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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27 17:41:51

간무 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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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E0026><colcolor=#dca600>
일본 제50대 천황
간무 덴노
桓武天皇
파일:Emperor_Kammu_large.jpg
출생 737년
나라현 헤이조쿄
(現 나라현 나라시)
사망 806년 4월 9일 (향년 69세)
야마시로국 헤이안쿄
(現 교토부 교토시)
능묘 카시와바라능([ruby(柏原陵, ruby=백원릉)])[1]
재위기간 제50대 천황
781년 4월 30일 ~ 806년 4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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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E0026><colcolor=#dca600> 야마노베([ruby(山部, ruby=산부)])
부모 부황 코닌 덴노
모후 타카노노 니이가사
형제자매 5남 3녀 중 장남
배우자 후지와라노 오토무로
자녀 15남 22녀
종교 신토
관저 헤이조쿄([ruby(平城京, ruby=평성경)])
나가오카쿄([ruby(長岡京, ruby=장곡경)])
헤이안쿄([ruby(平安京, ruby=평안경)])
별호 카시와바라노미카도([ruby(柏原帝, ruby=백원제)])
엔랴쿠노미카도([ruby(延曆帝, ruby=연력제)])
한풍 시호 간무 덴노([ruby(桓武天皇, ruby=환무천황)])
화풍 시호 천국압발어우백원천황
(天國押撥御宇柏原天皇)[2]
연호 엔랴쿠([ruby(延曆, ruby=연력)], 782년 ~ 806년) }}}}}}}}}
1. 개요2. 생애
2.1. 출신과 초기 생애2.2. 나가오카로 가다2.3. 헤이안 시대를 열다
3. 백제와의 관계4. 가족관계5. 기타

[clearfix]

1. 개요

일본의 제50대 천황. 천년고도 교토(헤이안쿄)를 건설하여 400여 년 동안 이어지는 헤이안 시대를 열었다.

백제 중흥의 명군이었던 무령왕의 후손을 모후로 둔 천황으로 간무 헤이시로 대변되는 타이라 씨족의 조상이었다. 타이라노 기요모리헤이케가마쿠라 막부의 실질적인 지배자였던 호조씨,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의 걸출한 영웅이었던 오다 노부나가[3] 대표적인 타이라의 혈통이었다.

2. 생애

2.1. 출신과 초기 생애

코닌 덴노의 아들이었지만, 쇼무 덴노의 딸이자 황후인 이노우에 내친왕의 소생은 아니었다. 백제계 도래인 혈통의 여인인 타카노노 니이가사 소생의 1황자로, 야마노베 친왕(山部親王)이라고 불렸다.

아버지 시라카베 왕은 덴지 덴노 계열의 황손으로 황통과는 거리가 멀었으나 아내가 덴무 덴노 계열의 쇼무 덴노의 딸 이노우에 내친왕(井上內親王)이었기에 황위를 이을 수 있었고, 그때문에 내친왕의 소생인 동생 오사베 친왕(他戶親王)이 황태자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계모인 황후와 부황의 사이가 좋지 않았던 터에 저주 사건이 발생하면서 황후 이노우에가 폐출되었고, 야마노베 친왕이 황태자가 되어 황위를 계승하게 되었다. 그 배후에는 간무 덴노 본인이나 후지와라 씨족, 어머니 쪽의 백제계 도래인 세력 등의 음모가 있었다고 보기도 한다.

2.2. 나가오카로[A] 가다

간무 덴노의 치세 당시에는 덴무 계열의 세력이 남아 있었고, 불교 사원 세력도 강성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즉위 과정에서 저주에 관련된 소문이 헤이조쿄(平城京)에 판친 것이 가장 큰 두려움이었다. 따라서 784년 야마시로국(山城國) 오토쿠니군(乙訓郡)의 나가오카(長岡)[A]에 새 도읍을 건설하여 나가오카쿄(長岡京)에 자리잡게 된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재앙'이 벌어지고 말았다.

사건은 785년 9월 23일 저녁에 벌어졌다. 나가오카쿄의 건설 책임자인 후지와라노 타네츠구[6]가 누군가에게 화살에 맞아 암살된 것이었다. 범인은 곧 잡혔는데, 간무 덴노의 동생이자 황태제였던 사와라 친왕(旱良親王)과 그를 밀고 있었던 오오토모노 야카모치(大伴家特)였다.

사와라 친왕은 곧바로 폐태제되었고, 아와지로 유배를 갔으며, 도중에 항의의 표시로 단식하다가 죽고 말았다. 하지만 이 사건은 후지와라 씨족이 주범이었을 가능성이 높은데, 간무 덴노가 오오토모노 야카모치가 후원하는 사와라 친왕의 즉위를 꺼렸기 때문이었다. 후지와라 씨족은 초창기부터 다른 씨족들을 무고와 음모로 살해하고 권력을 잡은 경우가 허다했다.

이후 자연재해들이 연달아 일어나고, 간무 덴노의 주변에 이런저런 일들이 벌어지자 사람들은 사와라 친왕의 저주로 그런 것이라는 두려움에 떨었고, 결국 나가오카쿄는 마경이 되고 말았다. 이에 간무 덴노는 동생인 사와라 친왕에게 '스도 덴노'(崇道天皇, 숭도 천황)라는 시호를 올리고, 정중히 제사를 지내 그 노여움을 달래고자 했다.

2.3. 헤이안 시대를 열다

결국 이러한 저주의 소문을 못이기고 근교에 새 도읍을 건설했다. 이 신수도를 헤이안쿄(平安京)로 칭했는데, 이때부터 헤이안 시대가 시작되었다.[7] 두 차례의 천도 모두 저주가 무서워서 옮긴 것인데 새 도읍의 이름인 '헤이안'(平安, 평안)도 '나라의 평안을 바란다'는 뜻이었다.

헤이안 천도 이후 간무 덴노는 관제 및 군제와 토지 문제의 변혁을 통해 백성의 부담을 줄이고, 율령제의 정비 및 통치의 안정을 꾀했으며, 그에 따라 정부 조직과 기능을 적극적으로 개선하려고 시도했다. 그리고 이런 천도와 제도 정비 과정에서 자신의 부황인 코닌 덴노의 옹립에 크게 기여했던 후지와라 가문을 신임하여 중용하고, 후지와라 가문의 여인을 황후로 맞이했다. 특히 '후지와라 북가'의 인물들을 발탁했는데, 그 덕에 헤이안 시대에는 천황가와 강대한 귀족 후지와라 가문 간의 협치가 계속 이어졌고, 후지와라 씨족 중 북가가 융성하게 되었다.

정부 조직과 기능을 개선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 간무 덴노는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를 동북의 에미시에 파병했으며, 좌대신 후지와라노 우오나를 파면한 후, 규슈로 유배시켰다. 그러나 얼마 후 간무 덴노는 상경을 허락해 후지와라노 우오나는 수도에서 사망했다. 이 에피소드를 통해 당시 후지와라 일족은 힘이 강한 외척이었지만 흔히 헤이안 시대하면 떠올리는 막나가는 세도 정치 수준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후지와라노 다마로가 우대신이 되었는데 당시 좌대신과 우대신 자리가 비어 있어서 간무 덴노가 권력을 직접 행사하고 있었다. 우대신이 사망한 뒤 후지와라노 고레키미가 새 우대신이 되었고, 덴교의 지도 아래 엔랴쿠지가 건설되었다.

간무 덴노는 한창 나라(헤이조쿄)에 있다가 나가오카를 거쳐 나중에 교토(헤이안쿄)로 천도한 것이라 나라 시대의 마지막 천황이기도 했다.

3. 백제와의 관계

간무 덴노는 여러 가지로 백제와 관련이 있다. 일제 시기의 일본 언어학자인 가나자와 쇼사부로(金澤廣三郞)가
"간무는 백제인이다."
라고 말한 적이 있고, 아키히토 덴노가 2001년 12월 23일, 자신의 만 68세 생일을 맞이한 기자회견에서 《속일본기》의 기록을 들며 간무 덴노의 생모 타카노노 니이가사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8]이라고 기록된 사실에 한국과의 깊은 인연을 느낀다고 언급했다. 사실 유명 일본사 참고서에서도 간무 덴노가 도래계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문구를 넣고 있다.

교토에는 간무 덴노의 어머니인 백제계 여인과 그 조상들을 섬기는 신사가 내려오고 있고, 이곳에는 백제 무령왕의 후손이라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삼국사기》를 비롯한 한국 측 기록에는 백제 무령왕이 아들을 일본에 보냈다는 내용이 없는데, 무령왕 아들의 후손이 사실이라면 기록이 누락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간무 덴노 자신이
"구다라노고니키시(百濟王, 백제왕) 일족은 짐의 외척이다.(百濟王等者朕之外戚也)"
라는 발언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간무 덴노는 황후 소생이 아니었고, 일본의 전통적인 지배 계층 출신도 아니었다. 그때문에 스스로의 황권을 강화하기 위한 왕권신수설로서 백제와 고구려의 신화까지 역사에 기록해 스스로 '하늘의 자손'이라고 주장했다.
明年正月十四日辛亥。中納言正三位藤原朝臣小黒麻呂率誄人奉誄。上諡曰天高知日之子姫尊。壬午。葬於大枝山陵。皇太后姓和氏。諱新笠。贈正一位乙継之女也。母贈正一位大枝朝臣眞妹。后先出自百濟武寧王之子純陀太子。皇后容徳淑茂。夙著聲譽。天宗高紹天皇龍潜之日。娉而納焉。生今上。早良親王。能登内親王。寳龜年中。改姓爲高野朝臣。今上即位。尊爲皇太夫人。九年追上尊號。曰皇太后。其百濟遠祖都慕王者。河伯之女感日精而所生。皇太后即其後也。因以奉諡焉。
황태후의 성은 화씨(和氏)이고, 이름은 신립(新笠)이다. 황태후의 선조는 백제 무령왕의 아들인 순타태자다. 황후는 용모가 덕스럽고 정숙하여 일찍이 명성을 드러냈다. 코닌(光仁) 천황이 아직 즉위하지 않았을 때 혼인하여 맞아들였다. … 백제의 먼 조상인 도모왕(都慕王)이라는 사람은 하백(河伯)의 딸이 태양의 정기에 감응해서 태어난 사람인데[9] 황태후는 곧 그 후손이다.
출처: 《속일본기

즉, 간무 덴노의 입지는 외국의 신화까지 동원해야 할 정도로 약했다는 뜻이 되며, 후지와라 씨족의 권세 강화와 헤이안 천도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한편 당시 수백 년 전에 멸망한 고구려와 백제의 신화가 당대 일본에도 알려져 있었으며, 해당 신화가 상당히 오래되었음을 보여준다.
도래인 출신의 마미치는 같은 도래인의 피를 이은 간무 덴노를 옹호했으나, 덴노는 오쓰구를 지지하여, 2대 사업을 중지했다.
출처: 《理解しやすい日本史B》

794년 간무 덴노가 헤이안쿄로 천도한 이후, 수도 조영사업 및 에미시 정벌 건으로 백성이 힘들어한다며 이를 반대하는 후지와라노 오쓰구(藤原緒嗣)와 찬성하는 스가노노 마미치(菅野真道) 사이에 이른바 덕정상론(徳政相論)이 일었다. 이 과정에서 관련 기록이 존재한다.
昔『日本は三韓と同種也』と云事のありし、かの書をば、桓武の御代にやきすてられしなり。
'옛날 일본은 삼한(三韓)과 동종(同種, 같은 동족)의 나라였다.’고 적힌 책이 전해내려 왔는데, 간무 덴노 시대 때 불에 타버려 소실됐다고 한다.
《신황정통기》(神皇正統記)[10]

고고학적으로 일본에 청동기와 철기 문명을 전파한 야요이인들이 한반도 남부에서 도래했다는 것이 정설인데, 야요이인들의 기원인 일대와 삼한 일대가 같다는 의미로 추정된다. 물론 이웃 동네인 부여와 읍루(말갈 전신)의 차이처럼 그 시절에도 언어와 풍습이 달랐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삼한의 일부 지역에서 비슷한 문화에 대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한반도 남부에서 삼한과 함께 나타난 민족이 일본으로 도래하고, 남은 민족은 삼한과 신라, 백제, 가야의 성립으로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책의 성격상 천황 가문의 해외 도래설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지만 간무 덴노가 백제와 연관되어 있으면서 일본 최초의 율령제 시대이자 일본의 이미지가 정립된 헤이안 시대를 연 점을 생각하면 의미심장하다.

실제로 이 시기부터 일본은 중국 및 한반도의 영향이 대폭 축소되고, 견당사가 중단되어 자국 중심적이며 독특한 국풍 문화가 점차 발달하게 되었다. 다만 중국과는 송대까지 비공식적인 교류가 어느 정도 이어졌다.

4. 가족관계

제49대 코닌 덴노와 타카노노 니이가사 사이에서 태어났다.

후지와라 씨족 출신의 여인이 많으며, 후궁 중에는 백제씨와 백제왕씨를 가진 자도 있다는 점에서 이 시기까지 일본 조정 내에 있었던 백제계 도래인 인사들의 영향력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사카노우에씨도 백제계인 동한씨(東漢氏/야마토노아야우지)의 분파된 가문이라 엄연히 따지면 이들도 백제계다.

5. 기타

도시의 창건자이자 천년 가까히 역사적 중심지로 만든 인물인 만큼 교토에서는 지금도 큰 존경을 받으며 널리 모셔진다. 특히 헤이안 신궁은 수도 자리를 도쿄에 빼앗긴 후 침체되어 가던 교토의 분위기를 되살리고자 간무 덴노를 섬기기 위해 만든 궁궐 양식의 거대 신사이다.

교토 후시미구의 후시미 성 근방에 간무 덴노의 왕릉이 있다. 능으로 가는 길이 잘 되어 있어 주민들의 산책로로 이용하는 듯하다. 또, 어머니인 타카노노 니이가사의 묘는 다른 쪽에 있다.#


[1] 교토부 교토시 후시미구 소재[2] 야마토네코아마츠히츠기이야테라스노미코토[3] 다만 이쪽은 족보 위조가 유력하다.[A] 나가오카시가 아니다. 현재 교토부 나가오카쿄시, 교토시 니시쿄구, 무코시 일대이다.[A] [6] 737~785, 후지와라노 우마카이의 손자로 '식가'였다. 그의 딸이 유명한 후지와라노 구스코였다.[7] 이 헤이안쿄가 바로 향후 1,000년 넘게 일본의 수도로 자리하는 고도(古都) 교토이다.[8] 무령왕의 아들로 왜국에 온 사아군(순타태자)의 후손이었다.[9] 백제 시조 온조왕의 아버지는 주몽이라는 입장을 취한 것이다.[10] 일본의 3대 사론서 중 하나로 명장 키타바타케 아키이에의 아버지인 키타바타케 치카후사가 14세기에 집필했다.[11] 초기 헤이안 시대에 큰 활약을 펼친 전설적인 무장이다.[12] 백제왕씨 성으로 볼 때 백제왕씨 여어와 마찬가지로 고대 일본에 귀화한 백제 부여씨 왕실의 후손인 백제왕씨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