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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34:38

미군 vs 소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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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합중국군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군

1. 개요2. 군사적 비교
2.1. 시기별 비교: NATO바르샤바 조약기구2.2. 서방진영과 동구진영
2.2.1. 미국NATO: 군별 비교2.2.2. 소련바르샤바 조약기구: 군별 비교2.2.3. 중립국: 군별 비교
2.3. 만약 전쟁이 일어났다면?
2.3.1. 전면적 핵사용을 전제로 한 공세
2.3.1.1. 드롭샷 작전2.3.1.2. 단일통합작전계획2.3.1.3. 라인 강까지 7일 연습
2.3.2. 핵탄두 사용을 배제한 재래식 전쟁
3. 경제적 비교4. 전략적 비교

[clearfix]

1. 개요

"미국미군소련소련군이 싸운다면 누가 이겼을까?"라는 것을 주제로 한 문서이다.

두 나라는 냉전 시대의 초강대국으로 군림하며 긴장관계를 유지했지만, 전면전을 벌인 적은 없다. 실제 역사 속에서는 미국 공군소련 공군6.25 전쟁 초기에 맞붙기는 했지만, 양쪽 모두 제3차 세계 대전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소련 공군은 평양 이북에서만 정체를 숨기고 비공식적으로 참전했고 당시 미국도 이들을 일부러 모른 척 했다. 전쟁 중반부터 삼팔선 근처에서 전선이 형성되자 미국과의 전쟁을 두려워한 소련 공군은 조선인민군을 대신해 유엔군과 맞붙던 중국 인민지원군을 돕지도 않았다. 그리고 이후로는 이렇게 간접적으로 맞붙는 일도 거의 없었고 전쟁물자를 지원하는 대리전만 서로 거듭하다 결국 냉전이 끝났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서의 떡밥은 결국 실현이 불가능한 상상의 영역이 되었다.

냉전 시대의 전면전은 언제나 NATO바르샤바 조약 기구 가맹국들 전체의 전쟁을 상정하고 있고, 미군소련군이 단독으로 싸울 일은 없으므로, 본 문서의 이름인 '미군 vs 소련군'은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는 잘못된 이름이다. 그러나 NATO의 주력은 어디까지나 미군이고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주력 역시 어디까지나 소련군이었다. 뿐만 아니라 NATO는 기본적으로 미국의 통제를 받는 조직이고 바르샤바 조약기구 역시 소련의 통제를 받는 조직이었던 관계로 나무위키에서는 그러한 역사적 사실을 감안하여 편의상 본 문서의 이름을 'NATO vs WTO'가 아닌 '미군 vs 소련군'으로 정하고 있다.

실제로 단순히 군사적인 면만 보면 현재의 그 어떤 것보다도 흥미 가 있으며, 나토군바르샤바 조약 기구군은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두 군사집단이었다. 또한 가장 확실하게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는 군들이며, 지금도 미국과 러시아의 전쟁은 세계멸망과 동급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이렇게 지구 군대 역사를 통틀어 유일하게 미국과 군사적으로 비등비등했던 국가란 인식이 있어서인지, 관련 2차 창작물도 상당히 많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두 국가가 대놓고 맞붙어 싸운 적은 없지만, 한 국가가 어떤 전쟁에 개입하면 다른 한 쪽에서 지원하거나 몰래 병력을 투입하거나 하여 대리전이 벌어졌다. 미국이 직접 참전한 6.25 전쟁베트남 전쟁에서 미군은 소련이 만든 전차, 무기, 전투기들을 상대해야 했고, 수만 명 단위의 소련군이 실제 참전했었다. 소련이 직접 참전한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소련군은 미제 무기들을 상대해야 했었고, 무자헤딘군은 미군에게 훈련을 받을 정도였다.

그러나 정말 미군과 소련군의 전쟁이 발발했다면, 설사 재래식 전쟁이었더라도 불리한 쪽은 핵탄두를 사용해 단계적 확전을 일으켜 전면적인 핵전쟁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고, 이 경우에는 인류의 절멸 혹은 절멸은 면하더라도 문명의 멸망을 가져왔을 것이라는 게 과학자들의 예상이었다.[1] 폭발에서 살아남은 사람들도 대규모 연소로 생긴 분진이 태양 에너지를 막아 생길 핵겨울이나, 심각하게 지표면을 덮을 방사능 물질, 그리고 수백 년 후 핵겨울이 끝나더라도 이후에 이미 오존층은 파괴되어 지상에서 인류는 생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냉전 피크(1980년대)에 미국소련핵탄두 수는 대략 32,000기, 45,000기였으며, 현재 미국러시아는 각각 6,500기, 7,000기씩을 가지고 있다.[2] 그럼에도 이는 수백 기만을 가지고 있는 중국이나 영국프랑스 같은 2류 핵보유국과는 넘사벽인 셈이다. 일단 냉전 당시의 양은 인류를 7번 멸망시킬 수 있는 양이라고 추정되며, 지금 보유한 양도 2-3번은 문제없을 지경이다.

2. 군사적 비교

사실상 이 이야기가 아직도 유지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다.

2.1. 시기별 비교: NATO바르샤바 조약기구

2.1.1. 1959년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70px-1959_NATO_and_WP_troop_strengths_in_Europe.svg.png

2.1.2. 1973년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70px-1973_NATO_and_WP_troop_strengths_in_Europe.svg.png

2.2. 서방진영과 동구진영

2.2.1. 미국NATO: 군별 비교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NATO군/편제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붉은 폭풍의 배경이 되는 1980년대 초반, 보다 정확히는 위기 의식이 극에 달했던 1970년~1980년 당시 기준으로 양군의 지상전력을 비교하고자 한다.

정확한 해당 소스를 통해 크게 독일이 중심이 되는 중부전선과 발칸 반도 일대가 중심이 되는 남부전선으로 유럽을 분할하며, 증원이 아닌 즉응 가능성을 가진 부대 위주로 서술할 것이다. 즉 유럽 대륙 내에 당장 주둔하고 있는 부대를 중심으로 서술한다. 다만 중부유럽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스페인군이나 포르투갈군, 다른 NATO 국가들과 달리 홀로 북부유럽에 떨어진 노르웨이군 등은 생략했다.[3]

나토의 군사적 편제는 NORTHAGCENTAG 집단군으로 기본적으로 나누어진다.

NATO의 국가들은 사실상 2차 대전의 참전국으로서 미국 다음으로 전 세계적 우위를 점하는 국가였고, 1차 대전 이전의 제국주의 시기에도 엄연히 강대국이던 국가들이었으며, 특히 영국과 프랑스는 이미 100년 전에 미국과 소련처럼 전세계를 반으로 갈라먹던 국가였다. 따라서 아무리 비교해도 동유럽바르샤바 조약기구 국가들과는 궤를 달리한다. 그래서인지 NATO바르샤바 조약기구처럼 일방적으로 미국이 감 놔라 대추 놔라 한다고 놓는 국가들은 아니었으며, 2차 대전의 후유증으로 그래도 알아서 조금씩 기긴 기어야 하지만 영국프랑스의 경우 독자적인 핵무장까지 이룩했던 국가들이었다. 서독은 패전국이었지만, 사실상 유럽최전방이었기 때문에 상당한 수준의 군사력을 갖고 있었다.

다만 이탈리아의 경우 분명 상당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위의 전력비에 포함하지 않는데, 이는 이탈리아 공산당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이탈리아 특유의 정치 상황을 고려한 것이며, 실제로도 전시 이탈리아군은 즉응하는 임무가 아닌 국가 내부 안정 및 전선 증원에 중점을 두는 역할을 맡았다. 이탈리아군이 너무 형편없어 나토군 총계에서 뺐다는 소리도 있지만, 900대의 레오파르트1 전차와 300대의 M60 패튼을 보유한 군대가 전력이 되지 않을 리가 없지 않은가. 물론 근대 이후의 역사만 본다면 전력에 의구심이 들 수도 있긴 하겠지만 이 이야기 대다수는 근거가 없는 낭설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폴고레 공수사단 등 열악한 군사 장비의 한계를 넘어 맹활약하던 이탈리아 군인들도 많았다.[16]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NATO는 동구권의 압도적 숫적 우위, 특히 무지막지한 기계화부대의 진격을 MLRS로 대표되는 압도적인 화력으로 지연 및 섬멸하려 하였다. 여기에 독일군영국군, 미군이 그 화력의 엄호를 받으며 바르샤바 조약군의 주력을 섬멸, 프랑스군 등 직접적으로 주력이 초기에 노출되지 않는 후속 부대의 증원을 통해 최종적인 지상전에서의 승리를 얻어내려 했을 공산이 높다. 간혹 이 시기의 NATO가 소련의 수적 우위를 상쇄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전술핵을 운용했다는 소리가 있는데, 이는 시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괴담이라고 할 수 있다. 80년대의 유럽 전선은 재래전으로 포커스가 이동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70년대 핵 균형이 성립해 양측 모두 MAD능력을 갖추게 된 이래, 전술핵 사용은 에스컬레이션을 불러일으켜 전면핵전쟁에 의한 상호 공멸로 끝날 가능성이 커졌다. 이에 따라 비핵 재래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증대되고 재래억지나 재래전력 균형이 국제안보연구와 군사학의 주요 화두로 떠올랐다. 자연히 군의 작전계획과 전력발전 역시 재래전에 주목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공지 전 교리 개발이나 소련 종심 전투 교리의 부활 같은 작전술에 대한 강조가 이루어진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런 나토도 선제핵공격 계획을 수립하긴 했다.

해군력의 경우, NATO에는 미국이 있으므로 두말 안해도 잔소리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의 강력한 전력을 갖추고 있었다. 특히 해군에서의 전력비는 잠수함을 제외하면 현저한 차이가 있었다. 게다가 미국을 제외하더라도 영국, 프랑스는 전통적인 해군 강국이고 노르웨이, 네덜란드 등도 해군 전력 면에서 무시할 수 없는 위치였다. 반면 공산권은 소련을 제외하면 제대로 된 해군력 자체가 없다시피 했다. 공산권의 다른 축인 중화인민공화국 역시 냉전 시기에는 해군력이 미약한 수준이었다.

이외에도 미국과 영국의 동맹국들인 호주와 뉴질랜드, 말레이시아, 싱가포르가 참전하고, 미국과의 방위 협정에 따라 일본의 해상/항공전력과 한국의 지상군 전력이 극동에서 가세할 경우 소련은 다중 전선을 강요받게 될 수밖에 없었다.

참고로 지금도 그렇지만 이 당시 한국군의 역할은 북한, 중공, 소련의 대규모 육군 물량이 일본에 상륙하지 못하게 한반도 내에서 차단시키는 것이었고 먼저 공격을 한다는 건 무리였다. 80년대 전까진 경제력이 미약해서 육군에 집중적으로 투자해도 남한 본토 방어하기도 벅차서 서부전선은 미 육군이 맡고 동부전선은 한국군이 맡았다. 80년대부터 중공군한텐 질적으로 북한군한텐 양적, 질적 모두 추월하면서부터 소련 붕괴 직전까진 육군만 봤을 때 이들 육군의 공세를 막고 북한까지는 공세를 취할 정도는 되었다.

2.2.2. 소련바르샤바 조약기구: 군별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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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전차만 놓고 비교하자면 1:2를 넘는 수다. 게다가 특정 전역에서의 압도적 우위를 통해 전선의 돌파 및 전과 확대를 지향하는 소련의 지상전 교리를 감안하면 이는 순간적으로 1:5~1:10까지 벌어질 여지가 있는 정도.

NATO 국가들이 엄연한 2차 세계대전 참전국에 전세대 슈퍼파워였다면, 동유럽 국가들은 2~3류국에 독소전쟁의 최전방이었다. 즉, NATO 국가들처럼 회원국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소련위성국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국력 역시 NATO 회원국들 비교해서 낮았다. 하지만 NATO와 한번 붙어볼 정도의 군사력은 갖고 있었다. 모두 그 지역에 한해서는 군사강국으로 평가받는 곳들이라 NATO군도 이들을 그저 만만하게 보지만은 않았다.

주로 이들은 소련군식 교리를 채택하고 실제로 통제도 거의 소련군이 일방적으로 하고 있었으며, 소련군식 교리 아니랄까봐 지상군이 상당히 강하고 숫자도 많았다. 유일한 예외는 동독인데, 다른 나라는 해당 군대가 얻어맞으면서 버티고 있을 때 소련군이 취약점을 파고 들어 쳐들어가는 방식이었는데 동독은 정 반대다. 서독군에게 동독군이 무저항으로 투항할 것을 우려한 정치적 안배라는 이야기도 있고...

어쨌든 전쟁이 벌어졌다면 위협이 됐을 거라는 건 분명하다.

2.2.3. 중립국: 군별 비교


표면 상으론 NATO바르샤바 조약기구 둘 다 가상의 적으로 상정하는 국가들이었지만 실질적으로 친 NATO 국가들로 NATO의 무기들을 도입하고 군사 훈련을 같이 수행하기도 했다.[17] 최전선에서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침범에 대비하기 위해 대규모 상비군과 예비군을 운용했고, 특히 오스트리아와 스웨덴은 건실한 자국산 무기체계들도 개발해 운용했다. 그러나 이 국가들은 법적으로 그 누구의 편도 아니라서 인접국 전체가 잠재적 적국이기에, 각자 사정에 맞는 독자적인 교리를 채택하여 군 조직을 이뤘다보니 서구권 군대의 편성과 동구권 군대의 편성과는 다소 괴리가 있다.[18] 소련의 핵공격에 대비해 전국토가 높은 수준으로 요새화되었으며 핵공격에 매우 취약한 서유럽과 미국의 대도시들보다 생존성이 높다고 평가 받았다.

2.3. 만약 전쟁이 일어났다면?

2.3.1. 전면적 핵사용을 전제로 한 공세

2.3.1.1. 드롭샷 작전
2.3.1.2. 단일통합작전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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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3. 라인 강까지 7일 연습
폴란드에서 만들어진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작전계획에 대한 가상 시나리오 형식의 다큐멘터리이다. 바르샤바 조약기구 군대의 훈련 영상을 적당히 편집하거나 3D 그래픽 영상으로 만들어졌다. 후반부의 양측의 핵공격에 주요 대도시[19]이 잿더미가 되는 장면이 압권이다.

파일:CNywwHPr.jpg
Plan of Action 계획 작전지도.

2007년, 역사학자 페트르 루나크(Petr Lunak)는 체코슬로바키아군의 Plan of Action 계획 문서를 발견했다. 영문판 PDF[20] 1964년에 기록되어 체코슬로바키아 서기장의 서명이 들어 있는 이 문서에는 유럽에서의 바르샤바 조약군의 "반격 작전"에서 체코슬로바키아군의 조치를 다루고 있었다.

이 작전은 나토군의 기습에 대한 바르샤바 조약군의 반격을 가정하며, 이 문서에서는 NATO의 침공 전략을 바르샤바 조약기구 회원국의 정치, 경제 중추에 대한 핵 타격과 기습적인 비행장, 통신소 등의 군사시설 타격, 국경 지대 병력의 주력 섬멸로 보았다. 바르샤바 조약군의 계획은 더욱 가관이었는데, NATO의 핵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대규모 핵공격의 지원을 받으며 지상군을 진격시키려 했다.

바르샤바 조약군의 자세한 계획을 살펴보자. 작전에서는 핵미사일핵탄두 총 131개가 필요하며, 핵미사일 96기, 핵탄두 35기이다. 1차로 핵무기 41기로 핵공격을 가해 적군의 주력 야전 병력을 섬멸하고, 바르샤바 조약군 전력은 서독의 주요 도시로 진격하게 된다. 서독을 점령하고 NATO의 반격이 없다면 1주일 내로 프랑스 전역을 점령할 계획이었다. 체코슬로바키아군은 국경이 접한 서독 바이에른 주의 주요 도시와 적 주력의 야전 병력을 핵탄두 10기로 타격하게 되고, 소련군과 협조하여 미군프랑스군의 주력을 궤멸시킨 다음 공수부대를 동원해 네카 강과 라인강을 건넌 후, 프랑스예비대를 격퇴하고 리옹 방향으로 진격하기 위해 프랑스 국경 지대를 장악할 계획이었다. 공군은 핵 반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뉘른베르크스트라스부르NATO벙커와 공군 사령부를 타격할 예정이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Probable_Axes_of_Attack.jpg
라인 강까지 7일 작전의 계획도. 1979년에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수립한 공격 계획이다. 나토군 뿐 만 아니라 오스트리아도 공격대상이었고 을 포함한 오스트리아 주요 대도시들이 소련의 핵공격 대상이었다.

2010년 9월 4일 독일 슈피겔지에는 "과연 동구권측의 고전적인 설명대로 바르샤바 조약기구는 서방측으로 공격에 대비한 방어-내지는 반격 전략만을 수립해 놓았는가?"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그리고 슈피겔동독에 산재해 있는 1,200여 개의 벙커들과 기밀해제된 소련 문서들을 연구한 학자들과 전직 동구권 장성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내린 결론은 바르샤바 조약기구 측은 선빵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바르샤바 조약군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전장서독-동독 지역이 포함된 중부유럽에 대한 개전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았다.

전쟁 개시 90분 동안 바르샤바 조약 군은 NATO의 주요 시설과 공항, 정부 부서 등, 서유럽 국가들의 사회 인프라 시설에 수천 개의 핵탄두로 공격을 가한다.[21] 초기 공격대상에는 라인강을 넘어 브뤼셀, 안트베르펜, 암스테르담, 브레멘, 함부르크, 쿡스하펜, 엠덴, 뮌헨이 포함된다. 이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현대 밀덕계에서는 소련군기동전 교리상 마비를 중시하기에 이런 공격을 가하는 것을 계획한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가장 강력한 섬멸 병기인 핵의 투발을 저지하기 위한 수단에 가까웠다. NATO가 먼저 핵을 쏘기 전에 이쪽이 한발 앞서서 먼저 핵을 쏘아 선빵을 날림으로서 NATO가 핵을 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한다는 것. 물론 이럴 경우 협상 따위는 이미 무산된다. 진짜 한 쪽이 전멸할 때까지 싸우게 된다.

핵공격과 함께, 중부유럽에서 지상군 주력이 전개된다. 북부에서는 폴란드군덴마크 인근의 유틀란드 반도까지 6일 이내에 도착한다. 남서쪽 전선에서는 체코슬로바키아군의 지원을 받아 독일 남부의 바이에른주로 진격한다. 중부에서는 소련군의 지원하에 동독군이 국경을 넘어 루르 지역, 프랑스알자스-로렌 지방까지를 목표로 삼는다. 최종적으로는 라인강까지는 7일 이내에, 대서양 해안 지대까지는 12일 이내에 진격한다.

작전계획에 따르면, 라인강변에 도착할 때까지, 이들 중 어느 누구도 방사능 피폭 증상을 보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라인강변에 도착하면 이들 방사능피폭된 병사들은 제2전략군으로 재배치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게 생각보다는 소련 입장에서는 매우 현명하고 현실적인 작계일 수도 있다. 미국이나 서유럽권은 핵미사일 완전 자동 발사장치를 구비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핵 날릴 수뇌부가 사라지면 핵 맞을 가능성이 약간이나마 줄어 버린다는 것이다. 설사 이런 방식으로 선제공격이 시작된다 해도, 나토 역시 이런 전쟁에 대비하지 않은 게 아니므로 이런 식으로 흘러갈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도 소련군은 이런 작전을 수행하는데 충분한 능력을 갖춘 병기들을 양산하였으며 소련군 차량들은 일반적으로 공수주 스팩만 그럭저럭 괜찮을 뿐 소프트스팩이 서방식 차량에 비해 열등하여 훨신 약하다는 이미지가 있지만 핵전쟁 상황을 가정한 양압식 화생방 방호장치 등의 장비는 당시의 미제 차량을 그야말로 완전히 압도한다.[22] 당시 소련군은 보병부대를 포함한 전군의 기계화가 되었고 차량 내부에서는 당대 최고 수준의 대 방사능 보호 장비의 혜택을 볼 수 있었기에 현실적으로도 저런 말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2.3.2. 핵탄두 사용을 배제한 재래식 전쟁

위 항목에 서술된 내용은 적극적인 전술 핵탄두 사용을 전제로 하고 있다. 반면에 핵 사용을 배제한 재래식 전쟁 또한 생각해 볼 수 있다. 이것을 배경으로 한 게 톰 클랜시의 유명한 붉은 폭풍 이라는 군사 소설이다. 이 경우 동유럽에서 시위가 발생해 나토군이 개입하거나, 바르샤바 조약군의 전면적인 기습, 또는 나토군의 선제공격 등의 시나리오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다만 이 항목에서는 동아시아 전선의 경우는 제외하고 서술하겠다[23].

먼저 동유럽에서 대규모 시위가 발생해 나토군이 개입하는 경우, 이럴 땐 나토군 또는 바르샤바 조약군이 서로 기습당할 이유 없이 개입을 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완전무장을 하고 격돌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도 프라하의 봄이나 폴란드 연대노조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동유럽에서 시위가 일어난다는 건 소련이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동독 등의 추가 전력을 이용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동구권 국가의 군부들마저도 소련에 반감을 품어 오히려 역으로 소련에게 총을 겨눌 수 있다. 아무리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소련군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해도 동유럽 국가들의 지원과 시간 끌기뿐만 아니라, 소련 국경에서 직접적으로 오는 공격을 막는 것은 소련에 상당히 중요하다. 당장 중국이 왜 1950년대에 북한을 지원군을 보내면서까지 사수하려고 했는지 생각해 보자.

그러나 이런 시위상황은 일단 서방 측이 유리하긴 하나, 결국 그 시위가 서방의 발목을 잡게 될지도 모를 것이다. 시위대가 대부분 민간인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이들을 사이에 두고 양진영의 두 군대가 직접 충돌하게 되면 대규모 유혈사태를 배제할 수 없게 된다. 이러면 동유럽 사람들의 민심은 서방한테 기울기가 힘들 것이다. 시위대들은 더 이상의 무력, 폭압적 진압과 통치를 막기 위해서 싸운다지만, 그래도 나토의 개입 때문에 나라가 끝나도록 싸우고 싶은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토군은 소련을 압박함과 동시에 시위에 참가하는 민간인에 대한 보호와 지원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위에서 설명한 환경 때문에 광범위 타격무기 같은 것은 꿈도 못 꾼다. 모든 사람들이 시위 때문에 거리에서 북적북적거리는데 거기다 대고 포격이나 폭격을 했다간 나토군의 입장이 말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소련군에 대한 정밀타격 무기(유도 미사일 등)가 더 많이 이용될 것이다.

두번째는 바르샤바 조약군 (이하 조약군)의 전면적인 기습상황인 경우다. 조약군은 성공적인 기습을 위해 공작원을 동원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그 정보에 따라 정찰 특수부대들이 작전에 나선다. 참고로 조약군이 전시상황때 주로 운용한 교리는 적 깊숙히 지휘부를 마비시켜 신속하게 적의 심장부로 밀고 들어가는 '종심 돌파 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어 이러한 특수공작이 매우 중요하다.

3. 경제적 비교

3.1. 서방권

경제규모가 가장 큰 미국이 주도하며 다른 경제대국들인 서독, 영국, 프랑스, 일본 등이 포진되어 있었다.

냉전 대부분의 기간 동안 서유럽 자체로도 동유럽 전체의 총생산/국민소득과 맞먹었으며, 특히 미국1950년대에는 전 유럽 전체와 맞먹는 총생산을, 1980년대에도 서유럽 또는 동유럽(소련 포함) 전체와 비슷한 총생산을 가지고 있었다.

3.2. 동구권

동유럽 국가들은 일반적으로 여겨진 것과는 달리 서유럽 국가들과 비슷하게 중상위권 정도의 소득은 되었다. 특히 동독이나 체코슬로바키아는 절대적으로 본다면 잘 사는 나라들이었다. 냉전 절정기인 1980년에는 미국서독이 12,000달러, 동독체코슬로바키아가 9,000달러, 소련이 6,000달러 정도였고 공산권 붕괴 당시인 1990년에는 미국 20,000달러, 서독 15,000달러, 동독/체코슬로바키아/소련이 10,000달러 정도였다.[24]

동유럽에서 동독,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등 그럭저럭 산업이 갖춰진 국가는 나았지만 불가리아, 루마니아 같은 나라들은 상황이 무척 안 좋았다[25]. 그리고 소련도 세계 2위의 경제규모를 가졌지만 1인당 국민소득이나 국내총생산은 미국의 절반 이었고, 말기에는 경제 규모가 일본에게는 이미 밀렸고 서독과 거의 유사해졌다.[26] 하지만 이는 당시 일본과 서독은 플라자 합의로 인해 자국 화폐 가치의 인위적인 절상으로 GDP가 뻥튀기 된 상황이었다.

물론 소련은 초강대국이고 서독, 일본보다 생산력에서 훨씬 앞섰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냉전기 공산권의 GDP 역시 뻥튀기 된 점을 감안 하여야 한다. 냉전 내내 소련 루블은 소련 정부에 의해 실제 가치보다 훨씬 고평가 되어 있었음을 감안하면 과연 플라자 합의로 고평가 된 마르크, 엔보다 덜 했는 지는 의문스러운 부분이다. 오히려 1983년 UN에서 시장가격으로 평가 했을 때 소련의 1인당 소득은 3,650불에 불과 했다. 공산권 인민들의 생활상은 아직 개도국에 불과 했던 88 올림픽 시점의 한국만도 못 했고 공산권에서 가장 잘 나갔던 동독도 서독과 재통일 되었을 때에는 실질 소득이 겨우 3,500불 정도로 평가 받으며 도저히 경쟁이 되지 않아 경제가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다만 공산권 경제의 특성 상 국가에서 거의 모든 것을 해결 하고 인민이 돈을 쓸 일은 거의 없다시피 하니 소련 인민들은 적은 수입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을 은행에 예금 해놓을 수 있는 수준이었기에 단순 GDP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따르며 국력을 동원하는 데에 있어서도 국가 주도 계획경제 상 자유시장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것은 감안해야 한다.

소련동유럽중화학 공업은 군수산업과 항공우주산업을 유지하기 위해서 계획경제의 핵심으로 발전했지만 식량 자급자족을 하지 못했고 경공업도 그리 발달하지 못했는데 이건 공산주의와 소련의 관료제 탓이 크다. 소련의 경우 식량 수요의 적지 않은 부분을 미국으로부터 수입해서 충당했다.[27]

미국 입장에서도 이 소련에 대한 식량 수출은 수출 자체로 인한 경제적 이득 외에도 정치적인 이득이 있었기에 이를 용인했다. 잉여 농산물을 수출함으로서 미국 내 농산물 가격의 조절이 가능하고, 소련의 식량난을 완화해서 소련을 달랠 수 있기 때문이다.

4. 전략적 비교


1979년 당시 미국의 랜드연구소에서 가상의 소련의 선제핵공격을 다룬 다큐멘터리 "First Strike". 미국 내에서는 소련과의 전략적 균형을 설명하기 위해 Missile Gap(미사일 격차)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1950년대, 스푸트니크 쇼크R-7 로켓의 등장은 미국에 있어서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그렇기에 미국은 ICBM과 같은 전략적 핵전력에 있어서 소련에 결코 우위를 내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한편 소련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의 핵전력 부족을 체감하고 이후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서기장이 ICBM과 SLBM 전력을 엄청나게 증가시키면서 1970년대부터 그 미국을 수적으로 뛰어넘게 되었다. 양측은 제1격 에서 상대국의 핵전력을 최대한 격파하기 위해 정밀도와 수량 면에서의 경쟁을 하게 된다.

1972년, 양측은 과도한 ICBM, SLBM 경쟁을 규제하기 위해 미사일의 수를 제한하는 전략무기제한협정을 체결하게 된다. 그러나 미-소 양국은 이를 만회할 꼼수를 냈으니 ICBM들을 MIRV화하는 것이었다. 미국의 미니트맨 III 가 3발의 핵탄두를 탑재한데 이어 소련의 SS-18이 초기형은 8발 후기형은 10발의 핵탄두를 탑재해 적은 수량으로도 상대방의 핵미사일 사일로를 최대한 많이 격파하려고 했다.

1980년대 들어서 레이건 행정부의 전략방위구상은 소련에 있어서 큰 위협이 되었다. 미국의 탄도탄 요격 인공위성들의 소련의 ICBM들을 요격해버린다면 소련은 그를 만회할 수준의 ICBM들을 더 많이 생산해야 했고 이는 과도한 군비경쟁을 하는 중인 소련 입장에선 더더욱 큰 경제적 부담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미사일 전력도 더욱 고도화되었는데 미국의 신형 ICBM LGM-118A 피스키퍼의 CEP는 불과 120m로 소련의 ICBM 미사일로를 정확히 격파할 수 있었다. 1983년, 서유럽에 배치된 신형 MRBM 퍼싱 II도 CEP 가 두 자릿수로 줄어드는 초 정밀한 정확도를 보여 동유럽과 소련 본토의 ICBM 사일로를 정확히 격파할 수 있었다. 소련도 이에 맞서서 단 한 척이 200발의 핵탄두를 쏟아부을 수 있는 타이푼급 잠수함 이라는 괴물을 출시했다.

이외에도 상대국의 선제 핵 공격으로 지휘통제시설이 격파되어 모든 핵전력이 무용 지 물화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미국은 E-4E-6 등의 공중지휘 통제기 들을 띄웠고 소련은 지구 최후의 날 기계를 실전 배치했다. 이렇게 끝도 모르던 양측의 전략적 경쟁은 결과적으로 1991년 체결된 전략무기감축협정으로 제동이 걸렸고 결과적으로 소련까지 붕괴되면서 양측의 전략무기 경쟁은 종료되었다.

요약하자면 1960년대 까지는 미국 핵전력이 소련 핵전력보다 압도적 우위였고 1970년대 이후부터 소련은 양적으로 미국의 핵전력을 앞서고 미국은 정밀도 면에서 소련의 핵전력을 앞서는 양상을 보이게 되었다.


[1] 제 4차 세계대전에서는 돌맹이와 나뭇가지로만 싸울 것이라는 표현은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2] 지속적으로 감축하다가 신냉전 체제에 돌입하며 감축에 제동을 걸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퇴역시켰다고 해도 금방 폐기하지 않고 예비탄두로 감췄을 가능성이 있는 만큼, 양측 모두 최소한 8,000에서 9,000기는 보유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3] 위키피디아 프랑스어판에도 해당 문서가 있다.[4] 전시에는 캐나다군 1보병사단 전체가 미 7군단 지휘하에 들어올 예정이었다.[5] 일명 베를린 여단. 3개 보병대대에 1개 전차중대/1개 자주포대를 혼성 편제한 여단으로, 서베를린 방어에 투입되어 있었다.[6] 아래 나열된 부대 외에도 지역사령부(Heimatschutzen이라고 하며, 전시에는 나토군 산하에 편입되어 실전에 투입될 예정이었다.) 산하에 다수의 예비 부대를 확보하고 있으며, 6기갑척탄병사단을 주축으로 할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지역 사령부하노버 지역의 1지역사령부가 각각 군단급 편제로 개편되어 사단급으로 편제된 산하 지역 사령부를 흡수하여 전투에 투입될 예정이었다. 무서운 건 향토사단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역사령부 산하 부대들도 모두 기계화/차량화가 이루어져 있다는 정도? 여기에 이 부대의 주력 전차는 레오파르트1.[7] 전시에는 1군단에서 분리되어 군단급으로 편제되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지역 사령부 예하에 배속될 예정이었다.[8] 말만 산악엽병이지 예하 3개 여단 중 2개 여단이 기갑/기계화보병여단이었다.[9] 이후 BFG(British Forces Germany)로 개편된다.[10] 이 두 연대는 한국군 편제로 치면 기갑수색대의 역할을 수행했다.[11] 미군과 마찬가지로 1개 기갑중대를 혼성편제한 보병여단이었다. 다만 이 쪽은 기계화보병이 주력이다.[12] 여기에 예비군 1개 보병여단이 존재했다.[13] 이 중 1개 사단은 예비대 역할을 맡았다.[14] 이 때는 프랑스의 핵개발 마찰로 인해 탈퇴했던 때라 NATO 연합군이 아닌 NATO의 아군 지위였다.[15] 공수부대해병대를 결합한 전투사단. 1988년 해체.[16] 굳이 폴고레 공수사단만이 아니더라도 이탈리아 병사 개개인의 자질은 롬멜한테서도 높게 평가받을 정도로 나쁘지 않았다. 이탈리아군이 2차 대전당시 참패를 당해온 것은 전쟁 준비도 안됐는데 덜컥 참전을 결정해버린 무솔리니의 실책과, 그 때문에 형편없는 무기를 그나마도 적게 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탈리아군의 사정 때문이었다.[17] 마찬가지로 바르샤바 조약기구 작계에선 이들 국가에 대한 침공도 상정했다.[18] 특히 핀란드군은 평시 편성과 전시 편성이 같은 군대가 맞나 싶을 정도로 차이가 극심하다.[19] 런던, 바르샤바, 브뤼셀, 암스테르담, 쾰른, 파리[20] 원문은 러시아어다. 바르샤바 조약군은 소련의 절대적 통제를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21] ICBM들은 미국과의 확전에 대비해 아껴두고 주로 Tu-22Tu-95를 응용한 항공기 핵공격이나 SS-4같은 MRBM과 SS-20 IRBM으로 공격할 계획이었다.[22] 이 분야에서는 차량 단위의 양압식 화생반 방호장치가 존재하는 구형 T-55가 승무원용 마스크를 방호장치라고 달아둔 상당수의 서방제 3세대 전차보다도 우월하다. 그리고 그 상당수의 서방제 3세대 전차에 포함되는 것이 한국군의 K1E1 계열을 제외한 모든 K1 전차이다.[23] 여기서는 소련과도 미국과도 이해관계가 전혀 맞지 않는 신흥 패권국인 중국이 등판하기 때문이다.[24] 참고로 대한민국의 국민소득은 1980년 기준으로는 3,000달러였으며, 1990년 기준으로는 6,000달러였다. 한강의 기적이 여전히 진행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변수들 때문에 1980년부터 1990년까지 10년동안 국민소득은 겨우 2배 증가하는 데 그쳤다. 대한민국소련 붕괴 3년 후인 1994년에 국민소득 10,000달러를, 그로부터 12년 후인 2006년에 20,000달러를 돌파했으며 2017년에 30,000달러를 돌파했다.[25] 다만 고려해야 할 것은, 이 나라들은 2차 세계대전에서 있는 것 없는 것 다 날라간 나라들이라 미국의 위성국이었다고 하더라도 (마셜 플랜의 존재를 배재한다면) 그다지 경제적 부흥을 장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26] 물론 국력자체는 미국 영향 하에 있는 일본이나 서독보다 제2세계의 수장인 소련이 훨씬 컸다.[27] 사실 소련의 밀 생산량은 세계 1위였지만 가축 사료용으로 밀을 썼기 때문에 밀을 수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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