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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7 11:56:45

이창훈(코미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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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29기 중에서 유일하게 개그콘서트에 출연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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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훈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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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BS 로고.svg 코미디대상 대상
임하룡
(1991년)
이창훈
(1992년)
이상해
(199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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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부문 남자 코미디 연기상
제3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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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신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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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훈
(폭소대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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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595959><colcolor=#FFFFFF> 이창훈
李昌勳|Lee Chang H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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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이봉남
출생 1955년 2월 19일 ([age(1955-02-19)]세)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신체 A형
가족 여동생 이미영(1961년생)[1]
학력 서라벌고등학교 (졸업)
서라벌예술대학 (연극영화학 / 중퇴)
종교 개신교
병역 육군특수전사령부 예비역 중사
데뷔 1975년 극단 '창조'

1. 개요2. 일생
2.1. 방송계 데뷔 이전2.2. 코미디언 시절2.3. 코미디언 은퇴 이후
3. 출연작
3.1. 코미디3.2. 연극3.3. 드라마/시트콤3.4. 영화
4. 가족관계5. 여담6. 참고 자료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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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연극배우 출신 코미디언.

2. 일생

2.1. 방송계 데뷔 이전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 서라벌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서라벌예술대학 연극영화학과 중퇴 후 1975년 극단 '창조'에 입단하여 연극배우로 입문했다. 이후 극단 '76', '마당', '민중극단', '광장' 등지를 전전하며 천의 얼굴과 멋있는 목소리로 관객들을 사로잡아 1986년 서울연극연출가그룹 최우수연기상을 받았다. 최양락이 대학로에서 관객모독 한국 초연에 출연한 이창훈의 연기를 보고 많은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초대 관객모독 같은 작품은 연극계에 전설의 레전드로 전해진다.

그래서 최양락이 당시 유머 1번지, 한바탕 웃음으로 등을 연출하고 있던 수 많은 코미디언들을 배출시킨 김웅래 PD[2]에게 이창훈을 추천하였다. 김웅래 PD 또한 이창훈의 연기를 보고('우리집 식구는 아무도 못말려라'는 작품)큰 감명을 받고 대학로 극장 앞 커피숍에서 매일 같이 이창훈과 만나서 "TV에 출연만 하면 넌 반드시 스타가 될 수 있다, TV출연만 승낙하면 주변 연극인들도 TV에 출연시켜서 뜨게 해주겠다." 등의 말을 하며 이창훈을 설득했다고 한다.

결국 이창훈은 당시에는 경제 사정도 여의치 않았고 무엇보다 자신 뿐만 아니라 동료 연극인들도 같이 출연시켜서 뜨게 해주겠다는 말에 TV 출연을 승낙하여 브라운관에 데뷔하게 된다. 이때 최양락이 그 소식을 듣고 엄청 반가워하며 곧장 이창훈을 자기 집으로 데리고 와서 코미디를 가르쳤다고 한다. 물론 최양락이 이창훈보다 훨씬 어리고 이창훈은 최양락이 개그를 하기 전부터 쭉 연극을 하던 사람이었고 연극에서 웃긴 역할도 종종 했었다고 하니 개그를 가르쳤다기보다 TV 방송에 맞는 개그 연기를 알려줬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또한, 연극톤과 방송에서 쓰는 대사톤이 다르다보니 방송에 맞게끔 강약 조절을 해준 것으로 보인다. 같은 연기로 분류되지만, TV에서 하는 연기와 무대에서 하는 연기 방식은 큰 차이가 있다. 무대 연기는 조명과 동선의 관계성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방송 연기는 카메라가 동선에 더 많은 영향을 끼쳐서 관객이 있는 공연 계열의 방송 개그 꽁트를 짜더라도 관객보다 카메라 워크를 고려하여 마지막에 웃긴 감정선이 크게 살아나게 짜야 해서 간단하지 않다. 이창훈 입장에서 성공한 방송 개그맨에게 배울 건 충분히 있었을 것이다. 연극에 종사하다가 브라운관에 데뷔해서 연극 특유의 과장된 톤과 발성을 고치지 못하고 곤욕을 치르는 경우가 꽤 많은데 대표적으로 데뷔 초기의 성동일이 있다.[3]

다만, 이창훈은 관객이 없고 조용한 상태에서 진행되는 드라마나 영화출연과 달리 관객들을 앞에두고 콩트를 하는 개그 방식이라 적응이 빨랐다. 그만큼 관객들 앞에 두고 공연을 하는게 익숙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활약할 수가 있었다.

2.2. 코미디언 시절

이창훈은 1990년 3월 KBS2 코미디 하이웨이 코너 '행복 주식회사'로 방송 데뷔를 하였다. 1980년대 KBS에서 방영된 흘러간 옛 사랑, 아쉽게 헤어진 사랑을 찾아주는 회사를 배경으로 하는 코미디 드라마인데 원래 단막극이였다가 그가 출연하고부터 미니 시리즈격으로 연장되었다.

참고로 이 코너는 "사랑을 찾아줍니다" (원제목은 Finder of Lost Loves 로 1984~85년까지 ABC를 통해 방영했다. 시즌 1, 모두 23화로 끝나서 그다지 인기는 얻지못했지만....)란 제목의 미국 드라마의 설정과 주요 에피소드들을 그대로 베껴 만든 것이다. 더군다나 원작이 1987년 6월 19일부터 밤 10시 40분 KBS1 심야 드라마로 더빙 방영되었고 1988년 3월 12일부터 8월 13일까지는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 20분 KBS2 특선외화로 재방영했기에 겨우 2년이 지났을 뿐이라 원작을 기억하던 이들도 꽤 되었다.

이후 1990년 7월, 유머 1번지의 "맨손의 청춘" 코너에서 목욕탕 목욕관리사(때밀이) "이달용"이라는 팔푼이 캐릭터로 출연한다. 달용이 캐릭터는 바보 캐릭터이면서도 좀 색다른 면이 있어서, 뜬금없이 유식한 소리를 그럴듯한 타이밍에 하기도 한다.

여기서 난 짜장은 정말 싫어. 난 짬뽕[4] 난 죽어도/목에 칼이 들어와도 리바이벌은 안 해!라는 유행어와 바보짓을 한 후에 상대편이 보통 이마를 칠만한 타이밍에 손가락을 튕긴 후 양 손바닥으로 관자놀이를 치는 유행 동작으로 인기를 얻는다. 하나 더하자면 가수 민해경의 광빠돌이 컨셉도 있었다. 후렴구 부분을 요상하게 따라부른다던가 하면서 빠질하는 식. 초대형 민해경 브로마이드를 가지고 있는데, 업소 광고용 브로마이드를 몰래 떼어갔다가 걸려서 죽도록 맞을뻔했다고...

이창훈의 열연이 돋보여진 것은 최양락의 지원이 있었는데 전술한대로 이창훈을 코미디계로 이끌어 준 사람이 바로 최양락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개그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서 니주[5]를 하지 않았던 최양락이 이 코너에서는 진중하고 마음씨 따뜻한 이발사를 연기함으로서 이창훈의 오도시[6]를 받혀주는 역할을 했다.

이처럼 이창훈 본인의 열연과 동료 코미디언들의 지원에 힘입어 이창훈은 일약 스타 코미디언으로 등극하여 1990년, KBS 연예대상에서 코미디 신인상을 받는다. 다만 벼락스타가 되다보니 일부 개그맨들로부터 시기와 질투를 좀 받은 듯 하다. 이미 연극계에서 활동을 길게 했기 때문에 함부로는 못했어도 살갑게 대하긴 힘들었을 듯 하다.

파일:1000031194.jpg

1991년 5월 20일부터 한바탕 웃음으로의 "봉숭아 학당" 코너에서 "이맹구"라는 캐릭터로 출연, 엄청난 인기를 얻으면서 이창훈은 대한민국 코미디계의 역사에 하나의 방점을 찍는다. 이미지 관리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막나가는 표정연기와 유연하면서도 이리저리 비틀어지는 몸을 활용한 몸개그 동작 하나하나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철저한 바보짓은 심형래의 영구조차도 압도할 정도.[7]

주특기는 몸개그와 남에게 들은 이야기를 엉망진창으로 전달하기, 그리고 양 손으로 가면을 흉내낸 모양을 만들며 외치는 배트맨이었다. 배트맨은 선생님의 질문에 맥락없이 "배트맨~"을 외치는 것이다. 해당 코너에 배트맨이 등장한 때는 1991년 6월 10일 방영분인데, '베토벤을 아는 사람'을 찾던 선생님(김형곤 분)에게 맹구가 운명 교향곡이나 "베"자로 시작하는 것을 언급하다가 갑자기 "배뜨맨~"이라며 반전 개그를 날린 것이었다. 이것이 호응이 좋자 다음 방송에도 계속 쓰게 됐는데, 일부 회차에선 몸에 충격을 받으면 배트맨을 외치게 된다는 설정으로 변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당시 영화 <배트맨>은 딱 봉숭아 학당이 시작하기 1년 전에 개봉했는데, 사실상 한국에서 슈퍼맨보다 뒤늦게 개봉한 배트맨을 슈퍼맨과 동급 인기로 만든 건 맹구다.

또 선생 역의 코미디언이 '답 해볼 사람?' 이라 하면 학생들이 서로 손을 들고 답변을 하려고 하는데 맹구가 "저요 저요" 하면서 난리를 치고 결국 답변권을 얻어내는 것이 히트를 쳤다. 당시 초중고에서 하도 따라해서 수업에 지장이 있을 정도. 당시 SBS로 많은 선배들이 이적한 가운데 KBS의 자부심을 지켜낸 공이 컸다.

맹구의 캐릭터와 유행어. 개인기가 한번에 다 나오는 엑기스 영상이다. 웃음보장 (5분 40초부터 9분 10초까지)

그러나 이렇게 인기를 얻는 도중이었던 1992년 6월 10일, 이창훈은 두달 전부터 서울 청담동에 무허가 술집 '뿌르보'를 차리고 접대부 10여명을 데리고 불법 심야 영업을 했다는 이유로 수배를 받았다가 경찰에 구속당했다. 결국, 7월 28일, 징역 10월 및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석방되었다. 자숙기간 동안 구속 전 계약을 했던 어린이 영화를 촬영하였다. 이후 연극계로 돌아갈까 했으나 어린이 팬들의 복귀 요청이 엄청났을 정도로 최정상의 인기를 얻고 있었기에 당연히 주변에서 말렸고, 결국 신인의 마음가짐으로 맹구 역할로 돌아오게 된다.

그가 구속되기 전인 6월 8일 방영분에선 동료 학동이 "몸이 아파서 출석을 못 했다"는 어느 학동의 말로 수업 끝까지 맹구는 나오지 않았고, 15일 방영분에서도 '결석' 언급조차 없었다. 6월 8일자 녹화를 앞둔 동월 4일에 "갑자기 일이 생겨 방송국에 나갈 입장이 못 된다"며 구속 전까지 종적을 감춰 버렸다.[8] 구속 이후 봉숭아 학당은 잠시 오서방 독주 체제로 가다가 "정신이 돌아온 맹구가 귀환하다 머리를 부딪혀... 바보가 되다."라는 설정으로 다시 복귀했다.

이 사건으로 비난도 받고 공백기도 가졌지만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인기로 인해 1992년 KBS 코미디 대상을 차지하게 된다. 1993년 11월 8일을 끝으로 봉숭아 학당이 막을 내리고 맹구 이창훈과 오서방 오재미는 희극인실에서 공로패를 받았다.

초대 봉숭아 학당이 진짜 마무리 된 후 그동안 쩌리였던 하회탈 남희석이 제2대 맹구적인 역할을 맡았지만, 이창훈을 따라가지 못해 잊혀지고 얼마 후 2대 봉숭아 학당은 불명예 종영되었다. 이후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심현섭개그콘서트에서 봉숭아 학당을 재현하면서 제3대 맹구(=심맹구)가 되었지만, 도저히 이창훈의 오리지날을 따라갈 수 없었다.

그래도 심현섭의 경우는 이미 '사바나 추장 개그'로 히트를 친 직후에 한 역할이라 충분히 인기가 있었고, 코믹 바보 연기의 거성 이창훈의 '호감형 바보 스타일' 대신 심현섭 스타일의 '능글능글한 바보 스타일' 맹구를 재탄생시켰다는 평가도 받으며 나름대로 오래 버틴 편이다. 무엇보다도 '원조' 맹구 본인이 가장 가깝다고 인정했다.

한편, 이창훈은 1990년부터 달용이나 맹구 캐릭터로 어린이 영화나 비디오 영화에도 자주 출연했는데 이 어린이 영화들은 지금 보자면 표절 및 매드비디오에 가까운 쌈마이한 작품들이다. 첫 어린이 영화 출연작 짬뽕 홍길동을 비롯해 <맹구와 북두신검(극장영화)>이라든지, <맹구짱구 스트리트 화이어(비디오 영화)>라든지... 어린이 영화 배우로 이창훈을 주로 기용한 감독은 강용규[9]왕룡이다. 남기남영구를 쓰는만큼 나는 맹구를 내세우겠다 드래곤볼의 어린 오공 머리를 재현한(...) 당시 아역배우 허성태같이 왕룡 영화에 자주 나오는 정도는 아니지만 왕룡의 필모그라피를 감안하면 명예 왕룡 사단수준으로 이창훈을 굴렸음을 알수가 있다.

전성기 코미디상 시상식 등에서 분장 안한 이창훈의 모습을 보면 의외로 고전적인 미남상에 목소리도 성우 저리가라 할 정도로 중후한 톤이라 바보연기 만큼이나 진지한 역도 어울리는 희극인이다. 그러나 달용이와 맹구 캐릭터가 너무나 강렬해서 이후에 그가 잡게 되는 역, 특히 진지한 역의 배역을 맡을 때마다 "어울리지 않는다" 라는 혹평을 듣게 되어 방송에서 설 자리를 점점 잃어간다.

그러다가 결국 자신이 만들어 낸 맹구라는 캐릭터의 후광을 극복하지 못한 채로 방송활동을 접고 만다. 특정 캐릭터가 초대박을 치고 그 후광이 후에 배우/가수 경력에 악영향을 주는 사례는 수두룩한데, <드라큘라>의 벨라 루고시, <슈퍼맨>의 조지 리브스, <신나는 개구장이>의 다나 플루토, <야 곰례야>의 '마영달'로 유명한 이성웅 등이 있다.

위에서 서술했다시피 이창훈은 본래 방송보다는 무대 공연, 즉 연극에 애착이 큰 사람이어서 정극 연기에 대한 갈망이 굉장히 컸으며 맹구를 그만 둔 이유도 정극연기와 췌장암에 걸린 노모의 병간호를 위해서였다고 한다. 방송활동을 중단한 뒤에는 많은 연극무대에 참여해 왔고 노모가 병에 걸려 드러눕자, 모든 사회활동을 포기하고 산을 쏘다니며 약초를 캐서 어머니에게 바쳤다고 한다.



거의 10년 가까이 맹구 때문에 고생했는데 본인도 맹구가 이렇게까지 오래갈 줄은 생각도 못했다는 듯. 실제 공수부대 예비역 중사 출신인 이창훈은 동작그만에 하사 계급에 녹색 견장을 달고 신임 분대장으로 출연했다. 김정식 병장의 후임 분대장이며 중사 김진호 부소대장의 부하. 그런데 여기서 매우 멀쩡한 사람 으로 나오자 괴리감을 느낀 시청자들이 무척 많았다. 첫 등장에서 자신을 은연중에 배척하며 얕보는 김정식이 물고 있는 사과에 칼을 던져 꽃는 등 꽤나 살벌한 연기를 펼쳤다. 참고로 이 장면은 이창훈 본인이 공수부대에서 군복무를 했을 때 실제로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윗쪽의 사진을 봐도 알지만, 맹구 분장을 안 한 인간 이창훈씨는 지금의 이미지로 봐도 훈훈한 미중년, 미노년의 인상에 목소리도 상당히 남자다운 중저음톤에 점잖은 말투를 가졌다. 이 역은 각기 개성적인 원 내무반 대원들에 비해서 혼자만 너무 멀쩡해서 오히려 이상한 역할이었다. 덕분에 에피소드 후기로 갈수록 분대장 이하사의 말투가 맹구마냥 어눌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10]

그 외에 KBS 어린이드라마 누룽지 선생님과 감자 일곱 개에도 출연한 적도 있고, 코미디 하이웨이에서는 암행어사 역이나 신혼부부 역을 맡기도 했다. 1996년 12월 7일 SBS의 웃으며 삽시다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러나 모두 똑똑한 달룡이(...)에 괴리감을 느낀 시청자들에게는 역시나 혹평 일색이었다. 결국, <웃음은 행복을 싣고>나 <고전해학극장> 등지에서 맹구와 비슷한 특징을 지닌 캐릭터를 맡았다.

나중에는 이런 이미지를 역이용해서 하바드라는 학생용 책걸상 광고까지 등장할 정도. 아주 멀쩡한 이창훈씨가 상품 소개를 한다. 그리고 어린아이 목소리(의 성우)로 "에이~ 분위기 너무 잡는다~!" 하면 특유의 맹구 표정으로 "하바드니까." 라고 광고를 끝맺는데, 표정은 영락없는 맹구인데도 목소리는 여전히 멀쩡한 이창훈의 목소리인 게 압권(...). 당시 광고 모음

방송생활 말년에 KBS에서 방영했던 코미디 특집기획 '도망자'에서도 굉장히 진지한 역할을 맡았다. 이 작품은 동명의 1963년작 미국 드라마나 2010년작 드라마 도망자 Plan.B와는 무관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1969년 김종래 원작 만화를 영상화한 작품이다. 의원인 윤태호(이창훈 분)가 억울한 살인 누명을 쓴 채 포도대장(김정식 분)에게 쫓기는 한편 유일한 사건의 단서인 목점 여인을 찾는 그야말로 쫓고 쫓기는 한국형 스릴러였다. 원작 만화는 2003년에 애장판으로도 출간된 바 있다. 이 작품 분위기 자체가 코미디치곤 상당히 어둡고 진지하긴 했다. 밥풀떼기로 유명했던 김정식을 비롯한 코미디언들의 정극 연기가 돋보인 작품.

2.3. 코미디언 은퇴 이후

영구의 심형래와 더불어 한국 코미디계의 '맹구'라는 전설의 캐릭터를 이끌어낸 당사자 답게 이후, 1990년대의 가장 유명한 개그맨으로 활동했었으나, 1999년 모친의 병 간호를 이유로 모든 TV 방송활동을 완전히 중단한다. 실질적으로는 2001년 방영한 KBS 월화 드라마 '미나'에 출연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이후 2005년에 본업이었던 연극 무대로 돌아오면서, 현재는 연극 무대에서만 활동을 하고 있다.

2005년 <스타뉴스> 인터뷰 기사를 통해 보면, TV나 코미디언으로서의 삶으로 인해 인기를 얻고, 나름대로 부를 축적했지만, 그로 인해 자신의 가고자 했던 진로에 대한 고민과 이미지의 타격으로 인한 괴로움이 컸던 탓인지 코미디라는 장르에 대해서는 완전히 인연을 끊으며 살고 있다.

앞서 나온대로 본인이 코미디언으로의 길을 선택했던 결정적인 이유 중에 동료 연극인들도 같이 출연시켜서 인지도를 높여주겠다라고 했던 윗분들의 말씀을 믿고 코미디의 길에 들어섰지만 정작 본인만 승승장구하고, 연극계는 여전히 침체기에 있는 부조리에 괴로워 했던 것으로 보인다.[11]

그런데 연극과 방송은 분명 체계와 방식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방송국에서 출연시키고 싶어도 쉽지는 않았을꺼다. 방송은 적절히 애드립도 치고, 방송작가들과 PD들이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만들고 편집해서 만들어가지만, 대본과 동선이 절대 어긋나지 않아야 하는 연극과는 아무래도 너무 다르다.[12]

KBS 코미디 40주년 특집 때도 임하룡, 최양락, 이봉원 등 원로 코미디언들이 출연했지만 이창훈은 등장하지 않아서 맹구 역할은 김준호가 맡았다.[13]

그래도 이창훈 자신은 맹구라는 캐릭터가 준 바보 캐릭터라는 캐릭터성에 대해서는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연극배우의 삶이 지금도 아르바이트랑 병행하면서 하는사람이 허다한데 당시에는 더 심했고 배고팠다. 그런면에서 방송, 행사, CF, 밤무대 등으로 부를 축적해, 자신의 인생을 바꿔준 캐릭터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2004년경부터 이미 금연 상태였으나, 2009년 폐암 수술 후 2014년경 완치 판정을 받아 암을 극복해서 연극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병상에서 일어선 직후에는 김태희, 양동근 주연의 영화 그랑프리에도 우정출연하기도 했는데, 맹구의 모습을 보인 건 아니고 자칭 '경마전문가'로 말만 떠벌떠벌하는 개그캐릭터로 나왔다. 얼굴을 보고 "어? 맹구?"라며 고개를 갸우뚱하던 관객들이 스탭롤 올라가는 거를 보고 역시나!!! 했었다고...

동생 이미영이 2020년 1월 11일자 SBS Plus <김수미의 밥은 먹고 다니냐?>에 출연하면서 근황을 전했는데, 지금은 연예계에서 은퇴하여 비연예인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3. 출연작

3.1. 코미디

3.2. 연극

3.3. 드라마/시트콤

3.4. 영화

4. 가족관계

배우 이미영이 이창훈의 여동생인데 전영록결혼했다가 이혼했다. 이창훈은 그 사이에 태어난 자녀들인 전보람, 전우람 등의 외삼촌이 된다.

1992년 2월 3일 KBS2 한바탕 웃음으로 '봉숭아 학당'에 맹구 이창훈과 이미영 남매가 동반 출연한 적이 있다.(관련 영상)

이창훈 본인은 결혼을 했다는 기사나 소식이 없는 걸로 보아, 독신으로 생활하는 것으로 보였으며 이후, 동생 이미영이 SBS Plus <밥은 먹고 다니냐?>에 게스트로 출연했을때 김수미가 결혼 했냐고 물어보는 장면에서 아뇨라고 고개를 절레이는 것이 나오면서 독신이 맞는 것으로 알려졌다.

5. 여담

6. 참고 자료

7. 관련 문서



[1] 오빠와 마찬가지로 배우다. 한때 오빠의 캐릭터로 인해(배우 이미영이 아닌, 맹구 여동생이다!이런 식으로) 본인도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사실 본인이 봉숭아학당에 맹구 여동생 역할로 특별 출연도 했었다. 당시 그 꽁트에서 본인 입으로 "이맹구 동생 이미영입니다."라고 했다.[2] 옛 TBC 출신으로 언론 통폐합 때 KBS로 건너왔다. 옛 TBC 출신들이 SBS 창사 때 대거 떠나는 와중에도 KBS에 남았다가 90년대 말에 퇴직해 인덕대 교수로 자리를 옮겼고 <방송연예론>이라는 학술 서적을 집필하기도 했다.[3] 허나 성동일 배우의 발성은 진지하면서도 깊이감이 있어, 부성애를 표현하는 연기를 할 때 도움이 됐다. 음성만으로도 감정 전달력이 뛰어나서 성우를 해도 좋았겠지만, 표정으로 말하는 감정 전달도 뛰어나서 배우로 활동 중이다.[4] 이 유행어로 인해 대한민국의 중화 요리에서 짬뽕의 주가가 짜장면급으로 올라가게 된다. 원래는 짬뽕보다 중화 우동이 더 보편적이었다.[5] 공연/방송계 은어. 무대에 까는 '덧마루'를 일컫는 일본어 유래인데, 관용어로서 "니주를 깐다, 깔아준다"라는 건 다른 등장인물(또는 오도시)를 위해 트집 잡거나 말대꾸하는 등 받쳐주는 행동/캐릭터를 일컫는다.[6] 역시 일본어 유래의 속어. 크게 터뜨리는 웃음 한방이나 그런 캐릭터를 일컬음.[7] 인터뷰에서 본인이 어릴 때 별명이 뼈없는 놈이었다고 한다. 목소리는 자신이 만들었으나 몸은 연습한다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도 덧붙였다.[8] <TV가이드> 1992년 6월 27일(제12권 25호) 기사 '맹구 빠져 풀죽은 수업 봉숭아 학당 폐교위기(강일홍 기자)' p14~15.[9] 왕룡처럼 무술배우 및 무술감독으로 커리어를 쌓았으며, 봉만대 감독의 스승이다.[10] 에피소드가 한동안 진행된 후, 그동안은 처음이라 일부러 분위기 좀 잡은 거였다는 대사와 함께 망가지기 시작한다.[11] 2005년 인터뷰 시기를 기준으로 서울 대학로 공연의 관람료는 액면가 3만원이었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2024년 현재 역시 3만원이다. 더욱이, 대학로에 공연을 좀 다녀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각종 할인으로 인하여 액면가 그대로 표를 사서 공연을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한 실정.[12] 단 연극에도 애드립이 있다. 애드립을 통해 연극은 활기가 생긴다. 이창훈처럼 개인의 역량이 크지 않은 이상 연극배우들이 방송에 쉽게 적응하기는 힘들다.[13] 하지만 2대 맹구인 심현섭사바나의 아침으로 오랜만에 개콘에 나왔는데 봉숭아 학당에서 맹구로 안 나온 것은 아이러니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