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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27 07:36:14

조리병

1. 개요2. 기원3. 대한민국 국군4. 타국의 조리병5. 오해6. 출신 인물7. 관련 작품8. 조리병 캐릭터9. 관련 문서

1. 개요

조리병(調)은 군대 병과의 하나로, 군 부대에서 음식을 만드는 임무를 맡는다. 취사병()이라고도 한다.

2. 기원

파일:external/kookbang.dema.mil.kr/YA_NP_20130620_00773717.jpg
함정 취사장에서 해군 조리병들이 부대찌개를 준비하고 있다.
전쟁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지만, '조리' 라는 군 특기는 의외로 생겨난 지 불과 100여 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비교적 최근에 생긴 특기이다. 고대부터 1차대전 이전까지 각국 군대는 식재료만 보급했다. 육군의 사병들은 식사조라는 단위를 구성해서[2] 지급된 그리고 약탈, 서리해온 식재료를 조리해 먹었는데, 식사조에서 밥 잘하는 병사를 시켜서 조리를 시키는게 일반적이였다. 이 조리 당번은 가능하면 각종 근무나 잡일을 면제시켜줬기 때문에 꽤나 인기가 좋았다고. 당시 병사들은 자기 밥할 조리기구를 군장에 메고 다녔어야 했는데 이 조리도구는 전부 다 냄비로 통일이었고[3] 지급된 식재료도 보관기술이 부족했던지라 별로 좋은 상태는 아니었기 때문에, 식사 메뉴는 십중팔구 푹 끓인 스튜였다.

장교들의 경우 개인 사비나 별도의 수당으로 식량을 구입해 당번병이나 민간인 요리사를 고용해 조리해 먹거나 부대에서 운영하는 장교 식당을 이용하고 밥값이 공제되는 식이었다. 후자의 경우 현대에도 유지되고 있다.[4]

그러던 것이 1차대전에는 좁고 물이 고이는 참호라는 환경은 문제가 많았다.[5] 게다가 수십만에 달하는 병력들이 포진해 있는 전선에 모두 돌아갈 정도로 연료가 충분치 않았고, 덜 마른 장작이라도 때우다 연기라도나면 적군의 포격에 노출되기 딱 좋았다.

해군 함정의 경우는, 당번병 등이 있는 장교나 상급 부사관[6]을 제외하면 승조원을 4~8명씩 묶어 식사조를 편성, 1인당 하루 혹은 일주일 등 날짜별로 돌아가며 식사당번을 맡아 식재료를 수령해 취사장에서 조리장[7]의 감독하에 조원 총원의 요리를 만드는 방식이었다. 이를 위해 식사당번은 당번일을 하는 동안 자기 자신의 고유 업무에서 빠져 오직 요리만 했는데, 힘들긴 하지만 당번 몫으로 약간의 식료품을 더 지급받거나 할 수 있어 크게 기피되진 않았다고 한다.

범선 시절엔 화재 위험성 및 식재료의 저장 수단이 부실해 보존식으로 만든 제한된 요리들밖에 할 수 없어 이런 방식이 크게 문제되지 않았으나, 금속으로 배를 만드는 기선 시대가 되고 냉장고의 등장 및 개선된 보급 체계 등을 통해 신선한 식재료의 조달 및 취사 방법의 다양성이 보장되어 식사의 기대치가 올라갔는데, 비전문가의 조리에 따른 식사의 질 유지가 어렵거나 당번일로 승조원들이 수시로 일에서 빠져 함 운용에 지장을 주는 등의 문제가 대두되었다.

결국 각 군 지도부는 기존 각자 알아서 해먹는 방식을 버리고 중대 또는 대대단위로 안전한 후방참호에서 한꺼번에 조리한 음식을 전방으로 추진하게 된다. 그래서, 전문적으로 대량의 음식을 조리하는 이들을 지정하게 된다.

한때 서구의 군대 특히 육군에서는 조리병을 천시하는 문화가 있었다. 후방의 안전한 보직이라는 오해와 과거 대항해시대 조리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식재료를 빼돌려 배를 불리는 놈들이라는 오해 때문이었다. 이는 해군도 마찬가지여서 2차대전 당시 흑인은 해군에 복무하더라도 조리병 정도만 가능했다. 영화 진주만에선 감자 깎는 흑인 조리병이 서브주인공으로 나온다. 허나 현재는 인식이 바뀌어서 그렇지 않다. 물론 요즘도 병영 내 징벌 대상자에게 조리 보조를 맡기는 처벌을 내리고 있기는 한데, 이는 자유시간을 박탈하기 위해서 시키는 것에 가깝다.

전시에 조리병은 전투에 임하더라도 후방에 근무한다. 소총수들이 적진 앞 돌격할 때에 조리병들은 중대본부나 대대본부 쯤에 있다. 조리는 연기가 발생하고, 조리장은 방어가 취약하다. 조리장이 없을 경우 병들의 전투력의 유지가 어려울 수가 있다.

3. 대한민국 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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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타국의 조리병

4.1. 미군

미 육군 조리병 후반기교육
파일:external/thumbnail.egloos.net/c0037926_51728be18a193.jpg
미합중국 육군 군사특기 기호로는 92G(나인티 투 골프), 해군에선 Culinary Specialist(CS)로 불린다.

도널드 럼즈펠드 장관 시절에 민영화 바람이 불어 비전투 분야는 최대한 민간 기업에 위탁하고 군은 전투병 위주의 조직으로 재편 하였으나, 그리해도 훈련소와 함정 등을 비롯하여 결국 남긴 남았다. 특히, 해군, 해안 경비대 함정같은 곳에선 민간 조리원을 쓰기 뭐하므로 조리병들이 거의 100% 밥을 한다.

4.2. 인민해방군

파일:external/pic.big5.anhuinews.com/1352142_866876.jpg
중국에서는 여전히 취사병(炊事兵)이라고 부른다. 중국의 국방비가 세계 2위 수준까지 치솟은데 비해 중국의 인구가 굉장히 많아 인건비는 굉장히 싸기 때문에 식사의 질이 비교적 좋은 편이다.

다만 중국 역시도 군 수뇌부의 부정부패가 상상을 초월하고, 식사의 재료들도 저질 불량식품이 끼는 경우가 많아서 편차가 굉장히 심한 편이다.

4.3. 자위대

파일:external/www.mod.go.jp/img06.jpg
항공자위대의 급양원(給養員)들.

조리병에 해당하는 인원들을 급양원이라고 부르는데, '병(兵)'이 아닌건 자위대가 공식적으로는 군대가 아닌 준군사조직이기 때문이다. 육상자위대는 부대 내 육사(陸士, 육군 병에 해당하는 자위관들)들이 돌아가며 몇 개월간 식당에 배치되어 조리를 담당하고, 이를 감독하는 육조(陸曹, 육군 부사관에 해당하는 자위관들)들은 별도의 조리 관련 후반기교육을 받은 이들이 맡는다. 해상자위대의 경우 사주장(司厨長)이라고 좀 더 요리를 잘 하는 급양원을 배치한다. 수상함이나 잠수함의 생활이 육상보다는 열악할 수 밖에 없기에, 식사의 질이 굉장히 중요시되기 때문이다. 그 옛 일본 해군조차도 수병들의 식생활에는 대단히 신경써서 정성을 쏟았고, 전함 등 일부 대형함들은 아예 장교들이 매월 비용을 각출해 민간 조리원을 고용하여 보다 양질의 식사를 즐기기도 했다. 특히 일본식 카레는 해군의 전용 식단이었던 카레에서 기원했을 정도다. 이건 어느 나라든 해군 함정 근무자가 타군 및 해군 내 육상 부대보다 좋은 식사를 급양 받기에 여기만 특출난 건 아니다.

5.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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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출신 인물

7. 관련 작품

8. 조리병 캐릭터

※ 병이 아니라 장교 내지는 부사관, 대한민국 군무원이라도 속성이 얼추 맞으면 포함시킴.

9. 관련 문서


[1] 나폴레옹은 모든 전쟁에서 언제나 보급을 중시했으며, 그의 인생 최대의 패착인 러시아 정벌에서는 인류 역사상 가장 촘촘하고 세밀하며 견고하고 일사불란한 보급망이 구축되었다. 이 보급망의 정밀도는 고구려-수 전쟁에서 200만을 동원해 113만 대군을 먹여살렸던 수나라의 보급망이나 90만 인구의 촉한이 500만 인구의 조위를 대적하게 했던 제갈공명의 보급망은 우습게 능가했으며, 그보다 더 나아가 1차 세계대전 때의 보급망에 필적하는 수준이었다. 실력으로 출세한 만큼 나폴레옹은 식량보급에 신경을 크게 쓰는 장교였으나 항상 보급이 제대로 이뤄지지는 않았는데, 식량을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는건 진군속도를 대폭 늦추므로 군대에서 좋아하질 않았고. 사실 프랑스 혁명기의 식량 생산량이 파탄났기 때문에 줄래야 줄 식량 자체가 없었다. 안그래도 혼란과 흉년때문에 식량이 모자란 판에 젊은이들을 군대로 다 끌고 가는데 무슨수로 식량을 생산한단 말인가. 근위대가 아니면 배를 쫄쫄 굶는건 당연하다 싶을 정도. 심지어 병조림의 보급 전에는 고기 배분 등도 쉽지 않아 병사들이 먹는 식단이 사실상 수프 하나로 귀결되었다.[2] 경우에 따라 달랐지만 대강 열명 정도로 구성되었다. 과거에는 보병 소부대 개념이 희박했기 때문에, 경비 등의 이유로 극소량의 보병을 차출할때는 이 식사조 단위로 차출하곤 했다.[3] 각 병사별로 프라이팬이나 각종 조리도구를 분담해서 메고 다니면 되지 않나 싶지만, 그랬다간 그 병사가 사망하면 그 식사조엔 그 조리기구가 사라지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그나마 다양한 조리에 동원할 수 있는 냄비로 통일.[4] 지금과는 다르게 장교가 병사들이 먹는 것을 같이 먹거나 혹은 겸상하는 것(또는 병사들이 보는 앞에서 식사를 하든지)은 감히 상상할 수 없던 시절로 이것이 목격되면 공식적인 문책사유로 인정되고 해당 인물의 경력에 치명타를 입든지 왕따가 되던 시절이었다. 현대의 경우에 부대 여건이 안 좋은 곳에선 장교들도 사병들의 식단을 공유하고 식당도 같지만 장교 좌석은 따로 밀집되어있는 형태가 대부분이다.[5] 그러나 근현대 군대가 그렇듯, 하루 세끼 보장은 커녕 셀프 조리는 1차대전 종전까지는 물론이거니와 2차 대전까지도 이어졌다. 그나마 주식인 고기는 콘비프 같은 통조림을 이용했고 보급받은 생야채와 연기가 나지 않는 연료를 때워 반합에서 조리해 먹었다.[6] 현대에도 해군은 장교와 CPO들은 각각 사관실과 CPO용 식당(소형함은 제외)을 두고 그곳에서 당번병들의 시중하에 밥을 먹는다.[7] 당시 조리장은 직접 식사를 만드는 일 보다는 범선에서 민감한 화재나 식사당번들의 안전사고, 불씨 유지 등의 업무에 치중했다.[8] 영화상 한정. 현실에서 실미도 북파공작원들은 사관후보생 대접을 받았다. 이들을 가르친 교관들도 부사관이 아니라 장교 대접을 받았다.[9] 영화 후반부를 보면 대대원들과 함께 폭동에 일조하며 탈출까지 감행한다. 그 때는 멀쩡하게 걸어다니는 것으로 봐선 영구적인 장애가 아닌 회복이 가능한 부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10] 시즌 3 중 이규진에게 맛 좋은 해물 라면을 끓여 주는 장면에서 언급된다.[11] 설날 이벤트 스토리에서 자신이 청년 시절에 취사병이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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