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외교공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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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다 순. 대표부는 가장 마지막에 기재. 명예영사관은 기재하지 아니함. | }}}}}}}}} |
<colbgcolor=#ee1c25><colcolor=#ffff00> 중화인민공화국주대한민국대사관 中华人民共和国驻大韩民国大使馆[1] | |
주한중국대사관 전경[2] | |
위치 |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2길 27 |
업무 시간 | 월~금요일: 오전 9:00~오후 5:30 |
상급기관 | 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 |
공관장 | 다이빙(戴兵)[내정] |
링크 | [4] | | |
[clearfix]
1. 개요
중국이 대한민국에 설치한 외교공관. 본관은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2길 27 (명동2가)에 있다.2. 역사
2.1. 공관의 역사
주한중국대사관의 역사는 1992년 한중수교를 기점으로 시작된다. 공식적으로는 중화민국과 단교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인정하는 것이지만 실질적으로 수교 시점을 1992년으로 잡는다. 그래서 부지만 주한청국공사관과 주한 중화민국 대사관의 부지를 쓰는 것이지 실제로는 이 둘과 관계가 없다.1992년 한중수교 및 중화민국과의 단교 이후 중화인민공화국은 주한청국공사관과 주한 중화민국 대사관 부지를 취득했다. 그러나 곧장 쓰지는 않고 용산구에 임시 대사관을 잠시 마련하여 6개월간 그곳을 사용했다. 이후 여러가지 정돈을 미리 한 뒤, 1993년 2월부터 해당 건물을 대사관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한중수교 이후 중국과의 교류가 크게 증가하자 기존 대사관 건물이 굉장히 좁아져 2002년부터 잠시 종로구 효자동과 남산로 이전하고 명동 대사관 건물은 비어 있었다.
중국에서는 원래 있던 건물을 허물고 새 대사관저를 지으려고 했는데 당시 양국 간 문제로 인해 착공하지는 못 하고 있다가 2010년에 드디어 서울특별시청의 승인을 받아 재건축을 시작했다. 이 대사관은 2013년에 완공되었고, 동시에 종로구 효자동으로 이사간 중국 대사관도 다시 명동으로 돌아왔다. 다만 영사부는 여전히 남산에 있다.#
2021년 6월 20일 주광주 중국 총영사관 소속 영사가 만취상태인 혈중알콜농도 0.119%의 음주운전으로 적발되어, 입건 직후에 공무수행을 이유로 음주운전 면책특권을 주장하다가 경찰 측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공무에만 면책특권을 적용받는 '영사관계에 대한 비엔나 협약'에 의하여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되었다.#[5]
이 이후 해당 영사는 중국으로 송환되었으며, 주한일본대사관도 공사가 문재인 대통령이 자위를 한다는 망언을 하고 난 뒤 본국으로 송환되어 쌍으로 나라 망신을 시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2.2. 공관 부지의 역사
자세한 내용은 주한청국공사관 문서 참고하십시오.자세한 내용은 주한국타이베이대표부 문서 참고하십시오.
주한중국대사관의 부지는 주한청국공사관과 주한 중화민국 대사관의 부지로 1992년 한중수교 당시 중화인민공화국의 요구로 받아낸 곳이다. 이 곳은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이후로 주한청국공사관과 주한 중화민국 대사관으로 역할을 했으며, 주한 중화민국 대사관 철수 당시 기밀 문서 소각, 장제스 동상 이송 등이 이루어졌다. 2013년 재건축 이후 중국대사관이 입주했다.
3. 영사관
부산 해운대구, 광주 남구, 제주 제주시에 총영사관이 있다.[6]- 중화인민공화국 주 제주총영사관: 제주 제주시 청사로1길 10 (도남동)
- 관할지역: 제주 관할
- 중국주서울관광사무소: 서울 중구 퇴계로 97, 고려대연각타워 1501호
- 주 부산 경제상무참사처: 부산 해운대구 해운대로394번길 25 (우동)
4. 대사
2024년 11월, 신임 주한중국대사로 다이빙(戴兵) 전 주유엔 중국 부대사가 내정되었다.#4.1. 역대 대사
중화인민공화국 재대한민국 특명전권대사- 장팅옌 장정연(张庭延) 1992~1998
- 우다웨이 무대위(武大伟) 1998~2001 [9]
- 리빈 이빈(李滨) 2001~2005
- 닝푸쿠이 영부괴(宁赋魁) 2005~2008
- 청융화 정영화(程永华) 2008~2010
- 장신썬 장흠삼(张鑫森) 2010~2013
- 추궈훙 추국홍(邱國洪) 2014~2020[10]
- 싱하이밍 형해명(邢海明) 2020~2024
- 다이빙 대병(戴兵) 2024~
4.2. 국방무관
국방무관으로 소장이 온다. 수행무관으로 교관급 장교들이 온다. 2021년 기준 왕징궈(王京国) 육군소장5. 기타
대사관 건너편에 위치한 옛 중화민국 대사관 시절 삼민주의 청년회 건물에는 국민당 휘장이 그대로 남아있다. 건너편의 국기게양대는 한동안 청천백일만지홍기를 게양하고 있었겠으나 최근 30여 년 동안 아무것도 게양하지 않고 있다. 서울의 땅에서 길 하나를 두고 양안이 마주보고 있는 형국.
명목상으로 중국의 영토로 간주되는 대만과 중국의 특별행정구인 홍콩, 마카오 주민들도 주한중국대사관의 영사부나 산하 총영사관에서 영사 업무를 받을 수 있다. 허나 실제로 영사업무를 보기 위해 이곳을 방문하는 해당 지역 주민들은 별로 없다.[11]
중화민국 대사관 시절부터 이 대사관 주변 거리에는 서울에서 유명한 수입서적 딜러가 밀집되어 있어서 각종 분야에서 원서를 찾는 이들의 요람이 되었다. 또한 한국의 1세대 오타쿠(수도권 거주자 한정)들이 일본 서브컬쳐 관련해서 원서를 찾으러 가는 루트이기도 했다.
대사관 인근에는 중화민국 대사관 시절에 지어진 부속시설들이 몇 군데 남아 있기도 하다. 대사관 뒤의 한성화교소학교와 대사관 길 건너편의 옛 국민당 한국 지부 건물이 대표적이다. 한성화교소학교는 중화민국 측에서 아직도 운영 중인데 대한민국과 중화민국 간의 외교관계가 단절된 이후 자국 국기를 외부에 게양하고 있지 않으며 국민당 옛 청사는 카페로 이용된다. #
중국의 탈북자 강제북송에 항의하는 탈북자 관련 단체들의 시위가 이 대사관 앞에서 종종 열린다.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이 격화되면서 한국 내에서 홍콩 민주화 세력을 지지하는 시위자들이 홍콩 경찰의 폭력적 시위 진압에 대해 항의를 하러 자주 가는 장소가 되기도 했다.
6. 관련 문서
[1] 외교공관의 이름은 보통 주대한민국 ○○ 대사관" 형태인 데 반해 중국 대사관은 순서가 특이하다.[2] 청사는 원래 중화민국이 쓰던 걸 그대로 쓰다가 업무량 증가 등으로 인해 대규모로 재건축했다. 중화민국 시절에 화교는 많아야 5만명 남짓이었지만 지금 한국에는 중국인이 100만명 정도다. 그리고 옛 청사의 모습은 한국-대만 관계 문서를 참고하길.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2길 27에 위치한다. 비자나 여권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영사부는 이곳이 아닌 다른 곳(중구 퇴계로18길 103)에 위치한다.[내정] [4] 공식홈페이지는 한국어 페이지 관리가 2017년에 멈춰 있는데 경제상무처, 중국문화원이 더 업데이트가 잘 된다. 그리고 이전 도메인이었던 chinaemb.or.kr은 링크가 죄다 명함천사라는 회사에 먹혔다.[5] 실제로 지자체, 정부기관에서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불가피하게 공무 목적 행사를 할 경우 물과 무알콜 음료만 제공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6] 이 중 주 부산 총영사관은 과거 중화민국 영사관이었던 것을 한중수교 때 접수한 후 2000년대에 옮긴 것이고 주 광주 총영사관과 주 제주 총영사관은 처음부터 중화인민공화국이 설치한 것이다. 참고로 영사관에서는 비자 발급을 해주지 않으므로 비자 발급을 원한다면 밑에 있는 비자센터에서 발급을 해야 된다.[7] 위치가 수영로교회 옆이고 개신교계는 종교와 사상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중국, 중국은 유학생들까지 전도하려는 종교계에 적대적인 시각을 가지다 보니 서로가 서로를 좋게 보지 못하고 있다.[8] 2019년 12월 5일에 광주 시민 단체가 전남대 인문대학에서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과 관련해서 재한 홍콩인과의 간담회를 하려고 했으나, 이쪽에서 항의해서 취소를 당한 논란이 있다.[9] 2004년부터 2017년까지 6자회담 중국측 대표을 맡았다.[10] 2014년 2월 부터 2020년 1월 30일까지 근무했던 최장수 대사 이다.[11] 대만인들의 경우 주한국대만대표부가 별도로 있기에 굳이 이곳으로 올 필요를 못 느끼며 홍콩과 마카오 주민들은 친 중국 본토 성향이거나 중국 본토 출신이 아니면 이곳에 오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는 한국에 홍콩, 마카오 영사관이 없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