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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0-03-14 13:22:45

티베트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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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종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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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교 티베트 불교 }}}}}}

영어 Tibetan 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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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
2.1. 라마교?2.2. 정통 대승 불교의 후계자2.3. 종파
2.3.1. 닝마빠2.3.2. 까규빠2.3.3. 사꺄빠2.3.4. 겔룩빠2.3.5. 조낭빠2.3.6. 복식
3. 특징
3.1. 정교한 현교(顯敎)의 교학3.2. 밀교의 흥성3.3. 자비와 보리심의 강조
4. 한국 불교와의 교류
4.1. 인적 교류4.2. 문화 교류
5. 수행 체계
5.1. 연원5.2. 스승의 중요성5.3. 마음 동기의 중요성5.4. 삼사도(三士道)5.5. 결론
6. 강원의 교육과정
6.1. 기초 과정6.2. 5대 경전 과정6.3. 강원 과정 이후
7. 환생자(뚤꾸) 제도
7.1. 환생자 제도의 토대
7.1.1. 삼신사상과 보살사상7.1.2. 윤회와 업
7.2. 환생자 선정과 교육7.3. 환생과 과학적 회의주의7.4. 도전과 위기7.5. 비판
7.5.1. 반론
8. 지역별 보급
8.1. 대한민국8.2. 중화권 및 티베트8.3. 네팔8.4. 부탄8.5. 몽골8.6. 러시아8.7. 인도8.8. 기타 전세계
9. 여담

허공계가 남아 있는 한, 중생이 머무는 한, 저 또한 여기 머물러 중생의 고통을 소멸하게 하소서.
- 《입보살행론》 〈회향품〉
의지하여 나타나기에
멸함도 없고 생겨남도 없다.
끊어짐 없고 영원함도 없다.
옴이 없고 감이 없다.
하나도 아니고 다름도 아니다.
희론(戱論)의 적멸함 설하신 최상의 설법자,
원만구족하신 부처님께 절하옵니다.
- 《중론》의 부처님 찬탄 게송.[1]

1. 개요

티베트를 중심으로 발달한 불교의 한 종파. 주된 분포 지역은 중국(중국령 티베트 포함), 부탄, 몽골(중국령 내몽골자치구 포함), 러시아의 몇몇 공화국(칼미크 공화국, 부랴트 공화국, 투바 공화국) 등이며, 세계 각지에서도 많이 믿는 불교 종파이다. 티베트 불교를 밀교라고 분류하기도 하지만, 엄밀히 말해 티베트 불교는 대승의 현교와 밀교를 모두 포괄하므로 대승 불교로 분류하는 것이 옳다.

2. 상세

2.1. 라마교?

과거 '라마교'라고 통칭되었고 현재에도 간간히 그렇게 불리나 엄밀히 말해 비하적인 표현이다. 라마교라는 것 자체가 라마를 섬긴다는 뜻을 내포하는데, 밀교의 영향이 강한 티베트 불교의 관습으로 붓다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전해주며 자신을 깨달음으로 이끌어주는 스승(라마)을 붓다와 하나로 보기 때문에 그렇게 통칭되었던 것.

하지만 이 단어가 인도 불교와 티베트 불교 사이의 연관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잘못 비쳐질 수 있기 때문에, 서양[2] 및 한국 학계에서도 라마교 혹은 라마불교라는 용어 대신 티베트 불교로 용어를 고치고 있다.

테라바다(상좌부 불교), 마하야나(대승 불교)에 이어 바즈라야나(금강승)라는 이름으로 칭하기도 한다. 금강승은 일본의 같은 밀교 종파 중 진언종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2.2. 정통 대승 불교의 후계자

7세기 송첸감포 왕 때 처음 티벳에 불교가 전해지고 8세기 티송데첸 왕이 불교를 국교로 정하면서 티벳에 불교가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대승 불교가 번성하였던 북인도, 중앙아시아와 가까운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티벳에서는 인도로부터 유입된 정통 대승불교가 흥성할 수 있었다.

불교가 티벳에 도입되던 초기에는 당나라의 영향으로 티벳에 인도불교와 중국불교가 공존하던 시기도 있었다. 당시 티벳에는 인도불교를 수용할지 중국불교를 수용할지 여부를 두고 여러 이견이 있었다. 티송데첸 왕의 중재로 중국 북선종 계열의 승려인 화상[3] 마하연(摩訶衍)과 인도불교를 대표하는 논사 까말라쉴라(Kamalashila)가 티벳 최초의 불교 사원인 쌈예(bSam yas)사원에서 논쟁을 벌인 끝에 까말라쉴라가 승리하면서 인도불교가 티벳에서 주류로서의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4]

왕가의 후원 하에 대대적인 번역작업이 진행되면서 티벳에는 설일체유부의 계율, 아비달마, 《현관장엄론》계열의 바라밀 전통, 중관과 유식의 제 논서, 불교논리학(인명학), 밀교 등 인도불교의 모든 전통들이 그대로 티벳에 전해질 수 있었다. 이러한 번역작업 덕택에 티벳불교는 초기불교, 부파불교, 대승현교, 대승밀교를 포괄하는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교학체계를 갖출 수 있었다.

또한 히말라야를 사이에 두고 티벳과 인도 간의 인적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대표적으로 린첸상포(958~1055)와 마르빠(1012~1096)와 같이 구법을 위해 티벳에서 인도로 넘어와 불교 문헌을 수집하고 인도인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인물들이 있었다. 반대로 인도에서 힌두교의 부흥과 이슬람의 확장을 피해 히말라야를 넘어 티벳으로 넘어온 아티샤(982~1054)같은 인도인 스승들도 있었다.

무슬림의 진출 이후 인도 땅에 불법이 사라지면서 티벳 불교는 인도 정통 대승불교의 마지막 계승자로 평가받고 있다. 티벳 불교 스스로도 인도 최대 불교대학이었던 날란다(Nalanda) 대학의 학통(學統)을 계승하였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2.3. 종파

티베트 불교는 크게 4개의 종파로 나뉜다. 닝마빠(རྙིང་མ་, Wyl. rnying ma "오래된"), 싸꺄빠(ས་སྐྱ་, Wylie: sa skya, "하얀 땅"), 까규빠(བཀའ་བརྒྱུད།, Wylie: bka' brgyud "구전 전승의"), 겔룩빠(དགེ་ལུགས་, Wyl. dge lugs "위대한" )가 그것이다.[5]

티베트불교의 종파를 나누는 가장 큰 기준은 구파(舊派, nyingma)신파(新派, sarma)이다. 닝마빠(rny-ing ma pa)는 일반적으로 한국에서는 구파(舊派) 또는 고파(古派)로 번역되는데, 기원을 따진다면 티베트의 모든 불교 종파 가운데 가운데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후에 일어난 사캬, 까규, 겔룩, 조낭 등 모든 티베트의 종파들은 신파(新派)에 속한다.

구파와 신파를 나누는 기준은 경전의 번역인데, 티벳에 인도불교가 도입되던 7~8세기에 티베트의 법왕들에 의해 후원을 받아 이루어진 번역을 구역(舊譯)이라 하고 후에 10~11세기 지방 귀족 세력의 지원을 받아 이루어진 번역을 신역(新譯)이라 한다.

각 종파 간에 정치적 대립이 빈번하였지만 각 종파의 고승들은 종파를 막론하고 존경의 대상이었으며, 다른 종파의 학승이 자기 종파의 교리를 배우는 것을 막지도 않았다. 종파 간의 경쟁적 발전과 더불어 상호 이해와 존중이 이루어지고 활발한 교류가 있었다
종파 주요 수장 승려[6]의 결혼 경전의 번역
닝마빠(རྙིང་མ་, Wyl. rnying ma "오래된") 전통적으로 없음 가능 구파(舊派, nyingma)
까규빠(བཀའ་བརྒྱུད།, Wylie: bka' brgyud "구전 전승의") 카르마파
까루 린포체
가능[7] 신파(新派, sarma)
싸꺄빠(ས་སྐྱ་, Wylie: sa skya, "하얀 땅") 사캬 티진 가능[8]
겔룩빠(དགེ་ལུགས་, Wyl. dge lugs "위대한" ) 달라이 라마
판첸 라마
불가

2.3.1. 닝마빠

닝마(nyingma)는 '오래된'이란 뜻으로 말 그대로 티벳의 종파중 가장 먼저 생겨난 종파이다. 8세기 티송데쩬 왕은 당시 네팔에 머물고 있던 인도 날란다 승원의 승려 샨따락쉬따를 초청하면서 밀교승인 빠드마삼바와를 대동했다. 빠드마삼바와는 밀교행을 통해 티베트의 토속 종교인 뵌교의 신도뿐만 아니라 티베트의 토속신들을 제압하여 불교에 귀의하도록 만들었다. 이에 샨따락쉬따는 왕실의 후원하에 삼예사(bsam yas dgon pa)를 건립하고 티베트의 첫 승단을 만들었다. 닝마빠는 이때 샨따락쉬따가 대동했던 밀교승 빠드마삼바와와 그의 가르침을 그 중심으로 삼는다.

닝마빠는 견해, 수행, 행위, 결과 중 견해를 강조하는 종파로 유명하다. 닝마빠의 전승으로는 석가모니로부터 내려오는 전승인 까마(kama)와 빠드마삼바와와 그의 제자들이 비장(秘藏)하고 시절인연에 따라 발견되는 전승인 뗄마(terma)[9]가 있다. 또한 독자적으로 현교와 밀교를 9개의 승으로 구분한 구부승(九部乘) 체계를 갖추고 있다.

2.3.2. 까규빠

까규란 ‘구전의 전통(口傳傳統)’이라는 뜻이다. 11세기 인도의 밀교 요기 띨로빠(tilopa)를 시조로 삼는다. 띨로빠는 나로빠(nāropā)를 가르쳤다. 티베트인 역경사 마르빠 로짜와[10](marpa lotsawa)는 역경사 독미 로짜와 샤꺄예쉐에게 가르침을 받은 후 인도의 날란다 사원에서 나로빠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전수받았다고 한다. 마르빠의 가르침인 마하무드라(mahāmudrā)는 이후 밀라레빠(milarepa)를 거쳐 까규빠로 성립된다.

까규빠는 명상, 구루 요가와 같은 실수행을 강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까규빠는 다시 4대8소로 나뉘어지는데 이중 둑빠까규, 디꿍까규, 깔마까규, 바롬까규, 딱룽까규 5개 종파가 남아있다. 까루 린뽀체가 속한 상빠 까규는 4대8소에 속하지 않는 별도의 법맥이지만 까규빠와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2.3.3. 사꺄빠

까규빠와 마찬가지로 나로빠의 가르침 그 기원을 두고 또한 독미 로짜와라는 같은 스승으로부터 출발한 사꺄빠는 까규빠와 다른 특징들을 보인다. 사꺄빠의 경우 쾬(khon) 일족 자체가 종파가 된 독특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회색 땅을 뜻하는 사꺄(sa skya) 지방의 일족인 쾬 일족의 쾬 꾄촉겔뽀(khon dkon mtshog rgyal po)를 종조로 하는 사꺄빠 역시 밀교 전통에 근거한다. 사첸 꾄촉겔뽀는 인도에서 요기 나로빠와 밀교승원인 비끄라마쉴라(vikramaśīla)에서 공부했다고 하는 독미 로짜와로부터 헤바즈라 딴뜨라에 근거한 람데(lam ’bras) 전통을 배운다. 수행의 길과 그 결과 사이의 관계에 대한 깊은 성찰을 밀교에 바탕을 두고 논하는 람데 전통은 사꺄빠의 핵을 이루는 중심 교리이다.

사꺄빠의 다른 특징으로는 불교 논리와 중관사상에 대한 깊은 이해라고 할 수 있다. 설명할 겔룩빠와 경쟁구도를 형성한다. 사꺄빠는 티베트 정치의 중심에 서기도 했으며 몽골의 불교 전통을 만드는 데도 큰 영향을 미친다. 원나라 때 쿠빌라이 칸의 명령으로 파스파 문자를 만든 원나라 국사 파스파도 사꺄빠 승려이다.

2.3.4. 겔룩빠

겔룩빠의 종조 쫑카빠 롭상닥빠(Tshong kha pa bLo bzang grags pa)는 14세기 동북 티베트 암도의 쫑카 지방에서 태어나서 깔마빠 및 여러 종파에서 공부했으며 특히 사꺄빠의 렌다와 쇤누로도를 주 스승으로 배웠다. 이후 까담빠의 전통을 따라 엄격한 계율의 수행을 강조하면서, 불교 철학을 바탕으로 단계적인 수행을 통해 깨달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특히 아띠샤의 《보리도등론》의 주석서인 쫑카빠의 《보리도차제광론》을 비롯한 많은 주석서 및 저서들은 그 당시까지의 철학과 수행 전통을 새롭게 해석해 내면서 티베트불교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로 까담빠의 전통은 점차로 겔룩빠의 영향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1대 달라이 라마는 쫑카파의 제자였던 겐둔 둡빠(Gendun Drupa)이다. 그러나 겐둔 둡빠는 생전에 달라이 라마라 불리운 적이 없다. 3대 달라이 라마 때 이르러 몽골의 알탄 칸에게 '달라이 라마(Dalai lama)'[11]라는 칭호를 부여받는다. 공식적인 겔룩빠의 종정은 간덴 사원의 사원장인 간덴 티빠(Ganden Tripa)이다. 환생자 제도가 아닌 추대 형식을 통해 선정되며 임기는 전통적으로 7년이다.

2.3.5. 조낭빠

시가쩨 근처 조모낭 지역에서 번성한 조낭빠는 12세기 깔라차끄라 딴뜨라 전문 수행가인 유모 미꾜돌제(yu mo mi bskyod rdo rje)를 중심으로 시작한다. 유모 미꾜돌제는 카쉬미르의 빤디따 찬드라나타(candranatha)에게서 사사를 받았다. 후캄에 의하면 타공의 이해는 유모 미꾜돌제가 카일라쉬산(수미산)에서 깔라짜끄라 딴뜨라를 수행하는 도중 터득한 것이라고 한다. 사꺄빠에서 계를 받았던 돌뽀빠 쉐랍겔첸 대에 이르러 융성하게 된다.

조낭빠는 쉔똥(gzhan stong), 즉 타공(他空) 사상을 내세웠다. 타공이란 모든 속제를 비롯해 다른 것에 의존해 일어난 현상들, 자아와 같은 허상은 그 자성이 공(空)하지만, 그 모든 속제의 근간이 되는 법성, 일체지, 천연의 의식, 불성, 또는 청명한 빛의 마음은 공하지 않다는 사상이다. 이후 조낭빠는 5대 달라이 라마 대에 이르러 정치적 사상적 이유로 이단으로 몰려 중앙 티베트 지방에서 사라지고 몽골과 암도 지방에서 명맥을 유지한다. 현재 14대 달라이 라마는 조낭빠를 티벳불교의 정식 종파로 인정하고 성장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종파별로 의석을 배정받는 티벳 망명 의회에서 가장 뒤늦게 의석을 얻는 등 여전히 안습한 모습이 남아있긴 하다.

2.3.6. 복식

계를 수지한 티베트 승려는 하의로 모두 샴탑이라고 하는 붉은색 통짜 천을 두른다. 전통적인 상의를 보면 종파를 대강 구분할 수 있다. 닝마빠 울렌이라고 하는 차이나 컬러에 소매가 없는 조끼만 입으며 싸꺄빠와 까규파는 울렌 위에 뙨까라고 하는 붉은색 조끼를 덧대입는다. 그리고 겔룩빠는 울렌 대신 뙨까만 입는다. 또한 의식에 쓰는 모자가 겔룩빠는 노란색이어서 황모파黃帽派라고 불리며 나머지 닝마빠, 쌰까빠, 까규빠는 붉은 색 모자를 쓰기 때문에 홍모파紅帽派라고도 불린다.

3. 특징

3.1. 정교한 현교(顯敎)의 교학

현교(顯敎)는 '겉으로 드러난 가르침'이란 뜻으로 언어 문자상으로 설시된 가르침이며 일반적인 소승과 대승 가르침을 뜻한다. 밀교(密敎)는 '은밀히 전수한 가르침'이란 뜻으로 다른 말로 금강승이라고 한다. 밀교도 대승불교의 분파에 해당한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바른 수행과 실천을 위해 먼저 바른 견해가 세워져야 함을 강조하며 성급하게 수행법만을 익히는 것을 매우 경계한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종파를 막론하고 중관학파, 그중에서도 귀류논증중관학파의 견해를 가장 중시한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인도불교의 다양한 학파 중 가장 중요한 네 가지로 소승의 설일체유부와 경량부, 대승의 유식학파와 중관학파를 언급한다. 중관학파는 다시 유식중관학파와 경량중관학파로 나누고, 경량중관학파를 논리적 관점에서 자립논증파(自立論證派)와 귀류논증파(歸謬論證派)로 나눌 수 있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소승보다 대승, 대승에서도 유식보다 중관, 중관에서도 자립논증보다 귀류논증이 더 정견(正見)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귀류논증중관학파의 견해에 따라 중관학파 논서 가운데에서 용수(龍樹, Nagarjuna)의 《중론(中論, Mūlamadhyamakakārikā》, 불호(佛護, Buddhapalita)의 《불호근본중론주(佛護根本中論注, Buddhapalita- Malamadhyamaka)》, 월칭(月稱, Candrakirti)의 중론 주석서인 《입중론(入中論, Madhyamakavatara)》, 성천(聖天, Aryadeva) 의 《사백론(四百論, Caturshatakashastrakarika)》을 중시한다.

티베트 불교는 교학의 연구에 있어 매우 분석적이고 회의주의적인 접근을 특징으로 한다. 회의주의적이라는 말에 오해가 있을 수 있어 덧붙이자면, 부처님의 말이라고 해서 맹목적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금을 감정하듯이 분석적으로 의심을 갖고 명상하면서 불법의 진리를 수행자 본인이 직접 확인해가는 것이다. 논쟁 역시 중요한 수행 방법으로 삼는데[12], 라싸의 절에 가면 붉은 가사를 입은 수행자들이 서로 랩배틀(...)을 하듯이 커다란 몸짓을 하면서 논쟁 수행에 열중하는 풍경을 볼 수 있다. 티벳불교의 논쟁법 소개

경전 못지않게 논서를 중시하는 논장(論藏) 위주의 불교라는 특성을 보인다. 중국불교가 특정 경전을 소의경전으로 삼는 경장 위주의 불교인데 반하여 티베트 불교는 여러 경전의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주석을 단 논장을 주로 학습한다. 또한 '쌉쩨(과목科目, Sa bcad)' 라고 하는 목차를 세세하게 달아 경론의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3.2. 밀교의 흥성

인도불교의 최종단계라고 할 수 있는 밀교는 티베트 뿐 아니라 중국,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다른 국가로 전래되었지만 지금까지 법맥이 끊기지 않고 독자적인 밀교 종단이 유지되고 있는 곳은 티베트와 일본 뿐이다.[13] 일본에는 중기 밀교까지 전해진 반면 티베트에는 후기 밀교까지 전래되었다. 밀교부에 해당하는 방대한 경전들이 존재하며 또한 티베트 불교 종파별로도 각자의 독자적인 밀교 전승과 문헌을 갖고 있다.

밀교는 다른 말로 금강승(Vajrayana)이라고 한다. 금강승은 '방편승(Upayayana)'이라고도 한다. 바라밀다승보다 많은 선교 방편들을 구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금강승을 '과승(果乘, Phalayana)'이라고도 한다. 수행자가 과로써 도를 삼기 때문이다[14]. 금강승은 밀승(密乘, Guhyayana)이라 칭하기도 한다. 반드시 엄격하게 비밀을 지키면서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밀교의 가르침과 수행은 비밀로 남아있어야 하며 밀교 수행자들은 자신들이 받은 관정이나 금강승 수행에 대해서 남에게 알리거나 자랑해서는 안된다. 자칫 자기중심주의, 오만에 빠질 수 있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밀교는 사부(事部, kriya tantra), 행부(行部, charya tantra), 유가부(瑜伽部, yoga tantra), 무상유가부(無上瑜伽部, anuttarayoga tantra) 등 네 부파로 나눌 수 있다. 밀교 네 부파는 수행의례나 방법 면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사부는 외적인 의례를 수행의 중심으로 삼고, 행부는 외적인 의례와 내적인 수행을 함께 중시하며, 요가부는 오직 내적인 수행만을 중시한다. 무상요가부의 가르침은 비교하여 설명할 것이 없다. 네 탄트라의 수행은 상응하는 근기를 가진 수행자에 근거하여 나눈 것이지, 사람들의 기호에 따라 나눈 것이 아니다.

현교, 다시 말해 바라밀승은 부처의 과위를 이루는데 삼아승지겁이 걸리는 반면 밀승을 수행하면 단기간 내에 자량을 쌓아 짧게는 한 생에도 불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15]그러나 밀교에 입문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자격을 갖춰야 한다. 이미 현교의 수행차제를 두루 섭렵하여 근기가 성숙된 이라야 하며, 오직 불과(佛果)를 증득하고 싶다는 의욕을 앞세우거나,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수승하다고 자만하여 밀교 수행에 접근하여서는 안 된다. 또한 윤회에서 벗어나기 위해 해탈을 염원하는 출리심, 다른 중생을 위하는 자비심과 보리심이 투철하여야 하며 공성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밀교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격을 갖춘 법맥스승으로부터 관정(灌頂, wang)과 구전(口傳, lung), 구결(口訣, tri)을 받아야 한다. 관정은 스승과 제자 사이에 법을 전해주고 전해받는 밀교의 독특한 의식이다. 이 의식을 통하여 밀교에 입문하려는 사람은 스승으로부터 밀교를 수행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게 된다. 또한 스승의 구전(口傳)을 통해 수행법을 전수받으며 수행법에 대한 구체적인 가르침인 구결 역시 전해듣는다. 밀교 수행의 성취를 위해서는 특히 현교보다 더욱 큰 스승에 대한 믿음과 헌신을 가져야 한다.
밀교의 계율은 싸마야(samaya, 三昧耶)라고 하는데, 밀교의 수행에 있어서 계율을 지키는 것이 지극히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관정은 먼저 계를 받고 이를 지킬 것을 맹세 한 사람에게만 수여 된다. 금강승의 보살계나 밀교계는 매우 엄격하고 지키기 힘들다. 아띠샤(Atisha) 존자는 본인의 삶 중에 '비구계는 조금도 어김이 없이 지켰고, 보살계는 간혹 지키지 못했지만 밀교계를 어긴 것은 후드득 떨어지는 빗방울과 같이 많다' 하였다.
티베트 불교에서의 명상은 밀교적인 시각화 명상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먼저 부처 혹은 보살의 모습을 정해 최대한 생생하게 시각화하되 물에 비친 달그림자같이 실체없는 공(空)으로 인식하고, 수행자 자신이 이러한 불보살과 일체화되고 이들의 깨달음의 경지와 하나됨을 느낀 다음, 마지막으로 이렇게 시각화한 모든 것을 지워버림으로써 집착하는 마음 없이 깨달음에 가까워지도록 하는 것이다. 화려한 만다라를 만들고 이를 부숴 버리는 것도 이러한 수행의 일부이다. 모래 만다라 제작과 해체과정

3.3. 자비와 보리심의 강조

티베트 불교는 대승 불교로서 일체 중생에 대한 보리심(菩提心, bodhicitta)을 강조한다. 보리심의 원인으로는 자비심(慈悲心)출리심(出離心)을 들 수있다. 자비심이란 모든 중생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자심(慈心, Metta)과 모든 중생이 고통을 여의기를 바라는 비심(悲心, Karuna)을 뜻한다. 그리고 출리심은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해탈을 염원하는 마음이다. 자비심과 출리심을 원인으로 하여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중생이 깨달음을 얻어 해탈하기를 바라는 보리심을 갖게 되며, 이러한 보리심(혹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유정(有情)을 보리살타, 즉 보살(Bodhisattva)이라고 한다.

티베트 불교는 보리심을 모든 수행의 동기로 삼을 것을 강조한다. 성불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일체 중생을 해탈로 이끄는 것이 목적임을 잊지 않게 한다. 또한 보리심을 단순히 강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보리심을 키우는 구체적인 수행법이 존재하는 것이 특징이다. 보리심을 훈련하는 대표적인 티베트 불교의 전승으로는 로종(lojong)이 있다. '마음 다스리기'라는 뜻의 로종에는 보리심에 익숙해지는 방법으로 크게 두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하나는 무착보살의 1) 인(因)과 과(果)에 대한 일곱가지 가르침(칠종인과법)이며 다른 하나는 용수보살의 2)자신과 남들을 동등하게 생각하고 교환하는 것(자타상환법)이다. 칠종인과법과 자타상환법을 반복적으로 사유하고 고찰함으로써 자신의 심성이 보리심에 가까워지도록 수행한다.

1. 칠종인과법(七種因果法)
(1) 모든 중생이 수많은 전생 가운데 우리의 부모 아니었던 적 없는 것을 인식함.
(2) 그들이 우리의 부모였을 때 베풀었던 친절에 대해서 고찰함.
(3) 그들의 친절에 보답하고 싶어함.
(4) 부모였던 모든 중생이 행복하기를 바람.
(5) 부모였던 모든 중생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람.
(6) 모든 중생들의 행복을 위해 일하겠다는 위대한 결심.
(7) 그 결과 모든 중생을 위해 부처의 경지를 이루겠다는 보리심을 이룸

2. 자타상환법(自他相換法)
자기 자신과 마찬가지로 다른 모든 사람들 역시 행복을 원하고 고통을 피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기심과 자기 집착으로 남들을 희생시키며 죄책감과 근심, 두려움을 얻게 된다. 반대로 타인을 소중히 여기고 그들의 행복을 원하면 행복한 타인들로 인해 자기 자신 역시 행복해진다. 따라서 자신과 남의 입장을 바꿔 자신의 행복에서 타인의 행복으로 목표를 전환하는 것을 자타상환법이라고 한다. 자타상환법을 장애없이 행하기 위해서는 나, 나의 것이 존재한다는 아집에서 벗어나는 무아와 나와 남이 독립적이지 않고 상호의존적이라는 연기성을 인지해야 한다.
자타상환법과 관련된 티베트 불교 특유의 자비명상으로 '통렌(tonglen)' 이라는 것이 있다.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을 눈 앞에 있다고 시각화한 다음, 사랑과 자비, 행복 등 긍정적인 에너지를 날숨에 실어보내고 다른 사람의 부정적인 에너지와 고통을 들숨을 통해 대신 흡수하는 명상법이다. 이를 통해 남과 나 사이의 분별을 없애고 자비심을 키우게 된다. 자기가 지은 업의 과보는 자기 자신이 받는 자작자수(自作自受)가 원칙이기 때문에 실제로 타인의 업을 대신 받지는 않으며 자비심의 증장을 목표로 수행하는 것이다.

로종과 관련된 문헌으로는 《보행왕정론》, 《보살지》, 《입보살행론(입보리행론)》, 《마음을 다스리는 8가지 게송(수심팔송)》, 《수심칠요》, 《보살행37송》등이 있다.

4. 한국 불교와의 교류

4.1. 인적 교류

한국 불교와 티베트 불교의 교류는 신라시대에서 현대에까지 이르고 있다. 특히 티베트 불교를 숭앙하던 몽골의 침략 이후 고려 불교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신라승 김무상(金無相, 684∼762)과 티베트의 사신인 바상시의 만남은 삼예사(寺)의 사지(寺誌)에 해당하는 《바세》에 기록되어 있다. 김무상은 서기 754년 당나라 장안에서 티베트의 사신들을 만나 인도불교가 티베트에서 주류를 이룰 것이며, 훗날 티송데첸 왕이 등장하여 불교를 널리 홍포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또한 김화상은 그들 사신들에게 《십선경》, 《금강능단경》, 《도간경》을 전해주면서 왕의 즉위시에 사용하라는 말을 전해주었다. 훗날 김무상의 예언은 적중하여 샨타락쉬타가 인도에서 들어와서 티베트에 불법을 홍포했으며, 티송데첸 왕이 즉위할 때에는 사신들이 전수받은 세 종류의 경전을 독송하여 신심을 일으켰다.

혜과(惠果) 화상의 제자인 신라의 오진(悟眞)은 인도로 구법순례를 떠났다가 귀로에 티베트에서 입적하였다.

신라시대 고승 원측(圓測)의 《해심밀경소》가 법성(法成, Chos grub)에 의해 티벳어로 번역되어 티베트 대장경에 속하게 되었다. 이후 원측의 저서는 티베트 불교 내에서 경전 해석의 주요한 논거가 되는 대표적인 논장으로 자리잡았다.

1294년 티베트 승려 절사팔(折思八)이 티베트 경전과 법구류를 가지고 고려에 들어오고, 1314년에는 홍약이 티베트 경전 18,000권을 고려에 전해준 일이 있다.

고려사》의 기록에 의하면 1320년에는 몽골에 볼모로 잡혀 갔다가 티베트로 들어가게 된 충선왕을 위하여 민천사(旻天寺)에서 기도법회를 가졌다는 기록도 있다. KBS 역사저널 그날 충선왕 티베트로 유배를 떠나다

현재 우리나라에 널리 유통되고 있는 육자진언 옴마니반메훔도 티베트의 자사태마(刺思?麻)와 사팔자(思八刺) 라마에 의해서 전해진 것이다.

현대에 들어서는 1967년에 달라이 라마 14세가 라사판 티베트 대장경 한 질을 동국대학교 도서관에 기증한 일이 있다. 이후 2009년 달라이 라마가 기부한 20만 달러 자금을 토대로 동국대에 티베트 대장경 역경불사를 하는 티벳대장경역경원이 설립되었다.

4.2. 문화 교류

고려시대 이후에 편찬된 의식집들에서 진언들을 범자나 티베트 문자로 나타내고 있으며, 관법차제(觀法次第)와 같은 수행법에서 범자로 된 종자자(種子字)를 명상에 채용하고 있다.

또한 사원의 건축물이나 법구류 등에서 범자나 티베트 문자로 된 진언종자들을 활용하고 있다. 여기서 사원건축에 단청을 하고, 거기에 범자로 된 문양을 새겨 넣는 양식은 티베트를 제외한 어떤 아시아 국가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독특한 양식이다.

인도나 티베트로부터 몽골 지역을 거쳐서 전파된 나가리·실담·란차·티베트·팍파문자 등은 우리 나라의 불교관련 의식집의 찬술 및 문자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뿐만이 아니라 조선시대 한글창제에도 영향을 주었다.

육자진언(옴 마니 반메 훔) 관련 수행법은 티베트에서 저작된 《마니칸붐》의 가르침을 계승한 것으로 육자진언을 활용한 명상법이라는 데 그 특징이 있다. 《마니칸붐》은 몽골을 통하여 고려에 전래되었으며, 육자진언과 관련된 모든 가르침들을 총망라하고 있다.

밀교경궤의 교설에 입각한 다면다방불(多面多方佛), 운주사에 조성되어 있는 대석합체불(大釋合體佛)과 쌍와불은 티벳불교 불상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여진다.

괘불탱화는 티베트 불교에서 널리 쓰이는 법구의 하나이다. 흔히 티베트에서는 이것을 ‘탕카(Thang-ka)'[16][17]라고 하는데, 사찰에서 큰 행사가 있을 때 야외에 단을 설치하고, 괘불을 봉안한 다음 법회를 열었다. 우리 나라에도 이와 같은 괘불탱화가 다수 존재하며, 큰 법회에서 활용되고 있다.

고려시대부터 제작되기 시작한 금강저(金剛杵)와 금강령(金剛鈴)은 현재 한국불교의 의식에서는 그다지 쓰이고 있지 않으나 밀교경전에 의거한 수행법에서는 널리 쓰인다. 현재 우리 나라에 전해지고 있는 금강저의 형태는 티베트 계통의 것과 당나라 계통의 것들을 응용한 한국 독자의 것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고려시대 명종 20년(1190)년에 조성된 용문사 윤장대(輪藏臺)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현재 티베트 인들의 신앙생활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마니륜통(摩尼輪筒)이다. 최근에는 용문사의 윤장대와 그 형식은 다르지만 전국의 여러 사찰에서 티베트의 것을 채용한 마니륜통을 제작하여 신앙심을 고취시키는 법구로 활용하고 있다.

5. 수행 체계

티베트 불교에는 특유의 불교 교육 체계가 있는데 이를 《장춥람림(Jangchub lamrim)》, 한역으로 《보리도차제(菩提道次第)》라고 한다. 풀이하면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 매겨진 순서'라고 할 수 있다. 불법에는 완전하고 명료하게 의미를 드러낸 요의법(了義法)과 방편으로 설한 불요의법(不了義法)이 존재한다. 광대한 불법의 바다에서 대소승의 요의법만을 모아 간추린 요의법의 왕이 바로 《람림》이라고 할 수 있다. 《람림》에 의지하면 대승과 소승의 가르침을 모두 아우르면서도 헤매지 않고 수행이 가능하다. 밀교의 매우 깊은 가르침에 의지하여 한 생에 깨달을 수 있는지 여부도 《람림》의 내용을 얼마나 실천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한다.

5.1. 연원

흔히 《람림》을 '아띠샤'나 '쫑카파'와 같은 티벳의 카담파(Kadampa) 스승들이 만들었다고 여기곤 한다. 하지만 티베트 불교에서는 《람림》의 가르침이 석가모니불로부터 유래했다고 본다. 대승 불교 전승에 따르면 석가모니불로부터 유래한 두 갈래의 법맥이 있다. 바로 석가모니불-미륵보살-아상가(무착)으로 이어지는 '도의 광대한 실천을 중시하는 법맥(갸첸쬐규)'과 석가모니불-문수보살-나가르주나(용수)로 이어지는 '공성의 심오한 견해를 중시하는 법맥(상모따규)' 이다.

인도의 스승 아띠샤가 전자의 법맥은 스승 '쎌링빠'로부터, 후자의 법맥은 스승 '릭빼쿠주'로부터 이어 받아 두 법맥을 통합하여《람림》이라는 하나의 큰 물결을 이루었다. 이에 관한 논서로 《보리도등론》이 있다.

아띠샤가 하나의 큰 흐름을 형성하였지만 이후 담고 있는 분량에 따라서 '경을 자세하고 넓게 공부한 후 경에 의지해서 수행하는자(까담슝빠)', '람림에 의지하여 수행하는자(까담람림빠)', '핵심적인 내용만을 골라서 수행하는자(까담담악빠)'라고 하는 세 갈래 법맥으로 다시 나뉘어졌다.

이를 다시 카담빠 전승의 후계자이자 겔룩빠의 창시자인 쫑카파가 통합하여 《대보리도차제(보리도차제광론)》를 저술한다. 이 외에도 《람림》과 관련한 여러 논서가 존재한다.

5.2. 스승의 중요성

《람림》에서는 스승을 도의 근원이라 하였다. 스승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일화가 있다. 제자 돔뙨빠가 인도에서 온 스승 아띠샤에게 이렇게 여쭈었다. “티벳에서는 토굴 수행 등을 많이 하는데 공덕이 이루어지는 수행자가 많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 대답으로 아티샤는 “소승과 대승의 공덕들은 다 스승에 의지함으로써 생기는 것이다. 너희 티벳 수행자들은 스승에 대해 평범한 인식 밖에 하지 못하기 때문에 공덕을 이루기 어렵다”[18] 라고 말하였다.

우리가 잘 모르는 길을 갈 때 길을 아는 사람에게 물어봐야 바르게 갈 수 있는 것처럼, 깨달음을 바르게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바른 스승에 의지해야 한다. 스승을 의지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는 없다. 따라서 바른 스승을 찾고 바르게 의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쫑카빠가 말하였다.
미륵보살의 《대승장엄경론》에서는 선지식의 요건을 10가지로 말하였다.

1) 계학 : 자기 자신을 조복함
2) 정학 : 지(止, 샤마타)
3) 혜학 : 인무아(人無我)의 지혜
4) 제자보다 뛰어난 공덕
5) 이타(利他)를 좋아하는 정진력
6) 교학 : 경율론 삼장에 밝음.
7) 진여의 증득 : 법무아(法無我)의 지혜
8) 언변이 좋음
9) 중생에 대한 자애심 : 사랑과 자비로 법을 설함
10) 반복되는 설법을 싫어하지 않는 것.


10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한 선지식을 만나지 못하면 계정혜 삼학과 진여의 증득, 중생에 대한 자애심 등 5가지 조건을 갖춘 선지식을 찾아야 한다. 그마저도 찾지 못하면 두어가지 조건이라도 충족하는 선지식을 찾아야 한다.
성천보살의 《사백송》에서는 제자의 조건 세 가지를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1) 치우치지 않는 마음 (편견이 없음)
2) 지혜 (지성)
3) 구도심 (求道心)

제자는 신심과 공경심으로 신구의 삼문을 다해 스승을 섬겨야 한다. 스승을 의지하는 수행법이 제대로 되면, 수행의 큰 문을 연 것과 같다. 이 때부터 제대로 수행의 길을 갈 수 있다.

5.3. 마음 동기의 중요성

티벳불교에서는 수행을 하기에 앞서 이러한 출리심, 보리심 같은 마음 동기를 강조한다. 마음 동기, 즉 의도에 따라 수행결과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승법을 수행하더라도 보리심을 발하지 않고 세속적 행복을 위해 수행하면 세속법이 되고, 자기 자신만의 해탈을 위해 수행하면 소승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마찬가지로 수행이 끝난 후 회향[19]을 할 때도 회향의 목적과 대상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이번 생만을 위해 회향하면 회향의 공덕도 이번 생이 끝나면 사라진다. 그러나 내생을 위해 회향하면 다음 생까지 공덕이 이어지고, 더 나아가 일체 중생의 무상정등각을 위해 회향하면 일체중생이 성불할 때까지 공덕이 사라지지 않고 끊임없이 늘어난다.

5.4. 삼사도(三士道)

《람림》에서는 대승과 소승의 가르침을 모두 취합하여 불교수행의 순서에 맞추어 하사도(下士道), 중(中)사도, 상(上)사도의 삼사도(三士道)로 정리하고 있다.

하사도, 중사도, 상사도를 차례대로 세간도, 나한도, 보살도라고 부를 수 있다. 혹은 인천(人天)승, 성문연각승, 보살승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느 누구라도 절차에 따라 첫 단계인 하사도부터 수행하여야 한다. 하사도 수행이 완성되어야 그 다음 단계인 중사도 수행에 들어갈 수 있고, 중사도 수행이 무르익어야 그 다음 단계인 상사도를 닦을 수 있다. 중사도의 수행자는 하사도의 심성을 갖추고 있고 상사도의 수행자는 하사도와 중사도에서 익혔던 심성과 통찰 모두 그대로 갖추고 있다. 이렇게 보리도차제의 수행은 누적적(累積的)이다.

실제로는 단계별로 수행하더라도 되도록 처음 하사도부터 보살의 보리심(菩提心)[22]을 수행 동기로 삼을 것을 권장하고 있다. 처음에는 진정한 보리심을 내기 힘들지만 단계별 수행을 통해 세속에 대한 집착을 여의고 출리심(出離心)[23]을 갖게 되면서 점차 진정한 보리심을 발하게 된다. 언뜻 생각하기엔 출리심과 보리심이 서로 충돌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나 자신이 진정으로 윤회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생겨야 남도 진정으로 윤회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마음이 생길 수 있는 법이다. 즉 보리심은 달리 표현하면 개인으로부터 일체 중생에 이르기까지 출리심을 확충(擴充)한 마음이라고도 할 수 있다. 불교뿐 아니라 기독교, 유교 등 대부분의 종교와 사상에서 보편적으로 언급하는 황금률(Golden Rule), 즉 '나 자신이 원하는 바대로 남에게도 똑같이 행하라.'는 법칙의 적용이라고 할 수 있다.

5.5. 결론

《람림》은 곧 부처님의 팔만사천법문에 의지한 인도불교 대학자들의 전통과 수없이 이어져 내려온 스승들의 실천을 통해서 정법임이 증명된 것들이다. 만일 정법 아닌 것에 의지하여 수행한다면 스스로의 믿음과 정진을 증장시킬 수 없거니와 깨달음도 있을 수 없다. 부처님의 법을 체계화하여 정리하려는 시도는 현대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지만 《람림》처럼 명실공히 정법이라 할 수 있는 가르침은 드물다.

《람림》을 통해 수행자는 특정한 경전이나 수행법만을 중시하는 편향에서 벗어나 부처님 가르침 전체를 관통하여 조망할 수 있다.
또한 경전들의 핵심만을 모아놓으면서도 필요한 내용이 모두 수록되어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중도의 가르침임을 알 수 있다.

《람림》에는 네 가지 위대함이 있다고 한다.
1) 모든 가르침이 서로 상충되지 않고 알아지는 위대함
2) 모든 가르침이 요의법으로 나타나는 위대함
3) 모든 가르침을 빨리 이해할 수 있는 위대함
4) 큰 죄들이 저절로 소멸되는 위대함[24]

《람림》 하나를 잘 수지하여 수행하면 누구나 지혜와 자비, 이성과 감성 두 측면을 고루 개발한 수행자가 되어 쉽게 깨달음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아띠샤 이전에 《람림》전승에 영향을 준 문헌으로는 샨티데바의 《입보살행론(입보리행론)》, 까말라쉴라의 《수습차제》등이 있다. 아티샤의 까담빠 전승은 겔룩빠뿐만 아니라 티벳의 모든 종파에 영향을 끼쳤다. 겔룩빠 외에 다른 종파들의 관련 문헌으로는 닝마빠의 《공덕보장론》, 《위대한 스승의 가르침》, 까규빠의 《해탈장엄론》, 사캬빠의 《네 가지 집착에서 벗어남》등이 있다.
《네 가지 집착에서 벗어남》[* 2015년 사캬빠 법왕인 사캬티진 존자가 방한하여 직접 법문을 설하였다. 네 가지 집착에서 벗어나라 (상) 네 가지 집착에서 벗어나라 (하)]

이 생에 대한 집착이 남아있다면 그대는 종교적인 사람(佛弟子)이 아니다.
존재의 세계에 대한 집착이 남아있다면 그대는 출리심(出離心)을 얻은 게 아니다.
자신의 목적에 대한 집착이 남아있다면 그대는 보리심(菩提心)을 얻은게 아니다.
파악하려는 노력이 있다면 그대는 아직 지견(知見)를 얻은 게 아니다.

6. 강원의 교육과정

티베트 불교의 최대종파인 겔룩빠는 다른 종파보다 교학을 강조하여 전체 강원 교육과정을 수학하는데 20여년 정도 걸린다.[25] 현대교육제도의 초등과정부터 대학원과정까지에 해당하는 기간을 불교 교육에 투자한다고 볼 수 있다.

광성사 소남 걀첸 스님의 설명에 따르면 겔룩빠의 3대 사찰인 데뿡 사원의 로셀링 강원에는 1학년부터 19학년까지의 교육과정이 존재한다. 주로 《인명학(因明學)》, 《반야학(般若學)》, 《중관학(中觀學)》, 《율(律)》, 《구사론(俱舍論)》 등 5대 경전을 배우는 교육방법이 체계적으로 잘 되어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5대 경전을 주로 배우는 점은 겔룩빠뿐 아니라 다른 종파에서도 동일하다.

5대경을 배울 때에는 다섯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무조건 경전을 외워야 한다.
둘째, 경을 보지 않고 외우는 연습을 자주 해야 한다.
셋째, 뜻을 알기 위해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넷째, 경전에 대한 여러 해석들을 자주 보아야 한다.
다섯째, 여러 차례 토론을 통해 경의 내용을 깊이 새겨야 한다.

5대경을 포함한 불교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기(基) - 기본 바탕인 세속제와 진제의 이성제
도(道) - 방편의 보리심과 반야의 지혜 두 가지 방법
과(果) - 법신과 색신의 두 가지 과위(果位)

다시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기(基) 즉 기본이 되는 사성제, 진속이제 등 존재론에 대해 말하고 있다. 도(道) 즉 수행은 앞서 존재론에서 말한 바와 같이 현실에 맞는 오도(五道)와 십지(十地) 등 방편과 지혜의 수행론에 대해 말하고 있다. 과(果) 즉 결과는 존재론과 수행론에서 말한 바와 같이 현실과 맞는 수행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과위(果位) 즉 법신(法身), 화신(化身), 보신(報身) 등 부처의 신구의(身口意)의 공덕을 말하고 있다.

6.1. 기초 과정

제일 먼저 《듀라(섭류학攝類學)》를 배운다. 《듀라》는 인명학(因明學)의 문을 여는 열쇠와 같은 논리 이론을 최초로 배우는 과목으로, 티벳의 스승이신 차빠 최끼 생게가 경량부의 이론 방식을 접목하여 량(量)의 전반적인 의미를 요약하여 ‘듀라’라고 정하였다. <듀라>는 소논리, 중논리, 대논리 세 가지로 나뉘며, 기(基), 도(道), 과(果) 세 가지 중 주로 존재론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두 번째, 《로릭(심류학心類學)》을 배운다. 구체적인 심리학이 아닌 일반적인 마음의 종류-예를 들면 현량(現量), 비량(比量), 분별심(分別心), 비분별심(非分別心), 육식(六識), 심왕(心王), 심소(心所) 등등-를 설명하고 있다. 또는 7종심식(七種心識) 즉 현량식(現量識), 비량식(比量識), 재결식(再決識), 사찰식(伺察識), 현이미정식(顯而未定識), 의심(疑心), 전도식(顚倒識)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세 번째, 《딱릭(인류학因類學)》을 배운다. 진인(眞因)은 과인(果因), 자성인(自性因), 불가득인(不可得因) 세 가지로 나뉘며, 사인(似因) 또한 상위인(相違因), 부정인(不定因), 불성인(不成因) 세 가지로 나뉜다.

네 번째, 《둡타(종의宗義)》를 배운다. 종의는 학파, 교파라고도 부른다. 외도나 불교도의 견해에 따라 자신들이 이해하고 있는 철학적 바탕(基), 수행방식(道), 그 결과(果) 셋에 대한 교리적 설명 방식 등을 말한다. 간략하게 고대 인도의 외도 5개 파(派)인 논의오파(論議五派; 수론파數論派, 순세파順世派, 승론파勝論派, 폐타파吠陀派, 리계파離繫派)와 불교도의 4대 학파인 유부(有部), 경량부(經量部), 유식학파(唯識學派), 중관학파(中觀學派)로 나눈다.

다섯 번째, 《살람(지도地道)》을 배운다. 보살의 십지(十地; 환희지, 이구지, 발광지, 염혜지, 난승지, 현전지, 원행지, 부동지, 선혜지, 법운지)와 오도(五道; 자량도, 가행도, 견도, 수도, 무학도), 그리고 성문도, 연각도, 보살도에 대해 배운다.

이상의 과정을 배우는 데 대략 4년 정도 걸린다.

6.2. 5대 경전 과정

여섯 번째, 《석량론(釋量論)》을 배운다. 석량품(釋量品) 또는 광본양학(廣本量學)이라고도 하며, 고대 인도의 법칭(法稱)보살이 지었다. 이 논서는 자리(自利), 양성립(量成立), 현전(現前)과 타리(他利) 등 4품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인명칠론(因明七論) 중에서 세 근본이 되는 논서 중 하나다. 《둡타(종의宗義)》를 배우고 난 뒤 대략 10년 이상 해마다 겨울철 한 달씩 스님들이 한 절에 모여 집중적으로 배우기도 한다.

일곱 번째, 《반야현관장엄론(般若現觀莊嚴論)》7년 동안 배운다. 미륵오론인 《현관장엄론》, 《대승장엄론》, 《중변분별론》, 《법법성분별론》, 《구경일승보성론》 중의 하나이다. 그 내용은 일체종지, 도지, 일체지, 일체오등현관, 정현관, 차제현관, 찰나오등현관과 법신 등 8가지로 보살도의 모든 수행과 부처님의 경지인 과위(果位)에 대해 설명한 미륵보살이 지은 논서이다.

여덟 번째, 《입중론(入中論)》3년 동안 배운다. 용수보살이 지은 《중론(中論)》의 논서인 《입중론》은 월칭보살(짠드라끼르띠)이 저술하였고, 10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로 중관사상 즉 공성(空性)과 연기(緣起)에 대해 구체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아홉 번째, 《율경근본율(律經根本律)》4년 동안 배운다. 인도의 율사 공덕광보살이 4부 율전의 내용을 해석한 것이다. 주로 계율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17가지로 나눠 설명하고 있다.

열 번째, 《구사론(俱舍論)》2년 동안 배운다. 《아비달마 구사론본송》이라고도 하며, 인도의 세친보살이 저술한 소승의 논서로 본문은 게송체이고 8품으로 나누어져 있다. 당나라 삼장 현장법사가 범어를 한문으로 역경하였다.

이렇게 해서 현교(顯敎)에 대해 거의 20년 정도(기초과정 포함) 체계적으로 배우고 있다.

6.3. 강원 과정 이후

5대 경전 등 불경과 논서들을 체계적으로 배움으로써 먼저 현교(顯敎)에 대한 이해와 확신을 얻게 하며 마음에 깊게 익히도록 한다. 이러한 과정을 모두 마치고 나면 필기 시험, 논문 작성과 대론(對論) 과정을 거쳐 게셰(Geshe)[26]의 칭호를 얻게 되는데, 게셰에도 아래서부터 도람파(Dorampa,) 링세(Lingtse), 촉람파(Tsorampa), 하람파(Lharampa)의 네 단계가 있다 그 후 밀교의 깊은 수행법을 기간 없이 평생 배우고 실천한다.

7. 환생자(뚤꾸) 제도

티베트 불교의 뚤꾸(Tulku)란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부처와 같은 존재, 혹은 높은 수준의 성취자(siddha)로서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 다시 태어난 존재를 말한다. 뚤꾸는 응신(應身)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니르마나카야(nirmanakaya)'의 티벳어 의역이다. 중국에서는 '활불(活佛)'로 번역한다. 한국에서는 통상 '린뽀체'[27], 혹은 '환생자'라 일컫는다.

7.1. 환생자 제도의 토대

7.1.1. 삼신사상과 보살사상

뚤꾸의 정의와 어원에서 짐작할 수 있듯 뚤꾸는 대승 불교삼신(三身)사상보살사상에서 유래하였다. 대승 불교의 부처[28]는 법신(法身), 보신(報身), 화신(化身)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중 이타행을 위해 중생의 근기에 따라 여러 가지 모습으로 화현하는 불신(佛身)을 응신 또는 화신이라고 한다. 중생이 업력(業力)에 의해 불가피하게 윤회하는 것과는 달리 대승의 불보살은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하겠다는 원력(願力)으로 응신을 나투어[29] 자발적인 윤회환생을 선택한다.

뚤꾸란 이러한 대승불교의 삼신사상, 보살사상과 스승-제자 간의 직접적인 가르침 전수를 강조하는 티베트 불교의 특성이 반영되어 만들어진 티베트 불교 고유의 종교적 제도이다. 대표적인 뚤꾸로 흔히들 달라이 라마를 연상하지만, 티베트 불교의 공식적인 초대 뚤꾸는 13세기 환생한 깔마 까규빠의 법왕인 2대 까르마빠이다.

7.1.2. 윤회와 업

환생자 중 대표적으로 달라이 라마를 예로 들면, 달라이 라마의 자리는 새로 후임자를 찾아 그 자리에 앉히는 것이 아니라 불교의 윤회 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환생한 자가 그 자리를 계승하게끔 한다. 그렇다면 초대 달라이라마와 14대 달라이라마는 같은 인물일까? 둘의 몸만 다를 뿐 영혼은 같다는 설명은 불교적으로 옳지 않다. 불교에서는 영혼이나 아트만처럼 고정불변하는 실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아설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불교에서 윤회의 주체는 무엇일까? 바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의식의 흐름'이다. 이를 아비담마에서는 재생연결식(再生連結識), 대승불교에서는 아뢰야식(阿賴耶識) 등으로 설명하였다. 의식은 끊임없이 변화하기에 불변하는 실체는 없지만 일종의 '경향성'은 존재한다. 즉 초대 달라이라마와 14대 달라이라마는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유사한 경향성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선대 달라이라마로부터 이어지는 경향성 가운데는 선대가 쌓은 공덕(지혜와 복덕)[30]도 포함된다. 이러한 지혜와 복덕이 바로 환생자가 차기 달라이 라마의 직위에 오를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할 수 있다.

티벳불교에서는 스승의 사후에 법을 전할 가장 적합한 인물이 스승의 공덕을 이어받은 스승 본인의 환생자라 보고 환생자를 찾기 시작하였다(물론 다음 생에도 환생하겠다는 스승 본인의 의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법맥의 순수한 가르침을 최대한 오염시키지 않고 온전히 지키기 위해서 그 법맥의 창시자나 주요 스승들이 다시 환생하여 가르치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환생자를 찾은 후 그에게 내재된 수승한 자질을 다시 발현시키기 위하여 환생자는 일정 기간 교육과 훈련을 받아야 한다. 환생자가 교육을 받는 동안 생기는 가르침의 공백은 전생의 제자들이나 다른 스승들이 메꾸게 된다.

7.2. 환생자 선정과 교육

스승의 사후에 전생 제자들과 다른 고승들은 후보들을 대상으로 여러 단계에 거쳐 전생에 대한 기억, 뚤꾸로서의 자질 등을 검증한 끝에 뚤꾸를 찾아낸다. 일반적으로 전생에 사용하던 물건을 찾아내거나 전생 제자를 알아보는 방식으로 뚤꾸를 찾곤 하지만 뚤꾸를 찾는 방법이 반드시 정해진 것은 아니다.

어떤 스승들은 죽기 전 유언이나 편지로 자신의 내생에 대해서 직접 밝히는 경우가 있다. 그들은 자신이 인간으로 환생할지 혹은 정토에 태어날지 등을 분명히 밝힌다. 심지어 어느 곳에 태어날지, 부모의 이름은 무엇인지 알려주기도 한다. 환생과 관련된 정보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명시할 때도 있고 시 형식으로 암시하는 글을 남겨 해석을 요할 때도 있다

어떤 스승들은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전생이 어떠했는지 말하고, 사원에 출가하고 싶다는 의지를 직접 밝힌다.

어떤 스승들은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가진 비범한 지혜와 능력을 발휘한다. 예를 들어 어린 아이임에도 자신이 전생에 배운 경전을 강의한다든지, 처음 보는 경전을 한 번만 보고 외운다든지,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진언을 외운다든지 하는 식으로 자신의 지혜와 능력을 드러낸다.

어떤 스승들은 다른 고승들로부터 환생자임을 인증받기도 한다.

어떤 스승들은 과거에 경전이나 기록에서 예언된 환생자이다.
뚤꾸들은 대개 전생으로부터 이어진 비범한 자질을 갖고 있지만, 잠재되어 있는 부분을 다시 발현시키기 위한 과정이 필요하다. 또한 뚤꾸 역시 완벽한 깨달음을 얻지 못하였거나, 여러 생을 거치며 퇴락의 위험을 겪을 수 있다.[31] 때문에 대부분의 뚤꾸는 환생 후에도 스승의 지도를 받으며 과거생에 세운 중생 구제의 서원을 지키기 위해 정진하는 과정을 거친다. 충분한 교육과 수행을 거친 후에는 본격적으로 중생 제도를 위한 전법활동을 펼친다.

7.3. 환생과 과학적 회의주의

티베트인들은 윤회환생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다. 반면 비불교도 중 일부, 혹은 불교도 중에서도 일부는 윤회나 환생을 믿지 않고 더 나아가 미신으로 취급하며 무시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객관적인 검증을 배제한 채 무조건적인 불신을 보인다면 올바른 과학적 회의주의라고 할 수 없다. 현재 과학적 연구의 대상은 임사 체험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사후 세계나 환생과 같은 대상은 본격적으로 연구된 바 없다. 즉 환생을 긍정하는 측이나 부정하는 측 모두 가설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양측 모두 본인의 주장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환생을 무조건 미신 취급하는 주장은 자칫 가설과 이론을 구분하는 과학적 방법론에 의한 절차를 무시하고 과학만능주의적 맹신에 빠질 수 있는 위험을 갖고 있다.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존재한다. 과학적으로 입증불가능한 종교적 발상을 모두 미신 취급하는 반(反)종교주의적 무신론자도 존재하지만, 과학과 종교의 영역이 서로 무관하거나 상호보완적이라 보고 과학을 연구함과 동시에 종교, 철학과 교류하는 과학자들도 많다. 티베트 불교에는 파스퇴르 연구소 소속의 분자생물학자 출신인 마티유 리카르(Mattieu Ricard) 등 과학자 출신의 승려들이 다수 존재한다. 또한 세계적인 뇌과학자, 신경생물학자, 인지과학자, 정신의학자, 물리학자들이 달라이 라마, 까르마빠 같은 티벳 불교 스승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있다.[32]

참고로 환생은 여타의 종교적 신화와 달리 버지니아 대학교 정신의학 및 신경행동과학과 교수인 이안 스티븐슨(Ian Stevenson)과 그의 제자 짐 터커(Jim B. Tucker) 교수 등에 의해 체계적이고 광범위하게 연구되고 있다. 이들은 전세계적으로 수집된 2,500여 명의 사례를 바탕으로 과학적 회의론의 관점에서 환생의 존재여부를 연구하는 중이다.[33] ##

7.4. 도전과 위기

아래는 어떤 달라이 라마 관련 인터뷰이다.
인터뷰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과연 15대 달라이 라마가 있을 것인가, 그리고 있다면 어떻게 선출한 것인가.'이다. 달라이 라마가 진술한 내용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작성된 무수한 성명서들과 저서들을 바탕으로 한다. 그는 이 글들을 통해 자신이 후계자를 둔다고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 것과 2007년 중국 정권이 통과시킨 법에 대해 거론했다. 해당 법은 어떤 티베트 고승들이 환생될 것이며 환생을 어떻게 식별할 수 있을지 결정할 권한을 (역설적이게도) 중국 공산당에 부여한다.인터뷰를 통해 14대 달라이 라마는 그의 이전 교학 저서들에서 언급한 교리에 대한 입장을 다시금 언급했다. 티베트와 몽골 고승 수백 명, 어쩌면 수천 명은 환생을 통해 계보를 이어간다. 달라이 라마가 거듭 언급한 바에 따르면 고승은 서거 전에 자신의 본질을 후계자에 전수할 수 있고[34], 고승 한 명이 두 사람 이상으로 환생하거나 전혀 환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는 전적으로 고승의 뜻에 달렸다.크리스마스에 열린 달라이 라마와의 중요 인터뷰(Bitter Winter, 2018.12.29 >마시모 인트로빈(MASSIMO INTROVIGNE) 영어 인터뷰

부연 설명이 없어 어떤 의도로 올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달라이 라마의 환생이 정치적 이유로 인해 더이상 지속되기 힘든 위기에 처한 것은 사실이다. 또한 달라이 라마의 환생과는 별개로 시대의 변화에 따라 환생자 제도도 변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있다. 일부에서는 폐지해야한다는 의견도 있다.

환생자 제도가 본 취지대로 잘 적용되면 선거로 뽑힌 선출직 지도자와는 비교할 수 없는 정신적, 도덕적 권위를 갖게 된다. 실제로 환생자는 사원의 정신적 구심점으로서 사원의 운영과 전법에 핵심적인 역할을 맡아왔다. 전세계적으로 불교를 대표하는 스승 달라이 라마의 경우를 봐도 알 수 있듯 많은 환생자들은 범인(凡人)이 행할 수 없는 여러 업적을 남기며 중생 구제의 사업을 충실히 이끌어왔다.

그러나 모든 제도가 그러하듯 환생자 제도에도 부작용이 존재한다. 가령 환생자의 활동이 사원의 명성과 재정 수입 증대(...)에 직결되다보니 지나치게 타이트한 교육과 전법 스케줄로 환생자를 혹사시키기는 일이 있었다. 또한 환생자의 권위를 뒷배 삼아 환생자의 친족이나 측근들이 사원 운영에 간섭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심지어 환생자의 선정 과정에서부터 이권을 노린 세력이 개입하여 종종 가짜 환생자가 등장하기도 하였고. 또한 환생자가 권력다툼의 희생양이 되어 유폐되거나 암살(...)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과거에는 특히 티벳의 봉건제도와 연계되어 더욱 문제가 많았다. 환생자 중 일부는 종교적 지도자이면서 동시에 세속 군주로서 전쟁 등 승려로서는 관여하지 말아야 할 임무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하였다(이는 환생자 제도의 문제라기 보다는 정교합일 사회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환생자 제도와 봉건제가 오랜 시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보니 불가피하게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정치적 권한을 티벳망명정부에 모두 이양하여 정교분리를 이룬 현대에는 더이상 이러한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생의 증거와 환생자들의 특출한 능력을 직접 목도하고, 굳은 신심과 헌신으로 환생자 스승을 모셔왔던 티베트인들에게 환생자 제도는 제도 이상의 큰 의미가 있다. 달라이라마가 어떠한 결정을 하더라도 환생자 제도 자체는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7.5. 비판

티베트 불교에서 달라이 라마, 판첸 라마, 젭춘담바 후툭투 직위를 계승하는 방식인 환생자 계승 방식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많다. 이는 강제적인 아동 납치이자 세뇌행위로 보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어떤 집단들이 어떤 갓난아이를 박정희 대통령의 환생이라고 주장하며, 그 아이가 박정희의 뜻과 사상을 모두 이어받았다고 주장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박정희 환생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개소리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게다가 그 사람들이 '자신들이 이 아이를 데려가 키운 다음 새 박정희 대통령으로 세울 것이다'라고 주장한다면 그들이 아동 유괴를 시도한다고 신고를 당해도 싸다고 여길 것이다. 여기에는 대한민국의 어느 대통령을 집어넣어도 똑같다. 티베트 불교인들만 믿는 교리(어떤 고승들은 자기가 언제 어디서 환생할지 결정할 수 있다)를 전혀 믿지 않는 비 티베트 불교인들에게는, 티베트 불교의 환생계승제도는 티베트 불교 간부들이 애먼 아이를 강제로 데려다가 자기네 새 수장이라고 우기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세속적인 윤리 측면에서 보았을 때 환생 계승 제도는 아동을 부모에게서 강제로 납치시킨 다음 자기네 종교 교리를 강제로 주입시키는 세뇌양심의 자유 침해이다.

티베트 불교에서 달라이 라마판첸 라마직을 폐지하기로 한 것은 대단히 다행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지만. 그 이유가 환생 계승 제도의 비인권성을 깨달아서가 아니라는 점은 지적할 필요가 있다. 달라이 라마와 판첸 라마 직이 폐지된 이유는 중국 공산당의 박해 때문일 뿐, 만일 지금 당장 티베트가 독립하거나 최소한 중국 공산당이 티베트인들에 대한 탄압을 중단하기로 결정한다면 그 즉시 달라이 라마는 다시 환생하겠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크다.

이 주장이 티베트와 티베트 불교를 탄압하고 있는 중국 공산당을 옹호하는 입장으로 읽힐 수 있어 첨언하자면, 이 점에 있어서 중국 공산당도 티베트 불교 측과 똑같은 아동 납치와 세뇌 행위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중국 공산당은 티베트 불교 측에서 '환생한 판첸 라마'라고 발표한 '게둔 초에키 니마'를 납치하여 행방불명시켰으며, 대신 친중공 인사의 아이인 '기알첸 노르부'를 '중국공산당이 옹립한 판첸 라마'로 선언하였다. 즉, 중국 공산당 또한 아동납치 및 세뇌 행위를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단지 자기네 입장에 유리하게 말이다. 현 달라이 라마 14세가 달라이 라마 직을 폐지하기로 한 이유 또한 판첸 라마의 사례 때문이며, 중국 공산당은 달라이 라마의 환생 중단 결정에 대해, 달라이 라마가 임의로 환생을 중단할 수 없으며 새 달라이 라마는 중국공산당에 애국하는 인물로 환생할 것이라는 매우 웃긴 주장을 했다. 즉, 중국 공산당은 티베트 불교를 탄압할 지언정 티베트 불교의 인권침해적 환생 계승 자체는 중국 공산당의 이익을 위해 폐기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만일 현직 달라이 라마가 사망하면 그들은 어떤 티베트인 아이를 강제로 납치하여 달라이 라마 15세라고 주장할 것이 확실하다.

7.5.1. 반론

* 반론 제기 후 비판 측의 주장이 상당부분 삭제된 점 고려 바람.

- 일반화의 오류 : 환생자 제도에 대한 비판자 본인의 견해를 한국인 전체의 견해로 호도하는 전형적인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비판자의 주장과는 달리 전통적인 불교권 국가로 분류되는 대한민국의 국민들 다수는 윤회환생이란 개념에 친숙하며 환생자 제도에 대한 거부감도 적은 편이다. 그 예로 환생자 제도를 다룬 다큐 영화 <다시 태어나도 우리>가 국내외 각종 영화제에서 잇따라 수상하며 흥행과 이슈몰이에 성공한 사례를 들 수 있다.

- ‘피장파장의 오류’에 대한 잘못된 적용 : 소위 ‘피장파장의 오류’란 인신공격의 오류로서 상대방의 적격성을 문제 삼아 본인과 상대방 모두 옳지 못하다는 식으로 논점을 흐리는 경우를 말한다. 그러나 반론 측 주장은 한국불교의 관습과 티벳불교의 관습 모두 문화적 상대성의 입장에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논지이므로 ’둘 다 그르다‘, ’오십보백보‘ 라는 식의 피장파장의 오류는 성립되지 않는다. 반론 측 논증방식은 보편적 명제를 통해 구체적 결론을 이끌어내는 연역논증이라고 보아야 옳다.[35]

- 미성년자의 특수성과 환생자의 의지 : 환생자 선정시 부모, 가족 등 친권자의 동의를 받아 출가를 결정하므로 결코 강제납치라고 할 수 없다. 환생자를 선정할 때 가족의 의사가 무시되었을 것이란 비판 측 주장은 근거 없는 억측에 불과하다.[36][37] 또한 비판 측은 각주에서 '아직 사리판단이 불가능하며 자신의 독립적 의사조차도 형성되지 않은 아이의 입장은 깡그리 무시'된다고 말하였다. 비판 측의 발언대로라면 사리판단이 불가능하고 독립적 의사가 없는 아이의 입장을 따라야 한다는 식의 모순이 야기된다. 이는 '입장'을 '의견'으로 치환하여 반박하는 허수아비 공격이다. 비판 측이 말하는 것은 아이의 의견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한 '입장'을 아이의 주체적인 '의견'인 것처럼 '깡그리 무시된다'며 지나치게 강조하는 주장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비판 측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비판 측 스스로가 인정했듯이 아이의 입장은 고려의 대상이며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므로 보호자의 판단과 지도를 필요로 한다.

더군다나 환생자는 일반 아동들과는 달리 전생의 기억을 지니고 있다. 환생자는 전생에 중생 구제를 위해 다시금 태어나겠노라고 서원을 발한 존재이다. 때문에 전생의 기억을 잊지 않고 불교에 친숙한 면모를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개중에는 스스로 출가를 원하는 사례도 많다. 따라서 환생자 아동의 입장이 전적으로 무시되었다고 할 수도 없다. 정리하자면 미성년자의 특수성과 보호자의 친권 개념이 배제된 비판 측의 주장은 미성년자와 성인 간의 구분을 무색케 하는 비현실적인 주장이며, 전생에 대한 기억을 지닌 환생자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더욱 많은 논란의 소지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만일 환생자의 교육이 세뇌이자 양심의 자유 억압이라면 부모의 종교를 따라 신앙생활을 하는 대부분의 한국 미성년자들 역시 세뇌를 당하고 양심의 자유를 억압받는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절의 어린이 법회, 청소년 법회와 불교계통 학교의 교내 법회는 이러한 억압을 조장하는 행사이며 미성년자의 단기출가 역시 환생자의 조기 교육과 다를 바 없는 인권 침해 행위일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주장은 성인의 보호와 양육 하에 있는 미성년자 신분의 특수성과 국가, 민족, 사회별 문화적 상대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한계가 있다. 환생자에 대한 불교 교육이 세뇌, 양심의 자유 억압이라는 주장 역시 티벳 민족의 신념과 사상을 존중하지 않고, 보호자의 양육과 지도가 필요한 미성년자의 특수성을 무시한 극단적인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 민족주권종교의 자유, 문화적 상대성 침해 : 비판 측은 박정희 대통령의 비유[38]를 들며 독선적이고 일방적인 잣대로 민족의 주권과 종교의 자유, 문화적 상대성을 훼손하고 있다. 환생자 제도는 티베트 민족이나 티베트 불교 신자들에게만 의미가 있을 뿐 외부인에게 환생자 제도를 믿고 따를 것을 강요한 바 없다. 따라서 아무런 관련 없는 외부인이 티베트 불교 고유의 관습을 타 종파나 무신론자 기준에 의거하여 비합리적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티베트 민족의 자주권과 종교의 자유 및 문화적 상대성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폭력적인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티베트 불교의 환생자 제도는 티베트 불교 지도자들과 티베트인들이 판단할 사안이며 유물론자인 중국 공산당과 같이 외부의 세력이 개입할 문제가 아니다.[39]

만약 환생자가 불교를 믿길 거부하거나 환생자 신분을 거부하는데도 강요 당한다면 문화적 상대성으로 합리화될 수 없는 보편적 인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환생자가 불교 신앙 자체를 포기하는 사례는 거의 없지만, 승려나 종교적 지도자로서의 신분을 포기하길 원하는 사례는 실제로 종종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 당사자의 의사를 존중하여 신분을 포기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지므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40]

또한 환생자 제도를 순장, 여성할례, 인신공양과 같은 부류의 인권 침해라고 보는 주장은 지나치게 과도한 주장이다. 환생자는 종교적 지도자로서 사원 대중들의 보호 하에 적절한 복지를 향유한다. 또한 높은 수준의 종교 교육 및 현대식 교육을 받고 가족과도 상시 접견이 가능하다. 이러한 환생자 제도와 목숨을 위협당하는 순장, 여성 할례, 인신공양을 동급 취급하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에 어긋나는 몰상식한 처사이다.

8. 지역별 보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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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불교 종파의 분포
밀교 · 티베트 불교
대승 불교
상좌부 불교

8.1.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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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대한민국에 들어서 부산광역시한국 티벳 불교 사원 광성사라는 티베트 사원이 들어섰고[41] 소속된 종파는 달라이 라마가 수장으로 있는 겔룩빠(Gelukpa). 이 사원은 주지스님을 비롯하여 주재하는 스님들 모두 티베트인 스님들이다. 티베트인 스님 약 4~5명이 거주하고, 모두 중국의 티베트 압제를 피하여 대한민국까지 오게 된 분들이다. 아울러, 달라이 라마의 방한 운동을 사원 측면에서 추진한다.

현재 한국 내에서 티베트 불교를 수행하는 대표적인 곳들은 다음과 같다.
이 외에 정기/비정기적인 법회와 수행모임을 개최하는 수행단체는 다음과 같다.
티베트 불교를 믿는 네팔, 몽골 이주민들을 위한 사찰도 있다. 이 중 서울네팔법당 텍첸사의 경우 한국인 불자들도 법회에 참여하고 있다.
티베트 불교 관련 국내 학술기관은 다음과 같다.
이외에도 불교 발전을 위해 한국의 주류 불교와 티베트 불교 사이에 교류를 하는 움직임도 있었는데, 전남 보성군의 대원사에서는 '티벳 박물관'을 세우고, 티베트 불교 승려가 보낸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티베트풍 탑을 짓기도 하였다.

8.2. 중화권 및 티베트

한반도와 일본과는 다르게 중국은 몽골 제국의 행성으로서 직접 지배를 받아서 티베트 불교가 매우 성행했다. 중국령이 된 상태인 티베트 자치구칭하이성, 쓰촨성 일부 지역을 포괄한다. 내몽골 자치구몽골인들과 신장 위구르 자치구 몽골 자치현의 오이라트인들 그리고 동북 3성의 만주족도 많이 믿는다.

티베트는 이름대로 티베트 불교의 발상지이자 중심지였으나, 중국의 침략과 달라이 라마의 인도 망명, 이후 문화대혁명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현대까지 중국 내 티베트인들 대부분은 독실하게 티베트 불교를 믿는다. 사실상 티베트 지역의 국교. 그러나 10%정도는 티베트 고유 종교인 뵌교를 믿는다.

한족들도 티베트 불교를 상당히 많이 믿지만[42], 물론 퍼센트나 절대적 수 모두 넘사벽인 도교와 대승 불교, 기독교에 밀린다. 한족 신도들은 티베트에 관련된 정치상황에 대해서는 절대 말을 하지 않는다. 중국 정부의 규제도 상당한 편.

베이징 지하철 2호선 용허공역의 영문 표기는 Yonghegong Lama Temple Station으로, 용허공 라마교 사원이라 표기한다.

대만에도 소수의 티베트 불교 신자가 존재한다. 이들은 대부분 외성인인데 조상이 상술한 중국 내 티베트 불교 강세 지역들 출신인 경우가 많다. 홍콩마카오 또한 상술한 중국 내 티베트 불교 강세 지역에서 망명해온 이들 및 그 후손들이 티베트 불교를 믿고 있다.

8.3. 네팔

석가모니의 탄생지인 룸비니(Lumbini)네팔에 위치하고 있으나 힌두교 인구가 전체 인구의 약 80%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불교 인구는 9~10% 정도에 불과하다. 네팔의 불교는 크게 티베트 불교, 네와르 불교, 테라와다(상좌부) 불교로 구성되어 있다.

네팔은 티베트와 지리적으로 인접해있고 한 때 티베트의 지배를 받았던 적도 있다. 그 영향으로 셰르파(Sherpa)족 등 티베트버마어파 언어를 쓰는 카트만두 계곡 근처 북부 고지대의 몽골리안계 소수 민족들이 티베트 불교를 주로 믿는다. 중앙의 네와르(Newar)족은 힌두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네와르 불교를 믿는다. 힌두교의 영향으로 네와르족에게는 그들만의 독특한 카스트 제도가 있다. 테라와다 불교도 소수지만 존재한다. 석가모니의 탄생지인 룸비니 인근은 성역화되어 전세계 불교 종파들이 세운 사원들이 밀집해있다.

8.4. 부탄

사실상 부탄국교이다. 그러나 달라이 라마 대신 샵둥나왕남걜(Zhabdrung Ngawang Namgyel)이 국사(國師)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16세기에 티베트 불교 종파 중 하나인 둑빠 까규빠 세력이 겔룩빠의 탄압을 피해 부탄에 자리잡아 국교가 되었기 때문.

8.5. 몽골

몽골 제국 시대부터 몽골인들의 종교가 되었다.

공산주의 시대에는 독재자 허를러깅 처이발상의 주도로 극심한 탄압을 받았지만[43] 탈공산화 후 완화되었다. 간단 사원이 몽골 티베트 불교의 중심적인 사원이다.

8.6. 러시아

러시아의 아시아계 시베리아 소수민족부랴트인과 투바인, 칼미크인 등이 주로 믿는데 이들 중에서도 믿는 자들은 매우 극소수들이다. 이들은 위에 언급된 몽골과 가까운 계통의 민족들이데 이들은 대체로 19세기 말부터 믿기 시작하여서 예전 티베트 불교와는 조금 이질적이다. 칼미크인은 최고 지도자를 자체적으로 따로 뽑는다. 무신론을 강요하던 소련 시절 칼미크인 불교 지도자들은 티베트 불교가 무신론이라고 주장했으나, 소련 정부는 티베트 불교는 무신론이 아니라면서 이슬람이나 기독교보다 훨씬 더 심각한 수준의 박해를 가했다.[44] 당시 소련 전국에 오직 2군데 사원[45]만이 허가 하에 존치되었을 정도였다. 소련이 붕괴하고 러시아 정부에서 공인한 '전통 종교' 4개 중 하나로 지정되어[46] 정부 인사들과 불교 대표가 자주 만나는 등 사정이 많이 나아져 교세를 회복하고 있으며, 영미권에서 티베트 불교 신자가 조금씩 늘어나는 것처럼 소수민족 외의 슬라브계 러시아인 신자도 아주 조금씩 늘어나는 중이다. 그리고 러시아의 화교[47] 또한 티베트 불교 신자가 많은데 이들은 주로 동북 3성 한족의 후손이다.

8.7. 인도

힌두교를 믿는 일반 인도인은 거의 믿지 않으며, 인도 북부의 라다크, 시킴 등 티베트계 지역과 중국의 탄압을 피해 망명한 티베트인들이 주로 믿는다.

인도 사회에서 오랜 세월 천대를 받아온 불가촉천민 계층에서는 불교를 믿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불가촉천민이라면 티베트인 거주지에 사는 경우가 아닌 이상 티베트 불교보다는 신흥 종파인 나바야나(Navayana)를 믿는다. 나바야나는 인도 독립 이후 불가촉 천민들의 지도자였던 암베드카르 박사가 수십만명의 불가촉천민, 평민과 함께 한 불교 운동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8.8. 기타 전세계

일본 불교와 더불어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진 불교로 심지어 아프리카에도 절이 있다.[48] 아프리카 불교도들의 따라보살 기도 영상[49] 서양에서도 유럽[50]이나 미국[51], 중남미[52]등지에 상당한 신자들이 있을 뿐 아니라 서구 학계에서는 티베트 불교를 인도의 마지막 대승 불교의 정통 후계자로 보는 경향이 강하고[53] 중국 불교, 상좌부 불교와 함께 학자들이 많이 연구하는 종파이다.

달라이 라마(Dalai Lama), 까루 린포체(Kalu Rinpoche)[54], 딜고 켄체 린포체(Dilgo Kyentse Rinpoche)[55], 소걀 린포체(Sogyal Rinpoche)[56], 카르마파(Karmapa), 꺕제 송 린포체(Kyabje Zong Rinpoche) 등이 활발하게 포교활동을 벌이며 티베트 불교를 서방에 알렸다.

9. 여담

원나라 때 티베트 불교의 영향을 받은 몽골인이 한족에게 초야권을 행사했다는 설이 있으나 이는 신력건(信力建)이라는 중국의 언론인이 민담과 전설, 민간풍습을 재구성하여 추측한 주장에 불과하다. 정사(正史)인 《원사(元史)》, 《원조비사(元朝秘史)》 등에는 초야권과 관런된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시 원나라 지배층과 결탁한 티베트 라마들 중 일부가 타락하여 민간의 아녀자를 겁탈하는 등 성적 착취를 행하였다는 정황은 찾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밀교의 교리가 악용되기도 하였다.

또한 외몽골 같은 일부 티벳불교권 지역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라마가 초야권을 행사하여 매독 감염의 주 경로가 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만약 몽골에서 라마의 초야권이 행해졌다면 이는 밀교 교리의 영향이라기보다 유목민 문화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 몽골, 티베트 유목민 사회는 척박한 환경의 영향으로 형제들이 한 부인을 공유하는 일처다부제가 행해지고 있었고, 또한 사원 밖에서 자급자족하는 재가승려들이 존재하였다.

또한 인도에서 탄트라의 수도승이 들어와 성적 결합이 들어간 저급한 좌도 밀교가 유행했다. 이는 탄트라에서 나오는 성력을 중시하며 여성을 성력의 심볼리즘으로 보고 수도하는 것인데 좌도 밀교라고도 불린다. 후기 밀교에는 성에너지를 이용한 수행을 포함하고 있으나 이를 '저급하다', '좌도 밀교'라고 표현하는 것은 딴뜨리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과거의 서구식 편견(혹은 동양의 유교적 편견)에 해당한다. 밀교에 대한 이해가 축적된 현대에는 이미 불교의 철학적 개념에 대한 상징적, 은유적 표현으로 해석되고 있다.[57] 애초에 좌도밀교라는 명칭부터 좌도와 우도를 구분하는 도교에서 유래한 적절치 못한 표현으로, 부정적 편견이 들어간 구식 용어이며 공식적인 학술용어라 할 수 없다. 여성을 단순히 성력의 심볼리즘 취급하는 주장도 온당치 못하다. 밀교에서는 남녀 모두 공히 동등한 수행자로서의 위치를 차지하며, 때로는 여성이 스승이 되어 남성 수행자를 지도하는 등 밀교 수행자로서의 여성은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밀교의 계율인 사마야(samaya)에서는 여성을 비하하거나 무시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하고 있다.
밀교와 성에 대한 이해

[1] 《입보살행론》과 《중론》의 게송은 각각 대승불교의 핵심인 보리심과 공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달라이 라마도 법회에서 자주 인용하는 구절이기도 하다.[2] 초창기 서구의 학계에서도 라마이즘(Lamaism)이라는 단어를 썼다.[3] 화상(和尙)이란 승려를 높여부르는 한자어이다.[4] 그러나 티벳 측 문헌인 《바세》와 중국 측 문헌인 《돈오대승정리결》은 쌈예 논쟁의 결과에 대하여 서로 엇갈리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어찌되었건 양측의 기록이 상반된다는 점과는 별개로 쌈예논쟁 이후 인도불교는 티벳 지역에 확고히 자리잡게 되고 마하연의 선종은 '화상(和尙)종'이라 불리우며 배척의 대상이 된다. 선종과 유사한 점이 있는 닝마빠의 족첸이나 까규빠의 마하무드라 전승도 '화상종' 아니냐는 타 종파의 비판을 듣곤 하였다.[5] 참고로 티베트어에서 빠(Pa)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닝마빠를 번역하면 '오래된(닝마) 사람(빠)'으로 티베트 불교에서 가장 오래된 종파임을 의미한다.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Pa'는 '파'로 표기해야 하지만 초창기 이러한 표기로 인해 '파(Pa)'가 우리나라 단어의 '파(派)'로 오해되는 일이 잦자 최근에는 표기법을 무시하고 원어 발음대로 표기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티베트어는 엄연히 자음의 기식 유무를 구분하는 언어라서 베트남어처럼 된소리 표기가 허용되어야 하는데도 제대로 된 표기법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만약 티베트어를 위한 표기법이 따로 만들어진다면 된소리가 허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비슷한 처지의 언어로는 힌디어, 산스크리트어, 고전 그리스어 등이 있는데, 아무튼 논문이나 리포트는 전부 현행 표기법에 따라 거센소리로 쓰는 게 원칙이다.[6] 비구계를 받은 승려가 결혼을 원한다면 비구계를 반납하고 환속하는 절차를 거치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승려의 결혼이라 할 수 없다. 그러나 복식 등에 있어 재가수행자와 출가수행자의 구분이 잘 되지 않아 개선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티벳불교의 재가수행자는 백색 의복, 출가수행자는 적갈색 의복을 입는다.[7]17대 카르마파(중 1명)는 기혼이다.# 종파 지도자로는 남지만 종교의식을 주도하지는 못한다고 한다.[8] 종정이 특별한 조건을 갖춘 배우자와 결혼해 그 직위를 세습한다.[9] 《티베트 사자의 서》로 알려진 《바르도 퇴돌 첸모》가 뗄마 전승에 속한다. '바르도 퇴돌 첸모'란 '중음(中陰, 죽음과 환생 사이의 시간)에서 듣는 것만으로 얻게 되는 해탈'이란 뜻이다.[10] 로짜와(lotsawa)는 '역경사' 라는 뜻의 티벳어이다.[11] '달라이'는 몽골어로 '큰 바다'라는 뜻이고 '라마'는 티벳어로 '스승'이라는 뜻이다.[12] 특히 겔룩빠가 이 경향이 강하다.[13] 한국의 밀교는 대부분 조선 조 불교 탄압으로 인해 독자적인 명맥을 유지하지 못하고 사라졌다. 현재 한국에 진각종, 총지종 등의 밀교 종단이 있으나 모두 근현대에 새로 창종된 종단들이다.[14] 수행의 결과인 불과를 수행방편으로 이용하여 수행자 자신이 현재 부처임을 아는 청정인식을 갖게 한다.[15] 티벳망명정부 총리를 역임한 삼동린포체는 방한법회에서 현교와 밀교를 도보와 고속철도에 비유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갈 때 도보보다 고속철도가 훨씬 빠르지만 거쳐가는 길은 같다. 마찬가지로 밀교도 현교보다 짧은 기간에 성불할 수 있지만 중간 과정을 생략함 없이 거쳐 가는 과정은 동일하다.[16] 탱화의 어원이 탕카라는 설이 있다.[17] 국내에는 화정박물관에 티베트 탕카 컬렉션이 있다.[18] 스승을 부처로 인식하면 부처의 가피를 받고 평범한 인간으로 인식하면 평범한 가피를 얻게 된다. 외적 스승을 부처로 보는 청정한 인식을 가짐으로써 자기 안의 진정한 스승, 곧 본성을 깨닫게 된다.[19] 수행, 보시와 같은 선업을 행하여 얻은 선근공덕(善根功德)을 자신이나 다른 중생을 위해 함께 하는 일을 말한다.[20] 불교의 세계관인 육도 중에 악업으로 인해 환생하는 지옥, 아귀, 축생을 지칭함[21] '맹구우목(盲龜遇木)'이란 비유에서 알 수 있듯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중생은 무수히 많은 악업을 짓고 선업은 적게 행하여 인간이나 천상에 태어나기 매우 어렵고 지옥, 아귀, 축생 등 삼악도에 떨어지는 것은 쉽다. 그러니 인간으로 태어난 귀한 기회를 놓치지 말고 수행정진하라는 가르침이다.[22] 보리심이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의 준말로, 자비심이 원인이 되어 발생하는 '나뿐만 아니라 일체중생이 모두 무상정등정각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이다.[23] 고성제, 즉 고고, 괴고, 행고를 절감하고 진정으로 윤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 단순한 염세주의와는 구분하여야 한다. 진정한 출리심은 윤회의 본질이 고통이라는 사실을 깊게 사유하고 세속적 욕망보다 해탈을 추구하는 마음이다.[24] 《람림》을 의지하면 스승에 대한 잘못된 견해나 그 죄를 사유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이러한 죄업이 소멸된다. 또한 무상에 대하여 배움으로써 이번 생에 대한 집착이 없어지고, 보리심을 일으키는 것에 대해 생각함으로써 이기심으로 생긴 죄업이 없어지고 무아를 생각함으로써 자아까지도 없애는 등 지은 죄가 저절로 소멸되는 위대함이 갖추어져 있다고 한다.[25] 닝마빠 등 다른 종파는 강원과정을 9~10년 남짓 거친다. 그러나 이후에도 승려 개인의 자율적인 교학연구는 계속 이어지며, 따라서 타 종파 승려가 겔룩빠 승려보다 교학 수준이 결코 낮다고 할 수 없다. 종파 간의 교학적 견해도 약간씩 차이를 보이는 편이다.[26] 겔룩빠 외에 티벳의 타 종파에는 켄뽀(Khenpo) 칭호가 있다.[27] 린뽀체(rinpoche)란 '보배로운 존재'란 뜻의 경칭이다. 보통 환생자 고승을 가리키는 경칭으로 알려져있지만, 환생자가 아닌 당대에 높은 성취를 이룬 고승에게도 쓰인다.[28] 부처와 보살에 대한 정의는 불교 내 각 종파마다 다르다. 상좌부 불교 참조.[29]화엄경》에서는 보살의 지위를 10지(地)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는데, 견도(見道)에 들어선 초지(初地)보살은 화신 100개을 나툴 수 있다고 한다. 높은 지에 오를수록 나툴 수 있는 화신의 수가 증가하여 부처는 화신을 무한하게 나툴 수 있다.[30] 지혜는 무루업(無漏業), 복덕은 유루(有漏)의 선업(善業)에 해당한다. 지혜자량은 부처의 법신을 이루며 복덕자량은 부처의 색신을 이룬다.[31] 보살은 수행의 과정에서 종종 삼악도나 성문, 연각의 경지로 퇴락하기도 한다. 반면에 더이상 퇴락하지 않고 깨달음을 잃지 않는 상태를 '불퇴전', '아비발치'라 한다. 구체적으로는 보살 52위 중 십주(十住)의 제 7주인 불퇴전주(不退轉住), 십지(十地)의 제 8지인 부동지(不動地) 등을 일컫는다. 진정한 불퇴전지는 제 8지인 부동지이며, 부동지에 오른 후에는 부처에 이르기까지 더이상 퇴전함 없이 향상하게 된다.[32] 달라이 라마와 과학자들이 참여하는 '마음과 생명 대담(Mind & Life dialogue)', 달라이라마와 과학자들의 교류를 담은 영화  <The Dalai Lama – Scientist> 등을 참조할 것. 이 외에도 티벳불교 스승들과 과학자들 간의 교류가 담긴 서적이 여러 권 출간되었다.[33] 국내에 출간된 환생 연구 관련 서적으로 전생을 기억하는 아이들, 어떤 아이들의 전생 기억에 관하여, 인간은 분명 환생한다 등이 있다.[34] 이 경우는 환생보다는 '소산(emanation)'에 해당한다.[35] 반론 측의 논지를 삼단논법 식으로 재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대전제) 종교적 관습은 문화 상대적인 관점에서 존중받아야 한다. (소전제) 한국불교의 아동 법회, 아동 단기 출가(혹은 티벳불교의 환생자 제도)는 종교적 관습이다. (결론) 따라서 한국불교의 아동 법회, 아동 단기 출가(혹은 티벳불교의 환생자 제도)는 문화 상대적 측면에서 존중받아야 한다.[36] 환생자 선정 절차는 사료와 다큐, 영화 등 영상자료를 통해 이미 외부에 여러 차례 상세히 공개된 바 있다.[37] 보통 티벳에서는 자신의 집안에서 환생자가 태어나는 것을 최고의 영예로 여긴다.[38] 티벳불교의 환생자를 불교와 관련없는 박정희 대통령에 빗대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못한 비유이다. 환생자 제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윤회환생과 보살사상과 같은 불교 교리가 전제되어야 하며, 박정희 대통령은 이와는 상관없는 비종교인이다. 그리고 한국 극우세력의 박정희 신격화는 극우가 아닌 한국인들에게 사실상의 사이비 종교로 여겨지며, 특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기점으로 이러한 경향이 더더욱 강해졌다.[39] 다만 이와는 별개로, 만약 티베트가 독립한다면 티베트 불교 자체가 친중파와 반중파로 갈라질 가능성이 있기는 하다. 한족들 중에서도 동북3성, 내몽골 자치구,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사는 이들은 티베트 불교 신자가 많으며, 티베트인들 중에서도 소수이지만 엄연히 친중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40] 예를 들어 깔마 까규빠의 주요 환생자인 제 4대 잠곤 꽁툴 린포체는 2016년에 린포체로서의 권한과 의무를 포기하고 다른 방식으로 중생을 이롭게 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41] 부산 서구 아미동2가에 위치. 부산대학교병원과 가깝다.[42] 대체로 티베트 자치구, 내몽골 자치구, 신장 위구르 자치구, 동북 3성의 한족들이 많이 믿는다. 동북 3성의 만주족은 청나라부터 티베트 불교를 믿었으며, 만주 지역 및 일부 퉁구스계 제족들(어원커, 시버, 나나이) 중에서도 티베트 불교 신자들이 있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 북부 지역의 몽골인들 또한 티베트 불교를 믿기도 한다. 그 외 내몽골 자치구의 다우르족도 일부는 티베트 불교를 믿는다고 한다.[43] 아이러니한 건 그 처이발상도 어린 시절 티베트 불교의 스님이었으며 그가 죽을 때까지 쓴 이름 '처이발상'도 스님 시절에 받은 법명이었다.[44] 자세한 내용은 종교적 소수자, 타타르의 멍에 문서 참조[45] 울란우데 근처의 이볼긴스키 사원(Ivolginsky datsan)과 치타 근처의 아긴스코예 사원(Aginskoe datsan)[46] 정교회, 이슬람교, 유대교, 불교[47] 서구권 화교들과 달리 기독교 중에서는 정교회 세가 강하고 불교 중에서는 티베트 불교 세가 강하다.[48] 케냐, 남아공, 짐바브웨[49] 잘 들어보면 티벳어임을 알 수 있다. 흠좀무[50]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스위스, 폴란드 등 다수의 유럽국가에 티벳불교 사원과 수행센터가 있다.[51] 유명 배우 리처드 기어, 우마 서먼이 대표적인 티베트 불교 신자다. 리처드 기어는 달라이 라마의 제자이고 한 때 출가를 결심했을 정도로 독실한 티벳불교 신자이다. 그리고 우마 서먼의 아버지는 미국의 대표적인 티벳불교학자인 컬럼비아대 교수 로버트 서먼이다. 우마 서먼의 이름 중에 '우마(Uma)'란 퍼스트네임은 대승불교 사상인 '중관'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이고 미들네임인 카루나(Karuna)는 '대비심'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이다. 대승불교 핵심을 다 포함하는 어마어마한 이름[52]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53] 실제로 이슬람의 침공으로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지기 직전과 직후 인도의 승려들과 불경들이 전부 티벳으로 넘어갔기에 마지막 계승자로 보고, 티베트 불교 스스로도 이에 대해 자부심이 있다.[54] 이 스님의 환생자가 한국에 다녀갔다. 한국에서는 그렇게 유명한 분이 아니지만 서양에서는 거의 달라이 라마와 동급으로 모셔지는 스님이다.[55] 달라이 라마의 스승이었다.[56] 티베트 고위 승려중 처음으로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았다. 대표적인 저서로 《The tibetan book of living and dying》이 있다. 한국에서는 《티베트의 지혜》(민음사)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나왔는데 번역의 질이 좀….[57] 예를 들어 밀교의 부모불(혹은 쌍신불, 얍윰Yab-yum)은 지혜와 방편의 합일을 상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