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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7 17:07:59

박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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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동양방송 로고_White.svg 공채 탤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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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fff> 동양방송 탤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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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기(1965) 김세윤 · 김희준 · 서우림 · 신귀식 · 전양자
3기(1966) 윤여정 · 지윤성
4기(1967) 김종결 · 박용식 · 서승현
5기(1967) 김창숙 · 노주현 · 안병경
6기(1968) 강태기 · 김시원 · 김하림 · 정영숙
7기(1968) 남성훈 · 봉혜선 · 하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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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기(1969) 반문섭 · 유승봉 · 임병기 · 한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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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기(1977) 신동훈
20기(1978) 경인선 · 원미경 · 이미숙 · 차화연
21기(1979) 최란 · 최화정
22기(1979) 김영기 · 오혜림 · 이기선 · 정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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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망한 탤런트
※ 특채 탤런트는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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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박용식
朴容植 | Park Yong-sik
파일:attachment/sedenpys.jpg
출생 1946년 12월 26일
강원도 춘천부
(現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사망 2013년 8월 2일 (향년 66세)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경희의료원
장지 경기도 광주시 문형동 시안 가족추모공원
본관 춘천 박씨
가족 아버지 박봉원, 어머니 신부자[1]
배우자 김선숙
장남 박세준[2], 장녀 박지윤, 차남 박재현
사위 정형석
학력 경성수송공립국민학교 (졸업)
중동중학교 (졸업)
서울고등학교 (졸업 / 17회)
경희대학교 정경대학 (정치외교학과 / 학사)
신체 171cm, 70kg, B형
종교 개신교 (예장통합)[3]
데뷔 1967년 TBC 공채 탤런트 4기[4]
소속 YTS엔터테인먼트

1. 개요2. 생애
2.1. 인생 초반2.2. 고난의 세월2.3. 재기와 안타까운 사망2.4. 연기 외적인 행보
3. 일화4. 출연작
4.1. TV 드라마/시트콤4.2. 영화4.3. 연극4.4. 라디오 드라마4.5. 코미디4.6. 광고4.7. 그 외
5. 수상경력6. 참고/관련 자료
6.1. 저서6.2. 기타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배우사업가이다.

2. 생애

2.1. 인생 초반

1946년 강원도 춘천에서 아버지 박봉원(1918~1994)과 어머니 신부자(1920~2013#) 사이에서 3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나 어린 시절 봉의초등학교를 4학년까지 다니다가 6.25 전쟁으로 인해 대구로 피난갔고, 당시 군속이던 아버지는 서울 신설동으로 올라와 음반사 '나포리레코드'를 차려 음반제작자로 활동했지만 사업 실패로 인해 양동의 아버지 친구 집의 2칸짜리 방으로 옮겼다.

다른 한편 박용식 자신은 서울수송초등학교 시절 학예회에서 심 봉사 역을 많이 맡는 한편, 시낭송에도 능해 교내에서 인기를 끌었다. 중동중학교 진학 후에는 1년여 간 밴드부에 몸담기도 했고, 서울고등학교 재학 시절 당대 인기배우 김승호를 이상형으로 삼아 연극부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연기와 인연을 맺어 3학년 때는 연극부장까지 할 정도였다. 자신이 연기자가 되겠다며 뜻을 두고자 하자 부모는 이를 반대했으나, 나중에야 허락했다. 다만 당시에는 다른 남매들처럼 공부에 열의를 잘 보이지 못해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지망했지만 낙방했고,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한 후에도[5] 연극 활동을 하다 2학년 때 즈음에 대학 선배인 문오장의 눈에 들어 극단 '자유극장'에 김용건과 같이 픽업되어 <신의 대리인>에 출연했고, 1967년에는 동양방송 4기 탤런트로 뽑혀 데뷔하였다. 활동 초기에는 주로 이웃집 아저씨 같은 조역으로 자주 출연하였고 나름 인지도가 있는 조연급 배우였다. 그러다가 엄청난 시련을 맞이하게 되는데...

2.2. 고난의 세월

1980년전두환쿠데타로 집권하면서 10개월이나 방송에 못 나왔다. 전두환이 직접 못 나오게 한 것은 아니고, 전두환과 매우 닮았기 때문에 방송인들이 알아서 정권에게 기었다.[6] 나중에 1990년 전두환 퇴임 후 박용식이 전두환의 연희동 사저에 초청받아 전두환과 직접 만나서 얘기했고, 전두환 본인은 전혀 몰랐던 부분으로 대신 사과했다. 이순자는 청와대에 투서했으면 당장 해결해줬을 거라면서 안타까워했다. 이때 전두환 부부가 격려하며 사례도 하고, 5공을 배경으로 한 배역에서 자신의 역은 박용식이 다 하라고 전두환이 밀어주며 덕담했다고 한다. 참고로 당시 시사만화 고바우 영감도 대머리인 고바우 영감이 새해 인사를 하는 것이 찍혀서 못 나간 적이 있었고, 코미디언 이주일도 한동한 방송출연을 정지당했으며 김수정 화백 만화도 주인공이 대머리가 되는 장면 때문에 국보위에 의해 연재가 중단되었다. 더구나 이순자라는 이름 석 자도 쓰지 못하도록 하는 바람에 여기저기서 아주 난리가 났다.

정확히는 KBS의 낙하산 사장 이원홍의 과잉 충성이었다. 당시 KBS는 MBC와 함께 치열한 전두환 충성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당시 한국일보 기자 출신으로 주일한국공보관장, 청와대 민원수석비서관을 거쳐 신군부 연줄로 KBS 사장이 된 이원홍은 전두환이 쇼 프로그램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새로 쇼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직접 PD처럼 뛰면서 현장을 지휘하였다. 그가 부임 직후 <민족중흥의 대잔치>라는 쇼가 나가게 되었는데 여기서 바로 박용식이 출연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쇼의 사회가 남철, 남성남 콤비였는데 박 씨를 보자마자 절을 하였다. 그날도 이 사장은 현장에 나와 있었는데 카메라로 보니 박 씨가 전두환과 똑같이 생겨서 깜짝 놀랐다. 이에 이 사장은 카메라를 빼서 멀리 잡으라고 고함을 쳤고, 이 소동으로 인해 전 간부들은 암암리에 박 씨의 TV 출연금지라는 메세지로 인식하였다.

이에 그는 이원홍 사장까지 찾아가며 30분이나 읍소한 결과 1980년 <TV문학관> '신부들' 편에서 크레딧에서 누락된 채 나오기 시작하면서 부분적으로 출연금지가 해제되어 모자나 가발을 써 가며 단역 출연을 했지만 어차피 생계에 도움이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 사극이야 고증 등을 위해 그렇다 쳐도 어린이 프로 같은 데서는 두꺼운 가발을 쓴 높으신 분이나 중절모를 쓴 제비족 내지 사기꾼으로 나오기도 했고, 사극에선 장수나 대신, 양반 같은 조연급 인물 등을 맡기도 했으나 이미지는 둘째치고 대머리를 가리려는 눈물겨운 노력의 여파였다.

5공화국 때 대머리를 보인 건 1984년 <TV문학관> 저승새 및 두 나그네 편에서 스님으로 나올 때이고, 1986년 만다라 편에서는 주인공의 스승으로 타락한 주인공을 혼내는 단역인데 당연히 대머리를 그대로 보였다. 같은 해 <원효대사>에서 자장율사 역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출연 기회를 잃은 그는 10여년 간 방앗간을 차려 기름을 팔아 생계를 근근이 이어나갔다. 이때의 경험으로 절약과 저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뼈저리게 깨달았고, 그 교훈을 잊지 않기 위해서 죽는 그날까지 옛 방앗간 자리를 떠나지 않고 집을 짓고 살았다.
2011년 6월 15일 SBS 좋은 아침에서 방영된 박용식의 출연 금지 시절에 대한 소회[7]

2.3. 재기와 안타까운 사망

파일:attachment/pysjdh3.jpg 파일:attachment/forcepys.jpg
제4공화국에 전두환 역으로 출연했던 박용식의 샤우팅 모습

전두환 퇴임 뒤인 1988년 3월부터 대하드라마 토지의 혜관 스님 및 TV 손자병법의 김 부장 역으로 출연하면서 본격적으로 가발 대신 원래 머리 스타일로 나오게 됐다. 그 외에 형사 시리즈에서 비리로 세금 탈루가 될 것 같자 위장 이혼을 하다 부인을 찔러죽이는 살인 용의자 사장님으로, 《유머 1번지》 코너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에서는 김형곤 회장과 창업동기였으나 세무조사 때 죄를 뒤집어 쓰고 은퇴해 있던 전직 회장으로 뒷모습만 나왔다. 이는 다분히 5공화국 비리 청산 때의 노태우와 전두환을 빗댄 내용이었다. 후술할 TV 손자병법에서도 비슷한 에피소드가 있다. 여기서는 제주도에 유배돼서 찬밥을 먹는 역할을 맡아서 했다.

이렇게 연기활동을 재개 후 최대 인기프로는 1988년경 <TV 손자병법>인데, 거기서 진산기업 자재부장인 김 부장 역을 하면서부터이다. 같은 해 노태우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드라마상 정치적 표현이 자유로워지자, 예전엔 그에게 콤플렉스로 작용했던 점이 오히려 장점으로 바뀌었다. 1991년에 MBC 드라마 <땅>을 시작으로 각종 현대사 관련 사극/시대극 등지에서 전두환 역할로 단골출연[8]하며 그는 인기탤런트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9년에 개봉한 영화 '랏슈(이봉원 감독)'의 포스터가 특정인을 닮았다는 이유로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에 따라 먹칠당하기도 했고,# 1991년 MBC 대하드라마 '땅'에서는 백담사에 간 전두환 역을 했으나 외압 의혹을 받으며 조기 종영되기도 하면서 김영삼 전까지는 여전히 어려움도 존재했다. 이렇듯 외모 덕분에 천국과 지옥을 오간 분. 2007년경 이후 KBS1 <6시 내고향> 등의 리포터로 간간이 출연하는데 전두환 흉내로 존재감을 어필하고 있다. 2010년 <민들레 가족>에 출연한 바 있는 중견 배우 김기섭도 노태우 전 대통령과 상당히 닮아서 같은 드라마의 노태우 역을 맡았다.

MBC 코미디하우스의 코너 3자토론에도 카메오로 나왔는데,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의 "통장에 29만 원밖에 없다." 발언이 터졌기 때문이다. 배칠수에게 "왜 또 명패 집어던지려고? 메롱"이라고 놀리는 장면이나 김학도에게 "김밥집의 명의를 여러 사람의 명의로 해 둬."라고 충고하는 장면이 압권이었다. 2004년 1월 11일자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의 파이널 코너 '비둘기합창단'에서 빡빡이 역을 맡은 정용국의 파트너로 특별출연할 때 랭보 정 역의 정찬우가 빡빡이의 머리를 박으로 때리자 "왜 나만 갖고 그래~"라고 풍자한 바 있다.

2005년 MBC 드라마 제5공화국에 출연할지의 여부가 관심사였는데 아쉽게도 불발이 되었고 그 역할은 이덕화에게 간다.[9] 사실 MBC의 제○공화국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5공은 분명 박용식일 거야"라고 다들 기대(?)하는 분위기가 많았다. 하지만 이덕화로 결정되자 당시 인터넷 반응은 "박용식이 아깝긴 하지만 그래도 이덕화의 민머리가 나온다!"는 것이었다(...) 물론 방영 후에는 이덕화의 출중한 연기력 얘기가 더 많아졌다.[10][11]

연기 외적으로 2002년, 이충열 등 5명과 함께 자동차 도장업체 '세계덴트칼라시스템(SEDEN)' 창업에 참여하여 회장이 되었다. 이 회사는 2004년 '세덴'으로 사명 변경한 후 2009년 '세덴에스디', 2013년 '에스디세덴', 2018년 '디테일링세덴' 등으로 법인이 새로 출범되면서도 중견기업으로 존속 중이다. 2010년대 이후에도 시내 길거리를 지나가다 보면 이 사람의 얼굴이 그려진 간판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강건한 체력을 과시하며 리챠드 가발 광고에 모델로 출연하여 특유의 전두환 톤으로 '나도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를 외쳤다. 외모적 특징 덕분에 잘 알려진 전두환 역할 이외에도 각종 스님높으신 분들 역할을 맡기도 했다. 또한 KBS1 6시 내고향 '팔도 맛만세' 코너 등지에도 리포터로 간간이 출연했다.

2013년 5월부터 촬영차 캄보디아에 1달 체류하다 귀국한 뒤, 급작스레 바이러스성 패혈증이 발병해 서울 경희의료원에서 치료를 받다 8월 2일, 급작스레 숨을 거뒀다. 사망 당일 보건복지부 및 질병관리본부는 그의 신원을 언급하지 않은 채 유비저균 감염에 의한 사망이라고 발표했는데, 이는 3년 전 유비저균이 제4군 법정감염병으로 지정된 이래 보고된 첫 사망 사례였다. 해당 그가 등장한 영화 시선은 바로 샘물교회 선교단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을 다룬 영화였다. 그리고 이 영화를 영화제에서 직접 관람한 이에 의하면 엔딩스크롤에 앞서서 박용식의 순교를 기린다는 자막이 올라갔다고 한다.[12] 이후에는 논란이 있어서인지 박용식의 명복을 빈다는 자막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또한 영화 노브레싱에도 수영협회장 역할로 출연하였으나, 안타깝게도 촬영을 다 마치지 못하였다. #

그리고 2013년에 방영하게 된 MBC 드라마 스캔들에서는 외모가 전두환을 연상케 하는 권력자 역할로 깜짝출연을 한 적도 있었다. 다행히 특별출연인 데다가 단역으로 나왔고 사망하기 직전에 나왔던 편이라 나머지 드라마 촬영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사실상 이 드라마가 고인이 출연하게 된 유작이 되었다.[13] 최근 드라마까지 출연했던 점을 보면 갑작스런 사망이 믿겨지지 않았다거나 충격이 컸던 편이었다. 그의 어머니보다도 3개월 일찍 사망했다.
2023년 8월 2일부로 10주기를 맞이했다.

2.4. 연기 외적인 행보

파일:external/www.newshankuk.com/photo(1).jpg

2002년부터 세계덴트칼라시스템(현 디테일링세덴)의 회장이 되어 연예인과 기업인을 병행하고 있었다.

주로 와이퍼 등 자동차 보조용품 판매나 자동차 도장 및 외형복원(판금)을 해주는 회사인데 사업이 번창해서 대리운전까지 사업의 영역을 확장했다.
안녕하십니까? SEDEN 회장 탤런트 박용식입니다. 지난 35년간 공인 신분의 탤런트 생활을 하며 얻은 연륜과 노하우를 회사 경영에 접목시켜 브라운관이 아닌 사업에서도 공인의 신분에 걸맞은 경영을 펼쳐 보이겠습니다.

다만 저 회사를 박용식이 직접 창업한 회사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기술개발이 이루어진 후 법인 설립과 더불어 박용식 씨가 회장이 된 점 등을 볼 때 일종의 얼굴마담 역할이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 실제 창업주는 이충열 현 회장이다.[14] #

참고로 현재 시점에서 세덴의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원로 코미디언 엄용수의 얼굴이 보이나 그 또한 회장이 아닌 명예회장 직책으로 되어 있다.

그 외에 2008년에는 의정부지방법원 가사조정위원으로도 선임된 바 있다.

3. 일화

4. 출연작

4.1. TV 드라마/시트콤

4.2. 영화

4.3. 연극

4.4. 라디오 드라마

4.5. 코미디

4.6. 광고

4.7. 그 외

5. 수상경력

6. 참고/관련 자료

6.1. 저서

6.2. 기타



[1] 그가 죽고 3개월 뒤 세상을 떠났다.[2] 아버지가 주인공으로 출연한 iTV 월화(10시 50분) 시트콤 <공회장네 식구들>에서 공회장(박용식 분)의 둘째아들 역으로 나왔다.[3] 모태신앙이며, 살아생전에 소망교회에 출석하였다.[4] 배우 김종결, 서승현과는 데뷔 동기다.[5] 다만 박용식의 모교인 서울고는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 시행 전 서울 상위 5대 공립고교(경기고, 서울고, 경복고, 용산고, 서울사대부고/경동고) 중 2인자였고, 경희대는 후기대학 시절 문재인 前 대통령 같이 간발의 차이로 SKY(대학교)에 낙방한 수험생들이 주로 진학하는 후기대학 중 상위 1% 대학이었다. 형제들이 공신 레벨이어서 그렇지, 박용식 본인도 대학생이 귀했던 1960년대 당시 기준으로는 매우 수재라 할 수 있다.[6] 전두환과 박용식이 얼마나 닮았나 하면 10.26 사건의 수사발표로 전두환이 처음 대중매체에 등장했을 때 사람들이 전부 박용식이랑 똑같이 생긴 사람이라고 할 정도였다. 다만 박용식은 두상이 둥글고 눈매가 웃는 상인 반면 전두환은 눈매가 험악하진 않아도 좀 날카로운데다가 얼굴이 각지기 때문에 은근히 인상이 다르다. 오히려 이덕화 쪽이 눈매와 같은 인상이 좀 더 전두환과 비슷한 편인데, 미묘한 인상 차이 때문에 박용식은 전두환을 연기할 때 안경을 벗고 연기한 게 더 많고, 이덕화는 안경을 쓰고 연기한 게 더 많다. 당시는 12.12 군사반란 이전으로 전두환이 권력을 잡기 전이라 박용식과 희한할 정도로 닮은 사람이 뉴스에 나온다고 사람들이 재미있어 했다. 다만 박용식도 조연급 배우로 주연급 배우들처럼 이름이 알려지진 않아서 그냥 그 대머리 배우랑 똑같이 생긴 군인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 박용식 자신은 1995년에 후술할 일간스포츠 <스타스토리>에서 자신은 아버지를 닮았고, 오히려 기질상 전두환을 닮은 이는 자신의 형이라고 밝혔다. 게다가 박용식은 대학 4학년 때부터 점차 머리숱이 적어졌고, 1969년경부터 탈모 증세가 점차 심해졌다.[7] 영상 후반부에는 박용식의 딸이자 KBS 성우인 박지윤도 나온다.[8] 훗날 이덕화의 전두환이 좋게 봐서 젊을 때 전두환을 연상케 한다는 평이 있는데, 박용식의 전두환은 딱 방영 시점의 전두환 본인을 데려온 이미지여서 아주 절묘했다.[9] 삼청교육대 편에서 못을 먹고 자살한 입소생 역으로 출연했다고 알려졌으나 그 분은 박종설이라는 다른 배우이다. 물론 이분도 전두환과는 많이 닮았다. 다만 보통은 약자로 나와서 당하는 쪽 역을 많이 맡는 배우로 요즘도 활동중이다.[10] 그래도 박용식의 훌륭한 싱크로율에 비해 싱크로율이 떨어진다며 항의하는 시청자들이 있었다고. 여담으로 전두환 본인은 박용식과 이덕화 두 배우의 연기 모두 만족했으며 자기보다 멋있게 나왔다고 좋아했다고 한다.[11] 사실 저 당시에는 특수분장 등의 기술력이 떨어져서 실존인물을 다루는 작품에서는 최대한 해당 인물과 유사하게 생긴 배우를 섭외하는게 상식이였지만 현재는 특수분장 기술과 그래픽 등의 발달로 인해 분장만으로도 실존인물과의 싱크로율을 높일 수 있게 되었다. 가령 최근에 개봉한 서울의 봄의 경우에는 전두환과 비슷하게 생기지도 않았고 대머리도 아닌 황정민이 특수분장만으로도 전두환과 거의 유사한 수준의 싱크로율을 선보인 바 있으며 노태우 역의 박해준은 아예 빼다박은 수준으로 실존인물을 재현해냈다.[12] 전술했지만, 박용식은 개신교였고, 이 때문에 감독에게서 제의를 받아 출연한 것이라고 한다.[13] 드라마 분량이 고인이 사망하기 직전인 2013년 7월에 촬영되어 방영했던 분량이었다.[14] 사실 박용식 전 회장이 얼굴마담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이충열 사장 측과 더불어 둘 다 좋은 결과로 이어졌는데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던 박용식 회장이 재임하던 10년 동안 회사의 인지도가 상승했기 때문. 게다가 박용식 개인도 전두환 닮은 배우라는 이미지에서 탈피하여 성공한 기업인 이미지까지 같이 얻었다.[15] 비슷한 경우로 역시 독실한 개신교인이고, 투병 후 목사도 지낸 적이 있는 임동진가톨릭 신자인 김대중 역을 종종 맡았다. 어느 극에서는 가톨릭 성호경을 시연하기도 했고, 가톨릭 계열 방송이나 연극에도 자주 캐스팅된 적이 있다. 그나마 임동진의 개신교 종파는 루터교회라서 가톨릭과 겹치는 부분이 상당히 많은 편이긴 하다. 그리고 임동진은 왕과 비에서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세조를 연기하기도 했다. 실제 배우인 본인과 종교가 다른 인물도 위화감 없이 잘 소화할 만큼 임동진의 연기력과 프로 의식이 상당히 뛰어났던 셈이다.[16] 제작 자체는 1989년에 했다.[17] 제4공화국 방영 2년 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