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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10 18:04:51

사미즈다트

1. 개요2. 어원3. 배경4. 상세5. 참고6. 같이 보기

1. 개요

사미즈다트(самиздат)는 소련 시절 소련 및 동구권 지역에서 비밀리에 제작되어 유통되던 각종 출판물이나 해당 출판물을 유통하는 반체제 활동을 지칭하는 단어다.

2. 어원

사미즈다트는 сам(스스로)과 издат(출판)[1]를 합쳐 형성된 러시아어 단어다. 우크라이나어로는 같은 의미인 삼비다우(самвидав)라고 불렸으며[2] 1980년대 폴란드에서는 드루기 오비에크(drugi obieg, 제2유통)라고 불렸다. (주로 밀수해 들여온) 해외 작품은 사미즈다트라고 부르지 않고 타미즈다트(тамиздат)[3]라고 불리기도 했다.

3. 배경

사미즈다트가 탄생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소련의 문화 검열 정책 및 통제적인 출판 환경 때문이었다. 이오시프 스탈린의 집권과 함께 1인독재 체제를 강화하면서 언론이나 출판에 대한 통제를 강화함에 따라 소련의 모든 서적 및 인쇄물은 반드시 당국의 심의와 검열을 통과해야 출판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당국에서 금지하거나 검열하는 정보에 접근하길 원했던 지식인과 독자들은 해외 서적이나 자국 내 금서를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하여 서적 및 인쇄물을 제작했다.

사미즈다트의 시초에 대해서는 여러 가설이 있으나 소련 시인이었던 니콜라이 글라스코프(Николай Иванович Глазков, 1919-1979)가 1940년대 자신이 쓴 작품의 복사본을 만들면서 출판사명으로 "Самсебяиздат(삼세뱌이즈다트)"[4]라고 적은 것을 단어의 시초로 본다.

4. 상세

"자가출판"이라는 어원에서 알 수 있듯이 일반적으로 사미즈다트는 다양한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개인이 직접 수기로 옮긴 복사본이나 타자기에 먹지를 깔고 타자를 치는 방식, 책의 내용을 복사기로 복사하는 방법도 있었다.

소련 시절 공식적으로 소련의 모든 인쇄 장비는 당국의 규제를 받았다. 특히 KGB는 모든 타자기인쇄기의 인쇄 샘플을 보관하여 불법 출판물 단속에 활용하였다. 악명 높던 동독 비밀경찰 슈타지도 동독 전역의 인쇄 장비 관련 정보를 보관해 당국에서 지시한 인쇄물을 추적하여 작성자를 색출하기도 했다.[5] 이에 맞서 소련인들은 동독이나 불가리아 인민공화국 등 소련 국외에서 제작된 타자기를 반입해 KGB의 추적을 회피하려고 시도했다. 사미즈다트 제작에 애용된 타자기 중에서는 에리카(Erika) 타자기[6]가 유명했다. 동구권에 비해 드물지만 서구권에서 타자기를 구하여 작성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키릴 문자를 지원하는 서구 타자기는 매우 드물었기 때문에 키릴 문자를 로마자로 작성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 самиздат > samizdat)
"Эрика" берёт четыре копии,
Вот и всё!
... А этого достаточно.


"에리카"는 한 번에 네 장을 찍어내지,
그게 전부야!
... 하지만 그거면 충분해.
알렉산드르 갈리치(Александр Аркадьевич Галич, 1918-1977), 소련 시인.[7]
공식적인 출판매체가 아니라 개인이 제작하다 보니 사미즈다트는 외양이나 질 등이 전부 제각각이었다. 일반적으로 사미즈다트는 "반체제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으며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비밀리에 유통되었다. 검열을 회피하기 위해 "이념적으로 건전한" 혹은 "허가를 받은" 책 표지를 달고 있었다. 흔히 사미즈다트라는 범주에 포함되는 반체제 출판물 이외에도 일반출판에도 활용되었는데 요리나 양조법을 다루거나 다이어트 비법 같은 일상생활에 도움이 되는 내용을 다룬 서적부터 시작해 지도, 인기소설의 동인지 또는 일반적인 서적의 복사본이나 학술 자료도 사미즈다트와 비슷한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이렇게 일반적인 서적까지 자가출판 형식으로 유통되었던 배경에는 개인이 출판물을 만들기 어려운 환경 탓이 컸다. 소련은 인쇄나 출판물과 관련된 장비를 엄격히 통제했는데 특히 인쇄기나 복사기, 타자기같이 출판이 가능한 장비는 각 기관이나 사업체의 제1부(Первый отдел)라 불리는 보안부서가 별도로 관리했다. 제1부는 기관이나 사업체가 아니라 KGB에 직접 소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만약 개인이 사적인 용도로 사용하다가 해당 부서로 보고될 경우 곤란한 일을 겪을 수도 있었다.

간혹 "소련에서는 경제적인 여유로 인해 책의 수요가 높은 데 비하여 책의 생산량이 적어 사미즈다트가 유행했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완전히 틀린 말이 아니긴 한데[8],크게 보면 이는 소련 사회의 특수성을 간과한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에서라면 비슷한 상황에서 개인이 인쇄소나 출판사에 사적으로 의뢰하여 출판하거나 출판사에서 독자들의 수요 및 판매량를 파악하여 책을 추가로 증쇄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해결이 가능한 상황에서 출판과 인쇄, 표현의 자유가 오로지 국가에 의해 좌우되고 국가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기형적인 환경에서 탄생한 출판방식이었기 때문이었다.
하루는 고르바초프가 집에 들어와보니, 아내가 열심히 타자기로 무언가를 치고 있었다.
"지금 무얼 치고 있는 거요?"
"우리 아이들한테 읽히기 위해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타이핑하고 있는 거에요."
"웃기는군. 아니, 그 책을 직접 읽게 하면 되잖아?"
"누가 그걸 모르나요? 하지만 아이들이 타자기로 찍어낸 게 아니면 아무것도 읽으려고 하질 않으니 어떻게 해요?"
사미즈다트와 관련하여 당시 소련에서 돌던 유머.[9]
음반에도 역시 사미즈다트와 비슷한 것이 존재했다. 1940년대에서 1970년대에는 일명 "료브라"[10]라고 불리던 복제 LP 형식으로 유통되었으며 1970년대 이후에는 카세트 테이프 형태로 유통되었다. 이렇게 비밀리에 유통되던 빽판은 마그니티즈다트(магнитиздат)[11]라고 불렸다.

사미즈다트에 대한 탄압은 페레스트로이카 말기인 1980년대 후반에 중단되었고 민간에도 복사기프린터, 컴퓨터워드프로세서가 보급되면서[12] 개인이 수기로 책을 옮기는 일은 일부 필사 용도를 제외하면 과거의 일이 되었다.

5. 참고

6. 같이 보기



[1] 정확히는 издательство(출판사)의 앞부분[2] сам(자기) + видавництво(출판사)의 합성어.[3] 저기(там, there) + издат[4] сам себя(나 자신 스스로가) + издат(출판함)[5] 이러한 모습은 영화 타인의 삶에서도 그려진다.[6] 동독의 최대 전자기기 기업이었던 VEB 콤비나트 로보트론에서 제작한 타자기였다.[7] Etkind, Efim (1992). "Afterword: Russian literature in the 1980s". In Charles Moser (ed.). The Cambridge History of Russian Literatur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pp. 595–614. ISBN 978-1-139-05544-4.[8] 소련/문화 항목 참조. 참고로 이들이 경제적 여유를 누렸던 이유는 "월급은 물가에 맞춰 오르는데 살 건 없어서 돈이 그냥 예금 계좌에 쌓이고 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9] 톨스토이의 저작은 소련 시절에도 금서 처분받지 않았고 안나 카레니나 정도의 유명 작품은 상당히 많이 출판되었기 때문에 굳이 사미즈다트로 제작할 필요가 없었다. 사미즈다트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소련 대중들의 공식 출판물에 대한 불신을 보여주는 유머라고 할 수 있다.[10] рёбра(갈비뼈). 병원에서 폐기한 X선 필름을 가공한 뒤 밀수해 온 레코드에 대고 눌러 찍는 방식으로 제작되어 이렇게 불렸다. "뼈 위의 락"(рок на костях)이라는 별명도 있었다.[11] магнитофон(마그니토폰, 카세트 테이프 녹음기) + издат[12] 엄밀히 말하자면 컴퓨터는 소련 말기인 1980년대에는 민간 판매가 시작되어서 어느 정도 사는 가정이라면 보유하기도 했다. 다만 당시에는 인터넷이나 PC통신같은 것은 업무용이나 관계자들이나 썼기 때문에 컴퓨터가 있다고 해서 채팅을 한다 는것은 먼나라 이야기였다. 사실 당시에 정보통신망이 발달한 나라라고 하면 미니텔이 보급된 프랑스 정도에 불과했고 미국에서도 인터넷은 전문가들이나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