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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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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토 神道
Shinto
파일:external/openclipart.org/Japanese-Gate-Symbol.png 파일:신토 백색.svg
신토의 상징물 가운데 하나인 도리이(鳥居, Torii)
계통 <colbgcolor=#fff,#212121><colcolor=#000,#ddd>일본 계통 종교
유형 다신교
창시 자연 발생(애니미즘, 샤머니즘)[1]
지역 <colbgcolor=#535353> 성도 일본 미에현 이세시(이세 신궁)
주요
신앙 지역
일본 전역
종교
중앙기관
명칭 신사본청 외 기타
소재지 일본 도쿄도 시부야구
규모 신자 신토계 신자 87,219,808명,(2018),[2]
성소·성직자 신토계 포괄 종교법인 123개
└ 단위 종교법인(신사) 84,648개,(2018),
신관 약 8만 5천 명,(2015),
1. 개요2. 정의
2.1. 명칭
3. 신화4. 신토의 구성 요소
4.1. 카미4.2. 신사4.3. 신직
5. 역사와 변천
5.1. 탄압과 획일화
5.1.1. 국가신토5.1.2. 교파신토
5.2. 현대
6. 여담7. 대중문화 속의 신토
7.1. 신토를 소재로 한 작품
8. 신토 관련 문화

[clearfix]

1. 개요

신토(神道[3], 신도)는 일본민족종교로, 불교와 함께 일본의 문화와 정신세계를 구축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다신교이다.

2. 정의

신토 자체의 원형은 고대 조몬인이나 야요이인들이 각 부족별로 별개로 믿던 토속신앙을 기초로 하고 있지만 이후 야마토가 일본 전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야마토인들이 믿던 종교와 피지배민들이 믿던 종교가 융합되어가는 과정을 거치며, 야마토 중심의 신화가 보급되고 또한 불교와 도교, 유교가 대륙과 한반도를 통해 수입되면서 변천과정을 거쳤는데 도교의 경우에는 신토와 융합하기 딱 좋은 종교였던지라 신토와 융합되었고, 불교와도 대립하는 관계에 있었지만 오랜세월이 흐르는 기간 동안 서로 영향을 많이 주고 받았다. 또한 근현대에도 국가신토가 구축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어 왔다.

일본의 『국사대사전(國史大辭典)』은 신토를 다음과 같이 정의내렸다.
신토란 일본 민족의 신 관념에 입각, 일본에서 발생하여 주로 일본인 사이에 전개된 전통적인 종교적 실천과 그 배경을 이루는 생활태도 및 이념 등의 총체를 가리킨다. 몇몇 예외가 있기는 하나 신토는 교조가 없는 자연발생적인 종교이며, 주로 일본인이 담지자인 민족 종교이다. 각 시대별로 다양한 신토론이 있기는 하지만, 확정적인 도그마는 없다. 신토는 정비된 신학이라든가 철학이 아니다. 그것은 기본적인 가치체계, 사유형식, 행동양식으로서 일본인의 생활에 깊이 관련되어 있다.

이런 정의는 기본적으로 신토를 하나의 종교로 간주하는 입장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일본종교사전(日本宗敎事典)』의 다음과 같은 애매한 정의는 본질적으로 신토가 종교가 아닌 것으로 규정된다.
신토가 과연 종교인지 아닌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것은 일본의 풍토에서 생겨났고 일본민족의 역사와 함께 성쇠를 거듭해 온 종교문화의 일단면으로서, 일본인의 생활감각에 밀착된 전통문화일 따름이다. 그것은 종교로서의 고유한 역사나 성격을 지니고 있지 않다. 신토의 입장에서 보면 현실의 풍토와 사회가 그 자체로 종교의 세계라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신토는 종교 이전의 종교이다.

위의 두 가지 입장은 서로 상반되지만, 신토를 일본인의 생활에 밀착된 전통문화로 본다는 점은 일치한다. 이런 공통된 인식을 토태로 일본 민속학의 창시자 야나기다 구니오(柳田國男, 1875-1962)를 비롯하여 많은 신토 연구자들은 대체로 신토를 '일본 고래의 카미(神)에 대한 신앙' 혹은 '일본인의 고유한 신앙'으로 규정해 왔다. 하지만 이런 관점은 시대와 장소에 따른 가변성과 다양성을 무시한 채 신도를 불변하는 어떤 실체로 상정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는 평을 듣는다. 이에 비해 신토를 '신사(神社)의 종교 혹은 신사에서 행해지는 의례적 행위 내지 마츠리(祭)의 종교'로 규정하는 정의는 비교적 구체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겠다. 신토를 어떻게 정의내리든 간에 일본인의 일상생활 및 문화현장 속에 엄연한 실체로 존재하는 신사와 마츠리의 풍경을 부인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2.1. 명칭

일본의 고유 종교를 가리키는 가장 공식적이고 대중적인 명칭은 '신토(神道, 신도)'이며, 고유어로 '칸나가라노미치(惟神道)'라고도 부른다. 이 밖에 '신기(神祈) 신앙'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천신지기(天神地祇)'의 준말이다. 여기서 (神)이란 하늘의 신, 즉 도래신인 아마츠카미를 뜻하고, 기(祈)란 땅의 신, 즉 토착신인 쿠니츠카미를 뜻한다.

중국에서는 바이두 백과 등지에서 '신도교(神道敎, 선따오쟈오)'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는 '신도'라는 이름 자체를 일본만의 특징을 가진 고유명사로 보고 '교'를 덧붙인 것이다. '기독+교'처럼 '신도+교'. 이유인즉 신토는 원래 『주역』 관(觀)괘의 "하늘의 신도(神道)를 봄에 사시(四時)가 어긋나지 않는다. 성인이 신도로써 가르침을 베푸니 천하가 복종한다." 하는 구절에서 '신묘한 도'라는 의미로 쓰인 단어이기 때문이다.

일본 문헌에서 '신도'라는 단어가 쓰인 첫 출전은 『일본서기』 31대 요메이 천황 즉위전기(卽位前紀)[4] 편인데, "천황이 불법(佛法)을 믿고 신도를 존숭했다."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요메이 천황한반도로부터 공식적으로 불교를 받아들인 29대 긴메이 천황의 4남이다. 긴메이 덴노의 차남인 30대 비다츠 천황의 즉위전기에는 "천황이 불법을 불신하고 중국의 문학과 역사를 귀히 여겼다." 하는 구절이 나오고, 36대 고토쿠 천황의 즉위전기에도 "불법을 존숭하고 신도를 경시했다."라는 문구가 있다.

신도라는 용어가 천황의 즉위전기에 불교와 대비하는 말로 쓰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즉위전기와 관련되었음은 신도를 둘러싼 어법이 후대 사가들의 평가를 내포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다시 말해 신도라는 용어는 요메이 천황 및 고토쿠 천황 당대인 6세기 말에서 7세기 중엽의 실제 용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일본서기가 편찬된 8세기 초엽의 용법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편 신도라는 용어가 불교의 대비어로만 나온다는 사실은 말할 것도 없이 일본인이 외래의 종교문화와 전통문화를 대비함으로써 비로소 자신을 의식하였음을 암시한다.

이처럼 신도라는 용어 자체는 『주역』 외에 『진서(晋書)』 등의 중국 고전까지 그 출처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며, 한국의 경우에도 삼국유사를 비롯하여 특히 단군계 및 증산계 민족종교에서 ‘신명(神明)’이라든가 ‘신교(神敎)’ 등 개념과 더불어 신도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어쨌든 일본에서 문헌상 처음 '신도'란 단어를 사용했을 때에는 아마도 당시 중국에서 도교가 자칭 '신도'라 한 것을 채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사실 일본 신토의 형성과 도교의 관계에 대해서는 일본에서도 일찍부터 주목하는 연구자들이 적지 않다.

류큐(오키나와)의 전통 신앙을 가리켜 류큐 신토라는 용어를 쓰기는 하지만, 일본 신토와는 구분된다. 애초에 류큐 신토라는 단어도 일본 제국 시기 일본 민속학자들이 류큐의 전통 신앙에 고대 일본 신토의 요소들이 남아있다는 결론을 내리며 붙인 이름이다. 단, 일본 신토도 류큐 왕국 시절에 이미 어느 정도 전파되었다.

3. 신화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일본 신화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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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4. 신토의 구성 요소

4.1. 카미

파일:external/nipponsharemono.net/7fukujin1-816x424.jpg

신토의 (神)은 '카미(かみ)'라 불린다. 약 8백 만에 달하는 카미(야오요로즈노카미)가 있다고 일컬어지며, 수많은 카미들의 기원은 주로 조령(祖靈), 즉 조상신이라 할 수 있다. 예부터 일본인들은 사람이 죽은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그 사령(死靈)이 가족과 촌락을 수호하는 카미가 된다고 생각하여 숭경해 왔다. 이와 같은 조상 숭배의 관념에서 이른바 씨족신 우지카미(氏神)라는 촌락공동체의 수호신 관념이 형성되었고 이 우지카미를 중심으로 하여 신사(神社)가 발전된 것이다. 한편 후대로 내려오면서 일본 고래의 조상 숭배 관념이 불교와 결합되면서 보다 복잡하게 전개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예컨대 현대 일본인들의 가정을 방문해 보면 불단(佛壇)이 모셔져 있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는데, 불단에 진짜 불상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조상의 위패나 생전의 사진이 안치된 경우도 매우 많다.[5]

이런 조상숭배적 관념과 더불어 신토 신앙의 근간을 이루는 또 하나의 축으로서 자연숭배의 관념을 들 수 있다. 모든 자연물에 영적인 존재가 깃들어 있다는 애니미즘적 신앙은 현재까지도 신토의 에토스(ethos)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로 남아 있다. 사실 신토의 카미 중에는 자연물을 신격화한 신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가령 일본인이 황조신으로 간주하는 아마테라스(天照大神)는 태양을 신격화한 것이고 그 밖에도 달을 신격화한 츠쿠요미(月讀命), 폭풍우를 신격화한 스사노오(須佐之男命)를 비롯하여 산, 들, 강, 바다, 나무, 새, 짐승, 벌레, 풀, 금속, 돌 등의 자연물을 신격화하고 있다. 그 가운데 오늘날까지도 많은 일본인들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는 자연신으로서 대표적으로 산신과 해신을 꼽을 수 있다. 일본은 국토의 7할이 산악지대인 섬나라인 만큼 일찍부터 산신과 해신에 대한 신앙이 풍부했다.[6]

일본인은 일반적으로 죽은 자의 영혼이 산으로 가서 정화된 후에 조령(조상신)이 되어 다시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내려온다는 민속적 관념을 가지고 있다. 일본 민속학에서는 이를 ‘산중타계신앙’이라고 부른다. 이때의 산신이란 비단 산의 신뿐만 아니라, 수목의 신, 수렵의 신, 금속의 신, 돌의 신, 불의 신, 물의 신 등을 모두 총칭하는 말이다. 또한 고대 일본인은 바다 저 건너편에 ‘도코요’(常世)라 불리는 타계가 있으며 그곳에 해신이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풍어와 항해의 안전을 관장하는 이런 해신 가운데 가장 인기있는 신은 에비스(惠比須)이다. 에비스는 오늘날 현대 일본사회 및 특히 상인들 사이에서 상가(商家)의 수호신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는데, 오른손에 낚싯대 그리고 왼손에 도미를 들고 있는 해신의 이미지를 갖고 있으며, 칠복신(七福神) 가운데 하나로서 인도중국 기원이 아닌, 유일하게 일본 고유의 카미라는 점에서도 특징적이다.

어쨌든 신토에서 ‘카미’라고 불리는 신은 유교에서 말하는 신과도 다르고 기독교의 신 개념과도 다르다. 카미의 특색은 다음 5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카미는 인간과 질적으로 상이한 절대 타자로서의 창조신이 아니다. 신토에서는 카미와 인간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토의 경우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모신 도요쿠니(豊國) 신사,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모신 도쇼궁(東照宮), 메이지 덴노쇼켄 황후 부부를 모신 메이지 신궁, 노기 마레스케를 모신 노기(乃木)신사, 도고 헤이하치로를 모신 도고(東鄕) 신사 등을 비롯하여 250여만 명의 전사자들을 제신으로 삼는 야스쿠니 신사의 경우처럼 인간이 사후에 카미로서 숭배되고 제사받는 사례가 적지 않다.[7] 그뿐만 아니라 국가신토 체제 하에서 천황은 아라히토카미(現人神) 즉 '살아 있는 신'으로 숭배받았고, 금광교(金光敎)나 천리교(天理敎) 등의 신종교 교조들 또한 살아 있는 동안에 생신(生神)으로 제사지내지기도 했다.

둘째, 카미는 선악의 구분을 넘어서 있다. 다시 말해 카미는 기독교의 유일신관에서 전제가 되어 있는 절대적으로 선한 신이 아닌, 도덕적인 선악을 따지지 않는 존재로 상정된다. 이는 일본인의 일반적인 신 관념을 가장 전형적으로 묘사한 국학자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 1730-1801)의 ‘카미’에 대한 다음과 같은 정의에서도 잘 엿볼 수 있다.
카미란 고전(고사기 등을 가리킴)에 나오는 천지의 제신들을 비롯하여, 그 신들을 모시는 신사의 어령(御靈)ㆍ인간ㆍ조류ㆍ짐승ㆍ초목ㆍ바다ㆍ산 등의 무엇이든, 범상치 않으며 은덕 있고 두려운 존재를 일컫는 말이다. 카미에는 이렇게 여러 종류가 있다. 가령 귀한 카미, 천한 카미, 강한 카미, 약한 카미, 좋은 카미, 나쁜 카미 등이 있으며, 그 마음도 행함도 여러 가지라 어떤 하나로 규정하기 어렵다. (『古事記傳』)

반드시 도덕적 가치에만 의존하지 않는 신토의 선악관념이 이런 신 관념과 연동함은 말할 나위 없다.[8]

셋째, 신토에서는 추상적이거나 초월적인 신이 숭배된 적이 거의 없다. 왜냐하면 일본인은 인간에게 매우 친숙하고 현실적인 카미를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카미를 호칭할 때 마치 이웃집 아저씨를 대하듯이 ‘~카미상’이라고 부르기를 좋아한다. 신토를 소재로 한 현대 일본 창작물에서 간혹 추상적이거나 초월적인 신이 나오는 건 기독교국가신토의 영향이다. 기독교의 야훼는 추상적이고 초월적인 신으로 묘사되며, 국가신토에서는 천황을 초월적인 신으로 숭배했기 때문이다.

넷째, 카미와 인간의 관계는 상호의존적인 기브 앤 테이크의 관계에 가깝다. 즉 인간은 카미를 숭경함으로써 카미의 영위(靈威)를 높여주고, 그 대가로 카미는 인간을 지켜주고 복을 가져다준다고 여겼다.

다섯째, 신토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신앙되는 카미는 전술했듯이 조상신이다. 물론 그 밖에도 무수한 카미들이 있는데, 일본인들은 신사를 참배할 때 자기가 지금 예배드리는 대상이 어떤 카미인지 그 이름조차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중요한 것은 카미가 현실적으로 인간에게 어떤 복덕을 가져다주느냐 하는 데 있고, 그 카미의 이름이나 내용은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여긴다. 때문에 카미의 이미지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변한다 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9]

여기에서 일본을 두고 신국(神國)이라 부르는 용례가 나왔다. 원래 옛 신토적인 관점에서, 신국이란 말은 "우리는 사방각지에 있는 온갖 신들을 참 예의 바르게 잘 모시는, 예의와 도리를 아는 민족이다."[10] 하는 뜻이었다. 이러던 것이, 근대에 들어 제국주의 시절이 되면, 일본은 신들이 지켜주시고 현인신(좁게 말하자면 덴노 일족)이 통치하는 위대한 나라이다 하고 자랑하는 의미로 용례가 바뀐다. 옛 신토에서 사용한 용어를 받아들이되 의미부여를 다르게 한 것이다.

이와 관련된 카미를 대할 때에 몸을 깨끗이 하고 불결함/부정(穢れ、汚れ라 쓰고 케가레라 읽는다)을 피하여 삼가는 것을 뜻하는 꺼림(忌み 혹은 斎み라 쓰고 이미라고 읽는다)이라는 개념이 있다. 이에 따라 신사 등에서 이미히(忌火)라 하여 불을 피우기도 했다. 특히 헤이안 시대 이후부터 메이지 시대 이전까지 죽음(쿠로후죠, 黒不浄), 월경(아카후죠, 赤不浄), 출산(시로후죠, 白不浄)은 카미가 싫어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다만, 앞에서 신토의 특징으로 열거한 카미 개념 중 많은 부분은 일본 신토 고유의, 독특한 개념이라기보단 신토처럼 원시 신앙[11]의 성격을 강하게 가지고 있는 종교 체계가 가지는 공통적인 부분에 해당한다. 적어도 한국이나 몽골, 중국 등 주변 동아시아 계통과는 상당히 공통되는 면이 많다. 당장 한국의 무속만 해도 신의 선악이 불분명하며 인간적인 면이 있다는 점, 조상신이 신앙 대상의 주를 이룬다는 점,[12] 숭배와 그에 따른 보상 구조의 기브 앤 테이크 관계라는 점 등 상당수의 특징을 공통으로 가지고 있다.

4.2. 신사

신토의 주 건물을 신사(神社)라고 부른다. 불교, 이슬람모스크, 개신교교회, 가톨릭정교회성당에 해당하는 종교시설이다. 각 신사는 근대에 체계화가 이루어져 관리되고 있으며, 신사의 이름으로 그 신사의 가장 중요한 신을 유추할 수 있다.

규모가 크고 지역의 거점이 되는 신사를 '대사(大社)'로 불러 따로 구분한다. 잘 알려진 예는 이즈모타이샤후시미이나리타이샤.[13] 오덕계에서는 동방 프로젝트 때문에 스와 대사도 유명하다. 천황과 관계된 신을 모신 경우 신궁(神宮)이라고 이름 붙인다. 대표적인 예가 이세 신궁. 하지만 옛 신토에서는 사람이 신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신이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것이었다. 이때의 신사는 사원 건물이 아니라 한국의 당목과 돌탑처럼 숲의 일정한 장소에 성역을 정해놓고 신성히 여기는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불교 문화가 전해지면서 거기에 영향받아, 점차 신이 거주하는 장소로 사람들이 참배하러 오는 식으로 바뀌었다.

오키나와에는 신사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곳들이 아직 남아 있는데 류큐 신토에서 신성시하는 성소(聖所)들인 우타키(御嶽)가 바로 그것이다. 류큐 최고의 우타키라는 세화 우타키(斎場御嶽)를 예로 들자면, 종교시설을 담당하는 건물은 없고 숲속 깊숙한 곳에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크기의 바위틈이 있으며 그곳에서 신들이 처음 창조한 육지인 쿠다카지마(久高島)를 바라보며 제사를 지낸다.

4.3. 신직

신사본청에서는 신직의 직명, 계위(階位), 신분을 정한다. 직명은 구지, 곤구지, 네기, 곤네기 등이 일반적이다. 그 밖에 이즈모대사는 교츠, 스미요시대사에는 쇼네기, 이세 신궁이나 아츠타 신궁에는 구쇼 등의 직명이 있다. 구지는 규모의 대소를 막론하고 하나의 신사에 한 사람밖에 없으므로 회사로 말하자면 사장에 해당되는 신직이다. 계위로는 맨위부터 정(淨), 명(明), 정(正), 직(直)의 4가지가 있다.

정계는 처음부터 수여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동안의 실적에 의해 주어진다. 신직 양성기관인 고쿠가쿠인대학 신도학과나 황학관대학 신도학과를 졸업하고 소정의 학점을 이수하면 명계가 주어진다. 또한 이 대학에서 약 1개월 정도 강습을 받으면 정계 혹은 직계를 부여받을 수 있다. 이 밖에 신직의 신분으로서 위로부터 특급, 1급, 2급상, 2급, 3급, 4급 등 6등급이 있다. 신사본청 산하의 많은 신사에서는 어떤 계외, 어떤 신분이라도 신직으로 근무할 수가 있는데, 이세 신궁, 아츠타 신궁, 메이지 신궁 등 큰 신사의 경우에는 제사 참례 시 일정한 계위가 요구되기도 한다.

5. 역사와 변천

정의 문단에 나오듯 그 직접적 원류는 야요이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이전 조몬 시대에 조몬인들이 믿던 원시 신앙도 영향을 주었으리라 추정된다. 특히 야요이 시대의 신앙 유적에는 후대 신사들과 양식이나 신앙 구조가 유사하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자연적인 토속종교에 불과했던 신토가 확립된 것은 고훈 시대를 거치며 기나이의 야마토 정권을 중심으로 일본의 중앙 정권이 확립되면서 이루어졌다. 이전에는 같은 야요이 문화권이라도 지역에 따라 상이한 신을 모시고 각자 별도의 신화를 믿었으나, 야마토 정권이 중앙집권화를 이루고 일본서기, 고사기 등의 사서를 편찬하는 과정에서 야마토 정권의 중심지인 기나이 지방의 신화를 중심으로 신화를 정리하여 소위 기기신화라 불리는 중앙 신화를 만들어내었고, 이 기기신화에 편입되지 못한 신이나 신화는 지방의 주변 신앙으로 남게 되었다. 흔히 신토는 기기신화의 신들만을 모신다는 오해가 있기도 한데 실재로 지방의 신사들에는 기기신화와는 별도로 지방의 토착신들, 나아가 한국이나 중국으로부터 건너온 이들을 신으로 모시는 신사들이 많다.

인도의 토속 종교였던 힌두교가 브라만교에서 발전해 브라만이라는 사제 계급을 중심으로 발전했던 것과는 다르게, 일본의 경우 신사의 사제 계급이 있었고 이들 또한 고위 지배 계급의 중추를 이루기는 했으나 천황(오오키미)가 태양신의 후손이자 태양신의 현신 그 자체로서 마치 이슬람의 칼리프마냥 종교 지도자로서의 권위를 가지고 있었고, 주요 귀족들 중에도 자신들만의 신사를 만들어 씨족신을 모시는 등의 사례가 흔했기에 종교적 권위와 정치적 권위가 헤이시 정권 수립 이전까지는 딱히 구분되지 않았다. 신토에서 사실상 반쯤 경전으로 사용했던 일본서기 신대기의 경우에도 종교적 권위 뿐 아니라 정치적 권위와 함의도 풍부하게 담고 있다.

현재 여러 신들 중 태양신아마테라스[14]를 가장 고위의 신으로 여기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신사에서 아마테라스를 모시지는 않는다. 특히 지역으로 갈수록 현 신토의 중심신앙에서 멀어지는 경향이 있는데 지방색이라 봐도 무방하다. 사실 아마테라스를 중심으로 하는 일본 신토의 신 계보는 국가신토의 입김도 없다고는 할 수 없는데, 아마테라스 중심의 기기신화 자체가 고대로부터 다스리던 천황가를 찬양하고자 만들어졌고, 이후 메이지 유신 시기 근대적 민족 정체성을 형성하고자 국가신토에서 이를 강화하면서 더욱 굳어졌기 때문.

사실 불교가 잘 나가던 전근대시기 일본에서는 본지수적(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의 교화를 위해 신이나 명왕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 #) 관념에 기초하여 신토의 신들은 다 불교부처님/보살의 화신이나 신중 취급을 받았다. 때문에 자연히 신토의 신과 신토를 불교의 부처/보살과 불교보다 하위에 놓았고, 아마테라스의 경우 대일여래(비로자나불)의 화신으로 격하했다.

이는 불교동아시아에 전래되면서 불교의 부처님/보살/명왕/신중을 토속신앙의 들처럼 신의 일종으로 인식하고 받아들이면서 생겨난 '신불일체설'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신토의 신이 기존의 불교의 팔부신중처럼 불법을 수호하는 하위 존재로 여겨지다 결국 인간과 마찬가지로 부처의 가르침(불교)을 통해 구원받아야 하는 존재로 격하되는 과정이 더 심해진 것으로, 최종적으로는 헤이안 시대 말기 위에서 말한 본지수적론의 등장으로 신토의 신들은 부처/보살의 화신인 명왕의 한 부류로 인식되었다. 기존 신토의 신이 불교에 귀의해 불법의 수호신이 되는 경우 이를 묘진(明神)이라고 부르고, 거꾸로 부처의 중생 교화를 위해 잠시 신토의 신의 모습을 빌어 나타났다는 믿음에서는 곤겐(權現)이라고 불렀다. 이는 외형적으로는 신토의 격을 다소 올려준 것 같지만 실제로는 신토의 신을 부처/보살이 본지수적[15]한 존재로 인식하고 신토를 불교의 아류이자 부분집합으로 만든 것으로, 신토에 대한 불교의 시각이 다분히 중심을 차지하는 것이다. 이처럼 신토와 불교가 섞인 현상을 일컬어 '신불습합'이라고 한다. 그러나 메이지 시대에 신불 판연령(神佛判然令)이 내려지며 근대 이후 신토와 불교가 명확히 구분되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신토의 토속신을 만물의 근원적인 존재, 부처/보살은 그 중 일부라는 관념이 생겨나 신토 측에서 주요 이론으로 삼아 불교에 맞서 우위를 점하고 눌러버리려 시도하였으나, 불교는 여전히 신토와 함께 일본의 대표 종교로 흥성하였다. 고도로 정교하고 철학적인 불교의 교리는 신토가 대적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였고, 중세 막부가 성립하면서 신토를 옹호해주던 천황 조정은 허수아비 수준이 되어 버렸다. 가마쿠라 막부~센고쿠 시대에 접어들면서 불교 내부의 교단 간의 충돌과 몽골의 침입, 신토와 불교의 지속적인 교섭 관계에서 본지수적론에 입각한 신토의 철학 이론이 정립되었으나 그것도 따지고 보면 불교(특히 밀교), 도교 등에서 이리저리 따 온 흔적이 역력했다.

결정적으로 신토계는 불교처럼 강력한 구심점을 가진 신토 교단이 없었고, 있어도 불교에 견줄 수준은 아니었다. 물론 중세 신토[16] 시기 일본에서는 국가 주도로 신토의 국가제사 의례를 정비하였으나, 이는 제사 의식의 정비 수준이었지 철학/교리의 큰 발전은 아니었다. 이런 불교와 기타 종교들 간의 공존 현상은 비단 일본의 신토 뿐만이 아니라 근세 이전의 중국의 도교, 성리학 이전의 구 유교나 한국의 토착신앙 무교도 마찬가지였으며, 다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불교 문서로.) 기존 종교와 외래 종교가 영향을 주고받는 현상은 서양과 중동 등지에서도 공통적으로 일어났던 현상이다.

이런 기존의 노선이 점차 깨지기 시작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근세시기 조선을 통해 일본주자학이 전달되면서부터였다. 주자학은 불교의 정교한 교리를 반박하기 위해 개량한 유교였고 조선에서 이를 사상적 기반으로 숭유억불을 하고 있었다. 일본 신토계에서도 주자학을 받아들여 불교에 반대하는 사상을 점차 키워나갔는데, 이 과정에서 유교를 중심에 놓고 신토와 불교를 순차적으로 그 하위에 두는 쥬카신토(儒家神道)[17]와 쥬카신토를 수정하여 신토가 중심이 되어 여기에 주자학의 이론을 흡수하고 불교를 배격하는 스이카 신토(垂加神道)와 고전학에 기초하여 신토를 본격적인 교단/교리를 갖춘 종교로 발전시킨 코카쿠 신토, 민간의 신토에 대한 민간신앙을 중심으로 한 종파 신토로 나뉘었다.

이 중 스이카 신토와 코카쿠 신토는 천황숭배사상에 기초한 교리 체계와 이념을 따랐는데, 이들의 사상은 후대에 국가신토의 성립에 영향을 매우 크게 끼쳤다. 참고로 코카쿠 신토의 이론의 중심이 된 저 고전이란 바로 일본서기고사기. 종파 신토의 경우 천리교등 신토에 기초한 신종교 운동으로 이어지나, 국가신토의 시대에는 상당한 탄압을 받았다.

5.1. 탄압과 획일화

메이지 시대일본국민국가로 발전하면서 유럽 국가들이 그리하였듯이[18] 폭력적인 표준화와 단일화가 이루어졌고 비주류 신토에 대한 탄압도 그 일환으로써 이루어졌다.

자연적이지 않은 인위적이고 정책적인 정부 차원의 국가신토 장려는 '신사합사 정책'이라고 부르는 강제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국가신토 사상에 부합되지 않는 신사들은 강제로 통합, 폐쇄시켜버리는데, 이 과정에서 일본 전역에서 신사 7만여 곳이 폐쇄당한다. 신주가 폐쇄를 거부할 경우, 경찰력을 동원해 신주를 체포 구금하기도 했다. 시골 마을에서 대대로 주민들의 신앙을 받아온 오래된 신사 같은 경우는, 폐쇄에 반발해 주민들이 산이나 숲 깊숙한 곳에 임시 사당을 짓고 비밀리에 참배하는 형태로 반발했다. 일본에서 인적이 없는 깊은 산 속을 가다가 뜬금없이 황폐화된 작은 사당이 튀어나온다면 바로 이런 경우.

단순히 폐지할 수 없는 큰 신사들은 강제로 신을 바꾸거나 신의 족보를 바꾸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에비스의 경우 정확한 유래를 찾기 어려운 신인데, 이 신을 일본서기고사기족보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결국 이자나기이자나미가 가장 먼저 나았으나 불구라서 흘려보냈다는 섬인 히루코와 동일시해버렸다. 전국 에비스 신앙의 총본산인 효고현 니시노미야시의 니시노미야신사의 경우 이 때문에 지금도 갈등을 빚고 있다. 그 외에 그냥 존재했던 토착신들을 일본서기와 고사기에 짜맞추다보니 본래 동네 사람들이 믿던 신들이 자기들은 처음 들어보는 신으로 바뀌어버리는 황당한 사태가 계속 일어났다. 백년 가까운 일본 제국주의 시대가 지나면서 그냥 익숙해져 자리잡은 경우가 더 많지만 현재까지도 문제가 되는 경우도 많다.

신불분리를 일석일조로 하다보니 부작용이 생기는 경우도 많았다. 신토와 불교의 중간자적 역할을 하던 신들, 예를 들면 우두천왕, 변재천, 우가신 및 칠복신들이 신사에서 지워졌으며, 불교와 신토의 습합으로 생긴 수적신들, 특히 산악신앙과 불교과 결합해 만들어진 장왕권현(자오곤겐) 등 권현(곤겐)들에 대한 신앙이 한순간 금지되었다. 우두천왕을 모시던 교토야사카 신사는 본래 불교의 기원정사에서 유래한 기온샤였는데, 신불분리령에 따라 이름도 바뀌고, 모시는 신은 우두천왕에서 스사노오로 바뀌었다. 문화재 파괴도 심했는데, 신체(神體)의 하나였던 신상(神像)은 불상 같은 불교식 잔재라고 파괴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나마 각 신사나 사찰에서 소중히 보관한 것이 많긴 하지만 불상에 비하면 전해오는 신상은 수가 대단히 적고 이름을 잃어버린 것도 많다. 신사에 있던 불탑 같은 불교식 건축물, 불상불경 등도 파괴대상이 되었다. 교토의 이와시미즈 하치만구, 키타노텐만구, 나라의 오미야신사, 가마쿠라의 츠루가오카 하치만구 등에 있던 문화재들 상당수가 이 시기 훼손되었고 불상이나 불경의 경우 몰래 인근 사찰로 옮겨진 경우도 많았다.

시골에서 음지로 들어간 신사들은 국가신토가 몰락하면서 다시 양지로 나오기도 했고, 사찰과 연계된 신사는 그 모습을 되찾은 경우도 있지만, 패전 이후 후유증으로, 혹은 젊은 세대가 잊어버려서 버려지는 신사도 많았다. 이때 숨겨진 신사들은 시골 청년들이 징병을 피하는 대피소 역할을 하기도 했다. 징병통지서에 불응하거나 직접 통지서를 갖고 징병대상자를 끌고 가려고 헌병이 마을에 나타나면 주민들이 대상자를 은폐된 신사에 숨겨두면서 징병을 피했다. 신사가 먹고 자는 숙소 역할을 해서 장기간 숨는 게 가능했기 때문이다.[19]

신사합사 정책은 일제 패망 이전에 지식인들이 성토하여 폐지되긴 했다. '지역전통을 단절시키고 지방민심을 동요시킨다.'는 이유. 그 정도로 큰 반감을 샀던 정책이다. 하지만 합사만 중단했을 뿐 이미 훼손이 저질러진 곳들을 복권하지는 않았다. 복권은 전후 국가신토 해체 후에나 이뤄졌다.

이런 맥락에서 전후 복권된 신사의 신도들 중에는, 신사본청이세 신궁 등으로 대표되는 주류 신토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전몰자나 위인을 모시는 신사에 대해서 사람을 신으로 모신 연혁도 기껏 백 년 좀 넘는 신사와는 역사와 격이 다르다는 자부심을 돌려서 말하는 것이다.[20]

5.1.1. 국가신토

국가신토는 메이지 유신을 거치면서 나라에서 천황 중심의 교단을 확립한 것으로, 그 사상적 기원은 근세시기 신토의 배불 이론을 극대화한 것이다. 근세의 국학자들은 불교를 외래종교로써 아니꼬워한 경우가 많았고, 그 국학자들의 제자들이던 유신지사들과 당시 신토계는 현실적으로 봤을 때 당연히 불교와 여타 종교를 억눌러서 일본 제국의 사상성을 강화하기 위해서 불교와 유교, 도교의 이론을 다량 흡수하는 동시에 신토의 우월성을 내세우기 위해 신토의 우월성을 일본인들의 역사에서 보이는 신토의 모습, 즉 '원초적인 일본의 종교'인 신토와, 그 신토의 신들이 갖는 단순하면서도 원초적인 순수성에 대한 극단적인 옹호를 통해 우월성을 드려내려 하였다.

이 과정에서 신토와 불교를 강제로 분리하는 신불분리 운동과 더불어 각지의 신사들을 국가신토 이론에 맞게 정립하고 재건축하는 행위가 이루어졌다.

국가신토 자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항복과 더불어 사라졌으나, 이때 성립된 신토 이론과 체계는 대체로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때문에 지금도 과거 한국일본의 교류가 많았던 곳의 신사들은 곧잘 진구황후 전설 내용을 대놓고 붙였다가 나중에 욕먹고 떼었다 말았다 한 적이 있었으며, 일본 학계에서는 '일본의 종교 중 가장 원초적인 것은 신토가 아니라 슈겐도'라는 주장도 한다.[21]

2차대전 시기 국가신토의 정립으로 일본에서 신토가 비로소 불교의 우위에 섰다고는 하지만, 이는 오래가지 못 한다. 이유는 일본 정부를 등에 업은 신토계의 계속된 억압[22]에 질린 불교계에서 신토계에 대해 "신토하고 제대로 교리/종교사 논쟁 한 번 붙어보자"며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했기 때문. 자연히 신토의 용어 상당수가 불교에서 유래했거나 빌려 쓴 게 많고, 교리와 이론의 논리적인 정밀함, 심오한 철학적 사유 구조마저도 불교나 그리스도교와는 상대가 되지 못하니 신토계에서는 할 말이 없었다. 여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본 정부에서도 자신들을 동양의 수호자라고 자처하면서 당시 '서양의 기독교에 대항할 만한 동양 종교를 찾아 내세우자!'는 계획을 실행 중이었는데, 이때 신토는 맞수가 안 된다고 불교를 선정했다. 특히 오카쿠라 카쿠조 같은 이는 불교를 적극 밀어주었다.

5.1.2. 교파신토

한편 국가신토로는 포괄되지 않는 신토 신앙이 있었다. 메이지 시대 전후로 생겨난 신토계 신종교들이 그것이다. 또한 국가신토로 표석이 안 되는 각 신사를 중심으로 하는 신사신토로 존재했다. 천리교, 오모토 등 신도 계통 신종교들은 메이지 정부에 협력하면서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 결과 총 13개 종파가 신도사무국에 등록되어 신도의 한 분파로서 미미하게나마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쳐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완전히 국가신토에 포섭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종종 국가에 의해 탄압을 받는 종교도 있고 그 결과 지금은 자신들을 신도계로 분류되길 거부하는 종교도 있다. 천리교가 왔다갔다 하고 오모토는 나중에 가입했기 때문에 교파신토 13파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14개 종파이다. 전후 신사본청의 설립 때 신사본청에 소속되지 않고 전국교파신도연합회를 구성했으나 이후 천리교와 금광교 등이 박차고 나가자 사실상 해체되었지만, 교세가 약한 몇몇 종교들은 지금도 서로 교류하며 지나는 중이다.

이처럼 교파신토는 크게 국가신토와 별반 차이가 없으나 창립자와 국가의 관계를 봐서 봐준 종파나, 신관 세습 금지 이후 세운 종파 및 신종교지만 살아남기 위해 신도사무국이나 교파신도연합회에 가맹하는 종교로 나뉜다.

5.2. 현대

국가신토는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과 동시에 해체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계승된 요소도 많다. 다시 말해 전후의 신토는 새로운 체제를 형성했지만, 그것은 국가신토를 상당 부분 계승하고 있다.

국가신토는 메이지 정부의 주도에 의해 급속히 형성되었고, 그 해체는 GHQ의 정책 즉 외압에 의해 단기간에 이루어졌다. GHQ의 신토 정책 중에서 결정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은, 신토와 국가의 연관성을 끊어버리고 법적으로 신토를 다른 종교와 동렬에 세운 점이다. 1945년 종교법인령이 공포되었고 다음해에 그 개정이 이루어졌다. 이로써 신토는 종교법인이 되어 불교기독교 각 종파 등과 법적으로 동일한 취급을 받게 되었다. 1951년에 공포된 현행 법규의 종교법인법도 이를 답습했다. 바로 이런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조직된 것이 신사본청(神社本庁, 진쟈혼쵸)이었다.

신사본청은 1946년에 신기원이 폐지된 직후에, 황전강구소, 대일본신기회, 신궁봉재회의 세 기관을 모체로 하여 조직되었다. 1996년 기준 전국 7만9천여 개소의 신사 중 99%가 신사본청 솔하에 들어와 있으며, 이세 신궁이 그 본종으로 자리매김되어 있다. 신사본청은 솔하 신사의 사무, 교학, 연수 등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각 도도부현에 있는 신사청은 신사본청의 지부조직으로 기능한다. 신사본청은 신사신보라는 기관지를 발행하며 솔하 신사의 기본적인 활동방침을 결정하지만, 개개 신사의 독자성은 일정 부분 유지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신사본청은 각 신사들의 연합체라고 이해할 수도 있겠다. 현대 일본 우파 일부에서 신토와 국가와 황실의 관련성을 강화시켜 태평양 전쟁 이전 체제를 복구하려는 움직임도 있는데 근대 일본의 국가신토와 맥락이 닿는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일부 신사에서 현저하게 나타나는 현상으로서 민속신앙적 측면의 강화를 들 수 있다. 예전과는 달리 국가의 관리를 받지 않게 된 전후 신사의 활동은 매우 자유롭다. 그리하여 많은 신사가 액년의 액땜, 결혼식, 자동차 정화의식, 지진제 등을 적극적으로 행하게 되었다. 나아가 신장제를 행하는 신사도 있다. 이런 의례는 매년 1차례의 대제와 월례제에 비해 잡제로 자리매김되어 있었는데, 어떤 신사의 경우에는 이런 잡제가 활동의 중심이 되어 있기도 하다. 그리고 전후의 사회변동 속에서 기업이 점하는 비율이 높아지면서 신사를 모신 기업이 늘고 있다. 기업과 신사의 관계는 의로 밀접한데, 가령 빌딩 건설 때 반드시 지진제를 거행한다. 또한 사내에 작은 사당이나 카미다나를 모신 풍경도 결코 낯설지 않다.

현대 일본인의 생활에 신사가 얼마만큼 밀착되어 있는가는 무엇보다 정월초에 행해지는 풍속에서도 잘 엿볼 수 있다. 가령 정초에 많은 일본인들은 현관에 ‘카도마츠(門松)’라는 소나무 장식을 하고 시메나와(注連繩)라 불리는 금줄을 걸어 카미를 맞이한다. 또한 일본인들은 하쓰모우데(初詣)라 해서 정초에 신사를 참배하면서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을 기념하는 것이 정해진 관례이다. 많은 일본인들은 새해가 되면 그해에 길하다고 여겨지는 방각의 신사나 사찰을 참배한다. 원래 전통적인 일본인들은 섣달 그믐날부터 각자의 우지카미 신사에서 보내면서 지난 1년 동안의 부정을 정화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오늘날에는 많이 간소화되어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면서 가족 전체가 동네의 신사를 참배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27] 어쨌든 이런 하쓰모데는 현재까지도 일본의 국민적 행사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성황 중이다. 그래서 이세 신궁이나 메이지신궁과 같은 격이 높은 저명한 신사에는 정월의 사흘 동안만 수백만 명이 참배하는 등, 매년 일본 국민의 70% 이상이 하쓰모우데에 참여한다고 한다. 나아가 세쓰분(節分)이라 불리는 입춘 전날에도 사람들은 액풀이를 위해 신사를 참배한다.

이밖에 오늘날 일본에서 장례식은 통상 불교식으로 하지만, 성인식결혼식은 신토식으로 거행하는 경우가 많으며,[28] 인생의 중요한 매듭마다 신사를 참배한다. 가령 아이가 태어나면 일정 기간(통상 남아는 32일, 여아는 33일)이 지난 다음 아이의 어머니와 할머니가 아기를 안고 신사를 참배하여 건강한 발육과 행복을 기원한다. 이를 ‘오미야마이리(御宮參)’라 한다. 또한 아이가 3세(남녀 공통), 5세(남아), 7세(여아)가 되는 해의 11월 15일에도 신사를 참배하는데, 이런 관례를 ‘시치고산(七五三)’ 축하연이라 한다. 뿐만 아니라 성인이 된 다음 남자 25세와 42세 때, 그리고 여자 19세와 33세 때 액땜을 위해 신사를 참배하는 민속적 신토 신앙도 아직 널리 행해지고 있다. 나아가 많은 일본인의 가정에는 신단(神棚, 카미다나)이 설치되어 있고, 거기에는 통상 각 신사에서 배포하는 오후다(御札)가 봉안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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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신사문화의 한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오후다는 일종의 부적으로서 명백히 도교적 습속의 흔적에 해당된다. 오마모리(御守)라고도 불리는 이 오후다에는 해당 신사의 이름과 함께 가내안전, 화재안전, 교통안전, 입시합격, 장사번창, 치병, 기타 취직이라든가 연인 혹은 운수라든가 복과 장수 등을 기원하는 글귀들이 적혀 있다. 일본인들은 각자 자신에게 필요한 오후다를 사다가 그것을 몸에 지니거나 또는 전술했듯이 집안의 신단에 안치한다든가 문 입구나 기둥 같은 곳에 붙여 놓기를 좋아한다. 그럼으로써 카미의 가호를 입을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사람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세면을 한 뒤 신단 앞에 정좌하여 가미와 조상신에게 감사인사를 올리고 하루의 안녕을 기원드린다. 그 밖에 입학, 진학, 졸업, 취직, 환갑 등의 날에 신단 앞에서 감사와 축하의 기원을 올리기도 한다.

개개인의 사적 생활공간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는 원자력 발전소공장고층빌딩주택과 점포 등을 건축할 때 공사 안전과 무사 완공을 천신지기에게 기원하는 의식인 지진제(地鎭祭) 또한 신도식으로 거행함이 관례로 굳어졌다.[29] 또한 신도는 노(能)가부키차(茶道)문화꽃꽂이ㆍ칠기공예 등 일본문화의 저류에 흐르면서 일본인의 정신생활의 심층에서 지금도 살아 움직인다고 말할 수 있다.

많은 현대 일본인들은 신토를 종교가 아닌 '문화'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신토가 일본인들의 관념에 종교적인 의미를 제거한 채 자리잡았고, 근대 국가신토의 영향이기도 하다. 대일본제국 헌법에서는 서양의 영향으로 종교의 자유를 규정했다. 그런데 또한 온 국민에게 국가신토를 강요한다면, 이는 헌법의 종교의 자유 조항을 정면으로 부정하게 된다. 따라서 이를 피하고자 메이지 정부는 '신토는 특정 종교가 아니라 온 일본의 문화이며 초종교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어떤 종교를 믿든 믿지 않든 일본인이라면 당연히 국가신토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토는 종교가 아니라는 주장이 여기서 나왔다. 지금까지도 많은 일본인들은 신토를 종교가 아닌 문화라고 여기며, 종교라는 말을 오직 체계화되고 조직화된 종교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협소하게 파악한다. 여러모로 유교적 규범이 내재화되어 유교가 종교보다는 문화로 여겨지게 된 한국과도 비슷한 셈.

아무튼 이러한 일본 신토의 정신성에 의하면, 진리란 어디까지나 공동체의 일상적 현실 그 자체일 뿐이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거기에는 현실을 넘어선 어떤 추상적 이념이라든가 보편적 법칙 혹은 불변성이나 영원성이라는 관념이 뿌리내릴 여지가 별로 없다. 다만 ‘지금 이곳’만이 그 자체로 진리일 뿐이다. 그래서 신토는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 대신 신토는 “바로 지금 현재 속의 신대(神代)”를 뜻하는 일본의 전통적 시간관념 즉 ‘영원한 지금(中今, 나카이마)’을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라고 말한다.

역사적으로 일본에서 불교중심적으로 신불습합이 되어 오랜 세월을 보냈기 때문에, 신토는 불교와 다른 내세관을 제대로 구축할 수 없었다. 그 대신 사후세계는 철저하게 불교에 맡겼고, 따라서 사찰승려들이 장례식을 전담하게 되었다. 살아있을 때에는 불보살들과 그 화신인 신토의 신들의 도움을 받고, 죽어서는 불보살의 힘으로 극락왕생을 바랐으니,[30] 신불분리 이전까지 일본인들의 삶과 죽음, 그 어느쪽이든 불교의 영향력이 짙게 배었으며, 신토는 불교 안에서 자리를 잡아야 했다. 그러던 것이 19세기에 갑자기 정부 주도로 신불분리가 되자 신토에서는 불교와 차별화된 삶과 죽음의 가치를 제대로 제시할 수가 없었다.

6. 여담

7. 대중문화 속의 신토

동방 프로젝트는 신사를 주요한 배경으로 하는데, 하쿠레이 신사는 누구를 모시는지 도통 알 길이 없다. 추측이 난무하기는 하지만.[35]

사우스 파크 크리스마스 특집에선 개리슨 선생에게 엄청 까였다.

또한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는 일본적인 신토를 소재로 한 판타지 작품이 많이 성행하고 있어 동양 판타지의 한 종류인 '음양 판타지'라는 장르가 존재하기도 할 정도이다.

신토가 일상생활과 많이 엮이다 보니까, 일본 어린이용 애니에서까지도 꽤 자주 나오는 편이다. 한국에서 로컬라이징이 되는 경우 로 바뀌는 경우가 많은데 약간 어색함은 있다. 사당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7.1. 신토를 소재로 한 작품

부분적으로만 신토 색채가 강한 작품은 취소선으로 처리한다.

8. 신토 관련 문화



[1] 일본에서는 보통 야요이 시대에 자연적으로 발생하기 시작해 고훈 시대를 거쳐 확립되었으리라 본다. 일본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히미코토요에 대한 기록을 근거로 초기 신토는 샤머니즘적 요소가 지금보다 강했을 것이라 한다.[2] 2019년 일본 문화청 종교연감(2018년 인구조사 결과)에 따른 수치이다. 2008년 NHK 조사에 따르면, 일반 신자의 경우 약 80%의 일본인이 신토를 전통 문화의 일부로 여기고 있다는 통계가 있었다. 그러나 일본은 세속국가이며, 자신을 완전히 '신토 신자'라고 여기는 일본인은 매우 적다는 결과도 나왔다.[3] '(신)' 자의 경우 한국 정자체의 자형과 일본 신자체의 자형이 다르다. 申 왼쪽의 부분을 신자체에서는 '示' 대신 'ネ'로 쓴다.[4] 천황이 되기 이전의 사항을 서술한 글.[5] 심지어 기독교 신자 가정에서 십자가 등을 안치하고도 적당히 '불단'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듯. 불단이 꼭 '부처'가 아니라 조상을 포함하여 영적 존재를 모시는 단을 통틀어 가리키는 말이 된 듯하다. 명백하게 신토식으로 조상을 모신 경우에는 조령사(祖霊舎)라고 부르기도 하는 듯하다.[6] 산이라는 자연물에 신격을 부여하고 종교적 신앙의 대상으로 삼은 점은 한국도 비슷하다.[7] 실존인물을 신으로 모시는 것은 일본 신토만의 특징은 아니고 한국이나 중국에도 똑같이 존재하는 관념이다. 한중일 공통으로 생전에 원한을 품고 죽은 자들이 신으로 모셔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강한 원념을 가지고 죽은 혼령의 경우 이 세상에 끼치는 영향력이 특히 크다고 믿었으며 이들의 원념을 진정시킴으로써 인간세상에 이들이 악영향을 끼치는 일이 없기를 바랬기 때문이다.[8] 유메마쿠라 바쿠의 소설 <음양사>에서는 주인공 아베노 세이메이의 입을 빌어 "물은 논밭을 기름지게 하고 사람들의 목을 축여주지만, 동시에 불어나 집을 쓸어가고 배를 뒤엎어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기도 하는 존재이고, 사람들은 그런 물을 두고 선하다 혹은 악하다로 나누지 않는다." 설명했다.[9] 이 점도 한국과 중국에서 모두 존재하는 전통적인 신에 대한 관념이다.[10] 현재 일본 신토에서는 외국계 도래신이나 외국 관련 신사들은 대부분 이름이 강제 개명되거나 신의 계보가 천황 일가에 유리하도록 뒤바뀌어 있다. 이는 민족주의 사상에 기초하여 천황 중심의 국가를 만드는 과정에서 형성된 국가신토의 폐해다. 대표적인 게 가라쿠니 신사로, 본래 가라쿠니를 한국(韓國)이라 썼던 것을 음이 같은 당국(唐國)으로 바꾸어 버렸다. 자세한 것은 국가신토, 일본 신화 항목이나 '일본신도사', '일본의 신사' 등에 나온다.[11] 샤머니즘, 애니미즘, 토테미즘 등[12] 마을 수호신인 골맥이신이나 서낭신 등에 조상이 좌정되는 경우가 많고, 무속에서도 조상신이 중시되는데, 죽은 조상들의 넋이 하늘에서 공부하고 수행하여 대감, 장군, 신장 등등의 명패를 받아 내려온다고 이야기한다. 심지어 일부 무당은 아예 죽은 조상은 전부 신이고, 무당이 몸에 싣고 감응하는 신이 장군신이나 산신령의 형태로 나타나도 이는 조상신이 그러한 모습을 취했을 뿐이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13] 공교롭게도 둘 다 한반도도래인과 관련이 있는 신사들이다. 해당 문서로.[14] 현 신토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태양신. 하지만 해당 항목에 나오듯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15]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부처/보살이 모습을 바꾼 것[16] 다이카 개신부터 가마쿠라 막부, 무로마치 막부까지[17] 유교의 영향을 많이 받아, 신토임에도 신에 대한 관념은 일반적인 신토와 달리 성리학의 음양이기론에 입각해 해석한다.[18] 프랑스의 방언 탄압이 그 예[19] 농업의 특성상 젊은 일손은 마을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노동력이고 메이지 유신 직후 세율 책정을 위해 농지정리 사업을 벌이면서 농가가 가진 농지를 뺏거나 과한 세금을 부과하는 경우가 많아 중앙정부에 내심 반발하는 농촌이 많았다.[20] 여기서 '사람을 신으로 모신 신사' 자체가 격이 낮게 여겨지는 건 아니다. 실존인물인 스가와라노 미치자네타이라노 마사카도를 모신 일본 각지의 덴만구나 도쿄간다묘진은 매우 격이 높은 신사로 여겨진다. 덴만구 자체도 사람을 신으로 모셨다고는 하지만 그 유래가 거의 천 년을 넘어가는 유서 깊은 곳도 상당히 많다. 간다묘진도 730년에 처음 지었다는 전승과 더불어 타이라노 마사카도를 합사하게 된 것이 14세기 가마쿠라 시대 말기의 일로, 이들에 비하면 야스쿠니 신사 등 근대 신사들은 정말 핏덩어리 축에도 못 낀다.[21] 본문 내용 작성 시 인용 자료 : http://cafe.naver.com/thaiinfo/8345, 일본인과 천황(카리야 테츠 저), 日本佛敎史-思想史としてのアプロ-チ-(末木文美士 저, 국내 번역본 제목은 "일본 불교사-사상사로서의 접근"),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김현구 저), 일본 신도사(무라오카 츠네츠구 저, 박규태 역), 청소년을 위한 동양철학사(임선영 저)[22] 대표적인 예가 메이지 초기에 일어난 폐불훼석(廃仏毀釈) 운동이다.[23] 원래 계(禊)라는 한자는 중국에서 불길한 것을 없애고자 물가에서 올리는 특정한 제사, 또는 씻는 행위를 가리킨다. 이 한자를 일본에서는 '미소기'라고 읽어, 부정을 없애고자 물로 씻는 행위를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한다. 한자 본래의 의미를 절묘하게 차용한 것이다.[24] 시라카와 신토(白川神道)를 전승해온 집안이다. 에도 시기 신토계의 주류였던 요시다 신토와 대립했지만, 시라카와 가문이 10세기 가잔(花山) 천황의 손자로부터 시작한 방계 혈족이기 때문에, 천황가의 제사를 담당하여 교세에 비하면 권위가 있었다.[25] 이노우에 자신은 종교적 가르침을 펴다가 사교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미야케섬(三宅島)으로 유배되어 6년 뒤(1849)에 만 58세로 죽었다. 그 후에 이노우에의 제자들이 스승을 교조 겸 신앙대상으로 삼아 종교단체를 이루었다.[26] 센(千)씨가 아니라 센케(千家)씨이다. 헷갈리기 좋다.[27] 그런데 제야의 종도 원래는 자정에 치던 것을 밤에 자야 되는데 종 울려서 시끄럽다고 민원이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보니 요새는 밤이 아니라 낮으로 앞당겨서 치는 사찰도 있다고.[28] 결혼식을 성당 찾아가서 하는 젊은층도 많다. 가톨릭 신자가 많은 나가사키현은 가톨릭식 결혼식(혼인성사)이 많고, 주일미군을 통해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오키나와현개신교식 결혼식이 많으며, 지리적으로 러시아와 가까운 홋카이도에서는 정교회식 결혼식이 열리기도 한다.[29] 한국에서 가게 개업이나 영화, 드라마 촬영을 앞두고 고사를 지내는 것도 이와 같다.[30] 일본인들이 장례식을 절에서 치르게 된 것은 일본에서의 기리시탄(기독교 신자) 탄압과도 관련이 있는데, 시마바라의 난 이후 기리시탄들을 단속하면서 실시된 데라우케(寺請)에 근거해 마을 단위로 인근 절에 자신이 그 마을 주민이며 기리시탄이 아님을 증명받아야 했다. 막부의 위임을 받아 데라우케를 맡게 된 사찰에서는 불자로 등록된 주민들의 장례와 묘지 관리를 해 주는 대신 대가를 받았으며, 이엏게 등록된 불자를 단카(檀家/단가)라고 한다. 마을을 옮길 때도 절에서 자기 종파의 신도임을 증명하는 증서를 발급받아 새로 이사한 마을의 절에 제출해야 했고, 장례 또한 자신이 단가로 있는 절에서 치르게 되어 있었다. 일종의 주민센터 역할을 절이 맡아서 했던 셈.[31] 총본산은 교토후시미이나리타이샤(伏見稲荷大社)[32] 총본산은 교토의 기타노덴만구(北野天満宮)와 후쿠오카현 다자이후시의 다자이후텐만구(太宰府天満宮). 다자이후는 스가와라노 미치자네가 좌천되어 갔던 곳이다.[33] 오진 덴노를 신체로 한다. 총본산은 오이타 현 우사 시의 우사신궁(宇佐神宮)[34] 동방구문구수에서 야사카 카나코가 시대에 맞춰 자신의 신덕을 바꾸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는 것은 여기에 기초한다.[35] 야쿠모 유카리내 신사라는 발언을 한 적이 있지만 이게 자신을 모신다는 뜻인지 물리적 주인이라는 의미의 '내 신사' 인지 이후로 자세한 것이 나온 적은 없다. 해당 문서로.[36] 조연 캐릭터 중 쥬몬지 카호의 집안(10씩 커지는 4대 집안중 신사의 쥬몬지)이 신사. 이를 배경으로 한 에피소드도 여러개 있다.[37] 여주인공 미야미즈 미츠하의 집이 신사이고 미츠하와 여동생 요츠하, 할머니 히토하가 무녀다. 신사에서 믿는 '무스비'가 타키와 미츠하 두 사람을 이어주며 몸이 서로 바뀌고 각종 에피소드를 겪으며 스토리 진행이 된다.[38] 주연 캐릭터 중 히이라기 자매네 집이 신사다.[39] 토키메 일족 관련 스토리가 신토 색채가 강하다. 이로하·우이 무녀 Ver.도 있다.[40] 일본 제국을 모티브로 한 사쿠라 엠파이어는 신토의 힘에 의존하고 있다.[41] 다만 이누야샤는 신토적 요소인 무당, 불교적 요소인 법사, 승려 도교적 요소인 신선 등이 뒤섞여서 순수 신토적 요소만 있는 건 아니다. 그래도 역발의 유라나 얼굴 없는 가면처럼 사물에서도 요괴가 생겨난다는 것을 보면 요괴는 신토적 요소가 있다고 할 수 있을 듯싶다.[42] 신토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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