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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17 16:20:56

닌토쿠 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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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16대 천황
닌토쿠 천황
仁德天皇
파일:仁徳天皇.jpg
<colbgcolor=#bd0029><colcolor=#dca600> 출생 290년
사망 399년 2월 7일 (향년 108-109세)
능묘 모즈노미미하라노나카릉 (百舌鳥耳原南陵)
재위기간 제16대 천황
313년 2월 14일 ~ 399년 2월 7일 (85년 35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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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d0029><colcolor=#dca600> 오호사자키(大鷦鷯)
한풍
시호
닌토쿠 천황(仁德天皇, 인덕 천황)
화풍
시호
오오사자키노미코토(大鷦鷯尊, 大雀命)[1]
오오사자키노스메라미코토(大鷦鷯天皇)[2]
나니와 덴노(難波天皇)[3]
부모 부친 오진 천황(応神天皇)
모친 나카쓰히메노미코토(仲姫命)
배우자 가쓰라기노 이와노히메(葛城磐之媛)
야타 황녀(矢田皇女)
자녀 리추 천황(履中天皇)
스미노에노나카쓰 황자(住吉仲皇子)
한제이 천황(反正天皇)
인교 천황(允恭天皇)
오오쿠사카 황자(大草香皇子)
구사카노하타비노히메 황녀(草香幡梭姫皇女)
황거 나니와노타카츠노미야(難波高津宮) }}}}}}}}}

1. 개요2. 행적3. 실존성4. 다이센 고분5. 기타6. 가족관계

[clearfix]

1. 개요

일본의 제16대 천황.

당시의 황태자였던 이복동생 우지노와키이라쓰코 황자와 서로 천황의 자리를 양보했지만 나중에 황태자가 자살한 까닭에 천황의 지위에 올랐다. 오사카의 다카쓰궁을 도읍으로 삼았으며, 오사카 일대에 하천과 제방 공사, 둔창의 설치 등 많은 토목공사를 실시하는가 하면 백성들의 어려움을 살펴 세금 면제를 하도록 해 성군으로 추앙받았다. 일본 최대 규모의 전방후원분다이센릉 고분(大仙陵古墳)이 바로 그의 능일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2. 행적

닌토쿠 천황은 '인덕'(仁德)이라는 이름 그대로 어질고 덕이 있는 천황으로 전승되고 있다. 예를 들면, 저녁 무렵 밥을 지을 때가 되어서도 마을에서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는 것을 지켜본 닌토쿠 천황은 백성의 곤궁함을 알고 3년간 세금을 면제하는 조치를 취해 백성들로부터 성제 · 성군이라고 칭송되었다. 또한 나니와(오사카)의 인공하천 공사, 간규 지역의 대규모 도랑 공사, 만다 지역의 제방 건설과 둔창의 설치, 요코미 제방의 축조 등 오사카 평야의 대대적인 개발과 농업 발전에 관련된 많은 전승을 남기고 있다.

한편으로, 닌토쿠 덴노에게는 성군의 이미지 이외에도 또 다른 모습이 전해지고 있다. 오토리 황녀에 대한 구혼이 이와노히메노미코토 황후의 방해로 이루어지지 않고, 황후의 심한 질투로 인해 고민하는 등의 인간적인 모습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아울러 닌토쿠 덴노와 관련된 성군 전설은 허구에 지나지 않고, 실제로는 거대한 고분을 조영한 전제군주였다고 하는 견해도 있다. 이 밖에 닌토쿠 천황을 왜5왕 가운데 (讚) 왕 또는 (珍) 왕으로 추정하는 설이 있으며, 닌토쿠 왕조의 개조(開祖)로 보는 설, 오진 덴노와 닌토쿠 덴노를 동일 인물로 보는 설 등 다양한 견해가 있다.

3. 실존성

재위 기간이 비현실적으로 길어 실존성을 의심할 수도 있으나 그의 시호는 제26대 게이타이 천황의 시호와 마찬가지로 고유의 시호이며, 전해지는 여러 내용들로 보아 실존인물임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게다가 후임인 리추 천황부터 갑자기 재위기간이 현실적으로 짧아지기에 닌토쿠 천황도 실존인물일 가능성은 충분하다. 보통 실존인물로는 보이는데 수명이 비정상적으로 길게 기록된 고대 군주의 경우에는, 후대에 왕실 족보 정리 과정에서 정통성 강화를 위해 혈통이 다르다던지 여러 군주들의 기록을 제거하고 한 군주에게 기록을 몰아줘서 수명이 매우 길게 왜곡된걸로 추정하는게 일반적이다.

오사카 지역과 관련된 여러 전설이 내려오고 있으며, 그의 능이 오사카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것을 볼 때 오사카 일대 출신으로 추측된다.

4. 다이센 고분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intokuTomb.jpg

오사카부 사카이시에 있는 일본에서 가장 큰 고분인 다이센 고분(大仙古墳/大仙陵古墳)은 닌토쿠 천황의 무덤으로 여겨진다.[4] 닌토쿠 천황의 부인인 이와노히메 황후의 무덤은 나라시의 사키초(佐紀町)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두 고분의 특징은 열쇠구멍 모양을 했고, 물로 채운 해자로 둘러싸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무덤을 전방후원분이라고 한다.

천황의 무덤은 황실과 관련된 업무를 관할하는 궁내청에서 관리한다. 궁내청에 따르면 천황의 무덤은 단순히 역사적인 유물이 묻힌 장소가 아니라 신성한 종교적 장소이다. 궁내청은 각각의 무덤들을 조상들의 영혼을 위한 성역으로 해석한다.

2020년 12월 기준 다이센료 고분의 모습. 고분 내부로는 입장할 수 없기 때문에, 공원길과 비슷한 분위기이다. 다이센 고분은 유네스코 세계유산모즈·후루이치 고분군의 일부이기도 하다.

5. 기타

금관가야와 고대 야마토 왕권의 관계를 추적한 최인호의 소설 《제4의 제국》에서도 인덕(닌토쿠)릉이 등장한다. 최인호에 따르면 해당 무덤은 메이지 시대인 1872년 9월 7일에 불어닥친 폭풍우로 봉분 토사가 붕괴되어 묻혀 있었던 석관이며 부장된 유물들이 바깥으로 노출되었으며, 그때 궁내청 소속의 화가가 사카이 현령의 명령을 받아 당시 노출된 석관과 출토된 유물들을 그린 그림이 남아 있다.

나온 유물 중에는 갑주나 무기는 물론 페르시아산 유리잔도 있었다고 한다. 나온 유물들은 조사 뒤에 다시 원래 봉분 안에 넣었는데, 그 와중에 환두대도, 삼환령, 칠자경 등 유물 4점이 유출되어 1906~07년 사이에 오카쿠라라는 일본인 손으로 들어갔고, 지금은 미국 보스턴 박물관에 소장되었다고 한다. 해당 유물들의 사진이 사카이 박물관에 걸렸는데 '전(傳) 인덕릉 출토품'이라는 표제가 붙었다고 한다.

위 설명은 마치 최인호의 소설에 쓰였으니 근거 없는 창작인 양 설명했지만, 실제로 2007년 KBS <제4의 제국 가야>라는 프로그램에서 최인호가 보스턴 박물관에 직접 방문하여 환두대도, 삼환령, 칠자경, 청동거울을 확인하여 영상기록으로도 남겼다.

그리고 위에서 1872년 폭풍우가 불어닥쳐 유물들이 노출되었고 오카쿠라라는 일본인의 손에 들어가 미국으로 오게 되었다고 설명한 내용은 최인호가 창작한 것이 아니라 보스턴 박물관의 Joe Earle이라는 미국인이 직접 설명한 부분이다.

"우리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이것들이 모두 일본에서 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그뿐입니다. 1872년에 인덕천황의 무덤에 산사태가 발생했는데 그 때까지만 해도 아무도 이 지역을 건드린 사람이 없었습니다. 즉 1,400년 동안 무덤은 거의 어떤 이의 손도 타지 않았다가 갑자기 1872년 보호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산사태가 발생했고 이틈을 타서 몇 개의 유물들이 무덤에서 나오게 된 것입니다. 대부분의 것들은 다시 무덤 안으로 돌려놓았습니다. 그러나 이 다섯 개의 유물들은 밖으로 유출되었고, 오카쿠라의 손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오카쿠라는 돈을 주고 일본, 중국 특별 기금을 이용해 1906년 후반 1907년 초반에 이 유물들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전문)

'인덕의 조야릉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석관의 개석(蓋石)이 사카이 만도코로(政所) 정원의 답석으로 쓰이고 있었다.'
는 에도 시대의 아라이 하쿠세키의 전집 기록을 제시하며, 이전에 무덤은 한 번 도굴당했던 적이 있으며 범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라고 추정했다.[5]

6. 가족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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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고사기》.[2]일본서기》.[3] 《만엽집》.[4] 닌토쿠 천황의 고분이 아니라 비슷한 시기의 토착 세력의 고분이라는 추측도 있다.[5] 소설에서는 1684년 사카이에서 발간된 가장 오래된 지리지라는 《계감》(堺鑑)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따금 이 능에 들러서 대규모의 사냥을 했으며, 또한 많은 사람들과 다회(茶會)를 베풀었다."라는 기록을 그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