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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32:32

무녀(신토)



1. 개요2. 설명
2.1. 기타
3. 서브컬처4. 실존 인물5. 가상 인물

1. 개요

한자로는 타 한자 문화권과 같이 라고 쓰나, 일본어로 '미코'(みこ)라고 훈독한다.

예스런 기준으로 보자면, 신탁을 받고 신들의 흥을 돋우는 노래와 춤에 익숙한 샤머니즘 예능인이다. 좁게는 신령, 생령, 사령을 불러내는 여성 무속인을 의미한다. 이를 도호쿠 지방에서는 '이타코(イタコ)', 오키나와에서는 '유타(ユタ)'라고 하는데, 이쪽은 (한국의 세습무를 더 닮은) 일반적인 미코와는 많이 다르며 한국의 강신무들에 더 가깝다. 넓게는 신사에 속해서 카구라를 추거나, 신사의 행사를 돕거나, 신관을 보좌하는 여성을 의미한다. 이쪽은 후죠, 미칸코, 마이히메라고 부르기도 한다.

2. 설명

일본 신사는 노동력이 필요한 경우가 많아서, 행사가 있을 때 모집하는 여성 도우미들도 무녀라고 부른다. 보편적인 이미지는 무당방울, 아즈사 활(梓弓)[1], 파마의 화살, 고헤이를 든 여인으로 묘사한다. 기본 복장은 하얀 상의(코소데)에 붉은 하카마를 입는다.

한국어에서는 무당 자체가 '여성 무속인'을 뜻하므로 무녀라는 호칭을 쓰면 안 된다는 낭설이 퍼져 있으나, 사실무근이다. '무녀'라는 단어는 한국에서도 전문 무속인들과 사회적인 행사에서 춤을 추는 여성 도우미들을 통틀어서 일컫는 상당히 흡사한 개념이다. 한국에서는 세습무의 전통이 파괴되고 강신무들이 전국으로 퍼졌으며, 나이 지긋한 할머니들이 무당을 맡는다는 점에서, 여러가지 불편한 요소를 배제하기 위하여 무녀라는 호칭에 더욱 엄격해졌다. 하지만 무녀는 한국에서도 흔히 쓰는 표현이다. 조선왕조실록에도 ‘무당’ 못지 않게 많이 등장하는 표현이 ‘무녀’다. 따라서 무녀란 표현을 쓰면 안 된다는 건 사실무근이다. 이 부분은 국립국어원의 문제도 있으므로 이 문서를 참고하는 게 좋다.

일본의 무녀는 제각각 백년 이상 이어져 온 민간 문화의 신사(성소)를 보조하는 도우미 역할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강신술을 이용한 주술적 비즈니스와 광대서커스의 기능이 추가되어 있는 한국의 무당과는 매우 다르다. 참고로 巫자는 여자에게만 쓰는 말이다. 한국에선 남자 무당인 박수는 박수 격(覡) 자를 쓰고, 일본의 남성 신토 성직자는 신주(칸누시)가 대다수이다.

젊은 무녀들은 대부분 기간 한정 아르바이트일 가능성이 높은데, 전통무용을 전공하는 여학생들이 많이 한다.

신사에 기거하는 무녀들은 대개 한국의 세습무와 비슷하다. 한국의 세습무들은 일본의 입주 무녀들과 비슷해서, 이들을 이해하면 일본의 진짜 미코 문화를 이해하기 쉽다. 즉, 마을 축제가 없을 때는 평범한 동네 아주머니들이다.[2]

한국인들이 잘 아는 무당에 가까운 일본식 무속인은 오소레잔에 있는 이타코들이다. 한국식 강신무와 다른 점은, 단순히 신병을 앓고 있다 해서 신내림 받고 이타코가 될 수 있는 게 아니라, 반드시 시각장애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이타코는 미코나 유타와 달리 젊은 층의 유입이 거의 없다. 이들은 '미코'와는 약간 거리가 있는 주술사들로서, 평균연령이 50대를 훌쩍 넘으시는 할머니들이다.

또한 이타코가 젊은층의 유입이 전무하다시피한 결정적인 이유가 있는데, 바로 이 이타코들이 양성되는 과정이 아주 큰 이유를 차지한다. 왜냐면 이타코들이 양성되는 과정이 무당이 되는 신병과 과거 조선시대에 행해지던 방법인 염매술과 비슷하게 행해지기 때문이다. 단 차이가 있다면 염매술은 아이를 이성과 본성이 혼재될 정도로 굶기고 억압해서 아이를 죽여서 사역하지만, 이타코들의 경우 이렇게 극한으로 내몰아서 생사를 오가는 상태에서 그 아이가 자신이 모실 신들을 만나게 하여 아이가 신의 이름을 부르면 아이는 이타코가 된다는 차이가 있다. 무녀도 본래는 신을 모시며 신탁을 받아 사람들에게 전하는 역할이었지만, 메이지유신 이후 다양한 무속의식들이 금지되어 버렸다.[3]

그 때문에 현대의 무녀는 신사에서 일하는 봉사자 혹은 직원 비슷한 개념이다. 일부에서는 한때 기생이나 창녀의 역할도 겸임했다는 설도 존재한다. 고대의 무녀는 샤먼적인 의미가 대단히 강해서, 아마테라스의 원형은 무녀일 것이라는 학설이 지지를 받는다.

오키나와의 무녀인 유타도 신내림을 받아 신탁을 전달한다. 그런데 이쪽은 본토 신토와 체계가 꽤 다른 류큐 신토다. 유타와는 별개로 류큐 왕국에서는 노로(ノロ)라는 여성 성직자를 임명하고 관리했다. 유타가 개인이나 가문의 의뢰를 받는 데 비해, 노로는 공무원의 성격이 강하다. 유타의 전통은 아직까지 이어지고 전화 서비스도 한다.

종종 알바 무녀들만 보고 일본은 민속신앙이 자유로운 줄 아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현실은 신사 중심 문화라고 보는 게 옳다. 메이지유신 이후 대다수의 주술의식은 금지되어 버려서, 일본의 전문 주술사들은 오히려 한국보다도 입지가 나쁘다. 일본에서도 강신술이 가능한 무녀들은 한국의 무당에 못지않은 힘겨운 의식과 학습이 필요하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이런 주술사들보다는 공공행사와 축제를 집전하여 돈을 버는 신사들이 더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4]

한국의 무당들처럼 소위 영능자(霊能者: 레이노샤)라 불리는 일본의 강신무들도 높으신 분들이나 사업가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돈벌이를 하는 경우가 있다. 종종 한국처럼 그 중에서도 사이비들이 돈을 뜯는 경우가 있다.

무녀와 관련된 사건도 종종 일어난다. 2008년 6월 13일, 일본 도쿄도 치요다구 나가타초(永田町) 히에신사(日枝神社)에서 신관 곤네기(権禰宜)가 무녀를 성폭행하는 사건이 벌어졌는데[5], 신성한 명문 신사에서 일어난 흉악범죄인데다, 신관을 강간범으로 바로 체포하지 않고 불구속 입건하면서 논란이 되었다. 일본 경찰이 증거가 명백한 강간범을 체포하지 않은 것은 이례적이고, 또한 도쿄지방검찰청이 기소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에 '신사에서 수사당국에 압력을 가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 이 신관은 도쿄도 신사청장이자 일본 최대의 우익단체인 일본회의의 대표위원으로, 굉장한 고위직이었다.[6] 이 신관은 징역 3년 실형 판결(구형은 징역 5년)을 받았다.

2.1. 기타

월경혈이 부정하다는 관념이 일본에서 오래도록 내려온 탓에, 세계대전 말기에 몇몇 무녀들은 근처 소학교에서 초경 이전의 어린 여학생을 골라 무녀 수업을 시키기 했다. 또한 무녀가 딸을 낳으면 무녀로서의 힘이 점차 약해진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마 딸이 무녀의 후대를 이어간다는 의미인듯.

3. 서브컬처

요즘은 모에 요소의 하나로서 청순함을 어필하여, 노출도가 전무함에도 불구하고 열렬한 마니아층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일본 만화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상당히 자주 등장한다. 일상물에서도 생각보다 흔하게 등장하며, 각종 일본식 판타지 장르에서는 음양사와 함께 준 필수요소 취급. 여기서는 대개 활을 쏘는 궁수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일본 신토의 전통 문화 중 하나인 파마의 화살의 영향이다.

파일:external/nipponsharemono.net/mikoshozoku7.gif

현재 무녀의 옷은 메이지유신 이후 개량된 형태이다. 물론 아직도 옛 무녀복을 고수하는 신사가 있지만 매우 드물다. 옛 무녀복의 예를 들어보자면, 이누야샤키쿄우가 입는 옷 정도가 있다.

무녀복의 원형은 헤이안 시대 의복인 쥬니히토에이다. 쥬니히토에에 맨 먼저 입는 속옷 겸 겉옷인 코소데와 하카마가 무녀복으로 변형된 것이다. 하카마가 붉은 이유는 쥬니히토에에서 결혼한 여성이 붉은 하카마를 입던 것으로 유래하는데, 이는 부정을 타지 않게 하기 위한 주술적 의미이다. 실제 쥬니히토에의 속옷인 하리바카마[7]는 미혼 여성은 팥죽색에 가까운 짙은 자주색, 기혼 여성은 붉은색을 입는데, 월경혈이 비쳐도 금세 티가 나지 않도록 미혼자는 짙은 색을 입는다고 한다. 월경혈을 부정한 것으로 생각하는 주술적인 배경에서 기혼자의 붉은 색이 무녀가 입는 색으로 정해졌다고 보는 것이 좋다.

그리고 매체에서의 성인 무녀 캐릭터들은 가슴을 불룩하게 그리는 경우가 매우 많은데, 사실 무녀복은 헐렁한 옷이라 가슴이 비정상적으로 크고 허리 부분을 묶거나 조이지 않는 한 그렇게 드러나지 않는다. 게다가 색기를 위해 어깨도 노출시키고 긴 치마를 짧게 줄여 미니스커트로 만들지만, 실제 신사에선 아무리 사람 모이는 게 좋아도 일단 종교적인 복장인 만큼 그런 건 하지 않는다.[8]

그리고 아침과 그 이후 일과시간에 신사 마당을 혼자나 두어명이 쓸거나 여기저기 닦기도 하는데, 현실에서는 전문 무녀를 상시 고용 중인 제법 큰 신사(신궁)에서나 볼 수 있으며, 그조차도 무녀 혼자서 쓸고 닦고 하기엔 양이 너무 많기에 한번에 할 때 여럿이 한다. 규모가 작은 신사의 무녀는 상술했듯 재정 때문에 기간제 알바를 자주 하며, 동네 주민들이 자원봉사하듯 와서 잡담을 곁들이며 하는 경우가 많다.

국내에도 정발된 <신사사정>이라는 4권짜리 만화를 보면, 현실의 무녀와 신사에 대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관심있는 사람은 찾아보자.

서브컬처의 영향으로 무녀에 대한 환상 혹은 모에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은 것과는 별개로, 무녀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한국에서 무속인들을 바라보는 인식과 마찬가지로 썩 좋지만은 않다. 한때 직업 무녀를 했던 아내를 둔 남편의 이야기(일본어) 현직 무녀가 직접 답해주는 익명게시판(일본어) 이런 링크들을 참조해보면, 일본에서도 한국무당마냥 무녀를 '특이하게 바라보는' 관점이 광범위하게 퍼져있다고 할 수 있다. 첫번째 링크를 보면, 애니메이션의 무녀 이미지를 좋지 않게 보고, 천황을 천황이라 안 부르고 반드시 '금상폐하'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래서 무녀 관련 애니메이션이나 천황 관련 시사프로그램은 보지 않는다고 한다...

4. 실존 인물

5. 가상 인물

무녀가 메인 주인공, 혹은 중요 캐릭터, 혹은 무녀가 주요 소재인 작품은 진하게 처리.

5.1. 동방 프로젝트

작중 언급이 있는 하쿠레이의 무녀
하쿠레이 레이무 13대 무녀 선대 무녀


[1] 의식용으로 쓰이는 신성한 활. 재액을 쫓는 파마의 화살과 같이 묶이기도 한다.[2] 한국의 무당 중에서도 본래 주류였던 세습무들은 신을 몸 속에 모시는 것이 아니라 마을의 신체에 모시기 때문에, 평소부터 무복 같은 주술복장을 입거나 귀신을 몸속에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 따라서 강신무들에 비하면 평범하게 생활한다.[3] 그 이유가 뭔고 하니, (인간이자 살아있는 신인) "현인신 천황 폐하가 엄연히 계시는데 신과 통한다니 그 무슨 소리냐!" 하는 논리였다. 국가신토의 폐해.[4] 물론 무당의 입장에서는 혼자 버는 돈이 줄어들겠지만, 사회적인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이렇게 주술행위가 적은 신사 중심의 문화가 더 긍정적이라고 보기도 한다.[5] 신사 내 여성 탈의실에 몰래 들어가 저질렀다고 한다.[6] 신관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일본 신관은 신분과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한다.[7] 자락이 긴 하카마[8] 비슷한 사례로 수도복 역시 창작물에서 이런 식으로 마개조를 당한다.[9] 본인 루트에서 축제 의식에 참여하기 위해 무녀복을 입지만 무녀 캐릭터는 아니다.[10] 엄밀히 말해 여우신이며, 모에 요소로서의 무녀복을 입고 있을 뿐이다.[11] 동방 프로젝트의 흥행 이후로, 레이무는[12] 사나에는 카제하후리로, 엄연히 말하면 무녀가 아니다.[13] 귀축왕 란스, 전국 란스[14] 엄밀히 말하면 미즈키가 씌인 비즈키이다.[15] 2019년 신년 스킨 한정[16] 후루데 리카, 후루데 오우카[17] 일단 무녀복을 입은 채 돌아다니지만 사실은 신주이다.[18] 어렸을 때 한정.[19] 33화에서 아키노리에게 배웠을 때 한정.[20] 이쪽은 현실의 무녀 포지션인 성인 무녀들이 무녀가 아닌 신관으로 불린다. 후술할 아키가 신관에 해당한다.[21] 마지막에 무녀로 눌러앉게 된다.[22] 학교 자체가 일본풍이다.[23] 1세대와 그 리메이크판의 포켓몬타워노랑체육관에서만 등장하는 고스트 타입 트레이너. 원문 표기는 신관을 뜻하는 키토우시([ruby(祈祷師, ruby=きとうし)])로 무녀와는 좀 다르지만 붉은 하카마에 고헤이를 들고 있는 젊은 여성의 모습으로 무녀의 이미지가 강하다.[24] 2세대와 그 리메이크판의 인주체육관과 노랑체육관에서만 등장하는 고스트 타입 트레이너. 원문 표기는 이타코(イタコ)로 염주를 들고(리메이크판은 양초) 귀신을 부르는 노파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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