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김수미의 생애에 대해 다룬 문서.2. 데뷔 초
그러다가 1980년에 첫 방영되고 국민 드라마가 된 《전원일기》의 일용엄니 역할로 일약 대스타가 된다. 일용엄니로 얻은 인기 덕분에 교양 프로그램 진행자도 하게 되는데, 1982년~1985년까지 MBC '오늘의 요리'라는 프로그램[2]을, 1987년~1989년까지 MBC '토요일 정보 총집합'을 진행하였다.[3] 이때의 경험이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김수미 본인의 이름을 내건 예능 프로그램들을 여러 개씩 진행할 수 있게 하는 밑바탕이 되었다.
3. 전원일기
1980년부터 방영한 국민 농촌 드라마 《전원일기》의 '일용엄니' 역으로 무려 22년 동안 열연했다. 처음 촬영할 당시 겨우 31세의 나이에 시골 할머니 연기를 했고, 아들 '일용이' 역의 박은수보다도 나이가 어렸다. 그래서 아들보다 나이 어린 엄마였던 것이다.[4] 제작진으로부터 《전원일기》에 출연은 통보는 받았으나 어떤 역할이라고 구체적인 얘기는 듣지 못했다고 한다. 이후 대기실에서 만난 선배 박은수가 "야, 너랑 나랑 한 집에 산다." 그러길래 "어머, 선배님. 그럼 우리 부부예요?"라고 물었더니 "네가 우리 엄마야."라고 대답했다고 한다.처음에는 나이도 더 위인데다 방송사 직속 선배인 박은수와 연기하는 게 좀 불편했으나 차츰 적응이 된 뒤에는 연기할 때는 신나게 '일용이 너 이눔 시키' 하고 혼내다가 그날 촬영이 끝나고 나면 아무렇지 않게 '선배님 수고하셨습니다' 하고 공손하게 인사를 드린 뒤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나중에는 박은수 선배도 적응이 돼서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다고 한다. 일용엄니 역을 맡은 배우가 연하의 후배 김수미라는 것을 알게 된 박은수는 처음에는 ‘저 여자의 얼굴이 어떻게 할머니가 될까?' 라는 의문을 가졌다고 한다. 당시 김수미는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인데다 조그맣고 아주 어려보이는 외모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첫 녹화 후 소위 대박을 치게 된다.
사실, 그녀는 일용엄니 배역을 하기 싫어서 3개월 동안 제주도로 도망간 적도 있다. 이 여파가 엄청나서 전원일기 PD는 촬영에 복귀하지 않으면 일용네 식구들을 극에서 아예 제외해버리겠다고 했음에도 맘대로 하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이은심' 역의 김혜자가 나서서 "다른 출연자들은 이것을 직장으로 생각하는데 너 혼자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너 하나 때문에 박은수(아들 역)와 김혜정(며느리 역)의 밥줄을 끊을 셈이냐?"고 말하자, 정신이 번쩍 든 김수미는 다시 출연하겠다고 PD에게 전화를 하고 돌아갔다. #
그리고 김수미는 전원일기와 1985년 10월부터 1986년 4월까지 방영되었던 주말연속극 남자의 계절에서 최명길의 친정엄마 역할로 1986년에 MBC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조연 캐릭터인데도 최초로 연기대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존재감이 매우 강한 캐릭터였던 것이다. 지금도 조연 캐릭터가 연기대상을 수상 받은 사례는 나문희와 김수미 두 명밖에 없다. 그 당시 일용엄니에 대해 시청자들 사이에서 진짜 할머니인가 아닌가 갑론을박이 있을 정도였다. 그만큼 김수미가 일용엄니 배역을 실감나게 잘해서 할아버지들이 방송국으로 팬레터를 엄청나게 보내서 받았다고 한다.
4. 사망
2024년 10월 25일 아침, 자택에서 의식이 없는 상태로 발견되어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사망했다. # # 향년 75세. 빈소는 한양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었으며, 발인은 사흘 뒤인 10월 27일에 진행된다. 유족의 요청으로 장례는 비공개로 진행될 예정이다. #그녀는 2024년 5월부터 피로 누적으로 활동을 잠정 중단하고 한양대학교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며, 특히 2024년 9월 8일날 홈쇼핑에 직접 출연했을 당시 건강 악화설이 나왔으나 본인은 이를 부인한 바 있다. #
사인은 고혈당 쇼크[5]로, 경찰 조사에서 혈당 수치가 500mg/dL[6]이 넘게 나왔다고 한다. 그녀는 14년 동안 출연했던 뮤지컬 '친정엄마'의 제작사가 표절 시비에 휘말리며 작년부터 출연료를 지급받지 못했고, 최근 소송을 준비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 이러한 스트레스는 컨디션 악화의 주요 원인이 될 수도 있다.[7]
불과 한 달 전까지 방송 활동을 이어가던 그녀의 사망 소식에 대중들은 충격을 금치 못하고 있다.[8] 그녀의 빈소가 차려진 한양대학교병원 장례식장의 공식 사이트는 사망 당일 추모 물결로 서버가 다운되기도 했다. 게다가 생일이 고작 하루 지난 뒤에 사망한지라 더욱 안타깝다는 반응이 있다.
10월 27일 발인이 엄수됐다. 김수미를 어머니로 부르며 따랐던 정준하, 장동민, 윤정수 등이 관을 함께 나눠들면서 고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으며,# 특히 김수미를 시어머니로 모시며 "엄마"라고 불렀던 며느리 서효림은 운구차 앞에서 통곡을 했다. 발인이 엄수된 이후 화장을 거쳐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용인공원 아너스톤에 안치되었다.
4.1. 추모 및 반응
4.1.1. 정치권
- 김관영 전북특별자치도지사[9]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예고 없이 찾아온 이별은 사람의 마음을 철렁 내려앉게 만든다"면서 "갑작스런 국민 배우 김수미님의 작고 소식에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전했다. #
-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만능 배우 욕쟁이 김수미 선생께서 하늘나라로 가셨다"며 "누구에게나 호탕 걸직하셨던 고인께서는 목포를 좋아하셔서 신안비치 호텔에서 자주 뵐 수 있었다"고 떠올렸다. #
- 김영록 전라남도지사는 당일에 애도문을 통해 "국민배우 김수미님은 2020년부터 올해 4월까지 4년간 전남도 홍보대사로서 남도의 매력을 알리고 전남 고향사랑기부제 응원 릴레이에도 선발 주자로 나서 지역 상생에 힘을 모았다"며"3년 전 가을, 저와 함께 남도요리교실 유튜브를 촬영하던 당시 보여 주신 유쾌한 입담과 인자한 미소가 눈에 선해 더욱 마음이 아프다"며 "갑작스레 우리 곁을 떠나신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족들께도 깊은 위로 말씀을 올린다"고 애도했다. #
- 후배 배우이자 전원일기에서 용식이 역으로 출연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장관[11]은 이날 조문 메시지를 통해 "김수미 선생님은 그 누구보다 깊은 인상을 남긴 배우셨다"며 "별세 소식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
- 강임준 군산시장은 이날 언론 보도자료를 통해 "너무 빨리 가신 고인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는 입장을 내놨다. 강 시장은 "평소 선생님의 프로그램을 즐겨보고, 행사가 있으면 연락을 주고받기도 했는데 갑자기 부고를 들어서 경황이 없다"며 황망해했다. #
4.1.2. 연예계
- 맨발의 기봉이와 가문의 영광 시리즈[13]에서 모자 관계로 호흡을 맞췄으며, 그녀를 어머니라고 부를 정도로 각별했던 신현준은 언론사와의 통화에서 오열을 금치 못했다. # 이후 김수미의 빈소가 열리자 가장 먼저 빈소를 방문해 조문했다. # 또한 “최근 생신이셔서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하얀 리시안 꽃을 보내드렸었는데 전화로 ‘현준아 꽃 너무 예쁘다 고마워’라고 하셨는데 목소리에 힘이 없으셨다. 그래서 ‘어머니 건강 조심하세요’라고 했는데 그 짧은 통화가 마지막 통화가 됐다. 너무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
- 신현준과 함께 양아들 수준의 인연이었던 탁재훈[14]은 돌싱포맨 촬영차 캐나다에 있어서 빈소에 방문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도착하자마자 들은 비보에 '이게 맞나' 싶다"라며 참담한 마음을 전했다. #
- 그녀와 각별한 사이이자 동명이인인 김영옥은 그녀의 부고 소식을 듣고 "믿을 수가 없어 유튜브 가짜 뉴스인 줄 알았다. 너무 큰 충격이다"라며 말했으며, 빈소를 방문해 조문했다. #
- 가문의 영광을 함께한 정준하는 "심정은 너무나 참담하다"며 "이밖에는 제가 뭐라 말씀드리기가 어렵다"며 "빈소가 마련되면 일정을 마치는 대로 장례식장을 바로 찾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
-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정지선 셰프는 SNS에 그녀와 찍은 사진과 함께 "(김수미 선생님은) 제게는 정말 특별한 분, 따뜻한 분이셨다. 진심으로 대해주셨다"고 애도를 했고 빈소를 방문해 조문했다. #
- 양아들로 불릴 정도로 그녀와 각별한 사이였던 윤정수는 "전혀 와 닿지 않는다. 얼마 전에도 통화를 했는데... 빈소를 가봐야 알 것 같다. 너무 마음이 안 좋다"고 속상한 속내를 털어놨다. #
- 가문의 영광 시리즈를 함께한 정태원 태원 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오후에 빈소에 갈 예정"이라며 "건강이 안 좋으시다는 이야기만 들었는데 돌아가실 줄은 몰랐다. 편찮으시다고 해 최근에는 뵙지 못했는데 충격이 크다"고 말을 잇지 못했다. #
- 강부자는 "수미는 뭘 하고자 하는 욕심이 많아서 이것저것을 많이 했다. 특히 근래에는 일을 너무 많이 했다"며 "입원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며칠 있으면 벌떡 일어나서 일 잘하겠지' 생각했는데 너무 망연자실해서 앉아만 있다"고 말했다. 이어 "수미가 내 남편이 자기 친정아버지와 닮은 점이 많다면서 남편을 아버지라고 불렀다"며 "내 가족까지 정성스럽게 챙겨준, 정 많고 의리 있던 사람"이라고 추억했다. #
- 애정만만세, 전설의 마녀, 언니는 살아있다!에서 호흡을 맞췄던 변정수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내 인생의 선생님 선생님 만나고 나서야 역할이 아닌 그 인물이 되는 법을 배웠습니다. 연기의 즐거움도 알게 되었습니다. 적극적인 삶을 살아가는 방법도 배웠습니다. 벌써 그립고 보고싶습니다. 선생님. 일 때문에 멀리 와있어 당장 가지못해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라는 글과 함께 한 장의 사진을 게재했다. #
- 홍석천은 이날 SNS에 "김수미 선생님께 많은 칭찬 위로 받았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떠나가신게 믿기지않네여 ㅠ 오랫동안 건강하게 웃음주실거라 하셨는데 참 슬프고 벌써 그 찰진 욕이 그리워집니다 나태해지려 할 때마다 정신차리게 해주셧던 그 따뜻함 잊지않을게여 편히 쉬세여"라며 함께 예능에 출연했던 당시를 회상했다. #
- 추성훈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항상 우리 어머니 그리고 나에게 많은 사랑을 주셔서 늘 감사했다. 너무 슬퍼서 어떻게 말해야 될지 모르겠다. 좋은 곳에 편히 쉬십시오"라고 남겼다. #
- 이연복, 최현석, 여경래, 이원일, 미할 스파소프 아슈미노프 등 예능 프로그램에서 같이 호흡을 맞춘 셰프들도 조문하였다.
- 문희경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어린 자매가 시장통에서 '오빠는 풍각쟁이' 부르던 시절 사진, 아 김수미 선생님 오래전 MBC 주말극 '애정만만세'에서 나의 언니로 같이 출연했던 기억이 너무 생생한데"라는 글을 게재했다. #
- 이윤지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김수미 선생님 소식을 듣고 마음에 장대비가 내립니다"라고 말을 시작하면서 "그곳에서 부디 편찮으신 곳 싹 다 나으시고 언제까지나 편안하소서. 존경합니다"라며 추모의 뜻을 전했다. #
- 남성진-김지영 부부, 전인화-유동근 부부, 강남-이상화 부부, 김재중, 강호동, 박정수, 민우혁, 최명길, 김용만, 김숙, 김형준, 신동엽, 이영자, 인교진, 별, 이승기, 박준금, 남궁민, 정준호, 김희철, 김영옥, 최불암, 김용건, 김수용, 이태성, 강부자, 박은수, 장성규, 최수종, 강석우, 임하룡 등도 조문했다. #
- 이숙은 3일 연속 조문하고 발인식까지 참석했다.
[1] 보다 더 화려한 미모를 가졌던 MBC 입사 동기 김영애와 한 기수 선배인 김자옥, 양정화, 동양방송 공채 탤런트였으나 KBS를 거쳐 MBC에서 주로 활동한 이효춘에게 밀렸다. 신인 탤런트임에도 늘 뻣뻣한 자세로 일관하여, 장관 딸이라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2] 단순한 요리 프로그램이 아니라 당시 아침방송계의 본좌였다. 《뽀뽀뽀》가 8시 30분에 끝나고 9시부터 오늘의 요리를 방영한 뒤 9시 30분 뉴스로 이어지는 것이 당시 MBC의 필승 편성패턴이었다. 특히 컬러방송이 개시되고 생생한 음식 모습을 TV로 보여주는데다가, 요리학원에 가서 수강료를 내고 배우거나 엄마나 시어머니에게 전수받아야 하는 각종 요리들을 TV만 보면 배울 수 있었기 때문에 주부 층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최후반부에 김혜영이 진행할 때까지 거의 10여 년을 롱런했다.[3] 이 프로그램은 지금의 《VJ특공대》, 《생생정보통》이랑 비슷하지만 컴퓨터 7대를 가지고 시청자들이 전화를 하면 컴퓨터를 통해 상담사가 각종 정보를 알려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지금에서야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발달해서 손쉽게 얻을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PC통신이 막 생겨서 보급이 덜 되던 때였다. 《놀러와》에서 푼 썰에 따르면, 생방송 중 실수 때문에 잘렸다고 한다. 당시 환경 의학 전문가이던 사촌오빠가 미국에서 와서 방송 전날 둘이 술을 거하게 마셨는데, 알고보니 그 오빠가 본인이 진행하던 쇼에 게스트로 출연하게 되어 "~교수입니다"라고 소개하던 도중 웃음이 터져버려 그냥 나와버렸다고 하며 이후 후속 프로그램은 "여러분의 토요일"이었다.[4] 박은수는 1945년생(공식 프로필상으로 1947년생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1945년생이라고 한다)에 MBC 제1기 공채 탤런트 출신으로, 3기로 입사한 김수미보다 2기수 위에 나이도 4살(공식 프로필상으로는 2살) 많다. 《전원일기》 방영 당시 쇼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전원일기》에 대한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밝힐 때 "일용이가 일용엄니보다 2살이 많다."라는 자막까지 덧붙여서 나왔다. 당시에는 원로 배우들이 극히 드물어서 40대, 심하면 20대 후반~30대 젊은 배우들도 노인으로 분장하고 연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례로, 1960년대 중반 여운계는 불과 24살 때 할머니 역을 맡았다. 다만 분장술이 크게 발달하지 않아 얼굴만 보면 30대 청년으로 보이는 편이다.[5] '고혈당 쇼크'라는 공식적인 병명은 없다. 정황상 고혈당증에 의해 유발된 급성 합병증(당뇨병성 케톤산증, 고삼투압성 고혈당 증후군)이나 고혈당성 뇌병증, 또는 그에 동반된 여러 합병증이 원인일 가능성이 있다.[6] 500mg/dL 이상은 일반적 당뇨병 환자에서 나타나기 힘든 극도로 높은 수치로, 췌장에서 인슐린을 분비하는 베타세포가 영구적으로 사멸해 혈당 조절 능력이 완전히, 영구히 상실된 1형 당뇨병(인슐린 의존성 당뇨병, 췌도부전)에서 식사 이후 볼 수 있는 수준이다. 참고로 당뇨는 공복혈당 기준 126mg/dĹ, 식사 후 2시간 혈당 200mg/dL부터 질병으로 진단 받고 극심한 당뇨로 보는 기준조차 250mg/dL이다. 일반적인 혈당계에서는 400mg/dL 이상을 표시하지 못하고 High로만 표시한다는 점에서, 500mg/dL은 심각하게 높은 수치로 볼 수 있다.[7] 실제로 강한 만성 스트레스는 염증 인자인 IL-6의 활성을 높이고 높은 코르티솔 수치까지 동반해 인슐린 저항성을 심화시킨다.[8] 과거 김수미는 집사부일체에서 집사부일체 멤버들에게 영정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면서 자신이 죽어도 슬퍼하지 않고 웃으며 보내줬으면 한다고 언급한 바 있는데#, 그러기에는 이별이 너무나도 갑작스러웠다. 영정사진 역시 집사부일체에서 찍은 사진이 아닌 김수미가 출연한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김수미 단독 포스터가 영정사진으로 활용되었다.[9] 같은 군산 출신이기도 하다. 김수미는 신흥동, 김관영 지사는 회현면 출신.[10] 김수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전원일기는 경기도 북부 교외지역을 배경으로 했는데, 배경에 걸맞게 현재의 양주시, 양평군, 남양주시 일대를 오가며 촬영했다. 특히 양평군은 강하면, 양평읍, 양서면 3곳에서 촬영을 했으며, 특히 양서면은 1998년부터 2002년 종영 때까지 함께했다.[11] 김수미는 MBC 3기 공채 탤런트, 유인촌은 6기 공채 탤런트 출신이다.[12] 김수미가 울산광역시 홍보대사로 위촉되기도 했다.[13] 2, 3, 4탄 한정[14] 가문의 영광 시리즈에서 신현준과 형제관계로 나왔다.[15] 전원일기부터 호흡을 맞춰온 각별한 사이로, 가문의 영광 시리즈 3탄인 가문의 부활에서 김수미의 남편 역으로 나왔다. 또 고인의 마지막 TV 출연작인 회장님네 사람들을 2년여간 함께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