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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채 탤런트는 제외 ※ 나무위키 등재 인물만 기입}}}}}} || | 김수미의 주요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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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림 (1985년) | → | 김수미 (1986년) | → | 이덕화 (1987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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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83593><colcolor=#fff> 김수미 金守美 | Kim Soo-Mi[1] | |
본명 | 김영옥 (金英玉, Kim Yong-Ok)[2] |
출생 | 1949년 10월 24일[3] |
전라북도 군산시 신흥동 32-5[4] | |
사망 | 2024년 10월 25일 (향년 75세)[5][6]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동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 |
발인 | 2024년 10월 27일 |
서울특별시 성동구 한양대학교병원 장례식장 | |
장지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용인공원 아너스톤 봉안당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가족 | 부모[7], 5남매 중 막내[8] |
남편 정창규(1974년 결혼) 딸 정주리, 아들 정명호(1976년생)[9] | |
며느리 서효림, 손녀 정조이(2020년생) | |
학력 | 군산국민학교 (졸업) 숭의여자중학교 (졸업) 숭의여자고등학교 (졸업)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 / 학사) |
종교 | 개신교 (장로회)[10] |
데뷔 | 1970년 MBC 3기 공채 탤런트[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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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수미요? 걔 정말 좋은 배우예요. 걔 정말 한국 아니고 외국에서 태어났으면요, 정말 다양한 역할을 하는 배우가 됐을 거예요. 난 걔 어떨 때는 너무 불쌍해요. 너무 많은 걸 가졌는데, 그걸 표현해줄 역이 없었다는 게.. (그 시대에) 제일 표현해 줄 수 있는 역이 일용 엄마였어요.
김혜자
대한민국의 배우.김혜자
2. 생애
자세한 내용은 김수미/생애 문서 참고하십시오.3. 욕 연기의 달인
전원일기 종영 이후에도 '일용엄니'의 이미지가 워낙 강해서 주로 어머니나 할머니 역으로 출연하였다.[12][13]* 2006년 안녕, 프란체스카 시즌 3에 출연하여 희대의 명곡 젠틀맨을 불렀다. 시즌 자체는 평가가 좋지 못했지만 이 곡은 살아남았다. 사실 젠틀맨은 제작진이 선곡한 게 아니라 그냥 김수미가 부른 거다. 제작진이 주정을 부릴 만큼 술 취한 연기를 시켰고 노래도 정해줬는데 그냥 김수미가 어릴 적 동네 아저씨들이 술퍼먹고 자주 부르던 노래[14]를 하겠다고 했고 그자리에서 불러버린 것이다. 이후 이 장면이 코믹장면으로 인정받자, 제작진이 가사만 매회마다 조금씩 개사해서 대본으로 써 주었다. 이후 2014년 전설의 마녀에 출연하여 다시 이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또한 2017년 밥상 차리는 남자에서 극 중에서 딸 역할인 서효림이 남편 박진우의 출생의 비밀이 들통나자 침울해하는 딸 서효림의 울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젠틀맨을 불렀다.[15]
- 2015년엔 '전국의 욕 달인들이 모여 TV쇼에서 욕 배틀을 펼친다'는 내용의 영화 <헬머니>의 단독 주연을 맡았다. 작중 오디션 상대 최종 보스로 나오는 배우가 바로 할미넴 김영옥이다.
- 마찬가지로 욕 연기로 유명한 김영옥과 본명이 같으며 한자도 金英玉으로 같다. 나이는 띠 동갑 차이.[16] 동명이인이라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김수미라는 예명을 쓰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당시 행정 시스템이 지금처럼 체계적이지 못 한 탓에 선배 김영옥의 출연료가 김수미에게 가는 등 혼동이 많았다고. #1 둘의 사이도 가끔 연락도 나눌 정도로 좋았다.#2
4. 출연 작품
4.1. 드라마/시트콤
<rowcolor=#fff> 연도 | 방송사 | 방송명 | 배역 | 비고 |
1971년 | 파일:MBC 로고(1969-1974).svg | 수사반장 | ||
행복 | 희숙 | 조연 | ||
1972년 | 아다다 | 화순이 | ||
임꺽정 | ||||
1973년 | 한백년 | |||
민비 | ||||
113 수사본부 | ||||
1974년 | 복녀 | |||
수선화 | 완호 아내 | 조연 | ||
손님 | 주연 | |||
1976년 | 거룩한 손님 | |||
사미인곡 | ||||
들장미 | 보옥 | 조연 | ||
쇠랑산 처녀 | ||||
1977년 | 당신 | 이모 | 조연 | |
1978년 | 주인 | 상호 엄마 | ||
행복을 팝니다 | ||||
1979년 | 엄마, 아빠 좋아 | 조연 | ||
무지개 타는 아이들 | ||||
1980년 | 백년손님 | |||
홍변호사 | ||||
아베의 가족 | ||||
숨은 꽃 | ||||
1980년~2002년 | 전원일기 | 일용엄니 | 주연 | |
1981년 | 불타는 다리 | |||
성난 눈동자 | 주연 | |||
새아씨 | 화순이 | 조연 | ||
1982년 | 박순경 | 주연 | ||
1983년 | 조선왕조 오백년 - 추동궁 마마 | 제조상궁 | 조연 | |
아내는 회장님 | ||||
3840 유격대 | ||||
엄복동 | ||||
아버지와 아들 | 조연 | |||
1985년 | 남자의 계절 | 장춘자 | 주연 | |
1987년 | 엄마는 요술장이 | |||
도시의 얼굴 | ||||
천둥소리 | ||||
1989년 | 유산 | 최마담 | ||
당신의 축배 | ||||
1990년 | 그 여자 | 오산댁 | 주연 | |
마당 깊은 집 | ||||
1991년 | 말로만 중산층 | |||
1992년 | 마포 무지개 | 송지란 | 조연 | |
1993년 | 오박사네 사람들 | 주연 | ||
1994년 | 사랑의 향기 | 황주리 | 조연 | |
1995년 | 젊은이의 양지 | 인범 모, 양지다방 마담 천귀자 | ||
아스팔트 사나이 | 나타샤 | |||
1996년 | 곰탕 | 채봉 | ||
그들의 포옹 | ||||
자반 고등어 | 이행자 | 조연 | ||
만강 | ||||
미망 | 홍씨 | |||
1997년 | 아름다운 그녀 | 춘천 댁 | 조연 | |
파랑새는 있다 | 앤디 김의 연상 아내 | |||
1998년 | 대왕의 길 | |||
1999년 | 하나뿐인 당신 | |||
만남 | 주연 | |||
누룽지 선생님과 감자 일곱 개 | 신순이 | 조연 | ||
2004년 | 발리에서 생긴 일 | 송희숙 | ||
2005년 | 귀엽거나 미치거나 | 김수미/김수미의 모친 | ||
떨리는 가슴 | 애심 | |||
안녕, 프란체스카 | 이사벨 | |||
사랑은 기적이 필요해 | 조경란 | |||
2007년 | 왕과 나 | 쇠귀 노파 | 조연[17] | |
못말리는 결혼 | 심말년 | 주연 | ||
2010년 | 당돌한 여자 | 홍보옥 | 조연 | |
2011년 | 애정만만세 | 박말년 / 크리스탈 박 | 조연 | |
뱀파이어 아이돌 | 수미 | 주연 | ||
2012년 | 울랄라 부부 | 삼신할머니 | 특별출연 | |
2013년 | 돈의 화신 | 복화술 | 조연 | |
맏이 | 시덕 어머니 | 주연 | ||
2014년~2015년 | 전설의 마녀 | 김영옥 | 조연 | |
2017년 | 언니는 살아있다! | 사군자 | 주연 | |
밥상 차리는 남자 | 양춘옥 | 조연 | ||
2019년 | 황후의 품격 | 사군자[18] | 특별출연 | |
2022년 |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 | 김수미 [19] |
4.2. 영화
<rowcolor=#fff> 연도 | 제목 | 배역 | 비고 |
1982년 | 화순이 | 주연 | |
1987년 | 우뢰매 3 | 김 박사 | 조연 |
우뢰매 4 | 주연 | ||
1988년 | 용호취 | 조연 | |
1996년 | 보스 | 은 어머니 | |
1997년 | 창 | 단역 | |
2003년 | 오! 해피데이 | 특별출연 | |
위대한 유산 | 미영 어머니 | 조연 | |
2004년 | 슈퍼스타 감사용 | 사용 어머니 | |
2005년 | 마파도 | 진안댁 | |
간 큰 가족 | 김 노인 처 | 주연 | |
가문의 위기 - 가문의 영광 2 | 홍덕자 | 조연 | |
미스터 주부퀴즈왕 | 진만 모 | ||
빨간 모자의 진실 | 엽기 할머니 더빙 목소리 | 성우 | |
2006년 | 썬데이 서울 | 포장마차 주인 | 특별출연 |
구세주 | 유모 | ||
연리지 | 미용실 원장 | ||
맨발의 기봉이 | 기봉 모 | 주연 | |
공필두 | 권 여사 | 특별출연 | |
다세포 소녀 | 이무기 | ||
가문의 부활 - 가문의 영광 3 | 홍덕자 여사 | 주연 | |
2007년 | 마파도 2 | 진안댁 | 특별출연 |
만남의 광장 | 어르신 | ||
못말리는 결혼 | 말년 | 주연 | |
2008년 | 흑심모녀 | 할머니 김간난 | |
2009년 | 청담보살 | 태랑 모 | 특별출연 |
2010년 | 육혈포 강도단 | 손영희 | 주연 |
2011년 | 그대를 사랑합니다 | 군봉 처 | |
사랑이 무서워 | 상열 엄마 | 특별출연 | |
위험한 상견례 | 춘자 | 주연 | |
수상한 고객들 | 잔돈없어 할머니 | 특별출연 | |
빨간 모자의 진실 2 | 할머니 한국어 더빙 | 성우 | |
가문의 영광 4 - 가문의 수난 | 홍덕자 | 주연 | |
2012년 | 철가방 우수氏 | 특별출연 | |
2013년 | 전국 노래자랑(영화) | 주하나 | 주연 |
2014년 | 헬머니 | 헬머니 | |
인어아저씨 | |||
2015년 | 위험한 상견례 2 | 백반할머니 | 특별출연 |
2019년 | 미스터 주: 사라진 VIP | 앵무새 목소리 | 조연 |
2023년 | 우리 사랑이 향기로 남을 때 | 버스 할머니 | 특별출연 |
가문의 영광: 리턴즈 | 홍덕자 | 주연 | |
2025년 | 귀신경찰 | 수미 | 주연[20] |
4.3. TV 방송
자세한 내용은 김수미/방송 문서 참고하십시오.4.4. 뮤직비디오
<rowcolor=#fff> 연도 | 가수 | 제목 |
2013년 | 티아라 N4 | 전원일기 |
4.5. 홍보대사
<rowcolor=#fff> 연도 | 기관 |
2022년 | 국제구호개발 NGO 굿피플 나눔대사 |
2023년 | 울산광역시 홍보대사 |
5. 여담
- 1986년 1월 28일 MBC 스타24 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자신만을 위한 쇼를 만들어 방송했다.
- 자타공인 요리 실력이 상당한 것으로 유명하다. 친분이 있는 동료 및 후배 연예인들에게 직접 만든 음식을 꼬박꼬박 보내줄 정도로 관심을 기울인다고 한다.
- 한때(2000년대 초반) 본인의 이름을 내세운 간장게장 사업에 관여했으나 제품에 대한 평가가 매우 좋지 않았다. 그래서 한때 맛없기로 인터넷 밈이 되었을 정도로, 지금도 '김수미 간장게장'을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스타크래프트/유즈맵 중 하나였던 김수미 간장게장 디펜스 유즈맵이 나올 정도이다.
김수미 본인이 말하기를, 초기에는 자신도 관심을 가지고 참여했으나 점점 본업 때문에 제조 과정에 대한 검수를 제대로 하지 않고 초상권만 빌려주는 형식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동업자가 결국 가성비를 따지기 위해 질이 낮은 게를 사용하거나, 표기된 제품 함량보다 적게 판매하는 경우가 발생해 사업을 접게 되었다고 한다. # - 2018년에는 본인의 이름을 딴 요리 프로그램을 런칭하기도 했다. 2018년 가을에 집사부일체에 출연해서 밝힌 바에 의하면 김치냉장고가 8대이며, 김장도 200포기를 한다고 하였으며, 멤버들에게 본인의 요리 실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증명하기도 하였다. 이 때문인지 홈쇼핑 등에서 김치 판매도 자주 하는 편. 생전 마지막 하던 스케줄 중 하나가 홈쇼핑 판매였다.
- '김수미' 하면 늘 따라오는 후배 배우(겸 방송인)이 둘 있는데, 바로 신현준과 탁재훈이다. 최근에는 이 두 사람에 더해서 장동민과 박명수까지 언급이 된다.[21] 물론 '가문의 영광 시리즈'에 지속적으로 나왔던 신현준[22]과 탁재훈에 비해서 다른 두 사람의 입지는 낮긴 하지만.
- 특히 신현준과는 김수미가 그를 정말 친아들처럼 아끼고 있으며, 실제 신현준도 김수미를 어머니처럼 섬기고 있을 정도로 존경할 정도이고, 신현준의 아들 이름도 김수미가 지어주었고, 신현준의 가족들이 자주 놀러와 밥도 먹고 가는 등 지속적으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물론 '라디오 스타'에 신현준과 함께 나와서 이야기한 바에 의하면, 김수미 본인은 신현준보다는 탁재훈이나 장동민 같은 다른 후배들이 더 편하다고 한다. 녹화 전 신현준이 대기실에 찾아와 깍듯하게 인사를 하고 갔는데 같은 상황에서 편하게 농담을 던져 분위기를 푸는 스타일인 탁재훈과 비교해보면 오랜 세월을 함께 한 것치고는 아직도 벽을 두고 있는 것 같아 서운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신의 아들 역할로 나온 배우 중에 가장 좋아하는 건 조인성이라고[23] 한다. 모 방송에서 직접 말하길, 신현준은 진짜 그야말로 '아들'같고 좋은 후배 같아서 남자로 전혀 느껴지지 않지만, 조인성은 드라마 이후에 다른 방송에서 만났을 때 "엄마~"라고 부르면서 김수미에게 안겼는데 겉으로는 "어 그래 내새끼~"[24] 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포옹해 줬지만, 실제로 심장이 떨리는 걸 느끼며 속으로 "어머 이게 남자구나" 싶었다고 한다 실제 신현준은 엄마라고 하기엔 부족하게 김수미와 20살 차이도 안 나지만, 조인성은 김수미의 진짜 자식들과 비슷한 또래, 아니 더 어리다. 심지어 그녀는 그로부터 10년 뒤에 남편, 아들과 함께 조인성의 친동생이 운영하는 남산 소재 커피숍에 갔다가 우연히 조인성을 직접 만나게 되어 다같이 차를 마셨다가 웃기면서도 꽤 황당한 에피소드까지 겪은 적이 있다고 한다. KBS 나를 돌아봐에서 언급하길, 그 자리에서 그녀가 농담으로 "당신 라이벌 왔다"고 드립을 쳤고, 나름 유머감각이 있다는 그녀의 남편이 이를 받아치기 위해 조인성에게 살짝 웃으며 진지한 말투로 "나는 지병이 있어서 오래 못 살아요"라고 농담성 드립을 쳤는데, 김수미의 드립에 웃느라 남편의 농담에 신경을 못 쓴 조인성이 진지한 얘기인 줄 알고 생각없이 바로 "아~네~"라고 대답했다가 뒤늦게 농담인 걸 깨닫고 얼굴이 빨개지며 당황했다고 한다. 이후 집에 돌아오는 길에 그녀의 남편이 "생각할수록 괘씸하네. '아~ 네.'는 뭐야. 그러니까 빨리 죽고 내 마누라랑 살겠다는 거야 뭐야"라며 화를 냈다고 한다. 그 후로 며칠 뒤 집에 있을 때 TV광고에 조인성이 나오자 그녀의 남편은 "나 100살까지 살거다 이놈아. 안 죽어. 너한테 마누라 못 줘"라고 TV에 삿대질을 했고, 옆에서 커피를 마시던 김수미가 갑자기 웃음이 터져 침대시트에 커피를 다 뿜어버렸다고 한다. 하얀색의 비싼 시트였는데 커피에 젖어서 다 버렸다고 한다. #
- 나를 돌아봐에서 그녀의 매니저 역할을 하는 박명수의 어머니보다 2살이 더 많다고 한다. 김수미와 박명수는 21살 차이밖에 안 난다고 하는데, 박명수의 진짜 어머니가 나이가 어리신 편. 박명수의 말로는 어머니가 결혼을 매우 일찍 하셔서 19살 차이밖에 안 난다고 한다. 즉 1951년생. 박명수는 '진심으로 김수미 선생님이 진짜 우리 엄마처럼 느껴져서 함께 출연하는 게 좋다'는 말도 한 적이 있다. 김수미 역시 처음에는 자기가 박명수 엄마보다 나이가 많다는 부분에 놀랐으나 '그럼 나한테 엄마 엄마하고 부르고, 엄마라고 생각해'라고 쿨하게 응하였다. 물론 그 이후로는 방송내에서는 쉬지 않고 티격태격하여[25] 막상 박명수가 제작발표회에 입을 옷을 골라주자 김수미는 '내 남편이나 자식들도 내 옷을 이렇게 골라준 적이 없다. 오히려 얘는 새 남편 만난 기분이 들게 한다'는 말도 했다. 박명수는 그냥 대충 골라준 게 아니라 김수미가 원하는 옷을 지정하자 '그건 내가 싫어하는 스타일이라 안 되고 이것들이 고급지니까 이 중에서 고르세요'라면서 일방적이면서도 명확하게 지정해주었다. 티격태격은 계속 하면서도 방송이 웃음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이유는 박명수가 진짜 엄마처럼 여기기에 화를 낼 때도 정말 엄마에게 서운한 듯이 화를 내어[26] 그 마음이 김수미에게 전달되어 웃음으로 끝나게 하는 요인이 크다. 김수미가 박명수를 곯리려고 자기가 먹다 남긴 핫바를 그가 먹던 휴게소 우동에 갑자기 넣어줬을 때도[27] 박명수는 아무 주저함 없이 바로 감사하다며 받아서 맛있게 먹었다. 연기가 아닌게 사실 김수미가 지적하기 전까지 박명수는 아예 신경도 안 쓰고 그걸 우동국물에 담가 먹고 있었다. 이에 김수미가 크게 놀란 웃음을 보이고 나서야 그것 때문이라고 눈치채고 "왜요? 이게 어때서요?"라고 물었다. 당황한 김수미가 "동민이는 전에 더럽다고 화냈는데 넌 내 루즈도 다 묻은 그걸 진짜 먹냐?"고 하자 박명수는 "진짜 우리 엄마가 준 거라고 생각하고 먹는다. 진짜 우리 엄마가 먹던 거라고 생각하는데 뭐가 더럽냐? 맛있기만 하다"며 넉살좋게 그걸 전부 다 먹었고 김수미는 감동의 웃음을 터뜨리고 '어머 너 참 털털하구나'라며 그의 뺨을 쓰다듬었다. 김수미는 추후 인터뷰에서 원래 당연히 박명수가 뭐하시는 거냐고 항의할 줄 알았다고 고백한 뒤, '근데 엄마라고 생각한다면서 그걸 먹데?'라며 전혀 예상못한 상황이었다는 반응을 보이며 진심으로 놀라고 감동받은 모습을 보였다.
- 그 전에 매니저 역할을 했던 장동민은 30살 차이로 진짜 엄마뻘이라 그녀가 먼저 대놓고 엄마처럼 생각하라고 했었다. 장동민과는 마이 리틀 텔레비전 V2에서도 함께했다.
- 배우 황신혜는 아예 김수미 집에서 기거했던 적도 있다.[28] 그래서 김수미 가족 속사정을 속속들이 안다고 한다.
- 이외에도 드라마에서 모녀 사이로 주로 출연한 변정수나 예능에서 만난 방송인 이상민, 가문의 영광 리턴즈에서 만난 종합격투기 선수 추성훈 등 양아들, 수양딸 등이 많아서 행복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 사실 1980년대부터 TV 광고 출연이 제법 많았던 연예인으로 게맛살, 라면, 의약품 등 식품 및 생활용품 광고 등에 출연을 했었다. 최근에는 간간이 출연하다가 2014년에는 백화수복 광고[29]를, 2019년에 다시 간장게장 모델을 맡았는데 상표명이 시발(始發)이다. # 덤으로 새우장도 있다.
- 며느리 서효림을 무척 아낀다. 며느리 불편할까 봐 아들 부부 집에 4년 동안 3번 밖에 간 적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본인 집은 며느리 서효림 앞으로 명의 이전했다. 혹시 이혼하더라도 기죽지 말고 살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 생전에는 70대 중반의 나이임에도 왕성하게 활동했었다. 그래서 연예계의 선후배들이 걱정할만큼 일 욕심이 많았던 천상 연예인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다. 너무 무리가 와서 2024년 5월 31일 성동구 한양대학교병원에 입원했다고 한다. 소속사에 따르면, 지난 주까지 연극과 방송 스케줄이 많아지면서 피로 누적으로 무리가 온 것이며, 다음 주 회장님네 사람들 녹화와 다른 스케줄에 불참하고, 회복하는 대로 정리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10월 25일 오전에 갑작스레 사망하여 생애 마지막 약속은 실현되지 못했다. 사망하기 몇 달 전 방송에서 자신은 자기 인생에서 현재가 가장 행복한 시기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 본인의 이름이 이상한 광고에 실려서 유머 사이트에 돌아다닌 적이 있는데, 유사의학을 다루는 어느 자칭 의학박사[30]가 자살 직전의 중환자 탤런트 김수미를 우주에너지로 완치시켰다는 광고를 신문에 실었다. 당시 각별했던 시어머니를 떠나보내고 힘들어했던 김수미가 '그해 봄, 나는 중이 되고 싶었다'라는 책을 내며 죽고 싶었던 심정을 고백했는데, 이에 편승해서 광고를 냈던 것.
5.1. 개인사
막내딸이라 위로 언니들이 많았는데, 아버지가 다른 딸들에게는 엄하게 대하였으나 막내인 김수미만 굉장히 총애했었다고 한다. 모 프로그램에서 김수미와 그녀의 친언니들이 나온 적 있는데 하나같이 "아버지가 영옥이[31]만은 참~ 예뻐했었어" "반찬도 좋은 건 다 영옥이만 먹이고 우리한텐 전혀 안 그러셨는데" "그래서 우리가 참 서러웠었지"라고 웃으며 한마디씩 했다. 그 표정이 조금 서운해보이기는 하였으나 김수미 역시 그걸 알고 있었고, 그렇게 아버지에게 혼자 사랑을 받았던 자신을 괴롭히거나 미워할만도 한데 그러지 않고 잘 대해준 언니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다른 방송에서 김수미 본인도 "어릴 때 우리 아버지가 나를 예뻐하다 못해 하도 쓰다듬어서 내가 여잔데 이마가 넓어져 버렸다"는 농담을 한 적도 있다. 이런 아버지의 총애 때문에 어린 그녀가 사고를 쳐도 어머니조차 아버지 있는데서는 혼내지 못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이모집에서 자고 오던 날 어린 영옥이 학예회 같은 학교행사 준비로 어머니의 유일한 나들이복이던 한복 하나를 꺼내서 완전히 다 잘라 공연 소품을 준비했는데, 어머니가 후에 이를 알고 크게 분노하였다고 한다.[32]그러나 차마 남편 있을 때 팰 수가 없으니 3달 동안 아침마다 아버지가 출근한 뒤에 영옥이를 자주 꼬집었다고 한다. 그런데 몇 달째 그렇게 꼬집히자 어린 영옥이 하루는 작심하고 학교 갔다 와서 저녁에 아버지가 퇴근을 하자마자 갑자기 방금 꼬집힌 것처럼 "아악! 아버지 살려줘유 아파 죽겄어유!"라며 소리를 쳤고, 놀란 아버지가 달려오자 "엄니가 한복 잘랐다고 꼬집었슈"라고 했다고 한다. 영옥이를 아끼던 아버지는 화가 나서 어머니를 불러 "아니 임자, 애가 한복 자르는 거 한지 몇 달이 지났는데 애를 아직도 꼬집나?"라고 지적했고, 어머니는 할 수 없이 아침에 꼬집었다고 이실직고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도 화가 났겠지만 손쉽게 뻥을 친 영옥이를 보고도 "아니 영옥이 쟤는 뭐 되려고 저렇게 잔망스럽냐"며 당혹스러워했다고 한다.[33]
참고로 그 시절 서울의 숭의여중으로 유학을 갔으며, 동 재단의 여자고등학교까지 졸업했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엔 어머니를, 3학년 시절엔 아버지를 여의였고 장차 소설가가 되고 싶어서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지망했고 합격했는데, 당시 친척들도 많았고 그 중에선 부잣집도 있었기 때문에 등록금을 무탈하게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친가와 외가 통틀어 등록금을 마련해 주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고, 결국 대학엔 입학하지 못했다고 한다. 결혼을 약속하고 남자친구의 부모를 만나러 갔는데, 남자친구의 부모가 "조실부모했다", "대학을 안 나왔다", "직업이 연예인이다"는 세 가지 이유로 결혼을 반대했다고 한다. 김수미는 "대학은 다시 가면 되고, 연예인은 그만두면 되지만 부모님 돌아가신 건 내 의지가 아닌데 너무하다. 아주머니도 딸이 있는데 내일이라도 교통사고로 돌아가시면 그 딸도 똑같은 잣대 들이댈 거냐?"고 했고 그 길로 결혼이 파토났다.
이후 한참을 연애를 못하다가 가수 정훈희의 중매로 남편을 만났는데, 결혼 전 김수미가 너무 남편을 안 만나주니까 미래의 시어머니가 "우리 아들이 그렇게 좋아하는데 우리집에 한번 놀러오라"고 해서 예의상 갔더니 김수미의 손을 꼭 잡고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얼마나 고생이 많았겠어요"라며 보듬어주었다고 한다. 결국은 시어머니의 인품에 마음을 열고 결혼까지 성사가 되었고, 그 이후로도 시어머니를 마음 깊이 존경하며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1998년에 BMW의 최고급 대형 세단인 7시리즈(E38형 740iL V8 4.4 DOHC)를 구입했는데, 김수미의 전속 운전기사[34]가 이 차에 탑승해서 단지 시동만 걸었을 뿐인데 차량이 급발진하는 바람에 당시 김수미가 출연하고 있었던 연극의 공연 벽보를 붙이고 있던 시어머니가 차에 치어 숨지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김수미는 피의자 신분으로 소송에 휘말렸으며, 시어머니를 잃은 충격으로 한때 건강에 문제가 발생했다. BMW를 상대로 강력하게 급발진 결함 규명 및 보상을 요구했으나, 결국 패소했다.
김수미는 인품을 보고 결혼을 결심할 정도로 존경하던 사람[35]을 너무 어이없게 잃은 탓에 충격을 너무 심하게 받아서 2000년대 초에는 수년 동안 병에 걸려 연기 활동을 거의 하지 못했다. 이에 대해 무속 신앙과 관련해 여러 이야기가 퍼졌는데, 김수미 본인도 어느 정도 인정한 내용으로 시어머니의 영혼에게 빙의되어서 신내림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는 등의 이야기였다. 물론 진짜 원인은 극도의 우울증과 PTSD. 당시 증언을 보면 환청과 환시까지 있을 정도로 심각했기 때문에, 신내림이 아니라 더한 상황으로 받아들였어도 이상할 게 없을 수준이다. 실제로 당시 김수미가 빙의 등을 주장했을 때 상당수 사람들은 시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이상한 소리를 한다고 받아들이기도 했다. 자살 충동을 이기지 못해 자살을 시도하다가 실패하기도 했으며 병상에서 삭발까지 했다.
하지만 결국 병상에서 일어나 회복해 다시 활발하게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기가 몸에 쌓이는 무병에 걸렸는데 연예인 활동을 재개함으로써 기를 발산하여 회복한 것이라고 한다. 무속인들은 연예인 중 상당수가 끼를 발산하지 않았으면 자신처럼 무속인이 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실제로 찾아보면 연예인을 하다가 무속인이 된 사례도 꽤 있고, 대부분 요즘 무당들이 점 봐줄 때 무당 팔자로 나오는 손님들에게 직설적으로 말하기 힘들어서 '요즘은 무당 사주가 연예인 사주랑 거의 같은 거다. 당신이 연예인이 될 수도 있다'는 식으로 위로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러나 무당 팔자로 태어나는 사람 모두가 신병에 걸리거나 무당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니라고 한다. 조선시대 야사에도 무속인 팔자를 타고났으나 기생 등이 된 사례도 있다고. 김수미가 방송에 복귀한 후 비슷한 시기에 그녀의 신병을 치유했다는 식으로 책을 냈고, 나름 이쪽 계통에도 유명해진 '묘심화'라는 비구니[36]도 있었다. 참고로 그녀는 배우 복귀 후 사극 왕과 나에서 무당역할을 한 적도 있다.
1980년대 중반 일용엄니 역할을 한참 하던 시절 노인 분장을 지우고 어린이 영화 우뢰매 3, 4편에 김박사 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으며, 1988년 어린이 영화 용호취에서 일본 야쿠자 두목 역으로 출연한 적도 있다. 출연당시 이미 30대 후반임에도 미모는 여전했다.
촬영이 있는 날은 종종 손수 만든 음식을 가져가서 스탭들과 배우들을 대접하기로 유명하다. 전원일기 때부터 시작된 것인데 특히 배우 최불암은 한 번도 빼먹지 않고 그 밥을 먹었다고 한다. 김수미는 "최불암 선배님이 나서서 항상 밥을 다 먹어주셔서 감사하다"고 했지만 최불암은 본인이 꽤나 입이 짧은데 김수미의 밥은 그냥 아주 맛있으니깐 먹는 거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안녕 프란체스카 시즌3 마지막화에서 보면 나오는데 거의 뷔페 수준으로 반찬과 밥을 놓고 스탭들과 배우들이 배식을 받는다. 영화촬영장에서도 이는 마찬가지라서 슈퍼스타 감사용 코멘터리에 나온 바론 이범수와 가족들 간의 단란한 식사씬에 나온 모든 음식이 다 김수미가 해온 것이라고 한다. 참고로 이 장면은 감독이 유달리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라고 하는데 그 이유가 배우들이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진짜 한 식구처럼 대화를 하는 거 같아서라고 하며 김수미도 그 씬에선 연기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진짜 감사용의 친모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자연스레 연기를 했다.
약속 어기는 사람을 아주 싫어한다. 가수 김창열도 드라마 촬영에 늦었다가 김수미가 크게 질책한 뒤 두 번 다시 안늦으려고 기를 쓸 정도이며 오랫동안 친했던 후배 여배우가 늦어서 김수미를 30분 기다리게 했는데 그 이후 두 번 다시 안 만난다고 하며 시간이 지난 뒤 사과하려 집에 찾아와서 오랫동안 초인종 누르고 기다렸지만 문전박대해 버렸다고 한다. 관련기사
1990년대 말 전라북도의 유일한 프로야구단인 쌍방울 레이더스가 모기업의 부도로 해체 위기에 빠지자 발벗고 나섰는데 레이더스 후원회장이 되어 같은 연고 출신인 그룹 코리아나에게 함께 모금활동을 하자고 제안하여 최불암, 유인촌, 고두심, 유승준 등 국내 정상급 연예인들이 참가하는 쌍방울 살리기 자선공연을 성사시키고 '1인 1만원 구좌 갖기운동'을 비롯한 후원회 운용 방안을 논의하는 등 백방의 노력을 하였다. 그 결과 당시 쌍방울 레이더스 선수 및 임직원의 체불된 임금 상당수를 해결할 수 있었다. 호남 출신이라서 민주당계 정당의 지지자로 보인다. 특히 같은 전북 출신인 정세균 전 국무총리와는 25년째 교분을 쌓았으며, 20대 대선에서 정세균 후보 후원회장을 맡았다. #
아들 정명호는 현재 나팔꽃 F&B 대표로 재직 중이며, 어머니 김수미가 만든 식품을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다. 2019년 10월 23일 정명호가 배우 서효림과 교제를 한다는 소식이 알려졌고 1달이 안 된 11월 19일 결혼을 발표하면서 서효림의 임신 소식까지 겹경사가 겹쳤다. 어쨌든 현재 같은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 서효림을 며느리로 맞이하게 되었다. 김수미는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안면인식장애를 앓고 있다고 한다. 며느리 서효림의 얼굴을 알아보는 데에도 몇 년이 걸렸다고 한다. #
5.2. 김혜자와의 관계
배우 김혜자와는 매우 절친한 사이. 같은 어머니상(像)을 연기하지만, 이미지는 많이 다르다. 김혜자가 자애로운 현모양처의 이미지가 강하다면, 김수미는 억척스럽고 괄괄한 성격의 여장부 이미지다.물론 김수미 또한 인자하고 다정한 어머니 상을 연기한 적이 있다.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에서 보여준 감사용의 어머니역은 매우 따뜻하고 살가운 모든 아들들의 어머니상으로 영화에서 코멘터리에 참여했던 감독과 배우 이범수는 그 연기를 해설하며 국민엄마라며 치켜세우기 바빴다. 반대로 김혜자도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에서 매우 비뚤어진 모성을 가진 어머니를 연기한 적이 있다.
재미있게도 욕쟁이에 괄괄하고 털털한 이미지인 김수미가 요리의 달인인 데 비해 정작 현모양처 이미지인 김혜자는 찌개도 제대로 못 끓인다고 한다. 방송에서 김수미가 한 증언에 의하면 김혜자의 손자손녀들이 집에 놀러왔을 때 김혜자가 즉석밥 햇반을 데워 준 적이 있었다고 한다. 과거 서세원쇼에서 김혜자가 출연했을 때 그녀와 친한 김수미가 초청 게스트로 나와서 김치도 못 담근다고 폭풍 디스를 시전했다.
김수미는 1980년대 초반 MBC 오늘의 요리를 진행하던 중, 함께 출연하는 요리연구가가 음식을 하는 것을 보다가, 답답해서 본인이 직접 칼을 빼앗아 들어 요리 재료를 썬 적도 있다. 함께 출연한 요리연구가라는 사람의 칼질이 (김수미가 보기에는) 전문 요리연구가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너무나 서툴렀기 때문이다.
김수미의 요리 실력은 전문가 바로 아래급이다. 장동민이 "한식 조리사 자격증 있으세요?" 물어보니까, 김수미가 "네 어머니는 한식 조리사 자격증 있으시냐?"라며 대답했는데, 요리를 잘 한다는 의미가 단순히 요리의 기술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어머니가 만든 요리와 같은 그런 차원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남편의 사업이 망해 김수미가 어려울 때 김혜자가 경제적으로 큰 도움을 주기도 했다. 김수미가 경제적으로 아주 어려웠던 시절 주변 사람들에게 여기저기서 몇백만원씩 급하게 빌리고 다녔는데, 김혜자는 그 소식을 듣고 찾아와서는 "얘, 넌 왜 나한테는 돈 빌려 달라는 소리를 안 하니? 추접스럽게 몇백씩 꾸지 말고, 필요한 돈이 얼마나 되니?"라며 물어보더니 "나는 돈 쓸 일 없어. 다음 달에 아프리카에 가려고 했는데 아프리카가 여기 있네. 다 찾아서 해결해. 그리고 갚지 마. 혹시 돈이 넘쳐나면 그때 주든가."라고 하였다고 한다. 승승장구 결국 김수미는 빚을 청산하고 나중에 김혜자에게 빌린 돈을 다 갚았다고 한다.
6. 논란 및 사건 사고
자세한 내용은 김수미/논란 및 사건사고 문서 참고하십시오.7. 둘러보기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 <colcolor=#ffffff> 문화방송 탤런트 | |
1기 (1969) | <colbgcolor=#ffffff,#1c1d1f>김애경 · 박광남† · 박상조 · 박은수 · 서권순 · 이도련† · 임문수† · 임현식 · 조경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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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기 (1976) | 김보연 · 박병훈 · 이숙 · 이창환 · 전인택 · 한미영 | |
9기 (1977) | 권은아 · 길용우 · 김홍석† · 신신애 · 이원용 · 정한헌 | |
10기 (1978) | 김용선 · 윤순홍 · 이미영 · 이혜숙 · 홍성애 | |
11기 (1979) | 오미희 · 이미지† · 이보희 · 이상숙 · 한영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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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기 (1981) | 김청 · 김혜정 · 이휘향 · 홍진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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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기 (1991) | 강이은 · 감우성 · 곽진영 · 김소이 · 김현숙 · 박철 · 안신우 · 정경희 · 차광수 · 한석규 | |
21기 (1992) | 김원희 · 박선영 · 박주미 · 안승미 · 윤동환 · 장동건 · 조현숙 · 최범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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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기 (1994) | 손건우 · 안재욱 · 유태웅 · 윤용현 · 이민영 · 이아현 · 이은영 · 이현경 · 최선미 · 최영재 · 최지우 · 황상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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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기 (1996) | 강성연 · 구혜진 · 김세아 · 김정은 · 서유정 · 안재환† · 유서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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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기 (1998) | 김용희 · 박솔미 · 박정은 · 박주희 · 송일국 · 이승아 · 허성수 · 홍은희 | |
28기 (1999) | 고정민 · 김철기 · 이세은 · 정소영 | |
29기 (2000) | 박도유 · 박현정 · 손민경 · 손유경 · 인교진 | |
30기 (2001) | 강보라 · 신동미 · 이상이 · 전익령 · 진태현 · 최자혜 | |
31기 (2003) | 김남길 · 김효서 · 이제인 · 장남경 · 전수지 |
※ 특채 탤런트는 제외
※ 나무위키 등재 인물만 기입}}}}}} ||
[1] 동명이인 배우 김영옥 때문에 출연료가 잘못 입금되는 상황이 생겨서 김수미라는 예명을 쓰기 시작했다.[2] #[3] 음력 1949년 9월 3일, 주민등록상 10월 20일생[4] 現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신흥동 절골1길 12 #[5] 양력으로 생일 다음 날, 음력으로 생일 52일 후에 사망하였다.[6] 사인은 고혈당 쇼크.[7] 김수미의 어머니는 1967년 당시 김수미가 18살때 지병으로 사망했다고 언급했으며 김수미의 아버지는 일곱 식구 생계인 고구마 밭을 모두 팔아서 김수미의 서울 집을 마련했고, 자식들의 겨울 방학 때 아버지는 생계를 위해 선착장에서 하역했다고 한다. 관련 영상.[8] 《회장님네 사람들》에서 김용건이 형제 자매를 물어봤을 때 5남매 중에 막내라고 언급했으며 지금은 김수미 본인 포함 모두 세상을 떠나고 친언니만 남게 되었다.[9] 정명호 인스타그램 계정[10] 모태신앙이며 본인이 직접 압구정동에 위치한 푸른나무교회(예장통합) 신자라 밝혔다. # 2023년 2월 경 집사 직분을 받았다고 한다. #[11] 1970년 10월 데뷔. 동기는 국정환, 김영애, 박영태, 손창호, 안옥희, 염복순, 허진이다.[12] 게다가 전원일기 종영 이후, 김수미도 나이가 들었고, 2010년대 부터는 할머니가 되었다. 할머니 분장을 처음 한 31세의 청년시절은 한참 전이고 종영 이후로는 54세이다.[13] 안녕, 프란체스카에서는 처음부터 할머니였던 건 아니었지만 모종의 이유로 하루 아침에 젊음을 뺏겼다는 설정이다. 그래서 본인이 할머니라는 걸 부정하지만 하는 언행은 빼도 박도 못하는 할머니다.[14] 김수미가 어릴때 들었던 원래 가사는 "시계 차고 가는 너, 너만 잘났냐. 수갑 차고 가는 나, 나도 잘났다. 젠젠젠 젠틀맨이다."였다고 한다. 근데 사실 김수미가 부르는 음정과 제작진이 편곡하여 연주되는 음악의 음정은 다르다. 제작진은 기존에 있는 노래 "장마비"의 "오지 말아라" 부분의 음정을 "너만 잘났냐"에 그대로 넣어 버렸다.[15] 참고로 서효림은 나중에 자신의 극중의 관계가 아닌 진짜 며느리가 된다.[16] 1938년생이나 음력으로는 1937년 12월 5일 생이라 소띠이다.[17] 본래 이 역할은 여운계가 맡았는데, 건강이 좋지 않아서(신장암) 하차했고 대신 맡았는데, 그마저도 스케줄 때문에 일찍 하차했다.[18] 김수미의 지상파 기준으로 유작이 되었다.[19] 김수미의 드라마로서는 유작이 되었다.[20] 배우로서 유작이 될 예정이다.[21] 이 두 사람도 버럭하는 캐릭터로 유명하여 김수미와 함께 방송에 출연했을 때 장난스러운 티키타카를 보여줬던 이들이었다. 특히, 박명수는 동향 출신이다.[22] 김수미와는 '맨발의 기봉이'에도 호흡을 맞췄다.[23] 김수미는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 조인성이 맡은 역할인 재벌 2세 정재민의 어머니 역할을 했다. 극 중 직업은 재벌 사모님답게 미술관 관장이다.[24] 실제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 김수미는 조인성(정재민)에게 "어유 내새끼"란 대사를 하는 장면이 많았다. 둘째 아들인 정재민이 첫째 아들하고 터울이 많아 엄마로써 어릴 때부터 예뻐해서 커서도 어린 아이처럼 귀여워하며 대하는 설정이었다고 한다. 드라마가 끝난 이후에도 드라마 촬영할 때 아들 대하던 스타일로 대했다는 것으로 보인다.[25] 박명수가 은근히 존대말 섞는 반말을 많이 한다. '아니, 선생님 그건 안 돼. 이거 해요' 이런 식이었다. 그리고 상술되었듯 김수미는 후배들이 무조건 깍듯하게 대하기 보다는 농담도 하고 살갑게 구는 걸 더 선호한다고 밝힌 바 있다.[26] 주로 장동민을 언급할 때 화를 낸다. 진짜 질투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볼 정도였다.[27] 장동민이 매니저였을 때도 휴게소 식당에서 같은 일이 있었기 때문에 박명수에게도 시험해보려고 일부러 한 것이다. 그러나 사실 장동민에게 줬던 핫바는 그냥 김수미 혼자 먹은 게 아니라 개를 좋아하는 그녀가 휴게소 화장실 근처에서 핫바를 먹다가 장동민이 보는 앞에서 그들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온 일반인의 애견에게도 조금 뜯어먹게 했던 것이라 박명수의 경우와는 조금 다르고, 일반적 관점으로도 장동민의 반감을 유발할만 했다. 물론 김수미는 그 개에게 먹이고 나서도 본인이 먹었지만 애견인이 아니라면 처음 본 개가 먹던 것을 먹는 것은 누구나 힘든 일이다. 사실 상당수의 애견인도 본인의 개가 아닌 처음 본 개라면 거부감을 가지기도 한다.[28] 황신혜가 처음 이혼했을 때 너무 힘들어해서 김수미가 매일같이 집에 데려와 세끼 밥 먹이고 돌봤다고 한다.[29] 전라도 방언이 나왔다.[30] 일단 본문에서는 본인들은 박사의 제자인데 요즘 사칭하는 이들이 많아 상처받은 박사가 인도와 티베트의 산 속으로 들어가 다시는 나오려고 하시지 않으니 제발 사칭 좀 그만하라는 내용이다. 하지만 아래 사무실 주소와 연락처를 기재한 걸 보면 빼도 박도 못하는 광고다.[31] 김수미의 본명이다.[32] 김수미도 철이 든 후 이 일을 두고두고 후회했다.[33] 과거 해피투게더에 김수미가 출연했을 때도 40여년 전 친구들이 묘사한 김수미의 모습은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카리스마가 있어서 못 건드리는 친구였다고 한다.[34] 운전경력 20년이 훨씬 넘은 베테랑이었다고 한다.[35] 사실 시어머니에 비하면 남편의 인품은 별로이다. 나중에 사업이 망한 건 둘째 치고, 젊을 때 바람을 심하게 피워 두집살림을 했다. 2010년대부터는 김수미가 그냥 "남편이 젊을 때 한 달 동안 집에 안 들어와서 속을 썩었다"고만 방송에서 얘기해서 잘 모르는 시청자들은 가출인가 생각하지만 그게 실제로는 바람난 여자와 살림한다고 집을 나가서 안 들어왔던 것이며, 이미 1990년대나 2000년대 초반에 방송에서 김수미가 남편이 두집살림 했던 걸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가부장적 사회였던 1980년대 기준으로도 두집살림은 비난받았던 행동이었다. 당시 김수미는 "잠은 다른 년이랑 자도 밥은 집에 와서 먹게 만들겠다"고 매일 생각하며 요리를 더 연마했다고 한다.[36] 박근혜 상대로 한 자리 얻으려고 약팔다가 척진 그 인물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