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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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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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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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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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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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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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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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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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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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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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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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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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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지
]]
1987
[[이화(드라마)|파일:이화 로고(흑).png파일:이화 로고.png
이화
]]
1987~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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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
1989~1990
[[역사는 흐른다|파일:역사는 흐른다 로고(흑).png파일:역사는 흐른다 로고.png
역사는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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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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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의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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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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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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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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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꽃은

시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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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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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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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1TV 대하드라마
삼국기 (1992~1993)
三國記 / Samgukgi - The Chronicles of the Three Kingdoms
파일:attachment/삼국기/Example.jpg
파일:attachment/three_kingdoms_drinking.jpg
<colbgcolor=#fd2811><colcolor=white> 시청 등급 파일:15세 이상 시청가 아이콘.svg 15세 이상 시청가
방송 시간 일요일 19:50 → 토요일 21:40
방송 기간 1992년 4월 12일 ~ 1993년 4월 17일
방송 횟수 50부작
장르 대하사극
제작 KBS 자체제작
채널 KBS 1TV


<colbgcolor=#fd2811><colcolor=white> 기획 최상식
프로듀서 윤용훈
연출 안영동
조연출 전기상
극본 유현종
이상준(윤색)
기술감독 강부형
조명감독 임길신
카메라감독 이형래
음악효과 서근식
고증위원 김기웅(고고학), 김정기(건축), 이두현(민속)
이강칠(무기), 유희경(의상)
미술감독 이석우(KBS아트비전)
편집 한만웅, 김충렬
수벽치기지도 육태안
무술감독 김백수
원작 이남교 저,
소설 《고백신조》
출연 서인석, 유동근, 송영창, 길용우, 김서라, 이덕희, 김갑수, 김주영, 김진태
해설 김종성
링크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제작 역사3. 고증 및 평가4. 등장인물5. OST6. 여담

[clearfix]

1. 개요

1992년부터 1993년까지 방영한 13번째 KBS 대하드라마.

극본은 유현종, 프로듀서는 윤용훈, 연출은 안영동 PD, 해설은 성우 김종성이었다. 타이틀 글씨는 서예가 석전 황욱(1898~1993)이 썼다.

삼국시대 말기를 그리고 있으며, 한국 방송에서 <선덕여왕(1967, KBS)>, <원효대사(1967, TBC)>, <국난의 영웅들: 바다의 방패 장보고(1970, KBS)>, <삼국통일(1974, KBS)>, <원효대사(1986, KBS1)>, <이차돈(1987, KBS1)> 이후 몇 안 되던 삼국시대를 다룬 작품. 다만 삼국의 관계와 정사를 본격적으로 미디어에 비춘 것은 이 드라마가 최초라고 봐도 무방하다. 영화에서는 삼국시대를 종종 다루기는 하였으나, 드라마에서는 사료의 부족함으로 조선시대 이후의 사극만을 다루었다. 대표적인 작품이 문화방송에서 방영한 조선왕조 500년 시리즈. 삼국시대 말기의 굵직한 사건들을 주로 다루었다. 황산벌 전투, 안시성 전투 등이 그 예이며, 난세였던 삼국시대 말기의 전투들을 당시로서는 꽤 거대한 스케일로 제작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아도 상당히 화려한 캐스팅으로 야심차게 준비했던 드라마이다.

2020년 7월 26일부터 유튜브 공식채널 'KBS 드라마 클래식'에서 공개 중인데, 1화 빼고 다 유료이다.

2. 제작 역사

원작은 이남교라는 작가가 1989년에 지은 《고백신조》(高百新鳥)'[1]라는 작품으로서 원작 자체는 대단히 허접하지만 조선일보에 역사 소설 《사설 정감록》을 연재하던 유현종이 대본을 쓰는 과정에서 조금 더 각색하여 갈고 닦아서 제법 탄탄하게 만들었다. 원작에 '아스카'가 들어있듯, 비단 삼국뿐만 아니라 일본의 야마토 정권[2]도 비중있게 다루었는데, 한국 방송 사상 소가씨와 후지와라씨의 내란이 처음 등장하는 등 야마토에도 많은 비중을 두었다. 왜국은 백제의 분국 또는 후국 비슷한 위치였으며, 후지와라씨의 선조가 백제인이라는 설정도 넣는 등 식민사관을 타파한 내용을 파격적으로 넣었으나, 흥행면에서 실패하는 바람에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작품을 방영하기 전에 드라마를 소개하는 특집 프로그램을 편성하는 등, KBS에서도 상당히 많은 공을 들인 작품이다[3].

3. 고증 및 평가

배우들의 출중한 연기, 당시로서는 꽤 거대했던 스케일[4]과 더불어 당시 기준으로는 상당히 리얼한 전쟁신이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시대인 만큼, 사료가 부족했던 까닭에 전반적인 흐름은 《삼국사기》 중심으로 가되, 각 지방에 전해저 내려오는 야사[5]나 《삼국유사》, 그 외에 《일본서기》 등의 기록 등을 가져와 스토리를 짰다. 따라서 사서의 내용을 충실히 반영해야 하는 정통사극으로서는 완성도도 떨어지고 한계도 있다.

더군다나 당시 대선이 맞물려 있기 때문에 신라의 통일을 다루는 게 특정 정치세력대권을 정당화한다는 여론으로 인해 극의 흐름과 관계없이 3국을 공평하게 시간배분하는 바람에 전반적인 이야기의 흐름이 끊기고 지루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더군다나 주1회 편성에 시간대도 주말연속극 시간인 오후 8시에 편성되었다.[6] 당시 MBC에서는 역대 시청률 순위권에 들어가는 드라마인 <사랑이 뭐길래>, 후속작인 <아들과 딸> 등, 엄청난 주말연속극과 붙는 시간대였다. 따라서 시청률 역시 크게 밀려서 10% 초반 정도로 시청률이 저조했다.[7] 나중에 현재 대하드라마 시간대인 9시 뉴스 이후로 옮기기는 했지만, 역시 역부족. 다만, 일요일 오전에 방송하던 재방송은 의외로 높은 시청률을 보여주기도 했기에 여러번 편성시간 변경을 검토해봤지만 그러면 체면이 구겨진다는 이유때문에 무산되었다는 후문.

그러나 이후에 계속 출현한 고구려 관련 사극에서 고증에 대한 문제가 지적되는데 반해, 고증은 이 드라마가 가장 정확했다는 평가가 있다. 사학과 교수들이 대거 고증에 참여했기 때문에 갑옷이나 복식 등이 상당히 고증에 맞게 제작되었다. 이후 나오던 고구려 관련 사극에서 고구려 장수들 갑옷이 무슨 판타지 세계 갑옷인 것과는 대조적이었고, 심지어 최근에 역덕들이 지적하는 "날개형 투구"도 이미 <삼국기>에서 완성되어 있었다. 이런 점에서는 최근 사극보다도 역사에 가깝게 고증되어 있었던 것이고, 이후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다큐에는 이 장면들이 두고두고 사용되었다. 또한 이때 제작된 소품들은 거의 10년 뒤의 작품인 <태조 왕건>에서도 사용되었다. 이런 소품을 제작하는 것은 엄청난 예산이 들어가는 일인지라 이후 KBS의 삼국영웅전 시리즈희대의 망작 3부작에서 새로운 갑옷이 제작되기 전까지 KBS는 이때의 것들로 20년을 버텼다. 아직도 이때 제작한 소품들은 드라마에 간간이 등장한다.

안시성 전투를 비롯한 고당전쟁의 와중에는 당시 당나라가 실제로 사용했던 무기들을 다수 등장시키기도 했다. 당군이 충차나 노포(자막으로는 쇠뇌로 표시), 운제 등의 장비들을 실제로 사용하여 공성전을 진행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고, 극 후반에는 고구려군에서 이것들을 노획하여 사용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또한 당군의 복식 역시 제작했으나, 당나라 복식의 재현도는 많이 떨어진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이 있는데, 삼국과 당군, 왜군의 무기를 다르게 디자인한 것. 한국 사극의 고질적 문제인 삼지창은 거의 등장하지 않고, 실제 유물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종류의 창이나 칼, 환두대도 등의 무기류를 제작하여 사용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가령, 고구려는 할버드와 닮은 가지창, 백제는 이지창, 신라는 실제 유물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창들을 사용했고, 왜군은 나기나타와 흡사한 창을, 당군은 언월도(응?)를 주로 사용했다. 방패 역시 각 나라마다 다른 모양을 사용했다. 이렇게 세세한 부분에서도 차이를 두었기 때문에 방진을 짜거나 공성전을 진행하는 장면 등에서는 제법 볼거리가 풍성했다.

또 제대로 된 대규모의 기병대가 출현한 사극이기도 했고, 오늘날처럼 난전하면서 주인공들의 일당백의 싸움이 아니라[8] 방진을 제대로 구성하고 전투를 벌이거나, 갑옷을 입고 있는 만큼 칼 한 번 맞았다고 그대로 죽지 않고 일정시간 버티는 모습이 등장한 것 등은 한국 사극에 긍정적인 요소를 줄만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후대 사극들은 이러한 사실적인 고증이나 장점들을 피드백하지 못하였다. 다만 많은 이들이 찬양하는 방진 전투는 황산벌 전투 등 극히 일부 장면에만 등장할 뿐이다. 그 외 대부분의 전투는 전형적인 한국 사극식 난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4. 등장인물

4.1. 고구려

4.2. 당나라

4.3. 백제

4.4. 신라

4.5. 발해

4.6. 대화왜국(大和倭國)

극중에서는 당시 야마토 정권 일본을 이렇게 호칭한다.

5. OST

드라마 오프닝은 삼국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편집으로 고증의 끝을 보여주었다. 안악 3호분에 등장하는 사나이의 모습을 그대로 묘사하여 영류왕이 백라관을 쓰고 마차에 타고 길을 나서는 모습으로 재연하고, 무용총 벽화에 나오는 모습대로 의상을 갖춰입고 춤을 추게 하며, 개마무사의 전투도가 그려진 벽화가 페이드아웃 되며 고구려의 중장기병이 행군하는 장면이 나오고, 고구려군의 군기에 청룡도의 청룡이 그려진 것 등 21세기에 보아도 상당히 준수한 수준의 오프닝이다.


오프닝에 등장하는 음악은 후에 중앙대학교 총장을 지내기도 했던 박범훈 교수가 작곡했다. 최근 보기 드문 국악풍의 곡으로, 1993년 킹레코드(현 신나라뮤직)가 발매한 "남사당의 하늘"이라는 음반에 수록되어 있다. 극중에 등장한 OST가 여섯 곡 정도 들어가 있다. 지금 들어도 제법 멋진 곡이다. 오프닝곡 중간에 상당히 독특한 악기의 소리가 등장한다. 이 악기는 중국 윈난성의 소수민족이 쓰는 파오(巴烏, bāwū)라는 악기의 소리이다.

6. 여담


[1] 고구려. 백제. 신라의 앞글자와 아스카의 한자 독음인 비조(飛鳥)의 조(鳥)자를 딴 이름으로, 이름에서 알 수 있듯 3국과 일본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2] 정확하게는 아스카 시대로, 드라마상에서는 계속 대화왜국(大和倭國)이라고 표기했다.[3] 의상쇼와 전통무용 재현, 무술쇼 등을 보여주고 배우들과 역사학자들을 초빙하는 식의 특집 쇼가 편성되었다.[4] <삼국기> 제작에 들인 돈이 EBS 총 제작예산보다 많았다. 그만큼 KBS에서 신경을 써주었다는거다.(SBS 개국의 영향이 있긴 하지만...)[5] 대표적인 것이 전북 익산(당시 지명으로는 금마저) 지방에 전해내려오는 태종 무열왕 암살 사건이다. 자세한 내용은 하단 참고.[6] 1993년 4월 3일부터 마지막회까지는 일요일 밤 9시 40분에 방영됐다.[7] 이때는 지상파 채널이라고 해봐야 수도권 5개에 인기드라마는 시청률 4~50%는 쉽게 나오던 시절이었다.[8] 물론, 장수들이 무쌍을 찍는 장면은 많이 등장했다. 단지 지금처럼 주인공이 적진에 달려들어 휘젓는 식은 아니었을 뿐이다.[9] 무인시대두경승, 대조영에서는 대중상을, 대왕의꿈에서 알천을 연기했다.[10] KBS 유튜브 스트리밍에서 '메카 궁예'라고 부르던 외눈의 조원정의 부하장수.[11] 명성황후에서는 대원군의 심복인 장순규를 연기했다.[12] 뒤에 태조 왕건에서 환선길, 제국의 아침에서 염상을 맡았다.[13] 태조 왕건에서는 초기 왕건의 책사 태평을, 대조영에서는 고구려의 매국노인 부기원, 대왕의꿈에서는 진평왕을 연기했다.[14] 대조영에서는 매국노 신성을 연기했다.[15] 1977년생 김현주와는 동명이인이다. 여명의 눈동자에서 박상원(극중 이름 : 장하림)의 첫 일본인 애인인 가츠코 역할을 했었던 배우이다.[16] 어떤 드라마에서 한 공산당 간부를 열연했던 동명이인 배우 김영인과는 다른 배우이다.[17] 태조 왕건에서는 후백제의 신료인 신덕을, 대조영에서는 당나라 장수 양소위를 연기했다.[18] 대조영에서는 대중상의 의동생인 고돌발을 연기했다.[19] 공화국 시리즈에서 이한림 장군을 맡았던 배우다.[20] 무왕의 부인은 미륵사 발굴에서 발견된 사리봉영기(舍利奉迎記)에 따르면, 좌평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딸인 사택(沙宅)씨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리봉영기 자체가 2009년이 돼서야 발굴 되었던 터라 드라마가 제작중이던 1992년 경에는 그러한 역사적 사실을 반영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삼국유사에 나오는 서동 설화에 따라 선화왕비가 정비인 것으로 그려졌다.[21] 대조영에서는 요동성 성주인 고사계를 연기했다.[22] 명성황후에서는 여흥부대부인을 연기했다. 거기서도 유동근의 부인역을 맡은 셈.[23] 2021년 별세.[24] 뒤에 태조 왕건에서 염상 역을 맡았다.[25] 명성황후에서는 충신 최익현을 연기했고, 야인시대에서는 백의사의 수장인 염동진(야인시대) 역을 했으며, 태조 왕건에서는 도선 대사 역을 했다.[26] 나카토미노 가마타리의 아버지 쇼토쿠칸(小德冠)인 나카토미노 미카코(中臣 御食子)이라는 아스카 시대의 실존인물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으로 보인다.[27] 사극 한명회에서 강희맹 역을 하고, 제국의 아침에서는 호족 임희 역을 맡는다.[28] 2022년 9월 별세했다.[29] 야인시대에서 홍영철 역으로 나왔다.[30]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복길엄마"로 등장한 배우.[31] 태조왕건에서 공직역[32] 태조왕건에서 유장자(본명은 유천궁, 왕건의 첫부인 유씨의 아버지)역[33]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정팔 역을 했던 그 정형기와는 동명이인이다.[34] 명성황후에서는 흥인군의 처를 연기했다.[35] 뒤에 태조 왕건에서 김락, 대조영에서는 소정방 역을 맡았다.[36] 배우 허준호의 형이다.[37] 대조영에서는 당나라의 이적을 연기했다.[38] 뒤에 태조 왕건에서 능애 역을 맡았다.[39] 본래 이 전투는 사서에는 선덕여왕의 예지력을 띄우는 사건으로 나오는데 이 작품에는 김유신이 차웅을 백제에 잠입시켜 정보를 빼내는데 성공해 승전의 바탕을 만드는걸로 나온다. 이 작품은 선덕여왕의 지기삼사를 약화시켜 선덕여왕이 자기 죽는 날짜를 알아내는 것도 삭제해 선덕여왕이 죽기 직전에서야 도리천에 묻어달라고 유언을 남긴다.[40] 뒤에 태조 왕건에서 용검 역을 맡았다. 삼국기에 이어 태조 왕건에서도 서인석과 부자지간으로 등장하는 셈이다.[41] 모델 겸 배우 이광수와 동명이인이고, 정도전에서 이방과 역을 맡았다.[42] 김유신의 서자. 드라마 상에서는 천관녀와의 자식이라는 설로 그려지고 있다.[43] 개그맨 김대희와는 동명이인이다[44] 야인시대에서 이기붕의 수행비서인 한백수 역을 맡았던 배우다.[45] 야인시대의 박용직역할로 유명한 배우다.[46] 사이메이 덴노의 휘는 타카라(寶)이고, 한국어 독음으로 보(寶)가 된다. 보라는 이름의 황녀라는 의미에서 보황녀라고 지은듯 하다.[47] 불멸의 이순신에서 녹도 만호 정운 역할을 했고, 야인시대에서는 이화룡 역을 했다.[48] 사에키노 무라지코마로의 이름을 한문으로 풀어쓰면, 佐伯連子麻呂으로, 한국식 독음으로 읽으면 좌백연자마려가 된다.[49] 명성황후에서는 원세개를 연기했고, 용의 눈물에서는 황희 역을 했다.[50] 대조영에서는 장손무기를 연기했고, 태조 왕건에서는 범교, 용의 눈물에선 조박을 연기했다.[51] 아들 안홍진은 대왕의 꿈에서 소가노 이루카의 정적인 덴지 덴노 역으로 나왔다.[52] 용의 눈물에서 공양왕을 연기했다.[53] 극중 민존자라는 이름은 위의 보황녀와 마찬가지로 민이라는 이름의 존귀한 스님이라는 의미에서 쓰인듯 하다.[54] 승민(僧旻)은 실존인물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일본서기에 기록된 인물이라고 한다. 여기서 승민이라는 호칭은 승려 민의 경칭(敬稱)인 듯 하다. 극중에서는 후지와라노 가마타리(강달), 사에키노 무라지코마로(좌백)와 함께 건너갔다는 설정이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632년에 당의 사신인 고표인을 따라 고구려의 승려 영운과 함께 건너간 것으로 되어 있다. 다이카 개신 이후에 일본 최초의 국박사가 되고, 관제를 정비한다는 업적을 남겼다는 설정은 극중 설정이 동일하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편 일본에서는 이 인물을 旻(みん)이라고 하며, 한국어와 똑같이 '민'이라고 발음한다. 참고:일본어 위키백과 '旻(みん)' 항목[55] 이후에 스스로 밝힌 것에 의하면 남의 돈까지 빌려서 일본 파칭코 사업에 투자했다가 사기당해서 일본과 홍콩 등지를 전전한 것이었다. 이 때 오히려 조경환이 사기를 쳤다거나, 외국으로 도피했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돌았다. 4개월 만에 돈 문제를 해결하고 돌아왔지만 드라마는 이미 종영한 뒤였다.[56] 의자왕비 역 및 김유신이 보낸 여자 역을 모두 KBS판 토지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최수지가 맡았음. 즉 1인2역.[57] 신채호조선상고사에 이름이 나오는데 여기서 따온 듯 하다. 다만 조선상고사에는 무당으로 등장하며 의자왕에게 '충(忠)'자 돌림을 쓰는 자가 나라를 망칠 것이라는 예언을 해서진령군? 당시 백제의 장군으로 있던 윤충과 성충이 그로 인해 죽음을 맞게 된다.[58] 이 장면은 《연개소문》의 그야말로 꽃들이 떨어지고 있구나와는 달리 직접 여인들이 뛰어내리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나중에 꽃잎이 흩날리며 떨어지는 모습으로 묘사하여 역사 이야기를 가슴아프지만 아름답게 편집했다.[59] 1923~1996. 경희대학교 문화과 교수와 초대 한국고고학협회 회장, 문화재관리국 전문위원 등을 지냄.[60] 1930~2015. 호는 창산(昌山)으로 1959년 경주 감은사지 발굴 조사에 참여했으며, 초대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을 지냄.[61] 1924~2013.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 명예교수.[62] 1926~2007. 초대 육군박물관장 및 KBS TV의상분야 고증자문위원 역임.[63] 1921~2021. '한국 전통복식 1호 박사'로서 <한국복식사연구> 등을 냈고, <태조 왕건> 등지의 사극 복식고증에도 참여했다.[64] 태조 왕건에서 왕건-유금필-신숭겸-박술희의 포지션[65] 유튜브에 올라온 동영상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바로 위의 동영상인데, 계백이 황산벌에서 백제 군사들에게 연설하는 장면에 "싸울아비"라는 표현이 등장한다.[66] 일본서기의 기록에서 백제부흥군이 전멸할 당시에 "조상의 무덤이 있는 곳을 찾을 수 없게 되었구나"라 말한 사람들은 왜인들이 아니라, 배에 올라 왜로 망명할 준비를 하던 백제인들이었다(…).[67] 자세한 내용은 태종 무열왕 항목 참조.[68] 2011년 방영된 MBC 사극인 <계백>에선 이러한 연구 성과가 반영되어, 무왕의 부인으로 오연수가 분한 사택비가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