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벨라 루고시[1] Bela Lugosi | |
본명 | 블러슈코 벨러 페렌츠 데죄 Blaskó Béla Ferenc Dezső |
이명 | 아리스티드 올트 Arisztid Olt |
출생 | 1882년 10월 20일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헝가리 왕국 테메시주 루고시 (現 루마니아 티미슈주 루고지) | |
사망 | 1956년 8월 16일 (향년 73세) |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 |
직업 | 배우 |
활동 | 1901/02년 ~ 1956년 |
배우자 | Ilona Szmick (1917년 ~ 1920년, 이혼) Ilona von Montagh (1921년 ~ 1924년, 이혼) 베아트리체 윅스 (1929년 ~ 1929년, 이혼) 릴리언 루고시 (1933년 ~ 1953년, 이혼) 호프 리닝거 (1955년 결혼) |
자녀 | 벨라 조지 루고시 (1938년생) |
링크 | 공식 사이트 |
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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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헝가리 태생의 연극 및 영화배우.[2] 최초로 영화 속의 드라큘라 백작을 연기한 배우로 유명하다.2. 생애
헝가리 이름은 루고시 벨러(Lugosi Béla), 본명은 블러슈코 벨러 페렌츠 데죄(Blaskó Béla Ferenc Dezső)이다. 루고시는 그의 고향이름으로 현 루마니아의 루고지(Lugoj)라는 도시이다.[3]그가 배우가 되겠다고 하자 은행가였던 부친은 적잖이 반대를 했고, 루고시는 부친과 사실상 의절한 뒤 결국 집을 뛰쳐나왔다. 이후 헝가리 국립극단 소속으로 헝가리 배우 노조에서 활동하고 1919년, 제1차 세계 대전 종전의 여파로 중부 유럽에서 혁명이 일어나면서 결성된 헝가리 소비에트 공화국[4]에서 활동하였으며, 혁명이 진압되자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본래는 연극 배우로 활동하였으며, 브로드웨이에 공연하고 있었던 연극 드라큘라에서 드라큘라 백작을 연기하며 명성을 얻었다.[5] 이때부터 벨라 루고시 특유의 연극적이고 거창한 연기 스타일이 시작되었는데, 이는 벨라 루고시의 전매특허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연기 스타일은 훗날에 그의 발목을 붙잡는 족쇄가 되기도 하였다.
이후 1931년, 토드 브라우닝이 감독한 브램 스토커 원작의 공포영화 드라큘라(1931)에서 드라큘라 백작 역을 맡으면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여기서 벨라 루고시는 연극 배우로 활동하던 때의 경험을 살려 호연을 펼쳤는데, 카리스마와 품위가 넘치는 악역 캐릭터를 잘 살려냈다는 평을 듣는다. 마침 루고시의 귀족적인 외모와 독특한 헝가리 억양이 유럽인인 드라큘라 백작의 이국적인 캐릭터에 잘 맞아서 시너지 효과가 생겼던 덕도 있었다.[6]
이렇게 드라큘라 역을 소화하면서 호러영화계의 대스타로 거듭난 벨라 루고시는 그 후로도 1941년 작 좀비를 다룬 첫 영화인 화이트 좀비, 에른스트 루비치의 니노치카[7] 등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고딕 호러 전문배우로 활동한다. 30~40년대에 걸쳐 벨라 루고시는 말그대로 호러 영화계의 최고 스타로 거듭난 것이다.
그러나 벨라 루고시 특유의 거창하고 허세 넘치는 연극적인 연기 스타일은 세월이 흐를수록 구닥다리 취급을 받게 되었고, 그가 주로 활동하던 호러영화계도 점차 쇠퇴의 길을 걷게 되면서 몰락이 시작되었다. 급기야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는 점차 사람들의 뇌리에 잊혀져 갔다.[8]
여기에 개인적인 가정 문제까지 겹쳐 이혼을 4번이나 하는 등[9] 삶도 불우해졌고, 결국 우울증과 1차대전 참전시 겪었던 다리부상의 통증 때문에 모르핀 중독에 시달리며 그저 그런 단역배우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그는 젊은 영화감독 지망생이었던 에드 우드를 만나게 되는데, 그가 찍은 《글렌 혹은 글렌다》, 《괴물의 신부》 같은 B급 괴작영화들에 주연으로 출연하면서 말년을 보낸다.[10]
1956년, 벨라 루고시는 에드 우드와 함께 《뱀파이어의 무덤》이라는 영화를 찍게 되었는데, 제작비 마련이 안 된 터라 달랑 카메라 한 대만 가지고 몇 장면을 찍어야 했다. 그 해에 벨라 루고시는 심장마비로 자택에서 숨을 거두었고, 드라큘라 복장과 함께 관에 묻혔다. 벨라 루고시가 에드 우드와 함께 촬영한 마지막 필름들은 훗날인 1958년, 에드 우드의 최고의 괴작영화 외계로부터의 9호 계획에서 쓰이게 되면서 그의 유작이 되어버렸다.
3. 그 외에
그의 라이벌격의 인물로는 프랑켄슈타인 전문 배우 보리스 칼로프가 있는데, 생전에 그와 견주는 걸 죽도록 싫어했다. 바로 프랑켄슈타인에 나오는 인조인간 역을 처음에 벨라 루고시에게 맡기려고 했던 걸 루고시가 거부하여 칼로프[11]에게 맡겼는데 이게 대박을 거두면서 칼로프가 출세했기 때문이었다. 칼로프도 루고시처럼 호러 캐릭터로 너무 이미지가 박혔지만[12] 그는 죽기 1년전인 81살 나이 때까지 꾸준히 배우로 활동하고 사생활적으로 꽤 평온[13]했기에 루고시와 대조적이었다.[14]재미있는 점은 정작 루고시와 칼로프는 영화에 함께 출연하면서 서로 절친한 친구로 지냈다는 것이다. 연기나 영화에 대한 사상이 비슷해서 죽이 잘 맞았다고 한다. 루고시가 프랑켄슈타인을 거절한 걸 두고 서로 농담을 주고 받으며 껄껄 웃었을 정도였다니 정말 친했던 모양이다. 둘은 로버트 와이즈의 시체 도둑에 함께 출연해 명연을 펼치기도 했다. 다만 루고시가 사망한 뒤 열린 장례식에 칼로프는 참석하지 않았다.
우표 수집광으로도 유명했다. 네 번째 아내인 릴리언의 증언에 의하면 그가 모은 우표 수는 자그마치 15만 장 이상이었다고. 그 외에 축구팬이기도 해서 잘 나갈 때는 축구팀에 기부금을 모아주기도 했다.
자녀로는 넷째 아내와의 사이에서 얻은 벨라 조지 루고시가 있으며[15] 그가 아이들 넷을 둠으로서 루고시의 네 손주가 되고 그 손주들의 자녀는 총 일곱으로 루고시의 증손주들이 된다. 말년에 자신이 평생동안 일군 부와 명예를 모두 상실하고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으며, 때문에 자신의 아들에게는 연예계에 발도 들이지 말 것을 권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들인 조지는 변호사가 되었는데 아버지를 닮은 미남인데다가 여러 사람들의 경제 문제에 관한 변호를 해주는 등 많은 선행을 베풀어서 평판이 좋은 편이다.
그가 죽고 난 뒤에, 그가 죽을 때까지 간직하며 집에 걸어두었던 한 여성의 누드그림이 경매에 나왔는데 이게 크게 화제가 되었다. 이 누드화의 모델이 다름 아닌 당시의 섹시스타였던 클라라 보우[16]였으며, 그녀 또한 죽을 때까지 벨라 루고시의 사인을 간직하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둘 사이의 로맨스가 이후 주변인들의 증언으로 자세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루고시가 아직 영화가 아닌 연극 드라큘라 배우로 유명세를 타고 있을 때 이미 스타였던 바우가 그의 공연을 보고 그에게 반해서 먼저 무대 뒤로 찾아왔다고 한다. 꽤나 격한 로맨스였던지 루고시는 이따금 절친들에게 자기 몸에 난 손톱자국을 보여주면서 클라라가 남겼다고 웃었다고 한다. 그 후 약혼까지 했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헤어졌으나, 그녀를 잊지는 못했는지 그녀의 그림을 주문제작해서 마지막 두 아내와 살면서도 집에 늘 걸어두었다고 한다. 바우는 주변인들의 말에 의하면 '자기와 사귀는 남자들을 미쳐버리게 만드는 마성의 여자'였다나.
4. 대중 매체에서
- 1979년에 바우하우스(밴드)라는 영국의 고딕 록 밴드가 이 분의 이름을 딴 Bela Lugosi's Dead라는 곡으로 데뷔했다. 참고로 이 곡이 최초의 본격 고딕 록 노래.
- 납골당의 미스터리에서는 호러물 단골배우이던 벨라 카디프가 어거지로 괴물 역과 살인자 역을 맡다가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어렵게 살던 끝에 정말로 괴물이 되기로 마음먹는다. 그래서 감독과 제작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독을 넣은 술로 그들을 몰살시키고 죽어가는 그들을 즐기면서 본다는 에피소드가 나온 바 있다. 이름이나 호러영화 전문 배역이라는 걸 봐도 알 수 있지만 모델이 누가 봐도 벨라 루고시다.
- 팀 버튼이 감독한 에드 우드의 전기영화인 《에드 우드》에서 마틴 랜도가 말년의 벨라 루고시를 연기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작품에서 흘러간 옛 스타의 불우한 모습을 절묘하게 연기한 마틴 랜도는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다만 영화 속에서 벨라 루고시가 보리스 칼로프를 질투하며 찌질하게 욕설을 내뱉는 장면 때문에 루고시 유족들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그더 그럴듯이 생전의 벨라 루고시는 사실 보리스 칼로프와 절친한 사이였기 때문이다.
[1] 헝가리 식으로는 루고시 벨러 (Lugosi Béla).[2] 벨라 루고시는 헝가리인으로서의 자존심이 무척 세서, 미국으로 망명한 후에도 제대로 영어를 배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드라큘라에 캐스팅 되자 직접 개인교사를 고용해 영어를 연습했다고.[3] 원래 헝가리 왕국 영토였으나 트리아농 조약으로 루마니아에 넘어갔다.[4]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만들어진 소련의 위성국가 헝가리 인민공화국이 아니다.[5] 아래서 설명할 클라라 보우와의 연애도 이때 겪게 된다.[6] 아이러니하게도 헝가리는 루마니아와 마치 한일관계처럼 원수관계이다. 게다가 블라드 가시공은 루마니아에서 이순신급으로 존경받는 위인이다. 그래서 루마니아인들은 드라큘라를 악역으로 묘사한데다가 헝가리 배우가 드라큘라 역을 맡은 이 영화를 무지 싫어한다고 한다. 그런데 원작의 드라큘라 백작은 블라드 가시공과 동일인물이라기보다는, 실제 루고시처럼 트란실바니아 출신의 헝가리인이다. 이 점은 훌륭한 원작반영인 셈이다.[7] 참고로 호러 영화가 아니라 코미디 영화다. 소련군 장교를 연기했다.[8] 당장 50년대 당시만 하더라도 현대적인 메소드 연기가 각광받기 시작했으며 메소드 연기에 정통한 말론 브란도와 같은 대스타가 배출되기도 하였다. 벨라 루고시 특유의 연기 스타일은 이미 시대에 뒤쳐진 구닥다리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9] 결혼을 다섯 번이나 했다. 특히 세번째 아내였던 베아트리체 윅스와의 관계는 즉흥적인 관계였는지 일년도 못가서 이혼서류에 서명을 하며 끝이 났다. 그 후 릴리안 루고시와 결혼하여 아들 하나를 얻었으나 그녀와도 이혼했다. 마지막 아내는 그에게 매일같이 팬메일을 썼을 정도로 열렬한 팬이었지만 결혼 생활 1년 만에 루고시가 사망해버린다.[10] 물론 아예 에드 우드와 함께 한 것 만은 아니었고, TV 쇼에 출연하거나 혹은 에드 우드와 흡사한 B급 영화를 주로 감독하던 레지널드 르 보그의 《검은 양》에 출연하기도 하였다.[11] 이전 글에는 칼로프가 러시아에서 이민왔다고 적혀있었는데 틀린 정보이다. 이 이름 탓에 종종 국내 영화지에서도 오류를 저질렀는데 보리스 칼로프는 영국인으로 본명부터 윌리엄 헨리 플랫이다. 러시아랑 상관없다.[12] 칼로프는 40대 중순 프랑켄슈타인에 나올 당시, 이미 80편이나 되는 영화에 나온 중견배우였다. 로맨스에서 서부물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에 나오던 배우였는데 이거 하나로 평생 호러단골 배우가 되어버렸다.[13] 그런데 생애 동안 결혼을 무려 6번이나 했다. 루고시보다 한번 더 했다.[14] 칼로프 말년 출연작은 여전히 호러 중심이긴 했지만 마리오 바바 같은 호러 거장의 영화부터 피터 보그다노비치의 타겟처럼 자기반영적이면서도 진지한 연기를 선보이기도 해 호평을 듣는 등 루고시보다 훨씬 질이 좋다.[15] 1938년생으로 나이 56세에 늦게 얻은 아들이다. 벨라 루고시 주니어라고 불리는데 드라큘라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자신이 벨라 루고시의 아들임이 언제나 자랑스러웠다고 밝히기도 했다.[16] 어드벤처 게임 로라 보우 시리즈의 주인공 로라 보우의 모티브가 되었던 사람이다. 1920년대 플래퍼 시대의 아이콘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