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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일(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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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33399><colcolor=#fff> 김선일
Kim Sun Il | 金鮮一
파일:external/www.newspower.co.kr/06270649331.jpg
이름 김선일 (金鮮一)
출생 1970년 9월 13일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
사망 2004년 6월 22일 (향년 33세)
이라크 안바르 주 팔루자
학력 성심외국어대학 (영어과 / 전문학사)
부산신학교 (신학과 / 학사[1])
한국외국어대학교 (아랍어과 / 학사[2])
직업 (주) 가나무역 통역사
가족 아버지 김종규[3], 어머니 우금순[4], 새어머니 신명자[5][6]
누나 김향림, 김미정, 여동생 김정숙
사촌 누나 김주영, 사촌 형 김진학
종교 개신교(예장합동)
1. 개요2. 사건 이전의 생애3. 이라크 파견4. 피랍5. 관련 인물

[clearfix]

1. 개요

"한국군은 제발 이라크에서 철군하라. 죽고 싶지 않다. 당신들의 목숨도 소중하지만 내 목숨도 소중하다."[7]
2004년이라크 전쟁이 끝난 직후[8] IS의 전신유일신과 성전에 붙잡혀 참살(斬殺)[9]당한 한국인 희생자. 유일신과 성전의 공식 참살 영상 기준으로 된 미디어 테러의 4번째 희생자이며, 2004년 닉 버그의 참살 사건 및 미국인 납치 참살 사건들 이후 또 다른 외국인으로 가장 큰 논란이 된 사건이기도 하다.

2. 사건 이전의 생애

파일:external/www.donga.com/200406230007.jpg
대학 졸업 당시 김선일의 사진
김선일은 1970년 9월 13일,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 안창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다. 1983년 부산 운봉초등학교[10], 1986년 반송중학교, 1989년 용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2년 부산 성심외국어대학교(현 영산대학교 해운대캠퍼스)에 입학하고 영어과를 졸업하고 목회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현재 경성대학교로 통합된 부산신학교에 편입해 신학을 공부해왔다. 졸업 후, 군복무 생활을 마치고 사회 봉사 활동도 하였으며, 한세대학교 영산신학대학원, 침례신학대학교 대학원, 한국외국어대학교 등 모두 4군데 대학에서 영어, 신학, 선교학, 아랍어 등을 독학으로 전공했다. 최종 학력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용인캠퍼스 아랍어과를 학사 편입학하여 졸업. 주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김선일의 학창 시절의 생활은 평범하고 얌전하고 조용하였으며, 학업과 공부에만 열중하는 사람 정도로만 기억했다고 했다. 부산신학교의 학과장이었던 나동광 교수는 김선일이 영어를 잘하고 조용히 공부하는 스타일이었으며 특히 기도에 열정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증언 했다. 한국 외국어대 아랍어과 학과장이었던 손주영 교수 역시 김선일이 조용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는 데 피살 된 것에 대해 참담한 마음이라며 심경을 밝혔다. 그외 학창 시절 교수들도 김선일이 모두 한결 같은 학생이었다고 증언 했으며 비보를 접한 박종평 아랍어과 교수도 김선일 씨는 아주 조용하게 자기가 맡은 일에 잘 하는 학생이었다며 울분을 토로 했다. 김선일의 주변 친구들도 가족들의 도움 없이 혼자서 열심히 스스로 돈을 벌면서 학교를 다녔으며 직장 동료들도 김선일이 조용하고 신의 있는 사람인 것 같았다고 입을 모았다.

3. 이라크 파견

동시 통역대학원에 들어가기를 희망한 그는 학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미군군납업체인 가나무역에 1년 계약직으로 일하게 되어 미국과 전쟁 중이던 지역인 이라크로 가게 되었다. 그러나 중동에서 \'미군의 군납업체 직원'이라는 타이틀은 미군과 별 다를 것 없이 매우 엄청나게 위험하다. 이라크 현지에서 만난 이라크 여인과 결혼까지 할 계획도 했으나,[11] 이 선택은 결국 그를 안타깝게도 죽음으로 몰아넣고 말았다.

사건 초창기에는 미군 군납업체 직원으로 일했다는 사실로 인해 납치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본래가 선교 목적인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실제 김선일이 마음 속에 품었던 목적이 어떻건 간에 명목 상으로 미군의 군납 업체에서 일하다가 살해된 것이며, 기독교 선교에 대한 이야기는 (강요된) 유언 등에서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즉, 테러리스트들은 김선일의 본래 목적이 선교였다는 사실을 몰랐을 가능성이 있으며, 그들이 발표한 성명문에서도 김선일의 선교 활동은 일절 언급되지 않았다. 또한 한국 기자와 인터뷰를 한 유일신과 성전 대원은 김선일의 선교 활동이 아닌 미군 협조 활동을 그를 납치하고 살해한 이유라고 밝혔다.[12] 설사 알았더라도 그것이 그들의 관심 사항이 아니었던 것이다.[13] 오히려 미국의 동맹국의 자격으로 자이툰 부대 등을 파견한 것에 김선일 사망 사건의 직접적인 이유가 있다. 이에 따라 사건 당시에는 추모 일색이었으며 대부분은 김선일 사건에서의 정부의 대응과 이라크전 개입에 반대하는 반정부 여론이 주를 이루었다. 사실 기독교 선교를 들먹이며 김선일 개인에게 책임을 지우려는 여론은 대체로 샘물교회 사건을 기점으로 '생각해 보니 김선일도 선교사이더라'는 식의 회고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김선일이 가나 무역에 취업하면서 동시에 단순 근무 뿐만 아니라 선교 목적도 있었다는 정황이 있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1. 가나무역 입사시 자기소개서의 내용, 2. 가나무역 사장 인터뷰, 3. 인터넷 커뮤니티에 김선일이 남긴 게시글, 4. 1994년 촬영된 신앙수련회에서 김선일이 발언한 내용, 5. 누나의 편지 등이다. 이 단락의 나머지 부분에서는 이 근거들을 하나씩 살펴본다.

1. 가나무역 입사 당시 자기소개서 (전문)
저는 남들과 다름없이 1남 3녀의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무난하게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조금씩 불안정한 심리를 가지고 살게 되었고 얼마 있지 않아 약 6개월 후 아버지께서는 새어머니를 맞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새어머니와 잘 융화되지 못하여서 갈등이 참 많았습니다. 괜히 비뚤어진 마음에 반항심을 가져 말을 듣지 않았고, 자라갈수록 점점 더 심하게 비뚤어져 갔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도 역시 비뚤어진 마음들을 품게 되었고, 고등학교 시험에 합격을 하여 입학을 앞둔 무렵 그 당시에 아버지께서 가정을 잘 돌보지 않아 등록을 하지 못하게 되어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급기야 저는 그 이후로 아버지를 더욱더 미워하게 되었으며, 다음 해 재수를 하여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였을 때는 큰 누나, 작은 누나, 여동생 그리고 저 이렇게 4명이서 살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을 한 후 3학년이 되었을 무렵, 같은 반의 한 급우(김OO)로부터 복음을 전해 듣게 되었고, 평소에 그 친구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터에 그 친구가 다니는 교회를 따라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여름방학 즈음에 심OO 라는 또 다른 친구를 통하여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 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성령이 무엇 인지에 대해서도 조금씩 깨우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대학교에 진학을 하고 나서는 졸업을 하고 직장 생활을 하며 평범한 삶을 살고자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저의 마음은 왠지 모르게 그렇게 하는 것보다는 내 앞길을 의탁하는 기도를 한 번 해 보자라는 생각에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게 되었고, 작정해 놓고 기도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약 5개월 간 꾸준히 기도를 한 끝에, 선교사에 대한 마음의 소원을 하나님께서 주셨고, 좀 더 구체적인 비전을 위해서 계속 간구를 하고 묵상을 하던 중 중동선교에 대한 비전을 품게 되었습니다.

간략하게 나마 연유를 말씀드리자면,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누구일까 생각을 하던 중 예수 그리스도가 그 마음 속에 없는 이들(영적인 고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중에서도 가장 복음에서 소외된 지역이 중동 지역이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또한 제가 성장해온 배경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중동 지역 선교사에 대한 마음을 품게 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가정에서 저 혼자 신앙 생활을 하게 되어 힘든 점도 없지는 않았으나 (장손이라서 친척들의 반대까지 심하게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 생활을 계속 할 수 있게 되었으며 감사하게도 지금은 큰 누나와 작은 누나가 예수 님을 영접한 상태이고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도 계속적으로 기도하며 복음을 전하는 중에 있어 지금은 마음의 문이 많이 열리신 상태입니다.

또한 계획 중에 있는 단계지만, 아랍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사역을 하게 되면 영어와 아랍어와 미용 기술을 통하여 그들에게 복음으로 다가가고자 합니다. (미용은 군복무 시절 이발병군종병이라는 좋은 경험이 저의 밑거름이 되어, 미용 기술을 좀 더 배우고자 하고 있습니다.)

아직 아랍 지역은 가본 경험이 없기에 이번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갈 수 있게 된다면 복음을 좀 더 구체적이고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또한 그 영혼들을 좀 더 온전히 섬기고 사랑하기 위한 좋은 훈련의 시간들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 이렇게 지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원문.@

김선일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로 보아서는 확실히 선교 목적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회사 입사 시 자기소개서에 당당하게 선교가 목적이라고 밝힐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취업한 '가나무역'의 사장이 개신교 신자이며 가나무역 소속 직원 중 상당수가 이라크에 개신교를 전파하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첨언으로 가나무역의 가나도 성경에 나오는 카나를 의미한다.

2. 가나무역 김천호 사장 인터뷰 (발췌)
질문: 이라크에서 사업을 하기 전에는 어떤 일을 했나.
답변: 대학 졸업 후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등 중동 지역에서 줄곧 일해 왔다. 자재납품 등 주로 개인사업과 함께 선교 지원 활동을 해 왔다.

질문: 가나무역 직원들은 한국의 온누리교회 선교사라는 말이 있다.
답변: 온누리교회 소속 신자 네 명이 있을 뿐 선교사는 아니다. 다만 나를 포함해 직원 모두가 이라크에 기독교를 전파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우리 회사는 선교사로 뛰어들기 위한 준비과정을 제공했다. 우리 회사에 입사한 직원들은 구제활동을 통한 이라크의 복음화를 위한 뜻을 가지고 있다.
(월간조선 2004년 8월호 인터뷰)@

이처럼 가나무역의 직원으로 이라크에 파견되는 것은 자연스럽게 개신교 선교활동에 지원 혹은 참여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김선일 역시 가나무역 소속으로 이라크에 파견될 때, '선교가 본래 목적'이라고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아래의 글은 김선일이 자신이 활동하던 인터넷 커뮤니티에 남긴 글의 일부이다.

3. 인터넷 커뮤니티 글 (발췌)
(...) 제가, 다가오는 여름인 7월달에 함 놀러간다고 했는데, 아마, 조금 힘들게 될 것 같네요.
제가, 6월초에 중동선교회를 통해서 이라크에 자비량선교사로 가게 되었거든요. 거기, 이라크에 있는 미군부대내에서 근무를 하게 되는데, 형식은 취업비자를 받아서 가지만, 아무래도 선교가 본래 목적이겠지요? ^^ (...)
(연합뉴스 기사) (오마이뉴스 인용보도) (원문 아카이브)

또한 김선일 본인이 직접 등장한 영상 중 하나인 1994년 동계 수련회 촬영분에서 자신이 이슬람 지역으로의 선교 의사가 있음을 직접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4. 1994년 동계 수련회 영상에서의 발언

비전[14]이 선교사입니다. 해외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인데, 그냥 막연히 처음에는 선교사로 나간다고 생각만 하다가, 확실하고 구체적인 지역을 달라고 기도했는데,
무슬림이라고 이슬람을 보여주셨어요.

피살 사건의 발생시기가 2004년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김선일은 애초에 중동 선교를 희망하고 있었고, 이를 위한 수단으로 가나무역 취업 및 이라크 파견을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즉, 1에서 언급된 자기소개서가, 단지 기독교 회사에 취업하기 위하거나 취업 후 회사생활을 원만하게 위해 꾸며낸 것이 아니고 애초에 선교가 목적이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더 나아가 가나무역 직원 통역사 신분으로 이라크에 파견되면서 가족들에게는 '선교사로 간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5. 누나의 추모 편지
(...) 네가 이라크로 선교간다고 했을 때 말리고 싶은 마음 간절했다. 하지만 네가 원하는 길을 가는 것 같아 붙잡을 수가 없었다. 네가 진정 가고자 했던 선교의 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너의 가는 길을 감히 거부할 수 없었다.
중앙일보 보도@

4. 피랍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김선일 피랍 사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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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을
참고하십시오.

2004년 5월 31일, 김선일은 결국 미군 군납 작업 도중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단체 유일신과 성전에 의해 납치되었고, 6월 22일, 피살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조.

5. 관련 인물



[1] 편입[2] 학사편입[3] 1934년 ~ 2016년 12월 (향년 82세)[4] 1978년 4월 사망[5] 사실혼 관계.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아버지의 동거녀'로, 편의상 새어머니라 부를 뿐 법적, 공식적으로는 김선일과 그 어떠한 관계도 아니다. 참고로 신명자는 1972년 2월 전남편을 사별했다.[6] 1941년 ~ (83세)[7] 2004년 6월 21일에 공개된 영상에서 울부짖은 김선일의 절규. 이때는 영어로 외쳤다.[8] 실질적으로는 2011년에 끝났으나 당시 부시 정부에서 승리했다고 자축했다.[9] 불법으로 저질러진 살인 행위이기 때문에 참수형 등의 용어보다는 참살(斬殺)이라는 표현이 더욱 정확하다.[10] 당시 운봉국민학교[11] 직장에서 만난 여자 친구였으며, 무슬림이 아닌 기독교 가정 출신이었다. 링크[12] 이후에 뒤늦게 유일신과 성전이 외신의 보도를 보고 김선일이 선교 활동을 했다는 사실과 그가 근무했던 회사의 성격을 파악하고 그들이 운영하는 웹사이트에 참수 영상을 "이라크에 기독교를 전파하려던 한국인 인질의 처형 영상"이라고 제목을 붙여 업로드하며 해당 사실을 언급했으나 이는 참수 이후에 일어난 일이었다.[13] 유일신과 성전은 인질의 국가와 인종, 종교와 상관 없이 미군에게 간접적으로 협력한 인질들을 가차없이 무참히 참살해왔다. 그 인질 중에는 같은 무슬림이었던 터키인, 이집트인 등이 있으며, 심지어 같은 이라크인도 다수 포함돼 있다.[14] 이 단어는 한국 개신교에서 주로 '신에게서 인가받은 장래희망 내지는 목표'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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