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CD0000><colcolor=gold> 알렉세이 레오노프 Алексе́й Лео́нов | Aleksey Leonov | |
본명 | 알렉세이 아르히포비치 레오노프 Алексе́й Архи́пович Лео́нов Aleksey Arkhipovich Leonov |
국적 | [[소련| ]][[틀:국기| ]][[틀:국기| ]] → [[러시아| ]][[틀:국기| ]][[틀:국기| ]] |
출생 | 1934년 5월 30일 |
소련 러시아 SFSR 서시베리아 지방 탸진스키 리스트뱐카 | |
사망 | 2019년 10월 11일 (향년 85세) |
러시아 중앙 연방관구 모스크바 | |
학력 | N. E. 주콥스키 공군학교 |
복무 | 소비에트 공군 |
최종 계급 | 항공소장 (소비에트 공군) |
주요 서훈 | 대조국공훈훈장 1급 대조국공훈훈장 3급 대조국공훈훈장 4급 레닌훈장 (2회) 소비에트 연방 영웅 (2회) 적성훈장 |
가족 | 배우자 스베틀라나 파블로브나 레오노바 장녀 빅토리아 알렉시브나 레오노바 차녀 옥사나 알렉시브나 레오노바 |
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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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소련의 1세대 우주 비행사 중 한 명. 세계 최초로 우주선외활동(EVA) 즉, 우주유영을 한 인물이다.2. 인류 최초의 우주유영
1965년 3월 18일 8시 34분. 인류가 우주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러나 즐거운 우주 산책을 마친 후 돌아가는 게 문제였다. 우주선과 우주 사이에 감압실(에어록)의 재질이 섬유로 되어 있었는데 이것의 폭이 상당히 좁다 보니 거꾸로 들어가는 게 안 되었다. 흔한 SF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큰 차폐문이 달린 넓직한 에어록을 생각하면 잘 이해가 안 가겠지만 이때 레오노프가 써야 했던 에어록은 우주선의 해치에 연결된 좁고 기다란 통로형으로 되어 있었다. 위의 개요도나 레오노프의 그림을 보아도 알 수 있지만 이 에어록이라는 게 사람 한 명이 우주복 입고 딱 차렷자세로 들어가면 꽉 차는 수준이었다. 물론 레오노프는 실제로 무중력 상태에서 이 에어록에 신속히 들어가는 훈련을 여러 번 수행했는데 여기에 예상하지 못한 기압 차이로 실제 우주공간에서 우주복이 부푸는 변수가 닥치자 에어록에 진입하지 못했던 것. 진입하려면 다리부터 에어록에 집어넣어야 했는데 우주복이 풍선처럼 빵빵하게 부풀어오르니 팔다리가 굽혀지지 않고 대(大)자로 완전히 펴진 상태가 된 것이었다. 당연히 다리를 접어서 에어록 입구에 집어넣을 수 없었다. 나갈 때야 기압 문제도 없었고 우주선 내부에서 머리부터 에어록으로 들어가면 되는 일이었지만, 우주복이 부푼 상태에서 잡을 곳이나 지지할 곳도 없는 우주 공간에서 좁은 에어록 입구에 다리를 집어넣은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1] 결국 인류 최초의 우주 유영자가 최초의 유영 중 사망자가 될 판이었다.
이 상태로 다리를 집어넣으려고 20분쯤 사투를 벌이다가 결국 선택한 방법이 자신의 우주복 내 기압을 진공 수준으로 낮춰서 부풀림을 제거한 것이었다.[2] 어쨌든 성공하여 생환했지만 잠수병에 걸려서 지구로 돌아올 때 하마터면 얼어죽을 뻔했다.[3][4]
귀환 도중 우주선의 난방장치가 고장이 나고 냉각장치만 작동하게 되었고 귀환선은 평지에 착륙하지 못하고 착륙 예정지에서 무려 1200마일이나 북쪽으로 떨어진 눈으로 덮인 우랄 산맥 깊은 전나무 숲에 불시착하게 되었다. 우랄 산맥의 춥고 깊은 전나무 숲 속 나무들 사이에 우주선이 껴 출입구를 열 수 없는 상황에다 난방장치까지 고장나서 난방은 되지 않고 냉방 장치의 냉방만 가동되는 우주선 안에서 파올 벨라에프와 알렉세이 레오노프는 늑대들에 둘러싸인 채 평생 가장 추운 밤을 보내야만 했다.
뒤늦게 귀환선을 발견한 구조대가 도착했지만 울창한 나무 때문에 헬리콥터가 착륙할 수 없어 구조 헬리콥터가 착륙할 수 있는 착륙장을 만들기 위해 그 주위의 나무를 베어내야 했다. 비록 중간에 추운 밤을 보낼 수 있는 의복을 공수받긴 했지만 인류 최초로 우주유영에 성공한 우주영웅은 이틀 밤을 추운 우랄 산맥의 깊은 숲 속에서 지냈던 것이다. 시베리아의 혹독한 추위를 모닥불 하나에 의지하며 버티던 그때 설상가상으로 번식기를 맞아 사나워진 늑대 무리와 조우 했다. 이때 몸을 보호하기 위한 장비는 상대적으로 위력이 약한 마카로프 권총 한정. 결국 우주비행사들은 난방장치가 부서진 비행선 내부로 피신할 수 밖에 없었고 영하 30도로 떨어지는 쇳덩이에서 밤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자세한 부분은 이곳으로(일본어).
2017년 러시아에서 영화 스페이스 워커로 영화화되었다.
3. 우주 유영 이후
이후 소련에서는 당연히 그 대사건이자 사고를 편집 후 전세계에 공표했고 이로써 소련은 미국에 일격 후 3연타를 날렸다.[5]1968년 소련의 유인 달 근접 비행 계획(소유즈L1계획)과 유인 달 착륙 계획(소유즈L3계획)의 멤버로 선발되었으나 N1 로켓의 개발 실패와 아폴로 계획의 성공으로 인해 소련의 달 탐사 계획이 취소되어 버렸다.
1971년에 3명이 사망한 소유즈 11호는 원래 레오노프를 선장으로 3명이 탑승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일원인 발레리 쿠바소프가 검진에서 결핵이 발견되자 백업요원인 그 3명이 교대하여 대신하게 되었다.[6]
이후에는 공군 소장으로 진급하여 소련 우주비행사들의 구심점 역할을 했고 1975년의 아폴로-소유즈 도킹 미션에서도 소련측 대표로 뽑혀 소유즈 19호를 타고 아폴로 18호와 도킹했다.
2019년 10월 11일 향년 85세로 사망했다.
4. 여담
그림에도 소질이 있어서[7] 우주로 나온 순간을 직접 그리거나[8] 우주의 풍경들을 그림으로 남겼다.인간적으로도 붙임성 좋고 서글서글한 성격으로 NASA 소속 우주비행사들과도 친분을 많이 쌓았고 소련 붕괴 후 미국과 러시아가 협력해서 ISS를 건설하는 데도 중재역으로 노력했다. 우주비행 관련 서적들을 보면 레오노프 장군의 인간성을 칭찬하지 않는 책이 없을 정도.
소비에트 연방 영웅 칭호를 2회 수훈받았다.
대조국공훈훈장 1등급을 수훈받았다.
아서 클라크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후속작인 2010: 오디세이 2에서 목성을 향해 날아가는 우주선의 이름을 '알렉세이 레오노프 호'로 설정했다. 소설 속에서 그려지는 구 소련과 미국의 협력을 생각했을 때 의미심장한 이름.
태어났을 때 친가, 외가 할머니들이 서로 얘기도 안 하고 갓난아기를 교회에 각각(...) 데려가는 바람에 세례를 두 번 받았다 카더라.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어머니가 트랜스젠더 딸에게 수술하고 세례 한번 더 받자고 설득할 때 세례 두 번 받은 사례로 들먹일 정도면 꽤 알려진 이야기인 것 같다. 사실 종교를 금지하던 소련 시절[9]의 갓난아기 정교회 세례 기록이 남아 있는 것도 대단한 거고 종교가 금지되던 시절에 서로 대놓고 상의도 못해서 세례를 두 번이나 받는 게 그리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인류 최초로 우주 쓰레기를 버렸다. 위의 우주유영 영상은 바로 우주선의 에어록 출구에 부착된 카메라로 찍은 것인데 이런 우주선용 카메라는 렌즈 보호를 위해서 발사시에는 렌즈 덮게를 부착해서 발사한 뒤 사용시에 우주비행사가 덮개를 제거해야 했다. 레오노프도 우주유영 실시 전에 에어록 밖으로 나와서 먼저 카메라에 달린 커버를 벗겼는데 이후에 대한 메뉴얼이란 게 당연히 없었으므로 우주에 그냥 버렸다(...) 영화 스페이스 워커에서는 레오노프가 무전으로 이건 어떻게 하냐고 묻는데 세르게이 코롤료프가 무전으로 그냥 버려! 라고 답하는 장면으로 처리되었다.
애플TV+의 오리지널 대체역사 드라마 시리즈 포 올 맨카인드에서는 아폴로 11호보다 먼저 소련의 N1 로켓이 달에 가서 레오노프가 인류 최초로 달착륙을 한 것으로 나온다.
2017년 러시아에서 레오노프의 우주유영을 소재로 한 시대극 영화를 제작했다. 제목은 스페이스 워커. 레오노프 본인도 영화의 자문을 맡았다.
5. 관련 항목
[1] 머리부터 입구에 넣고 양손을 번갈아 뻗으면서 조금씩 앞으로 기어가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 수 없었다. 에어록의 외부 출입구는 자동으로 닫히게 설계되어 있었지만 혹시나 제대로 동작하지 않을 경우에는 우주비행사가 손으로 당겨 닫도록 되어 있었다. 이래서 나갈 때는 머리부터 나가고, 들어올 때는 다리부터 들어와야 했다.[2] BBC에서 제작되어 EBS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드라마인 '우주 전쟁(Space Race)'에서는 세르게이 코롤료프가 지시하는 것으로 나온다.[3] 이후에 고백하길 발사 직전에 독약을 숨겼다고 했다.[4] 참고로 이때의 일은 우주공간에 맨몸으로 나가면 터져 죽는다를 반박하는 훌륭한 사례이기도 하다. 진공상태는 우주의 상태와 거의 비슷한데 진공에 가까운 상태였음에도 죽지 않고 돌아왔다.[5] 스푸트니크로 일격, 라이카, 유리 가가린, 알렉세이 레오노프의 우주유영으로 3연타.[6] 그런데 사고 이후 쿠바소프의 결핵 진단은 오진으로 판명되었다. 아폴로 13호가 연상되는 순간.[7] 원래는 화가가 꿈이었다고 한다.[8] 우주복에 장착된 카메라로 밖의 우주선을 찍으려고 했으나 우주복이 팽창해서 못 찍었다.[9] 그것도 1934년이면 스탈린의 반종교 정책이 절정에 달하던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