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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0 16:20:30

대승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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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불교의 종파
부파 불교 상좌부 불교
대승 불교 교종선종정토교
밀교 티베트 불교

동아시아의 전통 삼교 (三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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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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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대승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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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
<colbgcolor=#aaa> 대승 불교
大乘佛敎 | महायान
산스크리트어 महायान
한자 大乘佛敎
영어 mahayana

1. 개요2. 역사
2.1. 형성2.2. 전파
3. 부파 불교와의 비교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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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승불교(大乘佛敎)는 대승의 교리를 기본 이념으로 하는 불교를 말한다. 대승(大乘, महायान, mahayana)이란 부처의 가르침을 비유적으로 탈 것(yana)으로 나타내어 자기자신만의 해탈을 목적으로 하는데 그치지 않고 많은 중생의 구제를 목적으로 한다고 '스스로' 주장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들은 이전의 부파 불교(또는 그 하위 분류인 상좌부 불교)를 자기 자신에만 집중하는 작은 가르침이라고 생각하여 소승(小乘, Hinayana) 불교라 불렀는데 이런 멸칭적인 성격 때문에 1950년 열린 세계불교도우의회에서 소승 불교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한국사를 배울 때 반드시 나오는 교종/선종도 전부 대승불교에 속한다.

대승불교의 경전은 《금강경》, 《반야경》, 《반야심경》, 《묘법연화경》, 《화엄경》, 《유마경》, 《아미타경》등이 있다. 이 경전들은 대승불교의 경전들 중에서도 특히 중요하다. 대승불교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최소한 위에 언급한 경전들은 반드시 읽어봐야 한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대승 불교를 좀더 세분화하여 바라밀승(Paramitayana, 현교), 금강승(Vajrayana, 밀교)으로 구분한다. 금강승의 경우 대승불교와는 별개의 종파로 보는 시각도 있다.

2. 역사

2.1. 형성

초기 대승불교는 부파 시대의 불교가 고타마 싯다르타 당시의 초기 불교의 활동성·순수성·일반성을 상실하고 아비달마라고 하는 고정적·번쇄적·전문적인 훈고해석에 빠져버려 중생제도(衆生濟度)라는 불교 본래의 사명을 망각해 버린 것을 그 본래의 자세로 되돌리기 위해서 일으킨, 말하자면 불교 부흥 운동이라고 한다. 물론 대승불교만 하는 주장이지 역사적 근거가 있는 주장은 아니다. 오히려 초기불교의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에서는 힌두교와 융합한 대승불교를 타락이라고까지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승비불설 참고.

대승불교 운동의 발생과 그 추진역(推進役)에 관해서는 사실 아직도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기존에는 부파 불교 중 대승과 교리가 유사한 대중부 불교에서 대승불교가 기원했다고 보거나(대중부 기원설), 대략 서력 기원전 1세기경부터 재가(在家)를 중심으로 한 혹은 불탑(佛塔)을 수호하고 있던 사람들에 의해서(재가불탑 기원설[1]) 이루어졌으며 그 지역도 남인도에 원형(原型)이 생겨서 북인도에서 확립되었다고 보았다. 대승불교는 수행을 통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 말하는데 이러한 실천의 이론적 뒷받침이 되는 반야경(般若經), 법화경(法華經), 화엄경(華嚴經) 등 경전도 대승불교가 나타난 이후에 작성되었다고 학자들은 추측했다.

그러나 폴 헤리슨*이나 그레고리 쇼펜*, 사사키 시즈카(佐佐木閑)*, 안성두* 등을 중심으로 나오는 신 학설에서는 여러 고고학적/역사적 자료들까지 근거로 하면서 기원후 4세기까지[2] 대승/부파간 구분이 없고, 대중부 외에도 설일체유부, 법장부 등 여러 부파와 부파의 아가마와 논서에서 대승 사상과 관련된 교리들과 더불어 대승 운동이 있었다는 사료들이 많다는 점, 초기 대승문헌에서 아란야에서 엄격하고 보수적인 은둔 수행을 하는 출가자들이 중심이 되는 점, 고고학/문헌학적으로 성립연대가 기원전으로 올라가는 대승경전 유물들, 특히 대승불교의 근간인 반야사상과 관련해 기원전으로 올라가는 반야경 유물의 발견과 반야사상 관련 문헌의 문헌학적 분석 등을 통해 반야사상을 비롯한 대승불교의 근간사상의 연대가 소급되었다는 점[3] 등을 근거로 한 부파불교 기원설, 아란야 은둔 수행승 기원설, 법사[4] 기원설, 종교적인 선정 중 종교적 체험에 기원했다는 설, 경권(경전 두루말이) 신앙설 등 새로운 학설들을 내놓았다.

물론 가라시마 세이시(辛嶋静志) 교수처럼 기존의 대승불교 대중부 유래설에 대한 재검토와 보완을 언급하면서[5] 대중부 기원설에도 근거가 있음을 주장하는 학자와 학설들도 많으며, 현재로선 재가불탑 기원설을 주장하는 학자는 본토인 일본에서조차 사사키 시즈카(佐佐木閑) 교수 이후로는 사라졌다. 보살가나설은 설 자체의 근거부족과 그레고리 쇼펜, 나티에, 사사키 시즈카 등 국내외 학자들의 비판, 특히 이 설 자체가 재가불교 교단 운동이 전통적인 출가불교 교단을 압도하는 일본불교계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측면이 강함이 밝혀진 이후 영향은 남았을자언정 설 자체는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나 정작 한국에서는 아직도 종종 통용된다.

한편으로는 기존 인도 사상계에 존재하던 우파니샤드를 비롯한 브라만교 쪽 전통사상이나 자이나교 사상,[6] 당시 인도에 유입되던 조로아스터교 등 이란계 외부 종교들의 영향도 받았다. 이는 후대에 밀교로도 이어지는데, 이런 영향관계는 국내 학술논문에서도 인정하는 부분일 정도로(참조링크) 이미 국제적으로도 정설이다.

이러한 대승불교 사상은 2세기 사람 용수(나가르주나)가 본격적으로 체계화하였다. 중관파의 시조인 나가르주나는 공 사상의 개념을 체계화하는 등 대승불교의 기본 틀을 닦았다. 이후 시간이 흘러 그를 계승하는 제자들과 바수반두(세친)[7] 등 대승 논사들이 등장하면서 대승불교, 더 나아가 후대의 밀교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한편으로는 이 때문에 일부 극단적인 사람들은 대승불교와 초기불교의 차이점만 부각하여 대승불교는 불교가 아니라 '용수교'라고 하거나, 부처가 아닌 조사의 가르침만을 따르는 '조사교'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승불교 역시 석가모니의 사상에 기초하는 데다가 현 상좌부 불교 역시 석가모니 당대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한 것이 아니며, 동남아 민간신앙부터 대승불교까지 다양한 사상과 교류하며 변해왔다.[8]

2.2. 전파

현재까지 연구결과에 의하면 부파 불교가 있던 2세기 중엽, 쿠샨 제국 카니슈카 대왕이 4차 결집을 열어 경전을 모으고(이때 산스크리트어 경전이 등장함) 논사들이 부파 불교의 교리를 체계화했다. 이즈음 남인도 등에 있던 대중부 계열에서 초기 대승불경이 성립되어 인도 간다라 지방에 전해졌고, 그후 대승불교가 인도 밖으로 본격적으로 전파되었다. 대승불교는 이 결집을 '4차결집'이라고 하나 상좌부 불교는 인정하지 않는다. 이 시대까지도 인도와 간다라 지방에서 설일체유부 등 부파 불교의 여러 부파들이 같이 공존했다. 대승불교와 부파 불교를 칼로 자르듯 구분하기는 어려웠고 혼합 교단에서 대승화가 진행된 듯하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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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부파 불교
대승불교
상좌부 불교
밀교 · 티베트 불교

대승불교의 형성기 당시 인도는 서북부로부터 유목민들이 계속 유입되던 상황이었다. 마우리아 왕조가 멸망한 이후 중앙아시아의 다양한 유목민족들이 인도아대륙 서북부를 지속적으로 침공하게 되었다. 출가자(비구, 비구니)와 재가자(평신도)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초창기 부파불교의 문화는 이렇게 새로 인도로 침입하는 유목민들에게 다소 생소할 수 밖에 없었다. 초창기 불교보다 좀 더 보편적인 형태의 종교, 보다 덜 금욕적인 계율이 요청되었다. 스키타이인, 파르티아인, 토하라인 등 수많은 유목민들이 아프가니스탄을 넘어 펀자브카슈미르 지방까지 정착했다.

이들 유목민들과 그리스인들을 포함한 다수의 이방인들은 불교를 비롯한 인도의 여러 문화와 문명 및 언어를 받아들였다. 여러 왕들 가운데서도 가장 강력한 왕으로 꼽혔던 가니슈카 대제가 불교도가 되었다. 로마 제국과 인도 문화권 사이의 무역이 번창하면서 인도 문화권 힘의 중심은 동북부 마가다(오늘날의 비하르) 일대에서 점차 서쪽으로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 부파 불교계에서 사용되던 팔리어산스크리트어에 자리를 내주었다. 물론 중앙아시아에서 부파 불교가 인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늘날 아프가니스탄과 카슈미르, 동튀르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각지에서는 설일체유부 불교가 유행하였으며 같은 지역에서 동시에 대승 불교도 유행하였다. 이 가운데 동아시아로 전파되는데 성공한 것은 대승불교였다.

중국, 한국, 일본 등으로 전래되었으므로 '북전불교', '북방불교'라고도 부르지만, 이는 남방에 대승불교가 절멸한 현재의 상황만 반영한 표현이다. 과거에는 동남아시아에서도 대승불교가 주류였다. 대표적으로 대승불교가 성행한 곳이 스리위자야이다. 크메르 제국 역시 힌두교와 더불어 대승불교를 받아들였는데, 대승불교를 믿는 군주로는 수르야와르만 1세, 자야와르만 7세, 인드라와르만 2세가 있다. 이후로도 불교도 황제와 힌두교도 황제가 번갈아 등장하였다. 하지만, 인도차이나 반도와 인도네시아 지역에선 각각 상좌부 불교, 이슬람교가 자리를 잡으면서 현재 대승불교가 주류인 동남아시아 국가는 중국의 영향을 받은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밑에 있는 섬나라인 싱가포르 뿐이다. 몽골 문화권은 티베트 불교이다.

그림에서는 표시되지 않았지만, 스리랑카에도 대승불교 경전[10]이 한때 소개되어 세력을 넓히다가 탄압받은 기록이 스리랑카 상좌부 측의 복주석서에 남아 있다. 몰디브에서도 3세기 경 대승 불교가 전래되었고 관련 사찰 유적이나 불상/보살상이 많이 발굴된다.[11] 몰디브인들은 12세기까지 불교를 신봉했으나, 이후 아랍인, 페르시아인, 소말리인 상인들의 영향을 받아 무함마드 이븐 압둘라 술탄이 1153년에 이슬람으로 개종하면서 이슬람화가 진행되었다. 다만 남아있는 기록을 종합해 볼 때, 몰디브의 이슬람화가 말레 환초에서는 순조로웠지만 지방에서는 기존에 불교를 믿던 세력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던 것으로 보이며, 이 때문에 승려들이 불교를 버릴 수 없다며 저항하다가 참수형을 당하는 일이 벌어지는 등 개종에 상당한 시간이 걸렸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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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불교 종파의 분포
대승불교
밀교 · 티베트 불교
상좌부 불교

3. 부파 불교와의 비교

4. 관련 문서


[1] 일명 보살가나 기원설[2] 이마저도 부분적으로 나타나는 것이고, 쇼펜에 따르면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5~6세기부터다.[3] 한 예로, 반야부 경전 중 금강경의 핵심 이론인 공 사상아함경에도 등장한다*.[4] 경전을 암송하고 재가자들에게 포교하던 승려들을 말한다.[5] 사실 이 설은 보살가나설 등장 이전에 나온 설이었으나 나온 당시가 1903년이다보니 시기상 연구 부족으로 근거가 보살가나설보다도 부족해 밀렸다가 2000년대에 들어 추가적인 사료의 발굴과 연구로 증보개정되면서 점차 다시 힘을 얻는 중이다.[6] 대승불교에서 육식 금지나 힌두교적 요소들이 등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가 크다.[7] 상좌부에서 대승을 받아들인 인물로, 한때 동명이인설도 있었으나 외국 학계에선 설일체유부 문헌에 그를 '대승으로 변절한 낙오자'라고 비판하는 기록이 있어 부정한다.[8] 국내에서 상좌부 불교가 초기불교가 아니라는 학술적으로 명백히 증명된 이야기를 강조하는 인물 중 영향력 있는 사람인 승려 마성摩聖(팔리문헌연구소 소장이자 불교학 박사학위자)은 상좌불교 전공자이자 상좌불교 우월론자이다. 그런데 마성은 극단적인 상좌불교 추종자들과 상좌불교 우월주의 반대파 양쪽 모두와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9] 한지연, "서역에서 소승교단과 대승교단은 대립했는가", 2014, 제3회 한-중-일 공동 학술대회: 동아시아 불교에 있어서의 대립‧논쟁과 그 의의[10] 이 대승 경전들은 웨뚤라삐따까(Vetullapitaka)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이 경전들은 웨뚤라와다(Vetullavada, 方等)라는 부파에 속한 경전이라고 되어 있고, 나가의 처소로부터 가져온 것이며, 논쟁에서 설한 것(vada-bhasita)을 포함하고 있다고 언급되어 있다. 이를 근거로 학계에서는 이 경전들이 나가르주나나 대승 논사들의 저서들을 지칭하며, 웨뚤라와다는 대승을 지칭한다고 본다.[11] 다만 몰디브에 보관되어 있던 불교 유물들은 2012년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약 30점 정도가 복구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되었다. 당시 영상[12] 신비주의 요소와 결합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부처 = 아라한이던 개념이 대승에 와서는 부처 > 아라한이 됐다. 결국 아라한보다 더 높은 경지가 있다고 믿기 시작했으며, 여기에는 석가모니불을 뛰어넘은 비로자나불과 여러 보살들이 불교 신화로 흘러들어온 계기가 된다.[13] 무량수경에 의하면 2백 십억개나 되는 불국정토가 있다.[14] 비슷한 방식으로 도교와 혼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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