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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28 16:16:44

세미팔라틴스크

1. 소련의 비밀도시
1.1. 역사
1.1.1. 핵실험1.1.2. 인명피해1.1.3. 핵실험장 폐쇄1.1.4. 그 이후
1.2. 매체에서의 세미팔라틴스크
2. 카자흐스탄의 도시

1. 소련의 비밀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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Семипалатинск (Semipalatinsk).

소련핵실험장이 있었던 도시로 현 카자흐스탄 동 카자흐스탄 주에 위치해 있다. 현재 이름은 쿠르차토프(Курчатов)이지만 소련 시절에는 세미팔라틴스크-16이라고 불렸다. 비밀도시이므로 지도에도 나오지 않았다. 이름의 유래는 소련의 핵개발을 처음으로 감독한 물리학자 이고리 쿠르차토프에서 따왔다.

현재는 카자흐스탄 원자력 에너지 협회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1.1. 역사

1.1.1. 핵실험

미국과 소련이 냉전을 시작하면서, 이곳은 냉전의 최전선이 된다. 소련 당국은 핵실험장으로 세미팔라틴스크를 선정했다.

1949년 8월 29일, 여기서 첫 번째 핵실험이 실시되었고, 소련이 행한 715회의 핵실험 중 절반 이상인 456회의 핵실험이 세미팔라틴스크에서 행해졌다. 사실상 소련 핵무기의 산실인 셈이다. 여기서는 1990년까지도 핵실험이 행해졌다.

또한, 핵실험으로 인해 '차간 호(Lake Chagan)'라는 인공호수도 생겼는데, 별칭이 Atomic Lake이다.[1] 고농도의 방사능으로 오염되어 있으며 2006년 측정시에도 위험 판정이 내려졌다. #

차간 호수에 대해 다룬 다큐멘터리.

1.1.2. 인명피해

456회나 핵실험을 한 대가로, 카자흐스탄 주민들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심지어 동쪽으로 150km 떨어진 세메이시의 주민들까지도 방사능 낙진으로 많은 수가 죽었으며, 카자흐스탄의 주장에 따르면 사망자는 5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1.1.3. 핵실험장 폐쇄

고르바초프의 글라스노스트가 시작된 후 사람들은 이곳에 대해 알게 되었고, 끔찍한 현실에 분노한 사람들은 대대적인 반대운동을 전개했으며, 소련 지도자들과 군수산업 관계자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1991년 8월 29일에 이 도시의 핵실험장은 문을 닫게 된다. 이에 UN은 8월 29일을 국제 핵실험 반대의 날(International Day against Nuclear Tests)로 선포하여 이 일을 기념했고, 1994년에는 러시아의 군사기지도 철수하게 된다.

1.1.4. 그 이후

1990년대 초 KBS 세계는 지금이라는 전세계 르포 프로그램에서 이 일대의 참상을 취재한 적이 있다. 한 지역 대학교 실험실에 기증된, 기형아 시신을 포르말린에 담가놓은 표본도 방영했는데, 단안증 등 혐짤에 내성이 없는 한 트라우마를 받기 쉬웠다.

2011년에 카자흐스탄은 핵실험장 폐쇄 20주년 기념식을 열었다.

세미팔라틴스크는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의 검증체계 강화를 위한 실험장의 구실을 하고 있다. 불량국가가 핵실험 여부를 숨겼을 때 그걸 찾아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려면, 과거에 핵실험장으로 사용되었던 세미팔라틴스크에서 하는 것이 가장 좋기 때문이다.

1999, 2002, 2005, 2008년에 카자흐스탄은 세미팔라틴스크에서 CTBT 기구 준비위원회가 행한 핵실험 사찰 훈련을 주관했다.

카자흐스탄 주민들은 아직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암 환자와 기형아 출산율이 늘었으며, 유아 사망률이 선진국의 5배가 넘는다고 한다.

1.2. 매체에서의 세미팔라틴스크

2. 카자흐스탄의 도시

세메이
Semei / Семей
파일:세메이.jpg
<colbgcolor=#00AFCA> 지역
[[카자흐스탄|]][[틀:국기|]][[틀:국기|]]
면적 210km2
시간대 UTC+5
인구 304,531명[2]
세메이 (카자흐스탄)

카자흐스탄에 있는 도시로, 현재 이름은 세메이.

1번 항목의 도시와는 다른 도시로, 동쪽으로 150km 떨어진 곳에 있다. 과거의 이름은 '세미팔라틴스크'였다. 위 항목의 세미팔라틴스크는 세미팔라틴스크-16으로 다르다. 하지만 양 도시간 거리는 150km 정도[3]밖에 되지 않아서 이 도시도 1번 항목의 도시에서의 핵실험 때문에 많은 환경, 건강 피해를 입었다.

러시아 내전 시기에 잠시 있었던 알라시 자치국의 수도였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가 시베리아 유형에서 석방된 이후 5년간 이곳에서 군인으로 복무하기도 하였다.


[1] 정확히 말하면 핵실험 후에 생긴 거대한 구덩이를 메우기 위해 주변에 있던 강과 연결시켜 만든 것이 차간 호수이다.[2] 2011년 기준.[3] 대략 서울-대전 시청 기준 직선거리가 이 정도 된다. 즉, 버스로 2시간 이내의 거리이다. 이 나라의 면적으로만 보아도 굉장히 가깝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