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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ddddd,#000000><colcolor=#000000,#dddddd> 스밍 史明 | Su Beng | |
본명 | 시차오후이(施朝暉) |
출생 | 1918년 11월 9일 |
일본령 대만 다이호쿠주 | |
사망 | 2019년 9월 20일 (향년 100세) |
대만 타이베이 | |
국적 | [[일본 제국| ]][[틀:국기| ]][[틀:국기| ]] → [[대만| ]][[틀:국기| ]][[틀:국기| ]] → [[중국| ]][[틀:국기| ]][[틀:국기| ]] → [[대만| ]][[틀:국기| ]][[틀:국기| ]] |
가족 | 父: 린제천(林濟川), 母: 시아슈(施阿秀) |
학력 | 대학(졸업) |
직업 | 혁명가, 작가, 사상가 |
소속 | (1943-1949) → (1949-2019) |
링크 | |
서명 |
[clearfix]
1. 개요
대만의 급진 좌파성향 독립운동가로 '타이완 독립운동의 대부', '대만의 체 게바라'라는 별명이 있다.2. 생애
1918년 11월 9일, 대만일치시기의 타이베이에서 태어났다. 일본으로 유학가서 와세다대학을 졸업했다. 이 때 일본에서 차별을 받으면서 일제의 식민통치에 대한 반감을 가지게 되었고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하게 되었다. 이후 대만과 중국의 반일 운동을 지지했다.중일전쟁 시기에는 1943년 중국공산당에 입당해 지하 정보원으로 활동했다가 1945년 일제 패망 이후 대만을 폭압적으로 통치하는 국민정부에 반기를 들어 적극적인 반장제스, 반국민당, 대만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1949년 중국 공산당을 탈당하고 대만으로 돌아갔다. 1950년 2월에는 대만독립무장혁명대(台灣獨立革命武裝隊)라는 극좌파 단체를 결성하여 장제스를 암살하고 사회주의 국가로써의 대만독립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무장혁명대는 같은 해 11월에 해산되었으며, 정치범으로 수배를 받게 되어 숨어 살다가 1952년 일본으로 망명한다.
대만이 민주화되면서 그 또한 사면받게 되었고 1993년 대만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2014년에는 해바라기 운동에 참여했다. 대만으로 돌아온 이후에는 당적은 무소속이였으나 과거 본인이 소속되었던 중국공산당과 중국국민당의 양안통일론을 맹비난하고 대만 독립을 주장하며 민주진보당을 지원하였다. 차이잉원 정부가 2016년 출범하자 스밍은 총통 고문으로 임명되었고, 반중 성향 정책을 밀었다.[1]
2019년 9월 20일, 10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3. 여담
- 오늘날 주류 대만민족주의자들이 친미의 연장선상에서 친이스라엘 성향을 보이는 것과 달리 스밍은 죽을 때까지 친팔레스타인 성향을 보였다. 이스라엘에게 억압당하는 팔레스타인 민중의 처지가, 국민당 외성인들의 백색공포와 민주화 이후 중국의 침략에 위협당하는 대만인들의 처지와 비교하곤 했다.
4. 같이 보기
[1] 사실 스밍같은 대만독립 성향 좌익 민족주의자들 입장에서 중국공산당의 행태는 배신이나 다를 게 없다. 중국 제국주의 문서의 대만 항목에도 나와있지만 스밍이 중공 당원으로 활동할 때 중공은 대만 독립을 지지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본래 국민당이 치던 논리인 하나의 중국 타령하면서 보수우익인 국민당과 통일전선을 결성하고 대만 독립 시도 시 전쟁하겠다고 협박하니 스밍 같은 마르크스주의 계열 대만 독립 전통을 지지하던 이들 입장에서 중국공산당의 추태는 '통수' 그 자체임 셈이다. 공산당과 달리 국민당은 처음부터 일관되게 대만이 중국(중화민국)의 영토라고 주장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