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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쿠 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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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35대 천황
고교쿠 천황
皇極天皇
<colbgcolor=#bd0029><colcolor=#dca600>
일본 제37대 천황
사이메이 천황
齊明天皇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00px-Empress_Kogyoku-Saimei.jpg
출생 594년
사망 661년 8월 24일 (향년 67세)
후쿠오카현 조창귤광정궁
(現 일본 후쿠오카현 아사쿠라시)
능묘 오치노오카노에릉([ruby(越智崗上陵, ruby=월지강산릉)])
재위기간 황후
630년 3월 1일 ~ 642년 2월 19일
제35대 천황
642년 2월 19일 ~ 645년 7월 12일
황조모존 (상황)
645년 7월 12일 ~ 655년 2월 14일
제37대 천황
655년 2월 14일 ~ 661년 8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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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메이 덴노 (재혼)
자녀 3남 1녀
관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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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카노이타부키노미야([ruby(飛鳥板蓋宮, ruby=비조판개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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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호 스메미오야노미코토([ruby(皇祖母尊, ruby=황조모존)])
한풍 시호 제35대: 고교쿠 덴노([ruby(皇極天皇, ruby=황극천황)])
제37대: 사이메이 덴노([ruby(齊明天皇, ruby=제명천황)])
화풍 시호 천풍재중일족희천황
(天豊財重日足姬天皇)[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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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행적3. 백제 부흥군을 돕다가 죽다4. 백제부흥운동 원조의 특징5. 가계6. 기타

[clearfix]

1. 개요

일본의 제35대, 제37대 천황. 두 번째이자 세 번째 여성 천황이다.

제30대 비다쓰 덴노의 증손녀이자 전임 조메이 덴노의 황후였다. 천황을 2번 재위했다. 그래서 동일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시호가 다른 데 첫 번째 재위기간에는 고교쿠 덴노, 두 번째 재위기간에는 사이메이 덴노이다.

2. 행적

남편이었던 조메이 덴노가 붕어한 이후, 고교쿠 덴노(皇極 天皇)로 즉위했다. 고교쿠 덴노의 치세때는 권신 소가노 이루카를 중심으로 한 소가씨가 권력을 잡고 있었는데 고교쿠 덴노의 아들인 나카노오에 황자나카토미노 카마타리 등의 반소가파와 힘을 합쳐 이루카를 비롯한 소가씨를 멸문시켜 버렸다(을사의 변). 고교쿠 덴노는 이에 화가 나 퇴위해버렸고 '스메미오야노미코토'(皇祖母尊, 황조모존)라는 존호를 받으며 상황으로 있게 되었다. 황위는 곧바로 나카노오에 황자에게 돌아갔지만 카마타리의 조언에 따라 나카노오에 황자는 황위를 고교쿠 덴노의 동생인 카루 황자(經 皇子)에게 양위했고, 카루 황자는 고토쿠 덴노로 즉위한 후, 나카노오에 황자를 황태자로 삼았다. 고토쿠 사후에 고교쿠 상황이 제37대 사이메이 덴노(斉明 天皇)로 다시 즉위하게 되었다. 그래서 스이코 덴노에 이은 2번째이자 3번째 여성 천황이 되었다.

나카노오에 황자가 실은 그녀의 아들이 아니라 먼 친척이거나 다른 세력이 아니었는냐는 추측이 있는데, 고토쿠 덴노 시절 나카노오에 황자가 그렇게 권력을 휘둘렀음에도 불구하고, 고토쿠 덴노 사후에 자신이 황위에 오르지 않고 굳이 고교쿠 상황을 '사이메이 덴노'로 다시 즉위시켜 얼굴마담으로 내세운 후 실권을 휘두르고, 사이메이 덴노가 죽은 이후에야 즉위했기 때문이다.

3. 백제 부흥군을 돕다가 죽다

타카라가 사이메이 덴노로 재즉위한 시절, 68살이라는 고령의 나이에, 김유신을 필두로 한 나당연합군백제와 맞붙어 황산벌 전투에서 백제군이 전멸하고 더군다나 그렇게 믿었던 계백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백제가 군사를 보내달라고 요청해왔다. 그들이 우리에게까지 지원 요청을 한 것을 보면 나라가 망하여 의지할 곳도 호소할 곳도 없다는 뜻이다. 그들의 위태로운 상황을 돕고, 백제의 끊어진 왕통을 잇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거리에서 산속에서 창을 베개 삼아 싸우며 쓸개를 먹는 것과 같은 참담한 상황이니 그들의 이 절박한 뜻을 저버릴 수는 없는 일. 여러 장군에게 명하노니, 백제를 위해 출병하라. 구름처럼 번개처럼 백제 땅으로 진격해 그 원수를 쳐서 백제의 긴박한 고통을 덜어주리라.

백제는 왜국(야마토 왕권)에 조력을 요청했고, 사이메이 덴노는 이에 응했다. 《일본서기》는 백강구 전투 파병의 동기를 '복신의 뜻에 따라'라고 적고 있는데, 귀실복신은 백제 부흥군의 총대장이었다. 《구당서》에는 '부여풍지중'...'당시 일본군은 부여풍의 무리다' 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당시 야마토 왕권에 머물러 있었던 의자왕의 아들 부여풍이 백제로 돌아가 백제부흥운동의 수장으로 옹립되도록 도와주고 병력 파병을 약속했다.

661년 2월 사이메이 덴노는 현재의 나라현에 해당하는 혼슈의 야마토국(大和国)의 수도에서 육·수군을 이끌고 출발하여 세토내해를 가로질러 현재의 에히메현에 해당하는 시코쿠의 이요국(伊予国) 니키타진(熟田津)의 임시 행궁인 이와유노카리미야(石湯行宮)에 정박했다가 5월에 현재의 후쿠오카현에 해당하는 규슈의 츠쿠시국(筑紫国)의 임시 행궁인 아사쿠라노타치바나노히로니와노미야(朝倉橘広庭宮)에 도달했다. 황태자인 나카노오에 황자와 문무백관들도 같이 따라왔다는 것으로 보아 거의 천도 레벨이었다. 당시 사이메이 덴노의 나이는 68세의 고령이었고, 천황은 성공을 비는 의식도 행했다고 전해진다.

이와 별개로 외세의 침공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일본 역사상 최초로 외세 방어 목적을 위한 요새들을 건설했다. 당시 야마토는 백제와 긴밀한 사이였던지라 백제가 멸망하면 나당연합군이 자국으로 쳐들어오는 것을 두려워한 것이었다.
니키타스에서 배를 타려고 달이 뜨기를 기다린다. 마침 둥그런 달이 떠서, 물때도 딱 알맞구나. 자, 지금 저어 나가자.

사이메이 덴노가 출전을 앞두고 지은 시[2]

661년 8월 사이메이 덴노가 아사쿠라노타치바나노히로니와노미야에서 붕어했다. 그녀의 유체는 일단 11월에 현재의 오사카부에 해당하는 나니와진(難波津)으로 옮겨졌다가 12월에 다시 수도의 궁전인 아스카노카와라노미야(飛鳥川原宮)로 옮겨져 치러졌다. 아무리 고령이라서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지만 당대부터 죽음에 논란이 많았다고 하며, 시해당했다는 소문도 돌았다고 한다. 실제로 대왕(오키미)이 나라 기둥을 뽑아낼 정도로 무리해서 아스카를 버리고 후쿠오카까지 천도나 다름없는 짓을 했으니 논란이 안 되었을 리가 없다.

일반적으로 이런 상황이 되면 파병을 그만두지만, 나카노오에 황자는 즉위식을 몇 년이나 미루면서까지 우선 지원 병력부터 보냈다. 오미 신궁에는 덴지 덴노가 직접 만든 해시계가 봉안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백촌강, 즉 백강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나카노오에 황자(본명 카즈라기)는 조메이 덴노와 고교쿠 덴노(사이메이 덴노)의 아들이었는데, 아버지인 조메이 덴노부터 아스카에 있는 소가 일대(소가씨의 기원이자 본거지) 바로 북쪽에 있는 백제(百濟)를 본거지로 두고 지낼 정도로 백제인들과 가까운 천황이었다.

그렇게 야마토(왜) 군대는 백제 부흥군과 합세하여 서기 663년 8월, 나당연합군과 백강에서 전투를 벌였으나 대패하여 깡그리 몰살당했다(...). 《일본서기》에서는 하쿠스키 강(白村江, 백촌강) 전투라고 부른다. 백촌강은 금강(내지는 금강의 지류나 하류)의 이명으로 비정되는데, 지금도 금강 하류인 부여군서천군의 주민들이 금강을 '백마강'(白馬江)이라고 부르는 데서 관련성을 유추할 수 있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연기와 불꽃이 하늘로 오르고 바닷물도 붉은 빛을 띠었다"
고 한다. 왜국은 전국 병력의 절반 이상을 잃고, 패닉 상태가 되었다. 결국 이 결과물로 백제는 완전히 멸망했다.

이후 나카노오에 황자는 즉위식을 치르고 덴지 덴노가 되었다. 이 때 나라를 잃은 많은 백제 유민들이 일본 열도로 이주해 이들이 살 곳이 마련되어졌다고 하며, 헤이안 시대가 처음 들어설 때까지도 백제인은 자기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조정내에서 세력을 이뤘다고 한다.

4. 백제부흥운동 원조의 특징

병력 파병을 위해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것이 배였는데, 당시 배를 만들도록 명령이 내려진 스루가국은 무려 천 척을 만들었다고 한다. 당대 스루가국은 배를 만들 수 있는 질 좋은 목재들이 풍부했고, 항해 기술이 뛰어난 자들도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경력 40년의 일본 고선박 전문가 곤도 유이치로는 7세기에 천 척은 불가능하다고 평했는데, 당시에는 대략 배 한 척당 조선 기술자 6명에 잡부 4명, 총 10명이 2년간 매달려야 했기 때문에 천 척의 배를 만든다는 것은 필요한 인력과 물자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의 대규모였음을 알 수 있다.

후쿠오카로 가는 도중에 지나친 기비 일대(현 오카야마)에는 '우라'라는 사람을 섬기는 신사가 있다. 이 신사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가마솥 밑에 우라의 목을 묻었는데,) 우라(溫羅)가 매일 꿈에 나와서 사랑하던 아조메라는 여인에게 밥을 짓게 하라고 했는데. 만일 불길한 일이 있으려면 가마의 밥이 거칠어지고, 좋은 징조일 경우에는 밥에 윤기가 날 것이다."

우라가 세운 키노조 성은 이 일대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데, 우선 토성을 쌓은 뒤 돌을 바깥에 둘러서 강화시키는 양식으로 일본이 아니라 백제의 마지막 수도인 사비(부여)의 나성과 같은 구조로 되어 있다. 지역 사람들은 우라를 백제 왕자로 알고 있으며, 일본인들에게는 폭군으로 불렸다고 한다.

우라의 세력이 미쳤던 기비의 이만이라는 마을은 663년 덴지 덴노가 병사를 모집한 곳이었는데, 이곳에 20,000명의 병사가 모였다고 하여 '이만'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기비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철 생산지였는데, 백제인들이 대거 기비로 도래하면서 철 생산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그 때문에 당대 야마토인들은 '마가네후쿠 키비'(최고의 철을 만드는 기비)라고 불렀다.

바로 산 너머에는 도기를 굽는 일족이 있었고, 북쪽으로 산을 넘으면 철을 만드는 그룹이 있었는데, 그런 사람들을 자기 세력권으로 끌어모아 힘을 얻은 호족의 무덤인 야타오츠카 고분은 전형적인 백제의 굴식 돌방 무덤이다. 즉 기비에서 모여 백강 전투에 참전한 2만 명의 군대는 백제 도래인들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외에도 시가, 히로시마, 시코쿠의 에히메, 규슈의 후쿠오카와 구마모토 쪽에서도 가세했다. 이쪽 일대 또한 도래인들이 주로 살던 곳이었다. 즉 백강 전투에 참가한 야마토인들은 사실 백제계 도래인들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백강 전투에 현 히로시마 일대인 미타니의 수령이 참전했는데, 무사생환하면 이곳에 절을 세우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홍제(弘濟)라는 승려와 함께 귀환해서 절을 세웠다고 한다.

5. 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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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기타

진구 황후의 행적상 모델[3]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백강 전투에서 대패한 이후 일본은 나당연합군에 대한 극도의 공포심을 가져 규슈에 대규모 축성을 하는 등 나당연합군의 침공에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삼한을 정벌했다는 '진구 황후'라는 가공의 통치자를 만들어 한번 이겨본 적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식의 프로파간다를 퍼뜨렸다는 것이다. 이것이 후에 살이 붙어서 <임나일본부설>까지 이어졌다는 분석도 있다. 정작 백제를 살리기 위해 노력한 고교쿠 덴노의 생을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남편인 조메이 덴노 때도 그러했듯, 당시 일본에서 형성되고 있었던 아스카 문화에서의 백제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조메이 덴노만 하더라도 백제식으로 상례를 치르고 나라현에 있는 백제궁에 묻혔다. 고교쿠 덴노는 그런 조메이 덴노의 황후였기 때문에 당시 백제 편을 들었던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NHK가 방영한 드라마 <다이카 개신>(大化改新, 2005)에서는 팜 파탈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의아하게 여겨질 수도 있지만 《일본서기》에서 고교쿠 덴노는 조메이 덴노와 혼인하기 전에 다카무쿠 왕(高向王)이라는 사람 사이에서 아야 황자(漢皇子)를 낳은 이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카무쿠 왕과 아야 황자에 대해서는 다양한 추측이 있는데, 사실 오오아마 황자의 정체가 아야 황자라는 설부터 다카무쿠 왕의 정체가 소가씨라는 추측이 있다. 어느 만화가는 다카무쿠 왕의 정체가 소가노 이루카라는 설정으로 만화를 전개하기도 했다.

한국 사극에서는 <삼국기>, <대왕의 꿈>에 등장한다. <삼국기>에서는 김수연이, <대왕의 꿈>에서는 김민경이 연기했다.



[1] 아메토요타카라이카시히타라시히메노스메라미코토[2] 사이메이 덴노의 파병 의지가 매우 강했음을 알 수 있다.[3] 시기상 모델은 야마타이국히미코토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