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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6 05:29:17

사이다(클리셰)

파일:관련 문서 아이콘.svg   관련 문서: 사이다(유행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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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관련 용어 · 클리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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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특징
2.1. 대리만족 서사
2.1.1. 주인공을 통한 즉각적인 대리만족2.1.2. 주인공 중심 서사2.1.3. 신뢰있는 대리만족 서사
2.2. 단순화와 스트레스 배제
2.2.1. 속도감있는 전개2.2.2. 복잡하지 않은 서사2.2.3. 고구마의 배제
2.3. 스마트폰 환경에 적합한 서사
3. 종류4. 클리셰
4.1. 캐릭터
4.1.1. 주인공4.1.2. 주변인물4.1.3. 반동인물
4.2. 전개
5. 발생 원인
5.1. 편당 결제 시스템5.2. 시대의 변화5.3. 비디오 게임 속 장르 문법의 영향5.4. 사회 갈등과 이분법
6. 논쟁
6.1. 옹호
6.1.1. 유행 및 클리셰에 대한 몰이해6.1.2. 비소비자들의 스노비즘
6.2. 비판
6.2.1. 작품 질 저하 문제6.2.2. 소비자들의 태도 문제6.2.3. 현실과의 괴리
7. 고구마 방지 대안8. 관련 문서

1. 개요

사이다 서사는 유행어 사이다에서 유래한 서사, 클리셰로 보통 막힘없고 통쾌하며 빠른 전개를 가리킨다. 다양한 분야에서 쓰이는 클리셰, 장르 문법이지만 현 문서는 주로 웹소설을 위주로 설명하고 있다. 이 점 유의.

사이다는 갈등 그 자체를 깊이 있게 다루거나 분석하기보단 즉각적, 말초적으로 갈등을 해소하여 쾌감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A] 독자들은 이런 전개를 기대하고 사이다 작품을 소비하며, 기대에 부응하지 않을 경우, 신뢰있는 대리만족 서사가 진행되지 않을 경우 하차하거나 불만을 표시한다.

사이다는 보통 웹소설의 특성으로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한국 장르 판타지씬의 성취 문법을 이어받은 서사로 분류된다. 퓨전 판타지, 이고깽, 양판소, 겜판소, 현대 갑질물 등 이전 세대의 메이저 장르들은 대부분 먼치킨, 영웅, 성공, 성취 서사와 관련이 있었으며, 이같은 서사는 향유층의 니즈를 적극적으로 반영해 온 장르 판타지씬의 문화를 동기로 형성되었다.

넓게 보면 '한국적 판타지의 창출'을 목적으로 창작, 소비하던 PC통신상의 하이텔 환타지 동호회가 있으며 현실의 고등학생이 학업 스트레스를 탈피하여 판타지 세계를 모험하거나, 판타지 세계를 흥미 본위로 재조합, 창작하던 퓨전 판타지 서사가 있다. 좁게 본다면 신자유주의적 담론, 스펙 경쟁, 자기개발 담론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던 달빛조각사류의 게임 판타지와 도서 대여점하에서 상업적 선택에 의해 발달한 먼치킨, 성공, 성취 서사의 양판소가 있다. 사이다의 확실한 부모격 클리셰, 장르로는 현대 주인공의 승승장구를 다룬 현대 갑질물이 존재한다. 즉 사이다는 웹소설 시대에 탄생한 것이 아니라, 일관적인 한국 장르 판타지 씬의 문법을 이어받고 진화시킨 서사인 것이다.

2. 특징

2.1. 대리만족 서사

대다수 창작물들이 대리 만족을 추구하지만 사이다는 대리만족에 특화된 서사로 여겨진다. 복잡하고 어려운 현실을 단순화하고 즉각적, 말초적으로 해소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이다 서사, 특히 웹소설의 사이다 서사는 전통적 문학관의 입장에선 비난의 대상이 되기 쉽지만, 한편으론 지루함을 줄이거나 3화 내지에 기승전결을 담도록 요구받는 웹소설의 특성상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여겨진다.[A] 기사

2.1.1. 주인공을 통한 즉각적인 대리만족

사이다의 핵심은 사이다스러운 주인공을 통한 즉각적인 대리만족이다. 복잡하고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현실과 달리, 추진력, 성장, 보복, 추앙 등을 속시원하게 해내는 주인공의 행보를 통해 독자들은 즉각적이고 말초적인 쾌감, 즉 대리만족을 얻는다.

후술되지만 주인공의 사이다 행보는 속도감 있는 전개, 막힘없는 서사, 단문체, 고구마의 배제, 무능한 악역을 통해 더욱 강화된다. 안그래도 거침없는 주인공의 성격이 이야기 구조, 환경, 문체를 통해 더욱 강화되는 것이다.

때문에 사이다물엔 소위 사이다 패스가 나타나곤 한다. 주인공의 행보를 방해하는 건 독자의 대리만족, 몰입을 방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민감하면 사소한 일로도 보복해야 한다거나 못 버티겠다는 반응을 보인다.

한편 주인공을 통해 표현되는 사이다의 수위는 장르 공동체가 향유하는 장르 코드에 따라 결정된다.

이처럼 웹소설은 특정 장르가 지닌 장르 공동체가 향유하는 장르 코드에 따라 사이다의 수위가 결정되는 모습을 보이며, 이러한 장르 코드는 소설 내외로 존재한다. 사이다의 핵심은 사이다를 마신 듯한 시원한 서사와 대리만족이지만, 개별 장르에선 그 의미와 용법이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다.

2.1.2. 주인공 중심 서사

한편 사이다 서사는 주인공 중심으로 서사를 진행한다. 즉 서사, 사건 전개에서 주조연의 역할이 대폭 감소되고 주인공 개인의 역량만으로 해결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 경향이 생긴 이유는 사이다가 웹소설 향유층이 체감하는 역동적이고 복잡한 현실을 장애물이 없고 직선적이며 명료한 이야기로 재구축하는 서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성 하에, 사이다 서사는 보통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단순화, 직관화하는 편이다. 타인과의 인간적 상호작용은 웹소설의 이야기를 복잡하거나 멈추게 만들기 쉽기 때문이다.

2.1.3. 신뢰있는 대리만족 서사

사이다는 일관적으로 대리 만족을 선사하여 독자와 작가간에 신뢰를 형성한다. 사이다 에피소드는 즉각, 말초적으로 갈등을 해소하고 쾌감을 줄 뿐 아니라 독자에게 빠른 전개와 캐릭터성으로 대리만족이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란 암시를 주고 연재로 실현하여 (독자에게)신뢰있는 대리만족 서사로 인식되는 것이다.

사이다의 신뢰있는 대리만족 서사는 독자의 가치판단을 유도하며, 가치판단을 통해 독자는 작품이 자신의 기대나 선호를 충족하거나 그렇지 못하리란 판단을 내린다. 작품을 불호하는 독자는 빠르게 하차하고, 작품에 만족하고 선호하는 독자들만 남아 장르 내 취향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형성된 공동체는 작품을 지속적으로 소비하고 나아가 공동체를 확산 시킨다. 독자들의 유입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따라서 웹툰, 드라마 같은 연재 작품군에선 주인공이 승승장구하고 대리만족을 선사하는 사이다 서사가 자주 기용되며, 일일연재가 기본인 웹소설에선 사실상 장르의 골격으로 자리잡았다. 웹소설은 일일연재라는 특성 때문에 매 화마다 상업성을 창출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데, 이 특성에 사이다가 매우 적합하기 때문이다.

웹소설은 독자가 소비해야만 연재할 수 있으며, 나아가 충성도를 갖고 지속적으로 소비하는 독자 집단이 있어야 지속적인 연재, 즉 생존이 가능하다. 따라서 웹소설의 최우선 목적은 지속적으로 상업성을 창출 할 '장르 내 취향 공동체'를 빠르게 구축하고 결속시키는데 있다.

이러한 공동체를 빠르게 구축하고 유지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직관적이고 명료한 서사, 독자를 만족시키는 서사를 빠른 속도로 제공하는 것이다. 즉 이해가 쉽고 전개가 빠르며 즉각, 말초적인 성취·성장·대리만족을 사용하는 사이다 서사에 최적화된 분야다.

때문에 신뢰있는 사이다 서사를 구축하는 건 웹소설의 출발 지점이 되었으며, 마이너 장르 일부를 제외하곤 사실상 기본 골격으로 자리잡았다.[7]

서사 신뢰의 극한으로는 사이다패스가 있는데 주인공의 대리만족 서사에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거나 그럴 낌새가 있다면 당장 없애서 신뢰있는 서사를 되찾으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히전죽이 있다.

2.2. 단순화와 스트레스 배제

사이다는 독자의 대리만족과 스트레스 배제를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사이다는 서사 자체를 단순화하거나, 스트레스 요인을 배제하거나, 적과 보복을 통한 대리만족에 집중하곤 한다. 대표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다.

다만 이런 단순화, 스트레스 배제는 사이다의 단점이기도 하다. 보다보면 질리거나, 더 사이다를 원하게 되는 것. 감정적, 서사적 굴곡이 없기 때문에 보다보면 지루해지기 십상이며, 때문에 더 자극적이거나 빠른 전개를 원하곤 한다.[10]

때문에 사이다는 스트레스를 배제하는 문법이면서도, 동시에 영리하게 스트레스를 덜 부담스럽게, 예상 가능한 선에서 색다르게 줘서 독자들의 질림을 방지해야 한다는 복잡하고 미묘한 상황에 놓이곤 한다. 사이다를 잘 쓰는 작가는 사이다가 아니라 고구마를 영리하게 잘 쓰는 작가라는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이는 클리셰를 파괴하고자 한다면 해당 클리셰를 완벽히 이해해야 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2.2.1. 속도감있는 전개

사이다 서사는 기승전결 즉 전개가 빠르다.

이를 위해 사이다 작품들은 문체와 기승전결을 압축하고, 캐릭터와 감정선을 단순화하며, 독자의 고민을 일으킬 요소를 제거한다. 즉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빠르게 제공하고, 지속적으로 제공함으로써 독자에게 흥미있는 전개가 앞으로도 빠르게 꾸준히 제공되리란 신뢰를 주는 것이다.

(꾸준하고 일정한 속도로)전개가 제공되리란 신뢰는 피폐물, 고구마물 등 다른 작품군도 추구하는 것이지만 사이다는 흥미롭고 부담없는 전개를 그보다 더 빠르고 가볍게 선사하여 인기를 끌곤 한다. 같은 시간 대비 부담없이 볼 게 더 많다는 것.[11]

이런 맥락에서 작가 산경은 밋밋하고 지루한 내용이 3편 이상이면 독자들의 이탈이 시작되거나, 기승전결을 3화 안에 쑤셔넣어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하였다.[12]

이렇게 속도감이 있다는 것은 연재속도가 빠르다는 뜻도 된다. 때문에 사이다물은 독자가 지루해지기전에 연재를 지속해야 하기 때문에 작가가 시간에 쫓기는 경우가 많다.

2.2.2. 복잡하지 않은 서사

사이다 작품은 독자의 스트레스 요인을 줄이며, 복잡하지 않은 서사, 소위 막힘없이 시원한 사이다 서사가 이어지게 한다.

복잡하지 않은 서사를 구성하기 위해선 주로 예측가능한 전개를 사용하거나, 긍정적인 예상이 가능한 선에서 이야기 전개에 부정적으로 느껴질 요인들을 제거하는 방법이 사용된다. 후술될 고구마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과거 내용을 되돌아보게 하지 않거나, 되돌아봐야 하더라도 빠르게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게 하는 등 서사를 지체시킬 요소들을 줄이기도 한다.

한편 복잡하지 않은 서사는 그 자체로 대리만족이 된다. 상술된 주인공의 행보처럼 복잡한 현실의 역동과 부조리를 시원하게 해결하는 서사를 통해 대리만족하는 것이다.[13]

사이다 서사에서 악당들이 악행이 수위가 높고 평면적인 성격이 많은 이유가 복잡한을 배제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악당이 아닌 반동인물이 등장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극악인들이 강대한 힘을 갖거나 현실에서 보기 어렵거나 있을수가 없을 사악하게 묘사하는 경우가 있다.[14] 물론 현실에서는 지나지게 악행만 남발하는 악인들은 빨리 망한다. 현실적으로는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고 사디즘보다 실익을 추구하는 악당이 오래 살아남는다. 단기적인 피혜는 지나치게 악행을 남발하는 악당보다 작지만 오랬동안 몰락하지 않아서 장기적인 피혜의 총량이 극악인들보다 많은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시원스러운 진행을 하기 위해서는 타협하는 악당보다 지나치게 날뛰는 악당이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주인공도 악당이거나 다크 히어로라면 법률과 윤리에서 자유로워지기 때문에 타협하는 악당이 나와도 시원스럽게 처리하는 것이 가능하다.

2.2.3. 고구마의 배제

사이다 서사는 흔히 고구마로 불리는 답답하고, 감정적인 전개를 배제한다.

고구마의 배제를 통해 사이다 작품군은 독자의 독서 스트레스와 압박감을 줄이며, 동시에 앞으로도 진행될 사이다 서사를 예측하고 신뢰하게 한다.

보통 고구마 전개는 주인공과 관련이 있다. 사이다 서사의 핵심은 결국 사이다 주인공에게서 오는 대리만족인 만큼 주인공을 방해하거나 저해하는 요소를 고구마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 요소에는 전체 캐릭터가 포함된다. 아무리 신뢰받고 주인공에게 도움이 된 캐릭터라도, 주인공의 행보를 저해하거나 발목잡는 암 걸리는 전개가 일어날 경우엔 고구마, 악역 취급을 받는게 대표적이다.

그러나 사이다만 쓰다 보면 질리기 쉬우므로 잘 쓴 사이다 작품군은 사이다보다 고구마를 잘 쓴 경우가 많다. 덜 스트레스 받도록 영리하게 잘 다듬은 고구마를 통해 독자들이 캐릭터에게 몰입하게 하고, 사이다의 카타르시스를 극대화시킨다는 것.

특히 사이다가 스트레스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구성되는 이유는 사이다 자체가 클리셰 파괴, 즉 기존의 클리셰를 타파하기 위한 결과이기도 해서이다. 가령 머리가 나쁜 캐릭터가 적의 꾀임에 넘어가 민폐가 되는 행동을 벌이는 클리셰를 예시로 들면, 독자는 악역이 바보 캐릭터에게 말을 거는 순간부터 주인공이 곧 아군 캐릭터에 의해 위기를 겪거나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떠안게 될 것을 예상해버린다. 즉, 사이다가 클리셰이듯 고구마 역시 클리셰이기 때문에 주인공 일행에게 위기를 안겨주는 작위적인 고구마는 스트레스를 더욱 크게 유발하게 된다. 사이다는 이러한 단점을 해소하기 위한 많은 시도 중 하나이고, 그 중에서도 특히 활성화된 것.

2.3. 스마트폰 환경에 적합한 서사

한편 사이다 서사, 특히 웹소설의 사이다 서사 활성화에는 스마트폰이라는 환경도 영향을 끼친다.

본래 스마트폰은 가독성이 좋지 않은 기기다. 화면이 좁아 표시할 수 있는 내용이 많지 않고, TV, 모니터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사용자의 눈에 빛을 가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각적 피로감이 상당한 기기이므로 스마트폰을 주 매체로 삼는 웹소설에선 독자들의 집중력 있는 독서를 기대하기 어렵다.[15]

때문에 웹소설은 간결한 묘사와 빠른 전개, 쉬운 이야기로 독자들의 피로감을 줄인다. 헌데 이 모습은 간결하고 빠르며 자극적인 사이다 서사와 일맥상통한다. 사이다 서사는 스마트폰 환경에 적합한 웹소설 서사인 것이다.

이처럼 사이다 서사는 스마트폰 환경에 적합하며 연재 환경, 상업성 등 웹소설 환경 전반과 변화하는 사회 문화에도 부합되다 보니 독자와 작가들에게 애용되었고, 현재 시점에선 사실상 웹소설의 근간을 이루는 코드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사이다 서사가 웹소설의 간결화, 단순화, 대리만족주의를 이끌어 낸 것은 아니다. PC 통신 판타지 소설에서 인터넷 퓨전 판타지, 도서 대여점 양판소, 게임 판타지, 현대 갑질물, 로맨스 판타지, 한국식 이세계물, 헌터물에 이르기까지 한국 장르 판타지 씬은 일관적으로 간결화, 단순화, 대리만족 주의를 지향했기 때문이다. 즉 사이다 서사는 스마트폰 환경에 적합한 동시에, 한국 장르 판타지 씬의 일관적 변화를 이어받은 서사인 셈이다.

사이다가 아닌 웹소설 장르도 있다. 정통 판타지성장물처럼 주류 사이다 메타의 대립항인 작품군도 있으며, 피폐물, 고구마 물처럼 반대의 서사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들도 과거의 작품군에 비하면 문체가 단축되거나 간결함을 지향하며, 반대항이라는 인식과 달리 장르 유행작들 다수가 변형된 사이다·먼치킨 서사를 사용하곤 한다. 피폐물, 고구마를 사이다, 전문가물과 결합한 4드론물, 남성향 이혼물, 정통 판타지적 세계관과 서사에 먼치킨, 사이다를 결합한 작품군들이 대표적이다.

3. 종류

대부분의 창작물들은 사이다 정서에 기반하고 있으며, 고대에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나 영웅 서사 같은 이야기도 존재했다. 따라서 아래의 종류에 적혀있더라도, 사이다가 꼭 그 분야의 전유물인 것은 아니다.

3.1. 막장 드라마

사이다의 시초. 자극적인 막장 전개하에 시원하고 통쾌한 전개가 이뤄지는 경우를 가리킨다.

3.2. 웹소설

사이다는 한국 웹소설의 근간으로 쓰이고 있다. 거의 모든 웹소설들은 피폐물, 정통 판타지처럼 독자들에게 특별한 장르로 어필하지 않는 이상, 스토리와 주인공, 주제와 설정 등 모든 요소를 사이다 감성에 맞추기 때문이다. 즉 거의 모든 웹소설은 주인공에게 스트레스 상황을 부여하지 않으며, 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스트레스를 전달하지 않거나 최소화한다.

대중들이 예로부터 사이다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래도 고구마로 대표되는 성장, 고난, 희생, 비극 같은 극적인 요소도 좋아한다. 원래 이야기의 기승전결의 구조상 일정한 빌드업 등 답답한 갈등의 전개가 있어야 그것이 해결되었을 때 통쾌한 카타르시스의 쾌감을 극대화할 수 있으므로 빌드업이나 갈등 등 일정한 고구마 전개는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현대인, 특히 Z세대(1990년대 중후반 ~ 2010년대 초반 출생) 등 스마트폰 세대는 주의력 지속시간(attention span)이 매우 짧고 지루함에 대한 내성이 극단적으로 낮다. 1화 만이라도 답답하게 끝나면 바로 컷 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서 드라마소설, 만화 등에서 그런 답답한 고구마 전개가 이어지면 금방 시청이나 독서를 포기해 버리므로 작가들도 이에 맞게 빠르게 전개를 진행시킨다.

심지어 통쾌함을 요구하는 정도가 일반적인 수준을 넘어서 인성이 결여된 사이코패스로 보일 정도인 독자들도 나타났는데 이를 '사이다패스'라고 한다.[16]

한편 유사한 매체인 TV 드라마의 사례에 비하면 웹툰과 웹소설 독자들은 유독 사이다패스가 많은 편이다. 특히 보통 드라마는 주 1회 연재/방송인 탓에 진행이 훨씬 느린데도 전개가 느린 것을 덜 신경쓰고 참을성도 발휘하며 충분한 독자나 애청자들이 생기는터라 연재가 느리거나 전개가 마음에 안 들면 즉각적으로 분노하는 웹소설의 사이다패스들과 비교되는 편이다. 사실 특정 작품군 자체가 특정 성향의 독자군만으로 점철되는 것은 흔한 일이기에, 웹소설 역시 그런 경향을 강하게 보이고 있다. 한때 주부를 대상으로 한 공중파 아침 드라마가 불륜고부갈등만을 자극적으로 묘사하는 막장 드라마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비판을 들었던 것이 대표적 예시이듯, 웹소설의 소비자층 역시 극단화 성향을 강하게 보이는 것이다. 이 경우 애초에 이런 쪽에 관심있는 소비자층만이 몰리고 창작자들 역시 이들의 취향을 맞추기 위해 더욱 극단화되는 성향을 보이곤 한다.

이러한 사이다 감성이 가장 두드러지는 장르가 바로 남성향 웹소설. 남성향 웹소설의 주인공들은 모든 적을 사이다스럽게 물리쳐야하며, 그 어떠한 난관도 겪지 않거나 언제나 기지로 해결하고 업적을 달성하고, 이를 무한히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 빌드업과 같은 중간 단계는 없으며, 항상 주인공은 빠르게 클라이막스를 달성하고 다음 과제로 넘어간다.

이처럼 남성향 웹소설에선 끝없이 성과를 올리며 승승장구하는 주인공을 선호하는 모습을 보인다. 다른 웹소설 성향인 여성향 웹소설[17]에서도 이런 모습은 기묘하게 받아들여질 정도.

이러한 사이다패스 독자들은 전개가 어긋나거나 조금이라도 막힌다면 싫증을 느끼고 하차해 버리거나 '하차'라는 언어유희를 이용해 "하차합니다. 작가님도 가서 상하차나 하세요."[18] 등의 악담을 퍼부어 작가를 압박하곤 하며 이러한 사이다패스들에게 작가들이 부응하며 단순화, 패턴화는 더욱 가속화되곤 한다.

그러나 이에 따른 반발도 나타나며 반대급부로 2010년대 극후반부터 장중한 서사, 빌드업을 첨가한 정통 판타지를 어필한 작품들이 주목받기도 하며, 2020년대 들어서는 로우 파워물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어났는데, 물론 그 장르도 고구마 묘사가 지나치게 길면 비판받을 수 있다. 한편으론 사이다 웹소설보다 비교적 인물관계, 특히 히로인 관계에 집중하는 캐빨물이 유행하기도 하였다.[19] 심지어 유행이 지난 힐링물을 다시 보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또한 사이다물도 계속 유행하다 보니 신선하지 않아서 그런지 2010년대 후반 이후에는 의외로 노리고 만든 사이다 웹소설은 20화 정도에서 연중되는 게 많고, 고구마 성향도 조금 섞은 것이 순위권에 있는 경우(댓글)도 생겼다.

대체역사물에서 국뽕과 사이다가 충돌했을 때 독자들이 주로 후자의 손을 들어주는데, 이를테면 현대 한국인이 과거 외국의 역사적 인물로 회빙환해서 한반도 국가를 큰 이득 없이 이타적으로 도와주는 전개가 나올 경우, 주인공의 거침없는 사이다 행보에 걸림돌이 되는 한반도 국가를 독자들이 '고구마'로 인식하고 배격한다.[20] 한국이 어떻게든 잘 나가야 했던 옛날 대체역사물에선 상상하기 어려웠던 모습이다.

4. 클리셰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주로 남성향 웹소설의 성취, 성장 서사 위주로 설명하고 있는 점 유의.

사이다 서사는 스트레스를 줄이고 속도감 있게 전개한다는 점은 비슷하지만, 장르와 성향에 따라 다른 형태로 나타나곤 한다.

4.1. 캐릭터

4.1.1. 주인공

4.1.2. 주변인물

4.1.3. 반동인물

웹소설의 반동인물은 흔히 악역, 적으로 설정된다. 그러나 전개 상 주인공을 가로막거나 갈등하는 인물이라면 조연, 선역, 히로인이라도 가리지않고 적대적 인물로 인식되며 사이다 혹은 교정을 요구받는다.

다만 조연, 선역의 반동인물화는 극심한 갈등이 아닌 이상 간단한 교정 정도로 납득되곤 한다. 독자들이 원하는 사이다는 보통 악역, 적을 향한 사이다기 때문.[25] 물론 업보가 쌓이면 얄짤없이 응징해야 할 적이 된다.

따라서 아래의 문단에선 앞서 언급한 사례가 없이 평면적인 반동인물 캐릭터의 특징에 대해 다루나, 이러한 특징이 비중 높은 반동인물에게도 적용되는가에 대해선 작품의 세세한 성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4.2. 전개

5. 발생 원인

5.1. 편당 결제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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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쾌한 전개로 인기를 얻은 작품은 과거에도 많았으나 2010년대 이후 들어 이러한 사이다 전개만을 요구하는 경향이 웹툰이든 웹소설이든 서브컬처뿐만 아니라 심지어 영화 등의 대중문화계에도 만연하게 된 이유는 편당결제 구조 때문이라는 의견도 많다.

아주 오래 전에 완결된 작품이거나, 작가가 매일마다 1편씩 써내릴 정도로 대량으로 소설을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면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1주일 간격으로 만화든 소설이든 1~2편씩 결제해서 찔끔찔끔씩 봐야하는데 그 1~2편 내내 갈등이 펼쳐지고, 정작 그 갈등의 해결은 다음 편으로 자꾸 미뤄지게 되면 독자들 입장에서는 다음편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답답하고 찝찝할 수밖에 없어 결국 이런 사이다 전개만 가득 찬 작품을 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300쪽짜리 책을 종이로 출판하고 서점에서 판다면, 그 책을 산 사람은 앉은 자리에서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것이다. 책을 읽는 데는 1시간이 걸리며 책의 초반부와 중반부가 답답하고 후반부에서 답답함이 해소된다고 하면, 독자들이 답답해하는 시간은 약 40분 정도이다. 하지만 이 책을 20쪽씩 15편으로 나눠서 주 5일 연재를 한다면 독자들은 무려 2주간이나 계속 답답한 이야기 전개를 보고 있어야 한다. 유달리 답답함을 잘 견디는 사람이 아닌 이상 싫어하는 게 당연하다.

문제는 이런 시스템의 웹소설의 1편은 보통 20~30페이지 내외다. 1, 2편 내에 갈등 발생과 그 수습을 전부 몰아넣으라는 건 지나친 요구이다. 결국 막장 드라마스러운 초전개로 얼렁뚱땅 끝내버리거나 주인공이 다 때려부숴서 갈등관계를 없던 일로 만들어버릴 수밖에 없다. 결제-수익 구조에 의해 소설 문화가 스낵 컬처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과거에도 만화소설은 처음부터 단행본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먼저 잡지나 신문 등에 연재되는 경우가 많았고, 잡지나 신문 연재 방식은 2010년대 이후의 편당 결제 시스템 방식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느껴질 수 있다. 이 부분은 잡지와 핸드폰 어플이라는 매체의 차이와 하루 한 편 수준으로 굉장히 짧아진 연재 텀의 영향을 감안해야 한다. 예를 들어, 웹소설은 아니지만 만화 《강철의 연금술사》가 웹툰 형식으로 카카오페이지에서 이틀에 한 번 무료로 연재될 때 패니냐가 주인공의 은시계를 도둑질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딱히 원본에서 각색이나 대사 변경이 없었는 데도 댓글창이 불타오를 정도로 비난을 받았다. 물론 도둑질 자체가 나쁜 일이긴 하지만 《강철의 연금술사》 안에는 살인은 애교로 보이는 온갖 범죄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과거 이 작품을 본 팬들이 당황했을 정도였다. 이는 상대적으로 독자들의 사이다패스 성향이 강해진 2010년대 후반-2020년대 초반에 재연재된 탓도 있지만, 한 권씩 보면서 패니냐의 깽판을 한 호흡에 볼 수 있었던 구 서책 방식에 비해 웹툰판에서는 2-3화에 걸쳐서, 즉 무료 화만 본다면 해당 장면을 4-6일에 걸쳐서 볼 수 밖에 없는 것이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이후 트위치에서 강철의 연금술사 FULLMETAL ALCHEMIST 애니메이션을 전편 방영했는데 이때에는 해당 애니메이션에서 패니냐의 도둑질 분량은 딱 한 화만에 보고 끝낼 수 있는 정도여서 반응은 딱히 패니냐에 대한 비판이 카카오페이지에 비해 많지 않은 편이었다. 스낵 컬처화는 연재주기가 짧을수록 두드러지는데 만화계에서도 일간, 주 n회, 주간, 격주간, 월간 연재는 이야기 전개, 타깃 시장, 호흡 등이 판이하게 다르다.

그것과는 별개로 편당 결제 시스템으로 인해 작가가 받는 시간적 압박이 커진것도 있다. 이익 창출과 성질이 급한 소비자들을 계속 붙들어매기 위해 1주일에 한번씩 올리는 경우나 심지어는 아예 2, 3일이나, 매일마다 1편씩 써내릴 정도로 대량으로 소설을 찍어내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당연히 이렇게 빨리 쓰려면 고민하거나 생각하는 일 없이 즉흥적으로 써야한다. 물론 그렇게 빨리 쓸 수 있는 장르의 작품은 말할것도 없이 주인공 혼자서 무쌍찍는 먼치킨 사이다물밖에 없다. 원래 개발이나 작문은 시간을 많이 들이고 생각을 많이 할 수록 좋은 작품이 나올 확률이 높아지지만, 이렇게 초고속으로 써내려가면 좋은 작품이 나오기는 힘들다.

5.2. 시대의 변화

2010년대 이후의 한국에서 사이다가 유행하게 된 다른 원인 중 하나로는 청년 세대들로부터 답답하다고 인식되는 현실의 상황이 꼽힌다. 2010년대 이후 한국의 청년들는 인터넷이라는 창을 통해 어느 정도 왜곡된 "현실"에서의 부조리와 갑질, 노력충 드립, 청년실업, 열정 페이, 수저계급론 등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금쪽 같은 여가시간에 웹소설 등 자신이 즐기는 매체에서까지 현실에서의 부조리 등을 재감상하기 싫어하는 심리도 크게 작용한다.[29]

많은 청년 독자들은 과거에서 우려먹었던 주인공 굴리기 및 노력, 우정, 승리같은 걸 읽어본 적이 적지만, 그런 개념이 들어있다고 여겨지는 순간 반감을 가진다. 유례 없는 미디어 범람에 노출되어 패러디클리셰에 대해 사전 지식을 어떻게든 인지하게 되는 세대가 된 것이다. 직접 구세대 작품 근처에도 간 적도 없으면서 이미 다 아는 듯한 "세대적 기억"을 형성한 현세대는, 구세대 주인공이 겪는 역경은 다 거기서 거기인듯 기시감을 느끼니, 이보다 신선한 전개인 사이다와 주인공 편의주의를 통한 대리 만족에 열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30] 요지는 사이다는 단순히 트렌드이니 사회 문제가 개선되는 악화되든 무관하게 사이다형 스토리가 영원하진 않을 것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노력, 시련, 성장 등은 전부 힐링 열풍 당시 자기개발서에서 강조한 가치들이었으나, 시대가 지나자 여론은 이런 것들은 근본적인 대책이 아닌 미봉책에 불과했다고 파악을 끝냈다. 현실에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줄 수도 없는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고, 돈 내고 잔소리를 받는 것, 희망고문이라는 악평까지 들으면서 힐링 열풍은 얼마 가지 않아 사그라들게 된다. 즉 성장이나 노력 등의 성장물 요소들은 2010년대 이후 한국의 독자들한테서는 자기개발서를 포함한 각종 매체에서 지겹게 들었던 잔소리, 노력드립, 구시대적인 정신력 강조, 철 지난 힐링 얘기, 희망고문 쯤으로 인식되었고, 이에 반대되는 가치인 사이다가 유행했다. 마치 힐링이라는 '술'을 마셔도 현실은 바뀌지 않고, 오히려 희망고문, 노력드립 같은 '숙취'만 남으니 사이다라는 '해장국'을 찾게 된 격이다. '해장국'을 사이다의 유의어로 쓴 강준만 칼럼. 물론 이것은 일각에서는 해장국도 아니고 마약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 문서 비판 항목 참고.

유례 없이 풍요로운 시대에서 살아가는 세대는 이제 기다림 없이 즉시 결과를 기대할 수 있고 빨리 성공하지 않으면 실패한 인생이라고 쉽게 자포자기하는 MZ세대의 성향이 작품 감상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이다. 현세대는 최대한 빨리, 최대한 즐겁게, 최대한 큰 재미를 추구한다.

현세대는 주6일제 근무하던 시대보다 여가 시간이 늘어나고,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졌으며, 3차 산업과 문화산업이 융성한 시대에 살면서 읽어보고 싶은 작품 목록이 늘어나는 시대에 살아간다. 이때는 하나의 작품을 깊이 음미하기보다는 단기간에 최대한 많이 작품을 섭렵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생겨났다. 그렇기에 작품의 재미를 늘어뜨리지 말고 농축해 놓은 작품을 선호하며, 이거 읽고 다른 연재작도 보고 다음으로 넘어가거나 한꺼번에 여러 번 보는 것도 쉬워졌다.[31]

읽는 매체가 스마트폰으로 변화한 것도 웹소설류 사이다가 범람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여가 시간이 늘어나기도 했지만, 이동 시간이나 대기 시간 등 예전에는 그냥 넘겼던 자투리 시간에도 무료함을 달래줄 수단이 늘어났다. 예전에는 한 권 이상 빌드업이 걸렸던 클라이맥스를, 대신 작게, 빈번하게 짜놓는 추세가 생겨났다.

창작물을 통해 현실의 고통을 대리만족하려는 욕구는 수 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국경을 가리지 않는다. 대표적인 한국 고전 중 하나인 《박씨전》 또한 그렇다. 저것 또한 시대를 앞서간 사이다물, 대리만족물이지만 수능에도 나올 정도로 작품성은 충분히 인정받고 있다. 대리만족물이지만 작가가 여러모로 신경써서 훌륭하게 써냈기 때문이다. 현대에 쏟아져 나오는 수준 이하의 먼치킨물과는 아예 격이 다르다. 일본의 라이트 노벨도 대리만족 요소가 있는 건 마찬가지다. 따라서 사이다의 유행도 이러한 답답해 보이는 현실을 견디지 못하는 세대의 변화에 더불어 후술할 힐링 열풍의 역풍까지 더해져서 나타난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하나의 유행이자 트렌드라고 볼 수 있다.

다만 혼동하지 말아야 할 사항이 하나 있다. 독자가 대리 만족을 원하는 심리 그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대중문학은 욕망의 해소와 깊은 관계를 맺어 왔다. 부조리함이나 권력자를 때려 부수는 짜릿한 통쾌함은 늘 대중 소설과 뗄레야 땔 수가 없는 관계였다.

하지만 단순한 대리만족으로 치부할 정도로 일차원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이다물에서 소위 고구마라고 불리는 노력, 주인공 굴리기, 시련과 성장 등의 성장물 요소 자체가 이미 2010년대 이후 시대의 사람들한테는 매력적이지 않은 요소가 되어 버렸다는 걸 의미한다. 이에 대한 원인을 따져 보자면 2010년대 후반의 사이다 유행은 2010년대 초반에 있었던 개인의 의지와 노력을 강조하는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자기개발서들의 유행과 그로부터 비롯된 사회 전방위적인 힐링 열풍이 불러온 역풍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사이다 양판소가 흥하게 된 원인은 막장 드라마 문서에서 분석하는 막장 드라마가 흥하게 된 원인과 흡사하다. 막장 드라마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의 외면으로 평범하고 정석적인 드라마가 고전하게 된 양상도 거의 똑같다.

다만 사이다를 까는 것도 어디까지나 재미 혹은 창작물 비평의 차원에서 할 수 있지, 지나치게 원론적인 비난과 나아가 작가나 독자층에 대한 인격적 비난은 미성숙의 증거가 될 뿐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때로는 한국 서브컬처계가 나아갈 길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지만, 그것이 사이다물에 대한 윤리적 비난이나 사이다물 작가와 독자들에 대한 지적 우월감이 되거나 사이다물을 재밌어하지 말라고 한다면 심히 우스워진다. 모든 창작물은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일 뿐, 타인이 나서서 왈가왈부할 수 없는 것이다. 이를테면 아이돌 음악처럼 대중적 인기를 얻는(혹은 강한 지지층이 있는 대중문화인) 문화를 비하하고 스스로가 즐기는 특정한 문화(음악으로 치면 락부심처럼)를 우월함의 증거로서 생각하는 것은 전형적인 스노비즘이자 문화컨텐츠에 대한 선민사상일 뿐이다.

본래 강인한 주인공이 짜증나는 악당을 시원하게 쳐부수는 전개는 수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받아 왔다. 박씨전, 홍길동전 등의 고전 소설도 신통한 능력으로 악당을 벌하는 영웅의 모습을 통해 피폐했던 당시의 현실을 잠시 잊고 또 바꾸고자 했던 작가와 민중들의 바람이 담겨 있었다. 킹스맨 시리즈해리 하트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면서 양아치들을 토벌하고 후술할 죠죠의 기묘한 모험쿠죠 죠타로오라오라 러시로 적을 곤죽으로 만드는 상황은 누구든 좋아한다. 작가는 사이다 풍조를 병적으로 바라보지만 말고 적합한 대책과 사이다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플롯을 세우는 설계 역시 필요하다.

심지어 과거 소년만화에서도 사이다 문법은 당연히 존재했다. 대표적인 예시로 《나루토》의 나선수리검 개발 에피소드가 있다. 주인공 우즈마키 나루토는 남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차크라 양과 끈기로 남들이 수 년에 걸쳐 이룩한 경지나 불가능하다고 여겨진 영역에 빠르게 닿게 되는데, 이는 사람들이 흔히 아는 사이다 문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32] 당연하게도 액션 장르에선 예나 지금이나 '특별하게 강한 주인공'이 메이저이기 때문.

5.3. 비디오 게임 속 장르 문법의 영향

상태창은 해당 문서에서 주로 예시로 드는 2010년대 이후의 웹소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롤플레잉 게임에서의 스테이터스 메뉴를 모티브로 한 해당 요소는 웹소설이 비디오 게임, 특히 JRPG 혹은 MMORPG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을 증명한다.[33] 롤플레잉 게임은 대개 주인공의 성장과 이야기의 진행을 통해 재미를 느끼며, 플레이 타임의 한계상 스토리텔링과 레벨업 등이 상대적으로 빠르다. 상태창이나 스탯, 그리고 게임 판타지에서 많은 영향을 받고 계승되어온 웹소설의 특성상 이러한 요소가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보긴 어렵다.

물론 현재는 게임 판타지의 유행이 쇠퇴하고 게임 문법이 차츰 약화되면서 활용되는 방식과 이유가 달라졌으나 결론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게임빙의물에선 비디오 게임과 유사한 방식의 스토리텔링을 차용했다는 걸 독자들에게 인지시키면서도, 웹소설 특유의 게임 문법은 배제하는 작품이 새로운 강점을 보인다.[34] 오히려 헌터물 등에서 게임 문법을 사용했던 것보다 긴장감을 더욱 가중시키면서도, 게임 문법 특유의 '원작의 정보'와 같은 요소를 통한 주인공의 능력을 드러내는 방식은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오히려 과거에 대두되었던 가상현실이라는 공간에서 소외계층의 결핍 해결, 계층구조 극복이라는 주장과 거리가 멀어진다.

5.4. 사회 갈등과 이분법

사이다 서사는 2010년 이래 심화된 혐오, 진영논리 등으로 대표되는 사회 갈등과 이분법 정서에 영향을 받아 활성화되었다.

2010년 이래로 인터넷 커뮤니티들은 사소한 흠결도 조리돌림을 하거나 인신공격을 하거나 실제로 괴롭힘을 주는 등 극단적, 폭력적으로 변하고 있다. 이러한 극단화, 폭력화에는 혐오, 악마화, 진영논리, 흑백논리로 강화된 사회 갈등, 이분법 정서가 영향을 끼쳤다. 사회적 갈등이 사회 집단, 세대간에 만연한 가운데, 나와 다른 이들을 이해할 필요 없이 모욕하고 괴롭혀도 괜찮은 적으로 구분하는 정서가 널리 퍼진 것이다.

이 극단적 이분법 정서는 2010년 초까진 일베 저장소로 대표되는 집단 정체성을 띄며 조롱받는 등 소수적, 이질적 문화로 여겨졌으나, 일베의 해체, 젠더·정치·세대 등 사회 갈등의 고도화, 경제 침체, 마이너 갤러리 문화의 확산, 코로나 19로 인한 개인 문화의 확산등을 겪으며 파편화, 개인화되기 시작한다. 이전까진 내 집단과 그의 적인 타 집단으로 구분했다면, 사회 갈등이 터져나오고 개인 문화가 고도화된 2010년대 중후반~2020년대에는 사실상 나와 그 외의 적들로 이분법을 적용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개인화된 극단적 이분법은 단순한 집단 비하, 조롱에서 나아가 자신이 겪는 타인, 문제, 갈등 전체를 악마화하며, 더 나아가 거슬리는 모든 것을 적으로 분류하고 혐오하거나 폭력성을 분출해도 되는 비인격적 대상으로 다루곤 한다.

사이다 서사는 이런 사회 갈등, 이분법에 영향을 받아 복잡하고 어려운 현실을 단순하게 다루거나, 늘 승리하고 옳아야 할 주인공과 패배하고 보복당하는 적으로 구분하곤 한다. 마찬가지로 주인공을 방해하는 모든 캐릭터는 적이거나 그에 준하는 요소이며, 응당 보복받고 패배해야할 것들로 규정한다.

사이다 독자들은 이런 주인공에 대리만족을 느끼며, 만족감 즉 사이다 서사가 계속 이어지길 요구한다.

이런 요구는 사이다패스라는 극단으로 변하기도 한다. 이 케이스의 향유층은 어떤 캐릭터나 요소가 대리만족과 이입의 대상인 주인공을 조금이라도 방해한다면, 극단적인 이분법 정서를 적용하여 상대를 영구적으로 추방, 파멸시키길 요구하며, 이 모습이 공감 능력이 없는 사이코패스같다며 사이다패스라고 불린다.

다만 대다수의 사이다 향유층은 주인공이 소위 선을 지키길 바란다. 사이다를 하더라도 내적 윤리를 지키길 바라며, 단순히 적들을 파멸시키는게 아닌, 주변에 궁극적인 선, 윤리를 창출하는 인물이 되길 요구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단순한 반사회적, 파멸적 폭력과 보복, 자기주장은 사이다 향유층에게 반발만을 부른다. 사이다 패스 관련 댓글에서 논쟁이 일어난다던지, 중국 웹소설의 과격한 사이다 행태[ㅊ2], 개인주의 행보를 염산 사이다라며 별도의 개념으로 구분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사회 갈등과 이분법 정서에 뿌리를 둔 만큼 이런 사이다 향유층의 모습은 외부 집단에겐 비정상적인 행태로 읽히기 쉽다. 예를 들어 웹소설 향유층은 타 매체 향유층에게 소모적이고, 상업적인 집단으로 여겨지곤 하며, 남성향, 여성향 웹소설 향유층은 상대 젠더 향유층들의 사이다 서사를 이해하기 어렵거나 과격하다고 논평하곤 한다.

6. 논쟁

6.1. 옹호

해당 클리셰에 대한 문제 지적과 비판이 과하다는 의견도 결코 적지만은 않다. 해당 유행이 만든 부작용은 굉장히 쉽게 접할 수 있기에[36] 비판 자체의 논지에는 문제가 없으나, 그 발생 원인과 문제점을 원론적으로 과하게 비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

6.1.1. 유행 및 클리셰에 대한 몰이해

클리셰 파괴를 위한 클리셰라는 문서가 존재한다. 기존에 정착되어 있던 클리셰를 뒤집는 방식으로 반전을 주는 시도를 클리셰 파괴라고 지칭하며, 그 클리셰 파괴를 위한 시도조차 클리셰로 정착되는 것을 다루는 문서이다.

이를 따로 구분하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클리셰 파괴를 위해 만들어진 클리셰가 일반적인 경우가 되었지만, 웹소설 역시 이러한 클리셰가 굉장히 흔한 매체에 속한다. 보는 시각에 따라선 고전적인 작품에서는 위기로 다가올 붙잡힌 히로인,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등의 클리셰를 아예 벌어지지 않도록 원천봉쇄하며, '뻔한 전개가 되도록 내버려둘 줄 알았으냐'며 여유를 부리는 먼치킨 주인공 그 자체가 클리셰 파괴를 위한 클리셰에 속한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사이다 역시 특별한 게 아니라 기존 클리셰에 염증을 느낀 독자와 작가가 시도했다가 정착된 것이며, 이 역시 언젠가는 클리셰에 질린 작가들이 스스로 끝내게 될 유행에 지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37]
연도 / 인물 마왕 용사
1980년대 (절대악)
"세계는 내 안에 복속되어야한다."
"죽어라 마왕!"
1990년대 ()
"보아라, 용사여. 이딴 세상을 지키겠다는 게냐"
"그래도, 지키고 싶은 세계가 있어!"
2000년대 (필요악)
"세상을 바꾸기 위해 난 마왕이란 오명을 쓰겠다"[38]
"그딴 궤변 내가 수정해주지"
2010년대 (히로인[39])
"용사여, 아기를 만들자."
"에? 뭐라고?"
이는 나무위키에 정리되어 있고, 유머로 활용되는 마왕 캐릭터의 변천사이다.

해당 변천사를 보며 단순히 권선징악이 아니라면서 현 시점의 유행을 아쉬워 하는 경우가 잦으나, 달리 생각하면 마왕이라는 창작물의 흔한 캐릭터성조차도 '왜 정복하려 하는가?', '반드시 성향이 절대 악에 가까울 필요가 있는가?', '애초에 마왕이라고 해서 무조건 악해야만 하는가?' 등의 질문을 작가들이 끊임없이 던져오며 이를 다변화하고 유행을 항상 바꿔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40] 웹소설을 예로 들면 천마가 포지션으로나 변천사로나 유사한 점이 있다.

흔히 고전으로[41] 취급되는 '절대악 마왕', '선한 용사' 등의 요소 역시 하나의 클리셰에 지나지 않는다. 《원피스[42]와 《귀멸의 칼날》 역시 고전적인 소년만화의 정석을 너무 그대로 따랐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는 점을 생각해보면, 당대에, 그리고 현재 어떤 소재가 유행하든 그 모든 것엔 우열이 없다.

만약 현대의 먼치킨 유행이 사이다에 대한 독자들의 맹목적인 동경에 의한 일이라면, 과연 과거 소년만화 시절의 소비층은 병적으로 정의로워서 극악무도한 악인에게마저 온정을 베푸려는 주인공을 보며 일말의 답답함 없이 동경만 했겠는가? 작품의 유행은 지난 유행이 해소해주지 못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시작된다.

다양한 사례를 미루어 볼 때 웹소설계, 유사한 라이트 노벨 등에서 유행이란 대부분 독자가 당대의 유행에 질리면서 클리셰 파괴가 이루어지며 세대교체가 된 것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유행은 항상 돌고 도는데 왜 사이다 서사에서만 사회 현상을 분석해가며 비판하느냐가 주요 비판점.

물론, 유행이 변화하는 기점과 그 이유는 엄연히 별개이며 '왜 유행이 이런 방향으로 흘러가는가?'를 분석하고자 한다면 사회를 분석해야 하는 것 또한 사실이기에 이 역시 새로운 요인을 제시할 뿐 완전한 반론은 되지 않는다.[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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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2. 비소비자들의 스노비즘

파일:쿨찐 주인공.png

위 사진은 2021년 11월 경, '왜 요즘 작품에 쿨찐 주인공이 많을까? - 독자편' 이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 업로드된 만화의 일부이다.아카이브(원본 삭제됨)

이는 다양한 커뮤니티에 퍼지며 독자들이 평소 웹소설라이트 노벨에서 느끼던 문제점을 비판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지지를 얻었고, 해당 유저는 작가편까지 만들어 업로드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이나, 이후 본편을 포함해 이후 업로드한 외전까지 많은 반발을 사며 원본을 삭제하고 작가편 역시 올라오지 않았다. 다만 여러 커뮤니티에 여전히 남아있으니 검색만 하면 쉽게 접할 수 있다.

해당 만화에서 대표적으로 반박된 지점은 크게 두 가지이다.

6.2. 비판

대중문화 쪽에서도 사이다를 지향하는 작품들은 독자/시청자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갈린다. 이런 작품들은 초기에는 누구나 공감할 법한 점을 짚어서 좋은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지나치게 공격적인 태도와 연출, 그리고 악역보다 문제가 더 많은 주인공(혹은 작가), 그저 먼치킨 주인공이 깽판칠 뿐인 단편적인 스토리텔링, 그리고 그런 레퍼토리를 가진 흔하디 흔한 작품들이 우후죽순으로 양산되는 악순환에 많은 독자들이 질려 떠나버리는 역효과를 초래한다.

때문에 사이다 전개를 우선시하는 풍조에 대한 반감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특히 대중문화 계통에서는 독자가 작가에게 이런 사이다 전개를 강요하거나, 혹은 작가 스스로가 사이다 전개를 펼치기 위해 무리수 전개를 펼치는 것 때문에 안 그래도 빈약한 스토리가 한층 개판이 된다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오죽하면 위에서 언급된 '사이다패스'라는 신조어가 나오면서 무조건 갈등구조도 없이 사이다 전개만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일까 생각해보자.

이런 작품들은 더 큰 호응을 유도하거나, 본인의 주장을 강조하려다 보니 너무 멀리 나가버리기도 한다. 작품의 선정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작품에서 드러나는 주장이나 내용에 공감하더라도 지나치게 공격적&폭력적인 연출은 눈을 찌푸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여기서 더 엇나가면 자기 입맛에 맞게 사건을 왜곡하거나, 상대방이 저지른 잘못을 부풀려놓고 피해자 코스프레 혹은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하며 주인공측의 보복범죄 행위는 심각성을 불문하고 문제시하지 않거나 되려 옹호하는 행태를 취하기도 한다. 사건의 전후관계나 상대방의 관점, 입장 등을 이해할 수 있는 묘사를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일방적인 윤리관을 들이미는 것이다. 작품의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 감정 표현을 과장하는 것은 창작에서 많이 쓰이는 기법이지만, 자기한테만 유리한 판을 깔아놓고 쉐도우 복싱을 한다며 싫어하는 독자도 많다.

6.2.1. 작품 질 저하 문제

1. 등장인물의 성공 그 자체보다는 노력을 하는 부분을 더 중요시해야 한다.
#1: You admire a character for trying more than for their successes.
2. 작가로서 풀어나가기에 재미있는 것이 아니라 관객으로서 흥미로울 만한 것이 뭔지를 항상 생각해야 한다. 이 두 가지는 크게 다를 수 있다.
#2: You gotta keep in mind what’s interesting to you as an audience, not what’s fun to do as a writer. They can be v. different.
16. 무엇이 걸려 있는가? 우리가 등장인물을 응원할 이유를 만들어라.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가? 성공을 어렵게 만들어라.
#16: What are the stakes? Give us reason to root for the character. What happens if they don’t succeed? Stack the odds against.
에마 코츠, 픽사 스토리 아티스트
"먼치킨 주인공의 단점은 주인공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설정 때문에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승부 그 자체가 주는 재미는 점점 떨어져 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아무튼 얘가 다 이김) 그렇기에 적 캐릭터의 매력과 전략, 싸움이 벌어지기까지의 갈등이 재미의 중요한 요소지요."
-정지훈, 웹툰 작가
사실 사이다물이 욕을 먹는 이유는 사이다 때문만은 아닌 것이 문제다. 사이다물의 대표 주자들을 예로 들어보자.

원펀맨》의 경우, 주인공 사이타마는 말도 안 되는 세계관 최강자에 갈등 요소도 거의 없고, 무쌍의 극치를 보여주는 걸어다니는 사이다 제조기다. 하지만 《원펀맨》이 비판받는 일은 거의 없다. 사이다물이지만 작가가 최대한 신경써서 성의있게 개연성을 맞춰 체계적인 스토리텔링을 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너무 강하니까 주인공 이외의 인물들로 일인극과 군상극을 디테일하게 그리다가 주인공은 클라이맥스에서 막타를 쳐주는 식으로 조절을 하며 조연, 악역들도 다들 개성적이다.

80~90년대 명작 중 하나로 꼽히는 《북두의 권》, 《죠죠의 기묘한 모험》 3부 스타더스트 크루세이더즈를 예로 들어보자. 《북두의 권》은 복잡한 갈등구조보다는 주인공 켄시로가 악당들을 멋지고 통쾌하게 쳐부수는 전개로 컬트적인 인기를 얻어 흥행했다. 특히나 켄시로가 악행을 일삼는 모히칸들을 통쾌하게 쳐부수며 일갈하는 "네놈들에게 내일을 살 자격은 없다!!!", "돼지는 도살장에나 가라.", "인간의 탈을 쓴 짐승놈들!", "아아, 오물은 소독해야지" 등의 촌철살인급의 대사와 호쾌함은 놀라울 정도의 희열을 가져왔다. 물론 되레 인물관계를 어거지로 집어넣고 설정을 배배 꼬다가 수라국편에 들어서는 평가를 깎아먹기도 했지만.

쿠죠 죠타로 또한 마찬가지다. "심판하는 건 나의 스탠드다!", "너무나도 같잖아서... 아무 말도 안 나온다.", "용서는 네가 죽인 엔야 할멈한테나 구하시지." 라면서 사정없이 비정한 독설을 퍼붓고 오라오라 러시로 적을 만신창이로 만들어 준다. 살려줄 생각 자체가 없었던 최종 보스인 한 명을 제외한 모든 악역들이 비굴하게 울부짖고 자비를 구걸해도 용서는 없고, 역으로 악역들의 절망감만 한층 더 커진다.[49] 또한 GTA 5트레버 필립스는 GTA 시리즈 역사상 최악의 미치광이지만 그와 동시에 켄시로나 죠타로 같은 주인공에 해당된다. 또한 트레버보단 매번 수난을 겪고 곤란한 상황에 처해있는 마이클프랭클린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트레버는 이 둘한테 양념을 쳐주는 캐릭터로 묘사된다.

반대로 먼치킨 사이다물의 대표주자인 《데스마치에서 시작되는 이세계 광상곡》과 《마법과고교의 열등생》을 보자. 켄시로와 마찬가지로 사토 펜드래건시바 타츠야도 압도적인 힘으로 적을 아무런 피해없이 간단하게 쳐부순다. 하지만 호쾌함이나 통쾌함은 미미한 수준으로 약하게 느껴진다. 당연한 일이다. 켄시로, 죠타로와 달리 사토와 타츠야는 감정적으로 기복이 없어서 분노하거나 포효를 하거나 격한 대사를 하는 일도, 속이 시원한 독설을 날리는 일도 없고, 악역들은 비중이 없어서 악행을 저지르기도 전에 퇴장하기 때문이다.[50]

사이다를 만드려면 악역들이 나와서 뭔가 악행을 하거나 비중이 있거나 하다못해 최대한 화려하고 처참하게 박살나야 하는데, 그 전에 박살나거나 간소하게 죽으니 바퀴벌레 잡아 죽이는 것처럼 보인다. 악역들의 절망감과 비참함도 강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즉, 사이다를 확실히 만드려면 악역들이 나와서 뭔가 악행을 하거나 비중이 있거나 하다못해 최대한 화려하고 처참하게 박살나야 하는데, 그 전에 박살나거나 간소하게 죽으니 바퀴벌레 잡아 죽이는 것처럼 보인다. 악역들의 절망감과 비참함도 강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즉, 양산형 웹의 작가들은 이러한 노하우를 전혀 안 갖춘 채 악역들이 비참하고 무자비하게 박살나며 절망하는 사이다 장면에는 큰 수고와 비중을 들이지 않고 대충 쓰는 경우가 태반이다.

분노를 담아 있는 힘껏 샌드백 패듯 강력한 공격을 퍼붓는 켄시로와 죠타로에 비해 저 둘의 공격이나 대사는 무척이나 절제되어 있고 깔끔하다. 특히 사토와 타츠야는 어떤 상황에서도 전력을 다해 싸우지 않는다. 반드시 무조건 힘을 숨기면서 여유를 부리며 독자가 보기에 답답하게 싸운다. 마치 자신이 전력을 다해 싸우지 않아도 상대를 이길 수 있다는 걸 자랑하는 것처럼 말이다. 《북두의 권》이나 《죠죠》에는 주인공이 전력을 다해 아주 상대방을 곤죽이 될 정도로 공격하는 오라오라북두백렬권같은 기술이 있지만 저 작품에는 그런 기술이 없다.

작가가 쿨하고 냉정한 게 멋지다고 생각해서 너무 주인공의 감정과 행동을 자제하고 주인공 메이킹에만 몰두하다보니 이렇게 된 것이다. 작가는 독자에게 최고의 사이다를 제공하는게 아닌, 자신의 분신인 주인공에 대한 총애에 빠져 주인공만을 보고 있는 것이다. 다른 주인공 외의 모든 것을 발판으로 만들어가면서까지 주인공의 대단함과 훌륭함, 강함을 세상에 알리려고 용을 쓴다. 독자가 원하는 건 주인공이 적을 처참하게 박살내는 사이다지, 주인공의 멋짐과 강함을 아는 것이 아니다. 특히 대개 이런 작가들은 주인공에게 온갖 기술들과 복잡한 설정, 떡밥 등등을 우겨넣는데 이게 오히려 너무 장황하고 많다보니 머리를 비우고 아무 생각없이 보는 사이다물에 있어서 역으로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다.

《북두의 권》이나 《죠죠》, 《원펀맨》처럼 단순하고 호쾌한 주인공이 나오는 작품이 인기를 끌었던 것도, 단순히 사이다라서가 아니라 누가 봐도 정의롭고 멋진 주인공이 호쾌하게 행동하는 모습이 빛나 보였고 통쾌하고 화끈했기 때문이었다.[51] 배트맨이나 퍼니셔처럼 법적, 윤리적으로 아슬아슬한 선을 오가는 다크 히어로가 나오는 작품 또한 단순히 범죄자를 시원하게 때려 패는 작품이라고 인기를 끈 것이 아니다. 배트맨과 퍼니셔가 시달리는 과거의 트라우마, 신념과 사회 사이에서의 갈등, 아치에너미와의 대립, 개성적인 조연과 악역 등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더해져 독자들을 매료시킨 것이다. 또한 주인공 설정과 기술도 간결해 생각없이 보기 어렵지 않다.

하지만 상당수의 작가들은 그런 사이다 주인공들이 '왜' 멋있었느냐, '왜' 좋은 평가를 받느냐에 대한 고찰 없이[52] 사이다 자체에만, 아니 주인공을 멋지고 대단하게 만드는 데에만 집착하게 되었고, 절제없이 점점 자극적인 장면이나 주인공이 멋지게 나오는 장면만을 쓰다가 수습을 도저히 하지 못하고 폭주하게 되곤 한다.

그리고 저 《데스마치》와 《마고열》과 《북두의 권》, 《죠죠》와의 비교에서 알 수 있듯 제대로 된 작품과 양산형 사이다물의 차이는 당연히 작가의 역량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작품 질의 저하를 문제삼는건 단순히 갈등관계가 없다거나 주인공 무쌍이라서 문제삼는 것이 아니다. 사이다물이 문제인게 아니라, 사이다물을 쓰는 작가의 역량이 문제것이다. 똑같은 사이다 인기작인데도 퀄리티와 작가 역량이 하늘과 땅 차이다.

특히 이런 사이다물의 고질적인 문제점이 사이다를 쓸 때마다 약발이 점점 떨어진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적을 압도적으로 해치우는 주인공의 강함에 매료된다. 하지만 그게 계속 반복되거나 똑같은 패턴으로 계속 우려먹으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질리고 무덤덤해진다. 이렇다보니 다른 요소 없이 사이다 하나만 가지고 어떻게든 독자를 끌리게 만들어야 하는데, 단순 사이다, 특히나 변화가 없는 원패턴 반복만으로는 독자들이 빠르게 질리게 되기 때문에 자극을 더하는 것만으로 재미를 유지하려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웹툰 《참교육》의 경우 주인공이 악인들을 화끈한 주먹질로 통쾌하게 처벌해주는 사이다 전개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주인공이 작품 내 최상위급 강자이고 적은 죄다 주인공에 비해 한참 약하기 때문에 결국 원패턴만 계속 반복되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세월이 흘러도 같은 전개만 나온다는 불평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에 더해 계속해서 자극적인 전개를 던져넣다보니 후폭풍을 생각 안해서 북미쪽에서 인종차별 문제로 연재 중단을 당하기도 했다. 다만 이후 참교육은 노선을 바꿔서 진행하기 시작하면서 호평이 늘어나고 있다.

어떻게든 주인공에게 판을 유리하게 깔기 위해 무리수나 치트를 놓고, 거의 빌런 수준까지 타락한 주인공을 미화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를 쓰거나,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다른 모든 것들을 무시해버리는 작품, 똑같은 레퍼토리만 반복하면서 뭔가 더 자극적인 것만 꺼내들며 수위가 올라가는 작품을 단순히 보기 재밌다는 이유만으로 '좋은 작품'이라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사이다물이 비판받는 진짜 이유는 사이다 때문이 아니라, 그저 작가가 프로의식 없이 소설을 너무 쉽게 쓰고, 그리고 퀄리티가 지나치게 떨어지기 때문일 뿐이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자료조사나 전문가의 자문을 구하지도 않고, 조연, 악역들의 체계적인 캐릭터 구축은 도외시하며, 흔하디 흔한 클리셰까지 만들어서 베껴서 그저 비슷한 물건을 만들어내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있다. 이렇게 끝도없이 질이 떨어지다보면 결국에는 표절하는 작가까지 나와버린다. 작가는 머리를 쓰는 직업인데, 머리를 써야 할 작가가 머리를 쓰지 않는 것이다.

사실 작가들이 사이다물을 쓰는 이유 중 상당수는 사이다물이 가장 쓰기 쉽고 간편하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파워 밸런스나 악역, 조연 캐릭터의 개성, 비중, 스토리 등 신경쓰고 머리 쓸게 많은 다른 장르와는 달리 사이다물은 그저 주인공에게 비중을 올인하고, 내용은 주인공 무쌍만 반복해서 쓰고 나머지는 신경쓸 필요가 하나도 없어서 머리 쓸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 게다가 상술했듯 인내심에 금세 한계를 느끼는 독자들을 끝까지 붙들어매려면 빨리빨리 작품을 계속해서 낼 수 밖에 없다.

주인공이나 악역들이나 다 그냥 거기서 거기인 마치 판에박힌 똑같은 타입의 놈들 뿐이니, 주인공이 악역을 박살내는게 반복되어도 신선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53] 하다못해 그 사이다 터트리는 장면이라도 공과 시간을 들여서 치밀하게 만들었으면 나름대로 인정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빌런들의 서사가 빈약하니 문제가 크다. 이래서야 독자들이 빌런에 감정이입을 할 수 없게 되니 주인공이 빌런을 시원하게 때려 눕혀도 거기서 독자들이 느낄 상대적인 쾌감은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

사이다물이라고 해도 개연성과 퀄리티를 잘 지키고 생각을 여러모로 해서 공을 들여 스토리텔링과 캐릭터를 체계적으로 쓰면 욕을 먹을 이유는 전혀 없다. 라이트 노벨 문서에도 나와있지만, 독자가 쉽게 읽을 수 있는 소설과 작가가 쉽게 쓰는 소설은 엄연히 다르다. 사이다 이전에 성의와 퀄리티 문제다. 취향이 아니라 프로 작가로서의 기초적인 성의 문제인 것이다. 독자는 생각없이 작품을 읽어도 된다. 하지만 작가는 생각없이 작품을 써서는 결코 안되기 때문이다.

결국 결론은 현세대가 막장이 된 것은 힘겨운 삶의 위안을 찾기 위해 돌파구를 원하는 독자와 별 힘을 들이지 않고 돈을 쉽게 벌고 싶어하는 작가의 안이함의 복합적인 작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어떤 장르건 유행을 타기 시작해서 많은 수의 작품이 쏟아져나오면 질적 저하가 동반된다는 건 필연적이긴 하다. 꼭 사이다물만 그런 건 아니라는 이야기. 하지만 문제는 인터넷 사이트 특성상 진입장벽이 낮은 데 있다. 소설가가 되자문피아를 비롯한 인터넷 창작 사이트들은 누구나 작품을 올릴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러한 창작 사이트의 구조 때문에 창작의 진입장벽이 낮아졌으니 실력과 마음가짐이 부족한 사람들이 우후죽순 뛰어들게 되는 것이다.

6.2.2. 소비자들의 태도 문제

사실 생각보다 사이다물 자체가 욕을 먹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물론 사이다물이 아예 억울하게 욕을 먹는다는 것은 아니지만, 사이다물의 주요 비판점은 사실 타 장르라도 해당된다면 비판받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날림 전개나 원패턴 반복 등은 타 장르라도 충분히 욕 먹기에 딱 좋은 문제인만큼, 사이다물이라고 특별히 더 욕을 먹거나 타 장르라고 옹호받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사이다물이라는 용어가 더 뒤늦게 나온 개념인만큼 예전 작품이라고 사이다물에 해당하는 작품이 없을리가 없다.

진짜 문제는 사이다만 열광하고 빌드업을 위한 조금의 갈등이나 서사는 절대 용납하지 못하는 독자층의 태도가 있다. 이러한 독자층에게는 주인공의 서사나 갈등, 성장 등은 그저 답답함만 유발하는 고구마 취급을 당하고, 주인공이 넘어서야 할 대척점으로서 빌런이 쌓아야 할 서사는 악역 미화, 세탁질로 비하하기 일쑤다. 이런 독자층은 오로지 강력한 주인공이 문답무용으로 모든 것을 완벽하게 깨부수는 결과를 원하며, 악당은 철저하게 이해할 수 없는 악으로서 주인공에게 처참하게 당하거나 죽는 결말만을 바라고 있는 미성숙한 티를 다 내고 있다.

그래서 그런 소비자들은 주인공이 조금만 갈등이 있으면 왜 고구마만 먹이냐고 사이다가 필요하다는 댓글도 많이 단다. 사이다가 터지는 장면에서는 아예 개연성을 신경쓰지 않으면서, 고구마 장면에서는 개연성을 칼같이 따진다. 특히 주인공에게 주변인물들이 조금만 방해가 되어도 고구마라고 욕하거나, 심지어는 혼자 무쌍 찍는 주인공은 사이다라고 좋아하면서 주인공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딱히 방해조차 하지 않은 주변인물을 욕하기도 한다. 작중 전개상 개연성은 충분한데도 강한 주인공이 나서서 다 박살내지 않는다고 고구마 소리를 들으며 욕을 먹기도 하고, 남도 아닌 가족에게 뭔가를 베풀어도 호구, 고구마라고 비난하는 어처구니없는 댓글이 달릴 정도다.

이런 전개가 문제가 되는 먼치킨물은 보통 주인공이 너무 강해서 갈등 요소가 주인공 자체보다는 주변인물들의 위기를 통해 나타나기 마련인데 소비자층에서 '갈등 그 자체'를 용납하지 않는 것. 정석적으로 좋은 작품을 내놓아도 대다수의 소비자들이 그런 정석적인 작품에서 나오는 약간의 갈등관계조차도 감당하기 귀찮아하고 재미없어 한다. 이는 2010년대 들어 주요 소비자층으로 자리잡은 10~20대가 창작물 내의 경쟁관계나 등장인물이 겪는 시련 등으로 인해 겪는 답답한 상황, 복잡한 전개 등을 매우 싫어하고 빠르게 진도를 빼는 것과 걸리적거리는 것 없는 거침없는 전개를 좋아하는 경향성이 두드러지기 때문으로 보인다.[54]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소비자층의 성화를 작가들이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받아들이면 독자들의 입맛에 맞게 주변인물들은 등장 자체가 줄어들면서 공기가 되고, 강한 주인공이 아무런 정당한 이유 없이 다 때려부수는 막장 전개로 치달아 대충대충 스토리를 전개시키거나, 주인공에게 도덕적 우위를 제공하기 위해 척 봐도 강한 주인공에게 시비를 거는 바보들만 적으로 나오게 되어 완성도가 처참해진 작품이 나오는 것이다. 이게 심해지면 누가 봐도 기겁할 만한 위업을 세운 게 소문나더라도 '우연인 거겠지'라면서 정신승리하는 막장스런 자들이 강자나 현자 타이틀을 달고 나타나기까지 한다.

이런 식으로 질적 저하가 일어나는데도 몇몇 소비자들은 이러한 질적 저하를 전혀 신경쓰지 않고 오직 자신의 취향에 맞기만 한다는 이유로 사이다가 계속되는 상황만을 좇는다. 위에서 언급한, 마법과고교의 열등생일본에서 범람하는 이세계물들이 작품성에서 큰 비판을 받고, 그 문제점이 개선되지 않는데도 높은 수익을 벌어들이는 이유도 다 이 때문이다. 무슨 마약 같다

위 문단에서 죠죠 3부의 쿠죠 죠타로북두의 권켄시로를 예시로 들었는데, 이 캐릭터들이 인상적인 사이다 장면으로 인기를 끈 것은 맞지만 동시에 그들을 큰 위기에 빠뜨리는, 사이다패스 문법으로는 '엄청난 고구마'를 양산하는 숙적이 존재했다. 쿠죠 죠타로에게는 DIO가 있었고, 켄시로에게는 라오우가 있었다. 쿠죠 죠타로는 DIO를 찾아 떠나는 여정에서 몇 번이고 죽을 고비를 겪고 동료를 여럿 잃었으며, 그러한 시련을 이겨낸 끝에 마지막에는 압도적 강자가 되어 최종보스인 DIO를 시원한 사이다 장면으로 끝장낸다. 라오우 또한 켄시로와 동급의 존재로서 최후의 전투까지 호각으로 싸웠다. 북두의 권의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해당 작품은 라오우가 나온 1부 이후로 지속적으로 인기가 떨어졌는데, 막강한 켄시로에 맞서 싸울 매력적인 적대자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듯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의 서브컬처만 하더라도 주인공에게 역경을 강요하는 매력적인 악역들이 존재하며, 주인공이 그런 악역들의 흉계에 몇 번이고 당하고 꺾이면서 성장하거나, 혹은 비극적인 배드 엔딩을 맞는 작품들이 있었다. 하지만 '사이다' 문법에서는 그렇게 흉계에 당해 위기에 빠지면 고구마 먹는다고 욕을 박는 것이다. 그들의 문법으로 죠죠와 북두의 권을 리메이크하면, DIO와 라오우는 주인공에게 농락당하기만 하다가 추하게 몰락하는 장면만 계속해서 그려야 사이다패스들이 환호한다. 하지만 그렇게 리메이크된 죠죠와 북두의 권은 당연히 원작 팬들에겐 욕을 먹을 것이고, 알맹이 없는 사이다 작품의 주인공이 된 쿠죠 죠타로와 켄시로는 그대로 잊혀지게 될 것이다.

독자층의 지나친 사이다 강요와 고구마 비난은 사이다패스라는 멸칭과 함께 사이다물에 열광하는 독자층이 비판받는 가장 큰 이유이다. 상술했듯 사이다물을 좋아하는 독자층[55]은 사이다물 또한 하나의 문화적 경향성이며, 이러한 취향을 가진 독자층이 원하는 사이다물이 나오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이는 분명히 맞는 말이다. 문화 산업이 커지며 저마다의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는 여러가지 작품들이 나오고 있는 현실에서 사이다물을 좋아하는 독자층은 사이다물을 향유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해 거센 비판을 가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카카오페이지는 남성향 작품과 여성향 작품이 공존하는 플랫폼이다. 그러나 해당 플렛폼 내에서 로맨스 판타지같은 여성향 작품을 두고 남성향스럽지 않다고 비판하는 독자나, 반대로 무협같은 남성향 작품을 두고 여성향스럽지 않다고 비판하는 독자는 보기 힘들며, 보이더라도 바로 다른 독자들의 비판을 받는다. 사이다물 또한 하나의 장르이며 좋아하는 계층이 확연히 구분되는 경향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사이다물을 지나치게 사이다만 추구한다고 비판하는 것에 대해 사이다물이 싫다면 다른 작품을 봐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사이다물에 대한 비판을 차단했던 사이다물 독자층은 정작 사이다물이 아닌 작품에 대해서는 사이다물이 아니라고 격렬하게 비난한다. 이렇게 취향을 존중해달라 말하는 사이다물 독자층은 정작 사이다물이 아닌 작품에 대해서는 거센 비판을 가하며 작품을 사이다물로 바꾸려고 하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왔으며, 이러한 행패들이 사이다물이 취향에 맞지 않아 그렇지 않는 작품들로 눈을 돌린 독자층의 눈에 계속 들어왔다. 이런 이들을 비판하는 데 생긴 용어가 바로 사이다패스. 사이다와 사이코패스를 합친 말이다. 심지어 부조리극이나 사회풍자 작품에도 고구마 운운하는 독자들도 종종 존재한다. 허나 이들은 애초부터 이를 상정하고 만든 작품으로, 취향에 안 맞으면 안 보면 된다.[56]

이렇게 평범하게 통쾌함을 원하는 심리를 넘어서서, 비정상적이거나 기형적인 수준으로까지 요구하는 일부 독자층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단순히 통쾌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거슬리는 모든 요소를 때려부수려는 경향을 보인다. 대표적인 사례를 살펴보자.

이들은 과거 인터넷 소설처럼 댓글을 통해 작가를 압박하기도 하지만, 유료화 작품의 경우 회차 단위 결제인데다 1일 1회를 연재하기 때문에 한 화의 전개가 마음에 안 든다고 바로 결제를 중단함으로써 다음 전개에 즉각적으로 피드백을 줄 수 있다. 때문에 이러한 독자들의 기호에 맞춰 극단적으로 사이다만 추구하는 사이다패스 소설들이 범람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내용적으로 다양함이 없는, 승승장구하는 이야기만 남는다는 것. 이렇다보니 통상적으로는 먹히던 장르들 중에서 고구마 요소가 필수적인 성장물, 루프물은 필요 이상의 저평가를 받기도 한다.

상업적인 컨텐츠에서 가장 중요한 건 돈이며, 만일 사이다가 돈이 되지 않는다면 사이다물에 대한 유행도 자연스럽게 사그라들 것이라지만 그게 사그라드는 것을 기다리려면 한참은 걸릴 것이다. 카카오게임이나 양산형 게임도 같은 현상을 겪고 있다. 카카오게임/비판과 논쟁점 문서에도 있듯이 이런 식의 질적 저하가 만연한 것도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저 소비를 할 뿐인 독자들의 책임 또한 상당히 크다. 오로지 사이다만을 과하게 요구하는 소비자들의 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작가들 역시 수요를 맞추기 위해 이런 독자들에게 끌려다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심하다면 주인공 및 주변 인물들의 내면 묘사나 과거 회상도 좋아하지 않는 독자들도 있다. 이 심리 상태 묘사도 작가가 필력이 떨어지면 내용이 지루해지고, 독자들에게는 주인공이나 등장인물이 생각만 하느라 전개를 질질 끌어 페이지에 쓴 돈이 아까울 수 있기 때문이다. 내면 묘사는 개연성과 인물의 특징에 대한 깊은 이해가 가능하게 하는데, 그것도 싫어하고 빨리빨리 내용 전개로 갔으면 좋겠다는 독자들도 좀 있다. 특히 한국 남성향 웹소설은 노맨스, 히전죽과 같이 등장인물 간의 인간관계와 감정교류 등을 가급적 최소화하는 작법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는 한국 남성향 웹소설의 고객층 입장에서 볼 때 인간관계란 그저 감정노동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한국 웹소설의 주고객층에게 있어선 연인 간의 사랑은 물론이고 친구 간의 우정 같은 것도 그저 불필요한 감정노동일 뿐이다. 그렇기에 한국 웹소설에서는 이러한 감성적인 요소들이 가급적 배제되는 관행이 있다.

웹소설이 웹툰화된다면 웹툰만 보는 사람보다 웹소설을 읽는 사람들이 비교적 더 답답함을 느낀다. 웹툰에서는 답답한 장면이나 떡밥 혹은 복선이 나오더라도 스포일러가 되는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해당 원작 웹소설을 읽으러 가는 사람들이 있지만, 웹소설은 보통 해당 소설이 원작인 경우가 대대수라 다음 화가 연재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웹소설도 점차 한국식 사이다 성향으로 가고 있다. 링크

중국웹소설 내의 클리셰는 5000년 중화의 기상답게 한국과 많이 다른 편인데 사이다 성향이 너무 과도해 주인공 뿐만 아니라 등장인물 대다수가 사이코패스이다 보니, 커뮤니티 사이트에선 한국이 사이다라면 중국 웹소설은 염산이라고 비유하기도 한다. 링크. 중국 웹소설의 유사 정서로는 솽원(爽文)이 있다. 사이다와 본질적으론 비슷하나, 한국의 (현대 판타지 부류의)사이다 서사가 사법체계, 경제논리 등 공적 시스템의 신뢰 내에서 상대적으로 온건한 사이다를 추구한다면, 솽원 즉 중국식 사이다는 사적 시스템이 공적 시스템보다 우선하며 폭력, 꽌시 등의 불법, 사적 사회 시스템을 통해 악역을 더 가혹하고 영구적으로 처벌하는 경향이 있다.

한편 개연성을 의도적으로 파괴하는 장르(코미디, 호러물)는 특성상 개연성(떡밥 회수)이나 명확한 결말하고는 인연이 없을 수밖에 없는데 해당 작품을 평론할 때 사이다를 주지 않았다고 진상을 부리는 경우가 있다. 개연성이 작품 평가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해당 장르에서만큼은 예외라는 게 전혀 알려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 이 위키에서는 코미디, 호러 장르인 작품을 두고 떡밥 회수를 안 했다고 비판하는 경우도 많은데 떡밥의 회수를 안 하는 것은 코미디, 호러의 기본적인 작법 중 하나이다. 그런데 떡밥 회수를 안 했다고 뭐라고 하는 것은 해당 장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다'. 떡밥 혹은 복선은 주인공이나 주변 인물이 답답하게 행동하는 것보다는 내용의 흥미를 이끌 수 있어 비교적 일시적인 답답함을 참기가 쉽기 때문에 사람들이 떡밥이나 복선이 생겼다고 '하차합니다' 소리를 할 확률이 낮다.[60] 단 무료분만 보는 사람들이 유료분을 먼저 본 사람에게 스포일러를 해 달라고 조르기도 하기 때문에 스포일러를 보기 싫은 독자라면 댓글창을 주의해야 한다.

6.2.3. 현실과의 괴리

사이다 요소는 현실과의 괴리를 일으킨다. 사이다가 난무하는 작품 속의 세계는 사이다 요소를 위해서 현실보다 훨씬 단순한, 일차원적인 전개가 많다. 사회적 지식과 심리학적인 지식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들은 알고 있겠지만 현실의 인간 사회는 이분되어 있지 않고 다양하게 이루어져 있다.

현실의 문제를 제대로 반영한 영화로 평가받는 기생충의 등장인물들이 일차원적이지 않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한국 미디어에서 부자나 재벌은 흥부와 놀부놀부마냥 거의 악마로 묘사되고, 관객들은 그가 죽거나 해를 입을 때 대리만족을 느끼지만 기생충에서의 박동익은 그런 부자와는 한참 떨어진 캐릭터다.[61]

반대로 참교육같은 일부 사이다 작품들은 독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려는 목적으로 일차원적인 엄벌주의를 과대평가한 채 설파한다.[62] 심지어 참교육의 헬퍼 에피소드에서는 서울 한복판에서 근무하는 택시 기사가 여성이 돈 없이 탔다는 이유로 성폭행을 시도하는, 작위적이고 납득하기 어려운 스토리까지 나왔다. 차라리 경찰서에 끌고가려는 전개라면 현실감 있고 가출한 소녀 입장에서도 똑같이 문제가 되는 상황을 만들 수 있었다.

현실 소재를 많이 포함하는 사이다물들이 어중간하게 현실성을 지키는 경우가 흔하다. 현실의 보기 싫은 부분들도 피하지 않는 작품일수록 사이다 요소가 적어진다. 기생충(영화)이 바로 대표적인 예시다.

7. 고구마 방지 대안

작가가 작품의 형식을 피카레스크옴니버스로 미리 기획해두고 연재하는 방법이 있다. 기승전결이 짧은 간격으로 반복되는 형식상 독자들이 작품의 구조를 파악했다면 지치지 않고 호응해줄 수 있고, 해당 클리셰가 어울리는 장르에 포함되어 반감을 줄일 수 있다. 다만 이는 기승전결의 호흡이 긴 작품을 쓰지 말라는 소리이기 때문에 다양한 창작 환경을 조성해주는 방안은 되지 못하며, 특히 옴니버스 구성은 비주류이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이론에 불과하다.

그 외에도 일부 웹소설의 경우 필력과 대여점, 초기 판타지의 감성을 주제로 독자들에게 어필하기도 한다. 이른바 정통 판타지.[63] 이 경우 일반적인 웹소설과 다르다는 것을 독자들이 인지하고 고구마, 기나긴 빌드업, 공을 들인 문장을 장점으로 수용하기도 하는 편. 물론 큰 인기를 얻진 못하므로 특정 감성의 코어 독자층을 노리고 연재하는 식이다.

작가가 작품의 호흡이 늘어지는 걸 막기 위해 긴 분량을 몰아서 쓰고[64] 한 번 결제에 많은 비용을 받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다. 다만 이는 플랫폼-작가-독자와의 삼자 협의가 충분히 이뤄져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므로 어디까지나 이론상 대안 중 하나에 속한다. 또한 주 2~3회 연재, 혹은 자유연재 등도 제시되곤 한다. 일일연재의 이점을 포기함으로써 비교적 적은 독자들을 가져가지만, 대신 그만큼 시간을 들인 소설을 판매한다는 것. 이 경우 독자들 또한 일일연재같은 전개력을 기대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안으로 많이 쓰이곤 한다. 다만 이는 역시 이론상의 대안일 뿐이지 실현 자체가 어렵다. 주 2~3회, 혹은 비정기 자유연재를 하는 이들 또한 기본적으론 웹소설 독자의 기호에 맞추고 있으며, 주 5회 혹은 매일 연재가 기본적이라고 인식되고 있기 때문. 따라서 현실적으로 다양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아닌 셈이다. 전개에 반드시 필요한 고구마 파트가 나와야 할 때 연참을 하는 방안도 있으나 해당 문서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현실은 작가가 전업작가가 아닌 이상 일일연재도 쉽지 않으며, 독자들이 연참에 익숙해지면 오히려 연참을 안 했다고 작가를 비판하는 등의 각종 문제점이 많다.

처음에는 사이다 전개로 독자들의 이목을 끌고 독자들을 만족시켜주고, 여러 번 사이다를 부어주다 독자들이 사이다에 무심해질 때 쯤 갈등 구조를 주인공이 힘들게 또한 길게 잡아 독자들에게 의외의 전개를 선사하는 대안도 있다. 한마디로 적절하게 완급을 조절하는 역량을 발휘하는 것이다.

주인공이나 주변 등장인물의 내면 묘사가 작품의 호흡을 지나치게 늘린다면, 해당 묘사를 줄이면서도 전개에 반드시 필요한 부분만 남겨서 내용을 질질 끌지 않아 지루해지지 않고 개연성에 중요한 심리 묘사도 잘 챙길 수 있다.

8. 관련 문서



[A] 한중 인터넷 소설 속 갈등해결양상비교— '사이다' 추구 현상을 중심으로. 2021. 최재용[A] [B] 웹소설 서사의 파격성과 보수성. 2022. 박수미 48p[4] 최재용. 앞의 연구. 2021. 208-209p[B2] 박수미. 앞의 연구 53-54p[6] 보통 이 지점에서 여성향 웹소설 향유층이 성향적 차이를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BJ 대마도사를 읽은 여성향 독자가 인간적 교류 없이 무한한 노가다, 성장 패턴에 당황스러워 한다던지가 대표적인 사례다.[7] 다만 웹소설만의 특징인 건 아니다. 어느 창작물이건 막힘없고 시원한, 통쾌한 서사는 늘 인기있었고 핵심 골격으로 쓰였다. 웹소설은 시스템 특성 상 더 강화된 정도로 보아야 한다.[8] "웹소설은 '사이다'…비련의 주인공 안통해요" 매일경제. 2021.[9] ‘사이다’라는 진통제. 이융희.[10] [이슈분석] 3대 키워드로 읽는 웹소설의 세계. 월간중앙. 2020.[11] 다만 속도감을 추구하다 보면 작품성 논란과 엮이기 쉽다. 빠르고 가벼운 전개 하에 충분한 담론, 고찰을 담아내는게 불가능한건 아니지만, 어렵긴 하기 때문이다.[12] 실패하지 않는 웹소설 연재의 기술. 2019. 산경. 54-55p[13] 남성향 사이다 웹소설과 문학의 거리. 푸뱅.[14] 예시를 들자면 동물전대 쥬오우저데스 가리안.[15] 물론 대다수 웹소설 플랫폼들은 PC와 모바일로도 서비스를 제공한다. 하지만 플랫폼 운영은 스마트폰 위주이며, PC와 모바일은 구색 맞추기인 경우가 많다. 국내 최대 웹소설 플랫폼인 카카오페이지만 해도 PC는 버렸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16] 서브컬처의 산업화, 미디어산업의 서브컬처화[17] 피폐물이 호불호가 많이 갈리긴 하지만 그 대신 충성도가 높은 팬이 많이 붙는 등 남성향 작품에 비해 비교적 피폐한 것을 버티는 사람들이 많다. 다만 떡밥이나 복선과 관련된 빌드업의 개연성이 맞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면 남성향 작품처럼 댓글창이 불타오를 정도로 비난을 받을 수 있다.[18] 아무래도 힘든 단기고수익 알바의 대명사다보니 재미없으니 소설연재 같은 건 그만 하고 상하차로 돈이나 벌라는 꽤나 과격한 비판. 이것 때문에 일부 웹소설 작가들은 버스에서 사람들이 내릴 때마다 카드 찍으면 울리는 '하차합니다' 안내멘트만 들어도 놀란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19] 여기에는 일부 남성향 웹소설의 브로맨스/BL 드리프트로 인한 히전죽 문법 축소 및 남성 독자들의 하렘물 선호도 영향을 끼쳤다.[20] 관련하여 독자들의 논쟁이 있었던 작품으로 나, 스탈린이 되었다?!가 있다.[B] [B2] [23] 우월성의 결핍을 채울 수 있는 유일한 존재[24] 다만 악살싶의 경우는 캐릭터 설정과 전작 히로인 푸시에 대한 불안감도 섞여있었다.[25] 독자들은 주변인의 반동인물화와 그에 따른 사이다보다는, 애초부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걸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26] 이는 문서 분류부터가 그렇듯 사이다 역시 하나의 클리셰나 장르로 취급되고 있기 때문, 독자들은 그런 전개를 바랐기에 사이다물을 찾은 것이고, 사이다물이기에 그러한 전개를 예상한다.[ㅊ2] 중국 웹소설은 비교적 온건한 공적 시스템이나 윤리에 기반하는 한국(현대 판타지)웹소설과 달리, 꽌시, 폭력 등의 불법, 사적 사회 시스템을 통해 악역을 더 가혹하고 영구적으로 처벌하는 경향이 있다. 최재용. 앞의 연구. 208P[B2] [29] 최규석의 만화 송곳을 드라마화한 게 정작 드라마에서 다루고 있는 비정규직, 워킹 푸어의 호응을 불러오지 못한 사례가 있다.[30] 그렇다고 고전적 플롯은 역경을 뚫는 이야기인 건 아니다. 고전 동화는 정말로 사이다도 한 수 접고 들어가는 한 방에 몬스터 잡고 한 방에 영웅이 되고 긴장이 없을 정도로 단순한 플롯이 많기에, 천천히 빌드업하는 이야기는 훨씬 후대에 만들어 졌다.[31] 이 글(원글은 포스타입이나 사라져서 디시로 대체)을 쓴 사람은 자신의 웹소설이 망한 적이 있는데 웹소설계를 분석한 그 글이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아서 그런지 남초나 여초를 가리지 않고 커뮤니티 사이트에 돌게 되었다. 제목은 남성향 사이다 웹소설이라지만 대부분의 사이다 작품으로도 해석해도 아귀가 맞다. 더쿠, 루리웹[32] 주인공만의 특별한 재능, 남들보다 앞서나가는 상황, 꼼수에 가까운 방법으로 높은 경지에 쉽게 이르고 성장하는 전개 등. 이는 고전적인 영웅 신화의 구조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전형화된 영웅 신화의 구조는 지속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EBS 다큐 프라임 '이야기의 힘', 조지프 캠벨의 《신화의 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 나온 영웅 신화가 가지는 몇 가지 특징에 따르면 불완전한 주인공이 특별한 계기(또는 힘)로 목적(직책)을 얻고, 도움을 주는 조력자를 만나 어떠한 동기(혹은 도움이 되는 도구)를 얻고, 적(혹은 고난)에 맞서 싸우게 되고, 승리하여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33] 웹소설에선 게임 판타지가 아닌 장르에서도 주인공, 혹은 독자 본인이 비디오 게임을 즐기는 듯한 감상을 받을 수 있다. 주인공의 '게임을 하는 것처럼' 가벼운 마음가짐이나, 게임 특유의 상태창을 비롯한 시스템을 활용하는 것 등. 나 혼자 만렙 뉴비 등의 비교적 최근의 게임 문법을 활용한 작품을 보면 과거 더 게이머처럼 빠르게 현실에서 급변한 상황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받기도 한다. 마치 게임을 하는 것처럼.[34] 게임 속 전사가 되었다와 같은 작품은 더 위쳐 3: 와일드 헌트의 스토리텔링 기법과 빗대어지기도 했다.[ㅊ2] 중국 웹소설은 비교적 온건한 공적 시스템이나 윤리에 기반하는 한국(현대 판타지)웹소설과 달리, 꽌시, 폭력 등의 불법, 사적 사회 시스템을 통해 악역을 더 가혹하고 영구적으로 처벌하는 경향이 있다. 최재용. 앞의 연구. 208P[36] 특정 키워드를 포함한 제목의 유행, 질적 저하 외에도 앞서 언급된 문제점 전체.[37] 그 언젠가가 기약이 없다고 볼 수 있으나, 그렇지만은 않다. 웹소설 비판론자들이 흔히 거론하는 상태창히전죽 역시 다양한 요인에 의해 줄어들고 있기 때문.(상태창은 완전히 사라졌다기 보단 반감이 늘어남에 따라 그 비중이 갈수록 줄어드는 과정에 있는 편이다)[38] 좀 특이한 사례로는 바칼이 있는데 필요악스러운 면이 있으면서도 자신의 계획에는 반드시 자신의 죽음도 수반되어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자신이 마왕같은 행적을 보이는 것은 사실은 자신들에게 탄압받는 이들이 자신을 물리칠 만큼 강해질 기회를 주기 위함이고 그렇게 강해져서 진짜 흑막을 처단하라는 것. 이 때문에 바칼은 절대악스러운 면이 먼저 드러나고 그 후에야 숨겨진 필요악으로서의 면모가 드러난다.[39] 용사=빛=양기=남성, 마왕=어둠=음기=여성이므로 자연스러운 귀결이라는 말이 있다.[40] 이는 마왕 뿐만 아니라 흡혈귀(뱀파이어), 늑대인간 등도 마찬가지이다.[41] 커뮤니티의 표현을 빌리자면 근본으로[42] 악당들의 절대악적인 면모를 보고 싶지 않아서 원피스를 기피하는 사람이 있다. 거대한 핵심 플롯을 진행하는 도중에 끼어드는 악의 축들의 악한 면모를 부각하는 서브 플롯과 극적인 장치들이 그만큼 카타르시스를 높이는 효과가 있을지는 몰라도 그것이 반복되면 독자가 그 절대악적인 면모에 자극을 받기보다는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많아지고 더 쉽게 지치기 때문인데 자극적인 냄새를 자꾸 맡으면 코가 지치는 것과 비슷하다.[43] 하지만, 마왕의 히로인화가 40년에 걸친 다변화의 결과라는 것. 절대악, 악, 필요악이 이미 클리셰로서 굳어진 것을 미루어 보면 이는 창작물이 계속 만들어지는 한 필연적으로 한 번쯤은 유행할 수밖에 없었다.[44] 이는 나혼렙에 한정된 일이 아니라는 것은 '주인공은 뭐만 하면 아픈 부모님이랑 의젓한 동생이 있다'라는 과거의 클리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다르게 말하면 다수의 주인공이 가족을 중요시하는 인간적인 면모를 쉽게 드러낸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잘 나가는 웹소설 중에 쿨찐 주인공이 존재하는 것' 자체로는 이를 반박할 수 없다.[45] 덧붙여, 흔한 인식과는 달리 아무런 노력 없이 성공하는 주인공 역시 외면받는다. 밥만 먹고 레벨업 등의 제목이 그러한 작품으로 인식될 수 있으나, 이러한 제목은 대개 게임 판타지에서 사용된다. 즉, 작품의 분위기가 가볍고 비록 게임 속이라는 배경이지만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노력도 한다는 것.[46] 여기엔 흔히 말하는 회빙환 장르에서의 정보 독점 역시 포함된다.[47] 여기서 웹소설 독자들이 영웅이 아닌 책임 없이 날뛸 수 있는 다크 히어로 캐릭터만 좋아한다는 주장은 아예 웹소설의 주된 비판점 자체를 스스로 부정하는 셈이다.[48] 엄밀히 말하자면 욕먹어서 망한 웹소설의 주인공의 특징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49] 《북두의 권》은 작은 악행에도 가차없는 《죠죠》와는 달리 천하의 악당일지라도 이 녀석도 사실은 좋은 녀석이었어라는 전개로 마무리를 짓는 편. 그러나 결국 뒷사정이 있던 없건 어쨌든 죽는다. 보통 모든 싸움이 끝나고 대악당이 죽기 직전에 과거사가 드러나고 켄시로가 자비로운 죽음을 선사하는 식의 결말이 난다.[50] 물론 이런 죠타로와 켄시로조차도 평소에는 무뚝뚝하고 재미없는 군상인지라 인간미가 부족하다고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적어도 저 둘은 화났을 때는 정말 무서울 정도로 분노를 표출하고 과격한 말을 퍼붓는 성격이다.[51] 이런 스타일은 사람들의 심리 속에 내재된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영웅상을 자극한다. 단순하고 오래된 클리셰이지만, 그만큼 효과적이다.[52] '즉사 치트'의 작가는 후기에서 '어차피 마지막에는 이기니까 배틀 따위는 필요없지 않나?'라는 심정으로 주인공에게 무적의 즉사 능력을 주었다고 밝혔다. 이 또한 주인공의 승리가 '왜' 쾌감을 주는지를 고려하지 않고서 이겼다는 결과에만 주목했기 때문이다. 사실 즉사 치트의 진짜 문제점은 주인공이 어차피 이길거면 빌런들을 다 빼버리고 일상유랑물을 해야하는데, 빌런만 더 많이 넣고 더 많이 죽였을 뿐이라는데 있지만.[53] 데스마치죠죠를 알기 쉽게 비교해보면 죠죠 3부의 경우 다양한 타입의 악역이 나온다. 물리공격이 안먹히는 타입(옐로 템퍼런스), 수중전에 능한 타입(다크 블루문), 물체를 통째로 동화시켜 조종하는 타입(휠 오브 포춘, 스트렝스). 거울속으로 이동하는 타입(행드맨)등등 똑같은 타입의 적은 거의 나오는 일이 없기에 지루함이 덜하고, 악역들이 잠깐 나왔다가 개발살이 난다고해도 독자에게 인상 하나는 확실히 남긴다. 하지만 데스마치는 다들 그냥 레벨, 스텟이 높고, 파괴력 높은 마법만 쓰는 타입만 줄곧 나온다. 특수한 타입이나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마법이나 스킬을 응용해서 쓰는 타입은 절대 안 나온다. 그냥 다 주인공 사토의 하위호환이라고 보면 된다.[54] 실제로 2010년 중후반 이후 웹소설이 대두되면서 2000년대 인기작, 명작들도 대거 웹소설로 재발간되었는데, 댓글이나 리뷰에서 혹평을 가하는 분위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55] 처음에는 편당 결제 웹소설 플랫폼에서 시작되었으나 점차 정액제 웹소설 플랫폼인 노벨피아나 심지어 무료 작품이나 팬픽도 많은 조아라 같은 곳에서도 이런 성향의 독자들이 많이 생겼다. 댓글. 그리고 나중에 웹소설 뿐만 아니라 다른 매체에서도 이런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56] 다만 안 보면 된다고 해도 운운하지 않을 리가 없는것이 안 보면 된다는 말을 듣고는 아예 보지도 않고 까대는 종자들이 훨씬 더 많다는 점이 있다는 것이다. 여성향 여덕/남성향 남덕이 하렘물/BL물을 서로 보지도 않으면서 까는 것과 비슷한 원리.[57]로맨스 판타지를 비롯한 여성향에서는 반대의 경우가 나타나기도 한다.[58] 형벌이 가혹한 국가조차도 일부 예외를 빼면 소매치기의 손목을 자르는 정도였지, 굳이 잔혹하게 죽이려고까지 하지는 않았다.[59] 물론 이경우만은 어쩔수 없다는 옹호 의견도 있다. 애초에 이런 경우는 작품의 개연성의 문제가 지적되고 공감조차 어려운데가 요즘 시대는 악인을 불쌍하게 바라보는 교정주의나 자비심이 아닌 엄벌주의가 대세인 만큼 빨리 죽는게 스토리 전개가 편하다는 의견도 있기 때문. 현실은 시궁창이라고 이 부분을 비판하는 독자들은 왕따 당하기 쉽다. 가장 까이는 집단인물들이 한 명도 아니고 여러명인데 이들을 옹호하거나 불쌍하게 보는 사람이 있을까? 당연히 없으며 항목의 예시같은 주역이나 빌런을 옹호하면 그 순간 덕질은 끝이다. 애초에 평가나 비판은 절대적이고 취향은 존중 받을수 없기 때문. 즉 이들은 안좋은 결말을 당해도 시청자들이 신나하는 사이다 취급을 받아도 딱히 이상할게 없는 대표적인 예시이다.[60] 게다가 사이다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스토리가 떡밥이나 복선에 지나치게 치중된 작품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뜻이지, 떡밥이나 복선이 아예 없는 것을 좋아한다는 뜻은 아니다. 웹소설 독자가 다른 작품보다 비교적 개연성을 안 따진다 하더라도, 떡밥 회수의 카타르시스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으며, 한국 서브컬처 특성상 여전히 떡밥 회수나 복선이 드러나는 것, 개연성이 맞는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웹소설 아카데미 얼굴천재가 되었다는 워낙 결말 관련 떡밥이 없어서 독자들 사이에서 그래도 중간에 복선들을 넣은 판타지 소설인 샤이닝 로드가 훨씬 낫지 않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61] 관객들 역시 박동익의 죽음에 환호하기보단 "박동익이 죽어야 할 정도로 잘못했나?"라며 찝찝해하거나 오히려 억울하게 살해당한 그를 동정한다.[62] 덕분에 언론이 웹툰을 비판하는 보기 드문 현상까지 발생했다. 경향신문, 오마이뉴스[63] 다만, 정통 판타지 장르에서만 이러한 어필이 보이는 것만은 아니다.[64] 보통 웹소설 1화의 최소 단어수가 5500~5700 정도이니 그 이상 내용을 늘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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