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2664, #000 40%, #000 60%, #cc0000)"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 28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국가 | |||
{{{#!wiki style="margin:-0px -10px -5px" {{{#!wiki style="display:inline-block; min-width:33%" {{{#000,#ddd {{{#!folding [ 자본주의 진영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제1세계 | |||
맹주 | ||||
유럽 | ||||
· · · · · · · · · · · · · · · [[튀르키예| · · 터키 ]] | ||||
아시아 & 오세아니아 | ||||
· · · · · · · · · · · · · · · · · · · · · | ||||
아프리카 | ||||
· · · · · · · · · · | ||||
북아메리카 | ||||
· · · · · · · · · · · · · · · · | ||||
남아메리카 | ||||
· · · · · · · · · |
{{{#!folding [ 공산주의 진영 ]
{{{#!folding [ 비동맹 진영 ]
}}} ||소련 유람선 막심 고리키호에서 식사하는 미국 대통령 조지 H. W. 부시와(우측) 소련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초프(좌측).
1. 개요
영어: Malta Summit러시아어: Мальтийский саммит
1989년 12월 2일에서 3일까지 진행된 미국 대통령 조지 H. W. 부시와 소련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초프 간의 회담.
미국과 소련간의 적대행위를 중단시킴으로써 공식적으로 냉전을 종식시킨 회담으로 평가받는다. 당시 신문 매체들이 이 회담을 1945년 얄타 회담 이후 가장 중요한 회담으로 평가할 정도였으니 당대의 충격과 이 회담에 대한 인식이 어땠는지 가늠이 된다.
2. 회담이 이뤄지기까지
회담이 일어난 당시였던 1989년 12월은 이미 유럽에서 많은 사건들이 일어난 후였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이미 무너졌고 폴란드에서는 6월 자유선거가 이루어져 레흐 바웬사가 이끄는 솔리다르노시치가 압승하였으며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 루마니아 사회주의 공화국, 불가리아 인민공화국 등 다른 동구권 국가들도 대규모 소요사태들을 겪으면서 동구권의 붕괴는 거의 기정사실화된 상황이었다. 이런 당대의 상황 속에서 양국은 향후의 유럽에 관해서 회담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몰타에서의 회담을 결정했다.회담이 실제로 이뤄지기 전까지는 미국 장관진들 사이에서는 이 회담에 상당히 부정적이였다고 하는데 큰 기대에 비해 실익은 없고 소련의 대외 이미지 개선이나 할 것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와 프랑스 대통령 프랑수아 미테랑, 그리고 미국 의회의 설득으로 부시는 몰타 회담에 참석하기로 하였다.
3. 회담의 진행
이 회담에서 미-소 양국간 공식적으로 조인된 조약 같은 건 없다. 애초에 이 회담의 본 목적은 미국과 소련 양국의 지도자들이 유럽의 급박한 변화들에 대해, 그리고 철의 장막을 들어내는 것에 관해 논의하기 위해서였으니까. 게다가 냉전이란 것이 열전과 다르게 공식적인 전쟁 선포도 없고 암묵적으로 생겨나는 것이기에 조약을 조인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기도 하고. 하지만 이 회담에서 미-소 양국 모두 군비 감축, 군축, 미-소간의 평화와 화합, 그리고 구동구권 국가들의 자유에 대해 동의하였으며 부시는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 정책인 글라스노스트와 페레스트로이카를 지지하였다.이 회담의 결과와 의의는 두 지도자들의 기자 회견에서의 선언에서 드러나는데 고르바초프는
세계는 한 시대를 끝내고 새로운 시대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속 가능한 평화의 시대로 가는 먼 길에 서있죠. 무력을 통한 위협, 불신, 심리적 이념적 투쟁은 모두 과거의 것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라고 하였고,저는 절대로 미국과의 열전을 시작하지 않겠다고 미합중국의 대통령께 약속드립니다.
라고 덧붙였다.이에 부시 대통령은
우리는 지속 가능한 평화를 현실화하고 동서관계를 지속된 화합으로 바꿔나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고르바초프 서기장과 제가 이곳 몰타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4. 여담
- 이 회담에서 부시가 사람을 보내 가져온 베를린 장벽 조각을 참석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 이 회담이 일어난 날에 몰타는 날씨가 매우 좋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스케줄이 취소되고 연기되는 사태가 발생하였는데 이에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이 과거 해외 지도자들과 선상회담을 가진 것에 영감을 가진 부시 대통령이 선상회담을 제안했고 몰타에 정박해 있던 서독 회사에 임대된 소련 유람선 막심 고리키호에서 선상회담을 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한반도 문제를 다룰 예정이었으나 날씨로 인해 무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