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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2 22:44:34

독재자/세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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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세습의 이유3. 세습의 어려움
3.1. 후계자 문제3.2. 독재에 협력하는 엘리트들의 반발3.3. 혁명과 전쟁
4. 실존하는/실존했던 세습 독재자들(왕가 제외)
4.1. 아시아
4.1.1. 전근대4.1.2. 근현대
4.2. 유럽4.3. 아메리카4.4. 아프리카
5. 시도가 있었지만 실패한 경우6. 의심받는 경우

1. 개요


자신의 권력혈육에게 물려주는 데에 성공한 독재자들을 뜻하는 말이다.

독재자와 전제군주가 구분되는 가장 큰 차이는 국가가 공화국이냐 군주국이냐의 차이이다. 군주국은 권력의 세습을 인정하고, 권력자와 얼마나 가까운 가족이느냐에 따라 정통성이 달라질 정도로 혈통에 의한 세습을 중시하는 국가 체제이다. 그러나 공화국은 그런 세습 권력자인 왕을 인정하지 않는 국가체제이고, 정통성도 혈통에 있지 않다. 그렇기에 공화국의 절대 권력자인 독재자는 국가 체제를 부정하는 혈통에 의한 세습을 할 수 없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원리 원칙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공화국의 절대권력자인 독재자들이 자기 국가의 규칙을 깨고 가족에게 권력을 물려주는 경우는 꽤 많다. 당장 공화국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로마에서부터 세습 독재자가 나타났고, 그들은 유럽 최초의 황제가 되었다. 이는 오늘날에도 다르지 않다. 요즘 시대에서 가장 유명한 예시로는 북한의 3대 세습이 있다.

2. 세습의 이유

독재자가 세습의 야욕을 품는 이유는 자신의 독재 정치가 이오시프 스탈린 같이 사후에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후계자를 자신의 가족으로 정해서 자신의 독재 정치에 대한 비판을 회피하려는 것이다.

또한 독재 권력을 후원하는 엘리트들도 독재자의 후계가 독재자의 가족이 되는 것을 원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일반적으로 가장 안전한 권력 승계 수단이라 정치적 변동에서부터 자신도 안전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군주제왕위 계승의 법칙에 의해서 계속 유지되어 왔던 이유와 다를 바 없다.

민주주의가 깊게 뿌리내리지 못한 경우라면 지지자들이 막무가내로 세습에 찬성하는 경우도 있다.

3. 세습의 어려움

독재자가 자신의 절대 권력을 가족에게 물려주는 것은 전제군주정보다 엄청나게 어렵다. 역사상 수백년을 넘어가는 왕조는 수두룩하지만 삼대이상의 권력 세습에 성공한 공화정의 독재자는 손에 꼽는 것이 그 증거이다. 이는 권력의 세습을 위해 국가체제가 형성된 군주정과 권력의 세습을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공화국의 시스템상의 차이 때문이다. 독재자가 권력을 세습하기 어려운 조건들은 다음과 같다.

3.1. 후계자 문제

이 점은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문제이다. 독재자의 권력을 받고 싶어하는 가족이 존재하고, 독재자가 그 사람에게 권력을 물려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어야만 세습의 첫 번째 조건이 이루어진다.

튀르키예의 아타튀르크가 이 경우의 좋은 반례에 포함된다. 이쪽은 반대로 자신의 명성을 배경 삼아 자식들이 대대로 대통령을 하는 것을 경계해 일부러 자식을 보지 않았다. 튀르키예의 헌법에서 아타튀르크를 모욕하는 것을 처벌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명망이 있는 독재자이기에 충분히 가능한 얘기이다. 비록 자신의 가정 사정상 자식을 갖지 못했을 뿐이라는 의견도 있으나, 아타튀르크의 경우는 독재자의 가족이 상대적으로 쉽게 권력을 차지할 수 있다는 것과 동시에 그 권력을 차지할 가족이 반드시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예이다.

만일 후계자가 있다고 해도 만일 서열 정리 없이 죽으면 자식들, 가족간에 권력쟁탈전이 일어나 거의 내전에 가까운 혼란이 벌어진다.

3.2. 독재에 협력하는 엘리트들의 반발

앞서 독재자에게 협력하는 엘리트들도 세습을 바라는 경우도 있다고 했는데 기본적으로 그 엘리트들도 사람인지라 권력을 차지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다. 아니 엄청나게 있다고 보면 된다. 10.26 사건에서부터 12.12 군사반란까지 독재자의 핵심 측근층들이 독재자의 자리를 탐내 암살을 벌이고 쿠데타를 하는 것은 이 권력욕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김재규박정희 암살을 벌인 이유는 지금도 불명이며, 현재는 이 암살의 주 근원 중 하나를 차지철과 권력 다툼으로 보는 설이 과거에는 정설이였으며, 따라서 이 사건은 독재 정권의 실력자들이 가진 권력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할 수도 있다.[1]

이 실력자들은 독재자한테는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충성을 바친다. 하지만 그 가족들에게도 충성을 바치는 것은 다른 얘기이다. 독재가 이루어지기 위해 필요한 힘과 정통성을 그 가족이 그대로 세습할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그 엘리트들이 바로 힘과 정통성을 지지해주는 사람들인데, 자신들도 독재를 하고 싶어하거나 세습을 싫어하기 때문에 이를 반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북한을 제외한 공산국가들이 그 예이다. 공산주의 국가들은 공산당이 모든 권력을 차지하는 레닌식 인민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대숙청 이후의 스탈린문화대혁명 때의 마오쩌둥처럼 한 사람이 모든 권력을 독차지한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공산국가의 권력은 그 당의 엘리트끼리 어느 정도 분산되어 있는 집단지도체제이다. 그렇기에 비록 독재를 하지만 당의 모든 의견을 무시하고 권력을 휘두르기 어렵고, 세습의 경우도 말할 것이 없다.[2]

이런 엘리트들의 반발을 이겨낼 만큼 독재자가 권력을 강하게 차지하고, 후계자도 어느정도 자신의 기반을 만드는 조건을 충족해야 가능하다. 전자의 예시로는 8월 종파사건 이후 반대파가 전혀 없는 김일성을 들 수 있다. 후자의 예시로는 거의 철들때부터 권력투쟁에 참가하고 혁명원로들의 환심을 사는 데 성공해 김일성 말년에는 김일성을 허수아비로 만들 정도로 권력을 장악하는 데에 성공한 김정일을 들 수 있다.

즉, 원활한 세습을 위해서는 권력을 잡는 데 함께 한 동지고 뭐고 숙청으로 싹 쓸어버리고 주변을 예스맨으로 채운 뒤, 남아있는 엘리트들에게는 독재자의 가족과 함께 한 배를 타지 않으면 위험할 것이라고 경고[3]하여 알아서 기도록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3.3. 혁명과 전쟁

아무리 독재정권 내에서 세습을 인정받는다고 해도, 국민들과 다른 국가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권력을 세습한다고 해도 그 권력을 잃으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 실제로 가족에게 권력을 물려줄 생각을 가진 독재자들의 상당수가 외부의 요소에 의해 권력을 잃어 이를 이루지 못한 것이 그 증거이다.

국민들의 민주 혁명으로 세습을 이루지 못한 가장 좋은 예시는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이다. 북한의 세습을 욕한 다른 공산주의 국가들과 달리 이를 부럽게 여기고 벤치마킹해서 권력을 세습하려고 했다. 하지만 공산진영의 붕괴와 차우셰스쿠의 독재 권력에 질린 루마니아 국민들의 혁명에 이기지 못하고 결국 권력 세습은커녕 총살당해버렸다. 단지 권력 세습 시도 때문에 차우셰스쿠가 권력을 잃은 것이 아니지만 국민들의 민주 혁명이 세습을 막은 좋은 예시이다.

외부 국가 때문에 세습에 실패한 경우는 무아마르 카다피사담 후세인을 들 수 있다. 두 권력자들 모두 권력 세습에 열정적인 자식들을 가지고 있고, 반대파가 없는 절대권력을 누리고 있기에 시리아의 아사드 부자처럼 권력 세습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은 국가들이었다. 하지만 이들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벌인 이라크 전쟁리비아 전쟁에 패배해 권력과 일가족의 목숨도 잃어버렸다.

국민들과 외부 국가의 비판을 피하기 위해 후계자에게 바로 물려주지 않고 징검다리를 위한 허수아비를 세우는 방식을 취하는 독재자들도 있다. 이렇게하면 겉보기상으로는 권력 세습이 아니고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대놓고 세습을 이루는 것보다 반감을 적게 받는다. 실제로 대만싱가포르는 이런 방식으로 취했고, 이들 독재 권력은 다른 독재자들보다 상대적으로 욕을 덜 먹는다.[4]

4. 실존하는/실존했던 세습 독재자들(왕가 제외)

이 리스트에는 독재 국가 내에서 권력을 세습한 친족 관계의 독재자들이 기술된다. 독재자 문서의 독재자 기준을 만족하는 경우의 독재자만을 기술한다. 우선 세습 독재 왕가는 기준을 만족하지 않고 전제군주제 항목에 있으므로 제외한다. 미국조지 부시 부자처럼 민주주의 국가 내에서 민주주의 절차로 두 명 이상의 가족이 권력을 차지한 경우나 대한민국박정희 - 박근혜, 방글라데시셰이크 무지부르 라흐만 - 셰이크 하시나처럼 부모나 자식중 한명이 독재자라도 부모나 자식이 민주주의 절차로 민주 국가의 권력을 얻은 경우는 정치인 가문 문서에 기재한다. 적도 기니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테오도로 오비앙 응게마 음바소고처럼 둘 다 독재자일지언정 후임자가 쿠데타로 전임자를 살해하고 집권한 경우도 제외된다. 영국의 호국경처럼 전근대 국가라도 권력의 세습이 이루어지면 안 되는 공화국의 경우는 포함된다. 현재진행형으로 세습 독재를 시행중인 국가는 볼드체 처리한다.

4.1. 아시아

4.1.1. 전근대

4.1.2. 근현대

4.2. 유럽

4.3. 아메리카

4.4. 아프리카

5. 시도가 있었지만 실패한 경우

사담 후세인 - 쿠사이 후세인: 이라크 전쟁으로 후세인 정권이 몰락하여 실패했다.* 자이르모부투 세세 세코 - 장파울 니니와 모부투: 모부투는 장남에게 대통령의 외교 고문을 맡기는 등 여러 스펙을 쌓게 하며 자신의 권력을 세습하려고 했으나, 1994년에 니니와가 에이즈로 사망하면서 성사되지 못했다.* 리비아무아마르 카다피 - 사이프 알이슬람 카다피: 리비아 혁명으로 카다피 정권이 붕괴되어 실패. 여기에 서방의 개입도 주효.* 루마니아니콜라에 차우셰스쿠 - 니쿠 차우셰스쿠: 루마니아 혁명으로 차우셰스쿠 정권이 몰락하며 실패.* 이집트호스니 무바라크 - 가말 무바라크: 2011년 아랍의 봄 혁명으로 무바라크 정권이 무너지면서 실패하였다.* 짐바브웨로버트 무가베 - 아내인 그레이스 무가베한테 권력을 세습하려고 했으나, 2017년 쿠데타로 하야하면서 실패.

6. 의심받는 경우


[1] 설령 김재규가 집권했더라도 박정희보다 더한 독재자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전두환도 그랬고.[2] 교양만화가 이원복 교수의 2002년 저서 <새 먼나라 이웃나라> 우리나라편에 따르면 대다수 공산주의 국가 지도자들은 죽거나 권력을 잃으면 무조건 폭군이나 독재자로 매도당한다고 하는데,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과 중국의 마오쩌둥이 대표적인 예이다.[3] 정권교체로 인한 정치보복이나, 혁명 등[4] 물론 이들 국가는 세계의 여론을 주도하는 친서방 세력이며, 대만은 장징궈 이후 실질적 민주주의를, 싱가포르는 겉보기 상으로는 민주주의를 취했기에 그런 면도 있다.[5] 다만, 리셴룽 휘하 당시 싱가포르가 독재국가인지는 논란이 있다.[6] 공화국 지도자의 3대 세습으로 유일한 것은 아니다. 근세 유럽에서는 피렌체 공화국메디치 가문네덜란드 공화국오라녀나사우 가문이 3대도 아니고 4대 이상 세습에 성공한 사례가 있고, 니카라과소모사 가문도 3명의 혈육 세습에 성공했기 때문. 단, 메디치 가문과 오라녀나사우 가문은 전제군주제입헌군주제공화제보다 흔했던 시대에 집권한 가문이라서 대부분의 국가가 공화제 내지 입헌군주제를 채택한 현대에 집권한 북한 김씨 일가와 1:1로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고, 소모사 가문은 중간에 타 인물이 집권하기도 했고 2대와 3대가 같은 세대의 형제라서 순수성이 떨어진다.[7] 공화국의 독재자로 볼 것인지, 군주로 볼 것인지 애매하긴 하다.[8] 카이사르는 내전에서 승리하여 종신 독재관으로서 통치했고, 외가 쪽 친척인 옥타비아누스를 후계자로 지명했는데, 옥타비아누스는 그 권위를 이용하여 집권한 후 임페라토르, 프린켑스를 비롯한 로마 공화국의 여러 칭호와 관직을 교묘하게 결합하여 법적으로는 공화정이지만 실질적으론 군주정이나 다름 없는 체제를 형성함으로써, 사실상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가 되었다. 다만 카이사르가 후계 구도를 안정시키기 전에 갑작스럽게 암살당하는 바람에 옥타비아누스는 집권 초기에 다른 군벌들과 권력을 나눠 가져야 했고, 실제로 카이사르가 가졌던 권력을 온전히 독점할 수 있게 된 건 카이사르가 죽고 10년 이상이 지난 후였다.[9] 고대 로마 제국 후기에 군부의 실세들이 역임하던 관직[10] 삼촌 리키메르는 쿠데타로 집권하여 4을 갈아치울 정도로 막강한 최충헌독재자로 군림했고, 그 권력을 승계한 조카 역시 기존 황제를 폐위하고 새로운 황제를 옹립할 정도로 강력한 권력자였다. 다만 군도바트는 삼촌과는 달리 서로마에서 장기집권하는데 실패하고 축출되었는데, 자신의 출신 민족인 부르군트족 내에서는 여전히 지지를 받고 있어서 갈리아 남부에 부르군트 왕국을 세우고 할거하며 죽을 때까지 왕으로 군림했다.[11] 코시모 디 조반니 데 메디치 시대부터 피렌체 공화국의 국가원수에 해당하는 '곤팔로니에레 디 주스티치아(정의의 기수)'를 세습했는데, 신성 로마 황제 카를 5세로부터 공작위를 하사받아 체제를 군주제로 전환했다. 그리고 대공으로 승격되어 토스카나 대공국을 통치하는 대공가로 군림했다.[12] 네덜란드 독립 직후부터 네덜란드 공화국의 국가원수에 해당하는 스타트하우더를 대대로 세습했고, 나폴레옹 전쟁 이후에는 아예 체제를 왕정으로 전환하여, 현재까지 네덜란드의 왕가로 군림하고 있다. 다만 지금은 군주가 상징적인 역할만 수행하고, 실권은 의회의 신임을 받은 총리가 행사하는 입헌군주제라서, 권력은 오히려 공화국 독재자 가문이었던 시절보다 약화된 상태다.[13] 다만 일반적인 세습이 아니라는 거지, 그 자체로만 놓고 보면 세습이 맞다. 일단 군주제에서 2대 군주가 왕조 창건의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례는 무수하며(당태종, 송태종), 이 경우에도 엄연한 세습으로 본다. 일단 세습이라는 단어 자체가 한 집안에서 후계자에게 신분, 재산, 직업 등을 세대에 걸쳐서 물려주는 행위를 뜻하기 때문.[14] 참고로 본인은 암살당했는데 아들이 세습한 특이 케이스다. 차드이드리스 데비 이트노-마하마트 데비 이트노가 비슷한 경우로, 이드리스 데비 이트노가 피살당하자 차남인 마하마트 데비 이트노가 군정을 선포하고 권력을 세습했다.[15] 이쪽도 아버지가 암살당한 특이한 케이스다.[16] 2019년 1월 선거로 세습통치가 끝났다.[17] 2023년 쿠데타로 세습통치가 끝났다.[18] 2021년 이드리스 데비 이트노가 반군과의 전투 과정에서 전사한 뒤, 마하마트 데비 이트노 차드 육군 대장이 군사과도위원회를 열어 과도 군사위원장(임기 18개월)으로 취임했다.[19] 할아버지 이름이랑 똑같다.[20] 초대 대통령도 현직 대통령의 삼촌이었다. 다만 이쪽은 삼촌 밑에서 요직을 차지하다가 쿠데타로 삼촌을 몰아내고 처형하며 집권한 케이스라 세습이라고는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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