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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4 15:23:49

이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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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이상아
李尙雅 | Lee Sang Ah
<colbgcolor=#ff3366><colcolor=#fff> 본명 이민주[1]
출생 1972년 2월 14일[조기입학] ([age(1972-02-14)]세)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촌동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본관 덕수 이씨
신체 163cm, 45kg, 235mm, B형
학력 서울신용산국민학교 (졸업)
용산여자중학교[3] (졸업)
안양예술고등학교 (연극영화과 / 졸업)
서울예술전문대학 (방송연예과 / 전문학사)
학점은행제 (미용학 / 학사)
가족 할아버지 이종극[4]
아버지 이경식[5], 어머니 박명숙, 숙부 이일[6]
언니 이상은, 여동생 이상희[7]
자녀 딸 윤서진(2000년생)[8][9]
소속사 후이엔이(후엔터테인먼트)
데뷔 1984년 KBS 드라마 <산사에 서다>
종교 개신교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활동3. 출연작
3.1. 드라마3.2. 영화
4. 여담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배우. 1984년 중학교 1학년 때 KBS 드라마 '산사에 서다'로 연기자 데뷔하여,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 하이틴 스타로 이름을 날렸다.

2. 활동

파일:external/news.hankyung.com/2008022507507_2008022509461.jpg
파일:external/photo-media.hanmail.net/20060824123810.858.1.jpg

1970년대, 80년대는 그야말로 가위질로 대변되는 검열의 시대였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당시 10대들은 암암리에 테이프LP, 영화 등을 소비하면서 문화 소비층이 되었고 이런 트렌드에 80년대 중후반 일약 스타덤에 오른 배우가 이상아였다. 당시 남자 중고생들의 일명 3대 여신이던 소피 마르소, 브룩 쉴즈, 피비 케이츠의 대항마로 떠오른 한국 여배우가 이미연과 이상아였다.[10]

하지만 그녀는 어릴 적 연기 인생에 고난이 많았는데, 1985년 영화 '길소뜸'에서는 당시 중2였는데 임권택 감독의 협박[11]으로 미성년자 베드신 및 알몸 노출씬을 찍었다고 한다.#[12] 그런데 영화에선 뒷모습만 노출되었다. 이후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하이틴 스타로서 큰 인기를 얻으며 이름을 날리게 된다. 1970년대에는 이영옥, 임예진, 강주희 등이, 이후 이상아와 비슷한 시기에는 강수연조용원, 최수지, 김혜수, 하희라 등이 하이틴 스타로 크게 활약을 했다.[13]

이후 영화 '비오는 날의 수채화', '너와 나의 비밀일기'를 비롯해 특히 대학생들한테 큰 인기를 끌었던 MBC 드라마 '마지막 승부'에 출연하면서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아이돌 스타 못지 않게 최고의 인기를 얻으며 각종 광고에 등장했다. 1997년 동갑내기 개그맨 김한석과 결혼했으나, 1년 뒤 이혼해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그 후 방송활동이 뜸했다가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와 SBS 아침 드라마 '순결한 당신' 등으로 복귀하였다가 다시 활동이 뜸해졌다. 이 시기에 성형외과 코디네이터로 근무했다는 루머가 들리기도 했으나, 나중에 본인이 "병원 광고모델로 활동했을 뿐 방송계를 떠난 것은 아니었다"고 해명했으며, 9년 공백기 끝에 2015년 연예계로 복귀하였다.

3. 출연작

3.1. 드라마

3.2. 영화

4. 여담



[1] 2005년에 '이민주'로 개명했으나 1년 뒤인 2006년부터 원래 이름인 '이상아'로 활동명을 변경했다. 출처[조기입학] 1987년에 용산여중을 졸업했다.[3] 現 용강중학교[4] 제6대 국회의원(전국구), 제3대 민주공화당 정책위원회 의장[5] 1926.3.27~?. 평안남도 강서군 출생. 영화감독 제작자 작가. 서울사범학교 본과 3년 졸업. 1956~1957년 유현목 감독 밑에서 조연출 활동. 소낙비(1958) 연출, 별들의 화원(1960) 제작 각본 연출, 춘향전(1961) 조연출, 비단이 장사 왕서방(1961) 제작.[6] 본명:이진식 (1932.1.22~1997.1.27) 평안남도 강서군 출생. 전 홍익대 교수, 특파원 출신 미술평론가. 프랑스 문화예술훈장(1995) 보관문화훈장(1999). 저서 : 현대미술의 시각(1985), 서양미술의 계보(1992)[7]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학 학사. 필라테스 강사. TV조선 엄마가 뭐길래 63회 출연(2017.1.26)[8] 2018년에 고3이었던 딸의 인스타그램의 팔로워가 6만 명이 넘는 수여서 화제가 되었다.#[9] 2번째 남편 소생.[10] 소피 마르소는 1966년 11월생, 브룩 쉴즈는 1965년 5월생, 이상아는 1972년 2월생으로 훨씬 더 앞선 세대지만(세 여배우 모두 이상아가 데뷔하기도 전에 이미 고등학교를 졸업한 성인 연기자들이었다), 당시에는 외국 영화가 몇 년 뒤에 한국에 들어왔다. (물론 일본 영화 잡지를 통해 개봉 전 먼저 알려지긴 했다.) 참고로 1970년대 후반에 이미 유명해진 두 여배우에 비해선 조금 늦게 데뷔한 피비 케이츠의 경우에는 고교 때 데뷔한 두 여배우와는 다르게 파라다이스를 찍던 1981년에 이미 줄리아드 스쿨을 다니던 대학생이었다. 중학생 때부터 본격 연기 생활을 한 이상아는 고교생 때부터 제대로 활동한 이미연과는 같은 학년이자 5개월 차이가 나며, 전성기는 좀 차이가 난다.[11] 대본도 안 주고 연기를 시키다가, 필요한 시점이 되자 전라 베드신 안 찍으면 찍은 장면 다 물어내야 된다라고 협박했다고 한다.[12] 당시 사회 인식이 얼마나 뒤쳐졌었는지 보여주는 한 방증. 21세기인 지금엔 꿈도 못꿀 일이다.[13] 비슷한 연배인 최진실은 성인이 되어 연기를 시작했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하이틴 스타는 아니었다. 나이 차는 3년 최진실이 많지만, 이상아가 널리 알려진 시기가 더 빨라 5년쯤 차이가 난다.[14] 특히 여동생은 예체능, 그것도 무용을 전공했다.[15] 출처: 두시탈출 컬투쇼 2013년 4월 13일 방송[16] 나이는 같아도 이상아는 아역스타 출신으로 연기경력이 길어, 당시 성인이 되어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심은하보다 훨씬 인기와 인지도가 높은 선배였다. 심은하는 사실 데뷔 1년차 배우로 데뷔가 몇 달 되지 않아 단역 정도만 전전하고 있었다.[17] 심은하와 비슷한 신인이었던 신은경도 이 드라마에서 심은하처럼 비중이 높지는 않았어도 조연을 했고 드라마의 대히트로 인지도를 올려, 이후 종합병원이라는 드라마에 주요 배역으로 섭외되며 스타가 되었다. 마지막 승부에 출연한 당시 인지도 낮은 신인배우들은 마지막 승부로 인해 잘 나가게 된 경우가 많았다.[18] 딸의 돌잔치 사진만은 남겨 두고 싶어 딸의 돌잔치가 끝나자마자 바로 이혼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