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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Richard Nixon's 1972 visit to China / 1972年尼克松访华1972년 2월 21일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중국의 마오쩌둥 주석과 만나 회담한 일.
닉슨은 본래 반공주의자로 유명했고 때문에 당시 닉슨이 중국을 직접 방문해서 마오쩌둥을 만난 것은 세계적으로 큰 화제가 되었다. 이로 인해 오늘날까지 "닉슨, 중국에 가다"(Nixon goes to China)라는 말이 '이념적 적대세력과의 화해 혹은 그에 버금가는 정책 전환'을 가리키는 관용어구가 되었다.[1]
2. 배경
1946년의 국공내전 재개와 1950년의 6.25 전쟁을 치르면서 미중관계는 냉랭해졌지만 1969년 리처드 닉슨이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후 미중관계는 호의적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내비쳤다. 미국은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베트남 전쟁의 수렁에서 빠져 나올 돌파구를 찾으려고 했고 중공은 50년대 말 중소결렬과 1969년 중국-소련 국경분쟁으로 인해 소련과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고립주의를 타파하고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소련에 대한 견제 장치로 활용하고자 했다.1971년 3월 28일부터 4월 7일까지 일본 나고야에서 제31회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가 열렸는데 일본은 당시 세계 최강이었던 중국을 초청하였고 중국은 일부 관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회에 참가하였다. 대회가 끝날 무렵 중국선수단은 미국 선수단과 상호 교류를 제안하였고, 미국이 이에 동의하면서 1971년 4월 10일 미국 선수단 15명과 기자 4명이 베이징을 공식 방문하였다, 베이징에 도착한 미국 탁구 대표단은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탁구 경기를 가졌고 이는 미국과 중국 관계에 대한 양국의 분위기를 크게 호전시켰다. 두 나라는 상호 교환 방문 경기를 가졌는데 이른바 ‘핑퐁 외교’였다.[2]
닉슨의 중국 방문 길을 연 것은 헨리 키신저였다. 1971년 7월 파키스탄을 거쳐 7월 9일 중국을 비밀리에 방문한 헨리 키신저는 저우언라이 공산당 총리와 이틀 동안 베이징에서 회담을 하였다. 닉슨이 중국 방문을 희망했다는 사실을 안 저우언라이 총리는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를 대표해 닉슨 대통령이 1972년 5월 이전 적당한 시기에 중국을 방문해 달라고 초청하였고 이에 1971년 7월 15일 닉슨은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통해 1972년 5월까지는 베이징에 방문할 것을 발표하였다.
3. 전개
1972년 2월 21일 닉슨을 비롯하여 키신저 국무장관 등 14명의 방중 일행을 태운 대통령 전용기가 베이징 공항에 도착하였다. 공항에는 저우언라이 총리의 환영인사와 의장대의 간단한 의전행사만 있었으며 베이징 댜오위타이국빈관을 향해 차량행렬이 지나갈 때도 천안문 광장과 베이징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이날 오후 닉슨은 중난하이로 마오쩌둥을 만나러 갔는데 약간 초췌한 모습의 마오는 닉슨을 반갑게 맞았다. “반동집단이 미국과의 공식 접촉을 강력히 반대했다”며 환영에 신중했던 점을 설명한 마오는 “미 대선기간 내내 당신이 투표에서 이기리라고 확신하고 있었다”며 덕담을 건넸으며 닉슨은 “한 국가를 움직였고 세계를 변화시켰다”고 마오를 추켜세웠다. 이후 미국은 완벽한 대 소련 봉쇄정책을 완성했다.미·중 협상자들은 긴 시간의 비밀회의를 통해 타이완의 지위 등 중요한 외교적 사안을 다듬었다. 그 결과 2월 28일 미·중은 ‘상하이 공동선언’을 통해 ▲영토와 주권의 상호존중 ▲상호불가침 ▲내정불간섭 ▲평등호혜 ▲평화공존 등 평화 5원칙을 천명한 뒤 관계 정상화 합의의 상징으로 판다 한 쌍과 사향소를 교환했다.
4. 결과
이를 계기로 중공과 미국은 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마련했다. 미국은 중국과 손을 잡고 소련을 견제할 수 있게 되었고 중공도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던 국제적 고립을 버렸으며 1971년에는 UN 총회에서 중국으로서의 대표권을 중화인민공화국에게 부여하는 UN총회 제2758호 결의안이 통과되어 상임이사국이 될 수 있었다.[3]한국에게 있어서 닉슨-마오쩌둥 회담은 10월 유신의 배경이 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에게 있어서 남베트남의 패망과 미국의 노선 변경, 이 회담은 미국이 공산화를 방치하고 이 국제환경을 타파하기 위해선 자신에게 강력한 권력이 있어야 한다는 명분을 제공한 것이다. 실제로 10월 유신의 특별 선언문 초고에는 닉슨 대통령의 중공 방문으로 이런 특별한 조치를 취했다는 문구가 있었으나 미국의 강한 반발로 삭제됐다.[4]
그 때문에 박정희 대통령은 최종수정된 특별 선언문을 읽어본 후 骨がないこんにゃくだ(뼈가 없는 곤약이다)라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못 했다며 불만을 토로한 셈이다.
5. 기타
닉슨이 중국을 방문한 직후인 21일 인민대회당에서 환영만찬이 열렸다. 당시 건배주는 마오타이 주였는데 닉슨의 보좌관들은 이 술이 생각보다 독하다며 건배를 말렸지만 닉슨은 마오쩌둥의 제의를 받아들여서 술을 들이켰고 마오쩌둥이 직접 쓴 시의 구절을 인용하면서 분위기를 풀어나갔다. 다만 역시 술이 독하기는 했는지 마신 후 눈물을 살짝 찔끔거렸다고 한다.당시 만찬장에 올려진 음식들은 후대의 호사가들의 상상과는 달리 의외로 독특한 면은 덜했다고 한다. 특히 중국 요리에서 등장할 거라고 생각할 법한 기괴한 식재료는 거의 쓰지 않고 새우, 와인 소스를 얹은 생선 요리, 파인애플을 곁들인 오리고기 구이, 북경 오리 구이 등 미국인들도 편한 마음으로 먹을 수 있는 종류들로 내놓았다고 한다. 사실 중국에서도 그 기괴한 음식들은 특정 지역에서나 먹는 향토음식이거나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들이라 정찬에서 등장하는 요리가 아니다. 그나마(?) 기괴한 식재료라면 닉슨이 보고 놀란 튀긴 닭 모래주머니 정도긴 하지만 미국 남부에서도 모래주머니는 즐겨 먹는 재료인 만큼 그렇게 낯선 음식은 아니었다. 뉴욕타임즈 기사[5] 본래 이런 식으로 손님을 배려하는 것은 외교적 관례, 아니 일상적인 예의 면에서도 매우 자연스러운 행위인 만큼 딱히 특별한 일이 아니긴 하다.
현대음악 작곡가 존 애덤스는 이 회담을 <중국에 간 닉슨(Nixon in China)>이라는 오페라로 제작하였다. 1987년에 초연된 이 작품은 현대 오페라의 화제작으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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