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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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d0000><colcolor=#ffffff> | |||
출생 | 1957년 ([age(1957-01-01)]세) | ||
충청남도 서산시 | |||
본관 | 인동 장씨(직제학계)[1] | ||
복무 | 대한민국 육군 | ||
1980년 ~ 2017년 | |||
재임기간 | 제39대 제1야전군사령관 | ||
2014년 9월 12일 ~ 2015년 9월 16일 | |||
제46대 육군참모총장 | |||
2015년 9월 17일 ~ 2017년 8월 11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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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 슬하 1남 1녀 | ||
학력 | 언암국민학교 (졸업) 해미중학교 (졸업) 경동고등학교 (졸업) | ||
임관 | 육군사관학교 (36기) | ||
최종 계급 | 대장 (대한민국 육군) | ||
주요 보직 | 제1야전군사령관 육군특수전사령관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장 제21보병사단장 제2작전사령부 작전처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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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제46대 육군참모총장.2. 생애
▲ 육군 육군특수전사령관 시절의 장준규 장군, 그 오른쪽은 김관진 당시 국방장관이고 그 왼쪽은 엄기학 장군.
1957년 충청남도 서산시에서 태어났고[2][3] 경동고등학교(32회)[4]를 졸업했다. 육군사관학교 36기로 1976년에 입학, 1980년에 졸업, 임관했다. 동기로는 제3야전군사령관을 역임한 김현집, 여의도 핵주먹으로 유명한 前 국회의원 김성회, 육군특수전사령관을 역임했으나 성추문으로 경질된 최익봉 등이 있다.
21사단 작전장교, 21사단 66연대 작전과장, 21사단 수색대대장, 제9보병사단 제28보병연대장, 특수전교육단 학생연대장, 육군특수전사령부 참모장, 특수전교육단장, 제2작전사령부 교훈처장, 작전처장, 제21보병사단장,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장(소장)을 등을 지낸 야전과 특수전 전문가다.
제21보병사단장 시절에 양구군에서 2사단 장병 폭행사건이 일어나자 2사단장인 이순진과 합심하여 불매운동을 한 이력이 있으며, 이후 육본에서 일하다가 육사 동기인 최익봉 육군특수전사령관이 성추문으로 경질되자 2차로 중장 진급 후 임명되어 임기를 수행했다.
이후 짧은 임기 끝에 전역 대기직인 제1야전군 부사령관을 지내던 중에 사령관인 신현돈 대장이 위수 지역 이탈 및 대민 마찰로 인해 사실상 경질되자[5] 직무대리를 맡던 중에 대장 진급이 확정되었다. 덕분에 관운이 좋았다는 세간의 평이 많았다. 본래 장준규 부사령관은 10월에 예편할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었고 부사령관 본인도 가구점에서 가구를 고르는 등 전역 후의 인생 준비를 덤덤하게 준비했다고 한다. 그런데 전임 사령관이 갑작스래 경질되고 진급했다고 하니... 앞서 특전사령관 임명 당시와 상황이 비슷했다.
본래 대장급 장교 인사는 10월 - 11월에 이뤄지나 2014년에는 워낙 군적 재난이 많이 일어나 육군참모총장인 권오성[6], 제1야전군사령관 신현돈[7], 제3야전군사령관 권혁순[8] 등 대장 3명이 정기 인사 이전에 교체되었다. 상대적으로 한직인 제2작전사령관인 김요환 대장은 2014년 10월에 전역 예정이었으나 동기에 이어 육군참모총장에 올랐다. 육사 36기(공사 28기와 해사 34기에 상당)는 2014년 10월에 대장 진급을 할 것으로 예정이었으나 상대적으로 조기진급하게 되었다.
하지만 2015년 1월 말 11사단 9기보여단장이 여군 하사를 성폭행한 사건이 벌어지자 이후 참모총장이 주도하는 주요 지휘관 회의에서 이를 두고 피해 여군이 명확하게 거절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라는 망언을 하는 바람에 입지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동시에 악습으로 점철된 군대 문화에 불신이 많았던 여론 역시 4성 장군이 이런 망언을 한 것에 일제히 경악하였고 더 추해지기 전 박수칠 때 떠나라를 종용했다.[9] 그리고 이런 그를 보임시킨 국방부와 대한민국 육군본부 또한 경질된 신현돈 前 1군 사령관의 후임조차 이 수준이면 인사는 대체 무슨 기준으로 하는 거냐며 도매금으로 비판받았다.
그리고 2015년 9월, 이 망언 때문에 부정적인 여론이 강했음에도 육군참모총장에 취임했다. 정말이지 관운이 좋은 사람이다.[10] 사실 이 망언 때문에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악화되기는 했으나 새 합참의장으로 내정된 이순진 대장과 더불어 군인을 상대로 갑질한 양구군을 응징한 이력도 있고 커리어도 무난하며 청렴한 것이 인선이 가능한 배경이었다.
▲ 사진은 육군참모총장 취임식에서 당시 한민구 국방장관에게 육군기를 넘겨받는 모습으로, 뒤에 서있는 장군은 김요환 전임 육군참모총장이다.
이후 참모총장직을 1년 11개월간 수행했으며, 육사 후배인 김용우 장군에게 참모총장직을 이임하고 전역하였다.
3. 여담
- 결혼을 당시 기준으로 늦게 한 편이다. 만 31세인 1988년에 했으며, 당시 계급은 소령(진).
21사단장 시절의 장준규.
- 양구 고등학생 군인 집단 폭행 사건 당시 제2보병사단장이었던 이순진 소장과 합심해 장병 외출박 전면 통제[11] 및 (휴가 등의 이유로) 양구 내에 가더라도 가게나 운송 수단을 이용하지 말 것을 강제하고 헌병들을 수시로 순찰시켜 위반자들을 영창에 보냈다.[12] 다만 이 사건 때문에 양구군민의 뒤끝이 작렬하는 바람에 음해를 당했고, 그 때문에 진급누락을 당해서 중장 진급이 늦어졌다.
- 제1야전군사령관 시절에 공군본부에서 자살예방교육을 담당하는 군무원 교관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당초 공군파견대가 소규모로 듣도록 하는 교육을 사령부 전 간부들이 시청하도록 한 적이 있다.
그리고 공군파견대에선 다음날 몇백 명에 해당하는 교육참가명단을 상급부대로 보냈다.이때까지는 장준규의 이미지가 매우 좋았다. 하지만 말년에 접어들어 밑에서 발생한 사건들을 안일하게 처리하고 망언까지 하는 바람에 육사 선배인 김장수와 비슷한 평가를 받게 된다. 자세한 건 바로 밑 논란 문단 참조.
- 남영신 전 참모총장과 인연이 있다. 남영신 총장이 65연대장을 하던 시절 장준규 총장은 21사단장이었고, 7공수여단장을 하던 시절에는 특전사령관이었다. 무려 두 번씩이나 직속 상관으로 조우했다. 그래서 취임식에 참석하여 포옹까지 했다.
- 한동안 근황이 잘 알려지지 않다가 남영신 육군참모총장의 취임식에 참석해 남 총장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취임식에는 장준규 전 참모총장 외에 김진호 전 합참의장, 조정환 전 참모총장, 김용우 전 참모총장이 참석했다.
- 논란이 된 여러 실언들 때문에 개인적인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바뀐데다가 말년에 벌어진 박찬주 제2작전사령관과 문병호 39사단장의 갑질 논란, 기무사 계엄령 논란 때문인지 전역한 후에 정치권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 2022년 기준 한국군수산업연합회 공동회장으로 재임하고 있다.
- 상당히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 직분은 장로이다. 참모총장 당시 육군훈련소 교회 신축을 주도했다.
- 현역 시절에 낙뢰를 맞았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고 한다.
- 군인의 제복규정이 바뀌면서 정복에는 부대 마크를 장착하는 것이 아니라 소속 부대의 뱃지를 패용하도록 바뀌었는데 어깨에 부대 마크(육군본부)를 부착한 마지막 총장이다. 김용우 총장부터는 뱃지를 패용한다.
-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한 대장 중 참모총장과 합참의장의 이취임식이 가장 늦게 열렸다. 그래서 박종진 1군 사령관, 박한기 제2작전사령관, 김운용 3군 사령관의 이취임식에 임석상관으로 참석했다.
4. 육군참모총장 이후의 논란들
4.1. 육군참모총장 동성애자 군인 색출 처벌 지시 사건
자세한 내용은 육군참모총장 동성애자 군인 색출 처벌 지시 사건 문서 참고하십시오.4.2. 박찬주 대장 부부 갑질 사건과 문병호 39사단장 폭행사건
장준규 대장이 욕을 엄청 먹는 이유로, 이러한 사건을 보고 받고도 구두경고로만 끝내 결국 기사화 될 정도로 일을 크게 만들었다는 점이다.이런 문제가 불거진 시기는 정권교체가 이뤄진데다가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의 이임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걸 감안해도 이런 미온적인 대응은 절대로 긍정적으로 볼 수 없다.
더군다나 전임인 김요환 대장이 여군을 성추행한 17사단장 송유진을 본보기로 체포 후 불명예전역까지 시켜버렸기에 더더욱 욕을 먹었다.[13] 또한 조정환 전 참모총장은 그의 육사 동기이자 전임 특전사령관인 최익봉이 성추문이 터지자 그대로 집에 보내버렸다. 그런데 솜방망이 처벌을 했으니 욕을 안 먹는 것이 이상한 수준.
4.3.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당시 계엄령 검토
박근혜-최순실게이트가 절정에 달했을 무렵에 모의된 쿠테타 문건 중 계엄사령관으로 당당히 올라가 있어 여러모로 충격을 주었다. 그것도 양구에서 한 마음, 한 뜻으로 연합했던 이순진 합참의장을 건너뛰고 계엄사령관에 지목되었기 때문에 충격은 더 배가되었다.[14] 자세한건 2017년 계엄령 모의 사건 문서 참고.[1] 직제학계(直提學系) 25세손 ○규(○圭) 항렬.[2] 중학교까지 서산에서 다녔는데 중학교 동창이 박종진 前 제1야전군사령관(3사 17기, 2018년 대장 예편)이다.[3]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4] 고등학교 다닐 때 그를 부양한 사람은 큰 형이었다. 장 전 총장은 7남매 중 다섯 째였다.[5] 형식상으로는 전역 지원을 받아 물러났지만 실제론 상부에서 경질했다. 품위 위반으로 잘린 사례는 최초라고.[6] 22사단 사건에 28사단 사건까지 터지면서 임기 1년을 못 채우고 물러났다.[7] 제22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으로 이미 영전이 어렵다는 예측이 나왔다.[8] 제28보병사단 폭행사망 사건이 일어나 경질되었다.[9] 미군의 경우 1995년 말 주일미군 수병과 해병 둘이 현지 여학생을 윤간한 사건이 벌어졌는데 당시 태평양 사령관이었던 리처드 매크는 기자들에게 이를 두고 "정말 멍청하다. 내가 몇 번 말했는데 그 사건 저지르는데 쓴 차 빌릴 돈으로 여자애랑 할 수 있다" 란 망언을 하는 바람에 별 두개가 한순간에 날아갔고 결국 소장으로 보직해임됐다.[10] 사실 합동참모의장에 박선우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인 대장이 유력시됐던 시점이었고, 3군 사령관인 김현집 대장은 하나회 출신이라는 핸디캡이 있어 합참 의장이나 육참 총장 인선으로는 어느 정도 힘들어 보이긴 했었다. 그리고 말 실수 등과는 별개로 군 내부 커뮤니티나 주위의 평가로는 커리어 전반에 걸친 청렴함이 육군참모총장 취임에 높은 점수로 작용하지 않았나 본다. 정말 의외는 합동참모의장에 박선우 대장 대신 3사 출신의 이순진 대장이 임명된 것. 이순진 대장은 3사 동기인 한동주는 물론 진급 심사를 같이 들어가는 육사 35기 장성들보다 진급이 한참 늦은 후발주자였음에도 결국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었다.[11] 다만 면회성 외박은 허용되었으나 양구가 아닌 인제에 숙소를 잡는 조건으로 내보냈다.[12] 여기까지 보면 한마음, 한 뜻의 동지 같았지만... 후일 합참의장이 된 이순진 대장을 건너뛰고 육군참모총장(자신)을 계엄사령관으로 지목한 기무사 문건이 발견되어 곤란하게 되었다. 다만 두 사람의 관계가 나빠졌다고만 보기도 어려운게 장준규 본인은 이 사실을 몰랐을 가능성이 크며 이 계획대로라면 실권은 기무사령관인 조현천이 가지게 되며 장준규는 바지사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조현천이 뒤에서 사찰한 합참의장 이순진은 조현천의 대구고 직속 선배였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조현천의 막장성만 더 드러났다.[13] 물론 이런 김요환조차 박찬주를 직속 부하(참모차장)로 두었을 때 그의 만행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함께 욕을 먹었다. 참고로 군 문화 특성상 갑질은 옹호 받아서는 안 되겠지만 군 내에서 나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 심각성을 느끼지 못 한 것이 아닌가 싶은 수준. 성 범죄는 더 높은 수위이니 전자발찌를 채워도 이상할 것이 없지만.[14] 다만 이를 주도한 알자회 소속이 아니기에 계엄사령관이 된들 이희성처럼 바지사장이 됐을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