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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29 21:24:49

장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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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홍보본부 소속(제12-14대) ▸ 국방정책실 소속(제15대~현재)
<rowcolor=#fff> 계급 : 현역 소장 / 고위공무원단 나급 일반직공무원(제23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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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e3bf44><colbgcolor=#666,#191919> 장경석
張京錫 | Jang Kyeong-seok
파일:장경석(중장).jpg
출생 1959년 ([age(1959-12-31)]~[age(1959-01-01)]세)
서울특별시
가족 장윤진, 아들 장환영
학력 배재고등학교 (졸업 / 93회)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1] / 석사[2])
서울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 / 학사)
수원대학교 대학원 (문화콘텐츠테크놀로지학[3] / 석사[4])
직업 경동대학교 군사학과 교수[5]
군사 경력
군 복무 대한민국 육군 (1983년 ~ 2017년)
임관 육군사관학교 (39기)
최종 계급 중장 (대한민국 육군)
최종 보직 육군항공작전사령관
주요 보직 육군특수전사령관
국방부 정책기획관
제12보병사단
국방부 국방개혁총괄국장
합동참모본부 합동작전과장
1. 개요2. 생애
2.1. 사제 장비 금지령2.2. 알고 보면 능력자?2.3. 알자회2.4. 전역 후
3. 여담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전 군인으로, 육군특수전사령관, 육군항공작전사령관을 지내고 중장으로 전역했다.

2. 생애

파일:external/data.newdaily.co.kr/shp_1428994354.jpg

1959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배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9년 육군사관학교 39기로 입학했으며 1983년 3월에 수석 졸업자로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임관했다.[6][7] 1993년 2월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외교안보 전공으로 행정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2015년 1월에는 서울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를 졸업했다.

병과는 보병으로 직능[8]은 작전이자 정책기획이다.

대위 시절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부대에서 중대장을 지냈고, 소령 시절에는 35사단 본부대장을 지냈다. 중령으로 진급한 이후에도 35사단에 머무르며 대대장을 지냈다. 이후 참여정부 시절에 대령으로 진급하여 5사단에서 연대장을 지냈고, 합참 작전본부 합동작전과장[9]으로 근무하면서 전시작전권 전환 등을 기획하는 등 당시 한미연합군사령관(대장) 월터 샤프에게 '매우 뛰어난 장교'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다. #

그러나 이명박 정부로 바뀌면서 당시 국방부 장관 이상희에게 인사에서 불이익을 받았다는 얘기가 돌았다. 합참 합동작전과장 보직은 육군, 특히 육사 출신 중에서도 작전 분야에서 최고라고 인정받는 능력자만 부임 가능하고, 그렇기에 준장 진급이 당연하다시피 보장된 요직임에도 불구하고 준장 1차 진급에 실패해 작전 직능과 무관한 육군3사관학교 군사교육단장으로 좌천되었다.[10]

노무현 정부에서 합동참모의장을 지낸 김관진이 나온 뒤에 이러한 인사관행이 사라지면서 겨우 준장 2차 진급에 성공해 국방부 개혁실 국방개혁총괄국장으로 복귀했다.[11]

이명박 정부 전반기에는 군 전체적으로 이전 정부의 색을 지워내는 작업이 강하게 이뤄졌다. 전 정권에서 국방부, 합참, 청와대에 파견 근무한 사람들을 이른바 전 정권의 사람들로 여겨 진급이나 인사이동에서 불이익을 봤다고 볼 만한 여지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고 한다. 이런 인사정책은 천안함 피격 사건연평도 포격전을 거치면서 노무현 정부에서 합참의장을 지낸 김관진이 장관으로 오면서 바뀌었고, 박근혜 정부 들어선 초기에 노무현 정부에서 군 수뇌부를 지낸 인물들이 안보 관련 요직(청와대 국가안보실장(김장수), 국방장관(김관진), 국정원장(남재준), 청와대 경호실장(박흥렬))을 차지하는 일로도 이어졌다.

소장 진급에 성공한 장경석은 제12보병사단장, 국방부 정책실 정책기획관(소장)을 지내다 2015년 4월 7일에 육사 39기로는 김용우와 함께 2차로 중장으로 진급해 육군특수전사령관에 임명되었다.[12]

2.1. 사제 장비 금지령

전임 특전사령관 전인범이 특전사 장병들의 개인 장구 및 전술 발전에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는 평을 듣는 것에 반해, 후임 사령관 장경석은 전인범이 일군 업적을 다 말아먹고 퇴보시켰다는 혹평을 받는다. 유명 밀리터리 포럼 유용원의 군사세계라든가, 개인 군사 블로그에 이런 내용의 주장이 심심치 않게 나오는 것으로 보아 실제로 특전사의 사제 장구류 허가와 관련해서 전임 사령관 시절보다 빡빡해진 것은 사실로 보인다.

이 금지령은 사령관 입장에서 이유가 있었다. 사령관으로 부임 후 예하 부대를 방문했는데 하사 월급이 200만원에 불과하나 장비 구입에 무려 250만원 이상을 썼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고. 게다가 부대별 전투력 측정 및 평가에서 장비가 좋은 팀의 성적이 당연히 높았는데, 되려 몇몇 부대의 팀에서는 역효과로 선임들이 후임들에게 사비로 장비 구입을 강요하는 폐단이 심각했다. 간부, 그것도 특수전요원이면 스스로의 자비까지 투자해가며 장비를 구입하는 것은 굉장한 모범을 보이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렇다해서 타 요원들에게까지 너무 과도한 수준의 강요를 하는 것은 취지에 맞지 않는다.

고로 전인범이 "나라에서 장비를 사주기는 제한되니 보급품으로 나오기 전까지 사제품을 허용한다..."는 취지가 무색해진 셈. 또한 사제 장비의 상당수가 비공인 제품으로 충격에 약해 파손되기 십상인 것은 덤. 이를 극복하고자 국방 규격의 튼튼한 보급품을 확보하기 위해 소요 제기를 해준 것은 물론이다. 그게 3~4년 지나 2020년부터서야 비로소 보급되기 시작한 게 문제.[13] 이 문제는 결국 돈이 없으니 사제 장비를 허용해주겠다는 야전형 전인범과 제대로 된 보급품을 주겠으니 기다리라는 정책형 장경석의 마인드 차이를 내막으로 볼 수 있다.

신형 보급품 도입으로 이끈 정책 입안을 하였지만 이런 효과가 나타나려면 빨라도 몇 년의 시간이 걸리니 알자회 이슈와 더불어 임기 내내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것을 감내한 셈이다.

그러나 특전사 대원들의 장비 관심도가 워낙에 올라가 밀스펙이니 뭐니하며 엄청난 고스펙의 고가장비를 신중하게 사기 시작한 2020년대에는 말이 다르다. 이 정책이 그대로 유지되어 사제장비를 금지하는 영관~장성급 장교들 때문에 아직도 작전팀은 다방면에서 고통받는 중이다. 장경석은 여러모로 고려해내린 결정이었을지라도 그 여파가 굉장히 부정적으로 큰 것은 분명하다. 완전히 사제장비를 금지시키는 것이 아닌, 대원들 사이에서 레플리카를 쓰는 이를 처벌하거나, 별도의 밀스펙을 자체적으로 규정하는 등의 방법이 분명 있었을텐데 일률적으로 금지를 시킨건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특전사에서 내놓은 금지 사유는 사제 장비를 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위화감 조성 문제였다. 관급 구매가 제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미군처럼 환급도 해주지 않는 상황 속에서 일방적인 사제 금지는 논란의 여지가 충분히 있었으며, 기사 그 와중에 국군의 방탄복은 또 방산 비리에 휘말림으로써 논란은 더욱 거세졌다. 그러한 가운데, 몇몇 특전맨들은 계속해서 사제 장비를 부착하였으며 장경석의 특전사령관 임기가 끝나며 사제 장비 논란은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된다.

거기에 더해 사령부에서 사제 장비 금지령 관련해 대원들의 인터넷상 반응을 감시해 공감이나 좋아요를 누른 것까지 색출한다는 소문까지 퍼졌다. 소문이 퍼진 커뮤니티들에서는 온갖 신랄한 표현을 써가며 성토하였으며, 특전사 대원들과 연락망이 닿는 이들은 사실이라고 입을 모아 확인해 주었다. 플래툰의 취재로 전문성을 가지고 상부에 의견을 상신해야 할 특전사에서 오히려 전문성이 떨어지는 육군본부에 의견을 묻고 사제 장비 금지를 시행한 것이라는 소식이 나오면서 육군본부까지 욕을 먹었다.

이러한 여론 때문인지 2016년 5월 5일 어린이날 무술 시범을 보인 1공수특전여단 대원들이 보급품과는 다른 방탄복을 입고 나온 것이 포착되었다. 그런데 이런건 무슨 여론 때문이 아니라 예전부터 특전사 대원들이 각종 사제품을 착용하고 나오는 건 늘 흔히 있어왔다. 어차피 몇 안 되는 밀덕들 대상이 아닌 군에 큰 관심없는 대중들이 대상인 행사에선 보급이든 사제든 통일성과 멋만 갖추면 고위층이 좋아하면 좋아하지 싫어하진 않기 때문이다.

비단 이 문제 뿐 아니라 수뇌부의 고지식한 각종 지침들의 많은 부분이 실제 각 일선 부대들에선 흐지부지되고 현실에 맞도록 융통성 있게 운용된다.

사제 장비 금지 사태에 대한 홍희범의 칼럼

한편, 모든 특전사 대원들이 사제 금지에 반대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이는데, 댓글 중에 사제 장비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의 특전사 대원의 댓글이 있다. 즉, 특전사의 전투력 측정에 문제가 있어 그런 것이다. 제일 피 말리는 사격이 문제인데 태릉선수촌처럼 점수를 매긴 뒤 상대평가로 줄을 세워서 평가를 하게 된다. 이렇게 될 경우 옆팀과 점수가 벌어져 측정에서 밀리게 된다면 자존심 및 실질적인 포상과 부대,개인평가, 궁극적으로는 진급에 굉장히 큰 차질이 발생하게 된다. 때문에 장기를 노리는 진급자들은 무슨 돈을 들여서라도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장비를 마구잡이로 사게 되는 것이고 팀 단위 측정을 위해 밑에 부하들까지 일괄적으로 사제 장비 구매를 강요하게 된다.
최악의 경우 이웃 팀 간 사제 장비 돈지랄 경쟁이 벌어지고 사령부 측은 이를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 장비 다 떼고 기계식 조준기 측정만 요구하게 된 것이다.

또한 가장 큰 문제이자 장경석이 사제장비를 금지시킨 가장 중요한 이유로, 사제 장비의 출처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옵틱이나 도트들은 미국에서 구매 시도 시 ITAR 제한 때문에 구입이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고 일부는 미군 방출품을 불법으로 구매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후자가 문제가 되는데 미군이 안 쓰는 불용품을 방출한 것이라도 한국법상 무단 구매 시 처벌 대상이다. 물론 유럽 쪽에서 광학 장비를 구매할 수 있겠지만 이 역시 문제가 배율 있는 광학 장비는 총포법에 걸리기 때문에 법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방판 장비의 경우 레벨이 확실한 군납품과 달리 개인 구매의 경우 해당 방탄판이 진짜 구매할 때 보증한 방탄 레벨인지 증빙이 불가능하다. 관급 구매로 정식으로 구매할 경우 반드시 실탄과 국제 규격에 따른 검증 절차를 밟지만 사제의 경우 그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저품질의 중국산 레플리카 제품을 사용하는 대원들이 매우 많다.

즉 법리 해석과 부대 운영 차원에서 보면 사제 장비 금지는 단순하게 바라볼 사안이 아니다. 이것은 법과 제도를 손질해 해결해야 할 문제로 장군 한 사람이 어찌할 것이 아니다. 특히 법적 문제는 애초에 장군이 아니라 군대 자체에서 법을 고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2.2. 알고 보면 능력자?

대령 때 합참 합동작전과장[15][16]에 보임될 만큼 출중한 능력을 지녔다. 그런데 하필 정권 교체가 되면서 정치와는 거리가 있는 일반 대령들에까지 불똥이 튀어 졸지에 준장 진급에서 미끄러짐과 동시에 한직인 육군3사관학교로 좌천되었다. 그러나 그냥 버리기에는 능력이 아까웠는지 1년 후 준장 진급을 시켰다.

2차로 소장 진급 후 12사단장 시절에는 GOP 철책을 과학화 장비로 교체하는 사업을 했는데 산악지형의 애로사항을 극복하기 위해 상급부대와 업체를 설득하는 등 노력을 기울여 모든 철책에 차량 진입이 가능토록 했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하면 히말라야 봉우리에 헬기장을 만드는 것과 비슷한 난이도이다. 이로서 철책에 상황이 발생하면 차량화된 부대가 신속 투입이 가능해졌다. 강원도 인제 산골짜기에 아무도 관심 없을 때 몇십 년을 내다본 것이다.

또한, 항공작전사령부를 대대적으로 개편했는데 비대해진 군수처 조직[17]을 경량화시켜 정책 및 행정업무에 집중하고 항공기 정비를 전담하는 항공정비여단을 창설시켰으며 또한 참모부의 비대한 편성을 슬림화하고 각 항공여단 편제를 강화시켰다.

2.3. 알자회

2016년 12월 22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5차 청문회에서 대장 임호영, 중장 조종설과 함께 육군 내 사조직 알자회 출신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진급 코스로 취급받는 특전사령관으로 알자회 출신인 그가 임명되었고, 후임자[18]까지 알자회 출신으로 임명되었다는 것을 보면서 군내 인사에서 이런 악습이 아직까지 지속되었다는 사실에 관련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이 경악하였다.

대선이 끝난 후로 미뤄진 군 인사에서 알자회 폭로건으로 인해 대장 진급은 물 건너갔다.[19] 결국 동기이자 알자회 최초 폭로 당사자 중 한 명인 김용우가 39기에서 혼자 대장으로 진급해 육군참모총장이 되었다.

전인범처럼 육군특수전사령관같은 극요직으로 대장 진급에 사건 사고로 인해 진급이 실패했는데 전인범제13공수특전여단 훈련사망사고만 아니었으면 대장 진급이 매우 유력했지만 이 사고로 하사 2명이 사망하는 바람에 진급이 절단났으며 장경석은 알자회의 일로 인해 대장 진급이 절단났다.

요약하면 육사 생도 시절부터 촉망받는 장교였지만 금 동아줄인 줄 알았던 사조직에 가입했다 적발되고[20], 사조직 꼬리표로 진급에 불이익을 받게 된 상황에서 노력하여 능력을 인정받아 진급 코스를 타 다시 금 동아줄을 붙잡은 듯했으나, 노무현 정권에서 진급 코스를 탔다는 이유로 이명박 정권 초기에 좌천당해 소외당하고, 정권 말기에 간신히 부활한 끝에 박근혜 정권에서 어둠의 손을 잡았지만 그것 역시 썩은 동아줄이었다.

결국 2017년 9월 26일자로 육군항공작전사령관 자리에서 전역하였다. 알자회 이력 때문에 장경석의 이취임식은 일절 없었고, 항공작전사령부 참모장 허건영이 7개월간 직무 대리하다 이듬해 4월에 소장 진급 후 정식으로 취임하였다.

2.4. 전역 후

전역 후에는 숙명여자대학교 경영대학원 객원교수로 초빙되어 2018년부터 2019년까지 1년간 재직했고, 2019년 12월 수원대학교 대학원에서 드론 전공으로 문화콘텐츠테크놀로지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학위 논문은 「北韓(북한) 核(핵)미사일 對應態勢(대응태세)에 대한 드론봇 戰鬪體系(전투체계) 適用方案(적용방안) 硏究(연구)」.

이후 2020년부터 2022년까지 대한민국성우회 국제전략교류협회장을 지내고 현재 드론재난안전협회 국방안보분야 부회장, 사단법인 상호존중과 배려의 운동본부 총재를 지내고 있다.

또한 경동대학교 행정학과에서 초빙교수로 재직했고 같은 대학에 군사학과가 신설되자 재임용되었다. 담당 과목은 국가안보론, 전쟁사, 리더십. 같이 임용된 교수는 같은 알자회 출신의 조종설과 반알자회 성향인 이종섭, 김해석이 있다. 이 중 장경석이 가장 선임이다. 과거 경동대학교 군사학과에서 제12보병사단으로 병영 체험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장경석, 조종설이 제12보병사단장을 지낸 경력이 있다.

3. 여담


[1] 외교안보 전공[2]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 학위 논문: 한국 핵정책에 관한 연구(1993. 2).[3] 드론 전공[4] 수원대학교 대학원 석사 학위 논문: 北韓(북한) 核(핵)미사일 對應態勢(대응태세)에 대한 드론봇 戰鬪體系(전투체계) 適用方案(적용방안) 硏究(연구)(2019. 12).[5] #. 동료 교수로 조종설, 김해석 등이 재직중이며 이종섭도 교수로 재직하다 윤석열 정부 첫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되어 사직했다.[6]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김용우, 5군단장 - 교육사령관을 지낸 제갈용준, 수도군단장 - 육사교장을 지낸 김완태, 7군단장 - 교육사령관을 지낸 장재환 등이 이 기수에 해당한다. 김용우는 국방부장관상(3등 졸업자)을 수상했다.[7] 대통령상을 수상했기에 당시 대통령 전두환이 직접 상을 시상하고 메달을 걸어주었는데, 전두환은 하나회의 수장으로 12.12 군사반란을 통해 집권했으며, 장경석은 알자회의 중추로 42, 43기를 포섭하여 가입시켰고 군부 내 알자회의 중심이 되었다.[8] 전투병과의 장교들은 중령 진급 후엔 같은 병과 내에서도 육군 기준으로 인사, 군수, 정보, 작전 중에서 4가지 직능을 택해야 한다. 정해지는 기준은 중령 진급 이전에 담당한 참모의 비중으로 결정된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작전이 가장 진급에 유리한 편이다. 중장 진급 양상을 보면 인사와 군수는 1기수당 1명 꼴이며, 나머지는 다 작전이 차지한다.[9] 준장(진)이나 다름 없을 정도의 보병 대령 최고의 요직이다.[10]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노무현 정부의 정책을 폐기하고 주한미군이 다시 연합훈련, 연합작전계획수립을 맡는 것으로 방향을 전환하였다. 그로 인해 노무현 정부 당시 합참 합동작전과장으로 근무하며 대한민국 국군 주도의 작전을 기획하여 자주국방파 장교로 꼽힌 신원식 중장(육사 37기)과 장경석 대령은 진급에서 탈락하여 좌천의 아픔을 겪었고 합동작전 경험과 전문성이 부족하거나 아예 합참 근무 경력이 없는 인사들이 합참으로 들어왔다. 그 과정에서 부임한 작전부장 김학주 소장(육사 35기)은 야전 사단 및 군단에서 주로 근무했고, 작전처장 양철호 준장(육사 38기)은 203특공여단 대대장과 21사단 63연대장을 거쳐 육본 작전과장으로 근무한 합참 무경험자였으며 합동작전과장 박철희 대령(육사 41기)은 20사단 기갑수색대대장과 92기계화보병여단장 등 야전부대에서 근무하고 합참에서는 방위기획과 1년 근무했던 경력이 전부였다. 작전본부장 황중선 중장(육사 32기)만 합동작전 근무 경력이 있는 유일한 인물일 정도였다. 이들은 주로 야전통이었다.[11] 그러나 이런 인사구제가 특정한 기수에 치중된 탓에 그 밑의 기수들은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관련 기사[12] 1차 진급자는 7군단장 장재환 한명 밖에 없었다. 같이 진급한 김용우는 1군단장으로 취임했다.[13] 참고로 2020년 당시 특전사령관은 장경석 3대 뒤인 김정수이다. 그만큼 정책이 입안되고 시행돼 성과를 보이기까지 긴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이다.[14] 다 동일한 기사다. 각 페이지의 댓글 반응을 모두 확인할 수 있도록 링크를 모두 걸었다.[15] 합참 대령 보직들 중에서 준장 진급률이 높은 요직으로, 역대 과장은 대부분 고위직으로 진급했다. 이 직위를 역임한 사람들로 정승조(육사 32기-대장 전역), 이홍기(육사 33기-대장 전역), 신현돈(육사 35기-대장 전역), 김종배(육사 36기-중장 전역), 신원식(육사 37기-중장 전역), 김왕경(육사 38기-준장 전역), 장경석(육사 39기-중장 전역), 구홍모(육사 40기-중장 전역), 박철희(육사 41기-준장 전역), 김승겸(육사 42기-대장 전역), 안준석(육사 43기-대장 전역), 김정유(육사 44기-소장 전역), 전동진(육사 45기-대장 전역), 김홍석(육사 46기-소장 전역), 강호필(육사 47기-현직 중장), 이승오(육사 49기-현직 소장), 강현우(육사 50기-현직 소장), 안찬명(육사 51기-현직 소장), 우석제(육사 52기-현직 준장), 김홍식 (육사 53기-현직 준장)이 있다.[16] 원칙적으로는 육/해/공 모두 보임 가능하며 모두가 선망하는 보직이나 육군, 특히 육사 출신 중에서도 최고 능력자만이 보임할 수 있다고 알려졌다.[17] 군수처는 보급, 장비정비, 군수계획 같은 업무를 담당하는 조직으로 회전익 항공기를 다루는 항공작전사령부 군수처 특성상 조직이 비대해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조직을 분리한 것.[18] 심지어 12사단장 자리도 전 - 후임자 관계로 조종설 이후 12사단장으로 취임한 성일도 알자회 출신이다.[19] 한가지 덧붙이자면 동기 장재환은 7군단장에서 3군 부사령관과 교육사령관 같은 한직을 하는 바람에 대장 진급이 막힌 상황이었다. 그러니 김용우, 장경석 두 중장이 38기 2차 진급자(합참 작전본부장 김용현이 가장 유력했다.)와 함께 모두 대장으로 진급하거나 둘 중 하나만 진급을 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20] 적발이 된 가장 큰 이유가 장경석의 동기 육사 39기생들이 최초로 알자회를 고발하면서 김영삼 시절 때 진급 누락을 당했다. 40기들은 아예 김운용(前 지상작전사령관)과 김병주(前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가 앞장서서 군내에서 알자회를 퇴출하라고 국방부 장관 권영해를 찾아가 항의까지 할 정도였다.[21] 특전사 보안대(당시 기무대)에게 명령한 것이 사실상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