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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부문 여자 예능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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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5C6A77><colcolor=#F9FFFF> 김원희 金元嬉|Kim Won Hee | |
출생 | 1972년 6월 9일 ([age(1972-06-09)]세) |
서울특별시 마포구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165cm, 50kg[1], A형 |
가족 | 부모님 언니 김남희, 여동생 김조희, 김윤희, 남동생 |
배우자 손혁찬(2005년 결혼 ~ 현재) | |
학력 | 마포초등학교 (졸업) 동명여자중학교 (졸업) 배성여자상업고등학교 (졸업) 광운대학교 정보과학교육원 (방송연예학 / 학사) |
소속사 | 린브랜딩 |
데뷔 | 1992년 MBC 21기 공채 탤런트 |
종교 | 개신교(장로회)[2] |
SNS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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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방송인, 배우.초창기에는 연기자로서 입지를 다졌지만, 공감토크쇼 놀러와에서 특유의 입담을 자랑하면서 MC로서 인지도가 더 많아진 인물.
2. 연기 활동
1992년 MBC 공채 탤런트 21기[3]로 데뷔했다. 데뷔 초기에는 드라마에 자주 출연했는데, 비록 주연은 아니었을언정 주조연급이었고, 작품 자체는 모두 대박을 친 작품들이었다. 한지붕 세가족, 서울의 달 등 당대에 엄청난 시청률로 화제가 되었던 세 작품에 모두 출연했다. 1998년 드라마 홍길동에서는 히로인임에도 작품 내내 주인공과 악역 사이를 오가다 마지막회에서 페이크 히로인이 됐다. 시트콤인 LA 아리랑에도 출연한 바 있고 1995년 드라마 장희빈에서는 인현왕후 역으로 열연한 바 있다. 그래서 1990년대까지 김원희라고 하면 배우라는 느낌이 훨씬 강했다.사실 지금은 방송인으로 유명하지만 김원희는 정극이나 코미디 연기에도 능하며 특유의 개성적이고 튀는 매력을 가진 배우였다. 당시 비슷한 시기에 방영한 장희빈과 임꺽정을 보면 상이한 두 캐릭터, 유약하지만 나름 강단도 있는 인현왕후와 산에서 자라 거칠고 험하지만 임꺽정 일편단심인 아내 운총을 잘 소화해냈다.[4]
하지만 주연급 배우로는 성장하지 못한 채 연기 경력을 이어갔다. 2000년대 들어서는 영화에 좀 더 자주 출연하기 시작했다. 이때가 MC로서 성공대로를 밟아가던 시기와 맞아 떨어지는데, 영화 운은 없는지 대부분 평이 그럭저럭인 영화에 주로 출연했다. 또한 진지한 정극 연기와는 달리 주로 코믹 연기로 노선을 바꿨다.[5] 대표적으로 가문의 위기. 가문의 위기 등으로 히트하면서 2005년에는 SBS 드라마 사랑은 기적이 필요해에서 원탑 여주인공을 맡기도 했었다. 당시 최진실의 메가히트작 장밋빛 인생과 동시간대에 겹치는 바람에 묻힐 뻔 했으나, 17%대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나름 중박은 날렸다.
이선희의 정규 12집 My Life + Best(2001) 수록곡 중 하나인 '살아가다 보면(박진영 작사, 작곡)'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다.
한편, 김원희는 2000년 출연한 SBS 도둑의 딸의 조기종영 후 MC 활동과 학업(2001년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에 늦깎이 입학)까지 병행하느라 SBS 이 부부가 사는 법, MBC 가을에 만난 남자 등의 드라마에서 섭외가 왔으나 모두 사절했으며 2005년 사랑은 기적이 필요해로 드라마 복귀를 했다. 사랑은 기적이 필요해는 우연성의 남발로 비난을 샀고 극중 차봉심 역으로 나온 김원희가 해당 드라마 뿐 아니라 MC 활동 등으로 탈진 상태를 겪어 결국 기대 이하의 성적에 그쳤으며, 김원희는 그 이후 2008년 OCN 과거를 묻지 마세요에 출연했을 뿐 현재는 진행자 위주로 활동 중이다.
그나마 연기자로서 프랜차이즈라 할 수 있던 가문 시리즈가 자멸하고, 본인의 의지인지 캐스팅이 없는건지 연기 활동이 거의 끊어지다시피 하면서, 연기가 아닌 MC로서 방송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2001년 라디오 정오의 희망곡에서 라디오 DJ를 맡게 되는데, "통통 튀는 말솜씨"가 매력적이라고 했다.[6] 그 뒤로 각종 예능/교양 프로그램 MC를 시작해서, 2011년에는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성 MC 중 한명으로 올라서게 된다.
결국 김원희는 2005년 4월 시작한 MBC 오후의 발견으로 라디오 DJ 활동을 재개했는데 연기활동 일정과 건강상의 문제 탓인지 2007년 봄 하차했다.
2.1. 영화
- 1994년 키스도 못하는 남자
- 1998년 엑스트라 - 강보라 역
- 2002년 울랄라 씨스터즈 - 장미옥 역
- 2003년 동해물과 백두산이
- 2004년 맹부삼천지교[7]
- 2005년 가문의 위기 - 김진경 역
- 2006년 가문의 부활 - 김진경 역
- 2006년 누가 그녀와 잤을까?
- 2007년 사랑방 선수와 어머니 - 김혜주 역
2.2. 드라마/시트콤
- 1991년 KBS2 TV 손자병법
- 1992년 MBC 매혹
- 1994년 MBC 서울의 달 - 이호순 역
- 1994년 SBS 이 여자가 사는 법 - 최윤나 역
- 1995년 SBS 장희빈 - 인현왕후 역
- 1996년 SBS LA 아리랑 - 김원희 역
- 1996년 SBS 임꺽정
- 1996년 SBS 부자유친
- 1997년 SBS OK목장
- 1997년 SBS 꿈의 궁전
- 1997년 SBS 미스 & 미스터
- 1998년 SBS 은실이
- 1998년 SBS 홍길동- 인옥 역
- 1999년 SBS 퀸
- 2001년 SBS 허니! 허니!
- 2005년 SBS 사랑은 기적이 필요해 - 차봉심 역
- 2008년 OCN 과거를 묻지 마세요 - 곽선영 역
3. MC 활동
김원희가 활동하던 당시 우리나라 방송계에서 여자 MC는 희귀했다.[8] 김원희가 마지막으로 MC로 활동했던 자기야 - 백년손님 방영 당시에는 여자 연예인으로 단독 MC를 맡고 있던 사람은 김원희 외에 없다. 거기에다 상기했듯이 김원희는 본인 멘트를 많이 하기보다는 게스트, 패널들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진행 스타일이기 때문에 더더욱 가치를 인정받는다. 한때 대표 여성 MC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됐던 박경림이나 강수정, 현영 등이 급격하게 가라앉은 걸 생각하면 김원희의 활동 내역이 더욱 조명된다.[9]자기야에서 공주병이라거나 거만하다는 오해를 받은 적이 있다. 이는 중학교 3학년 때 학교 운동장에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조기축구경기에서 날아온 공에 맞아 악관절이 생겼다고 한다. 이 때문에 발음이 좋지 못하다. 그 탓인지 라디오 방송 때 말실수('의류 교환권'을 '의류 고환권' '생식 세트'를 '생식기 세트'로 말함)가 잦았다. 전에 축구공에 뺨을 맞은 뒤로 턱이 빠져 다른 쪽까지 안 좋아져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목이 잘 안 돌아갈 정도의 부상을 당한 것이 이유이며 이를 위해 '껌을 씹는' 방법으로 턱을 원활하게 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예전부터 이랬고,# 거기다 허리까지 안 좋다. 예전에도 놀러와에서 자세에 대한 지적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허리가 아파서라고 밝힌 적이 있다.
공감토크쇼 놀러와의 갑작스러운 종영으로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2013년 4월부터 2015년 6월까지 TV조선 살림 9단의 만물상의 진행을 종편 프로그램으로서는 긴 기간인 2년동안 맡았고, 2014년 7월부터 자기야 - 백년손님의 단독 MC로 등극하며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다. 공감토크쇼 놀러와로 MC 개인으로선 상처를 많이 받았지만 동시에 자신이 가장 오래 진행했던 프로그램이기도 하고, 그 프로그램으로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여자 예능상도 받았다. 기쁨과 슬픔을 함께 안겨준 프로그램이다.
2015년 말에는 살림 9단의 만물상이 6개월 만에 개편을 거쳐 돌아왔을 때에도 MC직을 유지했고, SBS 연예대상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저력을 입증했다.
4. 여담
- 데뷔를 뜻하지 않게 했는데, 이제 막 대학교에 입학할 시기에 광고모델을 하던 친구가 '혼자 시험보기 부끄럽다'고 해서 함께 공채 탤런트 시험을 봤다가, 친구는 불합격하고 본인은 합격했다. 심지어 프로필 사진도 그 친구는 스튜디오(사진관)에서 찍었을 때, 본인은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이 도산공원에서 똑딱이 카메라로 찍어준 것이었다고 유퀴즈에서 밝혔다.[10]
-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 여가시간에 성경 공부를 한다. 밤늦은 시간 촬영 됐었던 무한도전 우천시 취소 특집때 유재석과의 전화통화에서 인증된 부분. 해당 영상
- 2005년 12월 22일 라디오 오후의 발견 진행 당시 대학 수시에 합격을 하였지만 어렵사리 모은 등록금을 아버지의 병원비로 쓰게 되면서 등록금을 구하지 못해 대학등록을 포기하려는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지자, 직접 수소문하여 등록금을 대납해준 미담이 알려졌다.
- 앞서 MC 활동에 조그맣게 서술되어 기재되어 있지만 배우자 사진작가 손혁찬과 결혼 14년차가 되었는데 아이가 없었던 이유에 대해 오랫동안 궁금증이 있었다.
- 2019년 2월 5일 ~ 2월 6일 SBS 설날특집 - 요즘가족 조카면 족하다?에서 2019년 2월 5일 방송분 중 조카들과 부탄을 여행을 떠난 일지가 방송되었는데 제작진과 인터뷰에서 "결혼한 지 14년차가 됐다. 아이를 갖지 않는다. 자매가 많은 가정에서 태어났고 조카들도 있다. 아직까지는 아이를 낳아야겠다는 생각은 없다. 하지만 권하는 건 아니다. 그냥 제 삶일 뿐"이라고 자신의 가치관을 밝혔다. 이어서 2019년 2월 6일 방송 마지막 영상에서도 "많은 분들이 물어본다. 제가 아이를 좋아한다. 남편하고 오랫동안 사귀었다. 1남 4녀에 자랐다. 독방을 써본 적도 없다. 사실 아이에 대한 조급함과 간절함이 크지 않았다. 딩크족이라는 생각도 없었다"면서 "나라에 미안하다. 제가 저출산에 한몫을 한 것 같아서"라고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예전 인터뷰에는 남편과 둘이 있는게 좋아서 출산을 안했다고 밝혔으나, 심경의 변화가 온듯 하다. '조카면 족하다' 김원희 "결혼 14년차 아이 없는 이유? 출산 생각 없다"
- 곱단이라는 이름의 올드 잉글리쉬 십독을 키우던 반려인이었다. 가끔 놀러와 촬영장에도 데려오는 등 아이가 없는 김원희 부부에게 있어 친자식 같은 존재였으나, 암투병 끝에 2019년에 9월 10일 14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이 때문인지 이후 일로 만난 사이에 출연했을 때 목화솜을 보고 곱단이가 생각나 울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 2020년 7월 14일 23시 첫 방송된 MBN '모두의 강연, 가치 들어요'에서 남동생이 어릴 적 교통사고로 뇌를 다쳐 30년 넘게 투병중이라고 밝혔다. 부모님께서 점점 나이가 드셔서 동생 돌보는 것을 버거워해 4자매가 함께 남동생을 돌보며 본인은 목욕 담당인데 누나로서 남동생을 씻기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기사 영상
- 2022년 유튜브 채널 김원희TV를 개설했다. 2023년 기준, 무슨 이유에서인지 채널이 사라졌었는데, 2024년 2월 7일 유퀴즈에 출연하여 계정 해킹을 당했었다고 밝혔다. 계정은 돌려받은 상태라고. 해커가 버릇이 될까봐 돈은 안 줬다고. 기사[11]
- 배우 고원희의 본명도 김원희다. 그래서 김원희와 활동명이 겹치는 것을 막기 위해 성만 바꿔서 예명으로 이용하고 있다.
5. 수상 내역
<rowcolor=#FFFFFF> 연도 | 시상식명 | 수상 부문 | 작품 |
1995년 | SBS 스타상[12] | 우수 연기상 | 장희빈 |
1996년 | SBS 연기대상 | 여자 인기상 | 꿈의 궁전 |
1997년 | 제33회 백상예술대상 | TV 부문 여자 인기상 | |
1999년 | SBS 연기대상 | 10대 스타상 | 퀸 |
2001년 | 시트콤 부문 연기상 | 허니허니 | |
2002년 | 납세자의 날 | 대통령 표창 | |
MBC 연기대상 | 라디오 부문 우수상 | 정오의 희망곡 | |
2003년 | 제39회 백상예술대상 | TV 부문 대한생명 인기상 | |
2004년 | MBC 방송연예대상 | 쇼 버라이어티 부문 우수상 | 공감토크쇼 놀러와 |
2005년 | 쇼 버라이어티 부문 최우수상 | ||
2006년 | 저축의 날 기념 | 국무총리 표창 | |
2007년 | 한국자원봉사대상 | 문화예술인 부문 우수상 | |
MBC 방송연예대상 | 인기상 | 공감토크쇼 놀러와 | |
2009년 | 납세자의 날 | 모범표창장 | |
SBS 연예대상 | 최우수 MC상 | 자기야 | |
2010년 | MBC 방송연예대상 | MC 부문 특별상 | 놀러와 |
2011년 | 제47회 백상예술대상 | TV 부문 여자 예능상 | |
푸른미디어상 | 언어상 | ||
MBC 방송연예대상 | PD상 | ||
2014년 | SBS 연예대상 | 베스트 MC상 | 백년손님 - 자기야 |
2015년 | 쇼 토크쇼 부문 최우수상 |
[1] 네이버 프로필 기준[2] #[3] 장동건, 박주미와 동기다.[4] 그런데 김원희에게 인현왕후를 연기했을 시절을 얘기하면 매우 부끄러워한다. 아무래도 과거와 현재의 이미지 사이에 갭 때문인 듯.[5] 물론 1990년대에 출연했던 드라마 중에서도 독특한 역할을 맡기도 했다. 시집살이를 하는데 집안일도 안하고 빈둥대고 시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르는 철없는 며느리로 출연했다.[6] 2001년 당시 SBS 시트콤, KBS 2TV 쇼 파워 비디오와 겹치기 출연을 하고 있었으며 이 때문에 <쇼 파워 비디오>에서는 13회(2001년 7월 29일) 만에 그만뒀고 2003년 가을 개편 때 KBS 2TV 새 프로그램 대한민국 1교시 MC로 발탁되어 '정오의 희망곡' DJ에서 빠졌다.[7] 카메오 출연. 이 영화에서 그 유명한 "내 몸이 타고있어~"를 시전했다.[8] 김원희 외에 메인 혹은 보조 MC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여자 방송인으로 박미선, 이영자, 송은이, 김숙, 박나래, 장도연, 이은지 정도가 있다. 이 외에는 아이돌이나 아나운서들이 단발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9] 급격하게 가라앉은 여MC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결혼과 동시에 활동이 뜸해졌다는 것이다. 특히 출산까지 더해지면 공백이 가중되어 복귀가 어려워지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박경림은 결혼-출산 뒤 활동이 뜸해졌으며, 특히 미국 유학으로 인한 텀을 극복하지 못하였다. 귀국 이후 국내 방송 진행을 하였으나 예전과 같은 지위를 되찾지는 못했다. 강수정 역시 유산 뒤에 방송활동을 중지하였다.[10] 양조위의 데뷔 과정과 동일하다. 똑같이 친구 따라 갔다가 친구는 탈락하고 본인은 합격했다.[11] 단순한 피싱이 아닌 고단수 해커였다고 한다. 계정 돌려주겠다고 요구한 금액은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인 150달러였는데, 김원희는 이를 '소액이라고 줬다가는 아예 계좌자체를 해킹할 것이다'라고 판단해 무시했다고 한다. 그 이후로는 카톡도 모자라 넷플릭스의 계정까지 해킹했었다고. 결과적으로는 앞서 나온대로 돈 주는 것 없이 1년만에 되돌려 받았다고 한다.[12] 예능부문과 드라마부문을 같이 시상한 SBS 스타상이 1996년부터 SBS 연기대상으로 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