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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0-02-17 06:12:18

티베트 불교

파일:종교표지_불교_흰색.png
불교의 종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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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jrayana Buddhism

1. 개요2. 상세
2.1. 라마교?2.2. 달라이 라마와 환생2.3. 종파
2.3.1. 복식
3. 특징4. 한국 불교와의 교류
4.1. 인적 교류4.2. 문화 교류
5. 강원의 교육과정
5.1. 기초 과정5.2. 5대 경전 과정5.3. 강원 과정 이후
6. 환생 계승 제도에 대한 비판7. 지역별 보급

1. 개요

티베트를 중심으로 발달한 불교의 한 종파. 주된 분포 지역은 중국령 티베트 자치구, 부탄, 몽골(중국령 내몽골자치구 포함), 러시아의 몇몇 공화국(칼미크 공화국, 부랴트 공화국, 투바 공화국) 등이며, 세계 각지에서도 많이 믿는 불교 종파이다. 밀교에 속한다.

2. 상세

2.1. 라마교?

과거 '라마교'라고 통칭되었고 현재에도 간간히 그렇게 불리나 엄밀히 말해 비하적인 표현이다. 라마교라는 것 자체가 라마를 섬긴다는 뜻을 내포하는데, 밀교의 영향이 강한 티베트 불교의 관습으로 붓다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전해주며 자신을 깨달음으로 이끌어주는 스승(라마)을 붓다와 하나로 보기 때문에 그렇게 통칭되었던 것.

하지만 이 단어가 인도 불교와 티베트 불교 사이의 연관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잘못 비쳐질 수 있기 때문에, 서양[1] 및 한국 학계에서도 라마교 혹은 라마불교라는 용어 대신 티베트 불교로 용어를 고치고 있다.

테라바다(상좌부 불교), 마하야나(대승 불교)에 이어 바즈라야나(금강승)라는 이름으로 칭하기도 한다. 금강승은 일본의 같은 밀교 종파 중 진언종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2.2. 달라이 라마와 환생

종단의 크기에 비해 비종교적 입장에서 보면 좀 기묘해 보이는 점이 있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달라이 라마를 예로 들면, 달라이 라마의 자리는 그럴만한 사람을 그 자리에 앉히는 것이 아니라 불교의 윤회 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환생한 자가 그 자리를 계승하게끔 한다. 즉, 티베트 불교의 입장에 따르면 초대 달라이 라마 이래 모든 달라이 라마는 출생년도나 외모는 계속 바뀌었어도 한 사람이라는 주장으로 이것은 곧 육체는 다를지언정 영혼만은 동일하다는 뜻이다.[2] 이건 불교의 무아의 정반대 아닌가?? 불교에서도 변화하는 의식의 흐름의 존재를 인정한다. 이 흐름의 가장 미세한 부분을 ‘식’이라고 하는데, 죽으면 이 식이 다음 생으로 이어지며 환생하는 역할을 한다. 물론 기억을 비롯한 모든 이전 생의 요소는 소거된다.

인터뷰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과연 15대 달라이 라마가 있을 것인가, 그리고 있다면 어떻게 선출한 것인가.'이다. 달라이 라마가 진술한 내용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작성된 무수한 성명서들과 저서들을 바탕으로 한다. 그는 이 글들을 통해 자신이 후계자를 둔다고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 것과 2007년 중국 정권이 통과시킨 법에 대해 거론했다. 해당 법은 어떤 티베트 고승들이 환생될 것이며 환생을 어떻게 식별할 수 있을지 결정할 권한을 (역설적이게도) 중국 공산당에 부여한다.인터뷰를 통해 14대 달라이 라마는 그의 이전 교학 저서들에서 언급한 교리에 대한 입장을 다시금 언급했다. 티베트와 몽골 고승 수백 명, 어쩌면 수천 명은 환생을 통해 계보를 이어간다. 달라이 라마가 거듭 언급한 바에 따르면 고승은 서거 전에 자신의 본질을 후계자에 전수할 수 있고[3], 고승 한 명이 두 사람 이상으로 환생하거나 전혀 환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는 전적으로 고승의 뜻에 달렸다.크리스마스에 열린 달라이 라마와의 중요 인터뷰(Bitter Winter, 2018.12.29 마시모 인트로빈(MASSIMO INTROVIGNE) 영어 인터뷰

2.3. 종파

티베트 불교는 크게 4개의 종파로 나뉜다. 닝마빠(རྙིང་མ་, Wyl. rnying ma "오래된"), 싸꺄빠(ས་སྐྱ་, Wylie: sa skya, "하얀 땅"), 까규빠(བཀའ་བརྒྱུད།, Wylie: bka' brgyud "구전 전승의"), 겔룩빠(དགེ་ལུགས་, Wyl. dge lugs "위대한" )가 그것이다.[4]

후술하겠지만 의식에 쓰는 모자 색깔을 가지고 닝마빠, 싸꺄빠, 까규빠 3파를 홍모파(紅帽派), 겔룩빠는 황모파(黃帽派)라고도 한다. 그 중 겔룩빠는 티베트 불교의 최대 종파로, 계율이 엄격하고 도덕적 교의를 중요하게 여기는데 15세기 초에 총카파의 혁신 운동으로 일어났으며, 독신 생활을 주장하며 타 종파와의 구별을 위해 노란 승복을 입었다.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종파 주요 수장 승려[5]의 결혼 한문식 표현
겔룩빠(དགེ་ལུགས་, Wyl. dge lugs "위대한") 달라이 라마
판첸 라마
불가 황모파(黃帽派)
닝마빠(རྙིང་མ་, Wyl. rnying ma "오래된") 전통적으로 없음 가능 홍모파(紅帽派)
싸꺄빠(ས་སྐྱ་, Wylie: sa skya, "하얀 땅") 사캬 티진 가능[6]
까규빠(བཀའ་བརྒྱུད།, Wylie: bka' brgyud "구전 전승의") 카르마파
까루 린포체
가능[7]

2.3.1. 복식

계를 수지한 티베트 승려의 경우 하의는 모두 샴탑이라고 하는 붉은색 통짜 천을 두른다. 전통적인 상의를 보면 종파를 대강 구분할 수 있다. 닝마빠 울렌이라고 하는 차이나 컬러에 소매가 없는 조끼만 입으며 싸꺄빠와 까규파는 울렌 위에 뙨까라고 하는 붉은색 조끼를 덧대입는다. 그리고 겔룩빠는 울렌 대신 뙨까만 입는다. 또한 의식에 쓰는 모자가 겔룩빠는 노란색이어서 황모파黃帽派라고 불리며 나머지 닝마빠, 쌰까빠, 까규빠는 붉은 색 모자를 쓰기 때문에 홍모파紅帽派라고도 불린다.

3. 특징

티베트 불교에서의 명상은 밀교적인 시각화 명상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먼저 부처 혹은 보살의 모습을 정해 최대한 생생하게 시각화한 뒤, 수행자 자신이 이러한 불보살과 일체화되고 이들의 깨달음의 경지와 하나됨을 느낀 다음, 마지막으로 이렇게 시각화한 모든 것을 지워버림으로써 집착하는 마음 없이 깨달음에 가까워지도록 하는 것이다. 화려한 만다라를 만들고 이를 부숴 버리는 것도 이러한 수행의 일부이다.

또한 티베트 불교 특유의 자비명상으로 '통렌(tonglen)' 명상법이라는 것이 있는데,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을 눈 앞에 있다고 시각화한 다음, 사랑과 자비, 행복 등 긍정적인 에너지를 날숨에 실어보내고, 다른 사람의 부정적인 에너지와 고통을 들숨을 통해 대신 흡수하는 명상법이다. 이를 통해 남과 나 사이의 분별을 없애고 자비심을 키우게 한다.

티베트 불교의 또 다른 특징은 매우 분석적이고 회의주의적이라는 것이다. 회의주의적이라는 말에 오해가 있을 수 있어 덧붙이자면, 부처님의 말이라고 해서 맹목적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금을 감정하듯이 분석적으로 의심을 갖고 명상하면서 불법의 진리를 수행자 본인이 직접 확인해가는 것이다. 논쟁 역시 중요한 수행 방법으로 삼는데[8], 라싸의 절에 가면 붉은 가사를 입은 수행자들이 서로 랩배틀(...)을 하듯이 커다란 몸짓을 하면서 논쟁 수행에 열중하는 희한한 풍경을 볼 수 있다.

티베트 불교의 수행방법은 후기 밀교로서 힌두교의 탄트라에 영향을 많이 -았기 때문에 외부인이 보기에 은밀하고 주술적으로 보이며, 특히 성교에 의한 탄트라 성력 수행법을 긍정하는 것 때문에 저급하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탄트라 밀교의 수행 방법으로서 성력을 수행 방법에 일종으로 사용한 것이다. 다만 티베트 불교가 성행했던 원나라에서는 몽골, 티베트에서 승려들이 20세기 초까지 초야권을 행사하고 성병을 전염시키는 등 부정적으로 악용했던 사례가 있어 이러한 오해는 사라지지 않았다.

티베트나 몽골에서 신부의 초야권은 오직 라마교의 승려만이 행사할 수 있다. 아마 이 지역이 전 세계에서 초야권이 가장 오랫동안, 가장 일반적으로, 가장 광범위하게 행사된 지역일 것이다.

원나라에서 몽골인이 한족에게 초야권을 행사했다는 주장은 신력건(信力建)이라는 중국의 언론인이 민담과 전설, 민간풍습을 재구성하여 추측한 주장에 불과하다. 정사(正史)인 《원사(元史)》, 《원조비사(元朝秘史)》 등에는 초야권과 관런된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시 원나라 지배층과 결탁한 티베트 라마들 중 일부가 타락하여 성적 착취를 행하였다는 정황은 찾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밀교의 교리가 악용되기도 하였다. 또한 외몽골 같은 일부 티벳불교권 지역에서 라마가 초야권을 행사하여 매독 감염의 주 경로가 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만약 몽골에서 라마의 초야권이 행해졌다면 이는 밀교 교리의 영향이라기보다 유목민 문화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 몽골, 티베트 유목민 사회는 척박한 환경의 영향으로 형제들이 한 부인을 공유하는 일처다부제가 행해지고 있었고, 또한 사원 밖에서 자급자족하는 재가승려들이 존재하였다.

또한 인도에서 탄트라의 수도승이 들어와 성적 결합이 들어간 저급한 좌도 밀교가 유행했다. 이는 탄트라에서 나오는 성력을 중시하며 여성을 성력의 심볼리즘으로 보고 수도하는 것인데 좌도 밀교라고도 불린다. 후기 밀교에는 성에너지를 이용한 수행을 포함하고 있으나 이를 '저급하다', '좌도 밀교'라고 표현하는 것은 딴뜨리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과거의 서구식 편견(혹은 동양의 유교적 편견)에 해당한다. 밀교에 대한 이해가 축적된 현대에는 이미 불교의 철학적 개념에 대한 상징적, 은유적 표현으로 해석되고 있다.[9] 애초에 좌도밀교라는 명칭부터 좌도와 우도를 구분하는 도교에서 유래한 적절치 못한 표현으로, 부정적 편견이 들어간 구식 용어이며 공식적인 학술용어라 할 수 없다. 여성을 단순히 성력의 심볼리즘 취급하는 주장도 온당치 못하다. 밀교에서는 남녀 모두 공히 동등한 수행자로서의 위치를 차지하며, 때로는 여성이 스승이 되어 남성 수행자를 지도하는 등 밀교 수행자로서의 여성은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밀교의 계율인 사마야(samaya)에서는 여성을 비하하거나 무시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하고 있다.

4. 한국 불교와의 교류

4.1. 인적 교류

한국 불교와 티베트 불교의 교류는 신라시대에서 현대에까지 이르고 있다. 특히 티베트 불교를 숭앙하던 몽골의 침략 이후 고려 불교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신라승 김무상(金無相, 684∼762)과 티베트의 사신인 바상시의 만남은 삼예사(寺)의 사지(寺誌)에 해당하는 《바세》에 기록되어 있다. 김무상은 서기 754년 당나라 장안에서 티베트의 사신들을 만나 인도불교가 티베트에서 주류를 이룰 것이며, 훗날 티송데첸 왕이 등장하여 불교를 널리 홍포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또한 김화상은 그들 사신들에게 《십선경》, 《금강능단경》, 《도간경》을 전해주면서 왕의 즉위시에 사용하라는 말을 전해주었다. 훗날 김무상의 예언은 적중하여 샨타락쉬타가 인도에서 들어와서 티베트에 불법을 홍포했으며, 티송데첸 왕이 즉위할 때에는 사신들이 전수받은 세 종류의 경전을 독송하여 신심을 일으켰다.

혜과(惠果) 화상의 제자인 신라의 오진(悟眞)은 인도로 구법순례를 떠났다가 귀로에 티베트에서 입적하였다.

신라시대 고승 원측(圓測)의 《해심밀경소》가 법성(法成, Chos grub)에 의해 티벳어로 번역되어 티베트 대장경에 속하게 되었다. 이후 원측의 저서는 티베트 불교 내에서 경전 해석의 주요한 논거가 되는 대표적인 논장으로 자리잡았다.

1294년 티베트 승려 절사팔(折思八)이 티베트 경전과 법구류를 가지고 고려에 들어오고, 1314년에는 홍약이 티베트 경전 18,000권을 고려에 전해준 일이 있다.

고려사》의 기록에 의하면 1320년에는 몽골에 볼모로 잡혀 갔다가 티베트로 들어가게 된 충선왕을 위하여 민천사(旻天寺)에서 기도법회를 가졌다는 기록도 있다.

현재 우리 나라에 널리 유통되고 있는 육자진언 옴마니반메훔도 티베트의 자사태마(刺思?麻)와 사팔자(思八刺) 라마에 의해서 전해진 것이다.

현대에 들어서는 1967년에 달라이 라마 14세가 라사판 티베트 대장경 한 질을 동국대학교 도서관에 기증한 일이 있다. 이후 2009년 달라이 라마가 기부한 20만 달러 자금을 토대로 동국대에 티베트 대장경 역경불사를 하는 티벳대장경역경원이 설립되었다.

4.2. 문화 교류

고려시대 이후에 편찬된 의식집들에서 진언들을 범자나 티베트 문자로 나타내고 있으며, 관법차제(觀法次第)와 같은 수행법에서 범자로 된 종자자(種子字)를 명상에 채용하고 있다.

또한 사원의 건축물이나 법구류 등에서 범자나 티베트 문자로 된 진언종자들을 활용하고 있다. 여기서 사원건축에 단청을 하고, 거기에 범자로 된 문양을 새겨 넣는 양식은 티베트를 제외한 어떤 아시아 국가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독특한 양식이다.

인도나 티베트로부터 몽골 지역을 거쳐서 전파된 나가리·실담·란차·티베트·팍파문자 등은 우리 나라의 불교관련 의식집의 찬술 및 문자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뿐만이 아니라 조선시대 한글창제에도 영향을 주었다.

육자진언 관련 수행법은 티베트에서 저작된 《마니칸붐》의 가르침을 계승한 것으로 육자진언을 활용한 명상법이라는 데 그 특징이 있다. 《마니칸붐》은 몽골을 통하여 고려에 전래되었으며, 육자진언과 관련된 모든 가르침들을 총망라하고 있다.

밀교경궤의 교설에 입각한 다면다방불(多面多方佛), 운주사에 조성되어 있는 대석합체불(大釋合體佛)과 쌍와불은 티벳불교 불상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여진다.

괘불탱화는 티베트 불교에서 널리 쓰이는 법구의 하나이다. 흔히 티베트에서는 이것을 ‘탕카(Thang-ka)'[10][11]라고 하는데, 사찰에서 큰 행사가 있을 때 야외에 단을 설치하고, 괘불을 봉안한 다음 법회를 열었다. 우리 나라에도 이와 같은 괘불탱화가 다수 존재하며, 큰 법회에서 활용되고 있다.

고려시대부터 제작되기 시작한 금강저(金剛杵)와 금강령(金剛鈴)은 현재 한국불교의 의식에서는 그다지 쓰이고 있지 않으나 밀교경전에 의거한 수행법에서는 널리 쓰인다. 현재 우리 나라에 전해지고 있는 금강저의 형태는 티베트 계통의 것과 당나라 계통의 것들을 응용한 한국 독자의 것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고려시대 명종 20년(1190)년에 조성된 용문사 윤장대(輪藏臺)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현재 티베트 인들의 신앙생활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마니륜통(摩尼輪筒)이다. 최근에는 용문사의 윤장대와 그 형식은 다르지만 전국의 여러 사찰에서 티베트의 것을 채용한 마니륜통을 제작하여 신앙심을 고취시키는 법구로 활용하고 있다.

5. 강원의 교육과정

티베트 불교의 최대 종파인 겔룩빠의 경우 다른 종파보다 교학을 강조하여 전체 강원 교육과정을 수학하는데 20여년 정도의 기간이 걸린다.[12] 현대교육제도의 초등과정부터 대학원과정까지에 해당하는 기간을 불교 교육에 투자한다고 볼 수 있다.

광성사 소남 걀첸 스님의 설명에 따르면 겔룩빠의 3대 사찰인 데뿡 사원의 로셀링 강원에는 1학년부터 19학년까지의 교육과정이 존재한다. 주로 《인명학(因明學)》, 《반야학(般若學)》, 《중관학(中觀學)》, 《율(律)》, 《구사론(俱舍論)》 등 5대 경전을 배우는 교육방법이 체계적으로 잘 되어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5대 경전을 주로 배우는 점은 겔룩빠 뿐 아니라 다른 종파에서도 동일하다.

5대경을 배울 때에는 다섯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무조건 경전을 외워야 한다.
둘째, 경을 보지 않고 외우는 연습을 자주 해야 한다.
셋째, 뜻을 알기 위해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넷째, 경전에 대한 여러 해석들을 자주 보아야 한다.
다섯째, 여러 차례 토론을 통해 경의 내용을 깊이 새겨야 한다.

5.1. 기초 과정

제일 먼저 《듀라(섭류학攝類學)》를 배운다. 《듀라》는 인명학(因明學)의 문을 여는 열쇠와 같은 논리 이론을 최초로 배우는 과목으로, 티벳의 스승이신 차빠 최끼 생게가 경량부의 이론 방식을 접목하여 량(量)의 전반적인 의미를 요약하여 ‘듀라’라고 정하였다. <듀라>는 소논리, 중논리, 대논리 세 가지로 나뉘며, 기(基), 도(道), 과(果) 세 가지 중 주로 존재론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두 번째, 《로릭(심류학心類學)》을 배운다. 구체적인 심리학이 아닌 일반적인 마음의 종류-예를 들면 현량(現量), 비량(比量), 분별심(分別心), 비분별심(非分別心), 육식(六識), 심왕(心王), 심소(心所) 등등-를 설명하고 있다. 또는 7종심식(七種心識) 즉 현량식(現量識), 비량식(比量識), 재결식(再決識), 사찰식(伺察識), 현이미정식(顯而未定識), 의심(疑心), 전도식(顚倒識)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세 번째, 《딱릭(인류학因類學)》을 배운다. 진인(眞因)은 과인(果因), 자성인(自性因), 불가득인(不可得因) 세 가지로 나뉘며, 사인(似因) 또한 상위인(相違因), 부정인(不定因), 불성인(不成因) 세 가지로 나뉜다.

네 번째, 《둡타(종의宗義)》를 배운다. 종의는 학파, 교파라고도 부른다. 외도나 불교도의 견해에 따라 자신들이 이해하고 있는 철학적 바탕(基), 수행방식(道), 그 결과(果) 셋에 대한 교리적 설명 방식 등을 말한다. 간략하게 고대 인도의 외도 5개 파(派)인 논의오파(論議五派; 수론파數論派, 순세파順世派, 승론파勝論派, 폐타파吠陀派, 리계파離繫派)와 불교도의 4대 학파인 유부(有部), 경량부(經量部), 유식학파(唯識學派), 중관학파(中觀學派)로 나눈다.

다섯 번째, 《살람(지도地道)》을 배운다. 보살의 십지(十地; 환희지, 이구지, 발광지, 염혜지, 난승지, 현전지, 원행지, 부동지, 선혜지, 법운지)와 오도(五道; 자량도, 가행도, 견도, 수도, 무학도), 그리고 성문도, 연각도, 보살도에 대해 배운다.

이상의 과정을 배우는 데 대략 4년 정도 걸린다.

5.2. 5대 경전 과정

여섯 번째, 《석량론(釋量論)》을 배운다. 석량품(釋量品) 또는 광본양학(廣本量學)이라고도 하며, 고대 인도의 법칭(法稱)보살이 지었다. 이 논서는 자리(自利), 양성립(量成立), 현전(現前)과 타리(他利) 등 4품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인명칠론(因明七論) 중에서 세 근본이 되는 논서 중 하나다. 《둡타(종의宗義)》를 배우고 난 뒤 대략 10년 이상 해마다 겨울철 한 달씩 스님들이 한 절에 모여 집중적으로 배우기도 한다.

일곱 번째, 《반야현관장엄론(般若現觀莊嚴論)》7년 동안 배운다. 미륵오론인 《현관장엄론》, 《대승장엄론》, 《중변분별론》, 《법법성분별론》, 《구경일승보성론》 중의 하나이다. 그 내용은 일체종지, 도지, 일체지, 일체오등현관, 정현관, 차제현관, 찰나오등현관과 법신 등 8가지로 보살도의 모든 수행과 부처님의 경지인 과위(果位)에 대해 설명한 미륵보살이 지은 논서이다.

여덟 번째, 《입중론(入中論)》3년 동안 배운다. 용수보살이 지은 《중론(中論)》의 논서인 《입중론》은 월칭보살(짠드라끼르띠)이 저술하였고, 10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로 중관사상 즉 공성(空性)과 연기(緣起)에 대해 구체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아홉 번째, 《율경근본율(律經根本律)》4년 동안 배운다. 인도의 율사 공덕광보살이 4부 율전의 내용을 해석한 것이다. 주로 계율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17가지로 나눠 설명하고 있다.

열 번째, 《구사론(俱舍論)》2년 동안 배운다. 《아비달마 구사론본송》이라고도 하며, 인도의 세친보살이 저술한 소승의 논서로 본문은 게송체이고 8품으로 나누어져 있다. 당나라 삼장 현장법사가 범어를 한문으로 역경하였다.

이렇게 해서 현교(顯敎)에 대해 거의 20년 정도(기초과정 포함) 체계적으로 배우고 있다.

5.3. 강원 과정 이후

5대 경전 등 불경과 논서들을 체계적으로 배움으로써 먼저 현교(顯敎)에 대한 이해와 확신을 얻게 하며 마음에 깊게 익히도록 하고난 뒤 밀교(密敎)의 깊은 수행법을 기간 없이 평생 배우고 실천한다.

6. 환생 계승 제도에 대한 비판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티베트 불교/환생 계승 제도에 대한 비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지역별 보급

7.1.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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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기에 몽골 공주가 결혼을 하러 오던 즈음에 제작한 몇몇 불교 석탑이 티베트불교의 영향을 받았지만, 티베트 불교 자체는 기존 한반도에 뿌리 깊은 불교와는 이질적이라는 천태종, 수선사와 같은 토착 불교에 밀려 한반도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현대 대한민국에 들어서 부산광역시한국 티벳 불교 사원 광성사라는 티베트 사원이 들어섰고[13] 소속된 종파는 달라이 라마가 수장으로 있는 겔룩빠(Gelukpa). 이 사원은 주지스님을 비롯하여 주재하는 스님들 모두 티베트 스님들이다. 티베트 스님 약 4~5명이 거주하고, 모두 중국의 티베트 압제를 피하여 대한민국까지 오게 된 분들이다. 아울러, 달라이 라마의 방한 운동을 사원 측면에서 추진한다.

현재 한국 티베트 불교를 수행하는 대표적인 곳들은 다음과 같다.
이외에도 불교 발전을 위해 한국의 주류 불교와 티베트 불교 사이에 교류를 하는 움직임도 있었는데, 전남 보성군의 대원사에서는 '티벳 박물관'을 세우고, 티베트 불교 승려가 보낸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티베트풍 탑을 짓기도 하였다.

7.2. 중국티베트

한반도와 일본과는 다르게 중국의 경우 몽골 제국의 행성으로서 직접 지배를 받아서 티베트 불교가 매우 성행하게 되었다. 중국령이 된 상태인 티베트 자치구칭하이성, 쓰촨성 일부 지역을 포괄한다. 내몽골 자치구몽골인들과 신장 위구르 자치구 몽골 자치현의 오이라트인들 그리고 동북 3성의 만주족도 많이 믿는다.

티베트는 이름대로 티베트 불교의 발상지이자 중심지였으나, 중국의 침략과 달라이 라마의 인도 망명, 이후 문화대혁명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현대까지 중국 내 티베트인들 대부분은 독실하게 티베트 불교를 믿는다. 사실상 티베트 지역의 국교. 그러나 10%정도는 티베트 고유 종교인 뵌교를 믿는다.

한족들도 티베트 불교를 상당히 많이 믿지만[14], 물론 퍼센트나 절대적 수 모두 기독교에 밀린다. 한족 신도들은 티베트에 관련된 정치상황에 대해서는 절대 말을 하지 않는다. 중국 정부의 규제도 상당한 편.

베이징 지하철 2호선 용허공역의 영문 표기는 Yonghegong Lama Temple Station으로, 용허공 라마교 사원이라 표기한다.

7.3. 인도

힌두교를 믿는 일반 인도인은 거의 믿지 않으며, 인도 북부의 , 시킴 등 티베트계 지역과 중국의 탄압을 피해 망명한 티베트인들이 주로 믿는다. 인도 사회에서 오랜 세월 천대를 받아온 불가촉 천민 계층에서는 불교를 믿는 사람이 많다.

7.4. 부탄

사실상 국교의 위치이다.

7.5. 몽골

몽골 제국 시대부터 몽골인들의 종교가 되었다.

공산주의 시대에는 독재자 허를러깅 처이발상의 주도로 극심한 탄압을 받았지만[15] 탈공산화 후 완화되었다. 간단 사원이 몽골 티베트 불교의 중심적인 사원이다.

7.6. 러시아

러시아의 아시아계 시베리아 소수민족부랴트인과 투바인, 칼미크인 등이 주로 믿는데 이들 중에서도 믿는 자들은 매우 극소수들이다. 이들은 위에 언급된 몽골과 가까운 계통의 민족들이데 이들은 대체로 19세기 말부터 믿기 시작하여서 예전 티베트 불교와는 조금 이질적이다. 이 곳 역시 무신론을 주장한 소련정부에 상당한 제약을 받았고, 소련 전국에 오직 2군데 사원[16]만이 허가 하에 존치되었을 정도였다. 소련이 붕괴하고 러시아 정부에서 공인한 '전통 종교' 4개 중 하나로 지정되어[17] 정부 인사들과 불교 대표가 자주 만나는 등 사정이 많이 나아져 교세를 회복하고 있으며, 영미권에서 티베트 불교 신자가 조금씩 늘어나는 것처럼 소수민족 외의 슬라브계 러시아인 신자도 아주 조금씩 늘어나는 중이다. 그리고 러시아의 화교들 또한 티베트 불교 신자가 많은데 이들은 주로 동북 3성 한족의 후손이다.

7.7. 기타 전세계

일본 불교와 더불어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진 불교로 심지어 아프리카에도 절이 있다.[18] 서양에서도 유럽이나[19] 미국 등지에[20] 상당한 신자들이 있을 뿐 아니라 서구 학계에서는 티베트 불교를 인도의 마지막 대승 불교의 정통 후계자로 보는 경향이 강하고[21] 중국 불교, 상좌부 불교와 함께 학자들이 많이 연구하는 종파이다.

달라이 라마(Dalai Lama), 까루 린포체(Kalu Rinpoche)[22], 딜고 켄체 린포체(Dilgo Kyentse Rinpoche)[23], 소걀 린포체(Sogyal Rinpoche)[24], 카르마파(Karmapa), 꺕제 송 린포체(Kyabje Zong Rinpoche) 등이 활발하게 포교활동을 벌이며 티베트 불교를 서방에 알렸다.


[1] 초창기 서구의 학계에서도 라마이즘(Lamaism)이라는 단어를 썼다.[2] 마찬가지로 달라이 라마의 섭정이자 환생한 달라이 라마를 발견하는 판첸 라마와 몽골의 법왕인 젭춘담바 쿠툭투도 환생으로 계승된다.[3] 이 경우는 환생보다는 '소산(emanation)'에 해당한다.[4] 참고로 티베트어에서 빠(Pa)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닝마빠를 번역하면 '오래된(닝마) 사람(빠)'으로 티베트 불교에서 가장 오래된 종파임을 의미한다.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Pa'는 '파'로 표기해야 하지만 초창기 이러한 표기로 인해 '파(Pa)'가 우리나라 단어의 '파(派)'로 오해되는 일이 잦자 최근에는 표기법을 무시하고 원어 발음대로 표기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하지만 티베트어는 엄연히 자음의 기식 유무를 구분하는 언어라서 베트남어처럼 된소리 표기가 허용되어야 하는데도 제대로 된 표기법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만약 티베트어를 위한 표기법이 따로 만들어진다면 된소리가 허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비슷한 처지의 언어로는 힌디어, 산스크리트어, 고전 그리스어 등이 있는데, 아무튼 논문이나 리포트는 전부 현행 표기법에 따라 거센소리로 쓰는 게 원칙이다.[5] 비구계를 받은 승려가 결혼을 원할 경우 비구계를 반납하고 환속하는 절차를 거치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승려의 결혼이라 할 수 없다. 그러나 복식 등에 있어 재가수행자와 출가수행자의 구분이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개선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티벳불교의 재가수행자는 백색 의복, 출가수행자는 적갈색 의복을 입는다.[6] 종정이 특별한 조건을 갖춘 배우자와 결혼해 그 직위를 세습한다.[7]17대 카르마파(중 1명)는 기혼이다.# 종파 지도자로는 남지만 종교의식을 주도하지는 못한다고 한다.[8] 특히 겔룩빠가 이 경향이 강하다.[9] 예를 들어 밀교의 부모불(혹은 쌍신불, 얍윰Yab-yum)은 지혜와 방편의 합일을 상징한다.[10] 탱화의 어원이 탕카라는 설이 있다.[11] 국내에는 화정박물관에 티베트 탕카 컬렉션이 있다.[12] 닝마빠 등 다른 종파의 경우 이보다 적은 9~10년 정도의 강원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이후에도 승려 개인의 자율적인 교학연구는 계속 이어지며, 따라서 타 종파의 승려가 겔룩빠의 승려보다 교학 수준이 결코 낮다고 할 수 없다. 종파 간의 교학적 견해도 약간씩 차이를 보이는 편이다.[13] 부산 서구 아미동2가에 위치. 부산대학교병원과 가깝다.[14] 대체로 티베트 자치구, 내몽골 자치구, 신장 위구르 자치구, 동북 3성의 한족들이 많이 믿는다.[15] 아이러니한 건 그 처이발상도 어린 시절 티베트 불교의 스님이었으며 그가 죽을 때까지 쓴 이름 '처이발상'도 스님 시절에 받은 법명이었다.[16] 울란우데 근처의 이볼긴스키 사원(Ivolginsky datsan)과 치타 근처의 아긴스코예 사원(Aginskoe datsan)[17] 정교회, 이슬람교, 유대교, 불교[18] 케냐, 남아공, 짐바브웨[19] 실제로 본 위키러가 독일에서 벽안의 스님을 직접 목격했다.[20] 유명한 배우 우마 서먼이 대표적인 티베트 불교 신자다.[21] 실제로 이슬람의 침공으로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지기 직전과 직후 인도의 승려들과 불경들이 전부 티벳으로 넘어갔기에 마지막 계승자로 보고, 티베트 불교 스스로도 이에 대해 자부심이 있다.[22] 이 스님의 환생자가 한국에 다녀갔다. 한국에서는 그렇게 유명한 분이 아니지만 서양에서는 거의 달라이 라마와 동급으로 모셔지는 스님이다.[23] 달라이 라마의 스승이었다.[24] 티베트 고위 승려중 처음으로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았다. 대표적인 저서로 《The tibetan book of living and dying》이 있다. 한국에서는 《티베트의 지혜》(민음사)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나왔는데 번역의 질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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