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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1 18:13:06

스진 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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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10대 천황
스진 천황
崇神天皇
파일:external/livedoor.blogimg.jp/19c553e0-s.jpg
출생 기원전 148년
사망 기원전 29년 1월 9일 (향년 119세)
나라현 기성서리궁
(現 일본 나라현 사쿠라이시)
능묘 야마노베노미치노마가리노오카노에릉([ruby(山邊道句岡上陵, ruby=산변도구강산릉)])
재위기간 제10대 천황
기원전 97년 2월 19일 ~ 기원전 29년 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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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d0029><colcolor=#dca600> 미마키([ruby(美萬貴, ruby=미만귀)], [ruby(御眞木, ruby=어진목)])
부모 부황 가이카 천황
모후 이카가시코메 황후
형제자매 4남 1녀 중 차남
배우자 미마키히메 황후
자녀 7남 6녀
종교 신토
관저 시키노미즈카키노미야([ruby(磯城瑞籬宮, ruby=기성서리궁)])
한풍 시호 스진 천황([ruby(崇神天皇, ruby=숭신천황)])
화풍 시호 {{{#!wiki style="margin: 0 0px -5px; min-height: 26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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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문성입언오십경식천황
(御間城入彦五十瓊殖天皇)[1][2]
어진목입일자인혜명
(御眞木入日子印惠命)[3][4]
소지초국어진목천황
(所知初國御眞木天皇)[5][6]
어조국천황(御肇國天皇)[7][8]
미만귀천황(美萬貴天皇)[9][10] }}}}}}}}} }}}}}}}}}
1. 개요2. 초대 천황설
2.1. 고분 시대의 성립과 야마토 왕권의 출몰
3. 가족

[clearfix]

1. 개요

일본의 제10대 천황이자 야요이 시대의 첫 번째 천황이다.

스진 천황의 시대에는 전염병이 돌아 많은 백성들이 사망했다. 스진은 이를 신이 내린 징벌이 아닐까 생각하고 두려워하여 조상신이자 태양의 여신인 아마테라스야마토노오쿠니타마(倭大國魂神)[11]의 신위를 황궁 바깥으로 옮겨 모시라고 명령했다. 두 신위를 바깥으로 옮긴 다음해 11월 오오쿠니누시노카미(大國主神)에게 제사를 올리자 전염병이 말끔히 사라졌다.

고사기》에 따르면 168세, 《일본서기》에 따르면 120세에 붕어했다.

2. 초대 천황설

스진 천황의 기록에서 처음으로 일본의 포괄적인 역사가 소개되었다. 특이한 것은 스진 천황의 화풍 시호[12]는 일본서기는 모두 본명인 '미마키'로 시작하며, 고사기는 모두 '하츠쿠니'로 시작한다. 이중 하츠쿠니(肇國, 初國)는 아무리 봐도 '태조'를 지칭하는 호칭이고, 《고사기》에서는 한술 더 떠 대놓고
"천하를 통일하고 처음으로 나라를 다스린 왕"
이라고 기술하므로 진무 천황이 곧 스진 천황이였거나, 아예 스진 천황이 첫 천황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진무 천황은 하다못해 제123대 다이쇼 천황의 황자인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친왕조차 '신화이지 역사가 아니다.'라고 인정할 정도로 신화적인 존재로,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가공의 조상을 만들어 가문의 연대를 끌어올리는 것은 흔했다. 그렇기 때문에 실재성이 거의 확실시되는 스진 천황으로부터 만들어 낸 가공의 존재라는 것이다.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전해지는 사실과 결사팔대에 연결되는 계보 기사 등에는 의문도 있지만, 1세기에 걸쳐 실재한 천황이라고 파악하는 견해가 적지 않다. 《고사기》는 스진 천황의 붕어 연도를 간지를 이용해서 무인년이라고 기록했고, 이 기록을 신용하면 92년에 사망했다고 추측하는 설도 있다.

결사팔대를 사실이라고 보는 자들은 《일본서기》의 기술에 의거해, 진무 천황이 기내에서 즉위한 후에는 기내 주변의 좁은 영역밖에 나오지 않지만, 스진 천황의 대가 되고 처음으로 일본 지역의 광범위한 사건의 기록이 나오므로, 1대 진무 천황으로부터 9대 가이카 천황까지는 기내의 지방 정권이었고, 10대 스진 천황의 즉위 이후, 일본 열도에서 강력한 정권이 되었다는 설을 내세우고 있다. 또한 소수이기는 하나 결사팔대의 카츠라기 왕조(葛城王朝)에서 스진 천황에서 시작하는 미와 왕조(三輪王朝)로 교체되었다는 설도 있다. 어느 설도 스진 천황을 실존인물로 본다는 점은 공통이다.

한반도 남부의 가야와 연관이 있었다는 설이 있다. 그가 (기년 조정을 감안해서) 실제 정권을 형성한 시기로 추정되는 1세기는 거리상 가장 가까운 가야에서 이주한 도래인이 일본에서 가장 힘이 강했던 시절이었는데, 일단 '천손강림'이라는 신화는 대부분 북방에서 내려온 지배층을 은유하는 표현이라는 점과 '미마키 천황'(御眞木天皇,《고사기》)/(御間城天皇,《일본서기》)라는 이명은 가야의 고대 일본어인 '미마나'(仼那, 임나)와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야요이인들이 한반도 남부에서 건너온 이주민으로써 문명을 형성하고, 고분 시대에도 도래인이 여전히 대거 이주하던 당대 일본에서 도래인의 영향력을 고려할 때, 스진 천황이 도래인이든 토착민이든 스진 천황의 정권이 가야 도래인과 토착민의 연합으로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현대에는 진무 천황의 동정(東征)을 비롯한 야마토 왕권의 성립 시기가 3세기이며 야마토 왕권의 정복기가 4세기 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으로 추측되는데, 스진 천황이 진무 천황과 동일인물이며 야마토 왕권의 초대 대왕이 맞다면 스진 천황의 시대는 고분 시대 초기인 3세기까지 내려간다. 고고학적으로 백제임진강 일대(하북위례성) 2세기 후반, 한강 이남(하남위례성) 한성백제 3세기 중반 성립되며 신라는 2세기 후반에 성립되므로 야마토 왕권의 성립 시기는 백제, 신라와 몇십 년 차이밖에 안 되기 때문에 크게 늦은 것도 아니다.

2.1. 고분 시대의 성립과 야마토 왕권의 출몰

야마토 왕권 출몰의 중요한 원인은 백제의 남정(南征)이다. 백제는 3세기 중반 성립되자마자 남하를 시작하여 3세기 후반 마한 수장 목지국을 꺾고 충청남도 일대를 석권하고, 4세기 초 전라북도 김제시 일대까지 치고 내려가고 목지국의 편을 든 충청북도 잔여 세력들을 소멸시키며,[13] 4세기 중반 근초고왕을 중심으로 침미다례를 비롯한 전라남도 마한가야 세력들을 제압한다. 야마토 왕권이 백제와 긴밀한 관계를 맺게 된 것도 이즈음이다.[14] 이때 3~4세기 무렵 백제의 남정을 피해 엄청난 숫자의 마한, 가야인들이 일본 열도로 이주하게 되는데 2024년 DNA 연구에 따르면 고분인들이 이 시기 한반도 중남부에서 일본 열도로 이주한 한반도인들이며 유전적으로도 고고학적 물질문화로도 백제, 마한계 출신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15][16] 4세기 중반 이후부터는 백제와 야마토 왕권이 긴밀해지면서 백제로부터 많은 이주민과 문명을 받아들이며 야마토 왕권이 비약적으로 발달하게 된 건 덤이었다.

이는 신라도 마찬가지였는데, 신라도 3~4세기 사로국 시절부터 진한 일대의 맹주로 떠오르면서 진한 일대를 병합해나가고 3세기부터 금관국을 비롯한 변한의 후신 가야 문화권과 충돌하며, 4~6세기에 걸쳐 진한과 가야를 정복한다. 마한의 수장국이 건마국[17], 목지국, 백제로 여러 차례 바뀌었고 백제는 특히 목지국의 도움을 받아 한강 이남에 자리잡았으면서 얼마 안 가 목지국을 하극상한 게 문제가 된 반면 신라는 처음부터 진한의 맹주였기 때문에 그런 문제 없이 진한 전체를 신라의 아래로 병합시켜 나간다.[18]

가야도 놀고만 있던 건 아니라 금관국반파국처럼 세가 강한 가야제국(諸國)들이 출몰하며, 특히 반파국은 5세기 전성기를 향유해 대가야, 가라로도 불리며 일시적으로 호남 동부까지 진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변한의 후신인 가야제국은 하나를 중심으로 합쳐지지 못하고 비슷한 여러 세력을 중심으로 소국들이 병존하는 양상을 끝내 벗어나지 못해 5~6세기에 걸쳐 백제와 신라에게 각각 병합되었다. 이 과정에서 5~6세기 엄청난 숫자의 가야인들이 야마토 왕권으로 이주한 것이 사서와 고고학 유물로 확인된다.

3~6세기 한반도 중남부에서는 백제, 마한계 못지않게 진한-신라, 변한-가야계도 엄청난 숫자가 일본 열도로 이주하는 것이 확인되며, 하타 씨족이 이런 진한-신라계 도래인의 대표적인 씨족이다. 그 숫자가 얼마나 엄청났는지 현대 일본인들의 DNA는 대략 80!90% 정도가 한반도에서 이주한 도래인들의 DNA다. 일본 열도의 선주민이며 원삼국시대 초기까지 한반도에서도 많이 거주하던 조몬인들의 DNA를 10%까지 희석시켰을 정도.[19] 야마토 왕권은 백제, 가야와 친하고 3~4세기부터 신라와 사이가 나쁜 모습을 일관적으로 보여주지만 그와 별개로 신라가 진한을 병합한 이후에도 신라에서 많은 도래인이 이주하며 성장했으며, 아메노히보코 설화를 비롯해[20] 고고학적으로도 근초고왕 이전까지 야마토 왕권은 (사이가 나쁜 것과 별개로) 신라 도래인의 영향도 많이 받은 것이 확인된다.

반대로 선사시대부터 원삼국시대 초기까지 조몬인들이 한반도에 대거 거주하거나, 6세기까지 일본 열도에서 마한, 가야 등으로 이주한 사례도 고고학적으로 여럿 확인되고[21] 일본서기에서 야마토 왕권 귀족들(시나노, 모노노베, 키, 코세 등)이 백제로 귀화하는 등 반대로 일본 열도에서 한반도로 이주한 사람들도 많았다.[22] 고고학적으로 3세기 야마토 왕권의 성립에는 이러한 한반도에서 이주한 엄청난 숫자의 한반도 도래인들의 영향이 물질적으로도 DNA적으로도 매우 강하게 드러나는 만큼, 야마토 왕권의 시조인 진무 덴노=스진 덴노의 천손강림 신화 또한 이런 야마토 왕권 형성에 매우 큰 영향을 준 고분인으로 대표되는 한반도인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일화라 볼 수 있다.

고분 시대의 성립이 고분인의 영향이 큰 것과 일본 왕조의 천손강림 신화를 고려하면 스진 덴노는 일본 열도 토착 조몬인보다는 한반도에서 이주한 세력 출신일 가능성이 높다. 현대 일본 왕조는 게이타이 덴노를 기점으로 한 3왕조지만 스진 덴노의 1왕조와 왜5왕으로 대표되는 오진 덴노의 2왕조와 모계로 이어져 만세일계를 구축했고[23] 1왕조와 2왕조는 명백하게 백제, 신라, 가야 도래인들과 내내 깊은 관련을 갖고 있던 것이 사서에서도 확인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오우미(현 시가현) 출신인 게이타이 덴노가 불확실하다.[24]

다만 스진 덴노가 조몬인인지, 야요이 시대 때 한반도에서 건너간 야요이인인지, 고분 시대에 한반도에서 건너간 고분인인지는 불명이다. 조몬인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아 보이지만 조몬인들도 원삼국시대 초기까지 한반도에 많이 거주하다 일본 열도로 넘어간 사례가 확인되기 때문에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25] 그래도 건국에서 천손강림 신화를 강조한 걸 보아 고분인일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아 보인다.[26]

3.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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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마키이리비코이니에스메라미코토[2] 《일본서기》(日本書記)[3] 미마키이리히코이니에노미코토[4] 《고사기》(古事記)[5] 하츠쿠니시라시시미마키노스메라미코토[6] 《고사기》(古事記)[7] 하츠쿠니시라스스메라미코토[8] 《고사기》(古事記)[9] 미마키노스메라미코토[10] 《히타치국풍토기》(常陸国風土記)[11] 《일본서기》에만 등장하는 신으로 타카마가하라계와 이즈모계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의문의 신이다. 학계에서는 기기신화 성립 이전의 신이 아니었나 추측한다. 다만, 일본 신화 내에서 삼귀자 중 한 명이자 주신인 아마테라스와 같이 모셔졌다라는 점에서는 대지의 신으로 추정이 되고, 신격 또한 아마테라스와 맞먹거나 동등한 수준이었을 것으로 보여진다.[12] 중국식 시호가 아닌 일본 전통 방식 시호[13] 충복 친목지국 마한 소국들은 진한의 도움을 받아 수십 년간 버틴 걸로 추정되는데(3세기 진한과의 밀접한 교류가 확인된다) 이중 충주시 금릉동 일대의 마한 소국은 멸망 이후 사로국으로 도망쳐 신라 김씨 족단을 이룬 걸로 추정된다.[14] 현대 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진구 황후의 남방 정복의 정체는 근초고왕의 마한과 가야 정복일 가능성이 높다.[15] 다만 당시 마한은 예맥-삼한 문화만 있던 건 아니고 중국 중부, 북부, 일본과 연관이 깊은 다른 문화권을 향유하던 여러 집단들과 병존했다. 하지만 당시 마한 문화권은 대체로 예맥-한(韓) 문화권이 주류였고, 일본 열도로 이주한 마한인, 가야(변한)인들도 자연히 예맥-한 문화권이 주류였다.[16] 더 이전 시대의 야요이인도 한반도 이주민들이지만 이들은 고분 시대 이전에 이주한 이들이라 예맥-삼한인들뿐만 아니라 한반도 중남부 선주민들과 한반도 조몬인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17] 기원전 2세기 고조선 준왕전라북도 익산시 일대로 남하해 세운 마한 최초의 맹주국이다. 기원후 1~2세기는 유물의 부족으로 자세한 과정은 알 수 없으나 3세기 삼국지의 기록에 따르면 준왕의 직계는 단절되었고 목지국에게 맹주 자리가 넘어갔다고 하며 고고학적으로도 준왕 세력이 건마국의 주도권을 주구묘제 및 토돈분구묘제 집단에게 빼앗긴 것이 확인된다.[18] 사족으로 527~528년 당시 이와이의 난을 비롯한 여러 정황을 보면 신라는 6세기 초까지 야마토 왕권과 별개로 존재하던 북규슈 토착 세력과 더 친했던 걸로 보인다.[19] 다만 조몬인들도 그리 순순히 야마토 왕권에 복속된 건 아니라 DNA 비율이 10%까지 내려간 현대에도 간토~도호쿠인들의 조몬인 하플로그룹 부계 DNA는 50%까지 나타난다. 야마토 왕권이 헤이안 시대 에미시로 불리던 간토~도호쿠 조몬인들을 쉽게 정복하지 못해 사무라이로 많이 받아들인 것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20] 아메노히보코는 왜로 이주한 신라 왕자로 전해지며 진구 황후의 조상이라는 신화가 있다. 일성 이사금과의 연관성이 지적된다.[21] 금관국 건국 신화에 나오는 허황옥은 금관국 DNA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도인이 아니라 조몬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다만 선사시대부터 한반도에서 살아온 조몬인인지, 원삼국시대 초기에 바다를 건너온 조몬인인지는 불명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현대 한반도 남부에서 조몬인 유전자가 10%도 안 되는 반면 금관국 유골에서는 조몬인 유전자가 30% 정도 나타난다.[22] 다만 한반도에서 일본 열도로 이주한 비율이 워낙 압도적이기도 하고 일본 열도에서 한반도로 이주한 사람들은 숫자가 당시 인구 비율에서 유의미하게 많지는 않아 주류 세력이 되지 못하고 늦게 잡아도 남북국시대 때 완전히 현지에 동화되어 사라진다. 왜계 백제인 가문들이 남북국시대 때 변성했다 전부 실전(失傳)된 것이 대표적이다.[23] 신라 왕조의 박-석-김 왕조 일계와 비슷하다.[24] 그래도 오우미도 엄연히 간사이에 속하는 지역이고 3왕조가 2왕조의 친백제 기조를 이어나간 것과 5세기 간사이 전역에서 백제, 신라, 가야 도래인들이 엄청나게 숫자를 불리며 농지 개척을 주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6세기 초반 재위한 게이타이 덴노 또한 도래인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게이타이 덴노의 생년은 다소 논란이 있으나 즉위기간(507~531)은 대체로 사실로 보기 때문이다.[25] 한반도에서 넘어간 조몬인들은 한반도 시절 예맥인, 야요이인들을 포함한 한반도인들과 혼혈한 채 넘어간 경우가 많아 더 복잡하다.[26] 고분인일 경우 당시 국제 정세상 가야계나 마한계일 가능성이 높다.[27]고사기》에는 이카히메노미코토(伊賀比賣命)라는 이름의 4녀라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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