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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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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현재의 모습4. 장점5. 단점

1. 개요

부부가 같이 일하며 버는 것을 말한다. 반댓말은 외벌이.

2. 역사

현대에 나타난 현상 같지만, 알고 보면 오래 전부터 존재했던 현상이다. 서양에서는 맞벌이라는 개념이 처음 논의가 된 것은 산업혁명 이후 외벌이가 보편화된 19세기 중반~20세기 초반, 한국에서는 이촌향도가 활발해져 도시에서는 밭일 등을 여성이 할 수 없게 된 1960년대부터다. 다시 말해 전업주부, 외벌이와 맞벌이는 서민에게는 근대 이후에 생긴 개념이라는 것이다. 인류 역사의 대부분이 자급자족으로 이뤄지던 사회였던 만큼, 부부가 함께 일하는 것은 매우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또한 중세 유럽의 경우, 남편과 아내가 공동으로 농사를 짓거나 기술직에서도 부부가 같이 일하던 사례는 매우 흔했다. 농업이나 가내수공업은 온 가족이 일을 하므로 맞벌이라 할 수 있고, 심지어 양반 집안에서도 남편은 훈장을 하고 아내는 삯바느질을 하면서 생계를 꾸리는 경우가 있었다. 강정일당이 그런 케이스. 일제강점기의 잡지에서도 팔도의 여성들이 매우 다양한 경제 활동(수공업, 장사, 농사, 나물 캐기 등)을 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1] 지금도 여성의 경제활동으로 잘 알려진 것이 제주도의 해녀, 한산모시와 같은 것이 있다. 도라지 타령도 여성이 부르는 것으로 묘사된다. 다만 이런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안일'을 하는 사대부 가문의 부인보다 낮았기 때문에 이런 경제활동이 잘 알려지지 못한 것이다.

한국사를 돌이켜보면, 조선 후기 즈음에는 지금보다 훨씬 남자와 여자의 일이 구분되어 있었다. # 맞벌이기는 하지만 '농사와 길쌈[2]'이 여성의 일이고, 바깥 일로 대변되는 논농사 같은 힘든 일을 남성이 해야한다는 규범적 인식이 정해져 있었다. 아예 아내라는 말의 어원 자체가 '안해', 안 사람이라는 뜻이다. 16세기경 등장한 표현으로 과거에는 성 역할이 구분이 되기는 해도 이렇게 엄격하지는 않았다. 삼국시대 정도만 해도 정창원 신라 양탄자처럼 여성이 자기 이름을 걸고 자신의 물건을 수출하거나, 고구려 평강공주가 좋은 말을 감별할 줄 알았다고 할 정도로 여성이 맞벌이를 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성리학임진왜란 이후로 강력하게 교조화에 가까울 정도로 강조되며, 상류층을 중심으로 예기에 등장하는 '내외'를 강조하면서 여성이 '안일'을 할 것이 강조된 것이다. '장가'라고 하여 신랑이 여자 집에서 신혼 생활을 할 정도였던 민족 문화를 가진 과거에서 점차 남성에게 주어지는 경제적 부담이 커졌다. 게다가 유교는 자식을 부모가 돌볼 것을 가장 중시했기 때문에 육아에 있어서 여성은 더 밖으로 나가는 것이 어려웠다. 현재까지 서구의 보모 같은 문화를 한국인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조선 후기에는 제주도 등 일부 해안지역, 경기도[3]나 강원도, 이북 같은 곳이 아니라면 보수적인 지역에서는 맞벌이기는 해도 집 안이나 근처에서 일했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만 해도 지역별 차이도 있어, 함경도 같은 곳은 노인 세대, 면장의 풍기문란이라는 반발이 있어도 젊은 여성이 시장에 활발히 참여했으나 현재의 남한 지역은 경기-강원 등지나 해안 지역을 빼면 여성이 시장에 가는 것 자체를 이상하게 여겼다. # 이렇게 보수적인 지역에서는 아내를 집에 데려다놓으면 양반처럼 '문지방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하는' 일을 실천할 수 있다고 여기기도 하고 길쌈과 육아만 가능하고 농사일조차 안 시키는 경우마저 있었다고 한다. (pdf) 그러나 근대화가 되면서 이정도로 보수적인 풍습은 '바깥일'에 대한 부정적인 잔재는 남겼으나 제주도나 해안가, 이북이나 그 근처에서는 저런 풍조가 약하여 여성이 시장 정도는 돌아다니는 등의 변화로 이어졌다. 제주도에는 아예 '아내'라는 말에 대응되는 단어가 없고 '각시' 등으로 결혼한 여자를 불렀다. 그런데 이런 여자의 밖일에 그리 부정적이지 않은 지역은 제주도를 제외하면 많은 곳이 북한에 넘어가서 분단 이후에도 '바깥일'에 대한 부정적인 풍조가 강했다. 한국에서 백희엽 씨 같이 여성으로 돈을 많이 번 거물도 이북 출신이었다.

미국의 경우 산업혁명 초기 까지는 조선시대와 유사한 가내수공업 등이 있었으나, 생산력의 발전으로 19세기말까지 이런 노동 참여가 줄어들었다. # 그러나 1890년 이후로 계속 여성의 노동 참여율이 증가하던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고, 독일을 제외한 모든 서구의 국가가 이런 식이었다. # 독일도 제2차 세계대전 때만 맞벌이가 줄었다가 다시 느는 추세였다. 한국도 여성의 노동 참여율은 스페인보다 높고, 미국보다 낮으나 프랑스와 비슷한 추세로 증가해오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집에서 하는 일과 비슷한, 전통적 관념에서 벗어나지 않는 양잠 등을 70년대 즈음 추진하다가, 당시 이촌향도로 인해 여성이 기존에 하던 일을 못하게 되면서 아예 주부로 일하는 형식의 외벌이가 잠시 대세가 되었다. 이후 점차적으로 여성도 교육을 많이 받게 되고, 한국에서도 사회진출이 활발해졌다.

세계적으로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나고 노동법 발전과 함께 노동시간이 점차 줄어듬에 따라, 맞벌이는 현대사회 가족의 주요한 형태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허나 한국에서는 서양에서 100년 넘게 점진적으로 나타나던 일이 30년 안쪽의 기간 동안 급속도로 진행되어 현대의 맞벌이는 문화적 적응이 어려운 것에서 비롯된 여러 문제점을 가져오기도 했다. 즉, 일터-가정 간의 거리가 멀어진 만큼, 집안에 남겨진 아이들을 관리할 시간, 수단이 부족해졌다. 반면에 노동시간은 여전히 길며, 육아를 병행하는 직장인에 대한 배려가 적기에 여전히 문제다. 아이가 부모와 오래 있지 못하거나, 부모와 아닌 사람과 더 많이 친하면 이상하다는 인식도 강하기에[4] 맞벌이로 일어날 수 있는 후자와 같은 상황을 꺼리는 인식도 있다. 이처럼 일과 가정의 병행이 한국에서 유달리 어려운 것이 저출산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는 시각도 많다.

3. 현재의 모습

보통은 남편 혼자 버는 걸 외벌이라고 말하지만 요새는 아내 혼자 버는 경우도 있다. 이를 셔터맨이라고 한다. 한국보다 일찍 전업주부 남성이 나타나기 시작한 일본도, 여전히 한국 사회만큼 시선이 차갑다. 성평등을 강조하는 서양 역시 굉장히 수가 적다. 서양에서 남성도 전업주부를 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있는 건 사실이나, 현실적으로는 수가 많지 않다.

일본에서는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여자력이 높은 남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아이를 돌볼 줄 아는 남성을 선호하는 일본의 이쿠멘育メン (육아育児+이케멘イケメン)이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애초에 어느 쪽이 아이를 보든지 간에 상대방이 병에 걸리거나 하면 다른 쪽이 애를 봐줘야 하므로 기본적 집안 일은 할 줄 알아야 한다. 집안일에 참여 못하는 가장이 나중에 집안에서 홀대 받게 되는 경우도 흔하기도 하고.

생활비와 양육비, 교육비 등이 치솟음과 동시에 노후 문제가 있음에도 한국은 외벌이가 맞벌이보다 더 높다. 서구권 선진국은 대부분이 맞벌이이고, 개발도상국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대다수가 맞벌이를 한다. 여성이 아예 직업을 갖지 못하는 국가를 제외하고는, 맞벌이는 전 세계의 공통적인 대세다. 단 선진국이나 고학력층에서는 자아실현형 맞벌이가 주류고, 개발도상국이나 저학력층에서는 생계형 맞벌이가 주류이다. 한국의 낮은 맞벌이 부모 비중은 남성의 장시간 노동, 낮은 가사분담률(무급노동시간 비중)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국 남성의 가사분담률은 16.5%로 OECD 국가 중 일본(17.1%)을 제치고 최하위를 기록했다. 특히 하루 평균 가사노동 시간은 45분에 불과했다. 반면 주 50시간 이상 일하는 장시간 노동자 비율은 전체 노동자의 23.1%로 OECD 평균(13.0%) 보다 10.1% 포인트 높았다. 출처

현대 한국 사회에서 상당수의 남성들이 아내의 맞벌이를 원한다. 결혼 정보업체의 데이터에 따르면 결혼 적령기 한국 남성들이 가장 중시하는 것은 외모와 나이이고, 그 다음으로 중요하게 고려되는 것이 '직업이 있는가' 라고 한다. 그리고 선호하는 여성의 직업은 변호사, 검사와 같은 고소득 직종보다는 공무원, 교사 등 안정된 직업이면서 돈도 적당히 벌어오는 직업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여성들 역시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사회 진출이 활발해짐에 따라 맞벌이를 선호하는 여성들이 많다. 그러나 임신을 하는 경우 육아휴직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거나, 직장을 그만두라는 압력을 받는 여성들이 많다. 복지가 좋은 대기업이나 공무원, 공공기업이 아닌 이상 육아휴직을 길게 내기는 어렵다. 또한 이런 직장들도 육아휴직을 신청하면 노골적으로 협박하거나, 타 지역 혹은 타 부처로 발령내는 등 불이익을 주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여성이 아이를 낳고도 일을 계속하는 '워킹맘'으로 지내는 경우 직장생활, 아이 양육, 가사노동의 삼중고를 부담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아이를 낳고 일시적으로 일을 그만두었다가 아이가 자란 후 재취업을 시도하는 '경력 단절 여성'의 경우에는 경력 단절 때문에 이전과 같은 보수를 받는 직장에서는 일하기 힘들다. 결국 본인의 직업에 매력을 느끼는 여성들은 비출산을 선택하기도 한다.

스웨덴, 베트남, 이스라엘, 캄보디아처럼 여성의 강인함 내지 생활력이 중시되는 전통이 있는 나라도 맞벌이가 흔하다. 스웨덴은 극도의 평등주의 때문에 여성이 힘을 기르는 모습도 있으며, 베트남과 이스라엘은 쯩 자매, 드보라와 같은 잔 다르크 같은 여성인 전사의 이야기가 있고 특히 이스라엘은 일반인을 징병하는 여군이 있을 정도로 여성도 강인해야 함을 중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베트남의 맞벌이 비율은 74%로 50% 근방의 한국보다 월등하게 높다. 한국인들은 베트남만 보아도 여자도 궂은 일을 마다않는 모습에 컬처 쇼크를 받기도 한다. 심지어 사업가는 베트남에서는 여성이 더 많다고 한다. # 캄보디아도 크메르 제국 시대부터 중국인들이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가 활발하다며 놀라기도 했다고 한다. 한국도 제주도처럼 생활력이 중시되는 지방은 60%는 맞벌이를 할 정도로 맞벌이가 좀 흔하나 저런 나라에는 못 미친다고 한다. #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전향한다는 것은 여성에게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경력이 끊길 뿐더러 경제적으로 남편에게 의지해야 하고, 시부모가 간섭이 심하다면 집에서 일하기도 몹시 거북하기 때문이다. 젊은 여성들이 모이는 여초 커뮤니티에서는 전업주부로 전향하는 것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인식과, 힘들더라도 일을 그만두면 안 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맘카페 등의 기혼 커뮤니티에서는 자발적으로 전업 주부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일을 그만둔 것을 후회하는 사람들도 있다.

4. 장점

5. 단점


[1] 현대의 한국 농촌 노인도 이와 비슷하게 일을 하고, 부모나 조부모가 농촌에서 일하던 많은 한국인들은 잘 들어보면 여성의 '밭일' 같은 것이 옛날을 언급할 때 등장한다는 것을 아는 경우도 많다. 다만 몇몇 양반 집안에서는 양란 이후 성리학이 교조화되어 공자의 말이라는 소문이 돌던 삼종지도를 주장하며 여자란 '하는 일은 술과 식사를 제공하는 것에 있을 뿐'이라는 주장을 한 경우도 있었고 일부 지역에서도 이런 주장을 흉내내어 양반 행세를 하려든 경우도 있었다. 반면에 중국에서는 전족과 같은 풍습이 맞벌이는 하되 집안에서 벌어야 한다는 교조적 관념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도 있다.[2] 옷감을 짜는 일이다. 추석 때 고구려 건국 초기인 유리왕 때도 길쌈 대회가 있었다고 할 정도로 매우 오래된 풍습이다.[3] 안성의 여성은 유기 장사 등을 하기도 했다. #[4] 미국에서는 아예 Latchkey kid라는 홀로 남겨진 70~80년대생을 중심으로 한 아이 시절의 모습을 가리키는 말도 있을 정도다. 물론 부작용도 만만치 않으나 자립심을 길렀다며 좋아하는 경우도 있다. #[5] 단, 맞벌이라고 다 많이 버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정말 가난한 집안의 경우에도 맞벌이인 경우가 제법 많다. 가난하니 맞벌이를 할 수 밖에 없는데 대부분의 경우 소득이 낮은 것은 (어떤 까닭으로건) 고소득의 직업을 구할 능력/형편이 안되는 경우다. 그러다 보니 두 명이 번다고 해도 둘 다 소득이 매우 낮아 웬만한 외벌이보다 훨씬 못버는 경우도 많다. 또한 둘이 일하긴 하지만 두 명이 같이 자영업을 할 경우 알바비 지출은 줄어들 수 있으나 소득이 크게 증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6] 탈북민은 70% 이상이 여성이다.[7]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