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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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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목 이름 역할 등번호
축구 안정환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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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양준혁 선수 10
육상 이봉주 선수 41
체조 여홍철 선수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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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격 진종오 선수 5
격투기 김동현 부주장/선수(GK) 8
테니스 이형택 주장/선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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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상 모태범 선수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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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드민턴 하태권 선수 2
배드민턴 이용대 선수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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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김병현 선수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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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김용만 선수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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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투기 김동현 선수(GK)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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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 김태술 선수 1
배구 김요한 선수(GK)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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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링 김현우 선수 12
스케이트 모태범 선수 10
수영 박태환 선수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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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투기 박준용 선수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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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비 장정민 선수 14
럭비 이준이 선수 7
연예 김용만 중계 -
연예 김성주 중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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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595959><colcolor=#FFFFFF> 김성주[1]
金聖柱|Kim Seong-Ju
파일:김성주 2023년.jpg
출생 1972년 10월 10일 ([age(1972-10-10)]세)
충청북도 청원군 옥산면 덕촌리
(現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덕촌리)[2]
거주지 서울특별시 강남구 신사동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본관 경주 김씨 (慶州 金氏)
신체 176cm|72kg|AB형[3]
가족 1남 3녀 中 셋째[4]
아버지 김창경(1943년 ~ 2016년)[5]
어머니 박복순(1947년생)[6]
둘째 누나 김윤덕[7]
배우자 진수정(1973년생, 2002년 결혼 ~ 현재)
장남 김민국[8]
차남 김민율(2009년 3월 7일생)
장녀 김민주(2013년 1월 7일생)
학력 괴산명덕초등학교 (졸업)
세광중학교 (졸업)
청석고등학교 (졸업)
중앙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외교학 / 학사)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신문방송학 / 석사[9])
종교 개신교 (한국기독교장로회)
병역 대한민국 육군 이병 소집해제 (방위병)
MBTI ESFJ
소속사 장군엔터테인먼트, 뭉친프로젝트
데뷔 1997년 한국스포츠TV 아나운서
2000년 MBC 공채 아나운서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10]

1. 개요2. 경력
2.1. MBC 입사와 그 이전2.2. 프리랜서 선언과 MBC 퇴사2.3. 프리랜서 활동2.4. 메인 캐스터로 돌아오다
3. 유행어4. 여담5. 논란 및 사건사고6. 방송 활동7. 광고 활동8. 수상 경력9. 같이 보기

[clearfix]

1. 개요

MBC 아나운서 출신의 방송인이다.

오랜 스포츠 중계 경력에 더해 슈퍼스타K, 한식대첩, 냉장고를 부탁해, 복면가왕, 미스터트롯 등 생방송 프로그램이나 VS구도로 짜여진 프로그램 진행자로서 역량을 발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외에도 방송연예대상 라이브 진행과 백종원의 골목식당 같은 굵직한 관찰예능도 성공시키며 전성기를 이어나가고 있다.

2. 경력

2.1. MBC 입사와 그 이전

파일:MBC 아나운서 김성주.jpg
MBC 아나운서 시절 김성주. 2002년 한국시리즈 당시 삼성 라이온즈의 우승 소식을 전하는 앵커였다.#

2000년 공채 아나운서MBC에 입사했다. 본래는 기자를 지망하고 있었는데 같이 언론고시를 준비하던 한 친구가 무심코 건넨 ''야, 너 아나운서 같이 생겼어." 한 마디에 아나운서로 노선을 변경, 별 기대 없이 첫 지원을 했는데 덜컥 최종면접까지 가게 되었고, 이에 자신감을 얻어 본격적으로 아나운서를 준비하게 되었다. 첫 지원에서 최종면접까지 갔기 때문에 조금만 더 준비를 하면 금방 아나운서로 입사할 줄 알았으나, IMF로 인해 각 방송사가 아나운서 채용을 줄이거나 취소하였으며 그나마 면접 기회를 얻어도 연이어 낙방했다고 한다.

MBC 입사 전에는 케이블 스포츠 채널인 한국스포츠TV(현 SBS Sports)에서 캐스터를 했으며,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MBC 입사 후에도 스포츠 중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MBC에서 첫 스포츠 중계를 하게 됐을 때는 원래 담당하던 캐스터가 사정상 쉬게 되어 땜빵으로 들어간 줄 알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이미 스포츠채널에서 중계를 하던 모습을 봐뒀던 PD들이 꼭 캐스터로 쓸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할 정도의 인재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한국스포츠TV에 입사한 지 1년 만인 1998년에 IMF로 회사가 기울어 250명의 직원이 40명으로 줄어드는 바람에 하루에 4경기씩 종목 가리지 않고 중계를 했다고 한다. 채널이 없어질 뻔해 소속 직원들이 시위를 하기도 했고, 그중에 김성주도 있었다. 이 때문에 최저생계비를 받아가며 중계를 했으며, 광화문에서 회사를 살려 달라며 전단지를 나눠주던 것을 우연히 광화문에 본사가 있는 조선일보의 기자인 작은누나가 보고 "성주야 너 지금 뭐하냐"고 물어보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본인 생애에 가장 비참한 순간이었다고.

파일:김성주 스포츠TV.png
그의 스포츠TV 시절 모습

그런 이유로 노예처럼 굴러서 3년간 중계한 경기가 1,000 경기가 넘는다고 하며, 결국 목이 완전히 잠겨서 PD에게 "오늘은 도저히 중계를 못 하겠다"고 했으나 대체인력이 없어서 쉰 목소리로 계속 중계를 했고, 그러다보니 아무리 떠들어도 절대 잠기지 않는 강철 성대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그 당시 경험으로 축구, 야구, 농구, 핸드볼 등 종목만 말하면 자동으로 멘션이 튀어나온다. NBA 중계는 지금도 아나운서계에서 따라올 사람이 없으며,[11] 야구 쪽으로는 1999년 플레이오프 7차전이효봉 해설위원과 함께 중계하기도 했었다. 이후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서는 차범근-차두리 부자와 함께 중계하면서 현장감을 잘 살린 중계로 큰 인기를 얻었다.

이후 여세를 몰아 당시 막 퍼지고 있던 아나테이너 붐에 탄 MBC의 기획에 발탁돼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하며 종횡무진 활약했다. 끼도 어느 정도 갖춰져 있는 데다, 자신의 공채 합격 뒷이야기나 방송 커리어를 보면 애초에 프라임타임 뉴스 메인 앵커는 본인도 포기하고 사측에서도 생각이 없었던 모양. 때문에 캐스터 일 외에는 일찌감치 예능에 주력해서 자신만의 포지셔닝에 성공하여 많은 인기를 얻었다.

그전까지 예능에 출연한 아나운서들의 모습은 설 연휴나 추석 특집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아나운서의 단정한 이미지를 유지하려다 다른 출연자들의 짓궂은 장난에 망가져서 트로트, 댄스를 하는 정도였지만 김성주는 아나운서의 훈남 이미지를 살리면서도 가발에 쫄쫄이 츄리닝까지 입고 개그맨 못지않게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주며 그야말로 국민 아나운서급의 인기를 얻었다. 거기에 2006년에는 그 해 30회째를 맞이했던 MBC 대학가요제 MC를 맡기도 하였다.

2.2. 프리랜서 선언과 MBC 퇴사

"마구간을 떠난 말은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MBC를 퇴사하며 남긴 말

강수정 등 기존 인기 아나운서들의 잇따른 퇴직으로 방송계가 술렁거리고 있던 상황에, 2007년 2월 28일 돌연, MBC에 사표를 내고 프리랜서 선언을 하면서 MBC를 퇴사했고, 본사 간판 아나운서의 갑작스러운 퇴사에 격노한 MBC는 김성주를 MBC에서 출연정지를 시켜 버렸다.

물론 보통 프리선언한 아나운서는 해당 방송국에서 한동안 조용히 묻어두고 없는 사람 취급하는 경우가 보통이며, 방송국에서 사면받을 때까지 기존에 근무하던 방송국에 나오지 못하는 것은 현재 방송 3사에서 동일하게 적용되는 암묵적인 룰이긴 하나, 보통은 길어봐야 2~3달 정도로 그치는데 김성주는 하단에도 나와있듯이 1년 이상 못 나왔다.

퇴사와 함께 모든 방송에서 하차하게 된 김성주는 이후 1년 이상 방송 자체를 쉬게 된다. 본인 말로는 처음에는 지친 심신을 쉬면서 좋았지만 몇 개월이 지난 후에는 아침에 눈을 뜨기 싫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한다. 이때 김성주는 상반되는 논조의 신문 2개를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거나 서울-경주를 왕복해서 드라이브 하는 등 열심히 복귀를 위한 준비를 했다고 한다.[12] 당시 다른 방송국에서 부르는 곳이 있었기에 좀 더 일찍 복귀할 수도 있었지만, "복귀 방송은 어떻게든 MBC에서 하고 싶었다"고 한다.

참고로 김성주의 경우는 출연금지 자체보다는, 대체 불가능한 MBC 간판 취급받던 아나운서가 딱히 전조도 없이 갑작스레 프리선언을 한 탓에, MBC 내부적으로 괘씸죄가 적용되어 '큰 소란'으로 불거진 특이 케이스였다. 사내 여론도 안 좋다보니 MBC가 고의적으로 두고보면서 일을 키운 것도 있지만 보통 뉴스가 아닌 예능에 내돌려지면서 아나운서국에서 반쯤 왕따가 된다거나, 몰래 행사나 사업 등의 투잡을 뛰다가 걸린다거나 하면서 '조만간 나갈 사람이구나'라고 예상이 되는 다른 아나운서들과 달리[13] 김성주는 이 둘 어느 쪽에도 해당되지 않았다.

이 시기 김성주가 강판되면서, 김성주가 맡던 프로그램(특히 예능 쪽) 대부분을 후배 오상진이 이어받았는데 김성주의 자리를 오상진이 그대로 이어받았다고는 하나 김성주가 MBC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분야는 '예능'만이 아니었기 때문에[14] 오상진의 대체는 한계가 명백했다.

특히나 이 시기 김성주가 욕을 많이 먹게 된 것에는 퇴사 이유가 누가 보아도 말이 안 되었고, 그 후의 활동으로 스스로 거짓말이었음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스포츠 중계를 많이 하고 싶은데, 예능 프로를 더 많이 하게 되는 상황을 벗어나고 싶다라고 퇴사의 변을 밝혔다. 하지만, 당시 스포츠 중계는 공중파 3사의 아나운서나 스포츠 채널의 아나운서들이 했지 프리를 선언한 아나운서가 하는 경우는 없었다. 거기다 퇴사 후 바로 연예기획사와 계약했으니 누가봐도 거짓말인 것이 보였다. 후일, 본인도 이 말에 대해서 자기가 봐도 말도 안 되는 소리였고, 발언 자체를 후회한다고 밝혔다.[15]

그리고, 그동안 프리선언을 한 아나운서들은 대부분 매니지먼트사와 계약없이 혈혈단신으로 프리 활동을 시작하는 것과는 달리, 거대기획사이던 팬텀 엔터테인먼트와 매니지먼트 계약을 체결하면서 웬만한 거물 연예인급의 계약금인 5억 원과 BMW 승용차를 계약선물로 받았더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돈에 의해 움직인" 모양새가 돼버려서 '돈 때문에 회사에 대한 의리를 저버렸다'는 이미지가 있었고, 이후 무릎팍도사에 나와서 위 소문은 과장되었다고 해명했으나, 승용차를 받은 것에 대해서는 인정을 하기도 했다.[16] 당시 팬텀 엔터테인먼트는 황금어장에 함께 출연했던 강호동의 소속사였다. 실제 프리를 선언할까 말까 고민하던 시기에 강호동과 이에 대해서 많이 상의했다는데, 당시 강호동은 "예능계는 만만한 곳이 아니다"라며 김성주를 말렸다고 한다.[17] 또한 프리선언 이후 힘들던 시기에 강호동이 본인을 여기저기 방송 관계자나 방송인들이 있던 자리에 불러주며 챙겨주었다고 한다.

김성주 이전 선배들의 경우 일반적으로 프리선언을 한 아나운서들은 이미지를 지키면서 언론인으로 남아있거나 조금 끼가 있는 경우 행사 MC를 주업으로 삼았기 때문에, 매니지먼트 계약을 해서 굳이 1/n으로 수익을 나눌 필요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이후 전현무나 김경란의 경우처럼 연예인과 똑같이 매니지먼트 계약을 필수로 하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아나운서들이 아나테이너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으로 연예인화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며 그 시작이 김성주였기 때문에 필요이상으로 욕을 먹은 건 사실이다.

2.3. 프리랜서 활동

겨우 복귀하게 된 이후에는 예능과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주로 활동했다. 하지만 명랑히어로 등의 예능에서는 적응하지 못하고 병풍으로만 존재하다가 간간이 던진 섹드립으로 구설수에 오르는 등의 행보만 반복하다 끝났고, 라디오(굿모닝 FM) 역시 DJ가 된 지 1년도 채 못 돼 하차하게 됐다. 장기간의 공백과 불안정한 신분으로 인해 자신감을 많이 상실한 것도 예능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원인이었다.

라디오스타에서 밝히길 부진하던 당시 화성인 바이러스에 출연하고 있었는데, 대기실 구석에서 혼자 빵을 먹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함께 출연하던 김구라가 "무슨 죄라도 지었냐, 이리 와서 당당하게 먹으라"고 소리를 쳤고, 그 말을 듣고 자신이 위축되어 다른 출연자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고, 먼저 말을 걸어준 김구라에게 고마움을 느꼈다고.

2009년, 2010년에는 엠스플야구 캐스터로 활동했다. 그러나 워낙 '원뜨리' 한명재가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라[18] 큰 인기를 얻지는 못했던 편이었다. 2010년에는 주로 MBC Life에서 임주완 과 번갈아가며 캐스터를 맡았다. 그러나 2011년에 김성주의 스케줄이 너무너무 바빠져[19] 야구 중계를 그만두었다. 그러다보니 MBC 본진에 근무하던 아나운서들이 김성주 메꾸러 케이블 알바도 뛰기도 했다.[20]

2009년부터 쭈욱 슈퍼스타K 시리즈를 계속 진행했다. 뜸을 많이 들인다는 평은 있지만[21] 대체적으로 진행에는 호평을 받고 있다. 2011년에는 김성주 퇴사 후 김성주가 맡았던 프로그램들을 맡은 터라 본의 아니게 라이벌 구도가 형성됐던 오상진 아나운서가 MBC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 시즌 2의 MC를 맡기로 해서 흥미로운 구도가 형성되나 싶었지만, 파업관계로 오상진이 MC를 하차하면서 무산되었다. (아마 김성주가 슈스케를 하지 않았더라면 파업문제로 오상진이 하차했을테니 김성주가 다시 들어가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2010년 들어서 출연한 tvN화성인 바이러스에서는 프리선언 이전에도 가지고 있던 변태 기믹을 조금 더 살리는 방향으로 가기도 했다.[22]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신규 코너 오늘을 즐겨라의 진행자로 발탁, 캐릭터도 잡히고, 진행능력도 좋아서 프로그램을 잘 리드해내는 등 이번엔 뭔가 잘 되어가나 싶었지만 결국 시청률 반등에 실패해 같이 방영되던 뜨거운 형제들과 같이 종영되었다.

2013년 1월부터 첫째 아들 민국이와 함께 아빠! 어디가?에 출연을 하고[23] 2014년 아빠 어디가 시즌2때 둘째 아들인 민율[24]이와 출연을 한다. 프로에 출연하면서 본의아니게 짜파구리 전도사가 되면서 농심그룹에게 매출 급상승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프로그램의 흥행으로 본인의 주가도 고공행진을 시작하면서 MBC의 푸쉬를 많이 받기 시작하였다.

프리선언 후에 했던 인터뷰나 무릎팍도사 등에서 프리선언을 후회하는 듯한 말을 많이 했으나[25] 명랑히어로 고정출연 전까지 약 2년간 길게 이어졌던 프리선언의 암울했던 시기도 끝이 났고, tvN의 화성인 바이러스나 Mnet 슈퍼스타K 진행을 기점으로 각종 기업체 행사 진행 등을 맡게 되면서 아나운서 시절보다 몇 배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26]

결론적으로 프리선언한 전직 아나운서 출신 중 가장 성공한 방송인으로서는 전현무 다음 2인자 정도 되는 인물이며 진행자로서는 독보적 1인자이다. tvN, 엠넷과 같은 CJ E&M 계열 채널뿐만 아니라 채널A에서도 개국 전부터[27] 자주 활동한다. '김성주의 모닝카페'를 진행한 바 있으며, '불멸의 국가대표'에도 출연했다.

만약 김성주가 쭉 MBC에 남아있었더라면 유명세는 지금과 비슷했겠지만 지금의 예능 캐릭터도 못 얻고 수익이 지금처럼 높아지진 못했을 것이니 결과적으로는 프리로 전향한 것이 본인에게 많은 이득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프리선언 전 MBC 시절에도 많은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는 했으나, 알려진 대로 아나운서가 자사의 프로그램을 진행할 경우 출연 연예인들의 1/10도 안 되는 수당을 받을 뿐이고[28] 그대로 아나운서 신분으로 예능을 지속했다면 캐릭터 구축에 제한이 있는 상황에서 이미지가 식상해져 쉽게 도태됐을 가능성도 있다. 즉 오히려 그때 프리선언을 하지 않고 계속 남았더라면 더 힘든 상황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다만 수당이 그렇다는 것이지, 아나운서들은 대기업급을 상회하는 월급을 따로 받는다. 예능을 자주 하는 아나운서들이 프리선언을 하는 이유는 페이가 적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방송활동을 하는 만큼 대우받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예능 외에도 교양이나 스포츠 중계까지 다양한 분야를 활동한 김성주의 경우 해당되지 않는 경우이지만, 일반적으로 예능에 자주 기용되는 아나운서들의 경우 보도국과 예능국이 분리되어 있는 방송사의 구조상 아예 국이 갈라지면서 자연스럽게 동료들과도 멀어지고, 아나운서들 내부에서도 예능 뛰는 게 인지도 상승으로는 뉴스, 교양과 비교도 안 되기 때문에 부러움을 사서 본의 아닌 왕따 분위기가 형성된다고 한다.

2.4. 메인 캐스터로 돌아오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 MBC의 메인 캐스터로 발탁되면서부터 MBC의 여러 중계석들을 신나게 오가고 있다. 특히 축구 중계에 많이 투입되고 있는데, 이는 2010년 이후 MBC가 축구 캐스터로 키우려던 김정근 아나운서가 2012년 MBC 파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는 괘씸죄로 3년 가까이 축구 중계에 나서지 못해 성장이 더뎠던 것이 컸다. 옆 동네 배성재 아나운서가 남아공 월드컵 이후 A매치, 프리미어리그, K리그 등 각종 축구 중계에 투입되면서 대한민국 대표 축구 캐스터가 된 걸 생각하면 MBC로서는 여러모로 아쉬울 것이다.

스포츠 중계 경력 때문인지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개막식의 한국어 공식 진행을 맡기도 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중계를 맡지 못 했는데, MBC 스포츠 캐스터 계약은 2017년 초 이미 만료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 2018 러시아 월드컵 역시 허일후, 김정근, 김나진 아나운서 체제로 확정되었다. MBC가 최대한 내부 아나운서들로 스포츠 중계를 하겠다고 밝힌 만큼[29] MBC에서 스포츠 중계를 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대신 스포츠 중계 외의 다른 분야는 시청자들의 반발이 컸는지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으나 그러나 결국 카타르 월드컵 중계를 맡아 8년만에 MBC 캐스터로 복귀하게 되었다.[30]

이후 2023년 김정근 아나운서가 MBC를 다시 떠나면서 이후 스포츠 중계도 계속 맡을 가능성이 높아졌고, 5월 U-20 월드컵, 7월 여자 월드컵 중계도 맡게 되었다.# 또한 9월 항저우AG 역시 김나진, 정용검, 한명재와 메인 캐스터[31]로 활약하게 되었다.#[32]

3. 유행어

"제품 맛입니다!"[33]

4. 여담

파일:김성주포스트잇.png

5. 논란 및 사건사고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김성주/논란 및 사건사고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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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방송 활동

현재 출연 중인 방송은 굵게 표기한다.

7. 광고 활동

8. 수상 경력

9. 같이 보기


[1] 원래 집에서 지어준 이름은 김덕현이었으나, 호적상에는 김성주라고 쓰여지는 바람에 해당 이름을 지금까지 쓰게 되었다고 한다. 다만 고향에서는 여전히 덕현이라고 불린다고.[2] 골목식당 대전 편에서 옥산면 덕촌리라고 밝혔다.[3]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AB형이라고 밝혔다.[4] 남자 동기가 없는 외아들이다.[5] 한국기독교장로회 목사. 기장 충북노회장을 역임하였으며, 2016년 6월 9일 지병인 파킨슨병으로 별세하였다.[6] 2014년 당시 아빠! 어디가? 시즌2에서 세는 나이 68세로 알려졌다.[7] 조선일보 기자. 보직은 현재 문화부 부장.[8] 2023년 7월 30일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에 여름특집을 맞아 김성주 몰래 경연자로 깜짝출연했다.[9] 석사 학위 논문 : TV 스포츠 프로그램 제작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대한 연구(2002.12.)[10] 2015년을 마지막으로 활동이 없다. 대신 아들 김민국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간간히 가족 사진을 올려 근황을 밝히기도 한다.[11] 다만 2015년 들어선 김명정 아니운서가 이 아성을 넘보고 있다.[12] 심지어 아들이 저리가라고 하고 가족들도 싫증내기 시작할 정도였다고 한다.[13] 대표적으로 전현무가 있다. 몰래 외부 행사를 뛰고 실비 범위를 넘는 보상을 현금과 명품 시계로 받은 것이 걸려 징계를 받은 적이 있으며, 심지어 퇴사를 준비하던 시기에 KBS 방송국 1층 로비에서 대놓고 연예 기획사 관계자들과 미팅을 했다고 한다. 물론 KBS 아나운서 시절 전현무의 스케줄이 워낙 살인적이어서 따로 시간을 내기 힘들었던 것도 있겠지만, 그냥 대놓고 "나 프리선언하겠다"고 소문을 낸 것이나 마찬가지. 김성주 외에 갑작스럽게 그만둔 경우로는 전직 KBS 아나운서이자 지금은 배우로 전향한 최송현의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는 입사 자체가 얼마 안 돼서 활약이 거의 없던 시점이었기 때문에 KBS 사측에서도 큰 손실이 아니었다.[14] 사실상 메인 앵커만 안 하는 MBC의 전천후 아나운서였다.[15] 이경규 따라 다니며 예능 배우던 시절에 이경규가 이 발언을 많이 비판했다고...[16] 사실 과거 1990년대 착취당하는 계약관계에 묶여있던 가수들도 기획사로부터 합당한 계약금이나 수익 배분은 못 받아도 엉뚱하게 값비싼 외제차를 선물로 받는 경우는 드물지 않았다. 그만큼 외제차를 꼬드김용(?)으로 내세워온 역사가 긴 것이다. 그나마도 명의는 회사 명의로 되어있어 팔지도 못하고 억지로 타고 다니다가 여차하면 도로 뺏기기도 했던 1990년대 연예인들에 비하면, 실제로 온전히 자기 차로 받아 뺏길 걱정도 없이 타던 팔던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김성주는 대접을 잘 받은 편이다.[17] 그런데 DY 엔터테인먼트 사건 문서를 참조하면 알겠지만 단순히 프리선언 자체가 아니라 해당 매니지먼트사와의 계약 자체를 우회적으로 말렸던 것일 가능성도 있다.[18] 여담으로 한명재와 김성주, 임용수, 조민호는 한국스포츠TV 입사 동기다.[19] 화성인 바이러스 등 '방송을 7개씩이나 맡았고, 그중 데일리가 2개'라고 말했다. 참고로 데일리 중 하나인 tvN E NEWS는 생방송인 데다가 야구와 시간이 겹친다.[20] 2012, 2013년은 사실상 한명재정우영만 뛰었다. 정우영의 퇴사 이후 정병문이 다시 전처럼 자주 중계하고 정용검이 합류한 이후는 좀 나아졌다.[21] 말이 그렇다는 거지, 이걸 정말로 김성주가 뜸을 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PD의 지시를 받아서 적당히 대사의 톤과 길이를 조절하는 것일 뿐이다. '김성주가 뜸을 많이 들인다'는 이야기는, 슈퍼스타K가 중간광고가 존재하는 케이블의 오디션 프로그램인 데다 김성주의 진행이 워낙 자연스럽다보니 일부에서 가지게 된 오해다.[22] 방송에서 포경수술을 한 이후 상처가 덧날까봐 보름 동안 샤워를 하지 않았다는 발언도 했다.[23] 이 방송으로 같은 시기에 출연했던 전 축구선수 안정환과 사적인 친분이 생겼고, 곧 영혼의 콤비가 되었다. 최종적으로 김성주는 안정환에게 단순 방송인이 아닌 MC로써의 가능성을 터주었고, 본인은 친구가 된 안정환의 명성을 훌륭히 소화해내며 환상의 호흡을 보여주며 MBC에서 축구 중계의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 발판이 되었다.[24] 태어날 당시 아버지께서 화국으로 이름을 지어주셨으나 민율로 출생 신고하고 아버지 앞에서는 화국으로 집에서는 민율로 불렀다 한다. 돌잔치도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으로 현수막을 제작했다고 한다.[25] 그때 암울했던 인상이 지금까지 이어져서 아직도 프리선언 당시의 '배신자'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26] 사실 프리선언 직후에도 방송 출연을 못해서 그렇지, 여기저기 기업 행사 MC 등을 보면서(프리 선언 이전에 거의 무상으로 하던 기업에서 꾸준히 불러주었다고 한다.) 이미 아나운서 시절보다 수입은 더 좋았다고 한다.[27] 채널 설명회 당시에도 진행자를 맡았었다.[28] 회당 2~5만 원 정도 받는다.[29] 이 때문에 KBO 포스트시즌 중계를 한명재, 정용검, 정병문 캐스터가 할 수 없게 되기도 했다. 다만, 평창 동계올림픽 때 정병문과 정용검을 차출하는 등 앞뒤가 맞지 않는 행보를 보였다. 다만 캐스터는 보통 남성이 하는데다 현재 MBC 아나운서국에 스포츠방송을 하거나 경험이 있는 아나운서가 소수기때문에 울며겨자먹기인 듯 하다.[30] 물론 김성주의 중계가 큰 인기를 얻는 것도 맞겠지만 당시 김정근의 중계가 큰 혹평을 받았다는 이유가 컸다. 또한 최근 국가대표팀 친선 경기를 많이 중계한 이유도 있다.[31] 축구와 펜싱 중계를 맡았다[32] 아이러니하게도 김정근은 김성주가 MBC 스포츠 캐스터로 돌아간 이후로 맡지 않게 된 TV조선의 스포츠 중계 프리랜서 캐스터로 활동하기 시작했다.중계진 트레이드?[33]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샘 킴이 다급해진 나머지 시제품 토마토 소스를 때려붓고 나서 김성주가 맛을 보고 한 말. 해당 방영분 이후 요리 및 맛집 블로거들에게서 종종 쓰이는 어휘로 자리잡았다.[34] 참고로 당시 제작진이 건네준 큐카드엔 ‘총 773만 1,781표’, ‘집계를 끝내지 못했다’, ‘다음 주 목요일에 우승자를 발표하겠다’ 단 세 줄만 적혀 있었다고 한다.[35] 이것은 스포츠 중계를 해 온 그의 짬밥의 위엄을 나타내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나테이너 전향 이후 한참의 공백기를 겪다 다시 활발하게 활동할 무렵 무릎팍도사에 나왔을 때, 아나운서 시절 중계하던 경기 내용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긴장감 있게 뱉어냈다.[36] 1초 오심으로 유명한 신아람 선수의 준결승전도 중계했다.[37] 또한 KBS의 이재후 아나운서도 김성주와 배기완, 최승돈처럼 비슷하게 중계한 적이 있었지만, 이쪽은 대한민국 선수가 올림픽 개최국인 중국에게 금메달을 강탈당하는 피해를 두 번이나 중계했다. 첫 번째는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양궁의 박성현이 여자 양궁 개인전에서 중국인 관중들의 비매너 소음응원으로 장쥐안쥐안에게 금메달을 강탈당했고, 두 번째는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준결승전에서 황대헌이준서가 영국 심판의 석연치 않는 판정으로 실격당해 런쯔웨이에게 금메달을 내주고 말았다.[38] 힐링캠프에서 아버지 김창경 목사의 편지에 의하면 당시 김성주가 태어나기 전 의사의 오진으로 딸로 판명되어 하마터면 낙태될 뻔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병원에 가려 했으나 아버지가 간신히 말렸다고 한다.[39] 이때 차범근이 현역 K리그 감독 신분으로 특별 해설위원에 초빙되어서 김성주를 캐스터로 직접 지명했다고 한다.[40] 팬에 호일을 제대로 밀착시키지 않았던 데다 설탕을 너무 많이 넣은 것이 화근이었다. 이찬오 셰프는 군고구마 먹고 안 씻고 잔 느낌 이라고 표현했다.[41] 당시 일본에서 실종된 홍덕자 모자를 찾는 소식을 뉴스로 전달하는 장면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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