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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2 12:56:19

라이칭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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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내각총리대신 · 중화민국 국무총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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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중화민국 총통부 휘장.svg 제16대 대만 정부총통 선거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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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005BA6,#FFC224> 기호 정당 총통 후보 순위
<rowcolor=#005BA6,#FFC224> 부총통 후보 비고
1 대만민중당 커원저 3위
우신잉
2 민주진보당 라이칭더 1위
샤오메이친 당선
3 중국국민당 허우유이 2위
자오샤오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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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95><colcolor=#fff>
중화민국 제16대 총통 당선인
라이칭더
[ruby(賴,ruby=ㄌㄞˋ)][ruby(清,ruby=ㄑㄧㄥ)][ruby(德,ruby=ㄉㄜˊ)](뇌청덕)[1] | William Lai Ching-Te[2]
파일:라이칭더 공식 사진.jpg
출생 1959년 10월 6일 ([age(1959-10-06)]세)
중화민국 타이완성 타이베이현 완리향
(現 신베이시 완리구)
재임기간 제15대 부총통
2020년 5월 20일 ~ 현직
제16대 총통 (예정)
2024년 5월 20일 ~ 예정
서명 파일:라이칭더 서명.svg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Threads 아이콘.sv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파일:라인 아이콘.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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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95><colcolor=#fff> 부모 아버지 라이차오진, 어머니 라이퉁호
배우자 우메이루 (1986년 결혼)
자녀 2남
학력 타이베이현 완리향 완리 초등학교 (졸업)
타이베이현 만리중학교 (졸업)
타이페이시립 젠궈 고등학교 (졸업)
국립타이완대학 의학원 (복건학계 / B.S.)
국립성공대학 의학원 (학사후의학계 / M.D.)
하버드 대학교 (공공위생학 / M.S.)
소속 정당
의원 선수 4
의원 대수 4, 5, 6, 7 }}}}}}}}}

1. 개요2. 약력3. 생애
3.1. 초기3.2. 입법위원3.3. 타이난 시장3.4. 행정원장3.5. 총통 후보 경선3.6. 대만 부총통3.7. 대만 총통 당선인
3.7.1. 총통 선거 당선3.7.2. 입법원장 선출 파행
4. 정치관5. 선거 이력6. 기타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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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colbgcolor=#000095><colcolor=#fff>
파일:라이칭더 2023년.webp
2023년의 모습
대만의 제15대 부총통이자 제16대 총통 당선인.

의사 출신으로 민주진보당을 창립한 메이리다오 사건 이후의 세대이다.[3] 민진당 내에서도 대만 민족주의 기조에 적극 찬동하는 신조류계(新潮流系, 참조)의 대표 주자에 해당한다.[4]

2024년 1월 13일 치러진 제16대 대만 정부총통 선거에서 총통으로 당선되었다. 2024년 5월 20일부로 취임하여 대만 총통직을 수행할 예정이다.

2. 약력

3. 생애

3.1. 초기

타이베이현 완리향(현 신베이시 완리구)의 가난한 광부 집안에서 태어나 지룽시 북부 해안가에서 자랐다. 그의 부친 라이차오진(賴朝金)은 완리에서 태어나 루이팡에서 광부로 일했으나 라이칭더가 2살 때 탄광 폭발 사고로 사망하여, 라이칭더의 모친이 홀로 여섯 자녀를 키웠다고 한다.

라이칭더는 완리초등학교(萬里國民小學), 완리중학교(萬里國民中學)을 나와 대만의 최고 명문고인 타이베이시립 젠궈고등학교(建國高級中學)에 입학했다. 중국국민당의 총통 후보였던 주리룬과 고등학교 동기라고 한다.

건국고등중학을 졸업하고 1978년 국립대만대학 의학원 재활학과(復健學系)[6] 입학, 1982년 졸업 후 진먼현에서 군의관으로 군생활을 마치고 런지의원(仁濟醫院)에서 물리치료사로 일했다.

1986년 국립성공대학 의대(醫學院) 학사후의학과(學士後醫學系)[7]에 진학해 1991년 졸업하고 의사 면허를 취득했다. 이후 1994년까지 3년간 국립성공대학병원에서 전공의로 수련을 받고 신장내과 전문의를 취득한 후 신러우병원(新樓醫院)과 성대병원에서 근무했다.

2000년부터 하버드 대학교 보건대학원(Havard School of Public Health)에서 수학하여 2003년 공공보건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역대 행정원장 소개성공대학 동문소식 참조.

3.2. 입법위원

1994년 타이완성 성장 선거에 민주진보당 후보로 출마한 천딩난의 선대위에서 '전국의사후원회' 회장을 맡아 선거운동을 도운 것을 계기로 정치에 뜻을 갖게 되었다.

1994년 타이난시장 선거 후보로 출마하려고 민주진보당에 입당하였으나, 타이난 시장 후보로 지명받지 못했다. 1996년 국민대회(제3대) 선거에서 타이난 지역구 국민대표로 당선되어 본격적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1998년 대만 입법위원 선거타이난시 지역구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고, 2001년, 2004년, 2008년까지 모두 당선되어 4선을 하였다.

2008년 광우병 사태 당시 미국 소의 6개 위험 부위를 수입 금지한 식품위생관리법을 개정한 후 "식품법 개정은 국민의 승리"라고 밝힌 바 있다. 상술한대로 하버드 공공보건학 석사라서 의문이 들수 있는데, 그 당시엔 연구와 정보가 많이 없었기 때문에 현재의 백신 부작용 공포처럼 광우병 공포가 있어서 미국산 소고기가 위험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

3.3. 타이난 시장

2010년 대만 지방선거인 대만 지방공직인원 선거타이난 시장 후보로 출마하여 60%의 득표율로 중국 국민당 후보를 큰 표차로 따돌리고 당선되었다. 2014년에는 홍콩 우산 시위의 여파로 반중국 성향을 지닌 시민들의 표가 몰리면서 72%까지 득표율이 더 높아졌다.

타이난 시장 재직 초기인 2011년 마잉주 당시 중화민국 총통한어병음 사용을 공식적으로 거부했다. 이에 따라 타이난시에서는 모든 지명 표기법이 통용병음이나 우정식 병음, 웨이드-자일스 표기법을 사용하도록 조례로 정했다. 이 때문에 타이난은 일반철도 역을 제외한 모든 역이나 버스정류소, 도로 이름이 전부 통용병음을 사용한다. 이 때문에 자매결연도시인 광주광역시에서 이름을 딴 광주로(光州路)의 영문 명칭이 통용병음을 따라 "Guangjhou Road"로 바뀌었다. 지금은 한국어 로마자 표기법을 따라 "Gwangju Road"로 영문명칭이 또 바뀐 상태.

재선된 이후인 2016년 타이난 시 공용어에 영어를 추가하였다.

3.4. 행정원장

2017년린취안 행정원장(국무총리 격)이 경제지표 부진과 대만 정전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하자, 차이잉원 총통은 2017년 9월 8일에 라이칭더를 행정원의 행정원장으로 임명하여 시장직을 사퇴하고 중앙정부로 이동하였다. 2018년 7월에 라이칭더 주도로 2019년 1월 2일부터 대만의 공용어영어를 추가하는 영어공용화법을 통과시켰다.

2018년 10월에는 낮은 지지율에 머물고 있는 차이잉원 총통 대신 2020년 대만 정부총통 선거민주진보당 총통 후보로 지명될 수 있는 잠재 대권주자로 평가받은 바 있다.

2018년 11월 24일의 대만 지방공직인원(지방정부) 선거에서 민진당이 6개 주요 단체장 가운데 2곳만 당선되며 패배하자 사의를 표했다. 차이잉원 총통은 이를 즉각 반려했지만, 약 2주가 지난 12월 초에 "적당한 시기에 사퇴할 것"임을 밝혀 행정원장을 그만둘 것임을 재확인했다. 새해 예산안의 처리를 전후로, 타 부처 부장(장관)들과 함께 내각을 떠날 것으로 추측된다.

결국 예상대로 2019년 새해 예산안의 통과 직후인 1월 11일 행정원장 사퇴를 발표했다. 이후 차이잉원의 간곡한 만류로 사퇴가 반려되는 듯 했으나 3월 결국 사임하면서 총통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3.5. 총통 후보 경선

행정원장직을 떠난 후에는 개헌과 타이완 독립운동을 주장하며 민진당과 독립 진영의 지지를 호소하는 행보를 보였다.# 다만 차이잉원 계파가 장악한 민주진보당에서는 라이칭더 前 행정원장의 개헌 발언이 즉각적인 개헌안 발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의미를 축소했다.#

3월 18일 민진당 총통선거 후보 경선에 출마할 것임을 공식 선언했다. 이로써 재선에 도전하는 차이잉원 현 총통과 치열한 당내 경쟁을 치르게 되었다. 대만에서는 민주화 정착 이래 총통이 연임 의사가 있다면 대체로 당에서도 그 의사를 존중해 경선을 치르지 않고 바로 후보로 올리므로, 라이칭더의 경선 출마는 2018년 지방선거 참패로 인해 당 내부에서도 차이잉원은 끝났다고 평가받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또한 차이잉원의 소위 화독, 두 개의 중국에 가까운 성향과 온건한 양안관계 현상유지 정책에 타이완 독립운동 성향을 가진 당 원로들이 불만을 가지고 차이잉원보다 강경한 독립 성향으로 평가되는 라이칭더를 밀어주었다고 한다. 참조

5월에 들어 여론조사에서 차이잉원 현 총통을 앞서는 것은 물론, 한궈위 가오슝 시장을 비롯한 국민당 측 후보들과도 격차를 좁히며 민진당 내 후보 경선에서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총통이 되더라도 대만 독립을 선언하지 않을 것"이라며 급진 이미지를 누그러 뜨리려는 것으로 평가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라이칭더의 해당 발언은 대만이 이미 주권을 가진 독립국가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며, 그동안 본인이 견지해 온 타이완 독립운동(대독)의 지지를 철회하고 화독으로 돌아선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중국과 별개의 독립 주권 국가로서 대만의 정체성을 강조한 것.
라이칭더(賴清德) 전 대만 행정원장(사진 오른쪽·59)이 내년 있을 대만 총통선거에서 국민당 후보에 맞설 민진당의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당 후보들과의 격차를 좁히면서다. (...)
지난 14일 대만 빈과일보가 여론조사기관 뎬퉁(典通)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라이 전 원장은 한 시장과의 가상 양자대결에서 39.7%의 지지율을 얻어 40.1%의 지지를 받은 한 시장과 오차범위 내 접전을 벌였다. 연초부터 여러 매체에서 여러 차례 여론조사를 해왔지만 소숫점대 접전을 벌인 것은 처음이다. 같은 조건의 가상대결에서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사진 왼쪽)이 민진당 후보로 나설 경우 37.4%의 지지율을 얻는 데 그치면서 한 시장보다 5%포인트가량 뒤쳐진 것과 대조적이다. 대만 현지 언론들은 “국민당 후보들의 지나친 친중(親中) 행보에 불안감을 느낀 유권자들이 차이 총통의 대안으로 라이 전 원장을 지지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을 내놓고 있다.
민진당의 공천을 받을 후보 적합도 지지도 조사에서도 라이 전 원장은 높은 지지를 받았다. 그는 30.7%의 지지율을 얻어 25.3%의 차이 총통을 앞질렀다. 6월 이후로 예정된 당내 경선에서도 차이 총통을 누르고 민진당 총통후보로 지명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대만 트럼프'에 맞설 적임자…라이칭더(賴清德)는 누구?

그러나 라이칭더가 차이잉원을 계속 앞서는 여론조사 결과가 쏟아져 나오자, 차이잉원의 파벌이 장악하고 있던 민진당 지도부는 4월 15~17일로 예정되어있던 총통후보 경선을 뚜렷한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5월 22일 이후로 미루었다. 참조. 6월 초에도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던 경선을 위해 차이잉원이 원하는 대로 경선룰을 거의 다 양보했음에도 불구하고 차이잉원측에서 부정선거 시도를 벌인다는 소문이 돌자 라이칭더도 분노하고 말았다. 참조.

이렇게 민진당은 계속 시간을 끌며 차이잉원의 치적 홍보에 열을 올렸고, 특히 6월 9일부터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시위가 대대적으로 벌어지면서 정세가 불안해지자 국정 안정론에 힘입어 현직 총통인 차이잉원의 지지율이 상승했다. 경선에서 차이잉원은 "개혁은 절반만 완성했다"며 정책 지속성을 위해 자신의 재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고, 중국에 대한 정책에서는 "트러블 메이커가 되지 않은 채 국제사회의 지지를 넓혀나가도록 하겠다"고 온건한 입장을 취했다. 반면에 라이칭더는 강경한 대만 독립파를 지지 기반으로 해서 대만이 제2의 홍콩이 되지 않게 하겠다고 강경한 입장으로 맞섰다. 차이잉원 무색케하는 '초강경파' 라이칭더, 차기 대만 대권주자 급부상

6월 13일 한궈위 중국국민당 후보, 커원저 대만민중당 후보와의 3자 대결 여론조사 방식으로 실시된 경선 결과에서 27% 대 35%로 차이잉원 총통에 8%p차로 패배하고 말았다. 양자 대결이 아닌, 차이잉원 측의 주장대로 3자 대결을 가정하자 라이칭더의 강경한 대만독립 입장에 대해 중국의 위협을 염려하는 유권자들이 커원저로 넘어가면서 차이잉원 대비 라이칭더의 상대적으로 지지세가 낮아졌다고 한다. 참조. 그러나 결국 총통 선거에 커원저는 출마하지 않았다.

경선 과정에 잡음이 많았지만, 경선 패배 후에는 결과에 승복하여 민진당 내부의 단결을 주창했다. 총통 선거에서는 차이잉원 총통의 지지를 호소하며 선거 운동에 나섰고, 11월 17일에 차이잉원은 그를 부총통 후보로 지명했다. * 그리고 2020년 총통 선거 결과 민진당이 승리하면서, 부총통에 당선되었다.

3.6. 대만 부총통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결국 대만의 2인자이자 차이잉원의 뒤를 잇는 민진당의 차기 대권주자로서 확고히 떠올랐다.

미국의 부통령과 마찬가지로 대만의 부총통에겐 별다른 권력이 없고, 존재감도 없어서 부총통이 아니라 행정부의 수반인 행정원장이 자타공인 넘버2로 여겨진다. 즉, 라이칭더는 재선에 도전하는 현직 총통 차이잉원의 대권을 방해한 인물로 찍혀서 총통 선거 승리에 크게 공헌했음에도 불구하고 견제당한 것으로 분석되기도 한다. 당시 시점에서 역대 부총통 중 장징궈가 후계자로 점찍어놓았던 리덩후이를 제외하면 롄잔은 부총통을 지낸 후 대권 도전에 실패하고 말았고 이외에는 부총통이 총통 후보가 된 적도 없다. 라이칭더의 전임 부총통(차이잉원 1기)인 천젠런코로나 19 사태 이후 대만 방역의 우수성을 알리는 인물로 세계 언론을 탔으나, 천젠런 개인은 본래 정치인이 아니었고 그를 뒷받침해줄 정치 세력도 없었다.

다만 당내에서는 차이잉원이 천수이볜 정권 시절보다 독립에 소극적인 것에 불만을 품은 원로들이 강경 대만독립파인 라이칭더를 총통으로 밀었고, 심지어 당내 경선에 불복해 독자후보를 내겠다고 했을 만큼 민진당 내부에서도 反차이잉원 기류가 강하게 존재하고, 차이잉원 입장에서는 이들 강경 대만 독립파의 표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라이칭더를 러닝메이트로 지명한 만큼 라이칭더 부총통이 이를 세력 기반으로 재기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었다.

총통 선거가 치러진 지 약 3주 후인 2월 초에 미국을 방문했다. 차이잉원의 재선 취임 선서가 거행된 5월 20일부터 정식으로 부총통 직무를 시작했다.

부총통직의 태생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19 판데믹 사태가 터지면서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차이잉원파(英派)에서는 라이칭더 부총통을 견제하며 차이잉원의 후계자로 밀었던 정원찬 타오위안시장이 타오위안의 방역 실패로 지지율이 급전직하한 데 반해서, 하버드대 석사를 나온 의사 출신 라이칭더 부총통은 전문성을 과시하며 여론조사 결과 과반에 가까운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

신조류파의 대표로서 대만 독립에 대한 찬동 의사를 적극적으로 강조하며 지지자들의 지지를 결집시키고 있고, 취임 초부터 미국 방문에 이어 2022년 1월 27일에는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과 회동하면서 1979년 미국-중화민국 단교 후 최초로 양국 최고위급(부통령) 대면 대화를 성사시켰다.# 그리고 특히 대일관계에서는 정치인 데뷔 이후부터 계속해서 대만-일본의 연대를 강조해왔고, 아베 신조 전 총리와 친한 친구 사이였다고 할 정도로(대만 부총통, 아베 조문 위해 일본행…단교 이후 최고위급 방일)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점차 독자적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2022년 11월 26일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집권 민진당이 대패하면서 차이잉원 총통이 당 주석을 사퇴하자, 한 달만에 주석 선거 출마를 선언하였다. 1월 15일에 실시된 당 주석 선거 결과, 99.65%의 득표율로 당선되어 1월 18일에 새 민주진보당 주석에 취임했다.

2022년 시점에서는 차기 총통으로 중국 국민당허우유이 신베이 시장과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2023년 3월 4일에 국민당 쉬슈화(許淑華)의 난터우현장 취임으로 인한 사퇴로 치러진 난터우현 제2선거구 입법위원 보궐선거에서, 민진당 차이페이후이(蔡培慧) 후보가 접전 끝에 국민당 린밍전(林明溱) 전 현장을 꺾고 승리하였다.[8] 이 선거구는 2008년 분구한 이래로 국민당이 한 번도 뺏기지 않은 선거구라서 그 의미가 크다. 일단 당 주석 취임 후 첫 발걸음은 아주 완벽하게 디딘 셈.

3.7. 대만 총통 당선인

3.7.1. 총통 선거 당선

총통 선거가 다가오며 자연스럽게 대권주자로 떠올랐다. 사실상 당내에서는 경쟁 후보군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민주진보당 대선 경선 후보 등록 기간 동안 등록한 후보가 라이칭더 한 명밖에 없어 경선 없이 자연스럽게 차기 대선 후보로 확정되었다. 당초 대항마를 낼 것으로 보였던 차이잉원계에서 정원찬이나 천젠런을 부총통 후보로 밀어 계파의 안정 도모와 차차기를 노리는 전략을 쓴 것으로 해석되기도 했지만, 라이칭더 못지않은 독립 지지자로 알려진 샤오메이친이 부총통 후보로 지명되면서 빗나갔다.

이전부터 국민당의 허우유이, 민중당의 커원저와의 3자 구도 여론조사에서 그 격차의 늘어나고 줄어듦은 있었지만, 쭉 1위를 유지해 왔으며, 끝내 단일화가 무산되어 허우유이와 커원저가 각각 대선을 치르게 된 효과를 톡톡히 봐서 당시부터 차기 총통으로 유력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래도 선거전 후반에는 허우유이 지지율이 상당히 올라오면서 여론조사 오차범위 내까지 따라붙으면서 누가 이기더라도 총통 선거가 접전이 될 것이란 분석이 대만 내부는 물론 외국에서도[9] 많았다.

2024년 1월 13일 20시 55분을 기하여 개표율 90퍼센트를 돌파한 상황에서 국민당 허우유이 후보를 당초 예측보다 큰 90만표 이상으로 여유있게 이기면서, 제16대 총통 당선을 확정했다. 이로써 대만에서 민주화 이래 최초로 집권 여당이 선거를 통해 3기에 걸쳐, 8년 이상의 장기 집권에 성공하는 기록을 세웠다.[10] 그리고 처음으로 현직 부총통이 차기 총통 선거에서 당선되는 사례가 되었다.[11]

같은날 치뤄진 제11대 대만 입법위원 선거에서 민진당이 과반 확보에 실패하면서[12] 20년만에 여소야대 국회가 된 상태라 민진당 단독으로 정국을 끌어가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중앙선관위로부터 받는 선거보조금 1억 6천만 대만 달러(약 68억원)를 자선단체 기부 등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4월 11일. 1차 내각 인선을 발표했다.#

3.7.2. 입법원장 선출 파행

입법원 다수 장악에 실패한 탓인지 임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야당 측에서는 차기 입법원이 개원한 이후에 총통이 직접 입법원에 출석해 국회 대정부질문에 응할 것을 요구했다. 이미 차이잉원 1기에서 행정원장을 지낸 바 있기 때문에 라이칭더가 대정부질문을 두려워할 이유는 없어 라이 당선인은 이에 반대하지는 않으나 헌법 위반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라이칭더의 총통 임기 4년을 함께할 제11계 입법원장 2차선거에서 민중당 측 입법위원은 전부 기권하고 집권당 민진당 소속 현임 입법원장인 유시쿤[13]이 51표, 야당 국민당 소속인 한궈위가 54표를 얻어 입법원장직을 야당 국민당에서 가져가게 되었다. 반중 총통친중 국회의장이 정면충돌하게 된 것. 이를 두고 라이칭더 총통과 민진당 정부의 향후 집권 4년이 험로가 될 것을 예고하는 전망이 강해졌다. 한궈위가 이끄는 입법원에서 감찰원장 등의 임명동의안을 처리해주지 않거나, 행정원장 불신임안까지 통과될 수도 있으며, 이럴 경우 라이칭더입법원을 해산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질 수 있다. 일단 중화민국 헌법 하에서 총통이 입법원을 해산한 적은 아직 없다.

이후 민진당과 민중당 사이에 서로 싸움이 붙어 법정 다툼까지 가게 되었다.# 전개 과정은 아래와 같다.

1) 민중당 측이 입법원장 선거가 치러지기 전에 자당 명의 Facebook에 자신들은 스스로의 가치를 저버리고 타 당과 권력을 나눠갖는 일은 결코 없을거라면서 민진당 측의 누군가가 비공식 채널을 통해 자신들에게 연락해와 “민진당 입법위원들은 입법원장 선거에서 민중당 황산산 후보를 지지할테니, 입법원 부원장 선거에서 민중당 입법위원들이 민진당 차이치창 후보를 지지해달라”고 제안했으나 이를 거절했다고 주장하는 글을 올렸다.

2) 이에 민진당 측 대변인은 민중당 측 입장이 전해진 이후 자신의 Facebook에 민중당 측이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며 민진당이 모 인사를 통해 오히려 커원저 측으로부터 “민진당 측이 입법원장 선거에서 민중당 황산산 후보를 지지해주면, 민중당 입법위원들은 입법원 부원장 선거에서 민진당 차이치창 후보를 지지할 것”이라는 제안을 비공식적으로 받았다며, 민진당의 공식적인 입장은 유시쿤 제10계 입법원장이 계속 11계 입법원에서도 연임하는 것이라 이를 거절했다고 주장하는 입장을 내놓았다.

3) 이후 국민당 측 후보가 입법원장-입법원 부원장직을 전부 차지하자, 위 공방이 더욱 정치적인 논란을 빚으면서 민중당 측은 민진당에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당사자인 커원저는 기자들과 직접 인터뷰를 하고, 이런 헛소문이 퍼지는 걸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며, 민진당 측과 해당 기사를 보도한 기자들을 허위사실 유포로 법원에 고소할 예정이라고 공언했다.

4) 이에 대해 민진당 측은 당 공식 명의로 민중당 입법위원의 2차투표 기권의 결과로 국민당의 친중파 한궈위 후보가 입법원장에 선출되어 국민들이 불안해한다고 커원저를 비난하며, 진실은 명확하다면서 해당 모 인사도 법정에 증언을 서주기로 했고, 커원저 측이 법원에 자신들을 고소해서 시시비비를 명확히 가릴수 있게 된 점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민진당은 모 인사를 통해 민중당 커원저 측으로부터 민중당 입법원장-민진당 입법원 부원장 선출 로비를 받은 건 분명 사실이라는 점을 재주장하는 브리핑자료를 내었다.#

민진당 측 주장에 따르면 커원저 측의 민중당 입법원장 지지 요청 로비를 전했다고 한 해당 모 인사는 자신이 1월 31일경 커원저에게 전화를 받아 민진당 측에 전한 건 사실이라는 민진당 측 주장을 확인해주는 입장문을 언론에 내었다.#

이 사건으로 집권여당 민진당 측과 중도야당 민중당 측이 정치적 충돌을 빚게 되어 라이칭더 총통은 임기 4년이 시작하기도 전에 정부시책에서의 여소야대 입법원 협조를 전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민진당 라이칭더 총통의 정부가 여소야대 입법원 구조를 타파하기 위해 국민당보다는 상대적으로 중도 성향인 민중당과 소연정을 꾸려 입법원의 협조를 얻을 복안을 꾸리고 있을 거라는 전망이 대다수 나오고 있는데, 국민당은 원래 민진당과 정반대 성향의 당이고, 이 사건으로 민중당마저 반(反)민진당으로 돌아서면 여당 민진당, 야당 중국국민당·대만민중당 외에 대만 제11대 입법원에 원내진출한 정당은 없으므로 민주진보당 라이칭더 총통의 정부는 입법원에서 명백한 소수로서 과반 이상 의석을 확보한 두 야당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4. 정치관

라이칭더는 천수이볜 이래 가장 적극적인 대만 독립 성향 총통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스스로를 "대만의 독립을 위한 실용적인 일꾼"(務實台獨工作者)이라고 공언한 바 있으며,[14] "대만은 이미 독립 국가"라고 공공연히 밝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15]

중국은 진작부터 라이칭더를 '분열주의자', '트러블 메이커'(troublemaker. 말썽꾼) 등으로 험담하며 적대적인 태도를 숨기지 않았다.[16] 이미 라이칭더를 2008년부터 중국 대륙 전체에 입국 금지 시킨 상태이며, 2020년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홍콩마카오 정부에서 라이칭더를 입국 금지시킨 것도 그의 탈중국 노선에 불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집권 후 시진핑 중국 주석과의 관계가 지난 차이잉원 정부의 8년 이상으로 험난해질 가능성은 거의 기정사실이다. 차이잉원은 적어도 "현상유지"를 하는 선이었고 역사적으로 민주진보당 내에서도 주류는 아니었다. 그러나 라이칭더는 민진당의 주류 인사로서 보다 적극적으로 탈중국, 독립 노선을 옹호하는 인물이다.

라이칭더는 이미 한어병음 전면 폐지를 대선 공약에 넣었고, 천수이볜 시절의 통용병음으로 돌아가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라이칭더 본인이 타이난시 시장 시절 한어병음 전면 거부를 시행하여 타이난시 일대는 모조리 통용병음만 쓰고 있는데, 본인이 총통에 당선됐으므로 이제 대만 전역에서 통용병음을 실시[17]하여 탈중국 노선의 상징적 조치로 삼을 전망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기조를 마음대로 시행할 수 없는 것이 입법위원 선거에서는 국민당 + 민중당 + 국민당계 무소속이 도합 62석으로 전체 113석 중 과반을 넘게 점유하고 있어 정부 출범부터 여소야대라는 불리한 구도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캐스팅보트인 민중당 8석을 제외하고도 범람연맹만 해도 54석으로 민진당 51석보다 많다. 또 국가원수 자리는 지역 정치인이나 정당 대표급과도 완전히 다르기에 자기 원하는대로 전부 할 수 없음을 금방 깨닫고 유연한 행보를 보이기 마련이다. 라이칭더 본인도 이를 잘 알고 있기에 선거 기간부터 차이잉원의 '현상유지' 기조를 승계할 것임을 강조하며 그동안의 '급진 독립' 이미지에서 탈피하려 애쓰고 있다.[18]

한국과 미국, 일본 등 자유 민주진영 국가들과 적극적으로 연대하길 원한다고 밝힌 바 있다.##[19]

5. 선거 이력

<rowcolor=#fff>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 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6 제3대 국민대회 선거 타이난시 제1선거구
41,083 (21.63%) 당선 (1위) 초선
1998 제4대 입법위원 선거 타이난시 31,296 (10.60%) 당선 (4위)
2001 제5대 입법위원 선거 45,899 (13.98%) 당선 (2위) 재선
2004 제6대 입법위원 선거 45,997 (14.51%) 당선 (3위) 3선
2008 제7대 입법위원 선거 타이난시 제2선거구[20] 88,172 (51.64%) 당선 (1위) 4선
2010 5대 직할시 시장 선거 타이난시 619,897 (60.41%) 초선
2014 6대 지방공직인원 선거 711,557 (72.90%) 재선
2020 제15대 정부총통 선거 (부총통) 중화민국 자유지구 8,170,231 (57.13%) 초선
2024 제16대 정부총통 선거 (총통) 5,586,019 (40.05%)


6. 기타

파일:2024 타이페이 투표장 대만한미일.jpg}}} ||
2024년 타이베이 투표장
* 라이칭더는 당선 이전부터 중국의 팽창주의에 맞서기 위해 미국은 물론 일본, 대한민국과의 협력 강화를 보다 강조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이를 반영하듯 투표 당일부터 타이베이 투표장에 대만의 청천백일만지홍기성조기, 일장기, 태극기가 내걸리기도 했다. 그의 대중국 전략 일면을 드러낸 부분이기도 하여 대만 언론에서도 이를 조명하기도 했다. 참조

* 당연하지만, 본토 중국인들은 독립 성향인 라이칭더를 매우 싫어한다. 이 기사에서는 "라이칭더는 심전 뇌씨이므로, 푸젠성 장저우시가 본적지인 중국인이다"라는 서술을 하고 있으며,[21] 바이두 백과 라이칭더 문서는 비난 일색으로 도배되어 있다.#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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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진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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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서장 린시야오 부비서장 <colbgcolor=#ffffff,#1F2023> 가오싱쉐 · 린페이판 · 린허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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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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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밍원 · 장펀위 · 린빠오싱 · 쉬자오싱 · 린이진 · 천스카이 · 천쿤롱 · 장즈하오 · 뤼쑨푸 · 양푸쥔
파일:대만 민진당 당기.svg 당무주책
정책위원회 집행장 류디하오 재무위원회 주임위원 천셩홍
정책위원회 부집행장 쑤콩즈 · 쉬훼이이 재무위원회 부집행장 천즈정
비서처 주임 린시우링 조직추진부 주임 라오셴런
사회운동부 주임 량하오루 언론반응부 주임 쑤팡허
미디어크리에이티브센터 주임 웡스하오 네트워크공동체센터 주임 판강하오
청년발전부 주임 차이무린 여성발전부 주임 쉬자옌
객가사무부 주임 저우장제 원주민족사무부 주임 체멜레사이 얄제간
중국사무부 주임 우쥔즈 국제사무부 주임 뤄즈정
대만민주학원 주임 린빙종 여론조사센터 주임 천보저우
회계실 주임 쉬메이화
역대 주석 }}}}}}}}}}}}



[1] 한어병음: Lài Qīngdé[2] #[3] 대한민국으로 치면 포스트 386의 입구에 들어간 세대. 다만 본인은 1959년 (민국 48년)생으로 386보다는 약간 나이가 많다.[4] 신조류계는 대만 민족주의를 내세우기는 하지만, 구성원 모두가 대독파는 아니다. 라이칭더와 같은 신조류계인 정원찬 행정원 부원장과 천쥐 감찰원장은 화독파다.[5] 타이난 시장 취임으로 인한 중도사임.[6] 1967년 국립대만대학 의학원 의사기술학과(醫事技術學系)에 증설된 물리치료 전공을 기원으로, 1970년 직업치료 전공이 증설되어 학과(복건학계)로 독립하였다.[7] 국립성공대학 의학원은 1983년 8월 한국의 의학전문대학원에 해당하는 학사후의학과, 약칭 後醫系로 대학을 졸업한 학사를 입학시켜 4년의 학과 과정과 인턴에 해당하는 1년의 실습 과정으로 이루어진 5년제 과정으로 출발했다. 이 학사후의학과는 1984년 2월 제1회 신입생이 입학했으므로 라이칭더는 성대 후의계 3기생이다. 참고로 성대 의대에 예과 과정을 포함한 7년제 의학사 과정은 1992년 설치되었다.[8] 개표 내내 차이페이후이가 1000표 가량 앞서갔다.[9] 미국-중국 패권 경쟁이 표면화된 이후 대만 문제에 대해 세계의 관심이 늘어나면서 관련한 분석도 과거에 비해 많이 늘었다.[10] 대만은 지난 1990년대의 민주화 이후로 모든 총통이 재선(4년 임기 기준)에 성공한 후 8년 주기로 야당에 정권을 넘겨줬으나, 라이 당선인은 같은 당 차이 총통의 재선 이후로도 재집권에 성공하였다.[11] 지난 2000년 선거에서 현직 부총통으로 선거에 출마한 국민당의 롄잔은 민진당 천수이볜에게 패하면서 대만 역사상 첫 정권교체의 희생양이 됐다.[12] 민진당 51석, 국민당 52석, 민중당 8석, 범람연맹 계열 무소속 2석으로, 총원 113석 중 야권(국민당+민중당+무소속)이 62석으로 과반을 달성했다.[13] 결국 입법원장 선거에서 패하자 비례대표 의원직을 전격 사퇴했다.[14] 차이잉원 정부의 행정원장 시절인 지난 2017년의 발언으로 알려져 있다.[15] 역설적으로 그 점에서 별도의 대만 독립선언은 필요 없다는 견해를 나타낸다.[16] 그래서인지 중국은 라이칭더의 당선 직후 ‘주류 민의를 대변하지 못한 결과’라며 평가절하했다. # 친중 성향인 국민당이 승리했던 지난 2018/2022년 대만 지방선거 당시에 환영 성명을 냈던 것과는 대조적인 반응.[17] 대만의 병음 표기 체계는 정부(행정원)의 권한이며, 입법원의 의결이나 감찰원의 감사 대상이 아니다. 행정원장을 총통이 임명하니 원론적으로는 총통이 원하면 바꿀 수 있다. 다만 2000년대에 이 문제로 난리를 겪은 바 있어 뜻대로 될지는 의문.[18] 대만에서 '현상유지'는 독립, 혹은 통일의 양극단과 거리를 두고 중국과의 안정적인 관계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가장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다. 다만 현상유지 자체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대만의 양대 정당인 국민당, 민진당의 입장이 판이하게 다르다. 국민당에서 추구하는 현상유지가 '중국과의 통일 지향'(즉, 대만의 분리독립 배제)을 전제로 하는 반면, 민진당이 내세우는 현상유지는 '중국과는 다른 독자 세력으로서 대만의 존속'을 뜻하기 때문이다.[19] 그래서인지 그의 지지자들이 투표장에 청천백일만지홍기와 함께 성조기, 일장기, 그리고 태극기를 걸어두었다고 한다.#[20] 현재의 타이난시 제2선거구와는 이름만 같고 관할구역이 다르다. 당시의 타이난 2구는 현재 타이난시 제5선거구가 대부분 관할하고 있다.[21] 라이칭더의 선조는 시대에 이미 대만으로 이주했으므로, 라이칭더는 엄연한 본성인이다. 마치 서울토박이조선 왕족을 두고 전주가 본적지인 호남인이라고 주장하는 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