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 | |||||||
{{{#!wiki style="word-break: keep-all; 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f5f5f5,#2d2f34> 니까야 | 디가 니까야 | 맛지마 니까야 | 쌍윳따 니까야 | 앙굿따라 니까야{{{#!wiki style="" |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gcolor=#FFF,#1c1d1f> | ||||
}}} | |||||||
대승 경전 | 반야바라밀다심경 | 금강반야바라밀경 | 대방광불화엄경 | 묘법연화경 | 지장보살본원경 | 능엄경 | 관세음보살보문품 | 보현행원품 | 약사경 {{{#!wiki style="" | }}} {{{#!wiki style="" |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gcolor=#FFF,#1c1d1f> | }}} | |||
밀교 | 천수경 | 대일경 | 금강정경 | 대승장엄보왕경 | }}}}}}}}} |
한국어 |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 |
산스크리트어 | 데바나가리 문자 | वज्रच्छेदिकाप्रज्ञापारमितासूत्र |
음역 | 와즈라체디까 쁘라갸빠라미따 수뜨라[1] | |
영어 | The Diamond Sutra / The Diamond Cutter Sutra | |
티베트어 | འཕགས་པ་ཤེས་རབ་ཀྱི་ཕ་རོལ་ཏུ་ཕྱིན་པ་རྡོ་རྗེ་གཅོད་པ་ཞེས་བྱ་བ་ཐེག་པ་ཆེན་པོའི་མདོ། | |
음역 | 팍빠 셰랍끼 파뢸뚜 친빠 도제 쬐빠 셰쟈와 텍빠 첸뾔도[2] | |
만주어 | Sure ulhisu cargi dalin de akūnaha Kin k'eng king[3] |
1. 개요
[ruby(應, ruby=응)][ruby(無, ruby=무)][ruby(所, ruby=소)][ruby(住, ruby=주)] [ruby(而, ruby=이)][ruby(生, ruby=생)][ruby(其, ruby=기)][ruby(心, ruby=심)]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어라
대승 불교의 경전. 대한불교조계종의 소의경전(所依經典)이다. 《금강반야바라밀경》, 《금강반야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 곳에 집착하여 머물러 있는 마음을 내지 말고, 모양이 없는 진리로서의 부처를 깨달아야 된다고 하였다.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어라
한반도에 불교가 들어올 삼국시대 때부터 같이 들어온 서적이며, 따라서 한국에서 가장 널리 퍼진 대표적인 불경이기도 하다. 유식학파로 유명한 인도의 무착과 세친의 주석과 중국의 구마라습의 주석을 포함하여 전세계적으로 주석서 800종이 있다.
2. 제목의 뜻
2.1. 반야바라밀
대승 경전이다 보니, 제목부터가 대승 불교의 근본적인 개념인 '반야바라밀'을 포함하고 있다. 반야바라밀은 산스크리트어 쁘라갸빠라미따(Prajñāpāramitā)[4]를 음역한 것으로, '깨달음으로 이끄는 지혜'를 가리킨다.2.2. 금강
앞에 붙은 한자 '금강'은 산스크리트어 와즈라체디까(Vajracchedikā)를 뜻으로 풀어 해석한 것인데, 뜻은 '와즈라(Vajra)[5]와 같이 강한 힘으로 절단하는 것'이라는 뜻이다.[6] 그러니까 '금강반야바라밀경'이란 제목의 뜻은 '마음 속의 분별, 집착, 번뇌 등을 부숴버려 깨달음으로 이끄는 강력한 지혜의 경'이다.2.2.1. 다이아몬드인가, 번개인가?
2.2.1.1. 한자문화권에서
한자문화권에서는 와즈라의 뜻이 다이아몬드인지 번개인지 의견이 분분한데, 이는 와즈라를 번역한 한자어 금강(金剛)의 뜻이 중의적이기 때문이다.우선 한자어 금강만이 아니라 원어인 산스크리트어 와즈라 또한 벼락(번개) 혹은 다이아몬드 둘 다를 뜻하는 중의적인 단어이다. 그래서 한문으로는 금강경이 아니라 벽력경(霹靂經)으로도 옮길 수 있다. 한자문화권에서는 불교 문헌을 포함해 가장 단단한 물체를 금중최강(金中最剛). 즉 줄여서 금강(金剛)이라고 부르고, 어떤 물체가 강한 힘으로 파괴하는 상태를 보고 능단금강(能斷金剛: 능히 금강도 부술 수 있는 것)이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와즈라체디까(Vajracchedikā)의 한자 번역은 벽력능단금강(霹靂能斷金剛)이 적절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어쨌든 구마라집은 금강(金剛)으로 번역했다.
2.2.1.2. 영어권에서
후세의 영역자들은 가장 단단한 것(the hard or mighty one)인 다이아몬드의 특성을 입혀 The Diamond Sutra / The Diamond Cutter Sutra라고 번역했다. 처음으로 영역한 1894년 옥스포드 대학교 출판사본의 제목은 산스크리트어를 다음과 같이 번역했다. The Vagrakkhedika or diamond-cutter, in Buddhist Mahayana Texts.(산스크리트어) Vajra → 번역(번개와 금강 중 금강의 뜻만 살림) → 금강(金剛)
금강(金剛), Vajra → 중국어와 산스크리트어 동시 번역 → Diamond(영어)
2.2.1.3. 결론
금강의 영어 번역은, 금강석(金剛石)일 때만 다이아몬드일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원래 불교의 금강과 직접적으로 치환된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므로 금강을 물리적인 보석인 '다이아몬드'로 번역하는 것은 금강의 의미를 확실히 해야 한다.5세기 초 구마라집이 한 한자번역은 산스크리트어 그대로가 아니라 한자 문화권에 맞추어 의역함이 특징이다. 구마라집은 인도 불교 문헌을 번역함을 두고 "이미 입에서 한 번 씹은 밥을 다른 사람에게 먹이는 것과 같아, 원래의 맛을 잃는 것은 물론 심지어 구역질까지 느끼게 한다." 하였다. 한역에 대해서 "천축의 풍습은 문채를 몹시 사랑하여 그 찬불가는 지극히 아름답다. 지금 이것을 한문으로 옮겨 번역하면 그 뜻만 얻을 수 있을 뿐 그 말까지 전할 수는 없다." 하면서 민감하게 여겼다.
이 경의 핵심은 집착, 번뇌도 끊어버리는 벼락같은 파워를 가진 '지혜'를 뜻하므로 이 지혜가 가리키는 주요 포인트를 벼락에 둘 수도 있지만, 구마라집은 벼락에 있는 압도적인 '힘'의 요소는 이미 금강에 내재한다고 본 듯하다. 그렇게 볼 때 '지혜는 번뇌를 거머쥐고 절단하는 것을 그 특징으로 한다.'는 [밀린다왕문경]의 논사(論師) 나가세 존자의 답변에서 보듯 가장 단단한 Diamond 혹은 Diamond Cutter라는 영역은 의미상으로 적절해 보인다.
그러나 불교의 금강이란 금강저 혹은 금강륜이라는 물건을 떠올리게도 한다. 헌데 불교에서 금강, 금강저의 의미는 '깨어지지 않는 지혜의 상징'이며 '모든 번뇌를 자를 수 있는 지혜의 상징'이다. 이에 따르면 '어떤 번뇌도 능히 깨뜨려 없앨 수 있는 금강과 같은 지혜의 경전'이 된다.
즉, 어느모로 보나 중국어, 영어 모두 정확하고 유용한 번역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한자문화권의 많은 승려들은 반야바라밀이 '최고의 바라밀'이라는 점 및 금강경 내에 언급된 '무주상보시'[7]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구절 등으로 인해 반야바라밀을 6바라밀[8] 중 첫 번째로 등장하는 '보시바라밀'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반야바라밀'이라는 말 자체가 뜻으로 풀어 해석하면 오히려 6바라밀 중 맨 끝에 위치하는 '지혜바라밀'과 동의어이고, 금강경 내용 자체도 보시보다는 올바른 지혜를 확립하는 것에 더욱 중점을 두고 내용을 전개하기 때문에 보시로만 뜻을 국한하기는 어렵다.
한편으로, 불교는 기원전 2500년전 출현한 종교로 그당시에는 다이아몬드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경전명칭을 다이아몬드로 해석하는 것이 맞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금강경의 금강은 무엇이든 부수어버린다는 고대 인도 신화의 무기 이름인 금강저(金剛杵 वज्र Vajra)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금강경의 의미는 절대 부수어 지지 않는 중생의 단단한 인식을 무엇이든 부수는 무기인 금강저로 부수어 버린다는 뜻으로 부처님의 지혜, 설법을 금강저에 비유한 것이다.
이 경전에서는 중생의 인식을 모두 부수어 없애야 부처의 경지에 이를 수 있으므로 중생들이 스스로를 속박하고 있는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모두 공함을 설하고, 부처님의 법마저도 깨달음을 위한 수단일 뿐 목적이 아님을 뗏목의 비유로 설하였으며, 일체의 모든 것이 실상이 아님을 확연히 알고 일체의 모든것에 마음이 머무름이 없는 상태에서 생각과 마음을 일으키고 행하여야 중생이 자신의 인식으로 만들어낸 이 세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음을 직관적으로 설하였다.
3. 역사
금강경의 성립시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학계는 대략 서기전 1세기-서기 1세기[9]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대승불교의 공(空) 사상과 관련된 내용을 설명하면서도 정작 '공'이라는 단어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 보살행에 대해 서술하면서도 '보리심'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점 등으로 미루어, 대승불교 경전 중에서도 상당히 초기에 정립된 경전으로 보는 의견이 많다. 특히 대승경전 특유의 여러 불보살들이 잔뜩 나타나지도 않고, 석가모니와 그의 제자 1250명만 등장한다는 점에서는 초기 불교 경전들과 유사하기까지 하다. 이런 이유로 반야경보다 이전에 성립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간다라 불경에서 발견된 텍스트 중 가장 오래된 불경은 소품반야경(Aṣṭasāhasrikā Prajñāpāramitā)으로 방사성 탄소 연대측정법의 연대가 서기 75년으로 나왔다.[10] 소품반야경이 성립된 때는 기원전 2세기라고 추정한다. 일반적으로 금강경을 반야경 이전에 성립되었다고 여기므로 금강경이 성립된 연대는 더 과거일 수도 있다. 반야경 여기에 아함경에서 공 사상이 나온다는 연구결과도 있는데, 이것까지 고려하면 더 올라갈 수도 있다.[11]
대개 서역승 꾸마라지와(Kumarajiva)[12]가 한문으로 옮긴 판본이 번역본들 중 가장 오래되었다고 인정받는데, 산스크리트어판에 비해 생략된 구절이 많다.[13][14] 이후 보디루치(한자 이름은 '보리류지'), 파라마르타(한자 이름은 '진제'), 현장법사, 의정 등의 번역은 대체로 원전 번역을 충실히 따르는 편이다. 하지만 한문 특유의 운율을 살린 유려한 번역 덕에 한자 문화권 국가에서는 꾸마라지와가 한 번역본이 널리 퍼졌다.
티베트어 역본도 있는데, 8세기말~9세기 초엽에 성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정립된 산스크리트어 판본은 이 티베트어 역본과 아프가니스탄 바미안 석굴에서 발견된 간다라어 역본 등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이다.
내용상으로 석가모니가 금강경의 불법을 설한 장소는 슈라와스띠(Sravasti 舍衛城)[15] 기원정사(祇園精舍)이다. 기원정사의 터에는 지금도 석가모니가 머무르던 방(여래향실) 자리가 있기 때문에, 기원정사 여래향실 앞에서 많은 신자들이 모여 금강경을 합송하기도 한다.
4. 내용
4.1. 길이 및 목차
금강경은 약 6천 단어 정도의 길이로, 불교경전 중에서는 상대적으로 짧은 축에 속한다. 개인 차가 있지만 직접 소리내어 끝까지 읽어 보면 대략 20~30분 정도가 걸리며, 스님들처럼 리듬을 타면서(...) 염불을 하면 40분 가량이 걸린다. 구마라집본에는 한자 총 5149자가 쓰였다.금강경에는 원래 목차 구분이 없었는데, 양무제의 아들 소명태자가 구마라집의 역본 내용을 32개 분(分)으로 나누고 각 분에 소제목을 달면서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이게 유명해져서 되려 후대의 산스크리트 사본들이 이 분류를 따르는 경우도 종종 발견된다. 독송할 때는 소제목은 빼고 읽는다.
4.2. 서사구조
금강경의 전체적인 서사구조는 탁발을 하고 식사를 끝내고 앉은 석가모니에게 수보리(수부티) 존자가 '보살승에 나아가는 사람들은 어떻게 머무르고, 수행하고, 마음을 조복받아야 하는지' 질문하고 석가모니가 그에 대해 대답하는 구조로 전개된다. 한국어 번역본 전문 영어 번역본 전문 라틴어 번역본 전문[16][17]금강경의 대부분은 대화체로 이뤄져 있는데, 이 장면 이후로는 대부분, '부처님이 묻는다 → 수보리가 대답한다 → 부처님이 설명한다 → … 식의 루프를 타는데, 간혹 수보리가 다시 질문을 던진다 → 부처님이 대답한 뒤 다시 묻는다 → 수보리가 대답한다 → 부처님이 설명한 뒤 다시 묻는다 → 수보리가 대답한다 → …(생략)' 식으로 복잡하게 전개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문답구조가 계속 반복된다.
이렇게 비슷한 내용들의 문답이 반복되는 구조에 대하여 워낙 초기 경전으로, 그 시대에는 석가모니 말씀을 제자들이 종이에 받아 적을 수는 없어서 구전 즉 암송하여 전하다 보니 여러 사람들이 암송한 내용들을 모아 만드는 과정에서 반복되는 구조가 되었다고 본다.
... ... ...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모든 보살을 좋게 여겨 보살피시고 모든 보살이 좋게 여겨 의지할 수 있게 합니다. 세존이시여,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을 얻고자 하는 선한 남자와 선한 여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떻게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수보리야. 네 말처럼 여래는 모든 보살을 좋게 여겨 보살피고 모든 보살이 좋게 여겨 의지할 수 있게 한다. 이제 네가 청하니 마땅히 너를 위해 말하리라.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선한 남자와 선한 여인은 이와 같이 살아야 하며 이와 같이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예, 세존이여! 기쁘게 듣고자 합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렇게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이른바 모든 종류의 중생, 알에서 태어나든, 태에서 나든, 습한 곳에서 생기든, 변화로서 생기든, 모습이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생각을 지닌 것이든, 지니지 않는 것이든, 생각을 지니지도 않고 지니지 않는 것도 아닌 것이든, 이 모든 중생을 내가 무여열반에 불러들여 이들을 열반에 이르게 하리라 하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중생을 열반에 들게 하여도, 실은 완전한 열반을 얻은 중생이 아무도 없다. 어째서인가? 만일 보살이 나라는 생각, 남이라는 생각, 중생이라는 생각, 오래 산다는 생각[18]을 지니면 이미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모든 보살을 좋게 여겨 보살피시고 모든 보살이 좋게 여겨 의지할 수 있게 합니다. 세존이시여,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을 얻고자 하는 선한 남자와 선한 여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떻게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수보리야. 네 말처럼 여래는 모든 보살을 좋게 여겨 보살피고 모든 보살이 좋게 여겨 의지할 수 있게 한다. 이제 네가 청하니 마땅히 너를 위해 말하리라.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선한 남자와 선한 여인은 이와 같이 살아야 하며 이와 같이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예, 세존이여! 기쁘게 듣고자 합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렇게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이른바 모든 종류의 중생, 알에서 태어나든, 태에서 나든, 습한 곳에서 생기든, 변화로서 생기든, 모습이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생각을 지닌 것이든, 지니지 않는 것이든, 생각을 지니지도 않고 지니지 않는 것도 아닌 것이든, 이 모든 중생을 내가 무여열반에 불러들여 이들을 열반에 이르게 하리라 하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중생을 열반에 들게 하여도, 실은 완전한 열반을 얻은 중생이 아무도 없다. 어째서인가? 만일 보살이 나라는 생각, 남이라는 생각, 중생이라는 생각, 오래 산다는 생각[18]을 지니면 이미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위와 같이 대화의 처음은 수보리가 질문하여 시작하고 석가모니가 답변과 재질문을 하면서 전개된다.
마지막에는 석가모니가 다음과 같은 '사구게'[19]로 설법을 마치고, 일체 중생들은 이를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한다는 설명으로 경이 끝난다.[20]
- tārakā timiraṁ dīpo/ māyā-avaśyāya budbudaṁ /
supinaṁ vidyud abhraṁ ca/ evaṁ draṣṭavyaṁ saṁskṛtam.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형성된 것은 참으로 이와 같이 보아야 하나니
‘별, 눈의 가물거림, 등불과도 같고
환영, 이슬, 물거품과도 같으며
꿈, 번개, 구름과 같다.’ 라고."[21]
반야심경처럼 금강경에도 경 끝에 산스크리트어 주문이 존재한다. 경을 다 읽은 뒤 읽는 이 주문은 팔만대장경에도 나와 있지만, 생략되는 경우가 많다. 밑은 조계종 표준 진언(한국어 독음-한자)과 산스크리트어 원문, 한국어 해석.[22]
나모바가발제 발라양 바라미다예. 옴 이리지 이실리 수로다 비사야 비사야 사바하.
那謨婆伽跋帝 鉢喇壤 波羅弭多曳. 唵 伊利底 伊室利 輸盧駄 毗舍耶 毗舍耶 莎婆訶
namo bhagavatī prajñāpāramitāyai. oṃ īriti īṣiri śruta viṣaya viṣaya svāhā
세존 반야바라밀에 귀의합니다. 옴, 지움, 불태움, 들음, 경계, 경계, 쓰와하.[23][24]
那謨婆伽跋帝 鉢喇壤 波羅弭多曳. 唵 伊利底 伊室利 輸盧駄 毗舍耶 毗舍耶 莎婆訶
namo bhagavatī prajñāpāramitāyai. oṃ īriti īṣiri śruta viṣaya viṣaya svāhā
세존 반야바라밀에 귀의합니다. 옴, 지움, 불태움, 들음, 경계, 경계, 쓰와하.[23][24]
티베트어본에서는 다음과 같은 좀 더 긴 버전으로 전해지는데, 한 번 이 주문을 읽으면 금강경을 1만 9천 번 읽는 공덕과 같다고 한다. 앞서 한역된 진언이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저런 밀교적인 종자자(bija)가 덧붙어 더 확장된 것일 가능성이 있다. 밑은 로마자 독음.
NAMO BHAGAVATE PRANJAPARMITAYE.[25]
OM NATADTITA. ILISHI. ILISHI. MILISHI. MILISHI. BHINAYAN. BHINAYAN.
NAMO BHAGAVATE PRADATYAM PRATI.[26]
IRITI. IRITI. MIRITI. MIRITI. SHURITI. SHURITI. USHIRI. USHIRI.
BHUYUYE. BHUYUYE. SWAHA
OM NATADTITA. ILISHI. ILISHI. MILISHI. MILISHI. BHINAYAN. BHINAYAN.
NAMO BHAGAVATE PRADATYAM PRATI.[26]
IRITI. IRITI. MIRITI. MIRITI. SHURITI. SHURITI. USHIRI. USHIRI.
BHUYUYE. BHUYUYE. SWAHA
4.3. 금강경의 주제
금강경을 읽다 보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27] 라는 개념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산스크리트어 안웃따라쌈약쌍보디(anuttarā samyak-saṃbodhi)를 음차한 말로 '위없이 올바른 깨달음으로 향하는 마음'을 뜻한다. 석가모니는 금강경에서 이러한 마음을 내기 위해서는 '겉모습이나 현상 및 관념의 덧없음을 알아, 이들에 현혹되지 않은 채로 올바르게 관찰해서 깨달음을 향하는 순수한 마음을 내야'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사실상 이 부분을 금강경의 핵심 주제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금강경 내에서 석가모니는 앞서 수보리의 질문('보살승에 나아가는 사람들은 어떻게 머무르고, 수행하고, 마음을 조복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 육도윤회에 빠진 중생을 남김없이 제도하겠다는 마음을 내는 것
- 보시했다는 마음 없이 보시하는 것
- 온갖 모욕과 번뇌를 감내하고 원한을 일으키지 않는 것
그러면서 석가모니는 '~은/는 사실 ~이/가 아니기에 여래는 이를 ~(이)라고 설(說)했다'라는 설명 구조를 반복하며, 관념에 현혹되어 위와 같은 보살행을 한다면 그건 이미 제대로 된 보살행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보살행을 해도 관념에 현혹되지 않은 상태에서 해야 한다는 이야기.
같은 맥락에서 금강경은 당시 인도에서 유행하던 6가지 철학적 관념을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법상, 비법상'이라는 이름[28]으로 칭하며 비판하고 있다. 각각에 대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29][30]
- '나'를 불변한 실체로 보는 관념(아상)[31]
- 한 생에서 다른 생으로 윤회하는 주체(人, pudgala)가 있다고 보는 관념(인상)[32]
- 중생과 부처를 구분하여 스스로를 포기하는 관념(중생상) 또는 사람들은 죄를 가지고 있으므로 죄를 씻음 받아야 한다는 관념[33]
- 우주의 절대적 생명(jiva)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하는 관념(수자상)[34]
- 세상에 불변의 법칙이 존재한다는 관념(법상)
- 세상에 불변의 법칙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관념(비법상)
고타마 싯다르타는 인도의 오래된 종교체제 아래에서 고통받던 사람들을 구제하고자, 브라만교 사상의 허구성을 무너뜨리고자 한 것이다.
구마라지바 대사가 산스끄리뜨어로 된 금강경을 한문으로 번역할 때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으로 각각 번역한 앗뜨만, 뿓갈라, 삿뜨바, 지바는 금강경 작성 당시 또는 그 전부터 있던 관념인데 금강경에서는 수행자들은 바로 그런 상(임의의 관념)들을 버려야 한다고 한 것이다.
'아'란 산스끄리뜨어로 앗뜨만인데, 아상은 사람에게 영원한 고정 불변의 실체 즉, 앗뜨만이 있다는 임의의 관념을 갖는 것이다.
'인'이란 산스끄리뜨어로 뿓갈라인데, 인상은 고타마 싯다르타 사후에 부파 불교에서 주창한 개념으로서 사람에게 앗뜨만은 아니지만 그와 다른 고정 불변하는 실체가 있다는 임의의 관념을 갖는 것이다. 현장 대사는 구마라지바 대사가 인상으로 번역한 뿓갈라를 한문으로 번역하지 않고 보특가라로 썼다. 적절한 번역이 없었기 때문이다.
'중생'이란 산스끄리뜨어로 삿뜨바(존재하는 상태)인데, 중생상은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나쁜 것들을 가지고 있다는 임의의 관념을 갖는 것이다.
'수자'란 산스끄리뜨어로 지와 또는 지바(생명)인데, 자이나교에서 브라만교의 앗뜨만에 해당하는 개념이다.
그런데, 금강경 번역 당시 인도에만 있었고 중국이나 한국에 없던 이 개념을 당시 중국인들이나 한국인들에게 논할 필요가 없었다고 본다.
그러니 금강경은 엄밀히 말하면 인도사람들만 가진 사상을 반박한 것이므로 중국이나 한국에는 필요없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금강경에서는 아라한에 대해 '아라한의 경지를 얻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이미 삿된 생각에 빠져 있기 때문에 애초에 아라한이 아니다'라는 서술이 있다. 이 부분은 상좌부 불교에서 아라한의 권위를 절대화하는 것을 비판하는 구절로 해석된다. 그러면서도 대승불교 특유의 보살의 10지(bhumi) 과위를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은 성립연대가 대승경전 중에서도 오래되었음을 시사한다.
그 외에도 상(산냐)을 가지지 말아야 할 대상으로, 이 경에서는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 장엄, 대신(큰 몸), 반야바라밀, 세계, 32상, 바라밀, 마음, 구족함, 설법, 중생,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선한 법, 범부, 미진, 일합상, 법상 등 부파불교에서 폭넓게 논의되던 온갖 개념어를 언급하고 있다.
'깨달았다 할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깨달았다는 것이다'라는 부분도 수차례 나오는데, 이러한 부분은 대승 불교의 공(空) 개념을 나타낸 것으로 해석되곤 한다.
금강경을 읽다 보면 '만약 이 중에 사구게라도 지녀 읽고 전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공덕은 탑묘[35]를 치장하는 것보다 크고도 클 것이다'라든지,[36] '갠지스 강의 모래 알갱이의 수만큼 보시를 하더라도, 이 경의 사구게를 지녀 읽고 전파하는 사람의 공덕이 그보다 훨씬 더 크다'는 구절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금강경 중에서도 사구게만을 따로 독송하는 사람이 예나 지금이나 많은 데는 이 구절들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4.4. 사구게
4.4.1. 제1구게
[ruby(凡, ruby=범)][ruby(所, ruby=소)][ruby(有, ruby=유)][ruby(相, ruby=상)] [ruby(皆, ruby=개)][ruby(是, ruby=시)][ruby(虛, ruby=허)][ruby(妄, ruby=망)] [ruby(若, ruby=약)][ruby(見, ruby=견)][ruby(諸, ruby=제)][ruby(相, ruby=상)][ruby(非, ruby=비)][ruby(相, ruby=상)] [ruby(則, ruby=즉)][ruby(見, ruby=견)][ruby(如, ruby=여)][ruby(來, ruby=래)]
모든 형상 있는 것은 모두가 허망하니 모든 형상을 본래 형상이 아닌 것을 알면 곧 진실한 모습을 보게 된다.
모든 형상 있는 것은 모두가 허망하니 모든 형상을 본래 형상이 아닌 것을 알면 곧 진실한 모습을 보게 된다.
4.4.2. 제2구게
[ruby(不, ruby=불)][ruby(應, ruby=응)][ruby(住, ruby=주)][ruby(色, ruby=색)][ruby(生, ruby=생)][ruby(心, ruby=심)] [ruby(不, ruby=불)][ruby(應, ruby=응)][ruby(住, ruby=주)][ruby(聲, ruby=성)][ruby(香, ruby=향)][ruby(味, ruby=미)][ruby(觸, ruby=촉)][ruby(法, ruby=법)][ruby(生, ruby=생)][ruby(心, ruby=심)] [ruby(應, ruby=응)][ruby(無, ruby=무)][ruby(所, ruby=소)][ruby(住, ruby=주)] [ruby(而, ruby=이)][ruby(生, ruby=생)][ruby(其, ruby=기)][ruby(心, ruby=심)]
형색에 머뭄이 없이 마음을 내어야 하고,
소리·냄새·맛·감촉·마음의 대상에도
머뭄이 없이 마음을 내어야 한다.
마땅히 머뭄이 없이 그 마음을 내어야 한다.
형색에 머뭄이 없이 마음을 내어야 하고,
소리·냄새·맛·감촉·마음의 대상에도
머뭄이 없이 마음을 내어야 한다.
마땅히 머뭄이 없이 그 마음을 내어야 한다.
4.4.3. 제3구게
[ruby(若, ruby=약)][ruby(以, ruby=이)][ruby(色, ruby=색)][ruby(見, ruby=견)][ruby(我, ruby=아)] [ruby(以, ruby=이)][ruby(音, ruby=음)][ruby(聲, ruby=성)][ruby(求, ruby=구)][ruby(我, ruby=아)] [ruby(是, ruby=시)][ruby(人, ruby=인)][ruby(行, ruby=행)][ruby(邪, ruby=사)][ruby(道, ruby=도)] [ruby(不, ruby=불)][ruby(能, ruby=능)][ruby(見, ruby=견)][ruby(如, ruby=여)][ruby(來, ruby=래)]
형색으로 나를 보거나,
음성으로 나를 찾으면,
삿된 길 걸을 뿐,
여래 볼 수 없으리.
형색으로 나를 보거나,
음성으로 나를 찾으면,
삿된 길 걸을 뿐,
여래 볼 수 없으리.
4.4.4. 제4구게
[ruby(一, ruby=일)][ruby(切, ruby=체)][ruby(有, ruby=유)][ruby(爲, ruby=위)][ruby(法, ruby=법)] [ruby(如, ruby=여)][ruby(夢, ruby=몽)][ruby(幻, ruby=환)][ruby(泡, ruby=포)][ruby(影, ruby=영)] [ruby(如, ruby=여)][ruby(露, ruby=로)][ruby(亦, ruby=역)][ruby(如, ruby=여)][ruby(電, ruby=전)] [ruby(應, ruby=응)][ruby(作, ruby=작)][ruby(如, ruby=여)][ruby(是, ruby=시)][ruby(觀, ruby=관)]
일체 모든 유위법은,
꿈·허깨비·물거품·그림자·이슬·번개 같으니,
이렇게 관찰할지라.
일체 모든 유위법은,
꿈·허깨비·물거품·그림자·이슬·번개 같으니,
이렇게 관찰할지라.
5. 취급
선종의 6대 조사 혜능이 금강경 중 '응무소주 이생기심(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야 한다)' 이라는 구절을 듣고 깨달음을 얻은 것으로도 유명하며, 혜능은 제자들에게 금강경을 독송하는 것을 수행법으로 권하기도 했다. 선종의 공안집에서도 금강경이 자주 인용된다. 이러한 전통 때문에 금강경은 대한불교조계종의 소의경전이기도 하며, 한국에서는 금강경을 중점으로 수행하는 수행 공동체들도 있을 정도다. 또한 불교의 경전임에도 불구하고 원불교에서도 경전으로 채택했다.[37] 그러나 다른 경전에 비하면 내용이 난해하다 시피해서 초보 불자가 불교 입문으로서 접하기에는 다른 경전에 비해선 난이도가 높은 편이니 주의가 요구되는 바이다.백중(우란분절)에 영가를 위해 읽어주는 대표적인 경전이다. 이는 영가가 이미 윤회하여 태어난 상태라고 보기 때문에 복덕을 지어주기 위한 것이다. 임종 후 49재에 읽어주는 경전의 위치는 아미타경이 차지하고 있다.
상좌부 불교에서 내용상으로 크게 문제삼지 않는 몇 안되는 대승 경전 중 하나이기도 하다. 상좌부에서는 반야심경에 대해서도 무아와 공성에 대한 설명에 대해서는 그 의의를 큰 틀에서 공감하지만, 관세음보살의 부각, '공즉시색'에 대한 입장 차이, 공(sunyata)에 대한 상좌부와의 정의 차이[38] 등으로 인해 그 내용을 전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그에 비하면 금강경은 외형상으로나마 상좌부 경전과 비슷한 구성을 띠고 있고,[39] 십지보살에 대한 주장 없이 수다원~아라한의 네 가지 도과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며, 상(想, 산냐/삼즈냐)의 타파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상좌부와 맥을 같이하는 부분이 여럿 있다. 다만 산냐의 정의에 대해 약간의 차이가 있다. 상좌부에서는 관찰에 뒤따라 생기는, 대상에 대한 인식 작용 + 나중에 대상을 인식하기 위해 마음에 인상을 각인하는 작용에 가까운 뜻으로 산냐를 정의하는 반면, 대승에서는 '범주화 및 개념화 작용'에 초점을 두고 삼즈냐를 풀이한다. 즉 언어학적인 측면이 상좌부의 산냐보다 조금 더 강하다. 상좌부에서는 담마(실상)에 대한 관찰이 미세하지 못하면, 마치 판단력이 미성숙한 아이처럼 산냐가 그릇되게 발휘되므로, 담마를 투철하게 관찰해서 그릇된 산냐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을 주문한다. 반면 대승은 설일체유부 및 힌두 외도들과의 논쟁을 통해 자성(svabhava) 개념을 타파하는 과정에서 형성되었기 때문에, 삼즈냐를 '언어를 통한 일상적/철학적 개념화'에 가까운 의미로 자주 논하며 이를 소멸할 것을 가르치게 되었다.
또한 상좌부 불교에서는 금강경의 '무주상 보시'에 대해서도 의견을 약간 달리한다. 보시하는 '자아'가 있다는 관념이 그릇된 것임은 상좌부에서도 인정하며, 《탐욕 있음 경》(Atthiragasutta, SN 12.64)에서도 금강경 제4분과 매우 유사한 서술이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상좌부에서는 보시로 인한 과보에 대해서는 올바로 알고서 보시해야 한다고 본다. 이는 동아시아에서의 '무주상 보시'에 대한 흔한 설명인 "보시했다는 생각 없이 보시하라"와는 반대되는 개념이다. 사실 산스크리트본 금강경에서도 무주상 보시는 삼즈냐에 얽매인 채 보시하는 것을 경계하라는 맥락으로 쓰여있을 뿐, "보시했다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식으로 한정해서 설명하지는 않는다. 다만 대승은 보시의 과보를 기대하는 마음에 대해서도 '색(rupa)'에 대한 집착의 일종으로 보기 때문에, 보시의 과보에 대해서도 기대하거나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고 여긴다.
6. 기타
- 티베트어로 번역되어 유통된 반야부 경전 중에는 금강경의 주석서인 《불설대승금강경론》이라는 문헌이 있다. 이 논서는 문수보살이 금강경에 등장하는 각종 개념어의 정의에 대해서 붓다에게 질문하고, 붓다가 답하는 형식으로 기술되어 있다. 설명이 명쾌하여 능엄경에 대한 해설인 《능엄경오온마상해설》에서도 자주 인용되고 있다.
- 익산시 왕궁리에서 발견된 유물들 중 고려 시대 은제도금 금강경 판본(국보 제123-1호)이 전주시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백제 무왕 연간에 제작되었거나, 6세기에 만들어진 무령왕릉지석이나 왕흥사 사리감 명문과 필법이 비슷하고, 6세기부터 7세기 초까지 유행한 이체자가 쓰였다는 점에서 위덕왕 때까지도 소급할 수 있다고 보기도 한다. 사용된 경전은 훨씬 오래된 고본(古本)으로 보인다고.
- 제4대 대한민국 내무부 장관을 역임한 불교계 인사 백성욱은 초기에는 화엄경을 위주로 수행하다가, 금강경 독송을 위주로 한 수행 운동을 일으켜서 20세기 후반 재가불자들 사이에서 꽤 인지도가 있었다. 그는 금강경에서 중시하는 '무주상보시'와 '상의 타파'를 불자들이 동시에 실천할 수 있도록, 마음 속의 온갖 생각들과 감정 등을 부처님에게 '바치라(공양하라)'는 수행법을 고안해서 가르쳤고 본인도 그에 따라 수행했다.[43]
- 박정희 전 대한민국 대통령을 저격한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은 독실한 불자였는데,[44] 그는 수감 중 옥중 수양록 갈피에 금강경의 한 구절인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45]을 흰색 종이에 적어 끼워놓았다.[46]
- 한국 영화의 희대의 망작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을 감독한 장선우는 이 영화가 망하고 나서도 '제작비 100억 보시한 셈 치자, 그래도 금강경은 세상에 알리지 않았냐' 라는 개드립을 날리기도 했다.
그게 금강경하고 대체 무슨 상관이야?!
- 의천도룡기에서 은근히 자주 언급되는 경전이기도 하다. 도액이 사손에게 금강경을 들려주어 깨달음을 얻게 하거나, 사손이 심마에 빠져든 장무기의 정신을 차리게 하기 위해 금강경을 읊어주기도 하는 등.
- 위에 서술되었듯이 금강경을 통한 수행법이 다양하다 보니 금강경의 메시지와 비즈니스를 연결시킨 자기계발 서적도 집필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자기계발서의 문제점을 고려하면 설득력이 없어 보이며 그저 헛소리에 불과하니 안사는 편이 좋다.
- 종로도서관 고문헌 검색시스템에서 원문 확인이 가능하다.[47]
- 영화 카일리 블루스의 서두에 삽입되었다. 18장 일체동관분(一體同觀分)의 일부 내용이다.
- 한자문화권에 속한 나라별로 조금씩 글자 차이가 존재한다. 신속함과 현장성을 주로 나타내는 부사이자 계사처럼 쓰이기도 하는 卽과, 인과관계를 주로 나타내는 접속사인 則을 여기저기에서 혼용한다든가, 제2분의 '응운하주'도 중화권에서 통용되는 판본에서는 '운하응주'로 되어 있는 식이다. 근대 중국에서 불교 연구에 크게 공헌한 강미농 거사는 필사 과정을 거치면서 금강경에 이런저런 글자 누락이나 가필이 있었던 점을 지적하며, 구마라집 당시의 번역 원본을 구성하는 시도에 힘썼다.
- 금강경 내 곳곳에 등장하는 樂자를 좋아한다는 뜻의 '요'로 읽어야 할지 즐거워한다는 뜻의 '락'으로 읽어야 할지에 대해서도 의견 차이가 존재한다. '락'은 단순히 쾌불쾌에 해당하지만(=受, vedana),[48] '요'는 그로 인해 호불호가 생겼다(=愛, trsna)는 의미이므로, 불교계에서는 12연기설에 따라 중요한 차이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일단 중화권에서는 대부분 '요'에 대응되는 발음으로 읽는 것이 관행이다. 이를 옳지 않다고 보는 사람들은 '락'이라고 읽기를 선호하거나 가르치는데, 대표적인 사례로 근대 불교계 인사 백성욱이 있었다.
7. 관련 문서
[1] 로마자 표기는 Vajracchedikā Prajñāpāramitā Sūtra. 한글 표기는 한국불교학회 산스크리트어 표기법에 따라 음역함.[2] 거룩한 반야바라밀의 금강으로 끊어버린다고 하는 대승의 경전이라는 뜻이다. 와일리식 로마자 전사는 ’phags pa shes rab kyi pha rol tu phyin pa rdo rje gcod pa zhes bya ba theg pa chen po’i mdo. 티베트어 한글표기안을 따름.[3] 반야 지혜 저 언덕에 도달한 금강경이라는 뜻이다.[4] '반야'는 지혜를 의미하며, '바라밀'은 깨달음을 위해 실천해야 하는 수행을 뜻한다.[5] 인도 신화에 나오는 인드라가 휘두르는 번개를 가리킨다. 자세한 내용은 금강저 문서 참고.[6] 영어로 The Diamond Cutter Sutra인 이유이기도 하다.[7]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푸는 것.[8] 보시바라밀, 인욕바라밀, 지계바라밀, 정진바라밀, 선정바라밀, 지혜바라밀 등 6가지 바라밀을 말한다.[9] 학자에 따라서는 사용된 어휘 등을 바탕으로 추측해 성립연대를 기원전 1세기까지 높여 잡기도 한다.[10] 현존하는 불경 중 가장 오래된 경전은 상좌부 경전이 아니라 대승경전이다. 소품반야경은 팔천송반야경으로도 불린다.[11] 링크에 논문에는 반야경이 나오나, 금강경은 대반야경 안에 <능단금강품>이라는 이름으로 있다.[12]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한자식 음역으로 구마라집, 혹은 구마라습이라고 부른다. 한자로는 鳩摩羅什이라고 쓰는데, 마지막 글자 , 什을 '습'이라고도, '집'이라고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 한문문화권에 알려진 최초의 삼장법사이다.[13] 사실 산스크리트판도 바미안 석굴에서 발견된 금강경 판본 등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이라고 한다.[14] 일본의 불교학자 나카무라 하지메(中村元)에 따르면 꾸마라지바가 번역 저본으로 사용한 텍스트가 이후에 재정립된 산스크리트 텍스트보다 더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15] 한국의 지명이 불교용어에 영향을 받은 경우가 많은데 슈라와스띠가 서라벌로 음역되었다는 설이 있다. 슈라와스띠를 현장은 실라벌실저(室羅伐悉底)로 음역하였는데, 여기서 신라와 서라벌이란 단어가 나왔고, 가야도 허황옥이 인도에서 불교를 도입하면서 이름 붙였다는 설이 있다. 학계의 정설은 아니고 고대의 일이라 정확한 연원은 알기 힘들다.[16] 한국어 번역이라도 한자어가 이해하기 불편하면, 영어로 된 금강경 텍스트도 같이 보는 것이 더 이해하기 편하다.[17] 참고로 산스크리트어본에는 부처라는 말은 잘 나오지 않는다. 수보리(수부티)가 석가모니를 칭할 때는 세존(Bhagavān)을, 석가모니가 자신을 칭할 때는 여래(Tathāgata)를 사용한다. Bhagavān은 보통 세존(World honored one)으로 해석된다. 번역자에 따라 Lord, Blessed One으로 쓰이기도 한다. 쿠마라지바가 번역한 금강경에는 Bhagavān가 佛(부처)로도 쓰여졌는데 중국의 대중에게 익숙하도록 배려한 번역이라는 설이 있다. 산스크리트어본 번역 영어본[18]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sattva-samjnā), 수자상(壽者相: Jiva-samjnā)을 자아가 있다는 관념, 개아(개별적 존재의 자아)가 있다는 관념, 생명의 본체가 존재한다는 관념, 윤회하는 영혼이 있다는 관념으로 보기도 함.(자세한 내용은 금강경의 주제 참고)[19] 산스크리트어로는 쉴로까(Śloka)라고 하며, 1구 8음절씩 4구로 구성된 인도의 운문 형식이다. 꾸마라지와판 번역에는 5언절구로 번안했다.[20] 법문을 시작할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비구 천이백오십 명과 함께 계셨다."로 시작하지만 마지막에는 "부처님께서 이 경을 다 말씀하시자 장로 수보리와 모든 비구 · 비구니 · 우바새 · 우바이, 모든 세상의 천신 · 인간 · 아수라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믿고 받들어 행하였다."로 끝난다. 시작은 비구(남자승려)들과 했지만 끝맺음은 비구니(여자승려)를 포함한 일체 중생과 함께했다.[21] 꾸마라지와 번역에서는 꿈, 환영, 물거품, 그림자, 이슬, 번개 6가지 비유만 나온다.[22] 비전공자가 어미변화 등을 고려하지 않고 산스크리트어 사전을 보고 임의로 해석했기 때문에 다소 오류가 있을 수 있다.[23] 쓰와하는 인도 전통에서 그리스도교의 '아멘'처럼 사용되는 말이다.[24] 이 진언은 산스크리트 원본이 사라지고 한역만 남았기 때문에 둘째 부분을 hrīh śrī śruti vijaya svāhā로 재구성하는 의견도 있다. 산스크리트 진언에서 '흐리히', '슈리'는 대개 종자자의 역할을 하므로 해석하지 않지만, 굳이 직역한다면 '참회', '깨끗함'을 뜻한다. '비자야'는 '승리/성취'를 뜻한다.[25] 세존 반야바라밀에 귀의합니다.[26] 충만하게 보답하여 베풀어주시는 세존께 귀의합니다.[27] 참고로 이 말을 한자로 음차할 때 쓰이는 한자 '뇩' 자와 '먁' 자는 컴퓨터로 입력하려면 각각 누(耨) 와 막(藐)으로 들어가야 한다. 한자 문서 참조.[28] 구마라집 번역본 기준.[29] 밑은 산스크리트어 원전 번역 및 주해를 참조한 것이다. 6조 혜능 조사는 앞의 4가지 상에 대해 많이 다른 해석을 내놓기도 했는데, 링크 참조. 금강경 중 가장 해석이 분분한 부분이 바로 이 4가지 상에 대한 내용이며, 특히 한자 문화권에서 심하다.[30] 4상이나 6상이 아니라 9상으로 분류한 번역본도 있다.[31] 힌두교의 아트만 사상이 대표적인 예.[32] 한자문화권에서는 '인간은 다른 축생과 다르며, 만물위에 군림한다는 관념'으로 풀이하는 경우가 많았다.[33] 타고난 몸의 종류에 따라 성불 여부가 결정된다고 믿는 관념으로 풀이되기도 한다.[34] 자이나교의 교리와 관련이 깊다.[35] 산스크리트로는 짜이뜨야(caitya)라고 한다. 스뚜빠(stupa)와 달리, 붓다나 불제자의 사리 대신 발우나 경전 등을 보관했다. 하지만 후대로 가면서 경전에 담긴 가르침(dharma) 자체가 곧 붓다와 같다는 인식이 불자들 사이에 널리 퍼지면서 스뚜빠와 짜이뜨야는 서로 혼용되었다. 이 개념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불교학자들은 이 경전이 성립되었을 당시 불자들 사이에서 탑묘 공경이 보편화 되어 있었을 가능성에 주목한다.[36] 금강경의 성립에는 대중부 불교 부파 중 서산주부가 크게 관여했는데, 서산주부에서는 탑묘 신앙에 큰 공덕이 없다고 설했다.[37] 스님도 아니었고 깨달음을 얻기 전까지 불교 공부를 한 적도 없는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가 불법으로 새 세상을 열겠다고 천명한 계기가 된 것이 금강경이다. 깨달음을 얻은 뒤 금강경을 접하고, 석가모니 부처님을 성인 중의 성인으로 모시고 연원을 대었다.[38] 상좌부의 공은 여러 번뇌가 '없는 상태'를 뜻한다. 반면 대승에서의 공은 '고정된 자성이 없음'을 뜻한다.[39] '보살마하살'이 언급되긴 하지만, 여타 대승 경전에서에 비해 특정 보살의 존재를 부각하지 않는다. 여기서의 보살들은 설법을 듣는 대중의 일원일 뿐이다.[40] 한문식 불교용어를 전혀 몰라도 이해하기 편하다. 총 12강이다.[41] 금강경 법문에 앞서, 용수보살의 대승 불교 전반에 관한 주석, 티벳불교의 입보리행론 등에 대한 내용을 먼저 이야기했다. 상당히 지루한 편이다.[42] 원문은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으로 풀이하면 "일체의 모든 법이 꿈이자 환상이요 물거품이자 그림자와 같고, 이슬과 같고 또한 벼락과 같으니, 마땅히 (세상만사를) 이와 같은 것으로 대하고 받아들일지니라."[43] 백성욱은 생전에 미륵존여래불의 명호를 기본으로 부르면서 바치되, 석가모니불이나 금강반야바라밀경을 염해도 되며, 특정한 부처님의 상을 그리지는 말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마음을 바치라고 가르쳤다.[44] 원래는 무종교였지만, 수감된 뒤에 불교에 귀의했다.[45] (보살은) 색/성/향/미/촉/법 등 어느 곳에도 머무르지(집착하지) 않는 마음을 나게 해야 한다.[46] 그가 평소 알력이 있었고 박정희 전 대통령에 앞서 저격했던 차지철이 독실한 크리스천이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묘한 부분이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은 불자였다.[47] 내용은 금강경 원문보다 한 단을 내려서 다섯 선사의 풀이를 적은 내용이 있고‚ 그 밑에 함허 득통의 설의를 첨가하였다. 『金剛般若波羅蜜經五家解』의 초기 간본으로 알려진 것은 세조 3년(1457) 금속활자인 정축자(丁丑字)와 갑인자(甲寅字)로 간행된 것이다. 금강경 원문 큰 글자는 정축자, 선사의 풀이와 설의는 갑인자 중자(中字) 소자(小字)로 각각 인쇄하였다. 정축자본 이후에 이 책의 번각본이 유통되었는데, 알려진 것으로 1537년 전라도 금산 신음산(神陰山) 신안사(身安寺) 간본, 1665년 전라도 순천 영축산(靈鷲山) 흥국사(興國寺), 1680년 묘향산(妙香山) 보현사(普賢寺) 등 16세기와 17세기에 번각한 판본이 몇 종 남아서 전해진다. 종로도서관 소장본은 정축자와 갑인자본의 번각본 계열로 1680년 묘향산 보현사 간본이다.[48] 맥락에 따라서 법열(法悅)이나 환희심 등을 지칭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