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0-03-15 15:35:25

남희석

남희석의 주요 수상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 TV부문 남자 코미디연기상
김형곤
(1998)
남희석
(1999)
심현섭
(2000)
}}}||
파일:external/imgnews.naver.com/201504291707601114_1_99_20150429171507.jpg
이름 남기성 → 남희석(南希奭)[1]
출생 1971년 7월 6일 ([age(1971-07-06)]세)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
본관 의령 남씨
신체 180cm, 78kg, A형
가족 아버지 남성우, 어머니
1남 3녀 중 첫째, 배우자 이경민(1975년생)[2]
딸 남보령(南保寧)(2003년생)[3], 남하령
데뷔 1991년 KBS 제1회 대학개그제
종교 개신교
학력 안양예술고등학교 연극영화과 (졸업)
서울예술대학교 광고창작과 (전문학사)
단국대학교 연극영화과 (중퇴)
소속 보령기획→에이나인미디어(합병 후)
취미 낚시, 농구관람
특기 육상
별명 하회탈
홈페이지 파일:홈페이지 아이콘.png
SNS 파일:트위터 아이콘.png[4], 파일:페이스북 아이콘.pn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png

1. 개요2. 여담3. 출연 프로그램

1. 개요

대한민국코미디언, MC.

유행어는 "바라바라바라밤~"

고등학생 시절 자니윤 쇼에 나가 자니 윤성대모사를 하여[5] 주목 받았다가 KBS 7기 개그맨[6]으로 발탁, 코미디 프로그램 '한바탕 웃음으로'에서 데뷔했으며, 이 당시 봉숭아학당에서 하회탈을 연상시키는 얼굴 표정으로 자신을 부각시켰다. 다만 콩트 코미디에서의 활약은 초반의 1년 정도이고 바로 군대를 가게 되어 경력 단절. 복귀 후 SBS 예능에서 활동 시작. SBS좋은 친구들을 시작으로 점차 MC계로 진출하여 현재는 한국 방송가의 주요 MC 중 1인이 되었다.

성실한 타입으로 방송가나 CF 시장에서는 호감형에 든다고 하며 롯데리아의 CF 모델이 되었을 때에는 여러 아이디어를 제공해 광고기획사에서 '진정한 프로'라고 인정을 했고, 그 채택된 아이디어는 대박을 쳤다.

최고의 전성기는 SBS의 "좋은 친구들", "남희석 이휘재의 멋진 만남"을 진행할 때로 보는 편이 많다. 실제 당시의 두 프로그램은 예능 프로그램 시청률 1, 2위를 다투었으며 남희석도 개그맨 인기순위 최정상에 있었다.

이 당시 남희석과 그의 대표 예능인 좋은 친구들, 멋진 만남이 보여준 순간적인 인기와 임팩트는 탁재훈과 상상플러스가 보여준 2000년대 중반의 임팩트와 상당히 흡사했다. 특히 2000 ~ 2001년도에 보여준 그의 순간적인 인기는 서서히 식어가긴 했지만 여전히 압도적인 원톱이었던 김국진을 위협했을 정도였다. 다만 한창 전성기를 누릴 시기에 스트레스로 안면마비가 발생하여 약간의 공백기를 가지게 되었고 그 사이에 비슷한 클래스였던 신동엽, 김용만이 치고 들어오면서 짧은 전성기가 끝나게 된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리얼 예능으로 대표 되는 유강체제가 들어서면서는 최정상에서 완전히 내려왔다.

이후 많은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지만 그만큼의 폭발력을 보여주지는 못했고, 결혼하고 나서 생긴 약간의 공백기[7]에 엄청난 기세로 후배들이 치고 들어오며 잠시 자리를 잡지 못했다. 이후로는 외국인 & 어르신 전문 프로그램 MC로 이미지를 잡아가고 있다.

또 공백기 이후에 예능의 흐름이 스튜디오와 토크가 아니라 사실감과 현장으로 바뀐데 반해 남희석 본인은 체력문제나 진행자로의 성향 때문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하차하거나 하면서 "리얼리티에 약하다"라는 평을 듣게 되었다.[8]

특히 한국에 사는 외국인의 모습을 다루는 프로그램의 MC를 보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외국인에 대한 편견을 없애보려는 본인의 의사도 어느 정도 있다고 한다.[9] 트위터에서는 농촌과 농민을 살려야 나라가 산다는 언급을 자주하고 있다.

2009년에 코미디쇼 희희낙락으로 간만에 개그계에 복귀했지만 프로 자체가 저조한 시청률로 쓸쓸하게 사라지면서 흑역사가 되었다.

2. 여담

3. 출연 프로그램



[1] 본래 이름은 의령 남씨 26세손 '기(基)O' 항렬에 맞춰 지은 남기성인데 점괘에 그 이름으로 계속 살면 19세에 불 타 죽는다는 말을 듣고 개명했다. 관련 인터뷰 기사. 참고로 19세에 진짜 불이 났었다고.[2] 치과의사로 알려져 있다.[3] 그의 태어난 고향인 '보령'을 따왔다.[4] 2016년 이후로는 업데이트가 없다.[5] 이 당시 영상을 보면 MC 자니윤과 보조MC 조영남이 성대모사를 옆에서 듣고 제대로 앉지 못하고 웃느라 정신이 없다. 그런데 남희석이 증언하기로 이미 대기실에서 성대모사를 수십 번 했다고 한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너 여기 왜 왔니?'→'희석: 성대모사 하러요'→'그래? 한 번 해봐!'[6] 7기 동기들이 유재석, 김수용, 박수홍, 최승경 등이다.[7] 개인 건강상의 이유로 인하여 가장 전성기의 순간에 TV에서 사라져버린다. 갑자기 받은 높은 인기때문에 본인이 감당 할 수 없을 정도의 스케쥴을 소화하게 된 것이 그 원인. 스트레스로 인하여 안면마비(일명 구안와사)가 찾아왔는데, 마비가 풀리지 않아 대인기피증에 크게 시달렸고 평생 카메라 앞에 다시 서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8] 렛츠고 시간탐험대 초기에도 편집 탓이라기엔 말로만 때우는 모습으로 비춰지기도 한다.[9] 건강상의 이유로 인한 공백기간 중 생각한 것이 많다고 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인간적인 소재의 프로그램 위주로 프로그램을 받는 것과 과하지 않게 적당한 스케쥴만을 유지한다는 것.[10] 사실 이 젊은 남성들은 굉장히 질이 나쁜 인상이어서 한 눈에 딱 그런부류의 인간이라는 분위기가 있었으며 온몸이 그야말로 무기수준으로 단련되어 있는 대학 운동 선수들이었다고 한다.[11] 개국 이후에는 형제가 행보가 갈려 무인정사에서 살아남았고 태종영의정이 되었다.[12] 남창희의 손자 뻘(...).[13] 원래는 한밭구장 시절의 OB 베어스의 팬이였지만 OB가 서울로 연고지를 이전하면서 대전에 연고로 자리잡은 이글스 팬이 되었다고 한다.[14] 단 이상하게 원정직관 승률이 별로인 편이라 남희석 원정응원 온 게 카메라에 잡히면 에이 지겠다고 올드팬들이 투덜댔다 카더라. 실제로 고척돔에도 2017년 7월 5일 직관을 왔는데, 그날도 한화가 리드하다가 연거푸 홈런을 맞더니 그대로 넥센에 졌다.[15] 협회 규정을 보면 논란이 될 만한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TUE 신청서라는 게 있는데, 이걸 크보에 진단서와 함께 제출할 시 치료 목적으로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프로 선수도 사람이라 아플 수 있기 때문.) 아마 남희석과 같은 주사를 맞는 선수들은 TUE를 제출 후 사용했을 것이다.(일일히 언론에서 그런 것까지 보고하진 않으니까,다른 스포츠 종목 역시 사람들이 하는 거라 비슷한 규정이 있다.) 약진행은 치료 목적이 아니니까 문제지[16] 가수 이선희, 배우 하지원 등이 충남 보령 출신이다.[17] 장동국, 조세호, 남창희, 윤석주 등이 남희석의 기획사를 거쳐갔다.[18] 초청해 놓고 들여보내주지 않거나 가족 동반입장을 불허한 것으로 추정.[19] 두 사람이 사귀고 결혼한 것은 박성현씨가 한의사가 되기도 전인 한의대생 시절이었다.[20] 파일:남희석 남성우.jpg[21] "오래가는 개그맨’이 내 꿈인데, 40년 후에도 로봇 MC로 인기를 누리는 것으로 그리다니 제대로 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