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룬 공화국 대통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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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 카메룬 제5 ~ 12대 대통령 폴 비야 Paul Biya | |
△ 2022년의 모습. | |
본명 | 폴 비야 (Paul Biya) |
출생 | 1933년 2월 13일 ([age(1933-02-13)]세) |
프랑스령 카메룬 남부 음보메카 (現 카메룬 음보메카) | |
국적 | 프랑스 식민제국 프랑스령 카메룬(1933 ~ 1960) [[카메룬| ]][[틀:국기| ]][[틀:국기| ]](1960 ~) |
학력 | 파리 정치대학 |
출신 정당 | RDPC |
재임기간 | 제5 ~ 12대 대통령 |
1982년 11월 6일 ~ 현직[1] | |
종교 | 로마 가톨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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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카메룬의 제5[2] ~ 12대 대통령이자 독재자다.폴 비야는 [age(1933-02-13)]세의 노인이지만, 20[age(2000-01-01)]년 현재까지 무려 [age(1982-11-06)]년 동안 대통령 직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는 독재자이며, 현 세계의 국가원수 중 최고령에 현존하는 독재자 중에서도 최장기 통치를 이어가고 있는 인물 중 하나로도 유명하다.[3][4] 또한 부정선거로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대표적인 인물로도 평가된다. 다만, 아프리카에서는 모부투 세세 세코나 장 베델 보카사처럼 착복을 엄청 심하게 하거나, 이디 아민과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처럼 심하게 자국민을 학살하거나 하는 등 인간의 선에서 짐승의 선으로 퇴보하지 않는 이상 독재자로는 취급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며, 국제적으로도 평범한(?) 독재자로 취급되고 있다.[5]
2. 생애
1933년 2월 13일에 프랑스령 카메룬 남부에 위치한 음보메카에서 태어났다. 그는 파리 정치대학에서 공부했고 1961년에는 국제 관계론으로 학위를 받기도 했다. 이후 카메룬에 귀국한 폴 비야는 아마두 바바투라 아히조 정부에서 관리로 일하다가 1964년에 교육부장관 내각비서관에 임명된 것을 시작으로 1965년에는 교육부비서관, 1968년에는 대통령비서실장, 1970년에는 국무장관[6]을 거쳐 1975년 6월 30일에 카메룬의 초대 총리에 임명되었다.사실 폴 비야 이전 카메룬의 첫번째 대통령 아마두 아히조는 1960년부터 장기 집권 후 퇴임을 하며 본인이 섭정을 할 수 있는 꼭두각시로 폴 비야를 내세웠다. 하지만 정권을 잡은 폴 비야는 오히려 초대 대통령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완전히 국정을 장악하게 되었다.[7] 폴 비야는 1982년 11월 4일에 아히조가 건강상 이유로 갑자기 사표를 발표한 것의 영향으로 그 이틀 후인 1982년 11월 6일에 대통령에 등극했다. 이후 아히조는 1983년 4월에 프랑스로 망명했다.
1984년 1월 14일에 비야는 대통령 선거에 단독 후보로 출마해서 99.98%라는 경이적인 득표수를 얻으며 당선되었고, 1984년 2월에는 아히조에게 1983년에 있던 반역 음모에 가담했다는 죄목으로 궐석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내렸으며,[8] 1984년 4월 5일에 비야가 모든 북부에서 온 이슬람교도 출신 대통령궁 경비병들[9]을 해고하고 수도에서 추방하도록 명령하자 추방된 경비병들 700명은 반발하며 이브라힘 살레(Ibrahim Saleh, ? ~ 1984) 대령의 주도로 수도 야운데의 대통령궁을 습격해 비야를 축출시키고자 했고, 이 과정에서 격렬한 전투가 벌어져 카메룬 정부가 인정한 수치로만 70명[10]이 사망하고 52명이 다쳤으며 군인 265명이 실종되는 유혈사태가 발생했다. 이 쿠데타는 아히조가 조율했다는 주장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며, 아히조 본인도 쿠데타 후의 인터뷰에서 내가 쿠데타를 지원했으면 폴 비야 정권을 전복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며 이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 여하튼 이 쿠데타는 당시까지 아프리카에서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번영하는 보기 드문 나라로 여겨진 고국을 자랑스러워하던 카메룬의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줬고, 이후에도 이 사건은 카메룬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간주되고 있다.
쿠데타 시도에서 살아남은 비야는 쿠데타 참여자들에게 무자비한 보복을 가했는데, 쿠데타 주도자 거의 전원은 물론이고 쿠데타에 연루된 것으로 판단된 군인들과 경찰들까지 합해서 총 1,053명을 체포하고는[11] 이들 중 무려 436명을 재판에 회부하고는 이들 중 무려 46명을 처형시켰고,[12] 4월 11일에 대통령궁 경비대를 해산시키면서 야운데와 그 인근에 6개월간 비상사태를 선포했는데, 비야는 비상사태를 명분으로 국경을 완전히 폐쇄하고[13] 오후 7시 ~ 오전 5시까지 통행금지령을 선포하고는 국회와 내각을 해산하고 모든 정당의 활동과 헌법을 정지시키며 이 쿠데타를 권력강화의 기회로 삼았다. 이후 비야는 동년 9월 14일에는 여당인 카메룬 국민연합(CNU)의 대표에 등극한 후 1985년 3월 24일에 여당의 이름을 카메룬 인민민주대회(CPDM)로 바꾸고는 1988년 4월 24일에 카메룬 대통령으로 재선되었다.
그리고 비야는 1990년에 일당제에서 양당제로 전환하고는 1991년 4월 23일에 정치적인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은 모든 사람에게 사면을 허용하는 '범죄 및 유죄 판결에 대한 사면에 관한 법률'을 선포해 1984년의 쿠데타 미수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을 사면하고는[14] 1992년 10월 11일에 열린 첫 다당제 대통령 선거에서 약 40%를 얻으며 당선됐고[15][16], 1997년에는 92.6%[17], 2004년에는 70.92%를 얻으며 재선했다. 그러나 비야는 1996년자 헌법에는 대통령이 2선으로 제한되어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2007년 12월부터 다시 선거에 출마하려고 헌법을 개정하려고 시도했고, 국가 원수가 임기 동안 수행한 행위에 대해 사법적 면제를 받을 수 있다는 내용까지 포함한 이 헌법 개정안은 2008년 4월 10일에 CPDM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 의회에서 찬성 157표, 반대 5표로 압도적으로 가결되었다. 이후 2011년에는 77.9%, 2018년에는 71.3%의 득표율로 대통령에 다시 당선되었다. 물론 이 석너 모두 부정선거 의혹이 돌고 있다. 이를 보면 비야는 죽을 때까지 안 물러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다만 10월 유신을 저지른 박정희와 대놓고 '종신 대통령'을 선포한 헤이스팅스 반다와는 달리 폴 비야는 형식적으로나마 국민들의 직접투표를 통해 집권을 이어가고 있기는 하다.[18]
2008년 2월 말에 비야가 대통령으로서의 추가 임기를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키자 야운데를 위시한 카메룬의 여러 도시에서 택시 운전사들의 파업을 시작으로 물가 인하와 임금 상승, 폴 비야의 퇴진을 요구하는 폭력 시위가 발생하자, 비야는 이를 발포와 포격을 동원해 가혹하게 진압하여 시위 참여자 100명이 사망하고 1,500명 이상이 체포되었는데, 체포된 사람들 수백 명은 변호사도 부를 수 없는 재판에 회부된 후 징역 3개월~2년형을 선고받았다. 게다가 시위를 취재하던 기자들도 보안군들에게 구타를 당하거나 체포되기도 했다.
초대 대통령의 집권 시기나 폴 비야로의 정권 이양에는 프랑스의 영향력이 강하게 작용되고 있었기에 폴 비야 역시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프랑스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렇게 상술한 1984년의 쿠테타를 프랑스의 힘을 빌려 진압하고는 이후 군사 권력을 쥐고 나라를 통치하고 있다. 현재는 보코하람을 퇴치하는 데 꽤나 집중하고 있는데, 이에 아부바카르 셰카우가 폴 비야를 암살하겠다는 영상을 내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셰카우는 2021년 사망하고 말았다.
2024년 1월 4일 카메룬 제1야당 지도자들은 폴 비야의 건강이 나빠질 경우 차기 선거에서 단일 후보를 제시하기 위해 30개 이상의 야당 지도자들과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참고로 카메룬 대통령 선거는 2025년 10월 실시될 예정이라고 하며, 비야가 사망하거나 사임하거나 무능력해질 경우 상원의장 마르셀 니아트 은지펜지(89)가 권력을 잡고 120일 이내에 새 대통령 선거를 치를 예정이라고 한다. # 2025년 10월 선거가 치러지기 전 비야가 물러난다면 비야는 43년 집권을 아슬아슬하게 1달 비껴나가게 되는 셈이 된다.
3. 독재와 인권 탄압
비록 비야가 그와 비슷하게 40년 이상 현역으로 집권 중인 이웃나라 적도 기니의 테오도로 오비앙 응게마 음바소고보다는 확연히 나은 모습을 보여줬고, 아프리카의 독재자 중에는 상대적으로 개념인으로 취급받기는 하지만, 그 역시 명백한 독재자인지라 인권 탄압에 대한 비판은 피할 수가 없다. 실제로 2009년에 비야는 퍼레이드지가 선정한 '세계 최악의 독재자' 20인 중 19위로 선정되기도 했다.[19] 외신들은 폴 비야가 부정선거를 통해 30년 이상 대통령직을 유지했다며 "2004년에는 국제선거감시단에 뇌물을 제공하기도 했다"고 말하며 계속해서 부정선거를 저질러대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또한 폴 비야는 퇴임 후에 자신에게 가해질 정치 보복을 대응하기 위해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이후 자신이 기소될 수 없도록 카메룬의 헌법 조항을 개정해 놓았다.헌법에 따라 비야는 포괄적인 행정 및 입법 권한을 가지며, 사법부에 가진 권한도 막강하여 법원은 그의 요청이 있을 때만 법률의 합헌성을 검토할 수 있고, 의회에서 CPDM은 그의 정책을 승인하는 것 이상은 수행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국제앰네스티는 카메룬 정부가 불법 처형을 저지르고 부패를 보도하거나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인들은 정치적 동기에 의한 명예 훼손 혐의가 적용되어 자의적으로 체포되고 있다고 말했으며, 정부에 비판적인 방송국이 폐쇄되기도 하고, 반대 세력을 진압하기 위해 정부는 야당 정치인들과 반정부 인사들에 대한 자의적인 체포, 불법 구금, 표현/집회/결사의 자유의 제한과 같은 인권침해를 자행하거나 묵인하고 있다고 한다. 한편 미국 정부는 다른 독재 정부들을 지원하듯이 세계은행, IMF, 아프리카개발은행 등을 통해 상당한 자금을 카메룬 정부에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다만 의외로(?) 사형은 대한민국과 마찬가지로 1997년 이후로는 형식적으로만 선고되고는 실제로는 집행되지 않고 있다.
1997년에는 미셸 티에리 아탕가나(Michel Thierry Atangana, 1964 ~)[20]가 1997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한 정치인 티투스 에드조아(Titus Edzoa, 1945 ~)[21]와 긴밀한 관계를 맺자 비야는 동년 5월 12일에 특수 부대를 보내 아탕가나를 체포한 후 전 재산을 압류하고는 재판도 없이 52일간 구금하고는 공금 횡령 혐의를 뒤집어씌워 징역 20년형을 선고했으며, 에드조아 역시 공금 횡령 혐의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다. 이 구금에 대해 국제앰네스티와 프리덤 하우스는 거세게 항의하며 티에리를 양심수로 규정했고, 결국 비야는 비판 여론을 이기지 못하고 아탕가나와 에드조아를 사면하도록 지시했고, 이 둘은 2014년 2월 25일에 석방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몰수된 재산은 회수되지 않고 법원의 판결도 뒤집어지지 않았다.
한편 영국령이던 카메룬 서부 지역 사람들이 정부의 차별 대우와 이로 인해 2016년 10월 6일부터 시작된 시위에 대해 정부가 보안군과 경찰을 투입해 구타와 최루탄, 심지어 실탄 발포까지 동원해 유혈진압하여 27명이 사망한 유혈사태가 발생했다. 또한, 2017년 9월 9일, 카메룬군을 동원해 암바조니아 분리주의자들에 대한 전쟁을 선포했고, 이에 분노하여 2017년 10월 1일에 암바조니아라는 이름으로 독립선언을 했는데, 이 과정에서 카메룬 정부군이 여성에 대한 강간과 민간인에 대한 학살을 자행한 것으로 알려져 국제적인 비난을 받았으며[22], 카메룬군이 마을을 불태우는 사진이 유출되며 파문이 일었고[23], 2021년 3월 기준으로 700,000명이 국내 난민이 되고 63,800명이 나이지리아로 피난갔으며 민간인만 무려 4,0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비야 본인도 2019년 11월 14일에 파리 포럼에서 서부 카메룬을 프랑스어권으로 동화시키려 시도했지만 정체성 차이로 인해 실패했다고 인정했다.
4. 기타
- 나이를 감안하면 엄청난 동안이다. 거의 이길여 남자 버전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당장 문서 상단의 첫 번째 사진을 찍었을 때의 나이가 만으로 쳐도 무려 88세이고,[24] 문서 상단의 두 번째 사진을 찍었을 때의 나이도 만 76세이다.[25] 그와 비견되는 동안이던 짐바브웨의 로버트 무가베마저 84세이던 2008년에 전립선암을 진단받고 11년 후인 2019년에 향년 95세를 일기로 사망했는데. 폴 비야는 91세가 된 2024년 현재까지도 건강 악화에 대한 어떠한 기사도 뜨지 않을 정도로 정정하다. 다만 2023년 12월 31일 말한 신년사에서 확인할 수 있듯 목소리에서는 확실히 나이를 감출 수가 없긴 하다.
- 한비야의 저서 '1그램의 용기'에 따르면 카메룬에서는 비야라는 이름이 자기 나라 독재자 이름이라 카메룬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이름이라는데, 본명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폴 비야를 말하는 것이다.
- '방해 받지 않고 일하고 싶다'는 이유로 스위스에 있는 제네바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짧게는 2주, 길게는 3개월을 보낸다고 하는데, 카메룬의 국영 언론은 이를 '단기 체류'라고 포장하고 있다. 그리고 비야는 2009년에 9월 3일에 프랑스에서 3주간 휴가를 보낼 때 43개의 호텔 객실을 사용하며 800,000유로(약 840,000달러)의 청구서와 함께 하루에 42,000유로(약 44,200달러)나 되는 스위트룸에 숙박했다는 것이 알려지며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26]. 그의 해외 숙박이 얼마나 악명(?)이 높은지 프랑스어 위키피디아에는 아예 폴 비야의 개인 숙박이라는 항목까지 만들어질 정도다.
- 결혼을 2번 했다. 1961년에 잔이렌 비야(Jeanne-Irène Biya, 1935 ~ 1992)와 결혼하고 아들 2명을 낳았는데, 이들 중 장남 에마뉘엘 프랑크 비야(Emmanuel Franck Biya, 1971 ~)는 2021년부터 아버지의 권력을 물려받을 '잠재적인 대체자'가 될 것이라는 말이 돌고 있다. 첫 아내가 1992년에 죽자 비야는 1994년에 37세 연하인 샹탈 비야(Chantal Biya, 1970~)와 결혼했는데, 샹탈 비야는 에이즈 치료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자선 단체를 운영하며 영부인으로서의 모범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며, 헤어스타일이 상당히 요란한 것으로 유명하다. 비야는 재혼한 부인과는 아들 1명과 딸 1명을 낳았는데, 이들 중 딸인 브렝다 비야(Brenda Biya, 1997~)[27]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유학 생활을 하며 트위터에 카메룬 기득권층의 입장과 반하는 글을 쓰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또한 그녀는 동성애자들을 처벌하며 반동성애 정책을 펼치는 아버지와 달리 자신의 SNS에 여성과 키스하는 사진을 올리며 커밍아웃을 했다. #
- 1985년에 발행된 1,000 블루 카메룬 프랑 지폐에는 비야의 초상화가 들어갔다고 한다.
5. 선거 이력
<rowcolor=#fff>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선거인단 수) | 당선 여부 | 비고 |
1984 | 카메룬 대통령 | 카메룬 | 카메룬인연합 | 3,878,138 (100.00%) | 당선 (1위) | 초선 |
1988 | RDPC | 3,321,872 (100.00%) | 재선 | |||
1992 | 1,185,466 (39.98%) | 3선 | ||||
1997 | 3,167,820 (92.57%) | 4선 | ||||
2004 | 2,665,359 (70.92%) | 5선 | ||||
2011 | 3,772,527 (77.99%) | 6선 | ||||
2018 | 2,521,934 (71.28%) | 7선 |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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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 대만 | 대한민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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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 중인 군주 · 집권 중인 공산국가 지도부 재임 중인 총리 및 수상 |
[1] 현재 [age(1982-11-06)]년째 대통령을 하고 있다.[2] 초대 대통령 아마두 바바투라 아히조의 건강이 악화돼서 총리였던 폴 비야에게 직접 승계한 경우이므로 5대 대통령이 초대 대통령과 함께 2명인 경우가 맞다. 이후 폴 비야는 6대 대통령 선거에 당당하게 당선되었다.[3] 원래는 1979년에 집권한 적도 기니의 테오도로 오비앙 응게마 음바소고가 현역 최장기 통치자가 맞다. 그 이유는 당시에는 아마두 바바투라 아히조 카메룬 초대 대통령이 1982년까지 집권하고 있었고 당시 폴 비야는 총리였기 때문이다. 총리 시절까지 집권 기간으로 소급적용하는 건 좀 억지긴 하지만 만약 적용한다면 무려 49년 동안 집권한 셈이며, 이렇게 보면 비야보다 더 오랜기간 동안 집권한 지도자는 52년 동안 집권한 피델 카스트로 단 1명밖에 없게 된다.[4] 참고로 폴 비야의 대통령 취임 이전부터 지금까지 국가원수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인물은 하사날 볼키아 브루나이 술탄, 칼 16세 구스타프 스웨덴 국왕 2명 뿐이다. 즉 선거로 뽑힌 국가원수 중에서는 폴 비야가 가장 오랫동안 직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5] 여기서 '평범한 독재자'란 적당한 지지율을 기반으로 적당히 통치를 하는 자들을 의미한다. 즉, 독재는 하는데 국민들에게 극단적인 원한을 살 짓은 안 하는 자들로 사실 아프리카의 장기 집권 독재자 대다수는 이쪽이라 물러나고도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비야 말고도 42년 동안 집권한 가봉의 오마르 봉고가 '평범한 독재자'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6] 다만 비야는 이 시기에 대통령비서실장 자리도 겸임했다고 한다.[7] 이와 유사한 케이스로는 아시아의 최장기 집권 현역 독재자였던 캄보디아의 훈 센이 있다. 이쪽은 1985년에 수상직에 올랐지만, 당시 실권자는 헹 삼린 주석이었기에 훈 센은 2인자에 머물러 있었고, 본격적으로 실권을 장악한 것은 헹 삼린이 물러난 1991년이다.[8] 그러나 비야는 형을 종신형으로 감형했고, 결국 아히조는 1989년에 세네갈 다카르에서 객사한 후 현재까지도 고국에 돌아오지 못한 채 다카르에 묻혀 있다.[9] 참고로 카메룬 남부 출신 가톨릭교도였던 비야와는 달리 아히조는 카메룬 북부 출신 이슬람교도였다.[10] 민간인 4명, 비야측 군인 8명, 쿠데타군 58명. 다만 쿠데타 직후에 많은 카메룬인들은 민간인 사망자 수가 터무니없이 축소되었다고 주장했고, 이 쿠데타로 인한 비공식 사망자 수는 무려 1,000여명에 달한다. 1984년 4월 15일 워싱턴 포스트 기사[11] 당시 체포된 사람들 중 대부분이 카메룬 북부 출신이었다고 하며, 덤으로 이들은 쿠데타 주모자들에게 속아서 쿠데타에 동조했다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깨닫고는 정부군에 투항했다고 정부가 가정한 사람이기도 했다.[12] 이들에 대한 사형 판결은 1984년 4월 30일에 비공개 군사재판에서 내려졌는데, 이들 중 무려 34명이 사형 선고가 내려진지 하루도 안되어 사형을 당했고(쿠데타 주도자인 이브라힘 살레도 이날 처형당했다), 5월 15일 ~ 5월 16일에도 8명이 사형당했으며, 1984년 7 ~ 8월에도 4명이 추가적으로 사형당했다. 게다가 5년 이상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람도 64명에 달했고, 징역 5년형을 선고받은 수감자도 122명이었으며, 5년 미만 징역형을 선고받은 수감자는 16명이었고, 심지어 재판 없이 무기한 구금된 사람도 38명에 달했던 데다가, 1991년 기준으로도 15명이 여전히 구금된 상태였다. 그리고 수감자 중 3명은 탈옥했고, 2명은 감형되었지만, 감옥의 열악한 환경과 굶주림, 가혹행위로 사망한 사람도 1988년까지 10명, 1991년까지 25명에 달했으며, 사형 집행 전에 자살한 사람도 1명 있었다고 한다. 즉, 이 쿠데타에 연루되어 목숨을 잃은 사람들만 무려 72명에 달하는 셈이다. 참고로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들은 총살형으로 처형되고는 구덩이에 던져지고는 굴착기로 매몰되었다고 전해진다. #1 #2 #3[13] 당시 카메룬은 외부와 항공, 육상, 해상은 물론 통신까지 단절되었다고 한다.[14] 이후 비야는 1992년에 쿠데타에 연루되어 구금되었다가 석방된 군인들에게 재판 과정에서 몰수된 이들의 재산을 재양도해주기도 했다.[15] 이 선거에 출마한 야당 후보 존 프루 은디(John Fru Ndi, 1941~)는 이 선거에서 36%의 득표를 얻었으며, 이후 1997년 대통령 선거는 보이콧했으나, 2004년과 2011년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했다. 참고로 카메룬 정부는 2005년에 '런던의 뉴스레터 '아프리카 콘피덴셜(Africa Confidential)'에 따르면 은디가 1억 2,500만 달러를 축적했고, 이들 중 70%는 정치적 거래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고 주장했으나, 은디는 물론이고 아프리카 콘피덴셜도 그런 조사를 한 적이 없다며 이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16] 여러 자료들에 따르면 실제로는 비야는 투표에서 이기지 못했다고 한다. 부정선거 정황이 농후한 셈.[17] 다만 이는 주요 야당이 선거를 보이콧했던 것의 영향도 크다.[18] 이는 현존하는 최장기 집권 독재자인 적도 기니의 테오도로 오비앙 응게마 음바소고도 마찬가지.[19] 이 순위에서는 북한의 김정일이 고작 3위밖에 차지하지 못했으며, 2위는 수단 공화국의 오마르 알 바시르, 1위는 짐바브웨의 로버트 무가베가 차지했다.[20] 카메룬 출신이었으나, 프랑스에서 금융 엔지니어로 일하며 네슬레와 필립스의 부채 재구성을 담당했고, 프랑스인과 결혼해서 프랑스 국적을 얻게 되었지만, 1994년에 고국으로 돌아와 도로 건설 프로젝트를 감독하는 정부 기관 코피수르(Copisur)를 감독해왔다.[21] 1985년에 파리에서 열린 종합 수술 대회에서 일반외과 종합 타이틀을 획득할 정도로 유능한 외과의였으며, 비야의 누이의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면서 선교 담당 장관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고등교육부 장관, 공화국 대통령 사무총장과 공중 보건부 장관을 역임하기도 했다.[22] 다만 암바조니아측 민병대도 프랑스어를 필수 과목으로 가르치는 학교를 방화하거나 몸값을 받아내기 위한 납치, 약탈, 민간인 살해에 가담하기도 했다. 사실 반군보다 정부군이 더 심하게 민간인을 학살하는 일은 세계적으로 매우 흔한 일이다.[23] 카메룬군은 이 사진 속 방화가 도난당한 카메룬 군복을 입은 분리주의자라고 주장했다.[24] 실제로 이 사진은 2022년 2월 10일에 청소년의 날 기념으로 연설하는 모습을 촬영한 사진이다.[25] 실제로 이 사진은 2009년 9월 23일에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과 함께 촬영한 사진이다.[26] 참고로 당시 카메룬의 1인당 GDP는 1,446달러도 되지 않았는데, 비야는 일반적인 카메룬인들의 30년치 연봉을 넘는 거액을 단 하루 만에 썼으니 카메룬인들이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지는 안 봐도 뻔하다.[27] 비야가 무려 64세에 본 늦둥이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