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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4 11:24:14

백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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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북면 대청봉 대승폭포 십이선녀탕계곡 백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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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의 백담사

1. 개요2. 역사3. 소실과 재건4. 입장료 폐지5. 전설6. 교통편
6.1. 백담입구시외버스터미널 노선 시간표
7. 백담사 가는 방법8. 외부 링크9. 둘러보기

1. 개요

한자: 百潭寺 / 로마자: Baekdamsa

강원특별자치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설악산 기슭에 위치한 사찰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 본사 신흥사의 말사이다. 설악산 깊숙이 있다.

2. 역사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만해 한용운이 머물며 여러 저작을 남긴 로 출가한 후 이 절에서 잠시 머물며 수많은 저서와 시를 남겼다.[1] 다만 한용운의 인지도는 높았지만 백담사라는 절 자체의 인지도는 그렇게까지 높진 않았다.

이 절이 진짜로 유명해진 이유는 따로 있는데 바로 전두환, 이순자 부부가 '5공 청산'의 일환으로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88년 11월 23일[2]부터 1990년 12월까지 약 2년 동안 자의반 타의반 유배 생활을 하면서 전국적인 명소가 되었기 때문이다.[3] 사실 1980년 10.27 법난[4]의 원인이 전두환이었음을 생각하면 얄궂고도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물론 전두환은 몰랐다고 박박 우겼지만.[5] 전두환은 자신이 머물렀던 백담사 내 화엄실에 그의 옷과 유배 당시 사진을 놓고 '대통령 왔다감' 투의 문구를 걸어서 유배지를 관광지로 만들기도 했으며[6] 전두환 역시 은거생활 중에도 불자들과 행락객들을 만나 인사를 하고 법회를 열어 강연을 하기도 하는 등 자신의 이미지 메이킹에 써먹기도 했다.[7][8]

3. 소실과 재건

파일:attachment/1228378753_baekdamsa.jpg

신라 선덕여왕 16년(647년)에 한계리에 자장율사가 세우고 한계사(寒溪寺)라고 하였는데 소실되어 다시 세웠는데 또 불에 타는 식으로 몇 번이나 다시 세웠더니 불에 타기를 반복하여 절집 160여 칸이 모두 잿더미가 되었다. 6.25 전쟁으로 모두 불탄 것을 1957년에 다시 세웠다.

하지만 백담사가 인터넷에서 재조명을 받은 것은 짤방 한 장 때문이었다. 중간에 해당 사이트 편집자의 불찰로 중복된 부분이 있긴 하지만[9] 이를 감안하더라도 총 8번이나 소실되고도 계속 복구되었다는 점에서 근성을 느낀 네티즌들이 많았다.

사실 백담사 말고도 한국의 들 중 저렇게 여러 번 불타고 다시 지어진 곳들이 제법 있지만 아무래도 전두환이 기거했다는 사실로 유명한 절이므로 가중치를 얻은 듯하다.

짤방에서도 나오듯 사실 『백담사』또한 원래 명칭이 아니다. 소실되어 중창할 때마다 사명(寺名)을 바꾸었는데 『백담사』 는 11번째 이름이다. 하도 에 자주 소실되어 중창하기를 계속하니 이름만이라도 기운 가득하게 지어 화기를 억제해 보려는 비보풍수적 처방이다. 백담(百潭)이 '연못 백 곳'을 뜻한다. 백담사 이외의 이름들도 삼수변이나 이수변, 비 우 부수자 등 어떻게든 물과 관련된 이름들이다. 하지만 그러고도 또 불이 났고 다시 지었다.

4. 입장료 폐지

백담사는 다른 사찰들에 비해 이른 시기인 2007년에 입장료를 폐지하였다. 백담사도 엄연히 보물급 문화재를 보유한 사찰인데도 문화재 관람료를 받지 않음은 굉장히 이례적이다.

5. 전설

낭천현(狼川縣: 오늘날 강원도 화천군)에는 비금사(琵琴寺)란 절이 있었는데, 주변 산에 짐승들이 많았으므로 사냥꾼들이 자주 찾아와 사냥하였다. 이런 살생 때문에 터가 부정해졌지만, 비금사 승려들은 그것을 모른 채 샘물을 길어 부처에게 공양하였다. 산신령이 이런 부정함을 싫어하여 어느날 밤 신통력으로 비금사를 설악산의 대승폭포 아래 옛 한계사(寒溪寺) 터로 옮겼다. 승려들이 이튿날 일어나 보니 절은 틀림없이 비금사인데 주변 지형은 생판 달라져 있었다. 어찌된 일인지 몰라 우왕좌왕하는데 갑자기 관음청조(觀音靑鳥)가 나타나 알려주었다.

"낭천에 있던 비금사를 옛 한계사로 옮겼느니라."

춘천 부근의 절구골, 한계리의 청동골이란 지명이 있는데, 절이 옮겨질 때 청동화로와 절구를 떨어뜨린 사연으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백담사는 그 뒤로 여러 번 불이 나서 위치를 옮겨가며 재건하기를 반복하였다. 또한 사찰의 명칭 또한 자주 바꾸었다. 조선 정조 7년(1783)에 현재의 '백담사'라는 사명을 지었는데, 여기에도 전설이 있다.

당시 주지승이 꿈을 꾸었는데, 도포를 입고 머리가 백발인 산신령이 나타나서 "대청봉에서 절 터까지 웅덩이가 몇 개나 되는지 세어보라." 하였다. 날이 밝자 주지가 일어나 꿈에서 들은 대로 산에서부터 절까지 물 웅덩이 수를 세어보았더니 꼭 100개였으므로 절 이름을 백담사(百潭寺)라고 지었다 한다.

6. 교통편

자동차는 46번 국도, 대중교통은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 있는 백담입구시외버스터미널을 이용하면 된다. 원통터미널에서 출발하여 고성 진부령까지 가는 시내버스를 이용하여 백담입구터미널로 올 수 있지만, 1일 10회밖에 안 들어오므로 반드시 다이어를 숙지해야 한다. 용대리 백담마을 백담사입구에 주차장이 있는데, 이곳부터 백담사까지는 걸어가거나 용대향토기업에서 운행하는 마을버스[10]를 이용해야 한다. 버스는 30분 간격으로 운행하지만 주말 등 성수기에는 빗자루질을 하기 때문에 빨리 탈 수 있는 편이다. 동절기에는 버스를 운행하지 않는다. 백담사 입구부터 백담사까지 거리는 7km, 걸어서 2시간 정도다. 2022년 기준 버스 탑승료는 편도 2,500원인데 약 10~15분 정도 걸린다.

길이 외길인 데다 한쪽은 낭떠러지라 백담사에서 내려오는 버스와 백담사로 향하는 버스가 마주쳐 후진하거나 살짝 버스를 비틀어 비켜주는 일이 자주 있다. 이때 어쩔 수 없이 한 버스는 낭떠러지 쪽으로 차체를 갖다대야 하기 때문에, 손님 입장에선 마치 버스가 떨어질것만 같은 느낌을 받곤 한다.[11] 다만, 당연한 얘기지만 이미 이와 같은 경험을 수백 수천 번 이상 한 버스기사들은 태연하게 운전한다.

백담사에서 출발할 때 택시 이용은 포기하는 것 좋다. 카카오택시로 잡히지도 않을 뿐더러[12] 백담사입구 관광안내소에서 가르쳐주는 콜택시를 불러도 "차가 없다"고 답이 오는 경우가 부지기수고 다른 지역과 달리 콜이 도착해서 승객을 태운 시점이 아니라 콜 받고 출발한 시점부터 미터기를 찍고 와서 바가지를 씌운다.## 다만 백담사 매표소에서 도보 약 900m 거리에 있는 백담입구시외버스터미널이 의외로 운행편수가 많으므로, 백담입구시외버스터미널까지 걸어간 다음 시외버스를 타고 가려는 최종 목적지에서 가까운 터미널로 이동하는 것을 추천한다.

미래에 춘천속초선 백담역 신설이 예정되어 있다.

6.1. 백담입구시외버스터미널 노선 시간표

모든 노선이 경유편이므로 기재된 시간과 실제 도착시간이 다를 수 있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버스가 오면 정해진 출발시간까지 기다리지 않고 승객 다 타면 바로 출발하므로 기재된 시간보다 10~15분 전에 미리 가서 기다리는 것이 좋다.
버스 승차권은 속초 방면 정류장 앞에 있는 매표소에서 구매하면 된다.

7. 백담사 가는 방법

백담사는 자연보호를 위해 일반 자동차 진출입을 절대금지하고 있다(백담사 사무 차량, 소방, 구급차만 가능.). 백담사입구 백담마을에 있는 백담사관광안내센터에서 주차를 하고나서 두 가지 방법으로 가야한다.

가급적이면 운임이 들더라도 셔틀버스를 타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8. 외부 링크

9.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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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 유명한 님의 침묵이 이 절에서 탄생했다. 한용운은 이 절에 머물면서 화엄실 등 절 안에 있는 건물의 이름을 직접 지었고 백담사에서도 만해 한용운 기념관을 짓고 한용운이 머물던 건물을 만해당이라고 이름짓는 등 한용운 선생을 기리고 있다.[2] 공교롭게도 전두환은 이날로부터 정확히 33년 후인 2021년 11월 23일에 사망했다.[3] 물론 전두환이 백담사에서 그냥 은거만 하지는 않았다. 절 옆에 비닐하우스를 지어 관광객들을 상대로 불교와 자신을 주제로 강연하고 단체 관광객들이 요청하면 센터에 앉아서 사진도 같이 찍어주는 등 서비스도 곧잘 해줬다고 한다.[4] 승려들의 대부분을 체포, 구금하여 삼청교육대 수준으로 핍박했다. 이 때문에 불자는 가히 반감되었다.[5] 물론 전두환이 백담사에 온다는 이야기가 돌자 학생들과 젊은 승려들이 시위를 하다가 백골단에게 얻어맞았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있다.[6] 공교롭게도 이 화엄실은 한용운이 머물던 곳이기도 하다. 화엄실의 위치 자체도 만해당 안에 위치해 있다. 여담으로 전두환으로 인해 백담사의 인지도가 급상승하자 백담사 측에서는 한용운의 호인 만해(卍海)와 전두환의 호인 일해(日海)를 따와서 바다를 품은 절이라고 홍보를 한 적이 있다.[7] # 메가쇼킹탐구생활 2에서 "맑은 물 가득한 백담사에서 유일하게 물이 흐린 곳 같다."고 깠다. #[8] 사실 노태우민주정의당이 처음에 권유한 것은 백담사가 아니라 고향인 합천으로 낙향하는 것이였다. 합천 자체도 시골이거니와 절을 선택한다면 해인사까지 있어서 충분히 일리가 있었지만 해인사가 워낙 유명한 고찰인 데다 전두환 측에서 속죄를 하고 있다는 연출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람의 발길이 뜸한 절을 찾게 되었고, 그 결과 뽑힌 장소가 독립운동가가 머물렀던 절이면서도 대중에게 알려져있지 않은 백담사였다고 한다. 백담사의 구조 자체도 출구가 딱 하나밖에 없는 늑대굴 같은 구조라서 뜬금없이 난입하는 기자들이나 행인들을 막아서기 딱 좋았던 것도 한 몫 했다고 한다. 실제로 전두환이 머물던 시절의 백담사는 사복경찰과 전·의경들이 24시간 철통보안을 지켰었다고 한다.[9] 6째 줄 '신라 진덕여왕' ~ 11째 줄 '절터 위 20리' 부근이 중복[10] 한정면허 마을버스 노선이다.[11] 실제로 외마디를 지르는 손님들도 간혹 있다.[12] 애초에 인제군 자체가 카카오택시 이용이 사실상 불가능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