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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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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채 · 제명

[1] 이적 3개월만에 KBS로 복귀[MBC] SBS보다는 MBC에서 주축으로 활동하거나 MBC 공채로 재데뷔[KBS] SBS보다는 KBS에서 주축으로 활동하거나 KBS 공채 및 특채로 재데뷔[KBS] [KBS] [6] 코미디 살리기[7] SBS 공채 7기로 재데뷔[8] SBS 공채 6기로 재데뷔[KBS] [KBS] [KBS] [MBC] [MBC] [MBC] [KBS] [KBS] [MBC] [KBS] [KBS] [KBS] [KBS] [KBS] [KBS] [KBS] [KBS] [KBS] [KBS] [KBS] [KBS] [KBS] [KBS] [KBS] [33] 경찰공무원으로 이직[34] 2013년도에 데뷔하였으나 기수가 없었다.[KBS] [KBS] [KBS] [KBS]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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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희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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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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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acd32><colcolor=#fff> 정선희
丁善姬|Jung Seon-hee
파일:정선희프로필.jpg
출생 1972년 2월 1일 ([age(1972-02-01)]세)
서울특별시 성북구 장위동
거주지 서울특별시 노원구 중계동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본관 나주 정씨 (羅州 丁氏)
신체 164cm, 54kg[5], 240mm, A형
가족 어머니[6], 오빠, 남동생
반려견 찰리[7]
배우자 안재환(2007년 결혼, 2008년 사별)
학력 서울장곡초등학교 (졸업)
하계중학교 (졸업)
염광여자고등학교[8] (졸업)
동덕여자대학교 (경제학과 / 학사)
종교 개신교 (장로회)[9]
소속 프리랜서 (2018년 ~ 현재)
[ 이전 소속사 ]
웃사 엔터테인먼트[10] (2001년 ~ 2004년)
라임 엔터테인먼트[11] (2005년 ~ 2008년)
랄랄라온[12] (2009년 12월 ~ 2011년 5월)
코엔 (2011년 5월 ~ 2012년 12월)
프리랜서 (2013년 ~ 2014년)
Hi-CC[13] (2014년 ~ 2017년)
데뷔 1988년 KBS <비바청춘>[14]
1992년 SBS 공채 1기 개그맨
MBTI ISFP[15]
별명 딱따구리
서명
파일:연예인 정선희 서명 이미지.jpg

1. 개요2. 코미디언 생활3. 결혼 이후
3.1. 결혼3.2. 2008년 촛불집회 발언3.3. 안재환의 실종 및 사망
3.3.1. 쟁점
3.3.1.1. 안재환의 행적3.3.1.2. 안재환의 채무 증거들
3.3.1.2.1. 안氏 유족의 거짓말
3.3.1.3. 안미선의 허위 주장
3.3.1.3.1. 동반 납치설3.3.1.3.2. 실종 은폐
3.3.1.4. 안광숙의 언론 플레이
3.3.2. 정리 및 결론
4. 복귀5. 새로운 시작
5.1. 현재 출연 프로그램
6. 수상 경력7.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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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대한민국코미디언방송인.

2. 코미디언 생활

1988년 염광여자고등학교에 재학 중일 때, 동기동창 친구 김지선과 함께 KBS <비바 청춘>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 1992년 SBS 공채 1기 코미디언으로 정식 데뷔했다. (김지선1990년 KBS 공채 6기로 먼저 데뷔) 절친이었던 두 사람은 대기실 등 사석에서 당연히 반말로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 대화를 들은 코미디언 선배가 "엄연한 선배인 김지선에게 반말을 한다."며 크게 혼냈고, 그 때문에 한동안 서로 편하게 대화하지 못했다고 한다.[16]

데뷔 당시 동기인 신동엽[17](특채), 김경민, 김경식, 윤정수가 이름을 알리는 동안 무명 기간을 보냈다. SBS 공채였으나 타 방송사 MBC의 교양 프로그램 <TV 시간여행>에 출연한 것이 문제가 되어 친정인 SBS를 떠나야 했고, 1995년 10월 KBS로 둥지를 옮겼다. 이때 <슈퍼선데이>의 코너 <금촌댁네 사람들>에서 이영자, 홍진경 등과 함께 출연해 이름을 알리는데 성공했다. 이때 남긴 유행어가 바로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방송이 큰 인기를 얻으며 1997년 백상예술대상 코미디연기상을 수상했다.

1998년 1월부터 KBS 2TV 일일시트콤 <아무도 못말려>에 유재석, 송기윤, 이미영, 맹상훈 등과 함께 중도 투입되었다. <아무도 못말려>는 1997년 11월 24일부터 첫 방송을 시작했으나, 어설픈 상황 설정과 되풀이되는 말장난, 출연자들의 연기 부족 등으로 혹평을 받으며 시청률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새로운 인물진이 급히 투입되었으나, 1달 만인 1998년 2월 13일에 사실상 조기종영되었다. 이후 KBS는 한동안 해당 시간대에 일일시트콤을 편성하지 않게 되었다.

1998년 2월 21일부터 방송된 KBS 토요 시트콤 <행복을 만들어 드립니다>의 조연으로 캐스팅 되어 출연했다. 그러나 <슈퍼선데이 - 금촌댁네 사람들>의 핵심 출연자인 이영자, 정선희, 홍진경이 그대로 출연하면서, "자사의 흥행 코너인 <금촌댁→을 단독으로 재편성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었고, 약 1년의 방송을 끝으로 1999년 봄 개편에 따라 종영되었다. #

1998년 3월 4일부터 방송된 SBS 코미디 프로그램 <해피타임[18]>을 통해 SBS에 복귀했으나, 한 코너인 '무림전설'의 내용이 MBC 오늘은 좋은 날의 코너 '풍운의 별'과 비슷하다는 지적을 받으며 같은 해 4월 29일 방송분을 끝으로 종영했다. 같이 출연했던 박수홍은 '해피타임' 이후 코미디 프로그램 출연이 끊겼고, 김경식의 경우 해당 작품이 SBS에서의 마지막 고정 코미디 프로그램 출연작이 됐다.[19]

그리고 2002년 1월 30일부터 방송된 SBS의 퓨전 코미디 버라이어티 쇼 <SBS 웃는밤 좋은밤>으로 다시 친정 코미디 프로그램에 복귀했다. 그러나 인기 코미디언 캐스팅 불발[20]과 동시간대 꼴찌라는 시청률 굴욕[21]을 당하며 4회 만에 조기 종영[22]되었다. <웃는밤 좋은밤>은 정선희가 SBS에서 출연한 마지막 코미디 프로그램이 되었다.

하지만 정선희는 정통 희극 연기보다는 다양한 방송의 고정 패널로 출연하는 등 활동 영역을 넓히며 성장해나갔다. 또한 친숙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어린이 프로그램인 EBS만들어 볼까요의 진행을 맡으며 남녀노소에게 사랑받는 방송인으로 거듭났다. TV 방송뿐만 아니라, 2002년 MBC 표준FM <특급작전>에서 김흥국과 함께 진행을 맡으며, 라디오 DJ로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이후 2003년 <MBC FM4U 정오의 희망곡>의 진행자였던 김원희가 스케줄 조정 문제[23]로 하차하자 후임DJ로 투입되었다.# 처음에는 갑작스러운 DJ교체에 논란이 있었으나, 특유의 발랄한 진행으로 인기를 얻었으며, MBC 라디오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많은 사랑을 받았다.

평소 정선희는 ‘새로운 언어를 습득하는 것에 흥미가 있다.’고 밝힐 정도로 언어적 감각이 뛰어난 편인데, 특히 수준급의 일본어 실력을 바탕으로 일본어 일상회화 교재를 출판한 경력이 있으며, 2006년 일본어 실용도서 <초콜릿 다이어트>, 2013년 소설가 가와카미 미에코의 에세이집 <인생이 알려준 것들>, 2015년 고바야시 히로유키 의학 박사의 저서 <하루 세 줄, 마음정리법> 등을 번역했다. 또한 영어 실력도 좋은 편이며,[24] 2013년경부터는 중국어(한어)를 공부 중이라고 밝혔다.

2008년 개인적인 사건으로 부득이하게 방송을 중단하기도 했으나, 본인의 의지와 지인들의 도움으로 방송에 복귀한 이후, 여러 활동을 펼치고 있다.

도대체 뭘 잘못했는지 코미디언 이성미에게 찍혀서 엄청 괴롭힘 당했다고 한다.

3. 결혼 이후

3.1. 결혼

2007년 7월 24일 기자회견을 통해 안재환과 결혼 사실을 공식적으로 알렸다. 안재환이 정오의 희망곡에 고정 게스트로 출연한 것을 인연으로 11월 17일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발표와 동시에 정선희는 MBC 기분 좋은 날 진행자로 합류하며, 1주일간 무려 8개에 달하는 프로그램에 고정출연하는 등 방송인으로서 전성기를 맞았다.

2007년 12월 6일 색조 전문 화장품 <세네린>을 런칭했다. 이때 '안재환 정선희 부부가 직접 투자하고 제작에 참여했다.'고 알려졌으나, 이후 인터뷰에 따르면 홈쇼핑 방송을 위한 홍보모델으로 계약한 것으로 밝혀졌다.

3.2. 2008년 촛불집회 발언

(자전거 도난 사연을 소개하던 중) 그런 거 자꾸 팔아넘기는 분들은... 그거요. 우리가 아무리 뭐 광우병 뭐다 해서 애국심을 불태우면서 촛불집회 해도요. 이런 사소한 거. 환경오염 시키고, 이렇게 맨홀뚜껑 퍼가고. 이게 사실 굉장히 큰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되는 범죄거든요. 그러니까 큰 일 있으면 흥분하고, 같이 막 하시는 분들 중에 이런 분이 없으리라고 누가 압니까.

2008년 5월 22일 <정오의 희망곡> 방송에서 뚝섬에서 자전거를 도난 당한 청취자의 사연을 소개하던 중 2008년 촛불집회에 대한 발언으로 논란에 휩싸였다. 본인은 준법 정신을 지키자는 취지의 사연 소개였다고 하나, 여기에 뜬금 없이 정치적으로 뜨거운 이슈를 언급하며 '집회 참가자 중에 잠재적 범죄자가 있을 수 있다'는 뉘앙스의 훈계조 멘트를 굳이 덧붙인 것이다. 여러가지 정황으로 보아 명백히 정치적 의도를 담은 발언이었다. 곧바로 네티즌들의 거센 비난에 직면했고 해당 방송분은 녹음 방송이었기 때문에 이튿날 방송에서 사과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사과하는 태도조차 진정성 논란에 휩싸이고 결국 그 후폭풍으로 <세네린>의 홈쇼핑 방송은 무기한 보류되었고, 라디오 협찬사들이 일제히 광고 중단을 결정하는 등 여론이 점차 악화되었다.

2008년 6월 6일 라디오에서 "저의 교만이 빚은 일"이라고 사죄하며 방송에서 잠정 하차했다. 이어서 MBC <불만제로>, <기분좋은날>, <찾아라 맛있는TV> 등 TV프로그램에서도 하차를 결정했다.

2008년 7월 14일 정오의 희망곡 진행자로 복귀했다. 복귀 방송에서 다시 한번 반성의 뜻을 밝히며 사죄했고, 7월 27일 <기분좋은날> 진행자로도 복귀했다.

3.3. 안재환의 실종 및 사망

2008년 8월 19일 안재환의 잇따른 방송 불참 등으로 잠적설이 불거지자, 안재환과 함께 <클럽 레오노>를 운영하고 있는 누나 안미선은 "요즘 몸이 너무 안 좋아 매일 생방송을 진행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 하차한 것"이라고 인터뷰했다. 또한 같은 날 인터뷰한 안재환의 매니저는 "너무 살찐 모습으로 시청자들을 만나는 게 민망하다며 방송을 하차한 뒤 지금은 건강 회복과 체중 관리에 힘쓰고 있다"고 밝혔다. (기사가 게재된 것은 8월 31일이지만, 취재진이 안미선과 매니저에게 연락을 취한 것은 8월 19일이다.) 기사1, 기사2

2008년 9월 1일 안재환 소속사 매니저 이경민은 SBS와 전화 인터뷰에서 잠적설에 대해 멋쩍은 헛웃음을 지으며 "본인 건강상의 이유와 급격한 체중 증가 때문"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기사

2008년 9월 8일 오전 9시경 서울 노원구 하계동의 한 주택가 앞에 주차되어 있던 차량에서 안재환이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연탄 2장을 피운 흔적과 유서가 발견되었고, 최초 발견자의 주장에 따르면 같은 자리에 2~3주 동안 주차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의 마지막 통화는 8월 21일 아내 정선희와의 통화였고, 그 이후로 휴대전화 전원을 꺼두었다.

2008년 9월 10일 국과수의 부검 결과에 따르면, 안재환8월 22일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했으며, 타살 가능성은 없다고 밝혔다.기사

2008년 9월 11일 안재환의 부친 안병관은, "자살을 미리 계획했다면 더 공들인 유서를 남겼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강압에 의한 자살 의혹을 제기했다. 기사 하지만 동시에 "사채 때문에 죽은 것은 맞다"고 인정하였다.서울신문 故안재환 부친 “우리 아들 사채 때문에 죽었다”

2008년 9월 12일 차량 내에서 발견된 유서 이외에, 7월경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유서 5장이 발견되어, 경찰이 필적 감정에 나섰다. 기사

2008년 9월 16일 안재환의 둘째 누나인 '안미선'은 재수사를 요구했다. 또한 "추석 연휴기간(9월 13일~15일)에 차례를 지내러 오지 않았다"며 정선희를 비난했다. 기사 그러나 당시 정선희는 큰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을 못 알아보며, 고인의 전화번호에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거는 등 심각한 심리적 불안을 겪고 있었던 상태로, 병원은 환자 정선희의 안정을 위해 지인들의 면회도 금지했을 정도였다.기사1, 기사2

2008년 9월 25일 국과수의 필적 확인 결과, 차량에서 발견된 유서는 안재환 본인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기사 이에 안미선은 돌연 기자들 앞에서 "정선희와 안재환은 함께 납치되었으나, 정선희가 5억을 먼저 주고 풀려났다"고 동반납치설을 주장하며 재수사를 요구했다.기사

2008년 9월 29일 정선희는 추가 진술을 위해 경찰에서 조사를 받았다.기사 조사 결과, 정선희는 이미 채무 보증으로 집이 강제 경매에 들어간 상황으로, 채권자에게 5억 원을 줄 경제적 여유도 없었으며, 그녀의 방송 스케줄, 매니저의 증언으로 납치설은 전혀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2008년 10월 1일, 안미선은 경찰 조사 결과에 불복하며, 언론에 "정선희의 말은 모두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기사

2008년 10월 2일 안재환 관련 루머로 고통받은 최진실자살했다. 기사

2008년 10월 13일 정선희는 인터뷰에서 입장을 밝혔다. "안재환에게 큰 금액의 부채가 있다는 것은 9월 4일경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으며, 채권자(사채업자)들이 말을 계속 바꿔가면서 공갈하고 협박했다"고 밝혔다. 기사

2008년 10월 15일 채권단 측은 빚을 받기 위해 가족들에게도 독촉했음을 인정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채권자 원혜경이 정선희를 상대로 "안재환을 내가 보호하고 있었는데, 이미 내 손을 떠나 다른 사람이 보호하고 있다"고 거짓말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기사

2008년 10월 17일 안재환에게 돈을 빌려준 대부업자가 검거되었다. 기사 이에 따라 "안재환이 사채를 쓴 증거가 없다"며 재수사를 요구하던 안재환 누나의 주장은 거짓임이 밝혀졌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안재환의 채무원금은 30억 원, 이자를 합하면 총 78억 5,000만 원가량의 금액으로 추정된다고 알려졌다.

2008년 10월 21일 안미선은 돌연 연락을 끊고 경찰 진정인 조사에 불참했다.기사 안미선은 동반납치 의혹을 제기하면서 그를 입증할 만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으며, 안미선과 정선희의 휴대폰 내역 확인 결과 안미선의 주장은 거짓임이 밝혀졌다. 즉, 안미선이 정선희를 향해 제기한 혐의와 의혹은 모두 증거없는 의혹이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기사

2008년 10월 22일 정선희는 인터뷰에서 다시 한번 입장을 밝혔다. 결혼 전 안재환은 정선희에게 3,000만 원, 5,000만 원 빌려 간 적이 있었으나, 정선희에게 고리 사채에 관련해서는 자세히 알리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기사

2008년 10월 29일 채권자 원혜경과의 대질심문 과정에서, 안미선은 자신의 주장이 거짓임을 인정했다. 이에 오히려 원혜경이 억울함을 호소하며, 안미선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돈이나 갚는 게 먼저 아니냐."고 일침했음이 알려졌다.기사

2008년 11월 28일 경찰 측은 변사 현장 상황, 부검 결과, 유서 필적감정, 차량 안에 있던 DNA감정, 슈퍼 CCTV에서 발견된 번개탄을 구입하는 모습, 통신수사, 차량 내 유류물 분석, 채무액 및 기타 채권자 관련 조사, 금융권 압수수색영장 집행 결과, 참고인 진술 등 객관적인 증거자료로 보아 납치 감금 등 타살 혐의점을 발견할 수 없음을 밝히며 최종 자살으로 결론내렸다. 기사1, 기사2

2008년 11월 29일 안재환 유족 측은 경찰의 발표에 불복하고, "안재환은 연탄 같은 것을 피울 줄 모른다."며 반박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사 성인 흡연자 남성이 불을 피울 줄 모른다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2008년 12월 14일 안미선은 "정선희는 내 남동생 안재환의 죽음을 방관한 혐의로 고소가 가능하다."며, 정선희를 협박하고 경찰 조사 결과에 불복했다. 기사

2008년 12월 24일 안미선은 <MBC 기분좋은날> 인터뷰에서 정선희에 대해 "자기 신랑을 노숙시키고 할 말이 있나? 정선희가 안재환을 썩게 하고, 쓰레기로 만들었다. 무서워서 장가 가겠냐?" 등의 인신공격을 퍼부었다.기사 그러나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닌 근거없는 비난이다. 안재환은 노숙한 것이 아니라, 실종 당일 차내에서 연탄을 피워 사망했으며, 시신이 부패한 것은 발견되기까지 2주간의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다.

2009년 1월 28일 안미선은 내림굿을 받고 무속인이 된 것을 언론을 통해 알렸다. 기사 그녀는 "원래 가톨릭 집안이어서 신이 내린 것을 지금까지 자각하지 못했던 것"이며 "접신을 통해 남동생의 사망 직전 모습을 봤다"고 주장했다. "강원도 부근의 폐광에서 남동생(안재환) 옆에 약 5명의 건장한 남자가 있었고, 한 사람은 이불 덮고 자고 있었다. 거기서 연탄불을 피웠다"는 허무맹랑한 주장을 펼쳤다. 이미 경찰 조사를 통해 사망 이전 안재환의 행적[25]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안미선은 전혀 과학적 근거가 없는 주장을 굳이 언론을 통해 밝혀 논란이 되었다.

2009년 4월 24일, 안재환의 첫째 누나 '안광숙'과 둘째 누나 '안미선'은 같은 주장을 반복하며, 정선희에게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안재환의 가족들은 "정선희가 계속해서 거짓을 말하고 있으며, 연락처를 바꾸고 고의적으로 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선희 측은 경찰 조사와 단 2차례의 언론 인터뷰 외에는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 또한 "최근 유족들에게 연락이 온 적조차 없으며, 정선희의 전화번호도 바꾼 적이 없다"고 밝혔다.기사

2009년 9월 8일 안재환 사망 1주기 추모식에 앞서, 정선희는 언론을 피해 추모공원을 다녀간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날 안氏의 누나는 똑같은 주장을 반복하며 언론과 인터뷰했다. 기사 언론을 통해 지속적으로 정선희를 공격하던 안재환의 누나들은 2주기(기사), 3주기에도 납골당을 찾아오지 않았으며(기사), 납골당 측에서는 추모식과 관련하여 안씨의 유족으로부터 어떠한 연락조차 없었다고 밝혔다. 사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옅어지자, 안광숙은 본래 거주하던 일본으로 돌아갔으며, 무당이 되었다고 주장하던 안미선은 언론에서 자취를 감췄다.

3.3.1. 쟁점

3.3.1.1. 안재환의 행적
8월 21일 정선희와 마지막 통화를 했고, 8월 22일 오전 우리은행 CCTV에 안재환이 혼자 들어와 현금을 인출하는 장면과, 미영슈퍼로 들어가는 모습이 CCTV로 확인됐다. 안재환 마지막 행적 안재환 번개탄 구입
8월 21일오후 10시 30분경, 노원구 중계동 집으로 귀가
8월 22일오전 10시경, 식사를 거의 하지 않고, 야구 모자와 반바지 복장으로 집에서 출타
오전 10시 27분경, 우리은행 노원구 중계지점, 외환은행 현금카드로 2만원 인출 (인출 후 잔액 698원)
오전 10시 29분경, 노원구 하계동 미영슈퍼, 인출한 돈을 번개탄 구입에 사용

국과수의 사망 추정일이 바로 8월 22일이다. 즉, 안재환은 집에서 외출한 당일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고, 가족이 실종신고 문제로 고민하던 시점인 9월 4일보다 약 2주가량 이전에 사망한 것이다.
3.3.1.2. 안재환의 채무 증거들
2005년 6월 안재환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인터콘티넨탈 호텔 근처에 퓨전바 <클럽 레오노>를 오픈했다. 개점 초기 수입이 좋아 2005년 12월, 강남역 근처에 2호점을 내며 사업을 확장시켰다.

2005년 11월 인터뷰에 따르면, 이미 <클럽 레오노>를 오픈하기 위해 은행에서 부동산 담보 대출, 신용 대출을 받은 바 있다.
안재환 씨는 부동산담보와 신용으로 어렵게 대출을 받았다. 그래도 최근 2년간 운영해 왔던 ‘삿포로 라이언’ 사업실적이 양호해서, 은행에서 대출 받는 데 유리한 조건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안재환 씨는 앞으로 사업을 더 확장할 예정이고, 추가적인 대출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사업체의 사업실적을 최대로 양호하게 만들어서 순익이 많이 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사

2007년 3월 인터뷰에 따르면, 안재환은 '레오노 2호점' 오픈을 위해 은행 대출뿐만이 아니라 주변의 투자를 받았다는 것을 밝혔다.
초기 자본금은 1호점의 경우 6억 원, 2호점은 12억 원 정도 들었다. 그동안 모아온 자금에 주변의 투자, 은행 대출을 받아 마련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절 뭘 믿고 돈을 빌려줬나 싶어요. 그분들은 우리 바의 단골손님이 됐어요. 제가 한번은 "왜 돈을 빌려줬느냐"고 물었더니 반바지 입고 가방 둘러메고 열심히 설명하는데 "이 사람, 돈은 안 떼어 먹겠다"는 생각이 들었대요."기사

이는 후술되어 있는 부분에서도 드러난다. 명목은 '투자금'이었으나, 사실상 안재환은 본인의 사업을 위해 개인에게 돈을 빌린 것(사채)과 마찬가지이다. 안재환의 사업이 어려워지자, '투자' 명목으로 돈을 빌려준 사람들이 채무 상환을 요구했다.기사

2007년 안재환은 자신이 대표로 있는 기획사 '뷰티유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고, 본인의 미니홈피에 영화 <아이싱>의 시놉시스를 올려놓으며 자신이 제작하는 영화에 대해 알렸다. 기사 안재환이 제작에 직접 참여한 영화 <아이싱>은 2008년 개봉 예정이었으며, 약 70억대 제작비가 투입된 작품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2008년 5월, 자금난으로 인해 제작이 중단되었다. 기사

2007년 6월 8일 대종상에 시상자로 출연한 안재환은 영화 제작과 관련된 이야기를 남겼다. 기사
그렇게 이 자리에 참석하고 싶었는데, 주택담보 대출과 친척들에게 돈을 끌어 모아 영화 제작을 하겠다니 이 자리에 서게 되는군요.

2008년 1월 경, <클럽 레오노>의 동업자가 안재환에게 민사소송을 걸었다. 기사 말미 강남역 <레오노 2호점>이 입점해 있는 건물의 주인이 바뀌면서 재개발에 들어가자, 권리금으로 6억원 가량의 보상금을 받았는데, 정작 동업자에게는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것.
2008년 1월 말부터 재환 씨가 잠을 못 잤어요. 동업하던 사람이 6억 몇 천 민사 걸었다고. 그때부터 통장 가압류 되고, 직원들 월급을 제(정선희)가 주기 시작해요. 그러다 2008년 4월에 대체 빚이 얼마냐고, 한 10억 되냐고 물어봤어요. 그 정도 된대요. 근데 가게만 팔리면 정리할 수 있어서 이야기 안 했대요.
2008년 4월 되니 내 통장에 있던 돈을 다 썼어요, 한 4억 5천. 본인이 아는 제2금융권이 있대요. 우리 아버지, 보증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하지만 남편(안재환)이 다른 사람한테 굽실거리는 건 너무 싫으니까, 며칠 고민하다 도장 찍었어요. 그게 나중에 경매 압류 날아온 거 보니까 사채 공증이에요. 2억 5천에 2,500 선이자 떼고, 복리로 3개월 밀린 상태로... 내 아파트 주소가 거기 적혀 있었어요.기사

2008년 6월, <클럽 레오노> 동업자의 소송으로 삼성동 레오노 본점이 압류조치 되었다. 안재환을 믿고 투자 명목으로 돈을 빌려줬던 이들까지 입장을 바꿔 채무 상환을 요구하기 시작하자, 상황이 급격하게 악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안재환 가족이 소유하고 있던 재규어(자동차) 차량도 담보로 잡혔으며, 안재환 본인의 차량 기아 카니발의 잔여 할부금 납입도 연체된 상황이었다. 기사 말미

심지어 안재환의 부친인 안병관氏 또한 부검 결과가 나오기 전인 2008년 9월 11일 기자회견을 통해 사채 때문에 사망한 것이 맞다는 취지의 인터뷰를 남겼다. 기사
故안재환의 부친인 안병관 씨는 "재환이가 돈을 못 갚으니 압력을 가한 것 같다. 만약 사채업자들이 가만히 두는데 왜 청춘을 버리겠냐"며 "이는 재환이가 사채 때문에 죽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안재환은 이미 결혼 이전부터 은행에서의 담보 대출+신용 대출이 있었고, 이후 영화 제작비와 사업 투자금 명목으로 개인에게 빌린 돈(=사실상 사채) 등 큰 금액의 빚이 있었으며, 경제적인 문제가 심각했다는 것이 공통적인 내용이다.
3.3.1.2.1. 안氏 유족의 거짓말
하지만 안재환의 누나들은 채무 때문에 자살했다는 것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으며, 정선희에게 진실을 밝히라며 요구했다. 그러나 여러 정황을 종합해보면, 안재환의 가족 측이 이전부터 안氏의 채무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심지어 대종상 영화제라는 큰 행사에서 안재환 본인의 입으로 채무가 있음을 밝혔을 정도인데 가족들이 이를 몰랐다는 것이 더욱 이치에 맞지 않는다.

안재환과 함께 클럽 레오노를 운영하고 있었던 누나 안미선은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요즘 사업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알고 있다.”고 얘기했으며, 인터뷰 안재환의 집에서 수년째 근무 중인 가사 도우미 역시 당시의 상황에 대해 증언했다. 일요신문 기사
안재환 집에서 수년째 근무 중인 가사 도우미도 기자와 만나 "안재환이 없어지고도 사채업자들로부터 전화가 많이 왔고, 집에 오기도 했다"며 "일주일 전쯤 사채업자들이 몰려와 무단으로 가게 문을 열겠다고 전화가 와서, 안재환의 누나(안미선)가 '누가 와도 절대 문 열어주지 말고, 집안 불이며 TV며 다 끄라'고 했다"고 밝혔다. 이어 "사채업자들이 찾아오면, 그 아들을 살리려고 부모님이 집에 있는 금을 팔아 돈을 주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결정적으로 안재환이 자살 당일로 추정되는 8월 22일조차도 안재환의 친가에 불법 채권추심자들이 몰려왔으며, 안재환의 가족이 직접 안재환에게 관련 문자를 보냈다. 경찰 발표문
안재환의 가족 또한 안재환에게 돈 관련 문자를 보냈다. 8월 22일 15시 46분, "오늘 약속 날짜 아니드나", "4시 다 되어간다.", "누구누구 쓰러졌다", "빨리 너(안재환) 찾아내라고 누구누구 보냈다", "사람 찾아왔다. 연락 좀 해줘라.", "사람들 집으로 몰려왔다" 등의 문자를 보냈다. (중략) 아울러 고 안재환은 측근들에게 지난 7월경 "죽고 싶다. 포기할래. 죽고 싶어. 욕조에 물 받아놔.", 8월경 "살고 싶지 않겠어", 대학 친구에게 "나 죽을 것이다. 여관방에 처박혀 있다" 등의 말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휴대전화의 문자는 통신사에 기록이 남아있으므로, 경찰이 증거로 확보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다. 무엇보다 안재환 실종 당일(8월 22일) '약속 날짜가 되어서 채권자들이 몰려왔다'며 문자를 보낸 사실은, 어떤 증거보다 안재환 가족이 그의 빚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결정적인 증거이다.

그러나 안미선은 안재환의 거액 채무를 부인하는 한편, 안재환이 사채업자의 사주로 납치되었다는 허위 사실을 주장했고, 결국 채권자 원혜경과 대질심문을 받았다. 그러나 경찰서에서 이루어진 대질심문을 통해 안미선은 자신의 주장이 거짓임을 인정했다.
원혜경과 안미선의 대질심문
경찰 관계자는 "대질심문 과정에서 안미선 역시 원혜경(채권자)이 납치하지 않은 것으로 인정하고, 원혜경의 주장을 수용했다. 결국 안미선의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날 대질심문 과정에서 억울함을 호소한 원혜경은, 안미선에게 따끔한 충고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원혜경은 안미선에게 "진정서 내고 우리(채권단)를 고소하지 말고 채권자들한테 찾아가서 미안하다고 사과한 후에 돈이나 갚아라. 이게 사람의 도리 아니냐"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즉, 안재환의 가족은 안재환이 금전적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진작에 알고 있었고, 심지어 채권자들에게 시달리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또한 안재환의 하드디스크, 문자 내역 등에서 자신의 경제적 상황을 비관하며 자살을 암시하는 듯한 내용의 글들이 여럿 발견되었고, 유가족들이 의혹을 제기한 안재환의 유서도 필적 확인 결과, 동일인의 필체로 판명되었다. 사실상 안재환에게 고리의 채무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안재환에게는 사채가 없다"는 거짓 주장을 펼친 것이다.
3.3.1.3. 안미선의 허위 주장
안미선은 안재환의 둘째 누나이다. 안씨의 자살 이후, 가장 적극적으로 언론 인터뷰에 나섰던 인물으로, 정선희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수준의 인신 공격과 허위/왜곡된 주장을 펼쳤다.
3.3.1.3.1. 동반 납치설
K씨의 주장에 따르면, 안재환이 실종된 이후, 채권자 원혜경은 안미선에게 전화를 걸어 '정선희를 보내면 안재환을 보내주겠다', '무사히 돌려보낼 터이니 정선희를 보내달라' 등의 공갈, 거짓말을 여러차례 한 것으로 보인다. 안미선은 이러한 원혜경의 공갈에 속아넘어가 언론을 통해 동반납치설을 주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후 원혜경과 안미선의 경찰 대질 심문에서 모두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안미선은 정선희에 대한 원색적 비난을 이어갔다.
3.3.1.3.2. 실종 은폐
안미선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정선희가 안재환의 실종신고를 막았으며, 다이어트를 위해 기도원에 들어갔다고 거짓말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안재환이 건강 회복과 체중 관리에 힘쓰고 있다"며 먼저 인터뷰한 것은, 8월 19일 <일요신문> 인터뷰에 응한 안미선과 안재환의 매니저이다. 심지어 9월 1일 안재환 매니저 이경민은 S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급격한 체중 증가 및 건강상의 이유'라며 실종 사실을 숨긴 적이 있다.
일요신문 인터뷰
그렇다면 왜 생방송을 펑크냈던 것일까? 안재환의 매니저는 “2번 방송을 펑크냈다. 한 번은 사업 관련 중요한 미팅이 계속 지연되는 바람에 방송에 참석할 수 없었고, 또 한 번은 사업 때문에 과로로 쓰러져 연락조차 되지 않았던 것”이라고 설명한다. 방송 하차를 결심한 계기는 사업보다 건강에 있었다. 안재환의 누나 역시 “요즘 몸이 너무 안 좋아 매일 생방송을 진행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 하차한 것”이라고 전한다. 매니저는 “건강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체중도 많이 불었다”면서 “너무 살찐 모습으로 시청자들을 만나는 게 민망하다며 방송을 하차한 뒤 지금은 건강 회복과 체중 관리에 힘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실종신고를 원하는 정선희를 먼저 막은 건 둘째 누나 안미선이다. 9월 4일경 오히려 안미선이 뒤늦게 "실종신고를 하자"고 주장하고, 이에 정선희가 "더 찾아보자"고 얘기한 것이다.
인터뷰 내용
실종신고를 해야 되나... 그런데 언니(안미선)는 "안 된다, 기도원 같은데 들어가 다이어트 한다고 그러라"고, 어머니(안재환母)께는 당뇨도 있고 하시니 잘 있다고 하자고... 얼마 후(9월 4일 경) 언니한테 전화가 다시 와요. "나도 손들었다. 실종신고 해야겠다". 그땐(9월 5일[26]) 제가 "찾을 데 다 찾아보고 하자"고 했어요. "비밀리에 찾아야 된다"고요. 그땐 그게 당연했어요. 재환 씨의 명예가 있잖아요. 방송해서 어떻게든 돈을 갚아야지, 실종신고 하면 끝나잖아요. 채권자들이 경제사범으로 몰아 신고하면 끝나잖아요. 그게 나중에 제가 실종신고를 막은 게 됐더라고...

즉, 안미선과 매니저는 안재환이 자취를 감춘 8월 21일 경부터 약 2주간 안재환의 실종 사실을 숨겼고, 언론 인터뷰에서는 '개인 건강문제'라는 식으로 둘러댔다. 이후 안미선이 심경 변화를 일으켜 9월 4일 실종 신고를 하려고 했고, 이때 정선희가 "어떻게든 찾아보자"는 내용의 문자를 보낸 것이다.

그러나 안미선은 전후 맥락을 일절 생략하고 정선희가 9월 5일에 보낸 "재환 씨가 꼭 돌아올 것이라 믿는다. 신고하기 전에 더 찾아보자"는 내용의 문자를 언론에 공개하며, 정선희가 지속적으로 실종을 숨긴 것처럼 보이도록 왜곡 주장했다. 정확한 사실관계를 무시하고 정선희를 몰아붙이기 위한 명백한 오도라고 할 수 있다.

안미선은 이 점을 내세워 동반납치설 등을 주장했으나, 국과수가 발표한 안재환 사망 추정일은 실종된 당일인 8월 22일으로, 약 2~3주간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을 뿐 실종되었거나 납치된 것이 아니다. 즉, 안재환은 잠적한 당일 자살로 숨을 거뒀으며 결과적으로 실종신고 여부와 안재환의 죽음은 무관하다.
3.3.1.4. 안광숙의 언론 플레이
안광숙은 안재환의 첫째 누나이다. 둘째 누나인 안미선이 경찰 조사에 사전 통보없이 불참하거나, 원혜경(채권자)과의 대질 심문에서 굴욕을 당하거나, 돌연 신내림을 받고 무당이 되었다며 각종 허무맹랑한 주장을 하는 등의 기행으로 점차 여론이 악화되자, 이후 안광숙이 전면적인 언론 인터뷰를 이어갔다. 한편 안광숙은 논란 이전부터 일본에 이주-정착하여 생활하던 인물으로, 사건에 대한 관심이 옅어지자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다.

2009년 4월 24일 안광숙은 "정선희에게 개인적으로 보내는 편지"라면서 여러 언론을 통해 공개적으로 편지를 발표했다. 안광숙 편지 전문 안광숙이 공개한 편지 안광숙은 편지를 통해 ①분가 이후 3개월간 안재환과 연락이 완전히 두절되었다. ②안재환의 사채 사용은 거짓이다. ③정선희가 빚을 갚기 위해 계획적으로 안재환과 결혼했다. ④정선희가 실종신고를 막아서 안재환이 죽었다. 등의 거짓을 주장하며 고의적으로 정선희를 비난했다. 또한 정선희의 친정 가족들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시키는 내용을 편지에 담았으며, 그를 입증할 만한 증거는 정확히 제시하지 않았다.
안광숙의 주장이 거짓이라는 것은, 안미선의 언론 인터뷰 내용만 보아도 알 수 있다.

① 분가 이후 3개월간 안재환과 가족의 연락이 완전히 두절되었다?
②안재환의 사채 이용은 거짓이다?
③정선희가 빚을 갚기 위해 계획적으로 안재환과 결혼했다?
④정선희가 실종신고를 막아서 안재환이 사망했다?
2011년 3월 25일 안재환 모친 유영애氏가 간암 투병 중 병사(病死)하였다. 유영애氏가 사망한 당일, 안광숙은 또 다시 언론을 통해 "돌아가신 모친께서 정선희에게 개인적인 편지를 남겼다"며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히더니기사, 일주일 뒤에는 "정선희가 찾아오지 않아서 편지를 태웠다"며 또 다시 언론 인터뷰를 진행했다.기사

이와 같이 언론을 통해 지속적으로 정선희를 공격하던 안광숙은, 안재환 2주기(이데일리 "안재환 2주기... 납골당 측, 유족 연락 없어"), 3주기날에도 납골당을 찾아오지 않았다.(서울신문 "故안재환 3주기, 유족도 찾지 않았다") 납골당 측에서는 추모식과 관련하여 안氏 유족으로부터 어떠한 연락조차 없었다고 밝혔다.

3.3.2. 정리 및 결론


그녀는 위와 같은 논란으로 부득이하게 방송활동을 중단했다. 게다가 안재환 가족 측은 전혀 사실이 아닌 내용을 끊임없이 언론에 밝히며 정선희의 명예를 실추시키고자 했다. 이 때문에 정선희는 여러 의혹에서 혐의없음은 물론, 이를 입증할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대중들의 비난 섞인 댓글과 여론의 관심을 감내해야만 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그녀를 이런 이유로 비난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또한 2022 다니엘기도회(12일차)에서 그 당시 상당히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들었다고 밝혔다.

4. 복귀

5. 새로운 시작

5.1. 현재 출연 프로그램

6. 수상 경력

7. 여담



[A] 일부지역 자체 방송.[A] [A] 일부지역 자체 방송.[A] [5] 고등학교 3학년 때 67kg로 다소 비만이었으나 방송 데뷔 후 꾸준한 운동으로 50kg대 초반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6] 아버지는 2016년 11월 1일 별세[7] TV 동물농장 1184회에서 이름 공개[8] 김지선의 고등학교 동창이다.[9] 개신교 계열 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다. 과거에는 노원구 중계동 소재 광명교회(예장합동)에 출석하였으나, 현재는 동대문구청 인근의 광석교회(예장통합)에 출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10] 김진수, 표인봉, 문천식, 고명환 등이 소속되어 있었던 신생 기획사 #[11] 소방차(아이돌) 정원관이 대표로 있었던 연예 기획사 #[12] 전유성, 최양락, 이홍렬, 이성미, 이경실 등의 전유성 사단이 소속되어 있던 곳이다. #[13] 노주현, 권기선, 추상미, 봉만대 감독 등이 속해 있었던 소속사[14] #[15] 출처[16] 후술될 김경식도 세바퀴에 김지선과 같이 출연했을 때 말했는데, 당시 김지선에게 처음에는 선배님이라고 부르다가 나름 가까워지고도 님만 빼고 지선선배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막상 김지선은 군기잡는 성격이 아니고 지극히 내성적인 성격이라 김경식과 같은 코너를 하면서 가까워지자 경식오빠라고 불렀지만, 당시 방송국 희극인실 분위기가 똥군기가 심하고 김경식도 내성적인 성격이라 그 정도 존대말선을 꽤 오래 지키면서 굳어졌다고 한다. 막상 김지선은 댄스 코너(서태순과 아이들)에서 김경식을 많이 배려해줘서, 김경식은 계속 선배라고 부른 것과 무관하게 굉장히 고마운 선배로 존중하게 되었다고 한다. 오히려 같은 시기 김경식의 마음에 큰 상처를 준 선배는 최양락이었다. 신인 김경식이 NG를 여러 번 내자 분장실에서 싸늘하게 노려보면서 "너 그 단순한 것(연기)도 그런식으로 못 해서...너는 진짜...에휴"라며 빈정거리다가 말도 다 안하고 그냥 나가버렸다고 한다. 차라리 적극적으로 혼을 내고 화를 냈으면 상처가 덜했을 텐데, 그러지 않고 진짜 가망없는 놈이라는 식의 무시만 하는 느낌을 받아서 평생 잊혀지지 않는 큰 상처였다고 한다.[17] 특히 신동엽은 신인 초기 '레일맨'이라는 코너에 출연해 공전의 히트를 쳤다.[18] 파일럿으로 편성된 <SBS 해피타임>에는 황수관 박사와 김미화가 진행을 맡았지만, 정규 편성에는 김미화와 함께 <웃는밤 좋은밤>의 공동 MC였던 유정현이 진행자로 투입되었다.[19] 하지만 이 프로그램에서 김경식과 전설의 코너 '할미꽃 당신' 으로 호흡을 맞추게 된다.[20] 이영자가 해당 프로그램 고정 출연 물망에 한때 거론되었으나 다이어트 파문의 여파가 남아있던 시절이라 내부 반발로 무산됐다.[21] MBC 섹션TV 연예통신, KBS 2TV 夜!한밤에 두 프로그램에 밀리며 동시간대 꼴찌를 기록[22] SBS 김혜수 plus You 이후, 수요 심야 편성 프로그램이 대거 기대 이하의 성적에 그친 시청률 저조 징크스를 벗어나지 못한 것.[23] 2001년 5월부터 정희의 DJ로 활동해 온 탤런트 김원희가 2003년 가을 개편 때 신설된 KBS 2TV <대한민국 1교시> MC로 발탁되며 스케줄 조정문제로 갑작스럽게 하차했다. 김원희는 김미화와 함께 2001년 5월 6일 첫 회부터 KBS 2TV 쇼 파워 비디오의 MC로 발탁된 원년멤버였으나, '정오의 희망곡' DJ 활동 등과 맞물려 2달 만에 하차했다. 김원희의 후임으로는 안연홍이 합류했다. 이후 김미화도 방송 활동과 학업(성균관대 사회복지학부 2001학번) 병행으로 인해 스케줄 조절에 어려움을 겪어 2001년 가을 개편 때 하차했다. 김미화의 후임으로 정선희가 물망에 오르기도 했으나 결국 김경식이 합류했으며, 이 과정에서 안연홍 역시 연기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안연홍의 후임으로는 99년 미스코리아 진 출신 탤런트 김연주가 합류했다.[24] 하지만 정오의 희망곡에서 한 때 "Long Long Time Ago"를 "론지 론지 타임 어고"로 자랑스럽게 소리내어 읽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25] 현금 인출, 번개탄 구입 모습, CCTV[26] 9월 5일 정선희가 안미선에게 보낸 문자 내용(안재환이 꼭 돌아올 것이며, 찾을 데까지 찾아보자는 내용)을 안미선 측이 '정선희가 무엇인가 알고 있다'는 식으로 왜곡하여 언론에 공개했다.[27] 원래 제목은 <여자의 자격>이었으나 논란을 의식해 바꾼 것이라고 한다.[28] 자칭 '상스러운 날 것의 방송'[29] 비슷한 사례의 대표적인 여성 MC는 아나운서 출신 연기자 임성민. 임성민은 2001년 3월 프리랜서 선언 후 MC 겸 연기자로 활동해 오다가 2004년 MBC 주말극 사랑을 할거야를 끝으로 MC 활동에만 전념해 왔으나, 2005년 봄 개편부터 진행을 맡아 온 KBS 2TV 스타 골든벨이 그 해 가을개편 때 시간대를 이동하면서(일요일 오전 → 토요일 오후) 타의로 그만둔 뒤 연기에만 전념 중이다. 그녀는 <스타 골든벨>을 타의로 그만둔 후 예능프로그램 고정 MC 활동은 전무하다. 정선희와 임성민 두 사람은 1998년 KBS 2TV 코미디 세상만사의 한 코너였던 '카페의 여인들'에서 호흡을 맞춘 인연이 있다.[30] 둘은 데뷔 초기부터 돈독한 사이로, 절친한 선후배 사이이다.[31] 처음에는 인터넷 스트리밍 라디오 방송국 '지식라디오'였으나, 학문 분야를 다루는 '지식'과 애청자 사연을 소개하는 '슈가'로 개편었으며, <행SHOW!>는 '슈가'에 편입되었다.[32] 정선희는 이전에도 홈쇼핑 스케줄로 자리를 비운 최유라를 대신해 DJ를 맡은 바 있다.[33] 문천식 '스페셜' DJ 합류.#[34] 최유라의 빈자리는 '당분간' 개그우먼 정선희.#[35] 이성미와 함께 출연.[36] 참여했을 당시에는 나의 또 다른 가족을 소개합니다라는 부제에서 참여하게 된 이력이 있었다.[37] 당시만 해도 모든 방송국에서는 타 방송국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는게 불문율이었다. 그래서 1980년대 KBS의 야구 중계를 보면 기업명을 불러주는 현재의 방식과 다르게 팀명(청룡, 베어스, 슈퍼스타즈 등등)으로 불렀다. 기업명으로 부르자니 MBC 청룡이 걸리기 때문이다.[38] 참고로 김은호 목사가 얘기했던 아버지는 2016년에 돌아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