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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다(유행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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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웹소설의 클리셰 용어에 대한 내용은 사이다(클리셰)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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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쓰임새3. 클리셰로서의 사이다4. 비판
4.1. 창작물에서의 사이다 비판4.2. 사회 이슈에서의 태도4.3. 용어 자체의 태생적인 문제
5. 기타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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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구마를 먹은 듯 답답한 상황이 사이다를 마신 것처럼 시원하고 통쾌하게 진행되었을 때 쓰이는 용어. 심할 때는 빵 쏴줬다고 할 정도로 파급력이 강하다. (예: 거 참 사이다같은 발언이다!)

하거나 답답할 때 사이다 같이 톡 쏘는 탄산음료를 먹으면 목넘김이 상쾌한 기분이 들듯, 답답하고 불편한 상황 등이 마침내 사이다처럼 시원하고 통쾌하게 진행되는 것을 사이다에 빗대며 쓰이기 시작하였다.[1]

본래 만화, 드라마,[2] 소설 등 창작물의 사건 전개방식을 지칭하는 표현이었으나, 2016년 경 유행어로 부상한 후 현실의 정치, 언론 등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기 시작하였으며, 같은 해 설현이 찍은 사이다 컨셉의 스프라이트 광고로 더 유명해지기도 하였다.

2. 쓰임새

상술되었듯 사이다는 꽉 막혔던 상황이 시원하게 진행되는 것을 빗대어 쓰이곤 한다.

또한 답답하고 느리게 진행되던 소설 내용이 주인공에 의해 통쾌히 역전되거나 명확해질때도 쓰이며, 스토리상에서 떡밥 회수복선이 명쾌하게 밝혀졌을 때에도 사이다라고 하기도 한다. 궁금한 것을 해결해주었기 때문.

또한 현실에서도 상대방을 논리로 완벽히 반박하거나, 단답으로 싸움을 일단락시켜 버릴 경우 사이다라는 비유가 쓰이곤 한다.

사이다와 비슷한 용어로는 참교육, 정의구현, 팩트폭력 등이 꼽히며, 사이다를 마시고 트림을 하는 것에 빗대어 '꺼어억'이라고 변용되기도 한다. 사이다 성향이 강한 독자의 경우 사이다패스(사이다+사이코패스)라고 불리기도 한다.

같은 탄산음료들인 콜라환타는 별로 쓰이지 않고 있다. 홍카콜라처럼 아예 없진 않긴 하지만 제한적인 편.

이는 사이다 계통 탄산음료들의 광고 컨셉의 영향인 것으로 보인다. 칠성사이다천연사이다, 킨사이다 등 대부분의 사이다 제품이 광고에서 청량감을 집중적으로 강조했기 때문. 뿐만아니라 사이다 특유의 맑은 색깔, 첨가제로 주로 쓰이는 레몬이나 라임 등의 상큼한 느낌 때문인 점도 어느정도 영향을 끼친다.

한편 사이다의 반대말로는 고구마가 있는데, 먹으면 목이 막혀서 답답하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3. 클리셰로서의 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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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비판

4.1. 창작물에서의 사이다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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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사회 이슈에서의 태도

사회 이슈를 대하는 것도 당장의 속시원한 것만 중시한 나머지, 근본적인 문제는 경시하는 태도가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눈에 보이는 가지치기만 열심히 이룬 채 정작 뿌리는 등한시 여긴다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거나 오히려 더 심화되는 현상을 맞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조두순 출소 당시, 출소 직전 인터넷은 그가 받은 형량을 문제삼으며 답답해 하고, 그를 대상으로 하는 사적 제재를 긍정하는 여론이 압도적이였다. 이러한 여론을 바탕으로 실제 조두순이 출소하자 사이다를 준답시고 그의 집 앞은 인터넷 방송인 내지 사이버 렉카들의 깽판이 이루어졌다. 이로 인해 지역 주민들이 피해를 호소하자 태세를 전환해 이번에는 방송인들을 비판하게 되었다.
이처럼 이슈가 잠잠해지기 전에 문제 제기가 되면 고치려는 여론이라도 형성되지만, 대부분의 이슈는 관심이 오래가지 않고 금방 사라지는 휘발성이 특징이기 때문에, 관심이 사라진 후에 문제가 나오면 대부분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해 문제를 고치기조차 쉽지 않다.

이러한 모습은 인기와 여론에 민감한 성향의 정치인들에게도 영향을 미쳐서, 사이다식 포퓰리즘만을 중시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또한 당장의 이슈에는 열정적으로 달려들지만 관심이 사라지면 정치인 역시 관심을 끊어버리는 모습을 보인다. 일을 벌였는데 그로 인한 피해가 발생할 쯤에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다보니, 아무도 피해를 책임지지 않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과대망상에 빠진 지도자와 특정 대상에 대한 과대한 혐오. 그리고 극단적인 상황에 뒤를 돌아보지 않는 해결법을 바라는 대중적인 열기가 맞물리는 상황에 독재자가 탄생하기 쉬운 환경이 조성된다고 보고 있으며, 특히 사이다를 바라는 성향은 마지막 조건에 부합하는 만큼 정치인에 대한 감시가 필요해지는 상황이기도 하다.[3]

사이다라는 말이 생겨난 창작물은 속시원한 일처리나 전개로 인한 피해자가 나와도 허구의 피해자지만, 문제는 현실에선 진짜 피해자가 나온다는 것이다. 현실의 피해자는 창작물처럼 일방적인 악인이 아닌 선의의 피해자인 경우도 대단히 많다. 여론에 민감한 정치인이 개입하기 때문에 공권력이라는 실행력이 생겨 실제 피해가 발생하기 쉽다는 것도 문제가 된다. 후에 여론이 잠잠해져도, 만들어진 떼법은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사회의 문제가 된다.

게다가 이런 성향을 가지고 언론에 부각되는 정치인이 인기를 받고 세를 얻기 마련이고, 장기적으론 단발적인 이벤트성 정책으로 문제를 덮어대면서 무책임하고 언론에 영합하는[4] 정치인을 양산하면서 정언유착과 국가의 기량을 하락시키는 원인이 된다.

엄벌주의 역시 실상은 이러한 식으로 자신들만을 위한 사이다를 추구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교화주의가 범죄자의 교화[5]를 우선하는 건, 반성을 하지 않거나 사회적응에 실패해 재범을 일으키게 되면 또다른 피해자만 야기시키는 까닭이다. 때문에 차후 사회에 적응하는데 지나치게 어렵게 긴 형량을 주지 않고, 반성여부로 죄를 약간이나마 감형시켜 반성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냄비근성은 높은 재범률은 걱정하면서 정작 반성으로 인한 감형에는 극도로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모순된 행태를 보여준다. 이는 재범률 증가는 핑계에 불과하고, 당장 악인이 자신들이 만족할만한 처벌을 받지 못해 사이다 마신 것과 같은 기분을 느끼지 못하는 걸 걱정하기 때문이다. 이는 미래의 피해자를 자신들의 사이다를 위한 제물로 삼는 것이나 다름없다. 심지어 이를 만족시키겠다고 엄벌을 줘봐야, 차후에는 눈에는 눈조차 만족하지 못해 더더욱 큰 엄벌을 내리지 않으면 사이다 마시는 기분을 느끼지 못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이러니 만족스러울 만큼 사이다를 제공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정작 엄벌주의는 더욱 흉악한 범죄를 발생시키는 토양이 된다. 갱생이 안된 사람은, 결국 다시 사고를 치기 마련이고 훨씬 흉악한 범죄를 벌이는 경향이 있다. 사고를 쳤으니 새로운 피해자가 발생하게 된다. 엄벌주의를 추구한다고 갱생이 안되는 건 아니지만, 갱생에 목적을 둔 교화주의에 비해 갱생이 훨씬 힘들다. 2010년 형법개정을 통해 최대형량이 2배 가까이 늘었고 그에 맞추어 실제 형량도 계속 증가 추세지만, 흉악범죄는 오히려 늘어났다. 법무부의 2018년 범죄백서에 따르면 흉악 강력범죄 발생 건수는 2008년 24,023건에서 2017년 36,030건으로 50%가량 증가했다. 물론 이는 그동안 묻혀버리거나 드러나지 않던 것들이 드러나게 되었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사이다 현상과도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갈수록 혐오가 깊어지는 것도 민감한 사회 이슈에서 무조건 자신들에게 속 시원한 언행으로 자기만족감을 충족하려다보니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것이니만큼, 근래의 사이다 전개를 선호하는 성향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삶은 복잡한 것이고, 삶과 정치가 밀접한 만큼 이를 풀어가는 방법 또한 복잡할 수밖에 없다. 이를 사안에 대한 깊은 고찰이 없는 입법이나 처리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반발은 당연히 있어야 하지만, 복잡한 사안에 대한 처리를 인내심 없이 비난하는 것도 좋은 해결법으로 다가올 수 없다. 나쁜 예시로 남초 커뮤니티인터넷 밈여초 커뮤니티멸칭이 있다.

기부 사기를 치는 사람이 조작된 사이다, 참교육 컨텐츠를 방송하여 시청자들이 계속 속는 상태인데 문제의 컨텐츠에 대한 시청자들의 자성의 목소리가 전무하다. 인터넷상 대부분의 댓글이 이것도 조작이 아니냐고 의심하기보다 사이다 참교육 고맙다는 것뿐이다.

4.3. 용어 자체의 태생적인 문제

사이다라는 현상은 대부분 합리적이고 적절한 정의구현을 지향한다기보단, 자신들의 스트레스 해소와 통쾌감 고취를 위해 적당함을 넘어 과도한 수준으로 악인을 몰아붙이는 경우가 많다. 대안 우파SJW로 대표되는 정체성 정치로 뭉친 전 세계의 네티즌들이 각 나라의 커뮤니티와 SNS에서 과격화되어 서로를 겨냥한 일침과 사이다를 외치지만, 그 일침이나 사이다를 면밀히 살펴 보면 발언들이 굉장히 감정적이고 부정확한 경우가 많다.

말릴 사람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설령 이를 말리려 시도해 봐도 대다수가 온갖 욕이란 욕은 다 먹다 결국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에 학을 떼버리거나, 심하면 역으로 가해자가 되는 경우가 잦다. 익명성에 기반한 공격성과 흑백논리가 강한 인터넷 여론의 특성상, 중립적이거나 합리적인 의견을 내놓는 사람은 대다수의 네티즌들에게 비난을 받기 일쑤다.

사이다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사람들은 대개 '악인은 반드시 자신이 저지른 악행에 대해 벌을 받아야 한다' 라는 생각이 극단화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악행을 저지른 사람이 벌을 받는다는 개념은 사회에서 당연한 상식에 가깝지만, 사이다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악행의 대가를 치를 수 있는 처벌 수준을 아득히 상회하는 과잉 처벌을 요구하는 것이 문제이다. 인터넷 뉴스 기사 댓글이나 인터넷 커뮤니티에 자주 보이는 '범죄를 저지르면 무조건 징역을 몇십 년 이상 때리거나 사형시켜야 한다', '저것들은 사람도 아니니 흠씬 두들겨 패서 정신을 차리게 해야 한다' 등의 마인드가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뒤틀린 사이다' 가 훨씬 더 극단적으로 변하면 사적 제재로 번질 위험이 있다. 여기까지 가면 이미 정의구현이란 표면적 목적은 사라지고 되려 사이다를 행하는 쪽이 범죄자가 되는 경우가 다반사.

결국 사이다는 정의구현을 지향한다기보단 자신들이 갖고 있는 감정적 스트레스를 악인들에게 푸는 행위에 가깝다. 말 그대로 글을 쓰다가 화가 치며서 아무 극단적인 발언이나 다 쏟아붓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렇기에 이런 사이다들은 글 작성자와 독자들에게 통쾌한 감정을 일으켜 일시적인 쾌락을 느끼게 할 수야 있지만, 아무래도 정확하고 합리적인 의견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심하면 대상자에게 맥락없는 비난이나 일방적인 조롱, 무례한 발언 등을 뱉어 놓고서 이것을 '사이다' 랍시고 정당화하는 골때리는 경우도 있다. 특히 디시인사이드 등의 대형 커뮤니티를 위시한 모두까기 문화가 인터넷 전반에 퍼진 현재엔 온라인을 중심으로 이러한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이외에도 '사이다' 자체가 사과주(cider)가 전와되어 사용되는 단어다 보니 타 언어로 번역하기가 의외로 난처하다.

5. 기타

6. 관련 문서



[1] 단, 실제로는 체했을 때 사이다를 마시면 오히려 소화에 악영향을 미치므로 보리차매실차, 소화제를 권장한다.[2] 적어도 2014년부터는 이미 쓰이고 있었다. 2015년 드라마인 앵그리맘출세 목적 교육부정부패를 고발했는데 유독 "사이다"라는 말이 나왔다. 또한 2017년 이전에는 드라마의 빠른 전개를 사이다라고 불렀다.[3] 이 조건에 부합한 대표적인 사례가 전간기의 바이에른 공화국으로, 히틀러란 과대망상에 빠진 나치당의 총수가 나타났고, 전후 정세로 인해 외세에 적대적이었으며, 극단적인 정세가 일어나면서 결국 나치 독일이 탄생하게 된다.[4] 당연하지만 이런 단발적인 정책을 홍보하거나 유세를 하려면 언론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반대로 언론은 자신이 원치않는 기조를 가진 정치인을 일부러 다루지 않는 것으로 세를 무너트리는 것도 가능하므로, 정치인이 점차 언론에 복속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5] 단순히 마음을 고쳐먹고 새사람이 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회적응에 실패하면, 범죄 말고는 먹고살 길이 막막해져서 부득불 재범을 저지르게 되기 때문이다. 교화주의가 엄벌주의에 비해 형량이 적은 건 형량이 길수록 사회적응에 실패할 가능성을 높혀주기 때문이다.[6] 농약 사이다는 실제 존재했던 사건의 키워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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