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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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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임기: 2022년 7월 1일 ~ 2026년 6월 30일(예정)
1960-1961 · 민선 1기 · 민선 2기 · 민선 3기 · 민선 4기 · 민선 5기 · 민선 6기 · 민선 7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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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대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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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손영도
제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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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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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이봉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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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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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장
大田廣域市長
Mayor of Daejeon Metropolitan City
파일:이장우 8회 지선 선관위 프로필.png
현직 <colbgcolor=#fff,#191919>이장우 / 제13대 (민선 8기)
취임일 2022년 7월 1일
정당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홈페이지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1. 개요
1.1. 대전광역시장 선거 100% 적중 지역
2. 목록
2.1. 충청남도 대전시장2.2. 대전직할시장(관선)2.3. 대전광역시장(민선)
3. 생존 중인 전직 민선 대전광역시장4. 역대 선거 결과5. 역대 정당별 전적6. 역대 후보별 순위7. 시정 구호8.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대전광역시장대전광역시를 대표하고, 그 사무를 총괄하는 광역자치단체장이다. 1995년 1월 1일 이전까지는 직할시장이라고 불렸으며, 1989년 대전직할시가 충청남도로부터 분리 신설될 때까지는 충청남도 대전시장으로 불렸다.

대체적으로 나왔던 사람들이 다시 나오고 했던 사람들이 다시 하고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모습이다.[1]

여담으로, 충청 대망론 주자였던 안희정의 사례가 있는 충청남도지사가 충청권 대권주자로서 입지가 더 높은데[2] 부산광역시장 - 경상남도지사, 광주광역시장 - 전라남도지사의 관계와 유사하다.

1.1. 대전광역시장 선거 100% 적중 지역

<rowcolor=white> 대전광역시장 선거 적중 지역 결과
연도 당선인 서구 1위
1995년 홍선기
(63.76%)
홍선기
(65.51%)
1998년 홍선기
(73.68%)
홍선기
(73.83%)
2002년 염홍철
(46.61%)
염홍철
(48.80%)
2006년 박성효
(43.83%)
박성효
(46.13%)
2010년 염홍철
(46.67%)
염홍철
(47.33%)
2014년 권선택
(50.07%)
권선택
(50.48%)
2018년 허태정
(56.41%)
허태정
(56.79%)
2022년 이장우
(51.19%)
이장우
(51.03%)
대전광역시장 선거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지방선거 8회가 실시되었다. 대전시에는 5개의 자치구가 있으며, 이 자치구 중에서 대전광역시장 선거를 100% 맞춘 100% 적중 지역은 서구 하나뿐이다.

서울특별시장, 부산광역시장, 대구광역시장, 인천광역시장, 울산광역시장 선거에서는 각 지역의 중구에서 이긴 사람이 시장에 당선되는 징크스가 있는데, 대전광역시는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중구에서 박성효가 1위를 하면서 징크스가 깨졌다.

2. 목록

2.1. 충청남도 대전시장

<rowcolor=white> 대수 이름 재임 기간 정부(당적)[3] 비고
관선 충청남도 대전부윤
초대 황인식(黃仁植) 1945년 8월 16일~1945년 11월 2일 미군정
2대 방두환(方斗煥) 1945년 11월 3일~1946년 3월 29일
3대 1946년 4월 4일~1946년 5월 9일
4대 이석기(李錫基) 1946년 5월 11일~1947년 10월 29일
5대 1947년 10월 30일~1948년 5월 10일
6대 유광준(兪光濬) 1948년 5월 11일~1948년 10월 30일
7대 손영도(孫泳道) 1948년 10월 30일~1949년 10월 29일 이승만 정부
관선 충청남도 대전시장
초대 손영도(孫泳道) 1949년 10월 30일~1952년 12월 19일 이승만 정부
(간접선출) 민선 충청남도 대전시장
2대 임지호(林志浩) 1952년 12월 29일~1955년 11월 18일 이승만 정부
3대 박완식(朴完植) 1955년 12월 27일~1954년 12월 2일
4대 조병순(趙炳順) 1954년 1월 10일~1959년 3월 19일
관선 충청남도 대전시장
5대 정인권(鄭寅權) 1959년 5월 19일~1960년 5월 13일 이승만 정부
6대 김양현(金良鉉) 1960년 5월 13일~1960년 10월 7일 허정 내각
민선 충청남도 대전시장
7대 신기훈(申基勳) 1960년 12월 30일~1961년 2월 25일
8대 김정우(金正雨) 1961년 4월 6일~1961년 5월 24일
관선 충청남도 대전시장
9대 유문호(柳文鎬) 1961년 5월 24일~1961년 7월 29일 국가재건최고회의
10대 배무남(裵武南) 1961년 8월 12일~1963년 5월 9일
11대 이완종(李完鐘) 1963년 6월 17일~1964년 2월 20일
12대 이남호(李南鎬) 1964년 2월 20일~1966년 10월 12일 박정희 정부
13대 이준규(李俊圭) 1966년 10월 12일~1968년 4월 15일
14대 이완종(李完鐘) 1968년 4월 15일~1970년 11월 24일
15대 최재영(崔在英) 1970년 11월 25일~1971년 8월 10일
16대 심재홍(沈載鴻) 1971년 8월 11일~1974년 11월 13일
17대 김보성(金保城) 1974년 11월 13일~1977년 7월 19일
18대 이남두(李男斗) 1977년 7월 20일~1978년 8월 1일
19대 김보성(金保城) 1978년 8월 2일~1980년 3월 11일
20대 박봉휘(朴奉輝) 1980년 3월 13일~1980년 7월 31일 최규하 정부
21대 이병내(李炳內) 1980년 8월 1일~1981년 8월 24일
22대 심대평(沈大平) 1981년 8월 24일~1983년 12월 27일 전두환 정부
23대 권희탁(權熙卓) 1983년 12월 27일~1986년 3월 8일
24대 심대평(沈大平) 1986년 3월 8일~1986년 10월 14일
25대 김홍식(金泓植) 1986년 10월 15일~1987년 8월 11일
26대 김용성(金容成) 1987년 8월 11일~1988년 12월 31일

2.2. 대전직할시장(관선)[4]

<rowcolor=white> 관선 (임명직) 대전직할시장
<rowcolor=white> 대수 이름 재임 기간 정부 비고
초대 이봉학 (李奉學) 1989년 1월 1일 ~ 1990년 12월 27일 노태우 정부
2대 홍선기 (洪善基) 1990년 12월 28일 ~ 1992년 4월 20일
3대 김주봉 (金柱奉) 1992년 4월 21일 ~ 1993년 3월 3일
4대 염홍철 (廉弘喆) 1993년 3월 4일 ~ 1995년 3월 29일 김영삼 정부
5대 김보성 (金保城) 1995년 3월 30일 ~ 1995년 6월 30일

2.3. 대전광역시장(민선)

<rowcolor=white> 민선 (선출직) 대전광역시장
<rowcolor=white> 대수 이름 재임 기간 당적[5] 출신지 비고
6대 홍선기 (洪善基) 1995년 7월 1일 ~ 1998년 6월 30일

[[자유민주연합|
파일:자유민주연합 흰색 로고타입.svg
]]
대전 서구
7대 1998년 7월 1일 ~ 2002년 6월 30일
8대 염홍철 (廉弘喆) 2002년 7월 1일 ~ 2006년 6월 30일
파일: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1997~2004).svg
충남 논산 [6]
9대 박성효 (朴城孝) 2006년 7월 1일 ~ 2010년 6월 30일

파일: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svg
대전 동구
10대 염홍철 (廉弘喆) 2010년 7월 1일 ~ 2014년 6월 30일

[[자유선진당|
파일:자유선진당 흰색 로고타입.svg
]]
충남 논산 [7]
11대 권선택 (權善宅) 2014년 7월 1일 ~ 2017년 11월 14일

[[새정치민주연합|
파일:새정치민주연합 흰색 로고타입.svg
]]
대전 중구 [8][9]
권한대행 이재관 (李在官) 2017년 11월 15일 ~ 2018년 6월 30일 행정부시장 충남 천안
12대 허태정 (許泰鋌) 2018년 7월 1일 ~ 2022년 6월 30일
파일:더불어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충남 예산
13대 이장우 (李莊雨) 2022년 7월 1일 ~ 현재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충남 청양

3. 생존 중인 전직 민선 대전광역시장

4. 역대 선거 결과

파일:대전광역시 휘장_White.svg 역대 민선 대전광역시장
1995 1998 2002 2006 2010
자유민주연합
한나라당
한나라당
자유선진당
홍선기 염홍철 박성효 염홍철
2014 2018 2022
국민의힘
권선택 허태정 이장우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주요 후보 득표율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구분 주요 후보 득표율
1995년 1위:

[[자유민주연합|
파일:자유민주연합 흰색 로고타입.svg
]] 홍선기 63.76%

2위:

[[민주자유당|
파일:민주자유당 글자.svg
]] 염홍철 20.93%
3위:

파일:민주당(1991년) 로고타입.svg
변평섭 10.84%
1998년 1위:

[[자유민주연합|
파일:자유민주연합 흰색 로고타입.svg
]] 홍선기 73.68%

2위:

[[국민신당(1997년)|
파일:국민신당 흰색 로고타입.svg
]] 송천영 18.03%
2002년 1위:
파일: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1997~2004).svg
염홍철 46.61%

2위:

[[자유민주연합|
파일:자유민주연합 흰색 로고타입.svg
]] 홍선기 40.20%
2006년 1위:

파일: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svg
박성효 43.83%

2위:

[[열린우리당|
파일:열린우리당 로고타입.svg
]] 염홍철 41.14%
3위:

[[국민중심당|
파일:국민중심당 흰색 로고타입.svg
]] 남충희 10.45%
2010년 1위:

[[자유선진당|
파일:자유선진당 흰색 로고타입.svg
]] 염홍철 46.67%

2위:

파일: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svg
박성효 28.50%
3위:

[[민주당(2008년)|
파일:민주당(2008년) 흰색 로고타입.svg
]] 김원웅 23.28%
2014년 1위:

[[새정치민주연합|
파일:새정치민주연합 흰색 로고타입.svg
]] 권선택 50.07%

2위:

[[새누리당|
파일:새누리당 흰색 로고타입.svg
]] 박성효 46.76%
2018년 1위:
파일:더불어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허태정 56.41%

2위:

[[자유한국당|
파일:자유한국당 흰색 로고타입.svg
]] 박성효 32.16%
2022년 1위: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이장우 51.19%

2위:
파일:더불어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허태정 48.80%
}}}}}}}}}

4.1.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파일:대전직할시 휘장 (1972-1995).svg 대전광역시장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염홍철(廉弘喆) 112,607 2위


[[민주자유당|
파일:민주자유당 글자.svg
]]
20.93% 낙선
2 변평섭(邊平燮) 58,346 3위


파일:민주당(1991년) 로고타입.svg
10.84% 낙선
3 홍선기(洪善基) 342,959 1위


[[자유민주연합|
파일:자유민주연합 흰색 로고타입.svg
]]
63.76% 당선
4 이대형(李大衡) 23,953 4위


[[무소속(정치)|
무소속
]]
4.45% 낙선
선거인 수 819,604 투표율
66.93%
투표 수 548,529
무효표 수 10,664
1994년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자유당1990년 3당 합당으로 인해 민정계와 민주계 그리고 공화계 크게 3계파로 구성돼 있었다. 그런데 김영삼이 대통령이 된 이후 민주계가 높은 정권 지지율을 등에 업고 본격적인 당권 장악을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민주계의 젊은 의원들은 1994년 말 당시 민주자유당 대표위원이던 김종필개혁 정권에 어울리지 않는 구시대 인사라고 몰아세우며 강력하게 퇴진을 주장했다. 믿었던 김영삼마저 냉담한 태도를 보이자 김종필 전 대표위원은 1995년 1월 자신을 따르는 공화계 의원들을 데리고 민주자유당을 탈당해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했다. 여기에 민주계에 밀렸다고 생각한 민정계 일부가 가담했다.

민선 시대 처음으로 했던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대전광역시장 선거에서 자민련에서 공천을 받은 관선 대전광역시장을 역임한 홍선기 후보를 공천받았고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자유당에서는 역시 그전 노태우 정부 시절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정무비서관과 관선직 대전광역시장을 역임한 염홍철 후보를 공천받았다, 공교롭게도 관선직 대전광역시장을 역임한 후보들끼리 대결로 관심을 받았다. 결과는 역시 김종필 전 자유민주연합 총재의 지원의 힘입어서 자유민주연합 홍선기 후보가 34만 2959표로 초대 민선 대전광역시장으로 당선되었다. 지역별로도 대전광역시 5개구에서 압승을 거뒀다.

4.2.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파일:대전광역시 휘장_White.svg 대전광역시장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3 홍선기(洪善基) 286,255 1위


[[자유민주연합|
파일:자유민주연합 흰색 로고타입.svg
]]
73.68% 당선
4 송천영(宋千永) 70,414 2위


[[국민신당(1997년)|
파일:국민신당 흰색 로고타입.svg
]]
18.12% 낙선
5 조명현(曺明鉉) 31,796 3위


[[무소속(정치)|
무소속
]]
8.18% 낙선
선거인 수 888,968 투표율
44.44%
투표 수 395,124
무효표 수 6,659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당선되면서 초대 민선 대전광역시장으로 당선된 홍선기 후보가 압도적 승리를 했다. 무려 73.68%를 기록하면서 역시 충청에서 자유민주연합 승리의 결정적으로 했다고 본다. 그 전에 1997년에 있었던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름바 DJP연합이라는 승부를 띄우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당선시키면서 김종필 전 자유민주연합 총재가 국민의 정부 초대 국무총리를 하면서 효과를 봤다고 보는데 그 여파가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로 이어지면서 당시 자유민주연합DJP연합 단일 후보로 출마해 홍선기 후보가 당선이 된 이유이다. 지역별로도 대전광역시 지역 5개 구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두었는데 특히 대덕구에서 홍선기 후보가 72%의 압도적 표를 기록했다.

4.3.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파일:대전광역시 휘장_White.svg 대전광역시장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염홍철(廉弘喆) 191,832 1위

파일: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1997~2004).svg
46.61% 당선
3 홍선기(洪善基) 165,426 2위


[[자유민주연합|
파일:자유민주연합 흰색 로고타입.svg
]]
40.20% 낙선
4 김헌태(金憲泰) 15,780 4위


[[무소속(정치)|
무소속
]]
3.83% 낙선
5 정하용(鄭夏容) 38,445 3위


[[무소속(정치)|
무소속
]]
9.34% 낙선
선거인 수 987,180 투표율
42.32%
투표 수 417,809
무효표 수 6,326
대전광역시 산하 구청장들은 모두 자유민주연합 후보가 당선되었으나, 대전광역시장은 한나라당 염홍철 후보가 승리하여 당선되었다.

선거에서는 대전광역시 최초로 3선에 도전하는 홍선기 후보와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홍선기 후보에게 패했던 염홍철 후보와의 대결이었다. 다만 결과는 홍선기 후보는 3선 도전에 실패했다.

4.4.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파일:대전광역시 휘장_White.svg 대전광역시장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염홍철(廉弘喆) 217,273 2위


[[열린우리당|
파일:열린우리당 로고타입.svg
]]
41.14% 낙선
2 박성효(朴城孝) 231,489 1위


파일: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svg
43.83% 당선
3 최기복(崔基福) 6,442 5위


[[민주당(2005년)|
파일:민주당(2005년) 흰색 로고타입.svg
]]
1.21% 낙선
4 박춘호(朴春鎬) 14,899 4위


[[민주노동당|
파일:민주노동당 흰색 로고타입.svg
]]
2.82% 낙선
5 남충희(南忠熙) 55,231 3위


[[국민중심당|
파일:국민중심당 흰색 로고타입.svg
]]
10.45% 낙선
7 고낙정(高樂正) 2,707 6위


파일:한미준_흰색.png
0.51% 낙선
선거인 수 1,077,468 투표율
49.42%
투표 수 532,568
무효표 수 4,527
초반에는 열린우리당 염홍철 후보가 앞섰지만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서울특별시에서 선거 유세를 하는 과정에서 커터칼 피습 테러를 당하는, 박근혜 커터칼 피습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래서 병원으로 실려갔던 박근혜 전 대표가 깨어나 한 말이 대전광역시는요?였고, 이 말 한 마디에 분위기가 반전되고 초접전 끝에 현역이었던 열린우리당 염홍철[10] 후보가 낙선하고 한나라당 박성효 후보가 당선되었다. 이로써 열린우리당은 여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전북특별자치도지사(당시 전라북도지사) 단 1석만 얻는 대참패를 하게 된다.[11]

선거결과로는 박성효 후보가 가까스로 이겼지만 지역별로는 편차가 있었다. 당시 열린우리당 염홍철 후보는 대덕구유성구 그리고 동구에서 이겼지만 중구서구 패배했다. 반대로 박성효 후보는 중구서구에서 이겼지만 3곳(대덕구, 유성구, 동구)에서 패배했다.

4.5.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파일:대전광역시 휘장_White.svg 대전광역시장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박성효(朴城孝) 168,616 2위


파일: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svg
28.50% 낙선
2 김원웅(金元雄) 137,751 3위


[[민주당(2008년)|
파일:민주당(2008년) 흰색 로고타입.svg
]]
23.28% 낙선
3 염홍철(廉弘喆) 276,122 1위


[[자유선진당|
파일:자유선진당 흰색 로고타입.svg
]]
46.67% 당선
7 김윤기(金潤起) 9,074 4위


[[진보신당|
파일:진보신당 흰색 로고타입.svg
]]
1.53% 낙선
선거인 수 1,127,547 투표율
52.92%
투표 수 596,683
무효표 수 5,120
파일:지상파 방송3사 출구조사 로고.svg
대전광역시장 출구조사 결과
<colbgcolor=#eee,#353535> 후보 박성효 염홍철 격차
전체 28.2% 48.4% 20.2%p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만난 박성효와 염홍철이 다시한번 리턴매치를 가졌는데 박성효 후보는 한나라당 공천을 받은 반면 염홍철 후보는 2002년 지방선거 당선 될 당시엔 한나라당 이었지만 2005년에 한나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다가 낙선한 이후에 무소속 - 대통합민주신당 - 통합민주당 당적을 가지다가 당내 노선 차이로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을 탈당하고 자유선진당에 입당했다. 그리고 민주당에서는 14대, 16대, 17대 국회의원과 17대 국회 후반기 통일외교통상위원장을 역임했던 김원웅 후보가 야4당의(민주당+민주노동당+국민참여당+창조한국당)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했다. 결과로는 염홍철 후보가 박성효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는데 2002년 이후 무려 8년 만에 민선 5기 대전광역시장에 취임했다. 지역별로는 염홍철 후보가 대전지역 5개구(동구, 중구, 서구, 유성구, 대덕구)에서 승리를 거둔 반면 민주당에 김원웅 후보는 3선 국회의원을 했던 대덕구에서 패배했고 박성효 후보도 대전광역시 지역 5개구에서 모두 패배를 했다.

4.6.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파일:대전광역시 휘장_White.svg 대전광역시장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박성효(朴城孝) 301,389 2위


[[새누리당|
파일:새누리당 흰색 로고타입.svg
]]
46.76% 낙선
2 권선택(權善宅) 322,762 1위


[[새정치민주연합|
파일:새정치민주연합 흰색 로고타입.svg
]]
50.07% 당선
3 김창근(金昌根) 9,009 4위


[[통합진보당|
파일:통합진보당 흰색 로고타입.svg
]]
1.39% 낙선
4 한창민(韓昌旼) 11,346 3위

[[정의당|
파일:정의당 로고타입.svg
]]
1.76% 낙선
선거인 수 1,207,972 투표율
54.03%
투표 수 652,671
무효표 수 8,165
파일:지상파 방송3사 출구조사 로고.svg
대전광역시장 출구조사 결과
<colbgcolor=#eee,#353535> 후보 박성효 권선택 격차
전체 48.2% 49.8% 1.6%p경합
선거 보름 전까지만 하다러도 박성효 후보가 권선택 후보보다 지지율이 매우 높았으나, 막판에 권선택 후보의 지지율이 상승하면서 개표 결과 3.31% 차이로 접전 끝에 권선택 후보가 승리를 거두었다. 중구와 동구의 보수세를 서구의 진보세를 상쇄시키고 대덕구의 박성효의 53% 득표율은 유성구의 권선택의 55% 득표율에 밀리며 권선택이 당선된 것. 이로써 최초로 민주당계 정당 대전광역시장이 나오게 되었다.

지역별로도 권선택 후보는 17대, 18대 국회의원을 했던 고향 중구에서는 가까스로 졌지만 신도심과 과학벨트가 있는 서구유성구에서 승리했고 박성효 후보는 대전광역시의 원도심인 중구에서 360표차로 이겼고 19대 국회의원을 했던 대덕구에서 가까스로 승리를 거뒀고 대전역이 있는 대전광역시 동구에서는 가까스로 박성효 후보가 승리를 거뒀다.

4.7.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파일:대전광역시 휘장_White.svg 대전광역시장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허태정(許泰鋌) 393,354 1위

파일:더불어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56.41% 당선
2 박성효(朴城孝) 224,306 2위


[[자유한국당|
파일:자유한국당 흰색 로고타입.svg
]]
32.16% 낙선
3 남충희(南忠熙) 61,271 3위


[[바른미래당|
파일:바른미래당 흰색 로고타입.svg
]]
8.78% 낙선
5 김윤기(金潤起) 18,351 4위

[[정의당|
파일:정의당 로고타입.svg
]]
2.63% 낙선
선거인 수 1,219,513 투표율
57.97%
투표 수 706,983
무효표 수 9,699
파일:지상파 방송3사 출구조사 로고.svg
대전광역시장 출구조사 결과
<colbgcolor=#eee,#353535> 후보 허태정 박성효 격차
전체 60.0% 29.4% 30.6%p
전임 시장이였던 권선택이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퇴임당하고 초기에는 유성구 을의 이상민 전 의원과 허태정 전 유성구청장이 물망에 오르다가 청와대 과학보좌관과 재선 유성구청장 경력의 허태정 후보가 공천을 받아 출마했다. 사실 대전광역시를 과학의 도시로 키우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발표가 있었고 유성구에는 카이스트를 비롯한 연구밸리가 조성되어 있으니 어찌 보면 허태정의 공천은 당연했다.

자유한국당은 박성효 전 대전광역시장이 공천되었다. 원래는 친박 돌격대로 알려진 이장우 전 동구 의원이 공천될 가능성이 높으나 출마를 포기했고 그나마 시장 후보로 남아있던 박성효가 공천됐는데, 친박에다가 대전광역시장 시절에도 대전광역시의 주요 현안들을 죄다 다른 지역에 빼앗기는 등 대전광역시 시민들에게도 좋은 인식이 없다. 심지어 대전광역시장 임기 시절에 나무만 심다가 임기를 끝냈다는 말까지 있었다. 이는 박성효 전 시장의 주요 공약 중 한가지가 삼천만 그루 나무 심기 운동(...)이었기 때문이다.

바른미래당은 바른정당 시절부터 대전시당 위원장을 맡고 있던 남충희를 단수 공천했다. 민주평화당은 서진희 후보, 정의당은 김윤기 후보가 대전광역시장 출마를 선언했다.

결국 허태정 후보가 56.41%의 득표율을 얻으며 당선되었다. 위 아 더 월드로 통일된 대를린이 다시 나타난 건 덤. 참고로 박성효 후보는 이번 선거 결과까지 합산한다면 대전광역시장 선거에 4번 출마하여 3번이나 떨어졌다.

허태정 후보의 당선으로 인해 대전 도시철도 2호선트램으로 하는 정책이 추진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4.8.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파일:대전광역시 휘장_White.svg 대전광역시장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허태정(許泰鋌) 295,555 2위

파일:더불어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48.80% 낙선
2 이장우(李莊雨) 310,035 1위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51.19% 당선
선거인 수 1,233,557 투표율
49.66%
투표 수 612,639
무효표 수 7,049
파일:지상파 방송3사 출구조사 로고.svg
대전광역시장 출구조사 결과
<colbgcolor=#eee,#353535> 후보 허태정 이장우 격차
전체 49.6% 50.4% 0.8%p경합
초반엔 중구와 동구 표가 먼저 개표되면서 이장우 후보가 앞서나가다, 후반에 허태정의 홈스테이트인 유성구 표가 쏟아지면서 추격을 했지만 결과는 3%p 내외 격차로 이장우 후보가 이겼다.

세부적으론 유성구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 모두 이장우 후보가 이겼는데, 특히 둔산신도시가 있는 서구가 이장우의 손을 들어주며[12] 허태정에게 결정타를 날렸다. 물론 유성구에선 5%p 나마 앞섰지만, 인구가 절반 정도 적은 중구에서 9% 앞서서 유성구의 우위를 상쇄했을 뿐더러, 앞의 서구까지 거들면서 허태정 후보가 석패했다.

이제 동대전이 보수 정당 우위, 서대전이 더불어민주당 우위란 대를린 장벽이 사실상 무너지고, 유성구 vs 대덕구, 서구 vs 중구, 동구 구도로 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게 되었다.

또한 광역의원, 기초자치단체장 모두 유성구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 궤멸되면서[13] 더불어민주당은 위기를 맞게 되었다. 하지만…

4.9.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파일:대전광역시 휘장_White.svg 대전광역시장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0

파일:zsdkl3gasdg.svg
00.00%
2 0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00.00%
선거인 수 투표율
00.00%
투표 수
무효표 수
선거 벽보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파일:빈 가로 이미지.svg
파일:빈 가로 이미지.svg
}}}}}}}}}
파일:지상파 방송3사 출구조사 로고.svg
대전광역시장 출구조사 결과
<colbgcolor=#eeeeee,#353535> 후보 ○○○ ○○○ 격차
전체 00.00% 00.00% 00.00%p

5. 역대 정당별 전적

민주당계 정당 보수 정당 제3후보[14]
1회 변평섭 염홍철 홍선기[15]


파일:민주당(1991년) 로고타입.svg


[[민주자유당|
파일:민주자유당 글자.svg
]]


[[자유민주연합|
파일:자유민주연합 흰색 로고타입.svg
]]
낙선 10.84% 낙선 20.93% 당선 63.76%
2회 홍선기[16] - 송천영[17]


[[자유민주연합|
파일:자유민주연합 흰색 로고타입.svg
]]


[[국민신당(1997년)|
파일:국민신당 흰색 로고타입.svg
]]
당선 73.68% 낙선 18.12%
3회 - 염홍철 홍선기[18]

파일: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1997~2004).svg


[[자유민주연합|
파일:자유민주연합 흰색 로고타입.svg
]]
당선 46.11% 낙선 40.20%
4회 염홍철 박성효 남충희[19]


[[열린우리당|
파일:열린우리당 로고타입.svg
]]


파일: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svg


[[국민중심당|
파일:국민중심당 흰색 로고타입.svg
]]
낙선 41.14% 당선 43.83% 낙선 10.45%
5회 김원웅 박성효 염홍철[20]


[[민주당(2008년)|
파일:민주당(2008년) 흰색 로고타입.svg
]]


파일: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svg


[[자유선진당|
파일:자유선진당 흰색 로고타입.svg
]]
낙선 23.28% 낙선 28.50% 당선 46.67%
6회 권선택 박성효 -


[[새정치민주연합|
파일:새정치민주연합 흰색 로고타입.svg
]]


[[새누리당|
파일:새누리당 흰색 로고타입.svg
]]
당선 50.07% 낙선 46.76%
7회 허태정 박성효 남충희[21]

파일:더불어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자유한국당|
파일:자유한국당 흰색 로고타입.svg
]]


[[바른미래당|
파일:바른미래당 흰색 로고타입.svg
]]
당선 56.41% 낙선 32.16% 낙선 8.78%
8회 허태정 이장우 -

파일:더불어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낙선 48.80% 당선 51.19%
9회 ○○○ ○○○ -

파일:zsdkl3gasdg.svg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 -

6. 역대 후보별 순위

<rowcolor=#000,#fff> 1위 2위 3위 4위 5위 6위
1회 홍선기 염홍철 변평섭 이대형
2회 홍선기 송천영 조명현
3회 염홍철 홍선기 정하용 김헌태
4회 박성효 염홍철 남충희 박준호 최기복 고낙정
5회 염홍철 박성효 김원웅 김윤기
6회 권선택 박성효 한창민 김창근
7회 허태정 박성효 남충희 김윤기
8회 이장우 허태정

7. 시정 구호

시장 시정 구호
홍선기 <colcolor=#000,#fff> 위대한 대전, 긍지 높은 시민의 시대
염홍철 가장 살기좋은 대전 건설
박성효 함께 가꾸는 대전, 함께 누리는 행복
염홍철 세계로 열린 대전, 꿈을 이루는 시민
권선택 시민을 행복하게, 대전을 살맛나게
허태정 새로운 대전, 시민의 힘으로
이장우 일류 경제도시 대전

8.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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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집권 여당 소속, 민선 구청장 출신 후보가 단 한 명도 당선되지 못한 특이한 징크스가 있었으나, 유성구청장 출신의 허태정과 동구청장 출신의 이장우가 연속으로 당선되면서 깨졌으며, 연임한 인물은 홍선기 전 시장이 유일하다. 구청장을 포함한 민선 기초자치단체장 출신의 광역단체장은 전국으로 범위를 넓혀도 많지 않고 구청장만 한정할 경우 더더욱 적다.[2] 충청북도지사충청북도 자체가 충청남도에 비해 존재감이 떨어지는 동네고, 역대 민선 지사들도 대부분 무난한 스타일의 공무원 출신이 대다수라 튀지 않고 안정적으로 도내 행정 사무만 주로 수행했기에 외부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편이다. 참고로 민선 8기 김영환은 최초의 의료인 출신의 충청북도지사이다.[3] 선거 당시 당적.[4] 1995.1.1. 광역시로 명칭 변경.[5] 선거 당시 당적.[6] 2005.3.8.

파일: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svg
탈당.
2005.4.20.

[[열린우리당|
파일:열린우리당 로고타입.svg
]] 입당.
[7] 2012.11.16.

[[새누리당|
파일:새누리당 흰색 로고타입.svg
]]으로 흡수 합당.
[8] 2015.12.28.
파일:더불어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으로 당명 변경.
[9]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 및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으며 시장직 상실.[10] 원래 염홍철은 당적이 한나라당이었지만 2005년한나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다.[11] 즉 텃밭이라고 여겨지던 호남권에서조차 대참패한 것인데, 하물며 광주광역시장, 전라남도지사 자리도 당시 군소 정당급으로 작아져 오늘 내일하던 민주당(구 새천년민주당)에게 내줬을 정도로 대패한 선거였다.[12] 대전광역시 서구에서 이장우 후보가 3,927표 앞섰는데, 둔산1·2·3동에서만 1,160표 앞섰다., 물론 갈마동과 월평동에서도 이장우 후보가 이긴 건 덤이다.[13] 이후 유성구 을 지역 국회의원이였던 이상민이 민주당을 탈당하고 국민의힘에 입당하면서 유성구 3, 4 선거구 민주당 의원 2명도 이상민과 같은 길을 택하였고, 나머지 민주당 소속 유성구 2 선거구 의원이 자살하면서 대전광역시 민주당 광역의원들은 비례대표 1명을 빼고 모두 궤멸당했다. 그러나 기초자치단체장은 중구청장이 중도 낙마하고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되면서 2석으로 늘긴 했다.[14] 3% 이상 득표자만 기재.[15] 보수 정당 후보.[16] 보수 정당 후보, 새정치국민회의단일화.[17] 보수 정당 후보.[18] 보수 정당 후보.[19] 보수 정당 후보.[20] 보수 정당 후보.[21] 제3지대 정당 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