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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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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내 개신교계는 조직신학(교의학)에 민감하기에 대체로 이단으로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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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예수敎長老會 高神總會
The Kosin Presbyterian Church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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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A65B8><colcolor=#ffffff> 표어 선교:일상으로 보냄받은 교회 (요한복음 20:21)
약칭 예장고신
설립연도 1952년
소속국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총회장 정태진 목사[1]
부총회장 최성은 목사[2], 김승렬 장로[3]
사무총장 이영한 목사
교인 수 378,376명(국민일보, 2023년#)
교단 기관지 기독교보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교단 출판국 총회교육원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위치 서울특별시 서초구 고무래로 10-5 (반포동)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총회
1. 개요2. 역사3. 교단 특징
3.1. 전반적인 내용3.2. 신사참배 거부 및 타 교단과의 관계
4. 노회 목록5. 자매교류 기관6. 기타
6.1. 산하 학교6.2. 출옥성도가 주축이 된 교단6.3. 고신에서 분리된 교단6.4. 학생신앙운동6.5. 기타
6.5.1. 비대면 예배 반대6.5.2. 1027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 및 큰 기도회 관련

[clearfix]

1. 개요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총회는 과거 일본의 강점기 때에 신사참배 강요를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해방 후 신사참배 회개운동을 했다는 것 때문에 장로교 총회로부터 쫓겨나 세워진(1952년) 교회이다. 고신교회는 '신앙의 정통'과 생활의 순결'을 중요하게 여긴다. 또한 장로교회(Presbyterian Cuurch)로서 종교개혁의 개혁신앙을 따르며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예배모범, 교회정치, 신앙고백과 대,소요리문답)를 예배와 질서, 그리고 교리로 채택한다. 로마천주교회의 성직자 위계제도와 재세례파의 조직 없는 정치의 양극단을 거부하고 성경에 근거한 장로정치를 따른다.
또한 종교개혁 신앙을 파수하고 있는 세계에 흩어진 장로교회와 개혁교회들과 연합을 이루고 있으며(ICRC[4]) 미국[5], 캐나다[6], 일본[7], 네덜란드, 대만[8], 남아프리카공화국[9], 호주[10] 등지의 여러 교회와 우호 및 자매 관계를 맺고 있다.

2. 역사

1959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제44회 총회에서 소위 연동측과 승동축이 분열되자 신하과 신앙노선이 같은 승동측과 고신은 합동을 추진하기 위한 움직이 일어났다. 그 결과 1960년 승동측(현 합동교단)과의 합동총회가 개최되었다. 그러나 합동원칙이 지켜지지 않아 내부 갈등이 일었고 이와같은 과정에서 1962년 고려신학교가 복교를 선언한다. 이후 고려신학교 졸업생들에게 강도사 고시 자격을 허락하지 않음을 계기로 갈등이 심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역노회들이 차례로 환원을 결정하면서 1963년 환원총회가 회집하게 된다. 이로서 승동측과의 합동은 34개월 만에 환원으로 재분리의 아픔을 겪게 된다. 고신은 이때의 환원으로 이전의 교세의 1/3을 잃게 되었다. [15]

3. 교단 특징

3.1. 전반적인 내용

일제강점기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의 신사참배 결의에 반대하여 옥살이를 하고 나온 목사와 성도약칭 출옥성도들을 중심으로 세워진 교단이다. 이들은 총회에서 신사참배 한 것에 대한 회개와 일제에 의해 폐교된 평양신학교의 신학을 이은 정통신학,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자유주의신학에 반대하여 개혁주의 신학의 신학교 설립을 주장하며 신학교육을 통하여 교회의 회복을 위한 진리운동을 펼쳤다.타칭고려파 운동 그 일환으로 경남지역에 고려신학교를 설립하였다. 그러나 당시 총회는 평양신학교의 폐교 후 서울에 자유주의 신학의 조선신학교를 세운 후였기에, 노회와 총회의 교권주의자들은 출옥성도들과 고려신학교파(경남지역 중심)를 제명시킨다. 쫓겨난 이들은 결국 총노회를 조직하여 독자적으로 총회를 구성할 수 밖에 없었다. 이들은 교회개혁이라는 정당한 목표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부족하고 정죄하는 자라는 비판을 받으며 분리주의자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신사참배에 적극 참여하고도 회개하지 않고 교권을 잡았던 이른바 지도자들과 그들이 장악한 노회와 총회의 교권주의적 오만의 결과로 얻은 평가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은 총회 구성보다 신학교 설립이 더 빨랐다는 특징이 있다. 평양신학교는 일제강점기 당시부터 개혁주의 신학으로 유명했던 곳이며, 이 때문에 신사참배 반대 운동의 중심 세력들은 대부분 평양신학교 위주였다. 그리고 관련자들이 제명당할 당시에는 당연히 고신 교단이 존재하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이들의 출신 성분이 성분인지라 신학적으로는 매우 보수주의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 이들이 모여 고려신학교(高麗神學校)를 세웠다. 고려신학교는 현재 고신대학교의 모체가 되었다.[20]
고려신학교는 경남과 부산을 근거지로 하였기에 고신은 경남과 부산을 중심으로 한 경상도에서 교세가 큰 편이다. 지역에 치우친 교세를 극복하기 위해 교단 차원에서도 노력하였는데, 고려신학대학원을 부산에서 천안으로 이전한 경우라던가 총회회관[21]을 서울에 둔 것 등의 여러 노력을 기울여왔다. 이러한 노력으로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교세가 성장하였지만 여전히 부산과 경남지역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소수다. 2000년대 초반 고려교단의 서경노회가 고신으로 편입하였고, 2015년 고려총회와 고신총회가 통합하게 되면서 수도권 지역에서의 교세가 일부 성장하였다. 그러나 노회의 구성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 여전히 강원과 전라지역에서는 약세다.

신학 노선은 보통 개혁주의라고 소개되는데, 쉽게 말하면 칼뱅주의, 장로회. 이는 총신대(합동),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합신)과 맥락을 같이 한다. 그 중에서도 칼빈의 전통적 견해에 비교적 강하게 찬동하는 경향으로, 한국의 장로회 교단 중에서 가장 보수적 신학을 가진 교단이라고 할 수 있다. 각종 신비주의, 은사주의적인 것에 대해 부정적이며 종교다원주의, 에큐메니컬운동의 자유주의 신학에 상당히 회의적이다. 그리고 동성애[22]가톨릭에 대해서도 거부한다. 여성의 목사 안수 또한 허용하지 않는다. 예장합동, 합신 측과 나란히 반에큐메니컬진영을 대표하는 장로회 교단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당연히 세계교회협의회(WCC)나 WCRC를 거부하며 ICRC(국제개혁주의교회협의회)의 회원교회 중 하나다.

고신은 초기 교단 신학에 큰 영향을 끼친 한부선 선교사나 박윤선 목사, 한상동 목사의 영향도 크다. 한부선 선교사는 프린스턴신학교 출신(1924-1928년)으로, 이때는 이른바 구(舊)프린스턴신학의 마지막 시절이었다. 그는 졸업과 동시에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로 청주에서 사역하다가 첫 안식년을 맞아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수학(1935-36)한 뒤에, 1936년에는 북장로교회를 탈퇴하고 미국장로교회(이후에 정통장로교회)의 창립 회원으로 가입하고, 장로교 독립선교부의 선교사로 파송받아 만주 봉천노회와 협력하였다. 1938년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제 27회 총회가 부당하게 신사참배를 가결할 때 항의하였다. 1940년에는 “장로교 언약”(The Presbyterian Covenant)을 만주에서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이들과 작성하였고, 1941-42년에는 옥고를 치른다. 1942년에 강제 추방당하였다가 1946년 10월 18일에 미국 정통장로교회 선교부의 파송으로 한국에 도착하여 11월 13일부터 1960년까지 고려신학교에서 실천신학과 선교학 등을 강의하였다. 한부선 선교사를 위시하여 초기 교수들이었던 박형룡(1887-1978), 박윤선, 김진홍(1906-1988), 이상근(1911-2011), 김철현, 안용준 목사 등과 하도례 선교사(1925-2009)가 웨스트민스터신학교를 졸업하거나 수학하였으니, 초기 고려신학교는 ‘한국의 웨스트민스터신학교'와 같은 분위기였다고 전해진다.

박윤선 목사는 고신교회와 고신신학의 지평을 웨스트민스터신조와 장로교 전통으로부터 네덜란드 개혁신학으로 확장시켰다. 그는 1930년대 평양신학교 재학 시절에 칼빈주의 또는 개혁신학을 배우지 못했다고 증언한다. 그는 박형룡 박사의 추천으로 1934년에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로 가서 공부하면서 개혁신학을 접하였고, 1938-39년에 두 번째로 유학하였다. 이 공부를 통하여 네덜란드 자유대학교에 가서 공부하려는 의욕을 가졌다. 비록 화란 유학 기간은 6개월에 불과하였지만, 1930년대에 화란어를 공부하고 화란 신학자 바빙크를 공부하고 화란 주석을 읽고 강의하고 주석을 저술하였다. 그의 활동으로 한국교회는 독자적인 첫 주석가를 통하여 개혁신학을 접할 수 있었다.박 목사가 고려신학교 초기부터 고려신학교에서 개혁신학을 성경 주해와 변증학, 신학 일반에서 가르쳤고 이후 고신교회 안에서 그의 제자들이 그의 경건회 설교를 전국교회로 가서 전하는 방식으로 개혁신학과 설교가 고신교회로 퍼져갔다. 그렇지만 그의 활동은 고려신학교 개교 이후 10년만에 중단되었다가 복귀하지만 1960년 9월 승동측과 합동 직전에 그가 교장직 수행을 제지당하면서 종결된다.박 목사는 당시 장로회총회의 교회정치 혼탁과 권력 투쟁을 비판하였다. 즉 제 15회 총회가 적절한 조사도 하지 않고 경남노회가 고려신학교와의 관계를 가지는 것을 막았다는 것이다. 교회회의도 실수를 범할 수 있으며, 신자의 양심의 자유를 따라 잘못된 결정에 항거할 수 있음을 칼빈과 여러 신조들을 인용하면서 옹호한다. 총회파가 마산 문창교회의 예배당을 차지하려고 세속 법정에 고소하자 고신교회에 속한 목사(송상석)도 맞대응하였다. 총회가 소송 가능성을 열어두자, 박 목사가 이것이 고려파 정신인 초기의 개혁과 회개 정신이 퇴색이라고 지적하고 남을 소외시키는 편협함도 비판하였다. 즉 고려파는 모든 한국교회를 회개케 하는 선택된 집단이기 때문에 소송에 휘말리면 고려파의 권위가 상실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결국 그는 1957년 초에 자기의 가르침을 존중하지 않는 이들을 떠난다. 다시 복귀하나 주일성수문제로 1960년 9월 고려신학교를 완전히 떠난다. 박 목사는 초기 고신교회의 신학 형성에 크게 기여하였다. 한국 동란 당시에 피난지 부산에는 온갖 신비주의와 방언을 포함한 은사운동 그리고 이단이 창궐하였다. 한국교회가 전통적으로 사경회나 부흥회를 개최하지만 개혁교회의 특징인 성경교육을 교인들에게 체계적으로 제시하지 못하였다. 박 목사는 개혁신학에 기초하여 문선명의 통일교, 박태선의 전도관, 나운몽의 용문산 운동 등을 비판하면서 고신교회의 신앙을 굳건하게 확립하였다. 이후 고신교회는 한국의 어떤 교회보다 불건전한 집회나 은사운동과는 늘 거리를 두게 되었다.

박 목사를 이어 이근삼 박사(1923-2007)가 고신교회 안에서 칼빈주의와 개혁신학을 계속 강의하고 발전시키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이 교수는 칼빈주의와 개혁신학을 신봉하면서 이 용어가 그의 입술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장로교 신조인 웨스트민스터고백서와 요리문답을 해설하였고, 고려신학교와 고신교회가 장로교 전통 위에 서도록 크게 기여하였다. 그리고 칼빈주의 문화관에 입각한 기독교대학에 대한 열망은 누구보다 컸고, 현재의 고신대학교는 그를 떠나서는 설명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근삼 박사는 박윤선 목사에게 직접 배웠지만, 그에게는 또 다른 멘토가 있다. 한명동 목사이다. 한 목사는 고려신학교 초기에 살림을 맡았고, 광복동·감천·암남동으로 이어지는 교지(校地)와 교사(校舍) 매입과 건축을 책임졌다. 그는 1955년부터 1965년까지 고려신학교 예과에서 독립한, 이후 고신대학교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칼빈학원을 맡아 교장과 교수로 사역하였다. 한 목사는 일본고베중앙신학교에서 유학하면서 미국남장로교 선교사였던 풀턴(Samuel P. Fulton, 1938)의 칼빈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유학을 시작한 1935년부터 첫 두 해 동안은 칼빈주의를 싫어하였지만, 곧 칼빈주의를 신봉하기 시작하였다. 풀턴의 칼빈주의는 웨스트민스터신조에 기초한 장로교적 개혁신학 전통을 말한다. 그래서 고려신학교 설립취지서에 나오는 문화운동인 기독교대학 언급은 한명동 목사가 기여한 바라고 추정할 수 있다. 박윤선 목사가 기독교대학교에 대하여 언급하거나 어떤 열망을 갖고 있었다는 증언이나 기록은 없다. 만약 박 목사가 유일한 작성자라면, 그가 유학하였던 화란 자유대학교도 언급되었을 것이다.

박윤선, 한명동 목사가 말하는 칼빈주의와 개혁신학은 한 편으로는 장로교 전통이요 다른 편으로는 화란 전통이다. 이근삼 박사는 이 두 전통을 연결한다. 고신교회는 1969년에 웨스트민스터고백서와 대교리문답서를 채택한다. 이때는 화란개혁교회와 자매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그 교회의 요청으로 이것들을 채택하였다고 볼 수 있으니, 그때부터 화란교회와 그 개혁신학의 영향이 고신교회에 영향을 미친다. 더욱이 암남동 교사를 신축할 때 화란개혁교회가 건축비의 절반을 모금하였고, 고려신학교 출신 교수 요원들을 받아 교육시킴으로 화란개혁교회와 그 신학의 영향은 1970년대 이후부터 고신교회 안에서 더욱 뚜렷하였다.

그렇다면 화란개혁신학이 고신교회의 내면에까지 영향을 미쳤는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형식적으로 화란교회를 따라 굳이 시편을 부르거나 하이델베르크요리문답서를 가르치거나 설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요리문답을 설교하고 가르치는 이런 전통을 따라 웨스트민스터소교리문답을 설교하고 가르치는 전통이 그 전과 후에도 고신교회 안에 정착하지는 않았다. 한 동안 SFC(학생신앙운동)가 이런 전통을 지킨 적은 있지만, 고신교회 안에 신앙고백과 교리문답을 대하는 태도는 화란개혁교회의 그것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현 고신교회 안에서 신조에 있어서 개혁신학을 따르는 교회는 많지 않다.

결과적으로 고신교회 안에서 칼빈주의와 개혁신학은 거론되고는 있지만 깊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였다. 한국교회 안에서 1970년대부터 강하게 불었던 교회성장운동의 여파도 이런 분위기 형성에 기여하였다. 이 운동을 여러 면에서 평가할 수 있겠지만, 교회 성장과는 거리가 멀다는 평가를 받은 화란 개혁신학은 영향을 미치면서 동시에 경원시 당하기 시작하였다. 한국교회의 성장이 멈추고 교인의 수가 감소하고 있는 현재에서 보자면, 이 현상의 책임은 교회성장론자의 신학이나 입장에 있지 개혁신학이 교회 성장에 어떤 부정적 영향이라도 미쳤다는 책임을 질 필요는 없다. 화란교회가 출산에 의한 수적 성장만 한다고 비판을 받던 시절을 돌아보면, 격세지감이 든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은 세계적으로도 저조한 출산율로 인하여 수많은 사회적 문제들이 등장하고 있으며, 한국교회도 역시 급격한 교회 공동화를 피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 앞에 서있다. 언약을 가르치고 언약백성의 사명을 기독교교육과 문화적 사명으로 확장시켜 가르치지 못한 결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고신교회는 칼빈주의와 개혁신학을 신봉하는 독특성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여느 교회와 크게 다를 바가 없는 현재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출처]

목사 개인의 성향과 그들의 목회 현장을 보면 일부 방언기도에 긍적적이거나 통성 기도[24]등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정통적 칼빈주의(Orthodox Calvinism) 전통과는 확실하게 거리가 있다.[25] 하지만 유럽식 칼빈주의의 핵심 교파였던 네덜란드 개혁교회 해방파와 과거 밀접한 교류를 통해 신학적으로많은 영향을 받은 것을 무시 할 수 없다. 그러나 우호 관계인 화란개혁교회의 여성의 목사 안수 허용 문제로 현재는 관계가 소원하다. 더욱이 ICRC의 회원권 박탈로 화란개혁교회(해방파)와의 교류가 중단되었다.

3.2. 신사참배 거부 및 타 교단과의 관계


한국 개신교계가 가지고 있는 태생적인 약점 중 하나인 신사참배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장로회 교단 중 하나이다. 이러한 신앙의 순수성 측면에서 자부심이 매우 높다. 그러나 고신대학교를 제외한 모든 신학교의 교회역사학에서 신사참배를 언급하지만 고신 교단에 대한 교육은 전혀 하지 않았으며, 일선 교회에서도 고신교단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았다. 타 교단에서 철저하게 출옥성도 관련 교육을 기피하고 관련 자료를 왜곡 및 은폐[26]했기 때문에 고신측에서 자체적으로 자료를 정리하고 홍보하는 역사편찬위원회를 따로 꾸려야 했을 정도다. 그나마도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고신이라서 가능한 일이고, 다른 출옥성도 위주 신사참배 반대 교단이었던 순장이나 재건의 경우는 아예 엄두조차 못 낸다. 한편 비출옥성도파 위주의 신사참배 반대 교단의 신학교의 경우에는 순장, 재건은 언급하면서 고신과 고신 계열 교단은 잘 언급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었다.

이 때문에 비기독교인은 물론이고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도 '신사참배하지 않은 개신교 교단은 없다'고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매우 많은데, 이는 엄밀히 말하면 절반만 사실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남아 있던 교단 중 신사참배에 결의하지 않은 교단이 없다'는 것은 사실이나, 당장 한국 최초의 신학교가 있었던 연희전문학교(現 연세대학교의 전신)가 신사참배 반대로 인해 선교사들이 강제출국됨과 동시에 일제에게 몰수 후 경성공업경영전문학교로 개칭당해 총독부에서 관리되었었고, 침례회(그 전신인 동아기독교)나 성결교회는 교단이 해산되어서 없어졌고, 신사참배하지 않은 장로회 교인들이 모여 만들어진 교단들 중 하나가 고신이기 때문.

한국 개신교계에서 출옥성도파와 비출옥성도파는 서로를 이단시하는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꽤 좋지 않은 사이였고, 개교회, 목사, 신자들의 개별적 교류라면 몰라도 교단 차원에서는 최소한의 교류만 하면서 서로 껄끄러워 했었다. 출옥성도파를 내쫒은 원죄가 있는 기장과 예장통합, 소송을 겪어가며 고신과 갈라진 예장합동이 다른 개신교 교단에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술한 역사는 과거의 이야기이고, 요즘은 신학적 견해가 같다면 교류하자는 분위기가 강하다. 고신대학교는 타 교단 신학교와의 교류에 꾸준히 노력했으며, 특히 심리상담 쪽에서 타 교단 신학교와의 교류가 있는 학술자료를 찾아볼 수 있다. 비 고신 측 교회에서도 고신대학교 신학생이 전도사로 수련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고 그 반대도 볼 수 있다. 사실 편목 시험으로 교단을 옮긴 사례가 잘 없을 뿐, 웬만한 개신교 교단은 고신 출신 목사에게 편목 시험을 치를 수 있는 자격도 준다. 고려신학대학원은 목사 양성 과정이 꽤 빡빡한 편이라서 다른 개신교 교단에서도 좋은 유망주 팜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래서 고신에서도 비출옥성도파 교단들에 대한 감정도 많이 누그러졌다. 하지만 교회현장과 신학계에서의 교류가 조금 활발해졌을 뿐, 과거의 역사를 들춰내봤자 서로에게 좋을게 전혀 없기에 여전히 함구하는 편이다.

2020년대에는 타교단의 일부 대형교회와 교회사학계를 필두로 선배 목회자들의 신사참배와 고신 교단에 대한 핍박에 대해서 사죄하고 화해하자는 논의가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그 영향으로 타 교단 신학교에서도 고신 교단에 대한 교육을 시작했다. 근현대 한국장로교교회사를 가르칠 때 통합, 합동, 기장과 동일한 비중으로 다룬다. [27]

2010년대 들어 합신과는 통합을 위한 진지한 협의가 있었지만 결렬되었다. 이와는 별개로 현재까지 지속적인 교류에 있다.

대신, 합신총회 임원들과 고신총회 임원들이 함께 수련회를 가질 만큼 개혁주의 신학이라는 공통점 아래에서 서로 교류하고 있다. [28]

2024년 현재, 순장교단과 통합을 위해 교류 중이다. 순장과 고신 각 총회 산하에 통합준비위원회를 두고 합의의 과정에 있다.

2025년 2월, 한국에서 가장 진보적 개신교 교단 중 하나인 한국기독교장로회와 우호 교류를 증진을 위한 간담회를 가졌다. [29] [30] [31]

4. 노회 목록

노회목록
서울특별시 서울중부노회[32]
서울서부노회[33]
서울남부노회[34]
인천광역시 인천노회
경기도 경기중부노회[35]
경기동부노회[36]
경기서부노회[37]
경기북부노회[38]
부산광역시
경상남도
부산노회[39]
부산중부노회[40]
부산동부노회[41]
부산서부노회[42]
부산남부노회[43]
경남노회[44]
경남진주노회[45]
경남김해노회[46]
경남마산노회[47]
경남남마산노회[48]
경남중부노회[49]
경남서부노회[50]
경남남부노회[51]
울산광역시 울산노회[52]
울산남부노회[53]
대구광역시
경상북도
대구동부노회[54]
대구서부노회[55]
경북중부노회[56]
경북동부노회[57]
경북서부노회[58]
대전광역시
충청북도
충청동부노회
세종특별자치시
충청남도
충청서부노회
광주광역시
전라남도
전라노회[59]
전남동부노회[60]
전라북도 전북노회
강원특별자치도 강원노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노회

2024년 기준 총 35개 노회. [61]

5. 자매교류 기관

[출처]
자매교류기관
교회적 관계 (교회 교류)
해외 고신총회 1. 예수교장로회 재미 고신총회
2.예수교장로회 대양주 고신총회
3.예수교장로회 유럽 고신총회
해외교단 1. 캐나다개혁교회 The Canadian & America Reformed Churches
2.호주자유개혁교회 The Free Reformed Churches of Australia
3.남아개혁교회 The Reformed Churches of South Africa
4.미국장로교회 The Presbyterian Church in America
5.미국정통장로교회 The Orthodox Presbyterian Church
우호적 관계 (신학 교류)
국내교단 1.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2.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3.대한예수교장로회(순장)
해외교단 1. 화란기독개혁교회 The Christan Reformed Churches in the Netherlands
2.남아프리카 자유개혁교회 The Free Reformed Churches in South Africa
3.대만개혁종장로회 改革宗長老會
선교적관계 (선교 교류)
국내교단 1.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2.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
해외교단 1. 화란개혁교회(자유파) The Reformed Churches in Netherlands (Liberated)
2.일본기독개혁파교회 The Reformed Curch in Japan
3.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 KAPC: Korean American Presbyterian Church
4.프랑스개혁파교회 UNEPREF: Union Nationale des Églises Protestantes Réformées Évangéliques de France
5.재일대한기독교회 KCCJ: The Korean Christian Church in Japan[63]
6.일본동맹교단
7.인니복음장로교단(GPII)
8.북동부인도개혁파교회 RPCNEI. The REformed Presbyterian Church, North East India
9.중국빌라델비아교회 比拉德比亚教会
교회연합기관
한국 1.한국교회총연합
2.한국장로교총연합회
해외 1.국제개혁주의교회협의회(ICRC)

6. 기타

6.1. 산하 학교

6.2. 출옥성도가 주축이 된 교단

해당 교단들은 고신처럼 출옥성도파가 주축이 되어 세워진 교단이며 고신과 비슷한 역사를 겪었다. 이들 대부분은 고신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아 더욱 힘든 역사를 겪은 아픔이 있다. 일제로부터의 해방 이후 출옥성도들을 중심으로 교회재건운동이 일어나는데 그 계파는 크게 세부류로 나뉜다. '재건파'(김린회전도사, 박신근집사, 최덕진전도사, 이광록집사)와 '고려파'(남한출신 중심으로 한상동목사, 주남선목사), '혁신복구파'(북한 출신 중심으로 이기선목사, 방계성전도사, 오윤선장로, 조만식장로)의 3개로 따로 조직이 되었다.
신사참배 회개운동과 경남지역에 고려신학교를 세우는 진리운동을 펼침으로 교회재건운동을 펼쳤다.대표적인물인 이기선 목사는 평안북도 의주군 영산교회, 경상남도 김해군 김해읍교회에서 시무하였고, 다시 의주군의 북하동교회 등에서 시무하였다. 김해읍교회 목회 중 주기철, 주남선, 최상림, 방계성, 이약신, 손양원 등에게 신앙적인 영향을 주었다.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가 극심해지자 이기선 목사는 1938년 교회 시무를 사임한 후 정면으로 맞서서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주도하여 채정민 · 주남선 · 한상동 등과 함께 조직적으로 항거하였다. 이로 인해 1939년 육군형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어 평양형무소에서 7년 동안 복역하다가 광복을 맞아 석방되었다. 출옥 후 옥중에서 순교한 주기철 목사의 평양 산정현교회에서 다른 동지들과 함께 교회정화운동을 전개하였으며, 한국 교회 재건의 기본 원칙을 발표하였다. 이 원칙을 따르는 교회들은 1949년 5월 독노회를 조직하여 신사참배 교회의 비정통성을 공격하였다. 여기에는 평안도와 황해도지역의 30여 개 교회가 가담하였는데, 이것이 이른바 혁신복구파이다. 혁신복구는1907년 9월17일 한국 장로교회가 처음으로 '독노회'를 조직하였던 순수한 '순교신앙'으로 돌아가자는 의미이다. 이들은 북한5도연합노회와 단절하고 독자적인 노선을 취하였다. 이기선 목사의 교회재건운동은 남한의 고려파운동과 상응하는 성격을 지닌다. 공산단의 핍박과 전쟁으로 독노회가 이북에서 활동을 못하게 되자 이일하, 장기려 등에 의해 부산 대청동에 천막으로 "산정현교회"를 설립하여 혁신복구파인 독노회의 정신적 전통을 계승하였다. 이후 1959년 2월 서울 환도 후 서울 후암동과 화현동에 '산정현교회'가 설립되어 독노회 정신을 이어오다 1967년까지 독자적인 교단체계를 이루지 않고 고신, 통합, 합동 등 다른 교단에 소속해 있으면서 횡적인 유대관계만 맺고 있었다.
-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복구) - 1967년 4월 17일 정대신목사를 중심으로 후암동 '산정현교회'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 독노회'를 재조직하여 교단으로 정식 출범하였다. 이후 교단이 성장하며 총회 구성요건이 갖추어져 독노회총회로 불리우게 되었다. 2006년 '독노회총회'를 잘 알지 못하고 하나의 노회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어 본래 '혁신복구' 의미를 찾아 "우리 모두 하나되어 '순교신앙', '십자가의 도', '죽고 부활의 신앙'으로 혁신복구하라"는 의미로 '독노회'를 '합동복구총회'로 개명하였다. 작은 교세임에도 기독교병원인 '서산중앙병원'을 운영중이다.
출옥성도들 중 교회의 회복을 위한 회개를 촉구하였으나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기성 교회를 부인하고 새롭게 교회를 재건하려 했던 이들로 북한에서는 김린희 전도사, 남한에서는 최덕지 전도사가 중심이 되어 조직되었다.
- 대한예수교장로회(재건) - 출옥성도파이지만 출옥성도파를 내쳐버린 대한예수교장로회(당시의 통합, 합동, 기장)의 행보에 매우 크게 실망해서 고신에 합류하지 않을 정도로 기성교회를 부정하고 교회의 순수성 회복 운동을 펼쳤다. 그러나 배타적인 특성과 언행 때문에 고신보다 훨씬 심하게 핍박당했고 다른 출옥성도파들도 접근하기 어려웠기에 교세가 커질 수 없었다. 현재는 기성교회에 대한 비판의 수위를 꽤 낮추고 한국 개신교 신앙의 순수성 회복에 집중한다. 그래서 가끔씩 초교파 운동에도 동참하고 있다. 산하 신학교로 재건총회신학교가 있다.

6.3. 고신에서 분리된 교단

초기 고신에서 분리된 교단들 또한 고려파 운동에 큰 영향을 받은 교회라 할 수 있기에 고려파 교회라고 부르기도 한다.
- 대한예수교장로회(계신) - 1960년대 세속법정(또는 '불신법정')에서 교단 내부 문제를 판단하는 것에 반발해 갈라져 나간 교단이다. 인준 신학교인 계약신학대학원대학교 있으나 고신교단에 학교 운영권을 넘겼다가 현재는 폐교된 상태.
- 대한예수교장로회(고려) - 1970년대 고려학원 이사회 문제로 발생한 고소 문제로 갈라지게 된 교단이다. 세상법정에 소송을 반대한 반고소운동이 당시 교단 내에 있었는데, 이때 반고소 경기노회와 경남(법통)노회가 분리되어 1976년 반고소 총회가 구성된다. 그러나 주도권 다툼으로 이들은 곧 결별하였고 경남(법통)노회 120여개 교회는 1982년 고신으로 환원한다. 이후 반고소운동의 중심에 있던 인물은 아니었지만 반고소 고려는 경향교회 석원태 목사를 중심으로 개편한다. 1984년 반고소 고려신학교 졸업생들이 석원태 목사가 고신과 합동한다는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조직적으로 고려교단을 이탈하여 고신교단에 가입하게 된다. 그러나 석원태 목사의 지도력으로 교단은 계속하여 성장한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교단 내부 목회자들 사이에서 석원태 목사 1인 중심의 교단운영에 따른 문제점이 지적되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 개혁이 도무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개혁세력은 2001년 고신과 부분 합동을 추진한다. 고려교단은 이 분열로 인하여 교세가 상당히 위축된다. 분리하여 나간 교회들 중 모교회 경향교회를 제외하고 나름 규모 있는 교회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고신과 합동한 교회들은 고신교단 내에서 독노회로서 서경노회[64]를 구성하였다. 이후 2013년 말 고려교단은 경향교회 석원태 목사의 개인 문제로 또 한번 내홍을 겪는다. 이 일로 고려총회는 석원태 목사를 징계한다. 이 일로 고려교단은 또 다시 분열하는데 석원태 목사를 지지하는 쪽과 개혁을 원하는 쪽으로 갈라진 것이다. 이때 석원태 목사를 지지하던 교회들과 경향교회는 교단을 이탈하여 개혁교려 교단을 세운다. (후에 고려로 다시 명칭변경) 이후 고려총회는 2015년 9월 16일 총회 때 고신과 통합한다. 통합하기 전 이탈한 경향교회 중심의 고려(개혁고려->고려)는 2018년 내부문제로 제신노회라는 독노회를 구성하고 있다. 제신노회는 산하 신학교로 제네바신학대학원대학교를 운영한다.
- 예수교장로회한국총공회 - 부산서부교회가 중심이 되었던 교회들의 연합으로 기존 노회정치의 폐단을 지적하며 독립적인 개교회주의를 표방한다. 목회자 시무 투표를 하며 청빈한 삶을 요구한다. 백영희 목사 사후 여러 문제로 현재는 공회가 여러 곳으로 분열되었다. 신학적으로는 서부교회 백영희 목사의 영향이 매우 크다. 공회가 운영하는 연구소는 교회사학계의 여러 사료들을 담고 있다. 특히 손양원 목사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기도 하다. 손양원 목사 또한 고려파 운동에 함께 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자세한 것은 총공회 문서 참조.
- 대한예수교장로회(브니엘) - 중아선교회 출신 박성기 박사가 세운 부산광역시 연제구 연산동 브니엘교회를 중심으로 그 지교회들이 1986년 분가한 교단으로 다른 고신계열 파생교단들과는 달리 1980년대 후반에 알아서 원만하게 분가해간 교단이다. 현재도 고신 교단과 관계가 좋은 편에 속하며 고려신학대학원 출신 목회자들도 많아 고신과는 지속적인 교류가 있다. 교단 산하 미션스쿨이었던 브니엘고등학교, 브니엘여자고등학교, 브니엘예술고등학교, 브니엘중학교 등과 브니엘학원 사태 문서는 있으나 교단 문서는 없다.
- 한국예수교장로회 - 2012년 예장고신 소속이었던 하승무 목사가 "한국 장로교 교단 최초로 역사적 정통 개혁교회 이념과 존 녹스의 스코틀랜드 장로회 전통의 역사적 계승"을 표방하면서 설립한 교단이다. 초기 명칭은 '한국정통장로교회' 였고 2017년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하였다. 교세에 대한 정보를 찾기가 힘들다. 산하 신학교인 한국장로회신학교가 있다.

6.4. 학생신앙운동

학생신앙운동 문서 참고.

6.5. 기타

6.5.1. 비대면 예배 반대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예배에 일찍부터 적극적으로 반대해 여러 차례 공권력의 개입을 받은 부산 세계로교회가 이 교단 소속으로, 교단에서도 2021년 9월 총회에서 비대면예배를 비성경적으로 규정해 공식적으로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정부의 비대면 예배 강제를 반대함을 분명히 했다.[65]

6.5.2. 1027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 및 큰 기도회 관련

10.27 한국교회 연합예배 10월 27일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 및 큰기도회[66]에 제74회 총회에서 참여하기로 결의하면서 교단 내부의 목회자들과 성도들 사이에 일부 혼란이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연합예배 및 큰 기도회라고 하지만 대규모 군중을 동원하여 어떤 한 사안에 대하여 의견을 개진하는 시위 혹은 집회의 모습이 보여지기 때문이다. 후술할 여론 논란으로 총회의 결의사항이지만 일부에서는 신앙양심상 참여하지 않겠다고 의사를 표명하는 이도 있다. 좋은 취지를 가지고 있지만 방법적인 측면에서 의견이 다른 상황이다.
그러나 찬성하는 측에서는 이러한 것들이 있더라도, 차별금지법 제정 및 동성애 합법화를 위한 첫걸음일지도 모르는 대법원의 결정에 지금이야말로 목소리를 높여야 할때이니 참여하여 힘을 보태야한다고 말한다.


[1] 진주성광교회 담임목사[2] 남서울교회(영등포) 담임목사[3] 울산한빛교회 장로[4] 국제개혁교회협의회: International Counsel of Reformed Churches[5] 미국장로교 (Presbyterian Church in America: PCA), 미국정통장로교회[6] 캐나다개혁교회 (The Canadian Reformed Churches)[7] 일본개혁파교회 RCJ[8] 대만개혁종장로회[9] 남아프리카 자유개혁교회(GKSA)[10] 호주자유개혁교회[11] 1948년 12월 취임[12] 취지 : 현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는 본 장로회 정신을 떠나서 이교파적으로 흐르므로 이를 바로 잡아 참된 예수교장로회 총회를 계승하기 위하여 총노회를 조직한다. 목적 : 정통적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정신을 지지하는 전국교회를 규합하여 통합하며 개혁주의 신앙 운동을하며, 법통총회를 장차 계승키로 한다.[13] 총노회발회식선포(1)https://www.kosi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7273[14] 총노회발회식선포문(2)https://www.kosi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7362[15] 출처 https://www.kirs.kr/data/Korea%20Theology/%EA%B3%A0%EB%A0%A4%ED%8C%8C%EC%9D%98%20%ED%98%95%EC%84%B1%EA%B3%BC%20%EC%A1%B0%EC%A7%81_%EB%B0%95%EC%B6%98%EB%8F%99_%EA%B3%A0%EB%A0%A4%EC%8B%A0%ED%95%99%EB%B3%B48%ED%98%B8(1984,10).pdf[16] 당시 경동노회도 반고소측이었으나 교단을 이탈하지 않고 내부적으로 해결하기를 원해 남았다.[17] 아래 파생교단 부분 참고[18] 고려교단의 미주노회는 재미한인예수장로회 고신총회와 통합하였다.[19] 고신총회와 통합 전 고려총회를 이탈한 교회들은 독자적으로 제신노회라는 이름의 독노회를 구성하고 있다.[20] 신사참배 거부를 위해 자진폐교한 적 있는 평양의 숭실대학교(당시 숭실학당)는 광복 후 1954년 서울에서 영락교회의 건물을 빌려 재건되어 현재 예장통합 소속이다.[21]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위치한다. 서울고속버스터미널 뒤편 삼호가든 사거리 인근에 있는데 고신총회 소속인 서울남교회가 총회회관 건물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22] 참고로 동성애가톨릭에서도 반대한다. 다만, 동성 간 육체관계(성행위)나 동성결혼의 법제화 등은 단호히 반대할지언정, 동성애자를 저주, 핍박하고 모욕하는 행위를 용납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들을 사랑과 친절로 대하라고 가르친다. 한 마디로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물론 이렇게 적었다고 해서 오해하지 말자. 고신도 앞에 서술한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출처] 유해무 교수(고려신학대학원). 고려신학대학원 개교 70주년 기념 학술대회(2016년 10월 27) 발표 논문. "Ecclesia semper reformanda: 고신교회와 신학 70년의 회고와 전망[24] 드라마나 영화 같은 데 나오는 '주여' 삼창으로 시작해 시끄럽게 소리 치면서 기도하는 게 대표적.[25] 아예 이것과 관련해 개신교 자체적으로 분석한 칼럼이 있을 정도다.[26] 아예 '출옥 성소들의 광적인 활동과 테러 행위'가 있었다며 날조된 교육을 하는 곳들도 있을 정도이며, 엔하위키 시절부터 근본주의/기독교/개신교 문서에 '광적인 활동'에 대한 서술이 지속적으로 유지되어 왔다.[27] 물론 여전히 고신에 대하여 반감을 가지고 이에 대해서 비판하는 목사나 신학자가 없는 것은 아닌데, 비주류 교단이긴 하지만 대표적으로 전광훈 목사가 있다. 참고로 전광훈을 가장 먼저 이단으로 지정한 교단이 고신이라서 전광훈은 고신을 매우 싫어한다.[28] http://chknews.co.kr/bbs/board.php?bo_table=10&wr_id=89[29] 두 교단은 대한예수교장로회로부터 축출된 교단이라는 공통점이 있다.[30] https://www.goodnews1.com/news/articleView.html?idxno=444512[31] https://www.kosi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3114[32] 은평, 서대문, 마포, 성북, 종로, 중구, 용산, 노원, 도봉, 강북[33] 강서, 양천, 구로, 영등포, 동작, 관악, 금천[34] 동대문, 성동, 중랑, 광진, 서초, 강남, 송파, 강동[35] 안양, 과천, 군포, 의왕, 광명, 시흥, 안산, 수원[36] 양평, 하남, 광주, 성남, 용인, 오산, 화성, 여주, 이천, 안성, 평택[37] 김포, 부천[38] 고양, 파주, 양주, 의정부, 동두천, 연천, 포천, 구리, 남양주, 가평[39] 부산광역시 사하, 서구, 중구, 동구, 영도, 강서 가덕도[40] 부산광역시 연제 서부, 동래, 금정, 해운대 반송, 기장 철마, 경상남도 양산(물금 제외)[41] 부산광역시 부산진 동부, 남구, 수영 남부, 연제 남부[42] 부산광역시 부산진 서부, 사상, 북구, 경상남도 양산 물금[43] 부산광역시 기장(철마 제외), 해운대(반송 제외), 수영 북부, 연제 동부, 동래 동남부[44] 경상남도 창원 의창, 성산, 진해, 김해(진영, 진례, 한림)[45] 경상남도 진주, 사천, 하동, 남해, 의령[46] 경상남도 김해(동지역, 주촌, 대동, 상동, 생림), 부산광역시 강서(가덕도 제외)[47] 경상남도 마산 회원, 함안[48] 경상남도 마산 합포[49] 경상남도 창녕, 밀양[50] 경상남도 함양, 거창, 산청, 합천[51] 경상남도 고성, 통영, 거제[52] 중구, 북구, 동구[53] 남구, 울주[54] 대구광역시 동구, 중구, 남구, 수성, 달성, 경상북도 고령[55] 대구광역시 북구, 서구, 달서, 달성 다사, 경상북도 성주[56] 대구광역시 군위, 경상북도 봉화, 영주, 예천, 안동, 의성, 경산, 청도[57] 경상북도 울진, 영덕, 청송, 포항, 경주, 영천, 울릉[58] 경상북도 문경, 상주, 김천, 구미, 칠곡[59] 전남동부노회 지역 제외한 나머지 지역[60] 전라남도 순천, 광양, 여수, 구례, 보성[61] 각주의 지역은 대체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음. 부산과 경남에서의 교세가 높음을 알 수 있다. 해당 목록은 2017년 제67회 총회에서 노회 구역 조정 및 명칭 변경이 이루어진 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https://www.kosi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9349[출처] http://reformedjr.com/board01_01/1838729[63] 출처.[64] 서경노회라는 이름으로 쭉 존재하다가 고려교단과 고신교단 통합 후 2018년 노회 개편 때 이르러 지역노회에 가입한다.[65] 개혁정론 2021년 9월 30일 기사 참고.[66] https://rebuild-kc.com/[67] 사랑제일교회[68]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63413[69] https://www.nocutnews.co.kr/news/6233106?utm_source=naver&utm_medium=article&utm_campaign=20241024085004[70] http://reformedjr.com/board05_03/1842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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