6] 학제간 연구와 같은 새로운 흐름은 학문 간의 오해와 반목을 내려놓고 공동의 연구목표를 향해 나아갈 것을 주문하고 있다. 문제는 심리서비스 분야 역시 학문으로서 가져야 할 고유한 특성과 연구가 가져야 할 고유한 특성을 모두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종 사이비로 매도당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는 최신의 치료 테크닉의 경우에 더욱 그렇다. 당장 여성주의 치료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코칭의 경우 온갖 멸시와 구박을 받아가며 20년 동안 개고생을 한 끝에 비로소 메타 분석과 체계적 리뷰를 내놓고 APA에서 정식 심리학 영역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사이비 아니냐는 의심은 심하게 말하면 인지-행동치료[7]를 제외한 거의 모든 심리상담 영역에서 항상 받는 의심이다. 이 의심이 학술지원기관에 흘러들어가면 즉시 well-controlled trial을 실시할 펀딩이 직접적으로 감소한다. 이 분야 연구자들이 그렇게나 미친듯이 메타 분석에 필사적으로 목숨을 거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Brown(2010) 역시 여성주의 치료가 비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있다며 조속한 제도적 정립을 촉구했다.

사실 이는 현대에 들어서 너도나도 별의별 "테라피" 를 내세우면서 자기만의 영역을 개척하려 하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도 없지않아 있다. 사실상 이들은 통제범위 밖에 있는 경우도 많아서, 예컨대 내면아이목회상담, 정신적 과잉 활동인, NLP, 교류분석 같은 케이스는 어떠한 과학적 및 기술적 근거로도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자칭 상담가들에 의해 남용되고 있는 상황이다.[8] 그렇다고 해서 잘 정립된 제도권의 학자들까지 비난받을 수는 없다. 현대의학이 아무리 잘 정립되어 있어도 "키 크는 약", "주름 없애는 미백주사" 등 운운하며 사방에서 튀어나오는 사이비 약팔이들까지 원천 차단하기는 어려운 것과 같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런 케이스를 들어서 의사들을 돌팔이라고 부르진 않는다. 여성주의 상담가들을 "자유업 상담가" 라고 부르는 것 역시 이 업계가 어떻게 제도화되어 있는지 모르는 상태로 이 업계를 평가하겠다고 공언하는 것과 같다. 이 과정에서 심리치료에 관련된 제학문을 점성술이니 사상의학이니 하면서 학제간 연구의 대상조차 아니라고 악평하는 것 역시 똑같은 맥락의 지적 편협함이라고 볼 수 있다. 한 가지 언급하자면, 연구방법론 관련 정보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양적 방법론의 쟁점들 중의 상당수는 실제로 심리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정교화되었으며 꾸준히 논의되고 있다.

유의할 점은 이것이 비판적 정신의학(critical psychiatry)으로서 의외로 상당히 의미 깊은 논쟁이라는 것이다. 그 자신부터가 정신과 의사이기도 한 Sorboro(2007)가 일찍이 정신의학의 과학화를 부르짖으면서도 연구의 현실적인 복잡성에 대해서도 염려했듯이,[9] 오늘날 임상신경과학(clinical neuroscience) 및 생물정신의학(biopsychiatry) 등에 대해 많은 정신의학자들이 관심을 갖고 뛰어들고 있고[10] 진지하게 대하고 있다. 유명한 디벙커인 Lilienfeld 역시 사이코패스 심리치료 전문가다. 이런 부류에서는 오히려 어지간한 의학자들보다도 강경한 태도를 보여서 학계를 놀라게 하기도 하지만, 심지어 이들조차도 여러 "테라피" 들을 고찰하면서 그 효과가 과학적으로 확인되는 테라피들도 분명 존재함을 확인하고 있다. 이들이 모여서 낸 책이 바로 Science and Pseudoscience in Clinical Psychology이니 관심이 있다면 읽어볼 것. (물론 여기에도 여성주의 치료 얘기는 없다.) 하지만 어쨌거나, 점성술이나 사상의학 등의 자칭 전문가들이 이런 학계 내의 집단적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는 것 같다.

2.4. 여성주의 치료를 치료(therapy)라는 용어로 불러 주어야 하는가?

사실 이는 현실과 아주 무관치는 않은 질문이다. 실제로도 국내에서도 예술치료 관련 자격증을 공인할 당시에 유수의 대학병원 관계자들의 반발로 인하여 치료(therapy)라는 단어가 아닌 치유(healing)라는 단어를 써야 한다는 압박이 엄청나게 들어왔었고, 결국 예술치료는 상담사도 심리사도 아닌 예술사로 분류되었던 선례가 있다. 국내 임상심리학회나 상담심리학회의 학회장을 맡고 있는 교수들도 치료/치유 단어사용에 대한 의문이 나오면 그것이 갖는 논쟁적 성격을 알기에 굉장히 보수적인 태도를 보인다. 다시 말하자면, 비단 여성주의 치료뿐만 아니라 치료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거의 모든 심리치료 분야들은 전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의학계의 견제를 받는다. 그리고 이걸 의사들도 알고 있고 본인들도 당연히 알고 있다. 분명한 것은, 여성주의 치료만 이런 논쟁이 생기지는 않는다는 것이다만, 유독 불거져 나오는 것은 여성주의 치료다.

2.5. 의료분야가 아니라 불교, 힌두교, 뉴에이지, 포스트모더니즘, 사이비 종교단체 등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아니다. 불교의 경우 마음챙김이나 수용-전념치료 등이 영향을 받았고, 포스트모더니즘의 경우 이야기치료가 사회 구성주의에 입각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타 종교단체에서 자체적으로 굴리는 심리치료(?) 프로그램들은 목회상담을 포함해서 그냥 대중심리학으로 취급된다. 하지만 여성주의 치료의 기원은 1960년대 미국의 인권 운동이 상담심리 영역에 영향을 끼친 것이 시작이다. 코리에 따르면, 이것이 학문적으로 체계화되고 정립화되는 데에는 여성심리학회(AWP)와 APA의 지원이 매우 컸다. 분명, 심리치료 분야는 신경과, 감염과, 종양내과 등의 분야와는 판이하게 다르지만, 이것만을 가지고 여성주의 치료를 곧바로 "구루 카운슬링" 이미지와 연결시키는 것은 섣부른 추측이다.

2.6. 내담자에게 남성들에 대한 적개심이나 피해망상을 불러일으키기 쉬운 이념을 주입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여성주의 치료가 나타나기 전까지 성범죄 피해자에 대해서 어떻게 심리치료를 해야 했을까? 여성주의 치료가 주장하는 것이 "남자를 미워해라" 인가? 여성주의 치료 이전의 상담가들은 참혹한 강간을 겪고 나서도 전부 자기가 품행이 방정치 못한 탓이라며 가슴을 치는 여성들에게 개입할 수단이 거의 없었다. 여성주의 치료가 피해망상을 촉진하는가? 여성주의 치료 상담가들은 날마다 남편에게 가정폭력을 당하는 매 맞는 아내(battered wife)들이 끝까지 "그이가 날 사랑해서 그래요" 라며 자기 남편을 감싸고 도는 동안 개입할 방법을 고안해야 했다. 이것이 내담자에게 피해망상을 주입한다고 평가되어야 하는가?

병원에 건강한 사람이 방문할 필요가 없듯이, 여성주의 치료는 심각한 젠더 관련 문제로 인해 내방하는 내담자들을 대상으로 그들을 회복시킬 방법을 찾아야 하는 입장에 놓여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남자들 다 때려잡자!" 는 사상을 심어주는 것은 (액티비스트들을 대상으로 하는 여성주의 교육에서는 그렇게 할지 몰라도) 여성주의 "치료" 에서는 해당 사항이 없다. 물론,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던' 남성들이 자기 아내가 치료받는 동안 덤으로 엮여서 나란히 앉아 치료를 받게 될 수는 있을 것이다. 많은 경우 아내가 심리치료를 받으면 1회차 세션 이후 남편까지 같이 오라고 한다. 이는 남편이 치료받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하나 둘씩 추가되다가 나중에는 온 가족이 죄다 내방하기도 한다. 가족치료가 수요가 높은 것 역시 이 때문이며, 일반적으로 덤으로 딸려오는 쪽에서는 "왜 멀쩡히 잘 살고 있는 사람인 나까지 문제라는 거냐" 는 식의 반응을 보인다. 딱히 여성주의 치료가 아니더라도 이런 경우는 심리치료 장면에서 흔하다.

3. 특징

3.1. 상담가 - 내담자 관계

다른 많은 상담기법들과 마찬가지로, 여성주의 치료 역시 내담자(來談者)가 어떠한 존재이고 상담가는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유의 관점이 존재한다. 여성주의 치료사들은 양자가 철저하고 완전하게 평등해야 함을 강조한다. 상담가도 내담자도 평등한 인간인 것이다. 여기서의 평등은 주로 권력적인 부분을 의미하지만, 그 범위가 상당히 폭넓어서 지식적인 부분도 포함된다. 그래서 상담가는 일부러 상담 초기에 내담자에게 치료에 필요한 이런저런 전문지식들을 모두 알려 주며, 관련 책들을 이것저것 갖다 주며 읽으라고 한다. 그래서 여성주의 치료에서 독서 치료는 굉장히 유용한 방법론 중 하나로 취급된다. 다른 상담 기법들과는 달리, 여성주의 치료에서 상담가는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지적 우월성을 제거해야 하며, 마침내는 내담자를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최고의 전문가로 격상시켜야 한다. 다시 말해, 상담 과정에서 궁극적 권위는 여성주의 치료법의 각종 이론들이 아니라 오히려 내담자의 개인적 서사(敍事)와 경험, 호소 내용 등에 부여될 수 있고, 부여되어야만 한다. 그래서 이들은 항상 불필요한 진단을 피하며, 내담자의 호소 내용을 섣불리 "해석"하려는 것도 경계한다. 오히려 이들은 자신이 한 여성으로서, 내지는 한 사람으로서 경험한 것들에 대해 공공연히, 그리고 적극적으로 자기 개방(self-disclosure)을 하고자 하며, 이 상담을 통해 상담가가 내담자로부터 어떤 성장의 계기를 경험하였음을 보이고자 한다.

3.2. 정체성 정치와 유사과학적 특성

궁극적으로 기존의 임상적 체계와 과학적 방법론, 심리적 문제에 대한 진단 기준을 거부한다. 다른 치료법들이 DSM 등 주류 평가 방법들로 개인의 문제를 진단하고자 한다면, 여성주의 치료는 그러한 진단하려는 태도 자체를 거부한다. 이들은 심리적 증상이 질병의 한 종류가 아니라 불평등하고 억압적인 환경에서의 생존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이 점에서 보면 여성주의 치료는 기존의 치료법에 만족하지 못한 내담자들에게 상당히 매력적인 피난처가 될 수 있다. 내담자들이 "DSM에 따르면 제가 우울증이 있다는데요?"라고 말했을 때, 상담가가 "누가 이 명칭을 사용함으로써 이익을 얻을까요?", "당신에게 우울증 환자라는 꼬리표가 붙게 되면 어떻게 사회적 권력을 빼앗기게 될까요?" 와 같은 식으로 문제를 다시 생각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사실 여기서부터 모순점을 찾아볼 수 있는데 바로 윗 문단에서는 상담가와 내담자의 평등을 운운하더니 여기선 대놓고 상담가의 음모론적인 사고방식으로 대화를 유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DSM적 태도는 여성주의 상담가들이 임상적・생리학적인 문제를 여성주의 사회학에서 다루는 권력 관계로 분석하려 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여성주의 치료의 관점에서 기존의 모든 치료법들은 상담자의 권력에 매우 종속적이고, 억압적이고, 불평등한 것으로서, 여성주의 치료 이론가들은 사실상 '기존의 모든 치료법들과 임상적 판단기준, 정신병리학적 기여들이 전적으로 남성들에 의하여 주도되어 왔으며, 그 과정에서 여성들의 목소리는 절차적으로도 결과적으로도 무시되었다'는 정치적 주장을 펼친다. 아울러 여성주의 치료의 관점에서 봤을 때, '여성 환자들이 겪는 문제들은 사회의 왜곡된 성 관념과 잘못된 성 역할, 그리고 이를 확대 재생산하는 부당하고 불의한 체제(system)와 제도(institution)에서 비롯된 것이며, 따라서 단기간에 해결되기는 어려운 문제들이므로 (여성 운동에 직간접적으로 동참해 사회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라는 귀결을 낳게 된다.

물론 정상적인 의료인이라면 누구나 확실한 질병으로 인정하는 우울증 같은 병을 젠더 프레임을 덧씌워 기득권의 사기 정도로 치부해버리는 것은 일개 음모론에 지나지 않으며 그러한 음모론적인 사고방식을 내담자에게 유도하는 것은 유사과학이라 명명하기에 손색이 없다. 심하면 자살에 이를 수도 있는 우울증을 겪는 환자에게 누가 당신 권력을 빼앗네 이익을 얻네 같은 망상적인 소리를 하는 것은 적절한 약물치료와 정상적인 상담으로 극복 가능한 환자를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빠뜨릴 수 있는 안아키같은 유사의학적 행태이다,

3.3. 목표

여성주의 치료의 우선적인 목표는 내담자가 불의(不義)하고 불공정하며 불평등한 사회로부터 주입받은 억압적 성 관념 및 성 역할을 벗어던지고, 자신에 대해 비로소 올바르고 건설적인 인식을 하게 하는 것이다. 개인은 여성주의 치료를 통해 "정말 나 자신만을 위한" 자기실현적인 역할을 새로이 설정하고,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사회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서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개인의 안녕과 행복을 저해하는 불의한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며, 이 속박에서 비롯된 자기 정당화와 불필요한 죄책감, 패배의식, 혼란스러움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는 대증 요법이라는 한계가 있다. 여성주의 치료사들은 궁극적으로 사회 전체의 변혁을 바란다. 그래서 이들은 "여성주의 치료의 최종적인 목적은, 여성주의 치료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는 말을 즐겨 한다. 이는 히어로물에서 흔히 나오는 대사, "우리는 우리가 필요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와도 맥락상 일치하는 말이다. 그 목적으로, 치료사는 최종적 단계에서 내담자에게 "자리에서 떨쳐 일어나, 여성들의 권리와 행복을 위하여 부당한 억압에 맞서 싸우라." 라는 주문을 할 수 있다. 아까는 상담가와 내담자가 완전히 평등하다면서 왜 ‘주문’을 하는건지 모르겠지만 어쨌건 이는 본질적으로 "모든 사람은 정치적이며, 개인은 그 정치적 맥락과 제도 및 체제에 밀접하게 상호작용하고 영향을 주고받는다" 는 여성주의의 인간관에 의해 뒷받침된다. 이는 한편으로는 "세상이 변하지 않는 이상 완치 불가능한 방법"이라고 비판받는다.

4. 쓰임새

4.1. 성범죄 피해자

당장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강간이나 데이트 폭력,[11] 아동 성범죄 등의 각종 범죄에 노출되거나 경험한 "생존자들" 을 재활시키고 사회에 복귀시키는 데에 쓸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들이 시달리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는 여성주의 치료사들 역시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문제시하는 부분이다. 이 점에 있어서, 여성주의 치료사들은 기존의 접근법들이 성범죄 생존자들의 심리적 고통과 어려움을 '우울증'이나 '스트레스 장애'와 같은 식으로 꼬리표달기(labelling)를 한다고 비판하므로, 애초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표현 자체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이들은 기존의 생존자들을 단순히 회복시키는 데에서 더 나아가 "다시는 나와 같은 사람이 더 있어서는 안 된다." 라는 위기의식을 촉구시켜서, 이른바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의 가능성도 제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개인은 자신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자신의 성장의 계기로 삼음으로써 세상을 변화시키는 계기로까지 확장하고자 하게 된다. 생존자들 간의 연대와 부조(扶助), 유대, 결속 역시 크게 장려된다.

짐작하겠지만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실시되는 미술치료 등이 그 활용 및 목표에 있어 여성주의 치료의 양상을 많이 보여주고 있는 편이다.

4.2. 성 차별

여성주의 치료는 그 상담 과정에 있어서 내담자로 하여금 젠더 감수성(gender sensitivity)을 증진시킨다. 여성주의 치료는 내담자가 권력관계의 불평등과 불의함에 예민해지고 이를 통찰하도록 만들고자 하며, 가정과 학교, 직장 등에서 대놓고 또는 암암리에 가해지는 다양한 차별의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고 직시하도록 만든다. 물론 개인의 힘만으로는 이렇게 하면 오히려 예전보다 더욱 불행해지므로 (신경성을 증가시키므로), 경험과 입장, 대의를 같이 하는 사람들과 얼굴을 직접 맞대는 끈끈하고 강력한 대인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SNS 상에서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차라리 페미니즘을 몰랐던 때가 더 행복했어, 마치 매트릭스의 빨간 약처럼, 페미니즘을 알고 나니까 모든 것이 불편해져 버렸어" 같은 식으로 글을 남기곤 하는데, 사실 이런 부분도 여성주의 치료의 주요 관심 대상에 속한다. 이를 통해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겉으로 드러나거나 암묵적인 차별에 대해서 인권을 단호하게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할 수 있다.

4.3. 남성 대상

흔히 여성주의 치료는 여성만을 위한 것이라고 여겨지기도 하고, 여성만이 상담사가 될 수 있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물론 현실적으로 보면 대부분의 수요층은 사실상 여성이다. 특히 여성주의 치료에 경험과 소양을 갖춘 상담사들의 사실상 전원에 가까운 비중이 여성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여성주의 치료가 남성과는 전혀 무관하다거나 무의미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여성주의 치료가 겨누고 있는 문제는 일정 부분 남성들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4.4. 성소수자 담론

적용 가능 분야는 다양하지만 그 효과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4.5. 비서구권

서구권이나 서구의 영향을 많이 받은 근대화된 국가들에서는 덜하지만, 그렇지 않은 문화권에서 실시하거나, 그렇지 않은 문화권 출신의 이주자를 대상으로 실시할 경우에는 위험이 존재한다. 여성주의 치료는 여성이 가부장제적이고 억압적인 사회의 지배 논리에서 벗어나도록 하지만, 이러한 상담가의 입장에 대해 내담자 본인부터가 자신의 친가부장제적 관점을 굽히지 않고 대립할 수 있는 것이다. 예컨대 터키 같은 곳이나 남아시아, 동아시아 국가의 여성들은 기존의 사회 구조와 체제, 여성 억압적인 성 역할에 대해서도 그것이 올바르다고 여길 가능성이 있으며, 상담가가 자신에게 억지로 사회적 통념을 깨라고 하거나 불필요하게 "이기적으로 굴어라." 라고 주문하는 것처럼 오해할 소지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상담가는 이질적인 문화적 배경을 지닌 내담자에 대해서 여성주의 치료를 적용할 때는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가능한 한 일찍, 그리고 명료하게 상담가가 지닌 성 평등적(gender equality) 가치를 드러내 보이고, 공격적이지 않은 방법을 통하여 내담자가 상담을 지속할지에 대해 숙고하여 결정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더불어 상담가는 성 문제에 대해 마구잡이로 여성주의 치료를 적용하기보다는, 기본적 가정이나 인간관과 조화 가능한 다른 치료법들도 고려하여 통합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권장된다.

[1] 대학교 도서관을 방문하거나, Enns(1993; 2004), Enns & Sinacore, Feminist theories, Encyclopedia of women and gender : sex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and the impact of society on gender, San Diego, Calif. : Academic Press, 2001 등의 논의를 찾아볼 것.[2]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간단히 생각해 볼 만한 점이 하나 있다. 세뇌가 그렇게 위험천만하고 산재된 현상이라면 당장 광고심리학계는 전부 굶어 죽었을 것이다. 사람의 생각하는 내용을 바꾸는 게 지독하게 어렵기 때문에 소비자들을 조금이라도 더 설득해 보겠다고 수많은 광고심리학자들과 광고주들이 돈을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광고와 세뇌는 다르다고 보는가? 세뇌에 관심을 갖던 초창기 사회심리학자들이 넘어가서 이걸로 돈 벌겠다며 깃발 꽂은 분야가 광고심리학이다.[3] 그리고, 여기서 해당 논문을 "당연히 가능한 세뇌" 를 입증하려는 목적으로 인용하는 것은 전형적인 지적 디코이 전략이다. 해당 논문 252페이지 우측 하단 및 결론 파트를 읽는 정성이 있다면 이런 인용은 불가능하다. (좀 미안한 얘기지만 학술문헌들을 이런 식으로 인용하는 건 누구네가 CNS를 대상으로 잘 하는 특기다.) 학술논문에는 권위가 실리기 때문에 그 인용에도 책임성이 있어야 한다. 게다가 이건 무슨 사이허브로 봐야 하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RISS에서 전문공개된 논문이다.[4] 이에 대해 "Every psycholgical is biological" 같은 슬로건을 내세우며 신경 환원주의 혹은 생물학적 환원주의를 주장할지도 모르겠으나, 문제는 사회심리학의 필드에서 이런 시도를 했던 것이 이미 2000년대 초반으로서, 현대에는 이 접근에 대해 상당히 침착하게 바라보고 있는 상태이며 심지어 이런 환원주의자들 중 일부는 방법론의 미숙한 적용으로 인해 부두교 과학이라는 비웃음까지 들었다. 해당 필드에서 이미 유명해질 대로 유명해진 저 "대서양 연어 논문" 같은 것들이 시사하듯이, 현대의 연구자들은 신경과학적 접근을 아주 부정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한계점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는 상태이다.[5] "개인적 가치관: 상담심리사들은 자신의 가치관, 태도, 신념, 행동을 알고 그러한 것들을 강요하지 않도록 노력한다. 상담목표에 상반되는 가치를 강요하지 않아야 하며, 다양한 내담자, 수련생, 연구 참여자를 존중한다."[6] 서로가 서로를 유사과학이라며 비난하는 경향은 어지간한 학문 간의 충돌에서는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학자들의 SNS 상에서도 수틀리면 상대방을 유사과학자니 뭐니 하면서 비방하는 글들이 올라와서 학계 동료들의 눈살이 찌푸려지게 만드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는 해당 학계에서 well-controlled trial을 지키면서 연구하는지 아닌지와 무관하게 제기되는 비난인 경우도 많다.[7] 국내에서 심리치료를 받는다고 할 때 가장 높은 확률로 접하게 될 테크닉이다. 그 다음이 아마 가족치료 내지 소집단 치료 정도.[8] 이런 사람들은 기존에 널리 받아들여지는 주류 상담 테크닉은 오히려 구사하지 못한다. 공인된 제도를 통해 전문성을 갈고 닦는 것은 더더욱 기대하기 힘든 실정.[9] 정신의학 과학화와 관련해서 보통 가장 유서 깊게 즐겨 나오는 떡밥이 ADHD 과잉진단 논쟁인데, 이 떡밥의 경우 LeFever, Arcona, & Antonuccio(2003)가 그 실체가 부풀려졌음을 지적하는 내용의 논문을 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10] 생물의학적 환원주의를 주장하는 논자들도 있지만 이와는 거리를 두려는 논자들도 있다. #NYT 관련기사[11] 데이트 폭력에 대해 페미니즘적 접근을 취하는 것에 부정적인 연구자들도 있긴 있다. 예컨대 도널드 두턴(D.G.Dutton) 등이 그 사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